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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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랑제품개발이 성공하여 구매자들로부터 좋은 호평을 받자 남계수는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마플로를 새로 세우는것과 함께 제품의 종류를 확대하고 그 질을 부단히 높여나가는것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그에 만족할수 없었다. 그가 간파한것은 법랑제품이 가지고있는 제한성이였다. 철제품인것으로 하여 무거운데다가 제작공정이 복잡했던것이다. 사람들의 생활에 가깝게 리용되는 상품일수록 그 요구가 부단히 변화발전하는것은 피할수 없는 법칙이기도 했다. 가볍고 쓰기 편리하며 맵시가 있으면서 값이 눅은 일용품을 만들어내는것이 필요했다.

남계수는 도시의 화학공업부문에서 생산되는 염화비닐에 눈길을 돌리였으며 새로운 합금철로 불수강재료를 만들어 일용품의 질을 개선하고 날로 높아지는 수요를 충족시킬 결심을 내렸다. 앞으로는 생활일용품뿐만이 아니라 소형화된 기계제품들도 생산하자는것이 그의 구상이였다. 그러자면 합금로를 세워야 하며 공작기계와 같은 생산수단들을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현존설비들을 가지고 국가로부터 받은 생산과제를 수행하는것과 동시에 그것도 자체의 힘으로 진행해야 하는것만큼 현실로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품이 들어야 하는것이였다.

머리속의 꿈은 하늘을 날지만 자기가 처한 주위환경으로서는 그것이 한갖 공상이나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일종의 허무감이 들고 정신적고독과 방황에서 헤매기도 하는것이다. 남계수로서는 자기의 생활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심에로 접근하고있었다. 그것은 살아온 지난날의 생활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그렇게도 애착을 가진 기업경영이라는 사색자체에서 떠나야 하는것이였다. 개인기업가출신으로서 사회주의기업을 맡아 운영하기도 어려웠지만 자기에게 익숙되여온 그 모든것을 떠나서 새로운 인생길을 걷는다는것도 마음먹은것처럼 쉽지 않았다.

그는 자기 운명에 비껴오는 검은구름을 보고있었으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회의와 동요에서 벗어나보려고 애썼다.

오늘 아침 출근하기에 앞서 안해와 좋지 못한 대화가 오갔다.

《평양누님이 오늘 낮차로 내려오신다는데 어떻게 하시려나요?》

누이 남순진은 전쟁때 잃은 왼손에 의수를 하기 위해 이 항구도시의 대학병원으로 온다는 기별을 한지 오랬다.

《당신이 좀 맞아주구려.》

가정생활의 습관으로 남계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신유정의 립장으로서는 신중하지 않을수 없었다.

생활에서 실수 같은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그런데서 인간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다는것을 모르기때문이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바라보지조차 않으며 대답하는 안해의 어조에는 실망과 질책이 어려있었다. 남계수로서는 하필이면 지금같은 때에 누이가 내려올건 뭔가 하는 불만이 치밀었는데 그것은 그의 무정한 성격이 드러내는 약점이기도 했다.

작업장들을 돌아본 남계수는 자재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부기장이 와서 한담을 하고있었다. 체소한 자재과장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영길은 서둘러 자리를 뜨려 하였다.

《부기장동무두 좀 있소.》

조영길은 마늘코 코등을 손으로 매만지며 난색을 지었다. 공교로운 장소에서 반갑지 않은 사람을 만났던것이다. 검열성원들이 참빗질을 해댔지만 재정에서는 한건도 제기되는것이 없다. 하기야 검열보다 더한 남계수의 단련을 매일과 같이 받아왔으니 어련할텐가. 그러나 이 사람은 그것을 고맙게 여길 대신 오늘도 여기에 와서 남계수를 헐뜯는 소리만 하고있었다.

《자재과장동무, 저녁중으로 자재확보량을 문건으로 제기하오. 카바이드재고가 얼마나 되오?》

《카…바이드말입니까. 장부상으로는 현재… 530키로… 있습니다.》

《현물은?》

《그건 창고에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보긴, 300키로도 되나마나하오. 보관을 바로 안하니 절로 핀 재가 얼마나 되는지 아오? 온 공장 회칠을 해도 되겠단 말이요. 법랑칠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붕산과 산화아연은 언제 들여올테요? 그리고 형석도 말이요.》

남계수의 어조가 날카로와지자 자재과장은 장부책을 든채 고개만 조아리고 서있다. 그 모양을 훔쳐본 조영길은 눈귀를 쭝깃댔다. 여기왔다가 자기도 한방망이 얻어맞을것 같았던것이다.

《출장간 박동무가 수일내에 돌아옵니다.》

《만일 수량과 기일을 보장 못하면 출장비를 변상시킬줄 아오. 인수원들이라는게 길 떠나면 제세상이란 말이요.》

남계수가 조영길에게 눈길을 돌렸다.

《2. 4분기생산총화를 한 지금 기업소의 경영자금이 얼마요?》

수자에 밝은 조영길이 제꺽 대답했다.

《모자라오. 한 20만정도 더 조성할수는 없겠소?》

《생산된 제품의 판매실현을 앞당기고 일부 자재들을 절약한다면 거기서 10만정도… 그 다음은 대부형식을 취할수 있겠는데…》

《은행에서 얼마나 대부받을수 있소?》

《그건 걱정마십시오. 리자률이 높지 않으니 상환기일만 지키면…》

《리발실과 목욕탕을 새로 지어야겠소. 한심한것도 사실이구 말밥에 오르는것도 응당하오. 부기장동무가 자금확보를 하오. 자재과장은 미리 세멘트와 모래를 날라다놔야겠소. 그 다음은 와닥닥 해제낍시다. 가만, 동무네 사업토의를 하던건 아니요?》

자재과장의 낯색이 하얗게 되자 림기응변의 능수인 조영길이 제꺽 둘러쳤다.

《예, 3. 4분기자재계획을 알아야 우리도 대책을 세울수 있기에…》

자재과장은 조영길의 천연스러운 대답에 얼없이 고개방아만 찧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방금전까지 둘이서 고개를 맞대고 누굴 흉질했는가. 어디서 들은 소린지 남계수가 몇날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고 험한 소리까지 한 입을 저렇게 내리씻다니, 참으로 기막히게 말재간이 좋은 사람이다.

《그럼 토론들을 하오.》

방을 나가는 남계수의 등에 대고 두사람은 각이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문이 닫기기 바쁘게 조영길이 의자에 틀스럽게 앉더니 다리를 꽈올리며 뒤틀린 소리를 냈다.

《남계수동지,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남계수는 몇달전부터 면식을 가지게 된 무역기관의 한 일군이 초청하여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그는 이 사람을 통하여 구일파의 소식을 알게 되였다. 남에서 살았어야 할 사람이 해외로 흘러나간것을 보면 인생곡절이 있었겠는데 크지는 않아도 중기계회사를 내오고 사장으로 일한다니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리해하기가 어려운것도 없지 않았다. 기쁜것은 그가 조국을 잊지 않고있으며 조국의 부강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결심을 하고있다는것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변화무쌍한것이라고 남계수는 생각했다.

구일파의 편지를 전한 무역일군은 헤여지기 앞서 남계수에게 물었다.

《조영길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일하지요?》

《예, 우리 부기장동무 말인가요?》

《그 사람이 먼 친척벌 되는데 일이나 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걱정마십시오. 똑똑합니다.》

무역일군과 작별한 남계수는 밤길을 걸었다. 항구도시의 밤이다. 청년들의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이 시간이 오면 그네들은 자기들의 구슬땀을 바쳐 꾸려놓은 룡천강유보도에서 희열과 랑만에 넘쳐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것이다.

오색불빛이 찬란한 거리, 집집의 창가마다에서 행복의 웃음소리가 흐르는 이밤, 전쟁의 포화속에 페허로 변했던 도시였건만 오늘은 인민의 락원으로 일떠섰다. 어제는 전후복구건설의 노래를 부르며 불굴의 힘으로 재더미를 헤쳤다면 오늘은 사회주의건설자의 노래를 부르며 이 땅우에 창조와 건설의 영웅서사시를 수놓아가는 우리 인민인것이다.

남계수는 들먹이는 마음을 안고 걸으며 구일파의 편지를 상기했다. 구절구절이 가슴을 휘저었다. 단순한 감회만이 아닌 자기자신이 안겨사는 사회제도의 고마움과 진정한 삶의 보람을 알게 하는 심오한것이였다.

《계수형, 세월은 진정 류수외다. 리별과 상봉은 인간이 보내고 맞는 아쉬움이고 기쁨이라 하겠건만 정녕 우리는 언제면 다시 만날는지 기약할수 없소그려. 사나이 살면 인생길에 무슨 눈물인들 안 뿌리겠소만 이 불운자에겐 찾아드는것마다 액운이였소. 남형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서울의 내 꼴이야 다 봤겠지만 그건 약과외다. 기업은 고사하고 동냥하게 된 이 미련한 놈이 서울이라는 복마전같은 소굴에 침을 뱉고 구차스럽지만 처가를 찾아 떠난것은 1948년 마가을이였수다. 이북은 어쨌는지 모르오만 남조선천지는 리승만이라는 귀축이 나타난 뒤엔 어디를 가나 살인란무장이였다오. 그무렵 려수에서 미국과 리승만의 폭압통치를 반대하여 애국적인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는데 내 처남도 거기에 뛰여들어 잘못되고 그 여파가 밀려와 처가를 도륙냈으니 난 홀지에 혈육을 다 잃고 세상에 홀로 남은 인간이 돼버린거외다.

계수형도 잘 알지만 평생 소인배인 이 구일파가 더러운 제 목숨을 부지해보자고 왜정때도 오르지 않은 관부련락선 배길로 일본이라는 땅을 찾았소그려. 제땅에서 살지 못한 인생인데 어덴들 오라는데가 있으랴만 그런대로 일본땅에서 간신히 목숨이나 부지할수 있었수다.무슨 일인들 안해봤겠소. 한땐 제노라 한 내라지만 간사한 일본사람들한테 버는족족 털리우며 온갖 업신을 당하다 더는 못 견뎌 다시 살길을 찾은게 유럽이외다. 떠나온 인생길을 돌아보며 너 어데까지 왔고 어디로 가려느냐 묻지만 가슴속은 텅 비여 대답할 말이 없었소그려. 이역만리 남의 하늘아래서 눈물을 흘려보니 고국이 못견디게 그리웠소.

눈물은 떨어져도 밥숟가락은 올라간다는 말이 정녕 틀리지 않습디다. 지중해기슭의 작은 도시에서 빈대떡 팔아 사는 신세로 하루하루 연명을 하다 하느님이 내렸을 운명을 따랐던거외다. 내가 차려놓은 작은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인즉 나보다는 나은편이라지만 외롭기 그지없는 동포녀성이였수다. 타향에서는 제 고향의 까마귀를 봐도 반갑다는 말이 그른데가 없더군요. 우린 이렇게 서로 의지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동족이라는 하나의 리유로 가정이라는것을 이루었수다. 타향만리에서 유색인종의 수모를 물마시듯 하며 생존의 터전을 지킨다는게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견디여내야만 했지요. 말이 부부지 돈벌이에 미쳐버린 악귀같이 살아서 몇해만에는 오락장을 하나 갖추고 생존을 유지했수다. 집사람은 지금도 캬바레주인노릇을 하고 나라는 사람은 얼마간 축적된 돈으로 어벌이 크게 중기계회사를 하나 내왔는데 일에 시달려 눈코뜰새가 없수다.

남형은 이 편지를 읽으며 남의 나라 땅에서 돈벌이에 미쳐산다고 침을 뱉겠지만 살자니 별수가 있소. 이왕 타향으로 밀려난 몸인데 돈없인 못살겠고 돈이라는걸 좀 만져보니 이를데없이 허무하구려.

계수형, 진정 그립소이다. 비록 내 님은 버렸어도 님그리는 마음이야 어데 가겠소이까. 하늘땅은 넓다지만 이 몸은 갈 곳이 없으니 황량한 광야에 버려진 인생이란 말이오이다. 우리 함께 식민지살이를 하면서도 제땅의 낟알을 찧던 그 시절이 왜 이리도 그립소.

내 일본에서 그 사사끼라는 작자를 다시 만났댔수다. 정미업이나마 하던 놈인데 일본이라는 나라가 망한 후 야꾸자에 들어가 강탈질로 살아갑디다. 흥망성쇠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외까.

이 몸은 이역만리에서 살지만 이번에 남형의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수다.

왜정때 개인기업을 한 사람이 개인소유를 척결한다는 공산정권이 선 나라에서 지배인을 한다니 이놈은 도저히 믿을수가 없구려. 일체 사적소유를 페절한 사회에서 개인기업가였던 사람이 또다시 기업을 맡아본다니 말이외다. 해방후부터 오늘까지 어떻게 청산당하지 않고 살았소? 그래 공산주의자들이 계수형을 가만 놔두던가 말이웨다. 무슨 곡절이야 있었을텐데. 어쨌든 계수형은 난 사람이요. 기업을 하는 솜씨야 누가 따를라구요. 제땅에서 그렇게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진정 부럽구려. …》

남계수는 이상할만큼 가슴이 긍지로 부푸는것을 맛보았다.

내가 부럽단 말이지, 그럴걸세. 이 사람, 일파! 자네를 떠나보내며 말했지. 우리 제 생각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각기 당해보자구. 그러니 내가 옳은셈이 아니란 말인가. 자네 지금 어데 있나. 어찌되여 이역만리에서 고국을 그리며 구슬픈 하소를 하는건가.

옛 지기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애쓰지만 구일파의 모상은 잘 안겨오지 않았다. 민족을 떠나 살기에 괴로움을 당하는것이다. 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수 없는 길로 떠민것은 누구인가. 사람은 방황하느라면 마침내는 자기가 바라지 않은 운명도 감수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자기에 대한 자부보다 행복한것은 없다는것을 남계수는 가슴뿌듯이 느끼였다. 요즘 인생을 놓고 새로운 결심을 내리려 하는데 그 생각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숨이 차올랐다. 과연 내가 그 소원을 이루어낼가, 주저하면서도 의지는 한걸음씩 내짚고있었다.

《여보, 공장으로 가시겠어요?》

등뒤에서 들려오는 안해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 남계수는 어둠속을 둘러보았다. 집앞을 지나치는데도 제 생각에만 옴해있었던것이다.

가방을 든걸 봐선 안해도 퇴근해오는 길인 모양이다.

신유정은 집마당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누님이 입원한 병원에 갔다오는 길이예요.》

은근히 나무리는 어조다.

《래일은 가보겠소. 욕을 먹어본지도 오랬는데… 참, 내 오늘 생각지 않게 구일파의 소식을 듣고보니 생각이 많아지더군.》

《구일파 그 사람은 건재하다던가요?》

남계수는 마루에 앉으며 허거픈 웃음부터 흘리고나서 대답했다.

구일파가 제 나라가 아닌 유럽으로 흘러가서 새 가정을 이루고 기업가로 나섰다는 말을 들은 신유정은 한숨을 내쉬며 남계수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의 운명이란 예측하기 어렵군요.》

신유정은 잊은지도 오랜 구일파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인간과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람이 살면 사연을 남기기마련인듯싶다. 그래서 인생길은 천만갈래라고 하는것이 아닐가.

이무렵 그는 심란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하고있다. 교육실태가 료해되기 시작해서야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게 되였다. 교수내용에 있어서 설사 사소한것이라 하더라도 편향과 오유가 발견되면 인정해야 하는것이였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신유정이라는 인간에게 있어서 불가피한것이였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량반사대부의 가문에서 글을 배웠고 해방전 변변치 못한 교육을 받고 교단에 나선 내가 아닌가.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사상잔재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나의 심신에 슴배여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진대 그런 상태에서 사회주의건설이 심화발전되고있는 오늘의 교단을 지킨다는것은 사실상 교육자의 량심에도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

신유정은 이런 의미에서 결심을 가지고있었다. 이것이 자신이 감수해야 할 운명이라면 다른 하나는 한집안의 기둥이나 같은 남편과 이어진 괴이쩍기 이를데없는 소문이 그를 괴롭히고있다.

남계수는 도덕적으로 패륜아다, 생명의 은인이나 같은 녀성을 롱락하고는 헌신짝처럼 차던진 파렴치한이다, 안해가 아닌 다른 녀인과 불순한 관계를 맺고 자식까지 만든 남자가 오늘은 불행을 겪고있는 그 녀인과 자식을 돌아보지도 않으니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수 있는가, 또 그런 사람이 한개 공장의 지배인으로 버젓이 일하고있다는것은 사회의 수치라고 저주하는 등 차마 들을수 없는 여론이 파다하게 나돌고있는것이다.

하지만 규탄의 대상이라고 해야 할 남편은 귀등으로도 듣지 않으며 코방귀만 뀌고있으니 리해할수가 없었다.

신유정은 어떻게 하나 소문을 가라앉히고 사태를 바로잡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며 알아보지만 치정사의 희생물이라는 주숙진이라는 녀자는 어디에서 찾을수도 만날수도 없었다. 우뢰가 울면 비가 내리는데 흉문에서 남편의 버림을 받았다는 그 피해자는 이름만 나돌뿐 찾을 길이 없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신유정은 남편의 옆모습을 훔쳐보며 한숨을 소리없이 내쉬였다. 앉은 모양부터가 금시 벼락을 친대도 끄떡 안할 바위같다. 하늘이 무너지겠으면 무너지라지, 이 남계수가 갈길을 못 갈가 하는 심사가 여실히 보였다.

《왜, 무슨 말이든 좀 하구려.》

신유정은 조용히 웃고말았다.

《시장하시지요? 저녁을 지어야겠어요.》

자리에서 움쭉 일어난 남계수는 《허, 구일파가 보내온걸 먹었더니 속이 부르오. 사람이 처신이 모자라는건 결심해야 할 때 결심을 하지 않기때문이라는걸 알았소.》 하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의 말뜻을 마음속으로 음미해보며 신유정은 입가에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찾아들기 쉬운것이 자만인지도 모른다. 동소옥의 요즘 기분상태는 류달랐다. 자기라는 존재를 인식하는데서 오는것이지만 이전처럼 때없이 빠져들던 울적감은 사라지고 보이는것마다 밝게만 느껴지는것이였다. 이따금 거울속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무엇이라고 말할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법랑칠물을 만들어낸 후부터는 애꾸러기가 선망의 대상으로 되였다. 그래서 일이 곱다는 말이 생겨난것일가. 처녀의 가슴속에서는 로동의 희열이 약동하기 시작했다. 자기도 집단과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수 있다는 자신심을 가진 뒤부터는 일터가 마음에 들고 하는 일이 보람을 가지게 하였다.

일요일 반나절을 도서관에서 보낸 그는 오후에 해안미용원을 찾았다.

《이게 누구야? 소옥이, 그 고운 얼굴을 다시는 못 보는가 했지.》

언제 봐도 매력적인 미용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같은 녀성이지만 동소옥은 이 녀자를 마주할 때면 이상할만큼 위압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나이가 퍼그나 우인 상대지만 세상에 이렇게 잘난 녀자도 있을가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였다.

《안녕하셨어요?》

《그럼, 소옥일 보고싶어 무척 기다렸어. 오늘은 우리 혁신자처녀를 내 손으로 멋있게 단장해주지.》

《아이참, 제가 무슨 혁신자나요.》

《어서 앉아. 그렇지, 고개를 들구 날 보렴.》

미용사는 동소옥을 의자에 앉히고는 마주서서 바라보았다. 머리모양을 어떻게 잡아줄가 눈가늠을 하는데 마치도 미술가가 모델을 마주한듯 한 표정을 지어 동소옥은 얼굴을 붉혔다.

《그저 일하는데 편리하면 돼요. …어색하게 굴지 마세요.》

《아니, 소옥인 확실히 매력이 독특한 미인형이야. 갸름한 얼굴, 희고 반듯한 이마… 그에 맞는 머리모양을 갖춰야지. 물결이 굽이치는듯 한 시원한 형태가 어떻니?》

《요즘 그렇게 한 머리들을 보았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미용사는 각종 미용도구들을 차례로 선택하여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시계의 초침소리같은 가위질소리가 울리자 동소옥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정성을 기울이면서 미용사는 최근 미용의 추세를 이야기해주는가 하면 새로 나온 가극의 내용은 물론 유럽의 고전가극들에서 나오는 아리아에 대한 음악적인 분석도 하는데 놀라운 수준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동소옥은 이 녀자는 어떤 운명의 길을 걸어왔을가 하고 마음속으로 물어보기까지 했다. 체취에서 남다른것이 풍겼던것이다. 목소리는 얼마나 부드럽고 성량 또한 얼마나 풍부한가. 훌륭한 육체적조건과 잘 생긴 얼굴을 가지고 무대에 섰다면 명가수로 이름을 떨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나니 자연히 호기심을 가지게 되였고 일종의 부러움마저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언니는 왜 미용사직업을 택했어요?》

《내 직업이 어째서?》

《아쉬워서요.》

《그래, 나도 내가 남의 머리나 가꿔주는 일을 왜 하나 하는 불만이 생길 때도 있단다. 그렇지만 달리 살수는 없는 경우도 있거던. 운명이라고 할지… 하지만 괜찮아.》

《사연이 있는것 같군요. 혹 실련이라도…》

《아니, 그쯤해서 속을 태우면 바보지 뭐. 사랑보다 더한것을 잃었다면 넌 어쩔셈이냐?》

《녀자들한테야 사랑보다 귀중한건 없지 않을가요?》

《천진하기란. 녀자의 사랑보다 단순한건 없어. 그 작은 계선을 넘어서지 못해 울고불고하지. 참, 소옥이. 내 언젠가도 말했지? 화보에 모델로 나서라구. 그럼 아마 대번에 인기를 끌거야. 마침 평양에서 녀성화보사의 기자가 여기에 내려와있어.》

《호호호… 제가요? 기막혀라. 세상을 웃기겠어요.》

《소옥인 자기를 모르는게 탈이야. 난 같은 녀자로서 담보한다. 넌 지금의 얼굴과 몸매로 나서면 성공해.》

《난 철제일용품공장의 로동자예요.》

《내가 그걸 몰라서? 미인을 찾는 눈들은 여전히 많아. 지금같이 살수는 없지 않아?》

동소옥은 들뜬 기분에 사로잡혔다. 한번 세상에 내 얼굴을 내놔봐 하는 충동이 솟구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미용사가 하는 말조차 의문을 조금도 품지 않고 귀가 솔깃하여 듣기 시작했다.

미용사는 순결한 처녀의 머리카락 오리오리를 헤치지만 실상은 마음속을 들여다보고있었다. 회유의 명수인 이 녀자는 전후부터 이 도시에서 살아온 자기의 경력을 거들면서 동소옥의 아버지인 동윤덕이 어떻게 되여 법기관에서 취급되였는가에 대해서도 넌지시 암시하였다.

당시 너의 아버지의 불만은 사실상 불가피한것이다, 많던작던 누가 자기의 자산을 내놓고 협동경리에 들어서겠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계급적으로 타협할수 없는 대상이기에 술이나 마시며 한 말들이 반동적인것으로 규정되였다, 이것 역시 달리는 될수 없는 운명이다, 어느때에 가든 반드시 청산되는것이 어제날의 개인기업가, 상공인들이다, 왜냐하면 국가사회제도가 그것을 목적하기때문인것이다. …

동소옥은 최면술에 걸린것처럼 미용사의 속삭임을 고스란히 듣기 시작했다. 이 녀자가 어떻게 되여 자기의 아버지와 가정래력을 그렇게도 잘 아는가 하는 의혹은 조금도 품지 않았다. 한것은 자기도 너무나 잘 아는 과거, 그에게는 제일 슬픈 과거이기때문이였다.

《소옥이, 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이런 말도 하는거야. 화보의 모델로 나서봐. 그러면 인생의 방향도 달라질수 있어.》

동소옥은 거울속의 달라진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 같은게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자기를 믿어야 해. 너의 무기는 네가 가진 미다.》

《좋아요.》

동소옥은 미용사와 모델로 나설 약속을 하고 거리에 나섰다.

멀리 락조가 비낀 바다가 바라보였다. 미용을 하는 동안에 그렇게도 자신심을 가졌던 자신을 깡그리 잃어버린 그는 텅 빈듯 한 마음을 안고 독신자합숙으로 향했다. 래일은 어떤 구실을 대고서라도 미용사가 소개하는 사진기자를 만나야 했다. 자기를 향해 무엇이 다가오는지 처녀는 알수 없었다.

합숙호실에 들어서니 뜻밖의 사람이 기다리고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소옥!》

두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녀자는 합숙의 이전 사감이였다. 스스로 사감자리를 내놓고 탄광에 자진하여 간 그 녀자를 보는 순간 동소옥은 너무 반가운김에 와락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울긴, 압축기호스를 실으러 왔다가 시간이 있어서 들린거야. 네가 얼마나 보고싶던지.》

《저 같은걸 다 잊지 않구…》

《잊다니. 사랑과 우정은 변함이 없어야 해. 머리를 한 모양이구나. 너 아직도 그 미용원에 다니니?》

《머리를 어데서 하는가도 문제로 되는가요?》

사감은 동소옥의 어깨를 싸쥔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네 얼굴에서 회의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구나. 내 눈은 못 속여. 내가 누구라구. 이래뵈두 당당한 로동계급이란다.》

《미처 몰라봐서 미안하군요. 하긴 그래서 언니의 안목이 그리도 정확하고 나도 탄복하게 되는가봐요.》

《앉아서 이야기하자.》

동소옥은 그의 앞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으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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