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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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당위원회가 어느 한 기계공장에서 조직한 경험교환회는 시안의 공장, 기업소의 당, 행정책임일군들이 참가한 속에서 진행되였다. 모범적인 단위들의 일군들과 함께 남계수도 자기의 사업경험을 가지고 토론하였다.

발전하는 현실에 맞게 경제관리와 지도를 따라세우기 위한 과정에 찾게 된 긍정적인 경험들과 귀중한 교훈들이 적지 않았다. 남계수는 이번 경험교환회에 참가하여 토론하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고 가슴이 뿌듯해졌다. 어제날의 자기였다면 생각도 못했을 이런 뜻깊은 자리에 서슴없이 나설수 있은것은 그자신을 믿어주고 키워준 고마운 손길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어둑어둑 저물어가는 황혼빛에 물든 차창밖을 바라보며 잊을수 없는 깊은 추억속에 잠겨버렸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그날도 석양노을에 물든 구름을 바라보며 그는 공장의 자기 사무실창가에 서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책, 그 누구인가에게 마음속으로 빌며 바라는 용서, 하지만 심술궂은 응석받이는 자기였다는 후회가 밀물처럼 가슴에 밀려들고있었다.

이때 방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던 그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리건창이 정시홍과 함께 들어서는것이였다.

성미가 불같은 리건창은 여느때없이 진중한 얼굴표정을 하고 동무는 당에서 취해준 조치에 의하여 인민경제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으니 당장 사업을 인계하라고 하는것이였다.

남계수는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만 기웃댔다. 평양에 있어야 할 사람이 불시에 나타난것도 의문이지만 자기 나이에 이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라니 뭐가 뭔지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남계수가 옳긴 옳은가? 멀쩡멀쩡 바라보긴…》

《언제 내려오셨소?》

《아, 내가 미처 인사를 못했구만. 하하. 여보, 벌찬 남계수를 잘 신칙하라구 날 여기 시당에 내려보내주더구만. 어떤가? 이젠 옴짝달싹 못하게 됐지?》

시당위원장이 새로 임명되였다더니 그가 바로 이 리건창이란 말인가! 너무도 반가와 남계수는 그의 손을 움켜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이런 놈의 손탁을 봤나. 하하.》

《옳수다. 이젠 곁에서 이놈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겨주시우.》

《그야 여부가 있나. 우선 평양에 올라가 공부부터 하라구.》

남계수가 두손을 내흔들었다.

《내 나이 몇살이라구 이제 공부를 한단 말이요. 에에, 안되겠수다. 난 제기한대로 공장안의 어느 작업반이든 가서 망치자루를 잡고 일이나 할테요.》

그러자 리건창의 낯색이 금시 엄해졌다.

《그러니 기업관리를 떠나겠다?》

《거야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요. 낡디낡은 내 머리를 가지군 이젠 나라에 짐밖에 더 되겠소?…》

리건창은 남계수의 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고나서 말했다.

비록 때늦었지만 이제라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똑바로 인식하는것이 필요하다, 동무자신이 입당청원을 하며 자기의 결함에 대하여 인정한것처럼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잔재를 극복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경제리론을 옳바로 체득하는것이 필요하다, 동무를 인민경제대학에서 공부시키려는것은 남계수라는 인간을 끝까지 믿고 책임져주려는 당의 또 하나의 믿음이며 사랑이라는것을 명심해야 한다. …

리건창의 어조는 자못 엄격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지 못한 근엄한 얼굴에서 남계수는 다심한 질책과 사려깊은 은정을 느끼며 절로 머리를 숙이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배울수 있다는 그자체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여보, 나이 쉰살이 되여 학생이 되는걸 봤소?》

그날 저녁 집에서 남계수가 묻자 안해는 조용히 타이르듯 대답했다.

《당신이 가는 대학이 어떤 대학인가를 알아야 해요. 아마 힘이 들어도 많은걸 배우게 될거예요.》

이렇게 나이 오십이 되는 1963년 가을 사회주의경제관리운영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인민경제대학으로 떠나갔던 남계수였다. 이것 역시 나라에서 그에게 안겨주는 변함없는 믿음이였다. …

경험토론회가 심화되여갈수록 남계수의 생각도 깊어갔다. 자신의 성장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 깃든 가지가지의 사연들때문이였다.

사회적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 결과로 이뤄지는 수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그였다.

남계수가 인민경제대학시절을 돌이켜볼 때마다 떠오르군 하는것은 자기를 배워준 담임선생과 한 일군에 대한 추억이였다.

열댓명으로 구성된 학급에는 한다하는 특급기업소의 지배인도 있었고 국영종합농장의 관리일군도 있었다.

담임선생은 쉰고개에 아직 이르지 못한 녀성이였는데 친근한가 하면 엄하고 다심한가 하면 잘못에 대해서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 전형적인 교육자였다.

어느날 그는 학급에서 좌상인 최명삼이라는 제강소(당시) 지배인을 찾아 저녁시간에 기숙사호실로 왔는데 그의 손에는 성의를 다해 마련한 음식꾸레미가 들려있었다. 본인은 물론 남계수를 비롯한 호실에 있던 사람들의 의혹은 놀랄만큼 잔뜩 부풀어올랐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물었던것이다.

《본인도 그렇고 여러 동지들도 의문을 가지는데 제가 최명삼지배인동지에게 묻겠습니다. 오늘을 기억하십니까?》

《예?…》

깜짝 놀란듯 당사자인 지배인이 갑자르며 대답을 못했다.

《이 뜻깊은 날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예.》

죄스러워하며 대답한 지배인은 목갈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이 이렇듯 깊이 속을 쓰실줄은 몰랐습니다. …》

이어 한 인간의 순탄치 않은 운명사가 펼쳐졌다. 이 사람인즉 해방전 부유한 가정에서 태여나 다른 나라에 가서 대학공부까지 한 사람이였다. 일제식민지통치말기에 조국에 나온 그는 제강소의 기사가 되였지만 왜놈들의 갖은 민족적멸시와 천대속에서 온갖 설음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해방직후 어버이수령님의 력사적인 개선연설에 접하고 그이의 열렬한 애국애족의 뜻에 매혹되여 제강소를 떠나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그는 어느날 아버지가 몹시 앓는다는 소식을 받고 부모처자들이 있는 서울에 잠시 갔다오게 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 제강소를 찾으실줄 어찌 알았으랴.

수령님께서는 제강소의 형편을 일일이 료해하시다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나서 기술도 높을뿐아니라 건국열의도 대단히 높은 애국적인 지식인이라고 평가해주시며 그를 만나보지 못한것을 매우 아쉬워하시였다. 그후 제강소에 돌아와 이 사실을 전해듣고 깊은 감동에 휩싸인 그는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민주건국의 길에 한몸바칠 맹세를 다지였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무슨 출신을 운운하며 자기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자머리를 한 좌경분자들의 모해와 압력을 견디여낼수 없었던 그는 자기의 운명을 두고 번민하고 모대기던 끝에 끝내 자기가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마저 저버리고 고향인 서울로 야밤도주나 다름없는 길을 택해버렸다.

그러나 서울에 나간 그는 인차 자기의 잘못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해방전에 상해림정에도 관여한바 있는 부친은 리승만의 단선음모를 반대한 리유로 박해를 받다가 운명하였고 동생이 가업으로 물려받아 운영하던 보잘것없는 기업마저 미군정의 군화발에 여지없이 짓밟혀버렸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한다하는 제강기사라지만 미군의 강점하에 명색뿐이던 민족산업의 형체마저 완전히 거덜이 나버린 남조선땅에서 그는 한갖 버림받은 무위도식자로 전락해버리고말았다. 그가 모진 기아와 후회속에 허덕이고있는 때 운명의 마감을 예고하듯 전쟁이 터졌다. 북침열기에 들떠 전쟁을 도발했던 미군과 《국군》이 졸지에 마가을의 락엽신세가 되여 락동강너머로 휘뿌려지고 인민군대가 진격해나왔을 때에도 그는 절망속에서 숨어살아야 했다. 북에서 도망쳐나온 몸이라 별도리가 없었던것이다. 그렇게 은둔살이를 하던 어느날 종시 신분을 확인할수 없는 《도주분자》로 인정되여 내무기관에 붙들리고말았다. 이제는 모든것이 끝장났다고 락심하며 운명의 마지막시각을 기다리던 때를 추억하는 지배인의 목소리가 차츰 떨려나기 시작했다.

《이 무지무도한 놈은 그 순간에조차 저 하나밖에 생각 못했소. 그런데 우리 수령님께서 나 같은 놈을 잊지 않으시고 서울에 나가면 최명삼이를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찾아야 한다고, 전쟁통에 그 사람이 잘못되면 큰일이라시며 일군들을 보내주실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소. 그후 우리 가족은 안전한 지대로 옮겨갔고 엄혹한 후퇴의 길에 올랐던 나는 고산진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다시… 만나뵈옵게 되였소. 한창 전쟁중이여서 귀중한 사람들이 수많이 희생되는 때이고 더우기 은혜를 배신한 나 같은 놈은 천벌을 받아도 마땅했소. 하지만 그이께서 다친데는 없는가고… 처자들도 다 데리고 왔다니 마음이 놓인다고 하실 때… 이놈은 무릎을 털썩 꿇고 용서를 빌었소. 수령님께서는 나를 손잡아 일으켜세우시고 이제는 헤여지지 말자고, 동무를 제강소 지배인으로 임명한 임명장을 자신께서 간수하고계시는지가 두해도 넘는다고 말씀하시는것이 아니겠소. 난 너무도 큰 충격에 금시 가슴이 터질것만 같아 아무 말씀도 못 올리고 수령님의 품에 와락 안기고말았다오. … 우리 수령님은 이런분이시오. 한번 믿음을 주시고 뜻을 같이하자고 언약하시면 끝까지 지켜주시고 품에 안아 보호해주시는 진정한 어버이이시란 말이요.》

창밖에서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하지만 지배인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때아닌 비물처럼 쉼없이 흘러내렸다.

《오늘이 바로 최명삼지배인이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다시 안긴 날입니다.》

담임선생이 이 말을 하여서야 모든 사람들이 뜻깊은 날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았다.

《이 뜻깊은 날을 영원히 잊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한생토록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지배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였다. …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을 떠날 때 담임선생은 역전까지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헤여지기에 앞서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남계수에게 말했다.

《남계수동지, 최명삼지배인이 한 말을 깊이 새기기를 바랍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저의 한생이 수령님께서 지켜주시는 언약으로 영원토록 빛나고있다는것을 말입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스승에 대한 고마움이 차넘쳤다. 수천마디를 대신하는 충고였다. 인생의 두번째 스승도 녀성이였다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류다른 향수로 간직되게 되였다. …

그후 남계수는 흥성철제일용품공장의 지배인으로 계속 사업하게 되였다.

사랑의 바다에 뛰여든 작은 시내물은 영원히 마를줄 모르는 생명을 지니고 변함없이 빛나는 삶을 누리게 된것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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