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3

 

세월이 흘러 독신자합숙호실의 처녀들도 수없이 바뀐데다 이제는 나이차이가 너무 심하여 동무로 대하기 힘든 손아래처녀들이 소란을 피울 때면 동소옥은 제가 자리를 피하는 형편이 되였다. 그런데 지금은 잠시도 쉬지 않는 참새무리들이 어데로 놀러 나갔는지 방이 비여있었다.

공장에서 돌아온 그가 옷을 갈아입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출입문이 열리자 동소옥은 깜짝 놀랐다.

이게 누군가? 왕년의 옛 사감이 점잖게 늙은 모습으로 서있는것이다.

《소옥이. 그새 건강했어?》

여전히 풍만한 몸집을 자랑하며 그 녀자는 멋스럽게 인사를 했다.

《어마나! 어서 들어오세요. 어떻게… 잊지 않으셨군요.》

《뽈까춤을 추자구 왔지.》

《재미있군요.》

동소옥이 자리를 권하며 말을 하자 사감은 우람찬 몸을 의자에 싣고나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 생각 그대로야. 여전히 매력있는 소옥이거던. 더 세련됐어. 그 몸매는 정말 부러운걸.》

《그만 놀리세요. 제 나이가 몇인줄 알구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동소옥은 보온병의 물을 따라서 가져다놓으며 말했다.

《서른다섯살이지. 이 펭긴이 머리는 아까울만큼 좋거던.》

《정말! 아니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고계셔요?》

쪽걸상에 앉은 동소옥은 자기 나이가 새삼스러워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 기억하는건 아니지. 알고싶은 사람, 잊혀지지 않는 사람, 보고싶은 사람만 기억해두는거야.》

동소옥은 려현석에게 걸직한 욕을 먹던 생각이 나 소리없이 웃었다.

어깨를 으쓱해보인 사감은 말을 계속했다.

《소옥이와 헤여진 후 난 소환되여 다시 외교관생활을 했지. 지난달에 귀국했어. 그런데 네가 왜 그런지 그립더라니까.》

《모를 소리예요.》

동소옥이 머리를 저었다. 이제는 호기심도 그전같지 않았고 무슨 일에 부닥치면 조심스럽게 의심을 품는것이 습관되였다.

《우리 소옥이 달라졌는걸. 신중성인가 소심성인가?》

《달라져야지요. 그때 모양으로 아직까지 남아있으면 뭐가 되겠어요.》

《아무렴, 자그만치 서른살을 넘긴 처녀의 신상에 무슨 일이 없을라구. 그래 여직 이곳에 있는걸 보면 대상자를 찾지 못했다는 소리가 아니야?》

《그래요. 물진 아가 호호. 볼품없겐 됐어요.》

《천만에. 아직은 고와, 정말 매력있어. 내가 련상한 그 모습이라니까. 정말이야. 소옥아, 내가 왜 온것 같아?》

《글쎄요.》

《사감》은 머리를 젓고나서 유심히 동소옥을 바라보며 말머리를 돌렸다.

《오면서 보니까 해안미용원자리에는 새 건물이 자리잡았더구나. 소옥이도 이전에 거길 자주 다녔지?》

언제적 일인가. 하도 소문난 미용원이여서 찾군 하였다. 지금은 미용원과 함께 미용사였던 녀자도 사라졌다. 무던히도 관심을 돌려주군 한 녀자가 아닌가. 모델을 서라고 얼마나 지꿎게 굴었던가. 지금도 그때에 자기의 운명이 달라질번 했다는 생각이 찾아들 때면 이상하게도 온몸이 오싹해난다.

동소옥은 자기앞에 앉은 녀인을 조용히 바라보며 믿음이라는 감정을 받아안고있었다. 미용사녀인이 머리속에 그려넣었던 허황한 무지개를 지워준 사람이 바로 이 녀자였다. 그는 언제나 생각지 못했던 요긴한 기회에 나타나 옳은 말을 해주군 하였다. 참으로 이것은 쉽지 않은 인연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 미용원이 인상이 깊었어. 그 까닭을 생각해보면 멋쟁이미용사가 떠오르거던. 소옥이도 그 녀자한테서 미용을 했지?》

동소옥은 묻는대로 머리만 끄덕댔다.

《난 원래 매력있게 생긴 녀자에겐 호감을 가지고 대하는 취미가 있어. 왜 그렇게 보니? 인간의 개성이야 존중해야지. 난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야. 제일 마음에 드는건 소옥이다. 이건 진심이야. 호호. 난 락천적인 사람이다. 비극은 질색이다. 그럼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지. 내가 소개하는 사람 역시 외교관, 앞으로 순회대사급의 위치를 당당히 바라보는 능력있는 사람, 나이는 40살… 어떻니?》

자못 엄숙하게 말한 녀인은 동소옥의 대답을 은근히 기다렸다.

동소옥은 안개속같은 잠에서 깨여난 기분으로 대답했다.

《꿈에도 생각 못해봤어요.》

《기다린 보람이야 있어야지.》

《전 이렇게 볼품없는 로동자나 같은걸요.》

《그야 흠이 아니지. 우리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이거던.》

동소옥은 곱게 눈을 감으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자기자신을 알라, 이런 말 있지 않아요.》

《소옥인 역시 소옥이야. 그건 명언이긴 하지만 오늘에 사는 사람들이 구애를 받을건 없다고 봐. 우리에겐 자기의 과학적인 세계관이 있으니까.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다,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신에게 있다. …그렇지?》

동소옥은 자기를 그토록 위해주는 어제날의 합숙사감을 자기의 리성으로 리해한다는것이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같은 녀성으로서 도움을 주려고 찾아온 이상 고마운 생각이 들어 아리숭하면서도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와요. 하지만 전 할 일이 많답니다. 공장대학을 졸업한 기사예요. 우리 공장에서는 새로운 합금철재료개발을 저한테 맡겼거든요. 언제 헛눈을 팔며 살 형편이 못돼요. 화보의 모델에 나설번 한 그때와는 다르다는걸 리해하세요.》

《소옥의 성장을 보는것이 무엇보다 기뻐. 물론 네 말처럼 로동보다 고상한것은 없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렴. 자, 그럼 우리의 대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녀인은 문가에서 멎어서더니 동소옥을 이윽히 바라보다 나직하나 그루를 박아 말했다.

《잊지 말아. 사람을 잘 봐야 한다.》

텅 빈 방안에 홀로 선 동소옥은 방금전에 거절한것을 자신에게 물었다.

후회하진 않겠지? 이것이 기회일수 있다는걸 알아야 해. 아니, 난 이미 결심했어. 나에게도 인생의 목적이 있는거야. 허영을 꿈꾸는게 아닌지 모르겠어. 아니, 그럴수 없어. 목적의 유일성, 그것이 인간을 규정한다는 의미를 나는 깨달은거야.

그는 이 순간 한 녀성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붉은 화염속에 서있는 한없이 숭고한 초상이다. 식료상점 책임자라는 소박한 일을 하였지만 만사람들을 격동시키며 인생의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너무도 젊은 나이에 떠나갔다. 하건만 가정과 자식에게는 순결한 사랑을, 사회앞에는 무한한 헌신을 남겼다. 사람이 그렇듯 고결하게 산다는것은 쉽지 않은것이다. 려현석의 안해였던 녀성은 동소옥의 마음속에 지울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동시대인간으로서 누구나 그처럼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것이다. 동소옥은 책상에 마주앉아 기술원서를 펼치였다.

 

매일 아침 출근에 앞서 조영길은 거울앞에서 이제는 몇오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지만 정성을 다해 빗어대는것이 습관으로 되였다. 30대부터 일을 치기 시작한 이마가 점점 사막화를 다그치더니 오늘에 와서는 정수리를 넘어서서 뒤통수까지 면적을 확대해가는것이다. 지금같은 기세면 가까운 몇해사이에 대머리가 될 판이다. 영양상태가 좋다던 앞이마도 지력이 딸리는지 주름발을 형성하기 시작하여 점점 볼품없이 되여간다.

쉰고개에 들어선 조영길은 형세가 말이 아닌 머리때문에 옷차림에 한층 세심한 주의를 돌리였다. 계절에 맞는 갖가지 형태의 모자로 육체적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옷도 세련된 밝은 색갈을 선택하려고 고심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외형상변화이지 인간자체의 변모는 아니였다.

참으로 많은 고충을 안고 지난달에 생일 쉰돐을 보낸 조영길이다. 철제일용품공장의 부기장이라는 자리가 그를 붙들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시름시름 앓는다더니 번뇌를 안은채 한정없는 병 아닌 병을 앓는것이다. 누구한테 자기의 속병을 하소연할데도 없었다.

제일 어려운것은 남계수지배인과 여전히 같이 일하고있는것이다. 이제는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배인의 일이 안되기를 바라며 얼마나 몸살을 앓았던가. 고양이뿔같은 자료들을 꿰들고 송사질로 별의별 놀음을 다 벌렸던 그였다.

마침 공장이 검열을 받는 기회여서 기승을 부렸지만 오강단지를 제손으로 머리우에 올려놓는 격이 되였다. 남계수가 조선로동당의 대렬에 들어설 때 조영길은 마침내 자기가 큰것을 몰랐으며 인간으로서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했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니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방도는 하나 일터를 옮겨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하는것이였다. 패배자의 도주행각 같은것을 결심했지만 그무렵 남계수가 인민경제대학으로 떠나갔다. 그 대학을 졸업하면 새로 배치를 받을수도 있다는 말을 얻어듣고 한숨을 내뿜었다.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면 제가 먼저 발이 재려할 필요가 없었던것이다.

바라는것은 쉽게 차례지지 않는다는 말이 옳았다. 남계수는 다시 공장으로 돌아와 이전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였으며 부기장을 대하는데서 달라진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을 다 알고있겠는데 털끝만큼도 내색하지 않았다.

조영길은 자주 남계수와의 관계를 진공상태로 느끼는 형편이다. 여러번 사직과 조동문제를 제기해보았지만 애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부기장동무야말로 공장의 실태를 잘 아는 오랜 일군이요. 가긴 어델 간단 말이요. 두고보오. 우리 공장의 전도는 밝단 말이요.》

남계수는 이런 말로 그의 의견을 매번 일축해버렸다. 그리고는 전과 달리 공장이 어떤 방향에서 기술개건을 부단히 하며 생산능력을 높여나가야 하는가를 설명해주는것이였다. 지배인의 머리속에는 오직 미래의 공장만이 존재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하나하나 추진되여 놀라운 변화를 현실적으로 안아오고있다.

독립채산제를 옳게 적용함으로써 기업소의 수익성은 높아가고있고 국가계획을 수행하여 이루어진 경영자금은 지난날에 비해 몇배로 장성하여 공장의 물질적인 토대를 튼튼히 갖추어나가는데 효과적으로 리용되고있다. 경영활동수준과 전망이 이만한 공장도 흔치 않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조영길이였지만 여전히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바늘방석에 앉아서 왼새끼를 꼬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있었다.

조영길은 지금 시인민위원회와 지구계획위원회의 해당 부서들에 들려 공장에서 새로 개발생산한 일용제품들의 가격합의를 보고 오는 길이다. 만나는 일군들마다 《흥성》상표가 인기를 모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 저도 모르게 기분이 떴으나 겸손하면서도 점잖게 대답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원단위소비기준을 최대한으로 낮추면서 질좋은 제품생산에 힘을 집중하고있습니다. 간편하면서도 그 질이 높고 문화성이 보장된 가정용품을 더 많이 내놓게 될겁니다.》

말하고나니 멋적은감은 없지 않지만 기분은 좋았다. 돌아서고보니 제가 무슨 지배인 혹은 기사장이나 되는듯이 흰소린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간지러웠다.

초물모자를 쓰고 연푸른색안경을 낀 조영길은 무더위를 피해 그늘진 곳을 찾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줄무늬가 알릴듯말듯 간 소매가 짧은 샤쯔에 은빛이 반짝거려대는 회색바지를 입어 나이보다 젊어보이고 활동적인 차림새다. 문건들이 든 작은 가방을 척 끼고 걷는 걸음새가 얼마나 세련되였는가.

누군가 어깨를 툭 건드리며 지나치기에 은근히 화가 난 눈길을 돌리다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엉덩이가 튀여나오는 좁은 바지를 입은데다 얼럭무늬가 간 남방샤쯔를 걸친 젊은이가 피끗 얼굴을 돌렸다. 머리카락을 온통 고대질로 양털같이 만든 빤지러운 상통이 낯익었다. 미안하다고 할 대신에 입술을 오그려붙이더니 휘파람을 불어대여 약을 올렸다.

저런, 망종같은 녀석, 이런 욕이 나오는것을 참다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어 노려보았다. 껌을 질근질근 씹어대는 저속한 모양새에 메밀눈까지 포착되는 순간 그의 입에서는 아,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뇌리에서는 어떤 녀자의 얼굴이 어설프게 떠올랐다. 그것은 이상하다고 해야 할 감각적인 표상의 련속이였다. 불쾌하기 이를데 없는 청년의 뒤로 찾아든 녀성의 모습이 어떤 련관을 가지는지 의식은 분별을 하지 못했다. 뇌수는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려고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불길함을 알리는 붉은색신호등은 머리속에서 계속 켜졌다 꺼졌다 하지만 대답을 찾지 못한다.

한동안 명석한 머리를 쥐여짜며 걷던 조영길은 눈앞에 나타난 영화관이라는 건물로 하여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영화관앞 공원의 나무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턱을 고이며 새로 나온 영화의 제명을 바라보았다. 추리의 화살이 흘러간 시간속으로 날기 시작하였다.

…그날은 인기있는 예술영화 《갈매기호 청년들》을 상영했다. 때마침 저녁을 앞둔 시간이여서 관람자들이 너무도 많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구석에서 처녀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목청이 다른 욕지거리들이 사정없이 터져나왔다.

《이놈, 거기 서라!》

인파속에서 고함이 울리는것과 함께 영화구경을 하려고 서성거리던 조영길의 앞으로 어떤 젊은 녀석이 날아들다싶이 하기에 기겁하여 물러섰다. 너무 급한김에 저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눈이 없어?… 사람이 안 보이는가 말이야!》

《이거 왜 시끄럽게 구는거요?》

제편에서 우둘렁거리는 젊은 녀석을 노려보던 그는 입을 딱 벌렸다.

자세히 여겨보니 동소옥이한테 넥타이핀을 만들어 달래가지고 험담질을 하다못해 공장에까지 발길질을 하던 빤질쟁이가 틀림없었다.

너절한 자식, 제 잘못으로 혼이 나고는 처녀를 혼내워달라고 찾아다니는 루추하기 그지없는 녀석…

자기를 노려보는 녀석이 사람같이 보이지 않아 등을 돌려대고 걸음을 옮기던 그는 이상한 감촉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너 여기엔 왜 나왔어?》

《헤- 누님이 어떻게…》

《손목을 잘라버려야 정신들겠니, 응?》

망종인데 양산을 받쳐든 녀자앞에서 설설 기는게 이상해 지켜보았다. 말소리를 더는 들을수 없었지만 녀자가 걸음을 옮기자 줄에 매인 인형처럼 녀석이 따라걷는것이였다.

저 녀자는 누군가? 이런 의혹을 풀어주기나 하는듯 양산을 거둔 녀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조영길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도 신세를 진적이 있는 이전의 해안미용원의 미용사였던것이다.

그런데 누님이라니?…

조영길은 머리속에서 맴돌던 의혹을 가시기는 했으나 새롭게 찾아드는 의문을 안은채 공원의자에서 일어섰다.

생김새부터가 완전히 다른 오누이였던것이다. 남계수지배인에 대해 이상한 흥미를 가졌던 녀자인데 최근에는 얼굴조차 볼수 없다. 그러고보면 그 미용원의 자리에 새 건물이 선 다음 미용사는 자취를 감춘듯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저 녀자에게 저런 불망종같은 동생이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미용사는 어떤 녀자일가?…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와 더불어 추억의 늪에서 빠져나온 조영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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