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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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넘어서서 바다바람을 맞받아 한동안 걷던 남계수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보았다. 집에 간다는 걸음이 공장으로 향하고있었던것이다. 고개말기에서 왼쪽길에 들어서야 하는건데 한마장은 실히 되게 왔으니 돌아설수도 없어 그는 내친걸음을 옮겼다.

어둠속에서 공장이 보이자 남계수는 그제야 추위를 느끼며 반달음치듯 했다.

밤이 퍼그나 깊었다. 야간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불빛이 드문드문 보인다. 행정청사의 기사장방 전등불이 켜있는걸 봐선 집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다. 고지식한데다가 지성을 겸비한 책임적인 일군이였다.

남계수는 기사장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언 발을 굴러댔다.

《이해 추위는 물러갈 잡도리가 아니구만. 기사장동무가 그새 수고했수다.》

밤중에 나타난 지배인을 맞은 기사장 정시홍은 더운물부터 고뿌에 담아서 내놓는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이 몇신데… 어느 렬차를 타고 왔습니까? 집에는 안 가구…》

더운물을 불어대며 다 마시고난 남계수는 《몸이 녹으니 눈앞이 뿌예지는구만.》 하고 말하고나서 정시홍을 바라보다가 이마를 쳤다.

《내 뭘 좀 가져온게 있는데 잊었구려.》

정시홍은 기질적으로 강한 남자인 지배인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사무책상에 올려놓은 배낭에서 먹음직한 털게가 나타나자 놀란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리였다.

《어떻소? 구미가 동하지 않는가 말이요.》

《좋구만요. 겨울밤 게추렴이라. 허허, 여기에 곁들이는것이 있으면 정말 멋있는건데…》

두손을 썩썩 비비며 황홀한 웃음을 짓는 정시홍의 앞에 삼로술병을 내놓으며 남계수는 이쯤하면 어떤가고 눈을 찡긋해보였다.

《지배인동무한테 이런 정서도 있었군요.》

남계수는 고성기에서 울려나오는 바이올린독주곡 《고향길》에 귀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나야 기사장동무의 정서를 따를수 있소?》

《왜요. 난 지배인동무의 발성련습을 새벽마다 듣군 하는데요.》

《그게 어디 노래요. 기사장동무야 가수수준인데.》

정시홍은 지배인의 익살을 받아들이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음악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진정제이지요. 그 약을 잘 복용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의 정서를 안정된 한계에서 유지할수 있거든요.》

《좋은 비방을 알려주어 고맙소. 가만, 밤작업나온 사람들이 있을텐데?》

화제가 바뀌자 정시홍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예. 오늘 밤엔 열한명이 나왔습니다. 주철에 다섯, 가공직장 네사람, 보이라에 한명, 경비성원… 이 인원들입니다.》

남계수는 상우의 털게마리수를 세여보고나서 서둘러 배낭을 들고 일어섰다.

《아니, 어델 가십니까?》

《일하는 사람들을 한개씩 맛보이고 오겠소.》

《아- 집의 자식들에게도 먹여야지요. 원, 그러다 부인한테 경을 치겠습니다.》

《우리 애들은 이런걸 안 먹어도 살진 논의 벼대처럼 잘만 자라오. 허허, 좀 기다려주오.》

《하- 무슨 성미가…》

정시홍의 눈에 비낀 남계수는 기업가형의 남자였다. 그가 독특하게 보는것은 직업적으로 형성되는 리기적인 성격을 찾아볼수 없고 한가지 일 즉 기업관리에 지구적인 집중력을 가진것이였다.

귀국의 배길이 열리자 일본에서 1차로 조국에 돌아온 정시홍은 모르고 산 세상을 찾았다. 사람들이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잘사는 평등하고 행복한 리상향을 주장하며 왕권에 도전한것으로 하여 단두대에 오른 비극적운명의 소유자인 토마스 모어가 바란 《유토피어》를 현실로 느끼는 심정이였다. 고마운 조국은 그에게 집을 주고 자식들에게는 바라고바라던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던것이다. 과거의 설음과 오늘의 보람은 한 인간의 새로운 성격을 낳았다. 한마디로 끝없는 만족속에 보답의 일념으로 일하는 정시홍이였다.

남계수가 빈 배낭을 들고 돌아와서야 두사람은 살진 게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말이요. 우리 공장의 생산지표들을 결정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소. 지금의 상태로는 기업소의 장래를 담보할수 없기때문이요.》

남계수는 심중한 문제를 제기하고있지만 자신심을 가지고 어렵지 않게 말했다. 사색하고 탐구하는 일군만이 제기할수 있은 론제여서 정시홍은 들을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흥성철제일용품공장은 지방산업에 속하는 크지 않은 공장이다.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대규모의 중공업공장들과 화학공업기지들이 존재하는가. 일부 사람들은 공장을 확장하자는 의견들을 제기하는데 그것은 현실과 부합되지 않은 주관적인 의도에 불과하다. 중요한것은 현존설비들을 지금부터 갱신하여 경쟁력을 갖추는것이다. 그 경쟁력이란 제품의 지표와 질적수준에서 독점적이여야 하며 수요에 만족을 주는것이다. 그 방향으로 공장이 갱신되자면 반드시 커질것이 아니라 관리질서를 바로세우고 로력을 최대한으로 절약하면서 인민들의 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제품들을 경량화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생산원가를 낮출수 있으며 기업소의 실리를 추구할수 있다.

《어떻소, 기사장동무의 생각은?》

《이런걸 두고 경영전략이라고 할수 있지요.》

《요란한 표현은 그만둡시다.》

《그런데 그 길을 쉽게 갈수 있을가요?》

《어렵지만 안 가면 공장은 오래 못 가서 수명을 다하고말거요. 나라에 리익은 못 주고 도리여 부담거리가 될테니까.》

《방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옳소. 우린 아직도 쇠가마와 절구 같은 제품을 만들고있소. 품은 많이 들고 쓰기도 불편한걸 말이요. 난 가정들에서 연료를 적게 쓰면서도 가볍고 모양이 좋은 가마, 소형분쇄기, 각종 그릇 같은 부엌세간을 만들어내자는거요. 그러자면 합금로를 세우고 새 재료개발을 선행시켜야 하오. 난 법랑에 관심을 가진지 오래오. 주부들이 반할만 한 화려한 그릇들을 만들어낼수 있기때문이요.》

《그렇군요. 그건 우리 같은 지방산업공장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기술력량이 필요합니다.》

남계수는 기사장이 가장 걸린 고리를 포착하는게 무척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기술력량이 마련되지 않으면 장독옆에 놓인 소금처럼 쓸모가 없는 격이다. 사실 자재는 물고늘어지면서라도 얻어올수 있지만 기술자는 찾기 어렵다. 중앙공업이 집중된 이 도시에서 재간둥이는 어느 공장에서나 노리는 목표이기때문이다.

《등탈없는건 제 사람들을 키우는거요. 다른 길은 있을것 같지 않소. 이 일은 기사장동무의 몫이라고 해야 할거요.》

《알겠습니다. 그러니 날 조이자구 이야기를 시작했군요. 이상한 게추렴을 한다 했더니… 허허.》

《우리 같이 굴레를 메고 끌어보잔 말이요.》

《사람은 공무직장의 려현석이 진국이구 머리는 사실 소옥이를 따를 인물이 없습니다.》

동소옥의 이름을 스쳐보낸 남계수가 물었다.

《그 제대군인 말이요?》

《예, 우리 민청위원장이 사냅니다. 2년후엔 공장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우리도 영 빈털터리는 아니구만 뭐.》

《이따금 말밥에 올라서 그렇지 소옥이를 잘만 신발을 신기면 한몫할겁니다. 언젠가 기술혁신안을 나한테 가져왔는데 착상이 놀랍더군요.》

《허- 애군이 그런 생각을 다…》

《법랑은 소옥이를 믿고 시작해보는게 좋겠습니다.》

《하긴 그애 아버지가 집에서도 사기그릇을 만들군 하는걸 봤소. 그 어린것한테도 불대를 물리고 유리구슬을 만들군 했으니까.》

동윤덕은 돈을 번다면서 못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구렝이가 들어앉은 속통에 욕심은 얼마나 채우고 살았던가. 딸을 낳고 산후탈을 만난 그의 안해는 오뉴월에도 찬물에 손을 담그지 못했다. 동소옥은 어려서부터 제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도맡아하며 자랐다.

《기사장동무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소옥이를 생각해보겠소.》

 

강치명의 하루사업은 관리부서들과 현장을 돌아보는것으로 시작된다. 이 일과에서는 시간을 1분도 어기지 않는데 주물작업반에는 매일 아침 10분전 8시에 나타나군 하기때문에 이젠 반장이 문가에 나와서 맞아주는 습관까지 생겨났다. 그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성격과 통일되여있었다. 그러한 절도와 질서는 아마 군사복무를 남달리한 그의 경력과도 관련되는것인지 모른다.

《작업반에 출근을 못하는 사람들은 없소?》

주물반장은 쇠물에 구멍이 숭숭 난 장갑을 한짝만 끼고 썩썩 만지면서 퉁퉁 대답했다.

《요즘 어떤 젊은 애들은 걸핏하면 뚜꺼먹기를 식은 죽 먹기로 합니다. 어떻게들 생겨먹었는지 노라리를 부릴 궁리만 하니까요.》

《무단결근을 한단 말이요?》

《진단서도 내구 사결도 받기는 합니다만…》

《무슨 애로가 있는지 집에도 찾아가보군 하오?》

《허 참, 언제 그럴새가… 지배인 성화에 하루도 들볶이지 않는 날이 없는데…》

이 반장은 불평을 부리지 않으며 말하는 때가 없었다. 공장이 설립될 때 출자금 10만원정도와 낡은 설비 한대를 들여놓고 입직한 개인수공업자였다. 들리는 소리엔 지금도 집에 들어가서는 자전거수리같은것을 하여 부수입을 얻는다고 한다. 하도 기술이 있어서 그렇지 일군의 풍모라는건 조금도 갖추지 못했다. 한다는 소리란 《과부집 찾아갔다 김치물벼락을 맞았군.》 하는 말뿐인데 그 뜻이 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지배인의 요구는 응당한거요. 반장동무부터가 공장의 제정된 로동규률을 잘 지켜야 하겠소. 내 오늘부터 작업반출근정형을 장악할테니 작업시작전에 보고하시오.》

주물반장은 꺼지게 한숨을 쉬는것으로 대답했다. 지배인이 조이는것도 모자라 당위원장까지 일일장악을 한다니 코구멍이 둘이니 숨쉰다는 심사가 어린 얼굴표정이다. 그런 그를 등진 강치명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겼다.

공장종업원들의 구성상태를 보면 과거의 개인상공업자, 수공업자, 자유직업자들이 아직도 30프로계선에 머물러있다. 이 사람들의 대다수는 자기의 돈과 기술을 가지고 제 힘껏 벌어먹으며 살아오다가 전쟁의 피해를 입고 생활이 극히 령락되다보니 어쩌는수없이 공장에 들어와 집단로동에 참가하고있었다. 랭철하게 들여다보면 사상적으로 접수되기보다 생계를 유지할 방도가 없기때문에 로동자가 된 사람들인셈이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낡은 사회의 잔재인 개인리기주의가 농후하게 남아있는것이다.

최근에는 지배인의 사업을 놓고 의견들이 제기되고있다. 그중에서도 상금기준을 새롭게 세우라는 지시를 받은 부기장이 여론을 환기시키고있다. 한마디로 지배인이 물질적자극을 우선시하는 방법을 적용하려고 한다는것이다.

강치명은 이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해보고있었다. 군중속에서 나오는 의견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다 옳다고 할수도 없는것이다. 로동의 량과 질에 따라 엄격히 분배하는것도 사회주의적원칙이 아닌가.

사실 공장에는 로동시간을 지키지 않는 현상들이 남아있으며 기대사고와 제품오작 같은 무책임한 일본새가 나타나고있다. 그것은 사회주의적분배의 그늘밑에서 건달을 부리던 지난 시기의 낡은 사상이 부식되고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배인은 이와 같은 현상을 간파하고 결정적인 대책을 세우려고 하는것이다. 기업관리에서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 남계수다. 생산문제를 토의하는 지배인방에 가면 볼만 하다. 앉을 의자가 한개도 없으니 협의회건 생산총화건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서서 진행해야 하는것이다. 처음 목격하였을 때는 어지간히 놀랐지만 알아보니 웃지 않을수 없었다. 앉혀놓으면 졸고 하품을 하면서 시간가는줄 모르는 모임장소가 돼버리기에 지배인이 그런 질서를 만들어냈다는것이다.

반드시 토론하고 제기할 문제를 가장 요약된 말로 준비해가지고 참가하라, 회의에 참가해서 잠을 보충하려거든 졸아도 서서 졸라는것이다.

남계수는 이렇게 시간을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였다.

강치명은 아직은 출근시간이라 정문으로 바삐 들어서는 종업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음을 옮기다 무심히 눈길을 돌리였다. 가공직장쪽에서 마당을 청소하는 처녀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동소옥이다.

그는 간밤에 내리다만 눈을 쓸고있다.

공장에 나와서는 별일없는데 좋지 못한 소리들이 종종 들려오기도 한다.

《소옥이를 데려온것부터가 무슨 속내가 있어서야.》

《동윤덕의 딸이라는걸 알면서도 그랬거던.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지배인이 모른다던가.》

《알아도 잘 알지요. 그건 지배인자체가 계급적으로 모호하기때문이거던.》

이러루한 의견과 불만들이 지배인에게 쏠리게 하는 인물이 동소옥이다.

강치명은 남계수가 개인기업가출신의 일군이지만 해방후부터 오늘까지 당을 따라 변함없이 충실하게 일해온 사람이라는것만은 확신하고있었다. 누구보다도 경력과 생활경위를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연구한 대상이 남계수다. 사람에게 왜 결함이 없겠는가. 행정일군은 생산을 틀어쥐고 내밀기때문에 사람들에게서 불만을 살 일도 많으며 일하면서 큰소리도 치기마련이다.

자기 방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강치명은 방금전에 스쳐본 동소옥을 다시 떠올리며 부모없이 홀몸으로 독신자합숙생활을 하는 그에게 다른 젊은이들보다 각별한 관심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날라리풍과 같은 낡은 생활풍조에 동소옥이같이 가정교양이 부족한 청년들이 쉽게 물들수 있기때문이였다.

출입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대답하니 젊은 나이에 일찌기 앞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하는 부기장이 들어섰다.

어떻게 되여 이런 첫 시간에 나타났을가? 부기장부에 올리는 수자처럼 정확한 말들을 골라서 하는 사람이다. 사업에서 빈틈이 없는 좋은 점도 있지만 뒤에서 말을 많이 하는 축이다. 지배인을 비난하는 말장단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남의 흉을 보면 제 흉을 보는 사람도 있다는것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강치명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은 어서 말하라는 의사표시였다. 그는 공장사람들의 구성상태가 좀 복잡한것만큼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찾아들어와 의견을 말할 때면 듣기만 할뿐 선뜻 결론을 주지 않는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았다. 큰일 같아서 알아보면 품들이지 않은것만 못한 경우도 더러 있었던것이다.

《다른 일이 아니라 상금기준을 새로 정하는 문젠데…》

《그건 지배인동무와 토론하시오.》

이런 대답이 나올줄 알았는지 부기장은 반들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몹시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이건 매우 심중한 문젭니다. 당위원회가 바로잡아주어야 할…》

《지배인동무가 간밤에 도착했으니 함께 토론해보는것이 어떻습니까?》

《예. …》 하고 부기장은 머리를 끄덕대면서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배인동지의 요구는 현실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천리마시대에 물질적자극을 정면에 들고나온다는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심중합시다. 정치도덕적자극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여 물질적자극을 너무 홀시하는 경향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소?》

부기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

강치명이 혼자뿐인 방안에 아름다운 기악선률이 조용히 흐르고있었다. 탁자우에 놓인 라지오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강치명은 라지오에서 울려나오는 낮은 음향속에 뒤섞여있는 알지 못할 섬세한 전파음들까지도 정확히 가려듣는 남다른 기질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우편국의 송수신기 수리공으로 일하다 해방을 맞았다. 직업적으로 녀자들속에 묻혀살았으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것이 《쯔쯔돈돈》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선참으로 탄원을 하였을 때에도 대렬과에서 배치한 곳이 피할 길 없는 무전수자리였다. 전쟁기간 사단지휘부에서 무전수생활을 할수밖에 없었다.

명령에 대한 드팀없는 전달, 그것이 그의 성격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안에서도 두말하는것을 제일 질색한다. 오죽하면 안해조차 어처구니없는 항의를 했겠는가.

《군대에서도 복창이라는걸 한답디다. 원, 잘못 들었을수도 있지 사람을 그렇게 닥달질을 해야 하우?》

 

항구도시에서 협궤철도로 두시간정도 가면 온천료양지가 있다. 겨울이 물러가지 않은 계절이지만 치료를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료양소의 수용능력이 모자라는탓에 개인집에까지 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작은 시가지가 오글복작 붐벼댔다. 차림새가 각양각색인데다가 사처에서 모여오는터라 말씨까지도 달라 부르고 찾아대는 소리가 굉장하다.

산골치고는 없는게 없는 작은 시장에 깨끗한 차림새를 한 젊은 녀자가 한 청년과 함께 이것저것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있다.

《못된 버릇 고쳐줬는데 고맙다고 해야지.》

《콩밥 3년을 덜었지만 재미는 그때가 있었어요.》

《그럼 이제라도 보내줄가?》

《히히, 누님이 나를요? 그런데 그 처녀하군 어떻게 하라는건가요? 보통이 아니야요.》

젊은 녀자는 회색모직외투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친하렴. 한창 좋은 땐데…》

《그저 놀아주긴 아깝거든요.》

매점에 들린 젊은 녀자는 《이름이 소옥이라구 했지?》 하고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맵시있는 걸음을 또박또박 옮기면서 지나가는 말투로 내뱉았다.

《함부로 손을 대면 안된다. 그걸 명심해야 돼.》

빤지럽게 생긴 청년은 군침을 삼키면서 녀자의 등뒤를 마뜩지 않게 노려보았다.

흰엿 몇가락을 사서 작은 가방에 넣어든 녀자가 엿파는 아낙네와 무슨 말인가를 나누더니 례절밝게 인사를 차리고 돌아서서 다가왔다.

《헛걸음을 하지 말아야겠는데, 넌 이 모퉁이에서 날 기다려. 딴눈 팔며 욕심을 부려서는 안돼. 네 별명이 비자루지? 반반히 털어내는 버릇이 다시 생기면 이번엔 끝장이야.》

젊은 녀자는 위협적인 말을 사근사근 노래나 부르듯 하고나서 사람들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두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른채 휘파람을 불어대던 청년이 재빨리 눈길을 휘두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누님이라고 부르는 녀자가 행길을 벗어나 마을쪽으로 가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동기와를 올린 집들의 담벽에 변변히 입지 못한 조무래기들이 모여서 해바라기를 하고있는가 하면 땅에다 금을 긋고 망차기를 한다. 고삭은 울바자를 헤치고 나온 여윈 개 한마리가 심심풀이나 하듯 컹컹 짖어대고는 느릿느릿 역삼을 심었던 밭모퉁이로 가버린다.

돌무지가 널려있는 울퉁불퉁한 길을 골라가며 걷던 녀자가 맞은편 집마당에서 줄넘기를 하는 처녀애들쪽을 바라보고나서 천천히 다가갔다. 돌담벽에 기대여 선 대여섯살 난 계집애가 자기보다 나이가 우인 언니들의 놀음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있었다.

가방에서 사진 한장을 꺼낸 녀자가 그애와 모색을 대조해보고는 살갑게 손짓으로 어린것을 불렀다. 손가락을 입에 문 계집애는 주저하며 다가왔다. 산골애치고는 옷을 깨끗하게 입혔다. 솜옷을 대신할수 있게 털실로 뜬 감색내의를 입었는데 가장자리에 도꼬마리 한개가 매달렸다.

《네 이름이 명복이지?》

곱살하게 생긴 어린것의 눈동자에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너희 집이 어데냐?》

계집애는 한손을 쳐들어 대중없이 가리켰다.

《엄마있지?》

어린것은 여전히 빤히 쳐다보며 머리만 끄덕였다.

《아지민 엄마를 안다. 동무거던.》

어린것의 얼굴에 생기 같은것이 떠돌지만 고개만 갸웃거릴뿐 의심이 가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젊은 녀자는 가방에서 엿가락들을 꺼내여 애의 손에 쥐여주고는 《나하구 집으로 가자.》 하며 이끌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애지만 어떤 기대를 가지고 타박타박 따라걸었다.

흙미장을 한 귀틀집마당에서 키질을 하던 그 녀인은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젊은 녀자를 의심쩍은 낯색으로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볼품없는 집에 나타난 잘 차려입은 손님이 제 딸에게 엿가락을 들려준게 고마와선지 주인녀자는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들며 대답했다.

《어서 오시우.》

토방의 마루우에 수건을 펴놓고 자리를 잡은 젊은 녀자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전쟁때 동진항 성덕마을에서 살았지요? 청풍음식점이 있는…》

《그걸 어떻게… 난 거길 본 일이 없는데…》

동진항이 화제에 오르자 두 녀자는 자기들이 보고 들은 지나간 일들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에서 시기와 장소가 틀리면 잠시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우겨대기도 하였다.

지난 전쟁시기 항구도시에서 동진항일대가 반동분자들의 준동이 제일 우심했던것은 이곳에 중요한 군수공장이 있었기때문이다. 산중에 은둔한 비적들과 대내에 잠입한 파괴암해분자들이 노리는 목적의 하나가 전시군수생산을 파괴하는것이였다. 갱도화된 공장에 기여들수 없게 되자 놈들은 전력망들을 파괴하는가 하면 협궤철길을 끊어놓음으로써 수송을 마비시키려고 책동하였으며 반입된 폭약을 실은 화차를 충돌시켜 폭발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공장의 연혁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지고있다.

《…우리 군수공업부문 로동계급의 투쟁은 참으로 간고하였다. 교대없는 로동과 엄청난 계획과제앞에서 동요를 몰랐으며 오직 전쟁승리라는 한가지만을 확신하며 몸이 그대로 동력피대가 되고 치차가 되여 싸우는 고지들에 탄약을 보내였다. 생산보다 어려운것은 파괴암해분자들의 간악한 책동으로부터 공장을 지켜내는것이였다. …》

동진항일대는 적들의 공습과 해상에서의 함포사격을 제일 많이 받았다. 적들은 공장지구와 항구를 손금보듯 하며 폭격을 하였고 앞바다까지 기여든 적함들은 조준사격을 하다싶이 했다. 항간에서는 나쁜 놈들이 신호탄을 밤마다 쏴올린다는 말들이 나돌았고 적발된 반동분자들에 대한 공개공판이 진행되군 하였다.

1952년도 다 저물던무렵 전에 없는 적의 대공습이 이 지대를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여 성덕마을은 자취를 감춰버리고말았다. 성한 집이라고는 한채도 남지 않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희생되였던것이다. 야간에 진행된 적들의 공습인데다가 방공호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피해가 더 컸는지도 몰랐다.

그때 해산물료리를 잘하여 소문을 내던 《청풍》음식점도 재가루가 되다싶이 했다. 너무도 큰 재난을 하루밤사이에 당한지라 사람들은 경황이 없어 누가 잘못되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썩 후에야 음식점의 주인녀자가 폭격에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의혹투성이였다.

화제가 여기에 이르자 주인녀자는 무릎에 놓은 수건에서 겨검불을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였다.

《사람의 팔자란… 숙진인 폭격에 잘못된게 아니예요.》

기다린 대답이 나오자 젊은 녀자는 눈빛을 반짝이며 재차 물었고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사람들속에서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이 나돌던 음식점녀주인이였다. 반동놈들과 한동아리여서 나쁜 놈들이 걸음을 많이 하는 음식점이였다는 소리가 그무렵에 처음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폭격이 있기 며칠전에 음식점은 문을 닫았다. 이따금 주방일을 돕던 자기도 그 영문을 모른다고 말한 녀자는 이렇게 이었다.

《이상한건 폭격을 당하기 전에 음식점이 빈집이나 같았던거예요. 숙진인 종적을 감췄거든요. 떠도는 말들은 헛소문이예요. 내가 아는 숙진인 깨끗한 녀자였어요. 흑심이 없고 남을 걱정해줄줄 아는 마음씨가 고운 녀자였다는것만은 잘 알아요.》

《살아있는걸 가지고 죽었다고 소문을 낸건 아닐가요?》

주인녀자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 음식점에 남계수라는 성함을 가진분이 자주 찾아오군 하지 않았던가요?》

새로운 물음앞에서 녀인은 낯색을 약간 흐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시름겨운 어조로 동정이 실린 말을 흘리였다.

《해안거리에 있는 철공소주인을 두고 하는 말이군요. 사람이란 인연을 맺고 사는게 아닌가요. 남계수라는이도 후퇴때 길이 막혀 숙진이가 숨겨주었더군요. 외로운 숙진이지만 허투루 정을 기울일만큼 속된 녀자는 아니였어요. 이런 이야긴 안하는것만 못한데…》

《우린 다같이 녀자가 아니예요. 전 숙진언니를 잘 알고 어려서부터 무던히 따랐어요. 언니가 잘못되였다고 생각하고싶지 않아요.》

주인녀자의 눈빛에서는 추연한 빛이 서서히 떠올랐다.

《우린 전쟁시기 많이 봐왔지요. 죽은것보다 못한 산인간들을 말이예요. 이건 숙진이가 늘 외우던 말이였어요.》

젊은 녀자는 나무절구에 기대여 맛있게 엿을 먹는 계집애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숙진언니에게 자식이 있었다던데…》

녀인의 얼굴표정은 금시 흐려났다. 초면인 녀자앞에서 자기가 실언이라도 하지 않는가 하는 위구심이 어리는것이였다.

《세상일을 어떻게 다 알겠나요.》

달라지는 말투와 더이상 무엇을 알자고 묻지 말라는 암시를 느끼자 젊은 녀자는 맵시있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시내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나요?》

《주인이 폭격에 상한 허리로 신고를 해서…》

《온탕치료가 효험이 있는가요?》

《좋다고들 하는데…》

젊은 녀자는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눈살을 쪼프리였다. 주숙진의 생사여부를 어떻게 하면 알수 있는가. 남계수와의 류다른 관계는 다시금 확인한셈이지만 세상에 없는 사람을 놓고 헛된 품을 들이면 그보다 우둔한짓은 없으리라.

집주인에게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선 녀자의 걸음은 올 때처럼 조심스럽게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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