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0

 

구일파는 아무런 불편도 없이 보고싶은것은 다 찾아다니며 마음껏 보았다. 그가 조국을 방문한 목적은 자기의 머리속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 의혹의 대상인 남계수를 통해 조국의 현실을 인식하려는것이기에 도착한 다음날로 그의 집부터 찾았다.

남계수가 안해와 함께 대문가에서 맞아주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교단에 서있는 신유정을 바라보며 구일파는 이름할수 없는 감회를 안고 그의 손을 잡았다.

《참으로 힘든 걸음을 하셨습니다.》

《부인을 살아서 다시 볼수 있는건 하늘의 보살핌입니다.》

구일파로서는 남계수의 집에 들어서면서 여기가 내 민족이 사는 곳이 분명하구나 하는 흥감에 사로잡혔다. 허식과 허영으로 살아온 인생이 방황하면서 잊다싶이 했던 민족의 정취앞에 그는 눈귀가 저절로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옻을 입힌 장농의 색바랜 은빛장식띠와 붕어자물쇠가 눈에 띄우자 그는 미소를 그렸다. 웃방으로 올라가는 문옆에 대나무화분이 놓여있었다.

신유정이 어느새 다반에 수정과와 강정접시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커피나 차보다 이것을 맛보십시오.》

구일파는 고마와 두손을 맞잡기까지 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계수형, 이 몸은 죽어도 머리는 동쪽으로 돌리려네.》

측은하게 울리는 그 소리에 남계수는 대범하려고 애썼다.

《이렇게 고국을 찾지 않았나. 어디에 살건 제 민족을 잊지 않으면 되는걸세.》

《참말 고맙소이다.》

구일파는 수정과 한모금한모금을 봉선화꽃향기를 맡듯 하면서 마시였다. 마치 여름철 어머니가 박우물가에서 바가지로 떠주던 고향의 샘물처럼 느껴보려고 애쓰는듯싶었다.

신유정은 구일파에게서 어제날 그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정미업을 하면서 돈냥이나 있다고 방종하게 살던 젊었을 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남은것은 고달픈 넋이 어린 얼굴주름뿐이다. 어이하여 이국만리 남의 하늘밑에서 헤맨단 말인가.

《이놈은 불운을 타고난 몸인지라 오늘까지 방랑하는 신세나 다름이 없소그려. 내 사정은 여러차례 편지로 알린것이니 그게 전부라하고 그래 계수형은 어떻게 지내시오?》

《보다싶이.》

남계수의 대답은 짧았다.

《기업가의 살림치고는 청빈한감이 들기에 하는 소리요.》

《자넨 내가 어떤 재산을 모았고 그걸 어떻게 간수하는지 들려줘도 알기가 어려울거네.》

《그러니 큰 재산을 가졌단 말인가?》

《아무렴.》

남계수의 시원한 대답에 신유정도 미소를 그렸다.

구일파는 신유정을 지켜보며 물었다.

《부인, 이 거칠고 무정하기 짝이 없는 계수형과 살면서 불편한 점이 많을테지요?》

《그렇게 보이시는가요? 우리 주인은 개인기업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의 안정을 가지고 삽니다. 두 아들을 다 대학공부를 시켰구 딸들도 그렇게 키웠답니다. 주인은 집밖에 나가면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고있고 전 지금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답니다. 행복이란 이런것이 아닐가요?》

구일파는 신유정이라는 녀성을 통하여 새롭게 찾은 인간고유의 행복을 두고 자신에게 처음으로 물어보았다.

너는 행복한 인간인가? 하지만 그는 자기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참다운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있지 못한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사람은 물질적인것이 아니라 정신적인것에서 생활의 만족을 찾을 때 그것보다 값있고 보람있는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것은 그 정신적만족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구일파는 이 항구도시의 공장, 기업소들을 비롯하여 여러곳들을 돌아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동소옥의 안내를 받으며 마지막으로 남계수가 지배인으로 사업하는 공장도 참관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남계수의 기업수완을 알고있는 구일파로서는 그의 가정방문때와 마찬가지로 뭔가 석연치 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 돌아본 인상이 어떤가?》

남계수가 물었다.

《난 일용품공업에 대해선 문외한일세.》

《문외한이 굽어보는 눈길을 나는 느끼고있네. 기업의 규모와 자본금에 대비한 순수 리득금, 경영과 관련한 수지타산… 자네의 속계산은 이것이겠지?》

《아니라면 위선이지.》

《솔직해서 좋구만. 자넨 우선 내 자본금이 얼마인가고 묻고싶을테지?》

《대답해주게나.》

동소옥은 자못 긴장한 표정을 짓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들은 공장구내에 꾸려진 휴계실에 들어가 앉았다.

《내가 공연히 어려운 말을 시키는건 아닌가?》

구일파의 눈길이 남계수를 주시했다.

《천만에, 난 오래전에 2천만원의 자본금과 함께 스스로 자신에게 남아있던 낡은 사상을 청산했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남계수가 대수롭지 않게 내던지는 말이였지만 구일파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기의 낡은 사상을 《청산》했다는것은 무슨 뜻인가? 저 얼굴에 비낀 웃음은 무슨 의미인가? 해방과 함께 공산주의자들의 《청산》바람이 자기와 같은 사람들의 머리우에도 들씌워질것이라는 위구심을 안고 남행길에 오른 그였다. 그래 청산이란 적대되는 세력과 그 자산에 대한 척결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그는 남쪽에 있을 때 북에서 토지와 공장들을 몰수당하고 38도선너머로 도망쳐내려온 지주나 기업가들을 더러 보았었다. 그들은 례외없이 소작인들과 머슴들을 짐승처럼 부려먹은 악덕지주들이였고 친일매판기업가들이였다. 그래서 별로 동정을 하지 않았는데 그자들이 북에서 모든 자산가들을 한몽둥이로 《청산》한다고 떠드는 말에는 아연해지고말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에게는 남계수의 말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 말은 황당하게 들려오기까지 했다.

《나로서는 리해할수 없고 믿기도 어렵구만.》

남계수는 공감을 표시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어떤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위선과는 거리가 먼 솔직하다기보다는 심각해보이는 얼굴로 남계수는 이야기를 하였다.

생활에서 진리란 만사람들의 체험을 통하여 증명되는것이라야 한다. 대체로 진리의 문턱을 넘어서는것이 두려워 주저앉으며 몽매에로 되돌아서게 된다.

해방이 갓 되였을 때 남계수도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에 불과하였다. 철공소가 적산으로 몰수당했을 때는 구일파가 옳았구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새로운 방황이 시작될무렵 그의 눈앞에는 서광이 비껴왔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새 조국건설의 진로를 밝혀주신것이다. 개인기업가와 수공업자, 상공업자들은 적대세력으로 청산된것이 아니라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과 함께 어엿한 민주건국의 력량으로 되였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일시적이며 림시적인 조치라고 생각하면서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공화국의 정책은 일관하였다. 이것을 확신하게 된 개인기업가, 수공업자, 상공업자들이 떨쳐일어나 동요하거나 주저함이 없이 평화적인 민주건설시기에는 건국사업에 매진하였고 준엄한 전쟁시기에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였다. 이것은 남계수나 그와 비슷한 생활로정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진리를 체험해온 과정이였다.

남계수는 전후에 조성된 나라의 사회경제형편에 대해서는 구일파와 같은 사람은 더욱 리해하기 어려울것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사람은 자기 민족과 생사운명을 같이해봐야 한다. 3년간의 피어린 전쟁에서 개인기업가들은 극도로 령락되였으며 수공업자, 상공업자들도 생활의 터전을 잃다싶이 하였다. 변화된 사회현실은 남계수와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개조할것을 요구하였다. 국가의 지원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수 없다는것을 절감한 그들이기에 경리형태의 사회주의적개조를 정당한것으로 받아들인것이다. 내것이란 말에는 익숙된 대신 우리의것이란 말에는 귀가 설었던 사람들이 생활로 체득한 진리, 민족과 나라를 위한 길에 돈보다도 훨씬 소중한 인간의 참된 삶이 있다는 진리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한마디로 자신의 낡은 세계관을 스스로 《청산》하고 애국의 길에 들어서게 된것이다.

《내가 왜 자기를 청산했다고 말하는가. 그 어떤 강요가 아닌 내스스로가 선택한 운명이라는것을 말하기 위해서네. 하기에 나는 오늘도 자신의 인생을 당당히 자부하며 부럼없이 살고있는걸세. 더 물을것이 없나?》

구일파는 자기가 알고있는 남계수가 아니라 생소한 사람과 마주하고있는 느낌을 받아안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의문은 아직 적지 않게 남아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남계수라는 저 사람의 정신세계는 전부 리해할수 없어도 그의 넋은 신심과 락관으로 맥동치고있었다.

이 사람은 자기의 믿음을 가지고 산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가. 이 세상에는 맹목적인 숭배심으로 하늘에 기도를 올리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구일파는 남계수가 마음속에 품고 사는 그 믿음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것이 아니라는것만은 확신할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자기라는 인간과 남계수라는 옛 친우사이의 차이라는것도 알수 있었다.

두려우면서도 부러움을 느끼며 자기로서는 이루지 못할 소원임을 깨달은 그는 마침내 맥없는 물음을 던지고말았다.

《계수형, 나한테 물을건 없소?》

남계수는 빙그레 웃었다.

《있지. 자넨 돈이 많을테지?》

《글쎄. 있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난 지금 자기가 거지라는걸 실감하고있소.》

구일파는 자기가 이렇듯 자신을 시인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다른 말은 찾을수 없었다.

조국방문의 마지막날을 보낸 저녁에 그는 우연히 동소옥에게 물었다.

《아버진 돌아가셨다지?》

동소옥은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예. 저의 아버진 세상을 하직하면서 생전에 남계수큰아버지의 뒤를 진심으로 따르지 못한것을 후회하셨답니다.》

구일파는 동소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윤덕의 인생마감을 알수 있었다. 그것은 위조할수 없는 딸의 증언이였다.

《소옥아, 사실대로 알려주어 고맙다!》

《선생님, 생활의 진실이란 가장 엄격한것이랍니다.》

《그래그래. 나도 그 엄격한 진리를 따르기 위해 노력하련다.》

구일파는 이렇게 황금보다 귀중한 인생의 철리를 깨닫고 민족의 한 성원으로 살 결심을 새기며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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