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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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랑제품을 개발생산하는것으로부터 공장의 생산지표를 개선하자는 남계수의 제의는 공장당위원회의 지지를 받았으며 참모회의에서 토론하기로 결정하였다.

회의장소로 된 지배인의 방으로 의자를 하나씩 든 직장장들과 작업반장들이 지적된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모여들고있었다. 회의의 성격으로 보아 앉아서 토론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남계수가 모자라는 의자들은 참가자들이 가지고 오라고 지시한것이다.

《허- 오늘은 오금을 펴보는가보군그래.》

《새로운 생산지표문제이니 선자리에서 어떻게 결판을 보겠나?》

《체육경기라는건 모두 서서 하더구만 뭐. 권투도, 축구도… 난 이젠 앉으면 궁리가 떠오르질 않는다니까.》

《그럼 주철은 서있게나. 오죽이나 볼만 할라구. 버쩍 마른 장신이 조밭머리 허수아비같을텐데. 하하하!》

《자네 자릴 절반만 빌리세. 걸상을 못 가져와서그래. 나야 볼기에 붙은 살이 없으니 큰 불편이 없을거네.》

자기 자리에 앉아서 무슨 통계자료 같은것을 들여다보던 남계수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주철직장장은 여기 나오오. 의자가 있으니까.》

지배인의 바로 코앞에 나앉게 된 주철직장장은 예, 예 대답을 하면서도 긴 다리로 공무직장장의 정갱이를 가볍게 걷어찼다. 정시홍이 사람들을 점검해보고는 남계수에게 말했다.

《다 모였습니다.》

《당위원장동무가 참가할거요.》

그 소리와 함께 강치명이 들어섰다. 사람들이 쭈빗거리며 반쯤 일어나기도 하고 앉은자리에서 인사를 하며 자리를 비켜주지만 별로 안색을 달리하지 않으며 강치명은 남계수의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구역당위원회에서 급히 불러 그러니 회의를 먼저 시작하십시오.》

《올 때까지 미루지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절박하고 현실적인 문제인만큼 단계별계획을 옳게 세우고 어떻게 집행해나가는가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럽시다.》

강치명이 자리를 뜨자 남계수는 방안을 둘러보고 일어섰다.

《오늘 토의하려는 안건은 이미 알려주어서 연구를 많이 했으리라고 보오. 문제는 이 토론이 공장의 장래와 관련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거요. 공장의 현존설비들은 대부분이 개인수공업이나 하던 때에 쓰던 낡은것으로서 갱신하지 않으면 제품의 원단위소비기준도, 질도 보장할수 없다는것은 누구나 절감하는 문제요. 그렇다고 한꺼번에 다 들어낼수도 없단 말이요. 주철관과 철근은 지금의 방법으로 계속 생산하면서 가공직장에 새로 법랑철제품생산을 위한 토대를 갖추는거요. 우리 실정에 맞는 로를 세워야 하며 프레스작업반을 꾸리고 법랑칠물만들기공정, 철그릇제작, 법랑물질을 입히기 전 앞공정과 소성… 초보적으로 이런 련속생산공정이 마련되여야 하오. 생소하고 기술적요구가 복잡하지만 우리가 이걸 해결하면 가정용품생산에서 전환을 일으킬수 있소. 소랭이, 바께쯔, 주전자, 각종 그릇, 우유통도 만들수 있으니 지금의 주철가마나 쇠절구에 비해 진보가 아니겠소. 어떻소? 동무들!》

남계수는 자기가 할 말은 다한듯 자리에 앉았다.

공장의 부문별생산단위를 맡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려댔다. 듣기엔 귀맛이 동하지만 눈싸맨 하늘소 연자방아 돌리는 일같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법랑이라는게 쇠붙이에다 사기물 올리는 일인데 우리야 백판에서 시작해야 하니 앞이 안 보인다니까.》

《해본 기능공이라도 있으면 별일없지 않나.》

《좀 알아보니 칠감만드는 일도 그래, 바르는것도 그래 보통 까다롭지 않아요.》

제기도 의견도 아닌 말들이 여기저기서 울리자 남계수가 눈길을 휘두르며 못박듯이 말했다.

《다른 길은 없소. 해야 하오. 주철가마가 구멍이 나고 쇠절구가 밑이 빠질 때까지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의 수요는 나날이 줄어든다는걸 명심하는거요.》

지배인앞에 바싹 마주앉은 주철직장장이 긴 목을 뽑으며 말했다.

《옳습니다. 우리 집 쇠절구는 어느때 조상이 물려준것인지 알길 없는데 온 동네가 빌려쓰지만 구멍나기는 고사하구 점점 반들거립니다. 내가 꼬투리 내놓구 지켜보던 그 일을 우리 집사람이 손자앞에서 하구있는데두 말입니다.》

《흐흐흐, 저 사람 주철이 분명해.》

《객적은 소리 하는데서야 누가 당할라구.》

《그래서 키큰 놈 싱겁다는거지.》

정시홍이 듣다가 책상을 가볍게 두드려댔다.

《왜, 서서 회의를 하자우? 앉혀놓으니 군소리만 나오는걸 보오. 뭘 좀 들을 말을 해야 하질 않소. 이러다간 우린 토론문제에 접근하지도 못할것 같소. 자, 계속합시다.》

남계수는 눈을 감은채 한모양으로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회의분위기를 바꾸고 사람들을 발동시킬 점화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주철직장장, 마플이라는 말을 들어봤소?》

지배인이 묻자 주철직장장은 싱거운 놈의 감투를 벗을 심산인지 대답을 시원히 해제꼈다.

《마플이 별겝니까. 로의 빛과 열이 소성물질에 직접 닿지 않게 관이나 내화벽돌로 축조하는건데요.》

남계수는 계속하라고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말길이 열린 직장장이 무릎을 쳤다.

《법랑을 소성하는데는 마플로를 선택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연료소비가 좀 많은것은 약점이지만…》

신심이 생긴 목소리가 울리자 저마끔 생각한 묘책들을 내놓았다. 법랑칠물을 만들기 위한 원료분쇄공정을 꾸릴 방도, 철판으로 가공한 반제품상태에서 해결하여야 할 기술적문제들, 칠물을 올리면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방도 등 좋은 착상들이 제기되였다.

정시홍은 저으기 만족하여 말했다.

《세워놓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를 잘했소. 좋은 의견들이요. 걸린건 프레스요. 정 해결방도가 없으면 고장난 수동프레스를 고쳐서 먼저 쓰는거요. 누름힘이 크지 않아도 되니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남계수가 《프레스는 내가 추가계획분으로 물려놓겠소. 1. 4분기안으로 받아오는건 내가 책임지겠소. 그사이 생산공정을 꾸리고 실험생산을 해보는거요.》 하며 사무탁에 지시손가락을 눌러세웠다.

《기술력량을 잘 편성해야 합니다.》

《그건 기사장동무가 책임지고 집행하오.》

《알겠습니다. 대담하게 소옥동무를 칠물개발에 인입하려는데 어떻습니까?》

동소옥의 이름이 나오자 모인 사람들의 표정과 말없는 눈빛들이 달라지는것을 느낀 남계수는 심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건 고려해봅시다. 참모회의를 너무 오래하지 않소? 두시간을 넘겼구만. 다른 의견이 없으면 이만합시다.》

참가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가져온 의자들을 들려는데 강치명이 들어섰다.

《회의가 끝났는가요? 토론들이 잘된것 같구만요.》

강치명은 이렇게 말하며 지배인쪽으로 걸어오고 한편 사람들은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가공직장장동문 좀 남으십시오.》

강치명이 고개를 돌려 찾자 체소한 사나이가 들었던 의자를 내려놓으며 의아해한다.

《소옥동문 출근했습니까?》

동소옥의 이름이 강치명의 입에서 나오니 남계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쭝깃댔다. 항시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저… 휴가를 받았는데요.》

《언제부터요?》

《그저께부터는 나오지 않습니다.》

《직장장동문 그가 지금 어데 있는지 독신자합숙에 가서 알아보시오.》

강치명의 어조는 담담한것 같지만 남계수는 이애가 무슨 일을 쳤구나 하는 예감을 받아안고 한숨을 내쉬였다. 가공직장장이 나가자 강치명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한 결괍니다.》

당위원장이 자책하는 말부터 먼저 하자 남계수와 정시홍은 긴장해진 낯색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려한바 그대로 동소옥의 문제가 제기된것이다.

제기된 의견을 보면 합숙오락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동소옥이 사감과 짜고서 제멋대로 외국춤을 추어서 분위기를 《추잡한 날라리》풍으로 휘저어놓았다는것이였다. 후에 구체적으로 료해해보는 과정에 그 의견은 일부 편협한 사람들에 의해 과장되였다는것이 확인되였다. 누가 그런 험한 말을 내돌렸는지는 알수 없지만 어쨌든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의미에서 동소옥의 품행이 손상을 입은것도 불미스러운 일인데 그나마 본인은 어디 간다온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새로운 제품개발에서 한몫 맡아하기를 바란 대상인데 기대와는 어긋나는지 정시홍은 실망한 얼굴이고 남계수는 숱진 눈섭을 꿈틀거리며 분을 삭이지 못해하였다.

망할놈의 계집애, 정갱이를 분질러놔야 하는건데, 이렇게도 속을 썩인다구야.

남계수는 당장이라도 뛰쳐가 동소옥을 붙들어오고싶지만 자리가 자린지라 참고있자니 속에서 불이 일었다.

강치명이 남계수에게 물었다.

《소옥동무에게 친척들이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남계수는 쓴입을 다시며 대답했다.

《애비쪽에는 5대독자라 아무도 없지요. 그애 어머니는 원래 영흥(오늘의 금야)사람이고 땅마지기나 가진 집 딸인데 동윤덕이한테 반해서 도회지로 나온탓에 부모형제들에게서 의절당했소. 해방후에도, 전후에도 처가를 찾는걸 보지 못했거든요. 하긴 그애 어머니는 전쟁때 폭격에 잘못됐으니까요.》

《영흥이란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일들을 보십시오.》

강치명은 그답지 않게 약간 서두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단한 이마에 손을 얹은 남계수는 의자등받이에 기댔다.

 

날씨는 겨울로 되돌아가기나 하듯 추웠다. 바다쪽에서 찬바람이 구름을 휘동해가지고 밀려들어 을씨년스러운데다 진눈까비까지 구질구질 내렸다. 개나리꽃이 핀 뒤에 이런 날씨도 드물다.

동소옥의 행처는 묘연했다. 휴가를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 남아있을뿐 어데로 갔는지는 독신자합숙의 호실처녀들도 몰랐다.

《걱정마세요. 언닌 기막히게 머리가 좋아요. 우리 호실은 기술학습도 한답니다. 저녁마다…》

《소옥언닌 발명가가 될거예요. 도면을 얼마나 많이 그리는지 모릅니다. 듣기만 해도 즐거운 환상에 잠기게 만들지요 뭐.》

호실의 처녀들은 영문을 모르면서 입을 모아 칭찬을 해댔다. 어제 오늘 두차례나 합숙을 찾은 남계수는 점점 겹쳐드는 걱정으로 가슴이 무거워 그들의 소리는 귀담아듣고싶지도 않았다.

기술혁신은 고사하구 속이나 썩이지 말아라, 무슨 계집애가 꼬리에 화를 달고다니는지, 원.

속으로 욕을 해대며 합숙을 나서자 그는 공장을 향해 걸음을 다그쳤다.

진눈까비가 집요하게 접어드는 속을 헤치고 걸으며 남계수는 공연히 하늘에 대고 화를 냈다.

《철도 모르고 이 모양이야, 제길할.》

공장정문에 들어서자 접수실에서 기다리고있던 조영길이 다가오는데 그 모습이 더욱 울화를 치밀게 했다. 반들거리는 이마가 인상적인데 전에없이 얼굴에 희색을 짓고있었다.

《지금 오십니까?》

《무슨 일이요?》

멋있게 지은 봄가을외투를 입은 조영길은 남계수를 따라서며 대답했다.

《재정총화보고서를 제출하자고 합니다.》

《그건 바쁘지 않소.》

《오늘 생활비를 지불해야 하는 날이기에…》

사무실에 들어서자바람에 남계수는 조영길이 내놓는 문건은 보려고도 하지 않으며 물었다.

《이보우, 부기장. 상금기준을 새로 정하라고 한건 어떻게 됐소?》

조영길의 눈빛이 긴장과 초조감으로 떨렸다.

당위원장을 만났을가. 물질적자극이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걸고드는것 같이 돼서는 안되지 않는가.

《그게 막상 시작하니 쉽지 않습니다. 현재 세운 조항만도 서른가지가 넘습니다. 로동시간준수만 해도 결근, 조퇴, 입원, 진단서가 있는 경우와 무단결근… 그에 따라 삭감해야 할 액수를 산출한다는게 말처럼…》

남계수는 저으기 불만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가장 합리적이면서 생산의욕을 높일수 있는 방향, 이것이 연구돼야 한단 말이요. 동무가 말하듯이 무한정 쪼개놓을내기를 하면 모순에 빠질수밖에 더 있는가 말이요. 내가 이달에 출근일수가 얼마니 남보다 상금을 적게 받을수밖에 없다, 제품오작은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알고 그런 일이 없도록 자극을 주자는건데 동문 어떻게 리해하는거요?》

조영길은 알겠다는 표시로 머리를 끄덕이지만 속생각은 달리하고있었다. 지배인에 대한 의견들이 많을 땐데 한풀 죽게 만들고싶었다.

남계수는 앞에 놓인 종업원생활비계산문건을 보고나서 수표를 할 대신 명단에 들어있는 몇사람의 이름을 꾹꾹 눌러대며 말했다.

《이 사람들의 생활비는 나한테 가져오우.》

《예? 그건…》

《그렇게 하오.》

《지불대장에 수표는 누가 합니까?》

《내가 하겠소.》

《알겠습니다.》

《부기장동무, 상금기준을 새로 정하자는데 대해 다른 의견은 없소? 의견들이 없는가 말이요.》

《저야 뭐…》

조영길은 얼버무리다가 용기를 내여 말을 이었다.

《종업원들속에서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상금적용을 너무 야박하게 하여 못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불평이 생길수 있다는겁니다. 사실상 이 문제는 정치적측면에서도 예리합니다. 부기일군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걱정마오. 책임은 내가 지겠소. 우리 기업소는 독립채산제단위요. 평균주의를 할수는 없소. 내가 방금전에 짚은 세사람의 생활비를 가져오오.》

부기장이 가져다놓은 생활비를 받아야 할 대상들이 퇴근시간이 되자 드디여 남계수의 방에 나타났다.

시계태엽으로 만든 토끼털귀덮개를 쓴 로동자가 앞서고 뒤따라 맨머리바람에 곤색 낡은 솜저고리를 입은 키작은 사람과 혼방직목수건으로 녀자같이 머리를 둘러감은 꺽다리가 잔뜩 볼이 부어서 들어섰다.

의자등받이에 기댄 남계수는 세사람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들이 철제일용품공장의 3총사라고 불리우는 명물들이다. 각이한 직종들을 가졌지만 저녁이 오면 한곳에 약속이나 한듯이 모여들어 제나름의 생활을 누리는것이다.

《왜들 왔나?》

세 사나이의 얼굴표정과 서있는 자세가 볼만 했다. 토끼털귀덮개는 앞으로 목을 쑥 내민게 금시 달려들며 소리를 지를 기상이고 키작은 맨머리는 코소리를 흥흥 내며 시물거리는데 줄무늬가 간 수건을 쓴 꺽다리는 어깨를 솟군채 선자리걸음하는게 갈길이 바쁘다는 소리다.

《몰라서 물으시나요?》

가운데 선 키작은 맨머리가 히쭉 웃자 《생활비까지 여기서 타야 한대서 왔수다. 넨장, 바빠죽겠다는데 못살게 굴면서…》 하고 토끼털귀덮개가 우둘렁댔다.

남계수는 들은척도 안하면서 가운데 선 로동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늘은 어데 갈 계획인가?》

《그거야 뭐. 히히, 이 추운 날 녀편네품만 한데가 있을라구요, 흐흐.》

《아니야.》 하고 손을 내저은 남계수가 천정을 쳐다보며 빈정대듯 물었다.

《괜찮은 생활들을 하거던. 룡문동 우동집에 예약을 다하구. 거기 우동과 짜장면이 소문났다면서?》

《과시 귀신이외다. 일만 바늘 들어갈 틈도 없이 시키는가 했더니 밑구멍 파내는 재간도 가진걸 몰랐수다.》

《생활비나 어서 달라구요.》

남계수는 여전히 마주보려 하지도 않으며 말했다.

《왜 배가 못 참겠다구 그 물부터 찾나. 급하기들이란…》

《이거 약을 그만 올리시라구요. 생활비 타서 제 술 마시는것도 로동규률위반이나요?》

토끼털귀덮개가 참지 못하고 역증을 내자 남계수의 눈길이 번쩍이며 찌를듯 겨누었다. 그제야 세사람은 함부로 지껄인게 걸리는지 기를 꺾으며 공손해졌다.

《가정이야말로 가장 엄격한 채산제단위야. 독립채산제! 자네들은 세대주들이 아닌가. 덕삼이,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토끼털귀덮개가 고개를 외로 튼다. 남계수가 손가락으로 맨머리를 가리켰다.

《수남이, 임자 나이 몇이던가?》

《갓 마흔입지요. 히히.》

《애들은 몇이구?》

《히히, 재간이 좋아 벌써 셋씩이나 벌어놨구요.》

《그거야 좋은 일이지. 그런데두 한달 생활비를 이삼일안에 결딴내다싶이 한단 말이지, 어떤가? 자네 그 술마시는 놀음이 말이야. 눈알이 새까만 자식들 보기가 좀 안됐다는 생각을 해보기나 하나?》

맨머리가 더부룩한 정수리를 손으로 툭툭 털어대며 《그쯤 여기며 사는거지요. 내가 든든해야 그것들이 푹푹 자라거든요, 히히.》하고 익살을 떨어댄다.

남계수는 손을 내저으며 수건을 쓴 꺽다리를 바라봤다.

《자네 처는 환자지? 병세가 어떤가?》

《위병인데 선천성같기도 하구… 하지만 일없어요. 그 사람은 내가 마셔야 좋아합니다. 이건 죄다 사실이예요.》

남계수는 팔짱을 끼며 그루를 박아 말했다.

《임자들 셋의 생활비는 내가 직접 집에 찾아가서 색시들한테 주겠네. 한푼도 곯지 않게 전달할테니 념려말라구. 그것도 매달!》

세사람은 입을 딱 벌렸다. 이어 신음소리같은 항변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그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만…》

남계수가 손짓으로 가라고 하자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쯤되면 방법이 없다는걸 잘 아는 사람들이였다. 생활비타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오늘 저녁의 즐거움을 외상으로 맛보아오던 세사람은 자기들의 꿈이 거품같이 돼버리자 괴상한 표정과 몸가짐으로 각이하게 인사를 하고나서 나가며 투덜거렸다.

《우리만 아니외다. 공정하게 하자구요.》

《자네들에게 짝지지 않는 골동품같은 녀석들을 몇명만 나한테 알려달라구. 내 그러면 이 조치를 철회할수도 있을테니까.》

남계수의 회유적인 말에 대답은커녕 문닫기는 소리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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