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야령의 외딴집로인들 박영순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 지방에 오시더니 깊은 밤 삼경에 새별이 유난히 반짝입니다.…》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에 우리는 인민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인민들의 이 신뢰와 흠모의 마음은 그이께 자기 운명과 미래를 의탁하고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온 그들의 지성에서 더 뚜렷이 표현되였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로야령의 외딴집로인들도 바로 이러한 인민들이였다. 이 로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대원들에게 자주 들려주신 감격어린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나는 1959년에 항일무장투쟁전적지 답사단의 한 성원으로 현지에 갔다가 이 로인들을 직접 만나게 되였고 그들의 감회깊은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1934년 겨울이였다. 수개월에 걸친 간고한 북만원정로정에서 일련의 전투들을 진행하신후 귀로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적이 먼 로야령산중에서 위급한 촉한을 만나셨다. 그토록 어려운 전투와 행군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언제나 우등불가에서 밤깊도록 잠을 잊으시고 우리 혁명의 앞날을 구상하시며 대원들을 친어버이의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듯 위급하게 되셨을 때 그이를 부모처럼 믿고 의지하던 대원들로서 누구나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갖가지 방법과 지성을 다하여 간호하였고 그이를 안전한 곳에 모시기위해 일부 대원들은 로야령 어느 깊은 골짜기에 있다는 조택주로인의 집을 찾아떠났다. 깊은 밀림과 눈보라로 뒤덮인 그 큰산속에서 이름모를 골짜기의 외딴집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길을 나선 동무들은 살을 에일듯 한 로야령의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한밤중에 한지에서 고열에 시달리고계실 위대한 수령님, 그리고 그이의 곁에서 분초를 다투며 자기들이 돌아오기를 안타깝게 기다릴 동무들을 생각하며 온몸이 그대로 불덩이가 되여 깊은 눈속을 밤새도록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패린즈에서도 70리 더 들어간 다왜즈의 로야령산중턱의 태고연한 수림속에서 두채의 귀틀집을 찾게 되였다. 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뜻한 방에 모실 기쁨으로 그중 한집에 달려가서 주인을 찾았다. 《누구시오?》하고 문을 열던 로인은 털모자를 쓰고서있는 젊은이가 유격대원임을 알아보자 마치 자기 아들이라도 만난듯이 반가이 서두르며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대원들은 바로 이 로인이 일제침략자놈들의 학대를 피하여 이곳에 은신하여 몇해를 살고있는 조택주로임을 확인한 다음 사령관동지께서 급병으로 앓고계시는데 그이를 이 집에 모실수 없겠느냐고 로인의 의향을 물었다. 대원의 말을 듣고난 조택주로인은 《김일성대장님께서 병환에 계신다는데 하늘이 무너지면 무너졌지 그분께서 촉한때문에 고생하시다니 될말이요. … 어디 계시는지 어서들 모셔오우.》하고 성큼 일어나면서 자기 손자(조영선)의 등을 밀어 앞장에 내세웠다. 친혈육보다 더한 정으로 대원들을 대해주고 그이를 념려해주는 로인앞에서 대원들은 무어라고 대답할 말문이 막히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있는 행복과 긍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고 그이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와 흠모의 정이 얼마나 높고 뜨거운것인가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보통 한 가정의 어른이라 해도 우리 도덕으로써는 그럴수 없는데… 항차 우리 인민들을 모두다 잘 살도록 하시려는 그분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못하겠소. 그분이 우리 집에 오신다는것은 옛날같으면 하늘이 가르친 경사라고도 할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분을 그렇게 춥고 험한 한지에 계시게 하고 오다니. 원, 무슨 일들을 그렇게 하오.》 거듭 이런 말을 하면서 로인은 자기 손자에게 급히 길을 떠나라고 하였다. 그들은 숨한번 돌리지 않고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사나운 눈보라속으로 수십리길을 단걸음에 달려갔다. 그리하여 날이 밝기전에 그이께서 계신곳에 이르렀다. 대원들은 그길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택주로인의 집으로 왔다. 조택주로인은 그사이 뜨끈뜨끈히 불을 때놓은 방아래목에 그이를 모시였다. 그리고는 몇번씩이나 그이께서 누우신 자리밑에 조심히 손을 넣어보고는 부엌으로 오르내리며 장작을 골라 지피였고 자기 며느리인 최일화어머니로 하여금 좁쌀을 정히 쓿어서 미음을 쑤게 하더니 벌집을 털어온 산꿀을 타서 그이께 대접하였다. 그리고 조택주로인은 소매를 걷어올리고 위대한 수령님의 몸을 주물러드렸다. 최일화어머니는 그이의 머리맡에 나서는것이 어려워서 이불밑으로 발치에 손을 넣어 발목을 주물러드렸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땀을 내시며 잠이 드셨으나 로인은 여전히 그 무엇인가 마음이 놓이지 않은듯 그이의 곁에 조심히 다가앉아 자리곁을 살피기도 하고 또 밖으로 나가서 손자들에게 무엇을 시키기도 하면서 잠시도 자리에 붙어있지 않는것이였다. 《로인님, 좀 쉬셔야겠습니다.》하고 대원들이 로인을 걱정하면 로인은 무슨 당치않은 말을 하느냐는듯이 눈흘김을 하면서 제발 조용하라고 손짓을 하는것이였다. 또한 대원들이 부엌이나 마당에 나가서 물을 긷거나 나무단을 들어옮기는것만 보아도 로인은 《제발 그분곁을 떠나지 마우. 그분을 잘 모셔야 하우.》하고는 손에 든것을 잡아채군 했다. 이렇게 로인일가는 지성으로 그이를 간호하였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날이 터올무렵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에서 깨시였다. 몸은 퍼그나 축가시고 얼굴에는 병색이 눈에 뜨이게 나타났다. 이러하신 그이를 우러르며 조택주로인과 최일화어머니는 더욱 근심스러워했다. 그이를 뜻대로 대접해드리지 못하는것이 한이였고 약해지신 몸에 고기붙이가 좋은줄은 누가 모르랴만 놈들의 눈을 피해사는 형편이므로 거처지가 드러날가봐 개, 닭 같은 짐승도 못길렀으니 한번 고기붙이도 대접못해드림을 가슴아파하였다. 그렇다고 어디가서 구해올수도 없었다. 마을이 멀어서가 아니라 그 발자취로 인하여 어떠한 후과가 위대한 수령님께 미칠는지 몰라서였다. 그리하여 최일화어머니는 지성이 감천이라 하며 그저 귀밀보리에 좁쌀을 섞은 조보리밥이나마 더욱 정성껏 지었다. 찬은 시래기국이 아니면 겨우해서 막두부장이였으나 언제나 따끈하게 끓여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상 그 진지를 맛나게 받으셨다. 장맛이 좋아서 시래기국이 구수하다고 하셨고 막두부장이 별맛이라고 하시면서 그것을 자신과 함께 식사를 하는 대원들앞에 돌려놓으셨다. 그러나 대원들도 사양하였다. 이리하여 두부장그릇은 몇번이고 밥상우에서 자리를 옮기였다. 이러한 광경을 보는 조택주로인과 최일화어머니는 비단 장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공력과 성의에 대한 치하인줄로 여겨서 더욱 어쩔바를 몰라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진지를 맛나게 드시면 그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장군님께서 우리같은 사람네 집에 머물러주신것만해도 경사인데 막두부장에 귀밀밥을 별식처럼 받아주시니 오히려 죄송할뿐이외다.》 진정 그들은 모든것을 아끼지 않았다. 아침저녁 죽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구차한 살림살이기는 했으나 로인들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공경과 유격대에 대한 원호를 가장 보람있는 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병석에서도 늘 식량걱정을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념려하여 없는 티를 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느날 어느때를 가리지 않고 잡곡이나마 알알이 정성껏 쓿어서 그이의 때식을 갖추었고 대원들의 식사도 알뜰히 보장했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택주로인의 단칸방에서 한집식구와도 같이 10여일간이나 침식을 함께 하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츰 건강이 회복되시자 종종 가족들을 모아놓고는 일제놈들을 쳐부셔야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대원들앞에서도 수시로 이러한 말씀들을 하셨다. 그리고 이동안에도 군정학습은 계속되였으며 때때로 오락회도 열리였다. 유격대원들의 노래와 춤은 울적하게 산만 바라보고살던 이 집가족들을 더욱 기쁘게 하였다. 밤새도록 눈이 내린 어느날 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을 인솔하시고 길을 떠나시게 되였다. 옷소매를 잡고 놓지 않는 조택주로인의 손목을 잡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살길을 찾아온 이국땅에서까지 해빛을 보지못하고 숨어살아야 하니 조선의 아들들의 죄가 큽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이제 해빛을 보면서 살게 될 날은 꼭 옵니다. 봄이 되면 놈들의 〈토벌〉이 심해지고 이 골안에서도 총소리가 잦아지겠는데 고생스럽겠지만 라자구쪽으로 이사를 가십시오. 혁명바람이 센 곳이니 여기보다는 거기가 안전할겁니다.》 로인들은 출발준비를 서두르는 대원들에게 봇나무껍질에다 고추장과 줴기밥을 싸서주었고 좁쌀과 귀밀보리쌀을 찧어 길량식으로 내놓았다. 그리고는 말끔히 쓿은 좁쌀을 따로싸서 그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못하신채 길을 떠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념려하여 그이께 대접하라는것이였다. 이윽고 대렬을 앞세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별을 아쉬워하는 조택주일가들을 되돌아보시고 손을 흔드시며 눈보라치는 로야령의 험준한 눈길에 오르시였다. 조택주로인과 최일화어머니는 지금까지 뜻대로 보양해드리지못한 안타까움과 그리고 병이 채 가시지도 않으신 몸으로 강추위가 엄습하는 거칠고 위험한 길에 나서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 추운 길을 그렇게 훌훌히 떠나시다니…) 생각할수록 그이를 극진히 보양해드리지 못한것이 그 무슨 잘못을 저지른것처럼 마음이 송구스러워지는 최일화어머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을 떠나신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유격대의 종적을 찾아헤매던 일제《토벌대》놈들은 로인들이 숨어사는 이곳 로야령귀틀집부근까지 수색을 뻗치게 되였다. 그러자 조택주로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떠나실 때에 하신 말씀을 명심하고 가족들과 함께 반유격구였던 라자구지방으로 옮겨왔다.(라자구일대는 적의 통치구역이였으나 혁명세력이 강하고 적의 《토벌》본거지에서 수백리 떨어진 산간지대인 관계로 적의 통치기능이 마비상태에 있은 고장이였다.) 1935년 6월 어느날 라자구근방인 태평구부락에 수백명의 유격대원들이 나팔을 불면서 들어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원수님께서 친솔하신 유격대원들이 동녕현 로흑산에 주둔하고있던 악질적인 《정안군》을 몽땅 살상포로하고 박격포, 기관총 등 많은 무기를 로획해가지고 개선하는 길이였다. 남녀로소 할것없이 길로 뛰여나와 《만세!》를 부르며 그들을 마중하는 인민들의 환호성에 호응하여 유격대원들이 름름하게 행진해갔다. 대렬중간에서 걸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올망졸망한 어린이들의 앞을 지나시다가 너더댓살나는 한 아이를 덥석 안아올리시고는 아이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며 걸어가시는것이였다. 그런데 그이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는 옷이라고 말할수 없는 막누데기를 걸치고 장난때가 많이 낀 얼굴을 쳐들고는 벌써 친한 벗이라도 된듯 깔깔 웃어대며 그이와 무슨 말인가 주고받고있었다. 《아! 저분이…》 군중속에 섞여있던 조택주로인도 최일화어머니도 그이의 모습을 알아보자 이렇게 반가운 소리를 지르며 한두걸음 앞으로 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김일성장군님이 분명하시지.》 《다시 오시겠다더니.… 정말 오셨군요.》 조택주로인과 최일화어머니는 이렇게 반갑고 기쁜 심정을 나누면서 더욱 힘있게 《만세!》를 불렀다. 로야령귀틀집에서 채 회복되지 못하신 몸으로 길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 그후에도 항시 념려스럽던 그이께서 오늘은 저렇듯 건강한 몸으로 웃음을 지으시며 걸어가시는것을 보자 반가움을 억제할수 없어서 그이의 곁으로 좇아나가려던 최일화어머니는 그만 그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던것이다. 조국의 광복과 수천만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이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바쁘신 걸음을 사사로운 일때문에 함부로 멈추시게 해서는 안된다는 시아버지의 훈계를 거역할수 없어서 최일화어머니는 섭섭한 마음으로 그 대렬이 강건너쪽으로 멀리 사라지는것을 오래오래 바라보고있었다. 그날 유격대는 바로 마을옆을 흐르는 화소포하라는 개울건너 부락인 신툰자에 머물렀으며 이 마을에는 다만 몇명의 대원들만 남아서 군중과의 사업을 하고있었다. 최일화어머니는 물건너마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신줄은 알면서도 역시 시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수 없어서 찾아갈 엄두를 못내였으며 마을 부녀들사이에서 벌어지는 그이에 대한 이야기에 섞이면서도 전날의 이야기는 제자랑 같아서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 이튿날이였다. 최일화어머니가 밭으로 나간 사이에 마을에 나갔던 조택주로인은 지난 겨울에 자기 집에 들렸던 유격대원 두사람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보았다. 이 대원들을 통해서 조택주로인의 소식을 전해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로 몸소 로인네 집을 찾아오셨다. 《아! 김일성장군님!》 《아버님!》 그이께서는 집안에서 어푸러질듯 뛰여나오는 조택주로인을 급히 붙안으셨다. 그러시고는 토방돌우에 걸터앉으시여 조택주로인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간 로인이 겪어온 고생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하여 상세히 물으셨고 혁명이 승리하는 날 조선인민들이 누리게 될 행복한 나날을 보는듯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로인과 가족들이 유격대를 지성껏 도와주는데 대하여 거듭 치하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시면서 로인의 가정에서 부림소도 없이 농사는 어떻게 지으며 땔나무는 어떻게 해오는가고 마치도 자기 집일을 근심하시듯 의논하시고 방이며 부엌도 살펴보시고 부족한 살림걱정도 하셨다. 그리고 로인의 집을 떠나실 때에는 살림에 보태쓸수 있는 용돈을 얼마간 남기고가시였다. 로인은 자기집 살림걱정까지 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정에 감격하여 저녁에 밭일에서 돌아온 며느리를 보고 눈물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오늘 김대장이 오셨느니라. 그분은 날보고 아버지라고 하며 어찌도 자신을 낮추시는지 난 그만 어쩔바를 몰랐다. … 훌륭한 인물은 무거운 낟알이삭에 비기는 말이 과연 옳으니라!》고 몇번이고 되뇌이였다. 최일화어머니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지 못한 안타까움에 당장 그이께서 계시는 물건너마을로 뛰여갈가도 생각하였으나 자기의 빈손이 바라뵈여서 주저앉고말았다. 집집마다 목이 타게 햇곡식을 기다리는 판인데 어디 닭을 기르는 집이 있으며 닭알인들 구할수 있겠는가. 그만큼 마을안에서 좁쌀 한되박 구하기 어려운 때였다. (그분을 겨울철에 꼭 다시 오시라고 할걸, 시아버지는 그저 덤덤도 하시지.) 최일화어머니는 이궁리저궁리하며 뜬눈으로 그날밤을 새웠다. 그런데 다음날 두 유격대원이 한필의 백마를 이끌고 이 집을 찾아왔다. 온 식구들은 의아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로흑산전투에서 로획한 적들의 말인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집에 보내시는 선물이라고 하면서 여위기는 했으나 살을 찌워서 역축으로 쓰게 하라고 하신 그이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것이였다. 유격대원에게서 말고삐를 받아쥔 조택주로인은 말목을 쓸어안으며 《소를 매고 농사지어보고싶던 일생의 소원을 그이께서 풀어주셨소.》라고 몇번이나 거듭 말하였다. 대원들의 손을 잡고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묻던 최일화어머니도 눈물을 훔치며 이런 말을 하였다. 《장군님께서 로야령밑 귀틀막에 오셨을 때도 고기붙이 한번 대접못해드렸습지요.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가까이 뵈옵게 되였으나 여전히 내 소원껏 대접못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장군님의 말씀대로 이 말에 살을 잘 찌워서 농사를 지으며 밝은 세상에서 마음을 펴고살수 있는 그날만 바라고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최일화어머니의 얼굴에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지없는 흠모와 존경의 빛이 넘쳐흐르고있었다. 이것은 지난날 그이에 대한 인민들의 극진한 존경과 흠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사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짧은 회상에서도 특히 내가 두고두고 깊이 생각하게 되는것은 착하고 부지런한 우리 인민들은 당시에도 자기들의 참된 행복이 무엇이며 누구를 믿고 어떻게 싸우며 승리해야 하는가를 잘 알았기때문에 위대한 수령님에 대하여 그렇듯 끝없는 존경과 두터운 신임을 가지고있었으며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길에서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불타는 신심을 품고있었다는것이다. 나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유격대는 인민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하시며 항상 인민의 참된 아들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인민들에게서 허심하게 배우고 인민을 위해 일하는 혁명전사가 되라고 우리를 가르치시던 일이 언제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