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 뭉친 힘 박두경
《우리가 하려고 해서 못해낸 일이 없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며 천리마의 진군을 하고있다. 이 감격과 영광속에서 우리들은 누구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며 그이의 현명한 령도와 깊은 배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있으며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길이라면 물불을 헤아림없이 나아가는 그이의 혁명전사된 영예와 긍지로 충만되여있다. 물론 이는 오늘에 비로소 가지는 영예와 긍지가 아니다. 벌써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그이의 현명한 령도를 받으며 싸워온 우리 인민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보고느낀 긍지이며 자랑인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처음뵈옵던 그 당시에 나는 소왕청에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신 다음 이곳으로 오신후부터 그이께서 계시는 소왕청은 조선혁명의 중심지로 되였다. 그 이전의 소왕청이란 적들의 강점하에서 참을수 없는 탄압과 학살만행을 당하던 조선인부락들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당시 우리에게 있어서도 가장 절박한 문제는 적들의 무장적탄압을 물리치는것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무장투쟁로선에 립각하여 손에 무장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에게 무슨 무장이 있었으랴. 가지고있는것이란 도끼와 낫, 곤봉 등에 불과했다. 이것을 가지고는 정예무기로 장비한 일제침략자들을 상대로 싸울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수도 없었다. 우리는 독립군과 포수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모아들였다. 그것은 화승대, 렵총 등 모두해서 세자루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한자루는 고장이 나서 사용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래서 어떤 동무들은 《우리에게는 두자루반의 무기가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이것을 밑천으로하여 비밀리에 《특무대》라는 무장대를 조직하고 적의 무기를 빼앗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 투쟁에는 또한 《특무대》뿐만아니라 청소년들과 지어는 60살이 훨씬 넘은 로인들까지도 참가했다. 그리하여 구식보병총 7~8정을 더 구할수 있게 된 우리는 적들과 싸울 열의로 들끓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셨다. 그이께서는 우리들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다. 맨주먹으로 적의 침해를 받던 동무들이 이제는 적으나마 무기를 손에 쥐였고 적과 싸워보고싶다는 열렬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고있는것은 더없이 기쁜 일입니다. …자기 목숨보다 혁명이 귀중하며 자기 한 개인의 청춘보다 조국의 자유독립과 인민들의 행복이 더 귀중하다는 생각을 할 때에 우리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동무들의 이 드높은 투쟁열의는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동무들이 명심해야 할것은 적들을 쳐부시고 혁명을 승리하자는 그 열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적들과 싸운다는것은 수리날 씨름이나 하듯이 맞서서 이기면 좋고 지면 또 한번 해보자는 식의 기분놀음이거나 장기다툼이 아닙니다. 우리는 혁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러자면 정확한 전투계획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로서는 얼마만한 적을 제낄수 있으며 어떻게 싸워야 우리에게 손실이 없이 적들을 더 많이 잡고 결정적으로 이기겠는가, 우리의 장점은 무엇이고 적의 약점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에게는 부족점이 없는가,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러한 세심한 지도밑에 우리는 우선 자체무장을 더욱 강화하였고 어떠한 때에라도 적의 침공으로부터 인민들을 튼튼히 보위할수 있는 유격구를 꾸리는데 힘썼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차 전투에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그이의 지휘밑에 쟈피거우전투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무수한 전투들에서 우리의 거듭되는 승리는 유격대원들과 유격구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우리의 전투기술은 더욱 세련되고 발전되였다. 이와 함께 유격구내에 인민정권이 서고 제반민주개혁까지 실시되였다. 결과에 유격구인민들의 혁명적기세가 더욱 고조된것은 물론이고 적통치구에 있는 인민들에게 준 영향도 매우 컸다. 적통치구에서 유격대에 입대하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들어오는 청년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과 승리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1933년 봄부터 우리앞에는 간고한 시련이 닥쳐왔다. 이해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적들은 우리의 이러한 혁명적기세를 꺾고 혁명의 전취물을 빼앗으려고 대규모적인 《토벌》작전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혁명근거지의 중심인 소왕청유격구《토벌》에 적들은 자기의 모든 력량을 집중하였다. 1933년 4월 17일이였다. 대두천기슭에서 뾰족산어귀까지 미친듯이 몰려드는 적들은 우리의 유격구를 한입에 삼킬듯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비록 우리의 력량은 청소하였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고 그이의 주위에 굳게 뭉친 혁명대오와 인민들의 굳은 단결이 있다고 생각하니 누구나 마음이 든든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우리 유격대원들은 침공해온 수천명에 달하는 적의 대병력을 상대로하여 불면불휴의 전투를 거듭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3일만에 적들을 격퇴시켰고 적들은 이 전투에서 400여명의 사상자를 내였다. 그러나 적들은 저들의 《토벌》기도를 버리지 않았다. 놈들은 또다시 새로운 병력을 집중하면서 보다 대규모적인 동기《토벌》작전을 획책해나섰다. 적들은 우리 유격구를 《일거에 소탕하겠다.》고 떠벌이면서 동만각지와 지어는 조선 라남에 있는 19사단의 일부 병력까지 발동시켜서 보병, 기병, 포병, 항공대 등 약 5,000명의 《최정예》부대를 투입하였다. 쟈피거우, 왕청, 마반산 등 여러 방향으로부터 포위해들어온 적들에 의하여 유격구주변은 불바다로 변하였다. 숨막힐듯 한 연기와 화광은 순식간에 유격구를 휩쓸고 적들의 총탄과 포탄은 골안을 뒤엎는듯 했다. 그러나 우리 유격대와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활한 지휘밑에 적의 침공에 대처하여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싸웠다. 일부 인원들은 뾰족산과 마반산어귀의 유리한 지형을 리용하여 적들의 공격을 저지시켰고 3중대의 우수한 전투원들을 중심으로 한 저격조원들은 연기와 화염이 뒤덮인 산판과 골짜기의 깊은 눈을 헤치면서 은밀히 전진했다. 불속을 뚫고나간 그들은 계속 몰려드는 적들의 측면과 배후를 향하여 여러개 지점에서 불의에 총탄을 퍼부었다. 오만무례하게 덤벼들던 적들은 무리로 쓰러져갔다. 이때 적들은 마반산계선으로 달려들던 기본력량까지 뾰족산계선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여러차례에 걸쳐 거듭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적들이 발악할수록 늘어가는것은 제놈들의 시체뿐이였다. 적들은 그이상 더는 뾰족산계선에다 병력을 투입하지 못하고 시체무더기를 던진채 약 3km후방까지 쫓겨가지 않을수 없었다. 이 꼴을 바라본 우리들의 기쁨은 물론이고 근거지안에서 총탄을 운반하고 밥을 짓던 부녀회원들이며 우리들의 전투승리를 고무해주던 아동단원들까지도 축하의 노래를 부르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앞으로 모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로약자들과 어린이들은 구마촌 안쪽골짜기로 대피시키고 뾰족산계선에 있는 유격대원들중에서 일부 감시인원만 남기고 기타는 다른 봉우리로 옮기라고 하셨다. 적들은 심대한 타격을 받고 물러서기는 했으나 소왕청유격구를 《소탕》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준비밑에 많은 병력을 동원시킨것만큼 그리고 이날 심대한 타격을 받은것만큼 보다 더 완강한 공격을 시도할것이였다. 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승리에 이어 보다 강력한 타격을 줄수 있는 전투준비를 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치시였다. 그이의 말씀대로 우리는 지체없이 로인들과 어린이들을 구마촌 안쪽골짜기로 대피시켰으며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 다음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명철하게 예견하신바와 같이 적들은 수량상 우세를 리용하여 또다시 뾰족산을 제압하려고 소위 《결사돌격대》를 조직하여 공격해왔다. 그러나 적들은 이《새로운 공격》에서도 패배를 면치 못했다. 그것은 이미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대로 우리 유격대가 뾰족산 다음봉우리로 자리를 옮기였으므로 뾰족산계선에만 공격을 집중하고 《돌격》해들어온 적들이 뜻하지 않은 방향인 뒤봉우리로부터 맹렬한 집중사격을 받았기때문이다. 적들은 소왕청골안의 매 봉우리마다에서 거듭되는 참패를 당하면서도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놈들은 주검우에 주검을 쌓으면서도 계속 예비병력을 구마촌 골안으로 몰아넣었다. 어떠한 손실을 당하더라도 적들은 소왕청유격구《소탕전》의 끝장을 내고야말 심산이였다. 산봉우리며 골짜기며 나무숲 어디에나 적의 총탄과 포탄이 날아오지 않는곳이 없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20일가까이 싸우고난 우리의 형편은 적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대처하여 일방적인 방어만으로는 유격구를 보위하기 힘들게 되였다. 우선 우리들이 가지고있는 무기라야 구식보병총들이 대부분이였고 그것마저 대원들에게 다 차례지지 못한 형편이였다. 이러한 무기로써 사면으로부터 달려드는 적의 여러개 련대의 병력을 대항하여 계속 장기적인 방어전을 할수는 없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정황으로하여 자칫하면 전투에서 피동에 빠질수 있었고 더나아가서는 유격구를 적들에게 빼앗기고 수많은 인민들이 놈들의 피묻은 총검아래 유린될 위급한 형편에 놓였다. 게다가 적들의 폭격과 방화에 의하여 집들은 불타버리고 어디서도 식량한톨 구할곳이 없었다. 그리고 사면에 적을 두고있는 속이라 환자가 생겨도 불조차 마음대로 피울수 없었다. 몸에 걸친 옷마저 찢기고 불에 탔으므로 동상자를 내지 않기 위한 투쟁이 적들과 싸우는것만 못지 않게 간고한 투쟁이였다. 날이 밝기만 하면 적의 비행기까지 달려들어 골짜기와 봉우리를 뒤지며 돌아치기때문에 한편으로 적과 싸우며 한편으로 인민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때의 힘겹던 일을 일일이 다 말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잠시라도 짬이 있으면 총을 닦고 전호를 손질하던 전사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더운물 한모금이라도 서로 나누어마시게 하려고 위험속을 뚫고다니던 로인들과 부녀자들의 정경은 지금도 나의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그리고 바위틈에 엎드려서 《자작권총》(양철과 파철을 리용하여 만든것)에 화약을 재우며 적을 겨누던 아동단원들의 그 모습과 그들이 부르던 노래소리는 지금도 내귀에 쟁쟁히 울리는것만 같다.
모여라 동무들아 붉은기아래 한마음한뜻으로 모여들어라 폭탄과 권총을 손에다 들고 주권을 틀어쥐려 모여들어라
특히 이 간고한 투쟁속에서도 우리를 승리에로 인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우리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신뢰와 흠모의 정은 그지없었다. 적들이 구마촌어귀에 기여들었을 때였다. 이때 소왕청지구에서 십리평으로 넘어가는 자덕령(태평촌지역)에서는 그곳에 대피한 녀인들이 불도 마음놓고 피우지 못하는 유격대원들을 위하여 밤중에 더운 물병을 품에 싸안고 리수구에 있는 사령부로 오고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적들이 달려든 구마촌쪽 벼랑턱에서 무엇인지 기여오르는것을 감촉했다. 그들은 갑자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우선 눈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니 벼랑턱에서도 그이상 더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우리가 잘못 보지 않았나.》 《아니야, 분명 몇사람이 벼랑턱에 올라섰던것 같애.》 《소리를 쳐볼가.》 《안돼, 그러다간 장군님과 유격대원들이 있는 저쪽으로 탄알이 미치면 어쩔려구.》 짧은 순간에 이렇게 속삭이던 그들중 유격대원인 최상범동무의 숙모는 《동무들은 여기 숨어있으라구.… 내가 저쪽으로 가서 소리를 쳐볼게.》라고 말한후 물병을 내려놓고 어두운 숲속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자기 목숨을 돌볼사이없이 사령부의 안전을 보위하기 위한 일념에 불탔던것이다. 그는 사령부와 반대방향인 수림속으로 뛰여가며 목청껏 소리를 쳤다. 《적이다!》 《벼랑끝에 기여오른다!》 그것은 적들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끌려는것이였다. 이렇게 부녀자들까지 맹물을 끓여먹고 지내면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으며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령부를 지켰으며 유격대원들을 돕고 사랑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따라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싸우며 승리를 확신하였고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령부를 보위하려는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의 하나로 뭉친 이 힘을 그 어떤 난관도, 그 어떤 적의 발악도 꺾을수는 없었다. 오직 유격구를 지킬 일념으로 들끓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시고 새로운 전투임무를 제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십배나 되는 적의 정예부대와 정면충돌하는것은 적아간의 력량대비로 보아서나 유격전술상 승산이 없는 모험행동인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인 공격태세로 달려드는 적들에 대하여 좁은 지역에 앉아서 방어전으로만 대하는것은 도리여 적의 기대에 맞추어주는것으로서 적에게는 유리하고 아군에게는 극히 불리한것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서는 아군의 력량을 두대로 나누어서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한대는 이곳에 남아서 활동하고 다른 한대는 적들의 통치구역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적들은 동만 각현의 유격근거지를 동시적으로 대거침공하기 위하여 심지어 경찰과 자위단까지도 대부분 유격근거지《토벌》작전에 동원시켰으므로 사실상 적들의 후방은 텅 빈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또한 적들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유격대가 근거지를 떠나서 저들의 후방으로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할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대담하고 민첩하게 적후방에서 적들의 병실과 자위단, 경찰서 등을 습격하여 놈들에게 불의타격을 주며 놈들의 군수품창고와 공급기관 등을 공격하거나 군수물자수송차를 매복습격함으로써 놈들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이 공급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아군의 군수품을 보충하며 적들이 그 어떤 곳에서도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만주국》괴뢰군과 일본군에게 선전삐라를 광범히 살포하여 적군병사대중을 동요시키며 계속 부단한 배후공격전으로 적들로 하여금 유격근거지를 공격하고있는 자기 병력을 부득불 철수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유격근거지내에 남아있는 부대들도 대량적으로 공격해오는 적군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여러개의 소부대를 편성하여 낮에는 유격근거지내의 인민들을 각처에 분산은신시켜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야간에는 적들의 숙영지 등을 부단히 기습공격하여 적을 섬멸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장기적이고 령활성있는 전술과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써 적들에게 계속 패배와 죽음을 주고 아군주력과 유격근거지인민들을 튼튼히 보위하여야 합니다. 만일 그때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와 같은 현명한 유격전술을 제시하지 않으셨더라면, 그이의 탁월한 령도가 없었더라면 소왕청유격구는 적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인민들은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학살을 당했을것이며 우리의 대오는 지리멸렬되였을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와 같은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유격구내 인민들은 십리평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격대원들은 인민들을 보호하면서 산우에다 진지를 꾸릴수 있었다. 그리고 낮에는 기여오르는 적들에게 고지와 골짜기마다에서 유리한 지형을 리용하여 맹렬한 반격을 가하여 무리죽음을 주었으며 밤이면 또 밤마다 교대제로 여러개의 야간습격조를 조직하여 놈들의 숙영지를 기습하고 수송도로를 습격하는 등의 맹렬한 전투를 전개했다. 이러한 전투를 며칠 계속하여 적들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고 유격대원들에게 유리한 정황을 조성시키신후 그이께서는 일부 유격대원들을 친솔하시고 적통치구로 나가셨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적통치구로 나간 유격대원들은 량수천자(두만강대안인 국경지대)와 북봉오동(도문에서 약 100리 북쪽)등지로 다니며 적들의 병실, 경찰서, 자위단 등을 련속적으로 습격소탕하였고 사동 동골에 있는 적들의 목재소도 습격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적들을 습격소탕하신 뒤에는 의례히 그곳 인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시였고 그들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이에 감격한 이곳 사동목재소의 로동자들도 입대를 탄원해나섰으며 자기들이 아끼던 새 신발과 작업복 등을 자진하여내놓았고 어느사이에 밀가루, 소금 등을 모아가지고는 유격대에 보내주었으며 많은 로동자들은 그 짐을 지고 유격대를 따라나섰다. 수천명의 적들이 소왕청유격구를 포위하고 달려드는것을 보거나 그 소식을 듣고 놀라운 생각을 금치 못하던 인민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직접 뵈왔을뿐만아니라 혁명의 승리적인 전망을 명시하신 그이의 말씀까지 듣게 되였으니 그들의 감격과 희망은 그지없었던것이다. 량수천자에서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이 동요하고있는 때에 결정적인 반격으로 이행하여 적들의 후방중심지인 왕청시가지를 습격하기로 계획하셨다. 그 다음날 밤 1시경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적들의 첩첩한 경계를 뚫고 왕청시가지에 돌입한 유격대원들은 2~3개소의 적기관들을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왕청시가에서 얼마후에 다시나온 유격대원들이 요영구쪽으로 통하는 산길에 들어섰을 때에 시내복판 여기저기에서는 적기관들이 활활 불타고있었으며 불길속으로는 높다란 망루(소방대감시초)가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불이 붙는데도 종을 치는 놈조차 없었다. 이는 적들에게 문자그대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심대한 타격이였다. 불과 50여명의 소수유격대원으로써 소왕청유격구와 인민들을 끝끝내 보위하면서 5,000여명의 적들과 40여일의 간고한 투쟁에서 주도권을 쟁취하였고 적들의 집결중심지인 왕청시가지를 뚫고들어가서 놈들을 습격한다는것은 사실상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였다. 때문에 당시 항간에서뿐만아니라 심지어 적들까지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활하신 유격전술을 《신출귀몰》이라는 말로써 표현했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들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왕청시가지를 습격당한 적들은 만회할수 없는 참패를 당한채 《일거에 소탕한다.》던 우리 유격구에서 쫓겨가지 않을수 없었다. 적들이 물러간 뒤에 우리 유격대원들과 근거지인민들은 다시 소왕청으로 돌아와서 유격구방위를 더욱 강화하였고 1934년 봄에는 농사도 지체없이 시작하였다. 그리고 저마다 일제를 타승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할 보다 굳은 결의로 충만되였다. 우리는 유격근거지를 해산하고 보다 넓은 지역에서 활동하게 될 때까지 5년동안이나 계속 적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기는 했으나 어느 한번도 달려들어온 적들을 그대로는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그를 따르는 우리 대원들과 인민들의 불요불굴의 투쟁에 의하여 적들은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이러한 고난과 투쟁을 통하여 우리는 오늘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되였고 계속 부단히 전진하면서 보다 광활한 앞날을 위하여 싸우고있다. 나는 생각한다. 지난날 우리를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늘도 우리 인민의 선두에 서시여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인도하고계신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고나아가는 우리에게는 그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할것이 없다.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오늘을 생각할 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위에 철석같이 뭉친 우리 당원들과 전체 근로자들이 그이의 현명한 령도를 받들어싸울 때 우리에게는 극복못할 난관과 애로가 없으며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다시한번 가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