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혁명투사 최희숙동무를 회상하여)

김명화             

 

나는 3.8국제부녀절을 맞을 때마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과 녀성들의 해방을 위하여 항일무장투쟁대렬에서 영웅적으로 싸운 수많은 녀성혁명투사들을 추억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혁명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자기의 전생애를 남김없이 바쳤으며 조선의 딸들이 간직한 아름답고 고결한 혁명적지조를 끝까지 빛내인 최희숙동무를 잊을수 없다.

최희숙동무와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내가 연길현 봉림동에서 부녀회사업을 할 때부터였다.

희숙동무 역시 그때 봉림동에서 멀지 않은 룡암동이라는 곳에서 부녀회사업을 하였다. 남편인 박원춘동무와 함께 혁명의 길에 나선 희숙동무는 모든 사업에서 정력적이였고 투쟁에서 굴할줄 모르는 굳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는 1931년부터 이미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녀성의 몸으로 대담하게 반일부대에 들어가 활동한 때도 있었다.

희숙동무와 나는 처창즈유격근거지가 창설된 이후부터 함께 사업하게 되였다.

근거지에서 우리들이 맡은 일이란 주로 재봉대와 작식대임무였다. 그는 항상 남보다 앞서 어려운 일을 하려고 애썼다. 식량도 없어 맹물을 마셔가면서도 이틀이고 사흘이고 일이 끝나기전에는 휴식할줄을 몰랐으며 동무들의 권고에 못이겨 함께 자리에 누웠다가도 자기는 남몰래 다시일어나 일손을 잡았다.

그리고 사업의 성과를 론할 때는 언제나 남을 앞에 내세우는 고상한 품성을 지니고있었다.

그는 조국을 무척 그리워하였다. 세상에 태여나서 한번도 조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조국산천의 아름다움과 아버지,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 이국살이를 하는 눈물겨운 설음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왔다. 그리하여 희숙동무의 가슴속에는 조국을 그리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깊어갔고 투쟁의 길에 나선후부터는 그에게 있어서 조국이 더욱더 귀중한것으로 되였다.

처창즈에서 풀죽마저 끓이지 못하면서 고생을 하던 어느날이였다. 그가 나를 보고 하던 말을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있다.

《명화동무, 우리 조선에 좋은 논밭이 그렇게도 많다지요. 이제 왜놈들을 쫓아내고 지주놈이 없어지는 날에는 전체 인민이 누구나 다 흰쌀밥만을 먹게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들은 정말 이 처창즈생활을 옛말로 외우게 되겠군요.》

이처럼 그는 한가지 희망, 혁명의 승리와 행복에 찬 래일을 바라면서 억세게 고난을 뚫고나갔다.

그는 어느때인가 나에게 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남편이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며칠은 아무 일도 손에 잡을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인차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지요. 그것이 남편을 위하고 그를 구하는 길이라는것을 깨달았기때문이지요. 나의 남편은 광복의 날을 보지못하고 희생될수도 있을거예요.

그렇게 되더라도 난 싸워야 해요. 남편이 광복의 날을 보지못하고 눈을 감는다면 내가 그걸 봐야 할게구, 만일 나도 못보게 된다면 우리의 후대들이라도 그날을 보아야 할게 아니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원쑤들을 거꾸러뜨리고 광복을 가져와야 해요.

큰일을 하려는 우리는 항상 마음을 크게 먹어야하지요.》

그후 희숙동무는 조선인민혁명군재봉대 책임자로 일하게 되였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했다.

고난의 행군때에 동무들이 다 쉬는 휴식의 한때조차 놓치지 않고 눈우에 앉아서 옷을 기웠고 종일 행군한 뒤끝에 숙영을 하게 되는 깊은 밤에도 우등불옆에 앉아서 재봉기를 돌렸다. 오직 보초들과 눈보라만이 잠자지 않는 밤, 불무지보초들이 인제는 쉬라고 못견디게 권하는 곁에서 희숙동무는 얼어드는 두손을 불며 버선과 장갑을 기웠다.

그뿐이랴. 그는 자기 재봉기를 등에 걸머지고 행군하면서도 신입대원들의 짐을 덜어주며 걸었고 또 걸었다.

1938년 겨울 남패자에서 북대정자에로의 고난의 행군때에 그에게는 두려운것이 없었으며 남자대원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이 고난의 시련을 이겨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이께서는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이끄시고 가신다.)

이렇게 그는 언제 어떤 환경속에서나 위대한 수령님의 충직한 혁명전사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나아갔으며 그이께서 맡겨주신 과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실천할줄 아는 충직한 동무였다. 희숙동무는 오직 그이와 혁명의 승리만을 믿고 싸웠다.

1939년 어느날이였다. 희숙동무는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직접 금반지와 시계를 표창받았다. 그것은 바로 그이께서 그의 혁명에 대한 헌신적인 투쟁을 표창하여 친히 주신 선물이였으며 그의 공로를 찬양하는 영예의 훈장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표창을 받은 희숙동무는 이루 말할수 없는 감격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는 이 감격을 가슴에 안고 오직 혁명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그이를 따라 혁명앞에 끝없이 충실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는 자기의 맹세를 끝까지 충실하게 실행하였다.

나는 그후 다시 희숙동무를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전우들과 인민들로부터 희숙동무의 그후의 빛나는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었다.

1941년 2월경이다. 최희숙동무는 남창수동무가 인솔하는 소부대에 속하여 사령부를 찾으려고 간고한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활동정형과 입수한 중요한 정보자료들을 시급히 사령부에 전달해야 했다.

벌써 오래동안 식량이 떨어진채 행군을 계속한 그들은 연길현 룡신촌에 이르러서부터 더는 걸을수 없었다. 걸을래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식량을 얻어야만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그들은 적의 《만산토벌》을 만나게 되였다.

태평양전쟁의 준비에 광분하면서 소위《후방》을 공고화하기에 발악하던 일제는 항일유격대의 계속적인 진출에 악이 받쳐 수다한 병력을 동원하여 머리빗으로 훑어내듯이 소위 《만산토벌》에 발광하였던것이다.

어느날 그가 속한 소부대가 뒤에서 올라오는 적을 발견한것은 이미 산이 놈들에게 다 포위된 다음이였다. 소부대를 발견한 적들은 기를 쓰고 따라오며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대렬을 인솔하던 남창수동무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한 대원은 때마침 그 주변에 매여있던 놈들의 말에 남창수동무를 태우고달렸다. 그러다가 이번엔 희숙동무가 다리에 심한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러자 동무들은 그를 업고달렸다. 적이 등뒤에서 추격해오는 위급한 정황에서 자기때문에 전체 동무들의 걸음이 떠지는것을 본 희숙동무는 《날 생각지 말고 혁명을 생각해요. 이러다간 전체가 잡혀요. 나를 내려놓아줘요.》하고 자기를 업은 동무의 등에서 몸부림쳤다.

그러나 동무들이 그를 내려놓을리 없었다. 혁명동지를 적들속에 버리고간 일이란 그들에게 있어본 일이 없었다. 그들은 팔을 쥐여뜯으며 등에서 내리려고 애쓰는 희숙동무를 더욱 힘있게 추켜업고 앞으로만 달렸다. 그러나 적들은 점점 더 가까이 육박해왔고 적탄알은 귀전을 스치고 날아갔다. 그들은 옆으로 방향을 바꿔달렸다. 거기서 또 그들은 익측으로부터 올라오는 적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그들은 희숙동무를 바위밑에 숨겨놓고 앞으로 나아가 적들과 전투를 벌렸다.

그런데 이때 좌우로부터 쓸어올라오던 적들이 희숙동무를 발견하고 그를 체포했다. 동무들은 적과 싸우느라고 이것을 몰랐다.

희숙동무를 체포한 적들은 그에게서 금반지를 발견하자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희숙동무의 손에서 반지를 뽑아내였다. 그리고 그의 몸을 수색하여 회중시계까지 빼앗아냈다.

희숙동무는 가슴이 터지는듯 했다. 그것은 악착한 원쑤들에게 생포되는것도 가슴아픈 일이였지만 그보다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여해주신 반지와 시계를 눈을 뻔히 뜨고서 빼앗겼으니 더욱 그랬다.

희숙동무는 반지와 시계를 어떤 어려운 전투환경속에서도 흠이 질세라, 잃어버릴세라 소중히 간직하고 몸에 품어왔었다. 그리고 그에서 힘을 얻었고 고무를 받아왔다.

그러한 귀중한것을 놈들에게 빼앗긴 희숙동무는 체포되였다는 울분과 함께 눈앞의 원쑤를 쏘아보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희숙동무, 잘 싸웠소. 앞으로 더 잘 싸워주시오.》

반지를 수여해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고 너그럽게 웃으시며 자기를 미덥게 굽어보시던 사령관동지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희숙동무는 사령관동지의 전사답게 굴하지 않고 싸워나아가겠다고 다시한번 맹세하였다.

놈들에게 붙잡혀 산에서 끌려내려오는 희숙동무는 관통상을 입은 다리가 아픈것도 잊어버렸다.

다만 전우들이 무사히 포위를 뚫고 빠져나갔을가 하는 생각외에 다른 생각이란 없었다.

대립자부락까지 끌려왔을 때 원쑤놈들은 점심을 먹으러 어떤 집으로 들어가고 희숙동무는 집뜨락에 누워있게 되였다. 이때 놈들은 주구들을 시켜 《〈공산당〉계집을 잡아왔으니 구경오라.》고 하면서 부락사람들을 강제로 모아왔다.

그중에서 개놈들은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조롱하는것이였다.

희숙동무는 심한 갈증으로 전신을 태우며 쓰러져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쑤놈들의 조롱을 들었을 때 거연히 입술을 깨물고 일어나앉았다.

그리고 그는 입에서 불을 토하듯 말했다.

《공산당원도 사람이다. 구경할것 없다. 그러나 공산당원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일제를 타도하려는 애국자다. 애국자의 말을 들으려거든 모여라.

조선은 광복될것이다. 조국은 멀지 않아 광복되고 조선사람은 다시 조국을 찾게 될것이다. 너희들은 조국을 배반하고 침략자 일제놈들의 개노릇을 하지만 우리 유격대원들과 인민은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을 다시찾고야 말테다.》

놈들은 당황하여 희숙동무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발광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멈추게 할수는 없었다. 총칼에 찔리면서도 희숙동무의 열변은 더욱 절절히 사람들의 심장을 찔렀다.

《너희들은 일제를 믿지만 … 일제는 이제 … 얼마안가서 망한다. 우리 혁명가들의 눈에는 그것이 … 벌써 똑똑히 보이고있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군중을 억지로 해산시켰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놈들은 희숙동무에게 유격대의 비밀을 대라고 강요하였다.

《너는 체포되였다. 너희들 비밀을 말하면 살려줄테다.》

적들은 갖은 감언리설로 혹은 위협으로 벌써 몇번인지 모르게 이 말을 되씹었다.

그러나 희숙동무는 조용히 눈을 감고있었다.

(무사히 빠져나갔을가. 그들은 놈들의 포위를 돌파했을것이다. 어떤 동무들이라구.)

이렇게 그는 전우들을 간절히 생각했고 그의 마음은 전우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로 달렸다.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전우들과 함께 싸우던 지나간 나날이 끝없이 행복한것이였다는 생각이 그의 온몸을 휩쌌다.

우리는 어떤 환경속에서도 승리를 내다볼줄 알아야 합니다. 혁명의 승리를 내다볼줄 아는 사람만이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싸울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을 그는 마음속으로 다시한번 외워보았다.

그리고 혁명의 비밀을 고수하기 위하여 자기는 끝까지 싸워야하며 이제 더 혹독하게 닥쳐올 적들의 고문앞에서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희숙동무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저주로운 원쑤들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원쑤놈들은 입을 실룩거리며 《그래 잘 생각해봤느냐?》하고 또 심문을 시작했다.

《잘 생각해보았다.》희숙동무는 조용하나 강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대답해라.》

《무엇을 대답하란 말이냐?》

《우린 네년에게서 빨찌산의 비밀을 요구하고있단 말이다.》

《그런건 네놈들의 앞잡이들을 보고나 지껄여대라. 유격대원인 내가 어떻게 너의 개들이나 알 말을 알아들으란 말이냐.》

이리하여 희숙동무는 다시 고문실로 끌려들어갔다. 놈들은 달려들어 미친듯이 그를 치고 또 쳤다.

희숙동무는 이를 악물고 놈들의 고문을 이겨냈다. 나중에 놈들은 시뻘겋게 달군 쇠꼬치로 그의 살을 지지며 《너희들 소부대가 공작한 내용을 대라!》, 《빨찌산의 비밀을 내놓아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희숙동무는 굴하지 않고 싸웠다.

《네놈들이 나를 죽일수는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고 2천만 인민이 있다. 너희들은 우리 혁명의 불길을 아무런 힘으로도 막지 못한다.》

모진 고문으로도 굴복시킬수 없게 되자 놈들은 그를 다시 끌고나와 회유하려들었다.

《우리가 묻는 말에 대답하고 목숨을 살려라. 대일본제국은 세계강국이다. 지금 일본은 도이췰란드, 이딸리아와도 동맹하고있다.

그런데 날바다의 물거품만한 너희들이 무슨 힘으로 대일본과 싸워이기겠는가?》

희숙동무는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놈들에게 대답했다.

《네놈들의 눈에는 너희들이 그렇게 강해보이느냐? 그러나 네놈들은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있다. 공산주의자들의 눈은 그것을 보고있다.》

희숙동무가 끝끝내 굴복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게 되자 원쑤들은 야수와 같이 달려들었다. 원쑤들은 온갖 고문으로써도 갖가지 회유로써도 유격대의 한 녀대원을 자기들앞에 굴복시킬수 없게 된 이 수치를 앙갚음하려고 악에 받쳐 희숙동무의 두눈을 뺐다.

그러나 희숙동무는 심장이 고동치는 한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일어났다.

《나에게는 지금 눈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2천만 인민이 만세를 부르며 광복을 알리는 그날이 보인다.》

이렇게 소리높이 웨친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 안겨 혁명가로 성장한 최희숙동무를 원쑤들은 끝끝내 굴복시키지 못했다.

불굴의 이 정신앞에서 일제의 야수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천인공노할 이놈들은 공산주의자의 심장은 어떤것인가를 본다고 하면서 희숙동무의 심장까지 도려냈다.

희숙동무의 젖가슴을 헤치고 심장을 도려낸 이 인간백정들은 피묻은 손을 떨었으며 공포에 싸여 몸부림을 쳤다.

슬기로운 량심과 나라를 사랑하는 고결한 마음, 조국강산에 광복의 봄을 안아오기 위한 혁명적신념이 활화산처럼 타번지는 조선의 딸이 간직한 그 붉은 심장앞에서 원쑤들은 완전히 넋을 잃었다.

이렇듯 혁명가의 심장이 조국과 민족, 혁명동지들을 위해 고동친다면 반역자의 심장은 언제나 자기자신만을 위해 고동쳤던것이다.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최희숙동무의 한생의 총화이기도 한 이 말에서 우리는 큰 힘을 얻었다. 그것은 그 말이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며 혁명절개가 강한 투사들만이 할수 있는 명언이였기때문이다.

오늘 우리 인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혁명적락관주의를 상징하는 금언으로 되였으며 그들은 최희숙동무가 그토록 바라던 광복된 조국땅에서 사회주의지상락원을 건설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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