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

                                       

박   영   순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력갱생, 이것은 공산주의적혁명기풍과 혁명정신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언제나 자기 나라 인민의 힘을 동원하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야 하며 어떠한 난관도 자체의 힘으로 뚫고 새 사회를 건설할줄 알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교시를 되새겨보느라면 나에게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잊을수 없는 일들이 자주 떠오르군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내가 처음 만나뵌것은 1932년 11월 하순 어느날이였다.

화룡현 대립자에서 동남쪽으로 약 15리 떨어진 수리바위에서 병기공장일을 하고있던 우리는 대구당비서 김일환으로부터 소왕청에서 작탄강습회가 있으니 곧 준비하여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튿날 아침 우리가 부지런히 걸어 다음날 한낮이 좀 지나 마촌에 도착하니 한 유격대원이 우리를 마중하여 평범한 초가집으로 안내하였다.

우리는 이 집에서 그토록 흠모하여마지 않던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되였던것이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름노전을 깐 가운데방에서 키낮은 책상을 마주하시고 일을 보고계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린다음 화룡현 대립자에서 김일환이 보내여 왔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동무,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나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곳 조직을 통해 작탄을 만들고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하시며 동무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있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병기공장의 형편과 작탄을 제조하는 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시고나서 동무를 이렇게 부른것은 작탄강습에 출연시켜 동무들이 작탄제작에서 얻은 경험을 발표시키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대는 무기도 식량도 피복도 모두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강습을 잘 주면 그 어디서나 위력한 작탄을 만들어 적들을 더 많이 족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작탄강습회의 목적을 알고 강습에 출연할 준비를 잘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작탄강습회는 1932년 11월 25일부터 26일까지 소왕청유격구에서 진행되였는데 여기에는 각 현의 병기공장 성원들과 유격대지휘관들 40여명이 참가하였다.

강습회가 열리는 첫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강습회장에 나오시여 작탄강습회의 목적을 알려주시고 폭약제조방법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몸소 강의에도 출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여러곳에서 《소리폭탄》, 《고추폭탄》을 만들었고 화룡, 연길현에서는 작탄까지 만들어 전투에 사용하고있는데 이것은 창이나 칼밖에 만들지 못하던 우리들로서는 매우 큰 성과가 아닐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여기에 만족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지금 작탄을 만들고있으나 그에 필요한 폭약을 광산에서 비밀리에 구해다 쓰고있기때문에 많은 제한을 받고있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 자체의 힘으로 폭약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폭약까지 만들어써야 우리 힘으로 작탄을 만들었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수요도 원만히 충족시킬수 있으며 일제침략자들에게 보다 큰 타격을 줄수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폭약도 작탄도 능히 자체로 만들수 있는 능력과 조건,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폭약을 만드는것은 그리 신비한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손수 연구해내신 폭약제조방법과 폭약을 만드는데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순차와 재료들의 배합비률까지 말씀해주시면서 그 원리적문제들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강의를 듣고보니 폭약만드는데 필요한 자재도 모두 어디서나 손쉽게 얻을수 있는것들이였고 제조방법도 힘들것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구해내신 폭약제조방법은 임의의 사람이 임의의 장소에서 만들수 있는 가장 우월한 제조방법이였다.

그때로서는 우리 병기공장 일군들이 그 부문에서는 전문가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폭약을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써왔지만 실패만을 거듭하면서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던것이다.

폭약제조방법의 비결을 체득하고 기뻐하는 우리들을 둘러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폭약을 손에 드시고 이 폭약이 바로 그와 같은 원리에 기초하여 만든것이라고 하시면서 차례로 돌려보게 하시였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연구하여 제조하신 폭약을 돌려보면서 그이께서 지니신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탐구심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수 없었으며 빨리 폭약을 만들어보고싶은 충동을 누를수 없었다.

폭약제조방법을 강의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각 현들에서 병기공장을 잘 꾸리고 폭약과 작탄을 자체로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강의를 끝마치시였다.

강습은 이튿날에도 계속되였다. 이날 나는  작탄제작법과 그 사용법, 보관취급법을 가지고 강습에 출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조직하신 소왕청 작탄강습회는 이틀동안에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탄강습회를 총화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앞으로 성능높은 작탄과 여러가지 무기를 제작하기 위하여 온갖 창의창발성과 열성을 높이 발휘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유격대의 무장을 강화하는것보다 더 중요한 과업은 없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적들로부터 빼앗아 무장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들자체의 힘으로  만들어 무장해야 합니다. 원쑤를 증오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손에 무장을 들고싶어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혁명의 요구에 따라 창과 칼로부터 이렇게 위력한 폭탄까지 만들었습니다.

빈주먹으로 무기를 만들어낸 우리의 혁명적의지와 전개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나에게 무한한 힘을 주었고 더 많은 무기를 만들고 수리하리라는 결심을 굳게 다지게 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병기공장 일군들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작탄강습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반일인민유격대의 무장장비를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서 강령적지침으로 되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강습회에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폭약과 작탄을 만들어 시험해보았다. 작탄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소왕청에서 진행된 작탄강습회후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동만의 각 현들에서도 작탄강습회가 진행되였다.

작탄강습회를 계기로 동만 각 현의 유격구들에 있던 병기공장들에서는 작탄제작사업이 힘있게 벌어지게 되였다.

병기공장들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작탄은 반일인민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의 무장장비를 강화하고 적들을 족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후 이 작탄은 《연길폭탄》으로 불리우게 되였으며 일제침략군놈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위력한 폭탄으로 되였다.

작탄강습을 계기로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의도와 뜻을 받들어나갈 결심을 더 굳게 다진 우리는 자체의 힘으로 할수 있는것은 다 만들어내려고 힘썼다.

그리하여 나무대포도 만들게 되였고 총의 격침, 격발기, 안전장치까지도 모두 우리자체의 힘으로 고쳐쓰게 되였다.

도끼와 톱 그리고 망치와 집게, 줄칼 같은 도구만을 가지고 정밀한 기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나온 보총이나 권총의 부속품을 만들어낸다는것은 참말로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우리나라 동화에 쇠절구공이를 돌에다 갈아서 바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우리의 그때 사정이야말로 이에 못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려울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는 다시 힘을 내여 일하였다.

그러던 1936년 3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가 일하고있던 미혼진에 오시였다.

당시 우리가 있던 밀영의 한켠은 군대병실로 쓰이고 다른켠에서는 무기수리를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대병실에서 회의를 하시다가 쉬는 시간이면 내가 일하던쪽으로 건너오시여 여러가지 말씀을 해주군 하시였다.

《박포리(나의 별명)동무구만, 그간 얼마나 수고를 하였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다정하게 말씀하시며 무기수리사업에 대하여 자세히 물어보시였다.

하루는 내가 수리하려고 갖다놓았던 총가목이 부러진 총을 유심히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좋은 총이 못쓰게 되였군. 이렇게 된것은 고칠 방법이 없소?》라고 나에게 물으시였다.

나는 그때 자체로 깎아서 온돌에 말리고있던 총가목을 보여드리며 그것으로 갈아넣으려 한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깎아놓은 총가목을 들고 이모저모 만져보시며 《이건 정말 공장에서 만든 총가목과 조금도 다름이 없군. 이건 무슨 나무를 깎아서 만든거요? 도구는 어떤것을 쓰오?》라고 물으시였다.

나는 도끼와 칼로 통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조잡한 도구를 일일이 보시며 《혁명에 참가하기 전에 목수일을 하였거나 철공장에 다닌 일이 있소?》라고 다시 물으시였다.

나는 목수일을 한적이 없으며 어렸을 때 아버지가 벼림질하는것을 도운 일밖에 없다고 말씀드렸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옆의 동무들을 돌아보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보오. 하자고 결심만하면 못해낼 일이 없소. 이 동무는 혁명에 참가하기 전에는 목수일도 야장일도 모르던 사람이였소. 그런데 혁명을 위하여 이악하게 달려들어 하자고 노력한 결과 무엇이든지 못만드는것이 없지 않소. 이런 총가목도 공장에서 만드는줄 알았지 누가 도끼로 이렇게 훌륭히 만드는줄 알겠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앞으로도 더 많은 작탄을 만들고 무기를 수리하여 혁명에 더 많이 이바지해야 하겠소.

한자루의 총, 한알의 탄알이라도 못쓰고 버리는 일이 없도록 다 고치고 없는것은 새로 만들어야 하오.

이 한자루의 총이나 한개의 탄알은 모두 우리 동무들이 생명으로 바꾸어온것이 아니요. 이런 귀중한 무기를 쓰지 못하고 버려서야 되겠소?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서 자기 사업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느끼였으며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앞으로 더욱더 이악하게 자기앞에 맡겨진 임무를 반드시 완수하리라는 결심을 다시금 굳게 다지였다.

그후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무송현 다젠창에다 밀영을 짓고 병기공장, 병원, 재봉대사업을 책임지고 일하다가 그해 겨울에 곰의골밀영으로 갔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 2~3일내에 도착하신다고들 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드실 집이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있었다. 나는 다음날 재빨리 집을 한채 지으려고 차비를 서둘렀다. 보통생각으로 하면 엄동설한에 그것도 도끼와 톱만 가지고 강대(선채로 말라죽은 나무)를 쪼개여 귀틀집을 짓고 문, 책상, 걸상까지 만들어놓는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더구나 기일이 모자랐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상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대로 어떻게 하든지 자기 힘으로 해내고야 말겠다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달라붙는다면 무엇이든지 못해낼 일이란 없다는 신심을 가지고 귀틀집 짓는데 달라붙었다.

우리는 가슴을 치는 눈을 헤치고 도끼와 톱으로 강대를 찍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강동무와 나는 그날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실 귀틀집을 다 지어놓았다.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곰의골밀영으로 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무척 반가와하시며 전령병에게 그때까지 건사하도록 하신 줄칼과 쇠써는 톱을 배낭에서 꺼내여 나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동무에게 주려고 지방공작나가는 동무들에게 과업을 주어 구해두었던것이요. 이것을 가지고 작탄을 더 많이 만들고 무기를 더 잘 수리하시오.》

병기공장에서 일하는 우리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관심과 두터운 배려를 생각할수록 나는 무엇이라 말할수 없는 감격이 가슴에 북받쳐왔다.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이런 의도를 받들어 모든 대원들은 파철 하나, 못 하나라도 보기만하면 주어서 병기공장으로 가져오군 하였다. 바로 이렇게 모은 파철과 자재로 우리는 작탄을 만들고 무기를 수리하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집을 돌아보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겨울에도 이렇게 훌륭한 집을 지은것은 참말로 장한 일이요. 이왕 짓던바에는 집을 또 하나 지어야 하겠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강동무와 같이 홍두산에 들어가서 밀영을 짓고 병기공장과 재봉대를 차려놓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화약과 파철, 철사 같은것을 많이 보내줄터이니 작탄을 많이 만드시오. 그리고 설명절에는 나도 그곳으로 가겠으니 우리 동무들이 한데 모일수 있도록 집을 큼직하게 지으시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헤여질 때 이렇게 당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대로 홍두산에 가서 한개 중대의 인원이 들수 있는 온돌방을 비롯하여 병기공장과 큰 귀틀집을 4일간에 지었다.

밀영을 짓고나니 곧 작탄을 만들 재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밤낮없이 작탄을 만들어 계속 부대에 보냈다.

설명절이 다가왔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할 준비를 서둘렀다. 물론 설이라고 하지만 당시 형편에서 설음식으로 차릴만한것이 없었다.

우리는 감분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좋아하시는 국수를 누르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국수분틀을 만드는것이 문제였다.

도끼로 다른것은 다할수 있는데 분통만은 아무리 하여도 다스리는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동무가 분틀밑에 대려던 통졸임통에다 공이를 맞추어가지고 직접 국수를 눌러보자는것이였다. 통졸임통에다 구멍을 여러개 뚫고 공이를 만들어 국수를 눌러보았다. 그런데 통졸임통이 자꾸만 아래로 밀려내려갔다. 우리는 두가지로 뻗은 나무를 베여다가 그 가지사이에 통졸임통을 끼우고 밀려내려가지 못하게 통밑에다 철사 두 줄을 띄워가지고 마침내 분틀을 만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설날에 우리들이 있는곳으로 오시였다.

우리는 그 분틀로 국수를 눌렀다.

국수를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산중에서 국수가 어데서 났소?》라고 하시며 놀라와하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이 분틀을 만든 사연을 들으시고나서 분틀을 자세히 보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제힘으로 해내고야말겠다는 립장에서 노력하면 이런 산중에서도 국수도 나오고 그보다 더 좋은것도 나올수 있소.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혁명을 위하여 일심정력을 기울여 노력한다면 무엇이든지 못해낼 일이 없다는 신심을 더욱 굳게 안겨주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의 참뜻을 그후 자신의 체험에서 더욱 깊이 깨닫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을 친솔하시고 다시 전방으로 나가시며 우리에게 무기수리와 함께 전방부대 대원들의 버선을 만들어보낼 긴급한 과업을 주시였다.

불과 일주일사이에 수백컬레의 버선을 만들어야 하였다. 한대밖에 없는 재봉기를 가지고 이 과업을 수행하는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전방에서 동지들이 버선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적들과 싸우고있다는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과업을 하루바삐 완수해야 한다는 굳은 결의밑에 일손을 다그쳤다.

재봉대동무들은 교대를 조직하여 밤낮 기대를 멈추지 않고 버선을 만들었다.

그런데 예정수량의 절반도 만들지 못하였는데 하나밖에 없던 재봉바늘이 부러졌다.

나는 이 순간 어찌할바를 몰랐다. 통신원들이 버선을 가지러 올 기일은 박두하였다.

박수환, 김수복 등 재봉대동무들은 애가 타서 밤을 새우면서 손으로 버선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손으로 하여서는 도저히 기일을 보장할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심산속에서 재봉바늘을 구할수도 없었으며 또 만들어내기도 어려웠다. 물론 우리는 망치와 집게, 줄칼 등을 가지고 작탄도 만들었고 작은 권총까지도 고치였었다.

그리고 재봉기도 만들어 썼다.

그렇지만 줄칼을 가지고 재봉바늘이야 어떻게 만들겠는가.

나는 속이 달아나고 안타까왔다.

(사령관동지께 무엇이라고 보고하겠는가. 《바늘이 부러져서 혁명과업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보고할수야 없지 않는가.)

이렇게 자문자답하고있는 나의 머리에는 어느덧 탄우속에서 원쑤들과 싸우는 전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더 참을수가 없었다.

(혁명과업을 앞에 놓고 해결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

나는 자신을 이렇게 채찍질하며 강철철사를 잘라서 돌에다 갈아 재봉바늘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좀 부피가 있는것이라면 손으로 잡고 마음대로 다룰수도 있었으나 손톱으로도 겨우 잡히는 가는 쇠줄에 바늘구멍을 내고 거기에다 홈까지 파자니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담배씨로 뒤웅박(쪼개지 않고 속을 파낸 박)을 판다는 말이 있지만 이 일도 그만 못지 않은 일이였다.

나는 손끝에서 빠져나가고 미끄러져나가는 철사를 가지고 밤새워 씨름을 하여 끝내 재봉바늘의 형태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것을 재봉기에 끼워보고 맞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형언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겨우 실밥이 두눈도 박히기전에 부러지고말았다.

나는 다시 밤을 새우며 다른 바늘을 만들어 가지고 쇠를 띄워서 강도를 잘 조절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이내 부러지고말았다.

철사로는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는다는것이 명백해졌다.

(그러면 무엇으로 한단말인가. 우리에게는 더 강한 철선도 없으며 자유자재로 열처리할수 있는 설비도 없지 않는가)

나는 온몸에서 맥이 풀리는것을 느끼였다. 바로 이럴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이 머리속에서 되살아났다.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

그 순간 나는 곤난앞에서 수그러들려던 자신을 돌이켜보며 속으로 되뇌였다.

(아직도 생각이 부족한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안될리 없다.)

이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나는 다른 어떤 방법을 생각해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손바늘생각이 났다. 손에다 바늘을 들고 살피고 또 살펴보았다. 더 굵은 바늘이 없을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나에게는 강동무가 신을 깁느라고 모자에 끼워 가지고다니던 돗바늘생각이 났다.

나는 강동무의 모자에서 돗바늘을 빼여가지고 생각하여보았다.

우선 그 가늘고 굳은 바늘에다 어떻게 구멍을 뚫겠는가 하는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로만 생각되였다.

(쇠를 뚫을수 있는 그렇게 작은 송곳이 있다해도 무슨 수로 그 굳고도 둥글고 가는 쇠에다 구멍을 뚫어낼것인가.)

돗바늘을 들고 앉아 이렇게 생각하던 나는 구멍을 못뚫는다면 다른 도리는 없겠는가 하고 궁리하여 보았다.

그러자 구멍을 새로 뚫을것이 없이 이미 뚫어져있는 바늘귀를 리용할수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피뜩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 생각이 바로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열쇠로 되였다.

나는 바늘귀쪽을 불에다 달구어가지고 그것으로 재봉바늘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용이한 일은 아니였다.

잘못 하다가는 바늘구멍이 메여질 념려가 있었고 구멍을 살리자고 하면 바늘끝이 좀처럼 서지 않았다.

나는 생각하던 끝에 바늘구멍에 맞게 쇠를 깎아 끼우고 바늘끝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천신만고하여 바늘끝을 다스리고나니 그 다음에는 바늘에다 실이 통하는 홈을 파는것이 문제였다.

손에도 잡히지 않게 작은데다가 매끄럽기까지 한 바늘에 도무지 줄칼을 댈 재주가 없었다. 쥐면 빠져나가고 줄칼을 대려면 미끄러져나가군 하였다.

아무리 애써도 맨손으로는 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홈을 낼것인가를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마침내 쇠를 쪼개여 그사이에 바늘을 끼우고 쥔 다음 그것을 통나무에 대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줄칼로 조심조심 홈을 파기 시작하였다.

손끝에 힘을 한번만 잘못주면 줄이 삐뚤어져나가게 되고 한줄만이라도 잘못 금을 그어 놓는 날이면 모든것이 허사로 되는 판이였다.

나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바늘과 씨름을 하였다.

마침내 끝과 홈이 되여 재봉기에 맞추어보니 바늘은 끝쪽이 가늘기때문에 기계에 맞지 않았다. 나는 바늘끝에 가는 철사를 감고 그것을 때여서 재봉기에 맞게 만들었다.

재봉대원들은 그것을 재봉기에 끼우고 조심조심 천을 박아나갔다. 순조롭게 바느질이 되였다. 그들은 환성을 올리며 서로 부둥켜안고 빙빙 돌아쳤다.

그런데 한창 박고나면 실이 끊어지군 하여 속도를 높일수가 없었다. 나는 바늘을 빼여 실을 홈에 대고 훑어보며 어디에서 실이 끊어지는가를 살펴보았다. 알고보니 홈과 구멍사이에 육안으로는 잘 알아볼수 없을만한 정도의 작은 모가 나서 그곳에 실이 닳아서 끊어지는것이였다.

작은 홈속에 난 이 모서리를 제거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줄칼도 송곳도 안들어가는 그 작은 홈속을 닦아낼 기구가 없었다.

나는 생각던 끝에 줄칼쇠로 바늘보다도 더 가는 기구를 만들어 네모를 낸 다음 그것을 홈과 구멍사이에 넣고 자꾸 돌리였다. 이렇게 하여 겨우 그 모서리를 없애자 실이 끊어지지 않고 제대로 속도를 낼수 있었다.

이처럼 애써 만든 바늘이였건만 아무래도 원재봉기바늘보다는 약한지라 버선 몇십컬레를 박지 못하고 부러지고말았다. 우리는 얼마간 떨어져있던 다른 후방밀영으로 사람을 보내여 돗바늘 두개를 구해다가 또다시 천신만고를 하면서 재봉바늘 두개를 만들었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시하신 기일내에 버선을 다 만들어 부대에 보내였다.

우리모두는 자기들앞에 맡겨진 혁명임무를 기어코 완수하였다는 자부심과 기쁨으로 하여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모든것을 제힘으로 해결하면서 어떤 난관이든 뚫고 싸워온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대하여, 나아가서는 해방후의 새 조국건설의 나날에 대하여 벅찬 감격을 금할수 없다.

바로 오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에 의하여 우리 조국은 부강한 자주독립국가ㅡ동방일각에 거연히 솟은 사회주의강국으로 륭성발전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그이의 현명한 령도밑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푼전을 아껴가며 전후 페허우에 용광로, 발전소, 자동차, 뜨락또르와 대형기계들을 자체로 만들수 있는 강력한 중공업과 경공업을 창설하였고 식량을 자급자족할수 있는 사회주의농업을 창설하여놓았다.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다양하고 풍요한 자원을 남김없이 동원하여 인민의 복리를 더욱 향상시킬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갖춘 우리 나라 북반부뿐만이 아니라 장차 남반부인민들까지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살게 할수 있는 튼튼한 밑천을 마련하고 조국통일의 정치, 경제적지반을 더욱 확고히 다지고있는 우리 조선!

정치, 경제, 군사의 모든 령역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자력으로 능히 해결할수 있는 위력을 갖춘 자랑스러운 우리 조국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무장투쟁의 초시기부터 가르치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더욱 힘써 일하며 살며 싸울 결의를 굳게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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