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를 수행하기까지
장 상 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받들고 내가 속하였던 부대가 북만 송강일대에서 기동전을 전개하고있던 1939년 초겨울에 있은 일이다. 당시 부대후방사업을 책임지고있던 나는 김책동지의 지시를 받고 조연지방으로 소부대공작을 떠나게 되였다. 그것은 우선 조연지방 인민들과의 련계를 강화하며 그들을 통하여 겨울동안에 필요한 식량, 탄약, 피복 등을 준비하기 위한것이였다. 그런데 조연으로 가는 도중에 적 대부대의 추격을 받아 우리 동무들중 일부가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다. 나도 이때 여러곳에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우리는 상처를 치료할 여유도 없이 어떤 곤난을 극복하면서라도 부상당한 동무들과 함께 목적지까지 급히 가야만 했다. 그것은 당시 적들의 《토벌》작전과 《집단부락》에 대한 감시와 수색이 심하였으므로 도중에서 어느 부락 인민들에게도 서뿔리 접근할 형편이 못되였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들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부상당한 동무들을 부축하고 계속 어려운 행군을 하였다. 우리가 목적지인 조연을 20리쯤 앞둔 송화강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적들이 자동차를 타고 우리를 추격해왔다. 우리는 피할 길이 없었다. 적들과 싸우며 어둡기를 기다려 강을 건너서는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추수를 끝낸 뒤에 수수대를 그대로 세워둔 넓은 밭으로 들어가서 급히 전호를 파며 싸울 준비를 했다. 우리의 인원이 불과 몇명 안된다는것을 알고 쫓아온 적들은 처음부터 총은 쏘지 않고 《생포하라!》고 소리치며 우리가 있는 밭으로 기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호에 엎드려서 점점 가까이 오는 적들을 침착하게 겨누었다. 수수대들이 이리저리 갈라 헤쳐지는 틈으로 놈들의 아래도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에 우리는 일제히 사격을 했다. 놈들은 수수대에 가리여있는 우리의 위치를 미처 알아볼 사이도 없이 연거퍼 꺼꾸러졌다. 앞에 서서 들어오던 놈들이 죽게 되자 뒤의 놈들은 잠시 웅성거리더니 그 이상 더 들어오지도 못하고 한동안 잠잠히 서있었다. 우리 역시 수수대에 가리워 적들의 위치를 알수 없었으므로 그 이상 더 사격을 하지 않고 은밀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재빨리 밭고랑을 파헤치고 여러곳에 전호를 만들었다. 잠시후에 적들은 또다시 기여들기 시작했다. 먼저와는 달리 이번에는 헛총질도 해보고 어떤 놈은 소리를 치기도 했다. 우리는 적들의 총알이 날아지나는 속에서도 침착하게 적들의 행동을 살폈다. 우리가 은페해있는 뒤쪽으로도 적들이 기여들고있었다. 우리도 량쪽으로 갈라엎드렸다. 이윽고 주선준동무의 기관총이 맹렬히 불을 뿜기 시작하자 우리들은 보총과 수류탄으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적들도 우리의 위치를 알게 되자 앞뒤에서 미친듯이 사격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적들의 총알은 우리를 사이에 두고 량쪽에서 날아들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수수밭의 깊은 고랑을 리용하면서 옆으로 빠져나갔다. 결국 적들끼리 싸우게 하고 우리는 수수밭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던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적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적들은 무리죽음을 당하면서도 계속 맹렬한 사격을 퍼부으면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힘에 겨운 가렬한 전투는 계속되였고 우리 동무들도 하나둘 쓰러져갔다. 그러나 어느 동무도 헛되이 쓰러지지는 않았다. 주선준기관총수곁에 엎디여 적에게 수류탄을 던지던 우리 대원 한 동무는 두팔을 모두 상하여 더는 싸울수 없게 되자 수류탄을 가슴에 품은채 적들속에 기여들어가 최후를 마침으로써 적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다. 그의 최후는 우리 동무들에게 원쑤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더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한발의 총알로도 두세놈씩의 원쑤를 쓸어눕힐 불같은 투지로 싸웠다. 그런데 적들은 우리가 있건없건 밭고랑을 모조리 누비듯 기관총을 쏘고 수류탄을 뿌리며 조여들었다. 이렇게 두시간이상이나 싸우다나니 그 넓은 수수밭도 피할곳이 못되였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는 탄알도 거의 떨어져갔다. 《동무들!…》 나는 하나둘 쓰러지는 우리 동무들을 돌아보며 몇번인가 이렇게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 이상 나는 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오직 원쑤들을 쓸어눕히고 한 동무라도 더 구원해가지고 임무를 끝까지 완수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불타고있는데 앞에 달려드는 적들을 막아낼 총알이 없으니 치미는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주선준동무의 기관총마저 탄알이 떨어졌고 그가 마지막으로 적들을 쏘며 우리 동무들을 엄호해주던 싸창의 탄알도 더는 없었다. 그러자 그는 《생포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적 한놈을 싸창자루로 때려눕히고 두번째놈을 그러안은채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나의 총에도 불과 몇발의 탄알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몇몇 동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날은 차차 저물어갔다. 20~30보가량되는 지점에 엎드린 사람과 풀포기조차도 구분하기 어렵게 되여갈무렵에 우리는 넓은 늪이 가까운 곳에 이르게 되였다. 나는 어떻게 하나 그곳으로 가서 우리 동무들을 은페시켜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얼마 안되는 총알을 아껴가며 우리는 어둠속에서 마주서는 적들을 쏘면서 늪을 향해나갔다. 늪가에 이르렀을 때 나에게는 총알이 단 한발뿐이였다. 그런데 캄캄한 속에서 우리의 뒤를 따르는 적들의 총소리는 계속 사납게 들려왔다. 더 망설일것이 없었다. 나는 곁에 있는 분대장 한동무를 늪으로 떠밀듯이 재촉하여 들여보냈다. 《어서 늪가에 있는 나무밑에 은페하오.》 그리고 나는 적들을 끌고 늪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단 한발뿐인 총알로써 적을 유인한다는것은 가당치 않았다. 할수없이 나도 늪에 뛰여들 각오를 하고 마지막 하나뿐인 탄알을 재워들고 어둠속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적을 겨누었다. 그러나 나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단 한발뿐인 탄알을 아껴야 하였다. 나도 늪에 뛰여들어 나무아래에 은페했다. 적탄이 날아와 떨어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튕겨오르는 물방울이 얼굴에 뿌려졌다. 그런데 우리는 한자리에만 있을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 부축하며 물이면 물, 땅이면 땅을 기고헤치면서 은밀히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둠속 어딘지도 모르는 언덕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굴러떨어진 곳은 강기슭이였다. (동무들은 다들 어찌 되였을가?…) 적들이 헤매며 이리저리 쏘는 저주로운 총소리뿐 어디에도 우리 동무들은 보이지 않았다. 강을 스쳐오는 초겨울 찬 바람으로 물에 젖은 몸이 얼어들건만 나는 추운것도, 상처의 아픔도 돌볼수 없었다. 동지들이 그리운 생각, 원쑤들을 마음껏 쳐눕히지 못한 분한 생각, 이러한 생각들이 불길처럼 가슴속을 치밀어올라서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였다. (그래, 우리 둘뿐이란 말인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는 설사 두사람뿐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조직이 있고 수많은 동지들과 인민들이 있다. 그렇다! 그들을 찾아서 강을 건너가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상급이 준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땅에 누워있는 분대장의 손을 잡아일으켰다. 그리고 가쁜숨을 헐떡이는 그를 부축하면서 살얼음이 잡힌 송화강물에 들어섰다. 우리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더 굳게 잡았다. 그리고 점점 깊어지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버석버석 부서지는 칼날같은 얼음이 다리의 상처를 다치는것도, 춥고 배고픈것도, 물이 깊어지는것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오직 원쑤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로 가슴을 불태우며 굴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는 일념뿐이다. 《상룡동무만이라도… 꼭 살아서… 부대를 찾아가주시오.》 우리가 강절반가량 건너서 섬처럼 생긴 어느 지점에 올랐을 때에 분대장은 겨우 이런 말을 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도 정신없이 차디찬 땅우에 쓰러져있을 때에 누구인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눈을 뜨고보니 장월린동무가 부상당한 팔을 드리운채 간신히 몸을 지탱해가며 나의 곁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 아직도 기력을 추세우지 못하는 분대장을 일으켜세워가지고 또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걸음 걸으면 그만큼 목적한 조연이 가까와지고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는 이 뜨거운 생각은 우리모두의 하나같은 심정이였다. 우리는 이미 이곳에 먼저 와있는 양달룡동무와 함께 또 한명의 대원을 만났다. 모두 다섯동무가 한데 모였으나 전부 부상당한 몸들이였다. 그리고 어느 동무의 총에나 모두 약속이나 한것처럼 탄알은 한발씩 남아있었다. 그들의 총을 만져보고 탄알을 세여보는 나의 가슴속에서는 미더움과 새힘이 솟았다. 《동무들! 끝까지 임무를 완수합시다. 계속 걸읍시다.》 나는 자꾸만 땅바닥에 엎어질것만 같은 몸을 일으켜세우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다른 동무들도 저마다 반드시 살아서 싸울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서로 고무하며 일어섰다. 서로 손을 잡아 팔을 끼거나 어깨를 들이밀어 부축하면서 겨우 한걸음한걸음 옮겨디디였다. 비록 온 몸이 물에 푹 젖고 살을 에이는듯한 북만의 초겨울 찬바람이 상처에 깊이 파고들었으나 어느 누구도 신음소리 하나 입밖에 내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곤난을 이겨가며 우리는 한번도 땅에 주저앉지 않고 계속 버티여 새벽까지 걸었다. 그런데 2km도 못되는 초원을 겨우 걸어나간데 불과했다. 우리는 또다시 강 하나를 건너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사나운 강물을 이겨낼만한 기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한자리에 그냥 있을수도 없었다. 날이 밝으면 적들에게 발견될것이고 발견되면 피할곳이 없는 번번한 풀밭이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할것인가 하고 우리가 생각하고있을 때였다. 강웃쪽에서 배 한척이 우리에게로 다가오고있었다. 그쪽을 주시하니 10여명이 탈수 있는 배였다. 노를 젓던 사공이 우리쪽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두세사람이 배에서 불쑥 일어났다. 그리고 인차 배머리를 우리들이 있는 쪽으로 돌리는것이였다. 우리는 모두 말없이 총을 들었다. 나는 《누구냐?》하고 소리를 치려했으나 어쩐지 목소리가 입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 아닐가?》하고 어느 동무가 이렇게 말하는것을 들었으나 나는 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다만 배에 시선을 집중하고있었다. 긴장된 순간이 흘러갔다. 배는 점점 다가오고있었다. 배에서 한사람이 《여보시오! 당신들은 누구요?》하고 먼저 물어왔다. 우리는 총을 쥔채 쏘아볼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가에 닿기전에 멎어버린 배에서 한사람이 내려 먼저 살얼음을 헤치며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그제야 우리는 그들이 적이 아니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들은 이 지방의 배군이였다. 《여보시오! 당신네들은 누구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시한번 이렇게 묻던 배군은 《아! 당신들은 유격대가 아니요?》하고는 우리에게로 급히 다가섰다. 《이게 어찌된 일들이요.》 배군은 우리의 손을 잡아 부축하며 배있는데로 급히 돌아섰다. 우리를 배에 태운 후에 배군들은 밤중에 인가도 없는 이런곳에 서있는 사람이니 무슨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이거나 유격대일것이라는 생각으로 우리에게로 가까이 와보았던것이라고 하면서 부지런히 노를 저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강물을 따라 내려가던 우리는 한지점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우리는 배사공의 안내로 어느 한 집에 들어가 눕게 되였다. 알고보니 이곳은 우리가 목적한 조연과 가장 가까운 부락일뿐만아니라 왕동무가 정치공작을 하고있던 부락이였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준 배군들도 이곳에서 사는 혁명조직의 성원들이였다. 우리는 그후 15일가량 이곳에서 그들의 지성어린 간호를 받았다. 우리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지방조직을 통하여 인민들과의 련계를 강화하고 부대의 겨울나이준비를 서둘렀다. 우리는 조연에 있는 적의 형편을 정찰하고 후방창고의 위치를 확정하는 한편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면 곧 놈들의 창고를 습격할 준비를 갖추는것이 필요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것은 우리의 력량을 강화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지방혁명조직에서 사업하는 청년들중 30여명의 입대청원자를 받아들여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기는 역시 5정밖에 없었다. 이럴 때에 조연에 파견되여 사업하던 왕동무가 조연성안의 정적을 알아가지고 우리에게로 왔다. 성안에는 약간의 위만군이 있었는데 그것도 우리 유격대가 이 지방에서 《완전섬멸》되였다는 일제의 기만선전을 믿고 극도로 안일하게 지내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가 불의에 습격만 하면 능히 적들을 모조리 무장해제시키고 성안에 있는 적기관과 창고들을 점령할수 있었다. 습격하기전에 우리는 조연성의 안팎을 다시 료해하고 적정을 확인했다. 결과 우리는 적은 력량으로써도 능히 전투목적을 달성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그것은 적들이 이 부근에 유격대가 없는것으로 생각하고 정문보초 하나만 세워놓은데 불과했기때문이다. 그런데다가 뒤쪽 토성은 무너진곳까지 있어서 그곳으로는 앉은 사람의 어깨를 딛고도 넉넉히 넘어설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공작원들을 통하여 적지휘관놈들과 지방관리놈들이 그 어떤 연회를 준비한다는것까지도 미리 알게 되였다. 우리는 놈들이 술을 마신 그날 저녁에 은밀히 행동을 개시하였다. 나와 장월린동무는 성밑에 동무들을 접근시켜 그곳에서 기다리게 한 다음 먼저 성안으로 들어갔다. 적의 지휘관놈들뿐만아니라 병졸들도 여기저기 몰켜서 술을 마시거나 이미 취해 쓰러져있었다. 나는 장월린동무와 함께 보초의 무장을 해제하고 군호를 알아냈다. 이윽고 성밑에서 대기하고있던 우리 동무들을 적병실로 진입시켰다. 극도로 방심하고 술에 만취한 적들이 우리앞에서 꼼짝 못하고 손을 들었다. 우리는 적들의 무장을 해제한 다음 일본지도관 두놈을 묶어놓고 심문을 했다. 놈들의 말에 의하면 창고열쇠를 가진자가 도망쳤다는것이다. 우리는 일본지도관놈들을 처단해버리고 적들의 창고와 무기고문들을 부셨다. 식량, 피복 등은 물론이고 무기고에는 중기 10정, 경기 1정, 싸창 70정, 보병총 1,000여정과 탄알 수십만발이 있었다. 적병영을 습격소탕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날 일부 력량을 파견하여 경찰서를 습격하고 감방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35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이 갇히여있었다. 그들중의 청장년들은 대부분 우리를 따라나서며 무장을 잡고 적과 싸우게 해달라고 탄원하는것이였다. 우리는 그들을 즉석에서 선발하여 받아들일수도 있었으나 지방혁명조직에 대한 인민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하여 혁명조직의 추천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우리의 대오는 지방에서 입대한 사람들까지 합하여 250여명으로 확대되였다. 양달룡동무가 대오를 책임지게 되고 장월린동무가 정치지도원으로 되였다. 우리는 이제 부대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자면 기병대로 행동해야 하므로 말을 준비하는 문제가 제기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인민들은 저마다 자기들이 농사짓던 말까지 끌고와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인민들의 말을 받을수 없었다. 우리가 인민들의 지성이 감사하기는 했으나 말을 접수할수 없다고 하니 그들은 일제놈들이 기르던 말 200필이 이곳 목장에 있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이리하여 50명을 제외하고는 우리 동무들 전부가 말을 탈수 있게 되였다. 적들에게서 로획한 모포 두장씩을 접어서 말잔등에 얹게 하고 로획한 기타 물자는 전부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무기와 탄알은 적들에게서 로획한 4대의 화물자동차와 3대의 마차에 싣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때 인민들이 우리앞을 막아서면서 아직도 50명의 우리 동무들이 말을 못탔는데 어떻게 깊은 눈길을 걷겠느냐고 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기어코 자기들의 말가운데서 50필을 빌려서라도 타고가라는것이였다. 우리는 인민들의 이 뜨거운 성의를 새삼스럽게 가슴깊이 느끼면서 그들의 말 50필을 빌려 타고 모두 함께 부대를 향해 달렸다. 그후 우리는 다그묘라는곳에서 적을 습격하고 말 200여필을 또 로획하였다. 그리하여 지방인민들에게서 빌려 타고온 50필의 말은 도로 돌려주었다. 행군하는 과정에 우리는 심한 바람을 만났다. 길은 눈에 묻히고 전주들도 넘어져서 우리가 짐을 싣고 가던 자동차들도 더 전진할수 없게 되였다.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우리들은 그 많은 짐들을 말에 나누어싣고 나머지는 등짐으로 져나르면서 끝내 목적지까지 모두 무사히 도착하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이런 일들을 감명깊이 회상하면서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혁명가적투지와 당원이라는 높은 자각을 잃지 않고 싸울 때 극복 못할 난관이란 있을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가슴깊이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