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원 위동무 윤 태 홍
내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한지 1년이 지난 1935년 겨울이였다. 그때 내가 속하였던 부대는 로송강하부근에 있었는데 80명가량 되는 대원들중 거의 대부분은 반일부대출신이였다. 일명 《교육부대》라고도 불리운 이 부대에는 유격대에서 파견되여온 간부(중대장과 소대장)들과 함께 40세 가까운 로대원인 위동무가 사업하고있었다. 나의 머리에는 지금도 충직한 공산당원이였던 위동무에 대한 가지가지의 일들이 떠오른다. 그는 초기 나의 유격대생활에 있어서 혁명가로서의 참다운 귀감으로 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무한히 감동시킨것은 부대의 겨울나이용 자금을 해결하여가지고 돌아오던 때의 일이다. 우리 공작대는 공작임무를 책임진 위동무와 몇달전에 반일부대에서 넘어온 청년 그리고 나까지 모두 세사람이였다. 우리는 부대에서 200여리나 떨어진 삼도 송강하란 마을에서 부대의 겨울나이용 자금을 해결하여가지고 부대로 돌아오게 되였다. 그때 우리는 부대의 행처를 잃고 근 4개월동안이나 무인지경에서 많은 고생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부대에서 가지고 떠났던 식량이 전부 떨어져서 우리는 며칠간 모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였다.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위로 온몸이 꽛꽛이 얼어들고 눈속에 파묻힌 발가락은 금시 떨어질것만 같았다. 고난에 찬 행군이 계속되던 어느날 반일부대에서 넘어온 그 청년은 참지 못하고 눈판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간고한 혁명투쟁에서 아직 단련되지 못하였었다. 위동무는 청년을 부축하여세우고 그 옆에 섰다. 그리고 이렇게 타일렀다. 《정 못견디겠소? 어지간히 추운 날씨가 아니지, 허지만 우린 모든 곤난을 이겨내고 하루속히 부대에 돌아가야 하오. 우리는 매우 중대한 임무를 지니고있소. 겨울나이용 부대의 자금이 우리에게 있지 않소. 난 부대동무들을 생각하면 하루가 새롭소. 자 기운을 내오.》 위동무는 자기가 끼고있던 통장갑을 청년에게 벗어주고 목도리마저 감아주었다. 그런데도 청년은 볼부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조장동무! 마을에 내려가 좀 쉬고갑시다. 우리에겐 부대자금도 있는데 무엇때문에 굶어야 한단 말입니까? 식량도 좀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위동무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부대의 자금을 마음대로 쓰는것이 얼마나 큰 규률위반인가를 다시 생각한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서있기만 하였다. 위동무는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우리는 어떠한 때든지 혁명가로서의 규률을 지켜야 하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혁명대오에서 동요할수도 있고 더 험한 구뎅이에 빠져들어갈수도 있소. 물론 우리는 마을에 내려가 식량을 구해올수는 있소. 그러나 좀 생각해보오. 이 근처는 모두 적통치구역인것만큼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니요? 또 우리가 마을에 내려간다면 부대에 도착할 날자도 그만큼 지연될거요. 절대로 지체해서는 안되오. 차라리 눈속의 풀뿌리를 캐여먹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부대자금을 마음대로 쓸수는 없소.》라고 말하였다. 위동무는 끝까지 이렇게 설복하며 우리를 더욱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그는 휴식할 때마다 어느새 눈속에 파묻힌 풀뿌리를 캐다가 끓여서 꼭 짜가지고는 《이거 어떤가 좀 먹어보자구. 아마 동무는 이런걸 못먹어봤겠지?》하고 소금까지 꺼내놓는것이였다. 청년도 이 지성에 못이겨 그것을 입에 대군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뿐이였다. 계속되는 굶주림과 강행군에 지칠 때면 청년의 약한 마음은 또다시 드러나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이날 우리는 량강구마을에서 좀 떨어진 산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눈이 무릎까지 칠 정도로 내린 산판은 어디를 보나 백설만이 뒤덮여 이곳에서는 풀뿌리마저 캐여먹을수 없었다. 우리는 다행히도 깊은 골안에 들어섰을 때 귀틀집 한채를 발견하였다. 위동무는 그 집에서 하루 묵어가자고 하면서 나와 청년에게 이 지대가 적통치구역인것만큼 경각성을 높이라고 재삼 당부했다. 우리가 집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기미는 없었고 60세 지난듯한 로인 한분이 무엇인가를 절구에 찧고있었다. 《수고하십니다.》하고 위동무가 공손히 인사하였다. 로인은 두눈을 흘길뿐 아무 대꾸도 없이 한동안 우리들의 아래우를 쭉 훑어보고나서 퉁명스레 물었다. 《그래 뭘하러 왔나?》 《하루밤 신세를 질가 해서 들렸습니다.》 《우리 집에선 쉴수 없네. 보다싶이 방안이 비좁지 않나.》하고 딱 잡아떼였다. 이때 로인의 행동을 마땅치 않게 노려보던 청년이 역정스레 말을 걸었다. 《그럼 쌀이라도 파우. 그것도 싫소?》 로인은 힐끔 청년을 쳐다보았다. 《없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네.》 《뭣이?!》 화가 치민 청년은 또다시 반일부대에서 생활하던 시기의 습성이 되살아난듯 총대를 틀어잡고 로인에게 대들었다. (아니 저 동무가?!) 나는 저으기 놀랐다. 바로 이때 《동무!》하는 위동무의 목소리가 울렷다. 그의 나직하고 힘있는 목소리에는 어딘가 범접 못할 위엄기가 어려있었다. 자기를 쏘아보는 위동무의 눈길이 어찌나 날카로왔던지 청년은 약간 당황하여 뒤로 주춤 물러섰다. 나는 여태껏 위동무의 얼굴에서 그처럼 날카롭고 엄격한 빛을 본적이 없었다. 이윽고 위동무는 다시 로인에게 다가서며 공손히 말했다. 《로인님! 비좁아도 하루 좀 쉬고 갑시다. 우린 눈판에서 며칠째 새운 유격대입니다.》 로인은 죄송스러운듯 공손히 말하는 위동무의 태도와 유격대원이라는 말에 다소 마음이 누그러워지면서 《아니, 유격대라니!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할것이지. 어서들 들어가 몸을 녹이게.》하고 방안으로 안내했다. 로인의 집에서 오래간만에 끼니를 에운 우리는 며칠째 밀린 잠에 취하여 드러눕기 바쁘게 그만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위동무만은 주인집의 장작도 패주고 물도 길어주며 로인의 일손을 분주히 거들어주었다. 나와 청년은 이런것도 모르고 그냥 자버렸다. 이튿날 아침에 겨우 눈을 뜬 나는 저으기 놀랐다. 밤새 위동무는 밀짚으로 멍석을 엮었던것이다. 여태껏 삿 한잎 없이 봉당에서 지낸 로인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원, 사람이 고맙기두… 이거 내가 미안해서 어디 견디겠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 되려 로인님한테 우리가 페를 끼쳐 안됐습니다.》 밤잠을 설친 위동무의 두눈에는 피발이 서있었다. 로인은 《난 정말 자네 같은 사람들을 처음 봤네. 어제 자네들을 푸대접한 나를 용서하게. 난 처음에 자네들이 유격대원인줄은 모르고 토비인줄로만 잘못 생각했지.》라고 사죄하듯 나직이 말하였다. 《로인님,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일제놈들과 싸우는 항일유격대입니다.》 산속에서 일제《토벌대》놈들과 토비들에게 여러번 봉변을 당했다는 로인은 위동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싸워야지, 그놈들을 때려부셔야지.》하고 혼자말처럼 외우더니 불쑥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것이였다. 이윽고 로인은 망태에 감자를 하나가득 넣어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옜네! 이런 감자는 많으니 실컷 구워먹게나.》 나는 로인의 고마운 태도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처음에 우리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던 로인, 한줌의 식량도 없다고 하던 바로 그 로인이 아닌가. 나의 곁에 다가앉은 반일부대에서 넘어온 청년도 감격으로 하여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우리는 그 로인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하루를 휴식하였다. 출발준비를 하는 우리의 거동을 눈치챈 로인은 《하루만 더 쉬고 떠나라구, 이렇게 인차 떠나는 법이야 있나?》하면서 우리를 떠나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동무가 곧 떠나야 할 사정을 이야기하였을 때 로인은 군대어른들이 하는 일을 막을수 없다고 하면서 잠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또다시 망태에 감자를 하나가득 넣어가지고왔다. 그리고 《군대들, 이것을 받게, 가다가 정 시장하면 요기라도 하라구.》라고 하였다. 이날 로인은 떠나가는 우리를 산등성이까지 바래주면서 서로 헤여지는것을 여간만 서운해하지 않았다. 로인의 눈에는 마치 먼 외지에 친자식을 떠나보내는 때처럼 서글픈 빛이 어려있었다. 로인이 되돌아간 후 위동무는 그제야 청년을 엄격히 타일렀다. 《그래 어떻게 생각하오? 어제 동무의 행동이 옳았소?》 청년은 말없이 얼굴을 붉혔다. 《좋소! 깨달았으면 좋은 일이요. 어제 동무의 행동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였소. 왜냐하면 우리 유격대를 인민들과 떼여놓는 행동이였기때문이요.》 그러면서 위동무는 우리 혁명이 간고하면 간고해질수록 인민을 더욱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여 싸워야 한다는것과 인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는것만이 바로 우리의 힘이며 우리의 원천이라는것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우리의 행군은 갈수록 더욱 곤난이 중첩되였다. 가도가도 끝없는 설령,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로인에게서 받은 감자도 다 먹어버린지 오랬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부대를 찾아야만 했다. 우리는 무송 송강하수림속에 도착하여 며칠을 꼬박 굶으며 부대에서 련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근처에서 먹을만한 풀뿌리를 죄다 캐여먹었다. 그러나 위동무는 자금이 든 배낭끈을 결코 풀어헤쳐본적이 없었다. 극도로 굶주림에 지친 어느날 위동무는 우리앞에 감자 4알을 내놓았다. 이것을 본 청년은 금시 기운이 솟는듯 벌떡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그런데 다음순간 그 감자알이 10여일전 산전막의 로인에게서 받은것임을 알게 되자 그의 눈은 인차 흐려졌다. (조장동무는 여태껏 굶고있었구나.) 이런 생각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청년은 차마 감자를 받지 못하고 몰라보게 수척해진 위동무를 울먹울먹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자, 우리 요기나 하자구. 그런데 참 감자가 꽁꽁 얼었구만… 아니 왜들 그러오? 어서 받으라니까.》 위동무는 어찌할바를 몰라하는 청년의 손에 기어이 감자를 쥐여주고나서 자기는 잎담배를 피워물었다. 《어서 들게! 난 쓰거운 잎담배맛이 더 좋더구만.》 위동무의 이렇듯 변함없는 뜨거운 동지애와 강한 의지 그리고 임무수행에서의 높은 책임감은 청년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우리들은 근 4개월만에 부대를 만났다. 그간 부대는 약 40여리 더 깊은 수림속에 자리를 옮기고 이따금 련락원을 보내여 우리를 찾게 하였던것이다. 우리들은 그 어떤 곤난속에서도 끝내 부대의 자금에는 티끌만큼도 손을 대지 않았다. 부대 동무들을 만난 우리들은 너무나 반가와 눈물이 막 쏟아져나왔다. 위동무도 그 큼직한 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와락 자기 손을 부여잡는 중대장동지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중대장동지는 목이 메여 부르짖었다. 《수고했소! 동무들은 진정한 혁명의 아들들이요. 참다운 투사들이요.》 동무들은 우리를 높이 추켜올리며 환성을 올렸다. 고난에 찬 4개월간의 나날, 이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철부지 대원이였고 또 혁명의 간고한 시련속에서 단련되지 못한 나와 그 청년에게 진실로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였다. 동시에 우리는 앞으로 위동무처럼 그런 고결한 혁명정신으로 살며 싸우리라 몇번이고 맹세를 다졌다. 그후에도 위동무는 우리에게 계속 따뜻한 방조를 주었다. 모르는것은 가르쳐주고 힘든 일은 도와주면서 극진히 우리를 보살펴주었으며 그 청년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충직한 훌륭한 공청원으로까지 키워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