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하전투

 

 

홍 기 하 전 투
 

                                                      리  오  송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1940년 봄 송화강상류 무송현 백석탄을 떠나 두만강연안으로 향하였다.

이 시기 적들의 발악은 더욱 심하여갔다.

그러나 놈들이 제아무리 발악한다 할지라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투지를 꺾을수는 없었다.

우리는 국경지대에 진출하여 적을 계속 소탕하며 암흑속에서 신음하는 국내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고 투쟁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남으로남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당시 반쏘전쟁준비에 날뛰던 일제침략자들은 자기들의 배후를 위협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려고 20여만의 대병력을 풀어가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를 찾아 피눈이 되여 날치였다. 놈들은 깊은 산중에도 일제침략군, 산림경찰대, 위만군 등을 수많이 주둔시켰다.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토벌》에 날뛰며 국경경비강화에 발악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국경연안으로 진출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모든 곤난을 극복하면서 이해 3월에 대담하게 대마록구의 적을 습격하였다.

국경연선이며 《토벌작전》의 중심지점인 대마록구를 습격당한 적들은 눈이 뒤집혀서 우리를 추격했다. 우리는 대마록구의 적을 소탕한 후 화라즈쪽으로 다시 행군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도중에 부대의 행방을 감추기 위하여 7련대의 한개 분대성원들에게 군수물자를 지고온 로동자들을 데리고 다시 대마록구쪽으로 가면서 눈우에 발자국을 내도록 지시하시였다.

이렇게 해놓은 다음 주력부대는 그 발자국과는 반대방향인 화라즈에서 약 5리 되는 지점에 들어가 전투승리를 축하하면서 군정학습을 진행하였다. 여기에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전체 성원이 모였었다.

적들은 안도일대의 《토벌대》까지 동원하여 수백명의 병력으로 우리를 찾아헤맸다. 그러나 발자국은 대마록구에서 떠나 산을 돌다가 다시 대마록구로 갔으니 적들은 어찌된 판인지 영문을 모르게 되였다.

놈들은 허둥지둥 대마록구로 도로 갔으나 유격대는 한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충분히 휴식한 후 다시 두만강연안인 창평방향으로 진출하게 되였다. 그것은 1940년 3월 하순이였다. 그때 우리가 휴식한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적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길을 횡단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적들이 발자국을 알아볼수 없게 하기 위하여 그 길우에 가로놓여있는 진대나무를 타고 길을 넘은 후 눈속을 내걸었다.

부대가 지나간 다음 김정필동무와 대원 2명이 뒤에 떨어져서 눈우에 난 발자국을 메우고있었다. 이때 그들은 농민 두사람을 만나게 되였다. 그들은 적의 군수물자운반에 강제로 동원되였던 농민들이였는데 골짜기아래쪽에 있는 적 집결장소에서 다른 지점에 있는 적 집결장소로 가는 도중이였다. 김정필동무는 곧 그들을 사령부로 보냈다. 농민들의 말에 의하면 화라즈골짜기에 적《토벌대》170여명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위만군 300여명이 있다는것이였다. 적들은 주변정형을 알기 위해 그 농민들을 내보냈던것이다.

적들은 자기들이 보낸 농민들이 없어지자 그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적들은 농민들의 행방을 찾던중 우리 부대의 행처를 알아내고 추격하여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추격해오는 적들을 대마록구하(홍기하지류)골에서 소멸하기로 결심하시였다. 유격대는 대마록구하골에 도착하였다.

날이 저물어 우리는 대마록구하 옆골짜기에서 하루밤을 쉬고 다음날인 3월 25일 적들이 추격해올것을 예견하고 대마록구하 물곬을 따라 하류쪽으로 내려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골짜기를 따라 한참 내려가시다가 부대를 좌우측의 산릉선을 타고 다시 상류쪽으로 올라와 유리한 지점에 매복하게 하시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들에게 유격대가 이곳을 통과한듯이 보이게 하자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마록구뒤산에 지휘처를 정하시고 여기에 기관총대와 경위중대를 배치하시였고 그 맞은편 고지아래 언덕에는 7련대, 8련대들을 배치하시였다. 그러므로 적들이 이곳에 들어오기만 하면 독안에 든 쥐의 운명으로 될것이였다.

주력부대들은 3~4명씩 한조가 되여 25~30m의 간격을 두고 배치되였다.

산간에도 어느덧 봄이 와 그날은 제법 따스한 날씨였다. 양지쪽 릉선에서는 눈이 녹아내렸고 그밑으로부터는 겨우내 눈속에 파묻혔던 잔디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기 위치에 엎디여 적들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온종일 기다려도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긴장해서 기다리던 우리는 그만 맥이 풀렸다. 저녁녘이 되자 날씨는 차츰 추워졌다.

바로 이럴무렵이였다. 아마 오후 6시경이 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가 전달되였다.

우리들은 모두 긴장해서 대마록구하 물곬만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때 화라즈쪽으로부터 사복을 입은 여섯명의 적 척후병들이 오고있었다. 그놈들이 바로 눈앞을 지나갔으나 뒤에 대부대가 따라설것을 예상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격신호를 내리지 않으시였다. 적 척후병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매복선앞을 그냥 지나가고있었다.

그놈들이 금방 지나간 다음 예측한대로 적《토벌대》의 대렬이 뒤따라오는것이였다.

적들은 여기서 우리를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는듯 170여명이 줄을 지어 척후의 뒤를 따라 느릿느릿 걸어오고있었다.

놈들은 발자국을 보고 유격대가 지나간줄만 알았던것이다.

우리는 통쾌한 섬멸전이 벌어질 시각을 기다리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놈들의 동태만 지켜보고있었다. 놈들의 대렬은 드디여 매복권안에 완전히 들어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신 지휘처로부터 사격개시를 알리는 총성이 들려왔다.

아군진지에서는 일제히 여러정의 기관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격을 개시하였다. 수류탄과 보병총총알도 날아갔다.

량쪽으로부터 불의에 불벼락을 맞은 적들은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적이 쓰러졌다. 살아남은 놈들은 숨을 곳을 찾아헤매였다.

어떤놈들은 떼잔디에다 머리를 틀어박고 대항했다.

우리는 놈들에게 계속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살아남은 적들은 경위중대진지를 향하여 사격했다. 경위중대동무들은 강력한 대응사격으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골짜기에는 적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널려졌다.

우리의 맹렬한 사격에 대부분의 적들이 소멸되였을 때 돌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났다.

유격대원들은 매복한 지점에서 뛰여나와 만세를 부르면서 적진으로 돌입했다. 아직 살아남은 놈들이 쏘는 총알이 귀전을 스치며 지나갔다.

적을 향해 뛰여나가던 김성국동무가 갑자기 푹 쓰러졌다. 그의 옆에서 내닫고있던 손종준동무가 재빨리 그를 안아일으켜 붕대를 감아주고 다시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토벌대》놈들은 최후발악을 했다.

여기저기서 육박전이 벌어졌다. 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우리들은 함성을 올리며 밀물처럼 적들을 향해 계속 육박하였다. 서슬이 푸르러 발악하던 놈들도 그제야 질겁을 하고 여기저기서 두손을 쳐들고 기여나왔다.

우리들은 항복하는 놈들을 무장해제시키고 한쪽켠에 정렬시켰다. 포로는 30여명이나 되였다. 그놈들이 이때까지 우리를 향해 총을 쏘던 놈들이라는것을 생각하니 무기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대후 처음으로 통쾌한 섬멸전에 참가한 손종준동무는 적들을 삼대후리듯 쓸어눕힌 기쁨과 함께 원쑤에 대한 적개심으로 하여 가슴을 들먹이였다. 그리고 적들의 무기가 눈앞에 수없이 널려있는것이 그의 마음을 대단히 흡족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손종준동무는 무거운줄도 모르고 적의 무기와 탄띠를 눈에 띄우는대로 걷어메고 《총이야!》하고 소리를 치며 산우로 뛰여올라왔다. 그는 탄띠 16개(1개에 200발), 보병총 8정이나 가지고왔던것이다.

떠나갈듯이 요란스럽던 대마록구하골짜기는 다시금 조용해졌다. 눈우에는 놈들의 시체와 흩어진 무기, 배낭, 철갑모 등이 너저분하였다. 포로된놈들은 우리 유격대원들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했다.

총성이 멎은 골짜기에는 벌써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전장수색을 하였다. 어떤 놈은 머리를 눈속에 틀어박고 쓸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놈은 먼저 쓰러진 놈의 시체밑에 얼굴을 틀어박고 죽었다.

한참동안 전장을 수색하고있을 때 구석에 쓰러졌던 적병 한놈이 벌떡 일어나더니 뛰기 시작하였다. 그놈은 그때까지 죽은듯이 엎디여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이놈도 유격대원들앞에서 멀리 도망칠수는 없었다.

이날 전투에서 적들은 140명이나 소멸되고 30여명이 포로되였다.

우리는 지정된 고지우에 집합했다. 로획품을 조사하니 경기관총 6정, 보병총 100여정, 권총 30여정, 무전기 1대, 총탄 수만발이였다. 여기서 소멸된 적들은 마에다라는놈이 지휘하는 일제침략군놈들과 그리고 《신선대》에 속해있는 악질분자들이였다. 이리하여 대마록구하골짜기는 적《토벌대》놈들의 죽음터로 되고말았다.

이날 2km도 못되는 거리에서 마에다부대의 뒤를 따라오던 위만군 300여명은 일제침략군놈들이 녹아나는것을 보고 더 달려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는 놈들이 있는쪽을 향하여 로획한 기관총으로 위협사격을 하였다. 그러자 놈들은 그 소리에 놀라 황급히 도망치고말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전술을 다시한번 보여준 이 홍기하전투에서 우리는 화룡, 안도 및 두만강연안에서 발악하던 적《토벌대》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줌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남김없이 시위하였다.

동시에 대마록구전투, 홍기하전투 등 이해 봄에 진행한 국경지대에서의 승리적인 작전은 일제의 압제하에서 신음하는 국내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반일투쟁에 적극 나서도록 크게 고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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