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한길에서

 

 

혁명의 한길에서
 

                                                      박  광  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 내가 속한 정치공작대원들이 쏘만국경에 가까운 호림현 마안산근방에 비밀근거지를 설치하고 사업하던 1934년 겨울에 있은 일이다.

여러날째 사납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즘즉해진 어느날 쏘련쪽 하늘에 련습비행기 한대가 높이 떠서 날고있었다.

우리는 제국주의포위속에서 사회주의조국을 방위하기 위하여 맹렬히 훈련을 진행하는 쏘련비행기의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때 또다시 사나와지기 시작한 바람이 금시 산과 수림을 휩쓸며 숨막힐듯한 눈보라를 일구는것이였다.

하늘높이 날고있던 비행기는 끈이 끊어진 연처럼 모진 바람에 휩쓸리면서 이리저리 방향을 잡지 못하다가 우리가 있는 상공에까지 밀려와서는 눈보라속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순간 우리는 손에 땀을 쥐며 《앗!》소리를 질렀다.

(어찌 되였을가? 추락되였을가? 그렇다면 비행사의 생명은?)

의외의 사변을 눈앞에 보게 된 우리모두는 가슴을 조이며 헤아릴수 없는 근심에 잠겼다.

(아니다, 그럴수는 없다. 바람이 사납기는 하지만 비행기가 설마 떨어지기까지야 했으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며 비행사가 무사하기만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자꾸 앞서면서 비행사의 신변이 몹시 걱정되였던것이다.

(우선 사건의 진상이라도 알아보자.)

얼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애쓰던 나는 이런 생각에 미치자 여러 방면으로 이 사실을 알아보기 위하여 련락을 취하였다.

얼마후에 우리는 쏘련비행기가 호림과 마안산어간에 있는 산속에 떨어졌다는 정보를 받았다. 우리는 이때 호림에 주둔해있으면서 마안산일대를 《토벌》하러 싸다니던 일제놈들이 이미 이 사실을 목격하고 쏘련비행사를 붙잡기 위하여 발악하리라는것을 예측하였다.

말없이 앉아있던 우리 동무들의 눈에서는 불이 이는듯 했다.

《안된다, 비행사를 일제놈들에게 빼앗겨서는 절대로 안된다.》

우리는 모두 한사람같이 이렇게 웨치며 결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정치공작을 하고있던 관계로 인원도 몇명 안되였거니와 적과 싸울수 있는 무기란 불과 총 몇자루밖에 없었다.

맨주먹이나 다름없는 우리가 어떻게 수많은 적과 싸울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위기에 처한 쏘련비행사를 적들의 손에 그냥 내여맡길수는 도저히 없었다.

한순간도 더는 지체할수 없었다.

《하여간 가자!… 어떤 일이 있어도 쏘련동무를 위험에서 구원하자.》

사나운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고 벼랑턱에서 굴러떨어지면서도 우리는 쏘련비행사를 구원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지점을 향하여 내달렸다.

얼마쯤 가다가 우리의 근거지부근에 있던 구국군부대에 급히 달려갔다. 이곳 구국군부대에는 이미 우리 동무들이 파견되여 공작을 하고있었고 나도 이 구국군부대의 간부들과 일정한 련계를 맺고있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찾아갔는데 그곳에 파견되여있던 우리 동무들에 의하여 그들은 이미 쏘련비행사를 구원하러 떠날 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우리는 구국군병사들을 고무하면서 대오의 선두에 나섰다.

구국군들도 우리의 뒤를 따라 쏘련비행사를 구원하자는 구호를 웨치며 전진하였다.

키를 넘는 생눈길을 헤치고 전진하자니 몸은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았고 사납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하여 마음대로 숨쉴수도, 앞을 살필수도 없었다.

이러한 곤난속에서 구국군병사들을 부축하고 이끌면서 분초를 다투어 산을 넘어 얼마쯤 내달리던 때였다. 우리가 전진하는 상대편 고지릉선으로 굶주린 이리떼처럼 허둥지둥 눈속을 헤치며 달려오는 적들을 발견하고 우리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눈보라속에서 헐핏 보아도 100명가까이 되는 적들은 벌써 쏘련비행기가 추락된 곳에 우리보다 더 가까이 접근하고있었다.

사태는 매우 위급하게 되였다.

우리는 다시 힘을 내여 이를 악물고 계속 전진하였다.

그런데 어찌된셈인지 구국군병사들의 걸음이 갈수록 점점 굼떠갔다.

출발할 때의 기세는 어느 사이에 다 식어버리고 얼마쯤 따라오다가는 눈무지속에 몸을 움츠려박고 바람을 피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아편을 빨지 않고는 맥이 없어 더 못걷겠다고 하면서 주저앉아버리는것이였다.

형편은 매우 난처하게 되였다.

간악한 원쑤들은 기를 쓰고 쏘련비행기가 떨어진 곳으로 점점 조여들고있었다.

이것을 눈앞에 바라보는 우리는 쏘련비행사를 위험속에서 구원해낼것 같지 못한 안타깝고 불안한 심정에 싸여 온 몸의 피가 일시에 끓어오르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리는 여전히 눈속에 들어박혀 일어설념도 하지 않고 우리의 눈치만 보고있는 구국군병사들에게 다가가서 여러가지로 설복하고 선동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구국군병사들의 손을 잡고 《지금 쏘련비행사의 생사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일분이라도 시간이 더 지체되면 쏘련비행사는 간악한 원쑤들에게 빼앗긴다.》고 하면서 우리의 절절한 심정을 호소하였다.

이때에야 몇명의 구국군병사들이 마지못해 눈을 툭툭 털며 일어섰고 그 뒤를 따라 또 몇명씩 일어나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때 적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사격을 개시하였다. 구국군병사들은 또 전진을 멈추고 눈속에 머리를 파묻고 엎드리기 시작하였다.

가증스러운 적들은 자기들의 대부분의 화력을 우리의 전진을 저지하는데 돌리였고 일부 병력만 쏘련비행기가 추락된 곳으로 내몰았다.

이런 정황하에서 우리도 적들의 사격을 제압하는 한편 일부 기병대원들을 급히 전진시켜 적들보다 먼저 추락된 비행기에 이르게 하여야 하였다.

적들의 화력이 집중되자 구국군병사들은 진격하기는커녕 《이제는 쏘련병사를 구원할 가망이 없다.》고 두덜대면서 뒤로 물러서기까지 하였다. 구국군병사들의 거의 반수를 차지하고있었던 기마병들도 말에서 뛰여내리거나 말을 돌려세우면서 후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물러설수 없었으며 적들의 발악을 물리치고 쏘련병사를 구원하여야 하였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총대를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전진을 계속하였다.

우리 동무들중 몇명은 구국군과 기마병들이 뛰여내린 말을 갈아타고 진격로를 개척하며 앞으로 달렸다.

불과 몇명 안되는 우리 동무들만으로써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면서 나가기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였다.

《동무들! 쏘련비행사를 원쑤들에게 내맡길수는 없다. 모두다 그를 구원하는 정의로운 싸움에서 영웅적인 기개를 떨치자.》

우리는 총을 높이 추켜들고 구국군병사들이 보는데서 이렇게 웨치면서 눈보라속을 뚫고 계속 전진하였다.

그러나 구국군병사들은 여전히 전진하지 않고 눈속에서 서성거리며 우리의 전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10명도 못되는 우리 동무들끼리만이라도 적들과 싸우며 끝까지 쏘련비행사를 구원할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나갔다. 우리의 명중사격에 적들은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만으로는 적들을 물리칠수 없었다.

일제놈들에게 등을 밀리다싶이 하면서 우리를 향하여 진격해오던 위만군놈들은 몇놈이 쓰러지자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선 일제놈들은 계속 우리의 전진을 막아보려고 발악하였다.

쏘련비행사에게로 접근하려는 적들의 진격을 가로막으며 우리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런 과정에 우리 동무들은 거의 모두가 다 부상을 당했고 눈우를 붉은 피로 물들이면서 계속 진격하였다.

이때 말을 타고 달려나가던 우리의 한 동무가 적탄에 맞고 말우에서 굴러떨어져 눈속에 쓰러졌다.

우리는 원쑤에 대한 적개심과 격분으로 적들을 쏘아눕히며 계속 전진하였다.

《구국군병사들이여! 정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다가 쓰러지는것을 나는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당신들도 끝까지… 끝까지 반일전선에서 영웅적기개를 떨치라.》

적탄에 부상당하여 말에서 떨어졌던 우리 동무가 구국군병사들에게 이렇게 높이 웨치며 또다시 총을 쏘며 눈우를 기여나갔다.

심한 부상을 당하고도 굴하지 않는 우리 동무의 장렬한 웨침과 용감한 투쟁모습에 감동된 구국군병사들은 마침내 하나둘 머리를 들고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계속 구호를 웨치며 그들을 고무하였다.

이윽고 구국군병사들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뒤에있던 기마병들도 적들을 포위할 기세로 우측으로 달려나가며 사격을 개시하였다.

정황은 삽시간에 급전하였다.

적들은 우리에게 포위당하지 않기 위하여 기마병들에게 화력을 돌리였다.

이 기회를 타서 우리는 쏘련비행사를 찾아서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쏘련비행사는 우리들까지도 적으로 잘못 알고 권총으로 우리를 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때 우리의 대부분 인원은 적들을 저지시키며 계속 사격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쏘련비행사의 움직임을 살필수 없었다.

쏘련비행사에게로 달려들어가던 일부 기마대원들은 그가 사격하는 바람에 되돌아서서 나왔다.

《야단났소. 우리에게 총을 쏘는 사람을 어떻게 구원하겠소?》

구국군병사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당신을 구하러 온 혁명군이요! 안심하고 우리의 손을 잡으시오. 빨리 우리에게로 오시오. 빨리!》

이렇게 우리가 웨쳤으나 조선말을 모르는 그가 우리의 이 안타까운 심정을 알리 만무했다.

우리는 적들에게 계속 맹렬한 불을 뿜으면서 한편 쏘련비행사에게로 더 가까이 접근해갔다. 그리고 계속 안타깝게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에 탄알이 다 떨어졌는지 쏘련비행사는 권총을 비행기우로 뿌려던지고 잠시 우리쪽을 돌아보다가 비행기에 불을 질렀다.

사나운 바람에 불길은 순식간에 씨거먼 연기를 올리며 비행기를 휩싸기 시작하였다.

쏘련비행사는 쏘련쪽하늘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두 주먹을 부르쥐며 무어라고 높이 웨쳤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비행기와 더불어 고결한 최후를 같이하려는것이 분명하였다.

《일분 일초도 더 지체하여서는 안된다. 저 비행사를 빨리 구원하자!》

나는 이렇게 웨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바로 이때 구국군부대에 파견되여 공작하던 안동무(그는 쏘련에서 살다가 온 동무였다.)가 쓰러졌던 눈무지속에서 총을 잡으며 일어섰다.

그는 적의 탄우속을 뚫고 비행기곁으로 기여들어가며 《동무! 빨리 이쪽으로 오라! … 우리는 당신을 구하러 온 혁명군이다. 빨리 오라!》고 로어로 숨가쁘게 웨쳤다.

뜻밖에 자기 나라 말을 들은 쏘련비행사는 흠칫 놀라며 돌처럼 굳어진 몸을 홱 돌리더니 그도 무어라고 웨치며 불타는 비행기곁에서 다시한번 적들과 우리를 번갈아보는것이였다.

다시금 안동무가 이쪽으로 오라고 고함을 치자 그제야 알아차린듯 그는 우리에게로 기여오기 시작하였다.

한편 쏘련비행사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던 적들은 그가 우리쪽으로 오는것을 보자 결사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쏘련비행사에게로 달려드는 적들에게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적아간의 싸움은 더욱 격렬하여졌다.

우리측에서도 부상자가 늘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부상도 희생도 이미 돌볼 사이가 없었다.

눈속에 쓰러졌던 쏘련비행사가 다시 일어나서 뛰여오는것을 본 우리들은 모두 환성을 올리며 적들에게로 조여들어갔다.

이윽고 우리곁에 다달은 쏘련비행사는 반가이 맞아주는 우리 동무의 품에 쓰러지는듯 안기더니 감격의 눈들을 머금고 말을 하지 못했다. 잠시후에 그는 우리가 말을 탔으므로 적과 혼돈하였다고 하면서 자기에게도 총을 달라고 하였다.

《안되오, 당신은 먼저 여기서 떠나야 하오!》

우리는 쏘련비행사의 안전을 위하여 그를 다른 장소로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우리와 함께 싸우겠다고 하면서 한걸음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리다 못해 보병총 한자루를 그에게 주었다. 쏘련비행사는 총을 받자 눈무지에 몸을 의탁하고 적을 향해 사격을 시작하였다. 그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달려들던 적들이 눈속에 몸을 비틀며 쓰러졌다.

《쏘련비행사도 명사수다.》

구국군병사들은 환성을 올리며 좋아하였다.

우리는 그의 신변이 념려되여 곁에서 그를 엄호해가며 싸웠다.

집요하게 달려들던 적들의 공격이 우리의 화력에 의하여 일시 좌절되였을 때 우리는 쏘련비행사를 거의 강제로 끌다싶이 하며 먼저 철수시켰다. 그이상 더 쏘련비행사를 싸움터에 머물러있게 할수는 없었기때문이였다.

이때 나는 다른 일부 동무들과 함께 뒤에 남아서 구국군병사들의 철수를 엄호해주었다.

구국군병사들까지 철수하자 적들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또다시 악착스럽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이상 더 그곳에서 수량상 우세한 적들과 정면충돌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일단 철수하게 되였다. 이때 우리는 눈보라속에서 문득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먼저 철수한 구국군병사들중의 몇명이 적탄에 부상당하여 눈구뎅이에 쓰러져있었던것이다.

적들은 자기 력량을 전부 모아가지고 미친듯이 돌격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부상당한 구국군병사들을 적들에게 내맡기고 그곳을 떠날수는 없었다. 우리는 적들의 총탄이 비발치는속에서 부상당한 구국군병사들을 업고 적들과 싸우면서 철수하였다.

우리가 근거지에 무사히 도착하였을 때 구국군병사들은 자기들이 먼저 오면서도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원해내지 못한데 대하여 몹시 미안해하였다. 그리고 위험한 정황속에서 뒤에 오던 우리가 적들의 추격을 받으며 자기 동료들을 구출해온데 대하여 너무나도 감동되여 일제히 우리에게 달려와서 손을 잡으며 《동무들! 고맙소! 수고했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그들의 치하보다도 쏘련비행사를 구원해냈을뿐만아니라 위험속에서 구국군병사들까지 무사히 업고온 영예와 긍지로 하여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리는 그들의 손을 더욱 굳게 잡아 흔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부상당한 당신네들을 그냥 적들속에 버리고 오겠는가.

우리는 어느때 어떤 곤경에서도 자기 생명을 바칠지언정 혁명의 한길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들을 버릴수는 없다. 오늘도 우리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다.》

우리의 이 말에 감동된 구국군병사들은 《당신들은 정말 혁명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좋은 사람들이요.》라고 하면서 우리와의 공동투쟁을 더욱 굳게 결의해나섰다. 그리고 우리 동무들이 극진히 돌보고있던 쏘련비행사를 그들도 성의를 다해가며 치료하여주었다.

그후 우리는 구국군병사들과 함께 적들의 추격을 물리치면서 쏘련국경지대에까지 가서 쏘련비행사를 무사히 자기 조국으로 건너보내고 돌아왔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