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찌》에 대한 이야기 황 순 희
1937년 3월 내가 속한 부대는 서강회의에서 제시하신 조국진출에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방침을 받들고 무산지구로 진출하게 되였다. 조국으로 진출한다는 이 소식은 전체 부대성원들을 무한히 흥분시켰다. 우리 녀대원들은 모두 동무들에게 새옷을 입혀 조국땅을 밟게 하려는 한가지 생각으로 밤낮 바느질손을 다그쳤다. 행군을 하면서까지도 바느질을 하였고 하루밤을 쉬여가게 되는 때에도 나무껍질을 벗겨서 옷에 물을 들이였다. 이렇게 하여 1937년 5월 두만강상류를 건너 조국땅을 밟을 때에 우리 동무들은 모두 새 군복을 갈아입게 되였다. 오매에도 그립던 조국땅에 들어선 우리의 기쁨이란 한량없었다. 조국의 산천초목 그 모든것이 우리를 반겨맞아주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조국은 일제놈들에게 짓밟히고있었으며 인민들은 고역과 굶주림에 시달리고있었다. 우리는 두만강을 건너 두메산골의 한 자그마한 마을에 들리게 되였다. 아마 그곳은 홍암동이였다고 생각된다. 마을이라고 해야 찌그러진 집 10여호가 있으나마나 한 정도였는데 그나마 누우면 천장으로 별빛이 흘러드는 한지나 다름없는 집들이였다. 밭이라고는 가파로운 산비탈에 손바닥만큼씩한 뙈기밭이 좀 있을뿐인데 그나마 불탄 나무등걸이와 바위로 곡식뿌리가 붙을 자리도 변변치 못할 정도의 화전들이였다. 이런 화전에 의지하여 사는 마을사람들의 생활형편이란 참으로 비참하였다. 조국의 품에 안긴 반가움은 더 말할나위도 없었지만 구차한 인민들의 생활을 보는것은 몹시 가슴 쓰리고 아픈 일이였다. 그러나 인민들은 그 모진 가난속에서도 이웃간에 인심이 좋았고 모두 한집안식구처럼 화목하게 살고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선조들의 미풍량속을 물려받은 우리 인민들의 아름다운 생활모습을 볼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 인민들의 지성어린 환대를 받았다. 그들과 우리는 곧 한집안식구나 다름이 없이 친숙해졌다. 마을아낙네들은 저녁마다 우리 녀성대원들이 들어있는 집으로 찾아와서 인민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유격대에 대하여 많은것을 묻고 또 물었다. 그때 우리 녀성대원들은 남동무들의 내의를 짓느라고 쉴짬도 없이 바느질을 계속하면서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여주었다. 우리들이 분주히 바느질을 하는것을 목격한 마을아낙네들은 자기들도 도와줄테니 바느질감을 말라달라고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청에 못이겨 비교적 바느질하기 쉬운 빤쯔감을 여러벌 주었다. 그런데 이튿날 약속한 시간이 되도록 아낙네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여러시간을 초조히 기다리다 못해 찾아 떠나려고 할 때 마침 아낙네들이 왔다. 그런데 그들이 공력을 들여 만들어온것은 빤쯔가 아니라 딴것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빤쯔에 웬 팔소매같은것이 달려있었다. 《아니?! 이게 무엇이야요?》 나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 아낙네들은 그만 영문을 몰라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그게 돌찌(적삼)이오다. 하긴 그런 돌찌는 첨 보기는 하오다만…》하고 말끝을 얼버무려버렸다. 그들의 말을 듣자 웃내의를 하라는줄로 잘못 알고 샤쯔를 해온가보다 하고 그중 하나를 입어보았다. 그것은 몸에 맞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량쪽팔이 삐여져올라와서 아주 모양이 우스웠다. 《이게 갑산 돌찐가요?》 녀동무들은 너무도 우스워서 배를 그러쥐고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어떤 녀동무들은 웃음을 참아가며 우리가 부탁한것은 우에 입는 옷이 아니라 아래에 입는 빤쯔라는것을 아낙네들에게 설명하여주었다. 《기껏해야 베돌찌나 알지 그런걸 알아야지오다. 그런건 보지도 듣지도 못했소구마.…》 이렇게 부끄럼섞인 대답으로 말끝을 흐리는 아낙네들의 얼굴에는 설음이 어려있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여나서 응당 차려입어야 할 옷가지가 어떤것이 있는가 하는것조차 모르고 산다는것을 생각할 때 어찌 서럽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옷단장, 몸단장에 마음돌릴 젊은 아낙네들이 아닌가. 순간 나는 어디라없이 가슴이 뭉클하고 얼굴이 확 붉어지는것을 느꼈다. 세상에 나서 내의란 입어보지 못한 그들이였다. 그들에게 있는 옷이라면 몸이나 가릴 정도의 넝마같이 다 해진 베홑것뿐이였다. 모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도 베홑것을 입고 사는 그들이였다. 그것도 두세식구가 한벌을 가지고 사는 형편이였다. 아버지가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아들은 옷을 못입은채 귀틀집속에 갇혀있어야만 하는 그들이였다. 오직 행복만을 누려야 할 어린것들의 형편은 더욱 한심했다. 철이 들어 어른들의 일손을 돕게 될 때까지 그들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사시장철 옷이라고는 걸쳐보지 못하고 알몸으로 자랐다. 학교라는것은 알지도 못했다. 이것이 우리가 본 조국의 처지였으며 조국을 빼앗긴 사람들의 고달픈 생활이였다.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 우리 인민들이 이처럼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는가? 인민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부대기밭에서 감자되박이나 지은것조차 어느놈이 빼앗아갔는가? 그것은 강도 일제침략자들이다. 이 《돌찌》속에는 웃음이 아니라 침략자들의 억압과 착취를 받으면서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고있던 우리 인민들의 슬픔과 원한이 담겨있었다. 아낙네들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나의 눈에는 이국땅에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누데기를 걸치고 밤을 밝혀가며 삼을 삼던 어머니, 삼타래를 안은채 눈을 감지도 못하고 굶어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이는것만 같았다. 순간 나는 아낙네들을 와락 그러안았다. 그리고 일시에 북받쳐오르는 설음을 참지 못하여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아낙네들도 우리 녀대원들도 서로 그러안고 울었다. 우리는 아낙네들에게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민에게 모든 고통을 주고있다는것,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는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돌찌》에 대한 이야기는 삽시에 부대 전체 대원들속에 알려졌다. 우리 대원들은 모두가 인민들의 불행과 가난을 기어코 없애버리려는 굳은 결의를 다시금 다지였다. 우리들은 마을을 떠날 때에 여유있는 옷은 물론 입었던 옷까지도 벗어서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도와드리진 못할망정 유격대원들에게서 우리가 받아서야 쓰겠소.》 인민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안받으려 하였다. 그럴수록 우리들은 그들에게 자기의 입었던 옷들까지 벗어주었다. 《내 장가갈 때도 이렇게 새옷은 못입었소.》 한 로인은 눈물이 글썽해서 옥양목적삼을 억지로 안겨주는 유격대원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좋은 세상이 꼭 올것입니다. 그때까지 오래오래 사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우리는 굳이 사양하는 인민들에게 옷가지를 안겨주었다. 부대가 떠나던 날 마을인민들은 우리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주었다. 비운이 드리운 조국,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고있는 인민들과 작별하는 우리의 심장은 터지는듯 아팠다.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으리라! 이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을 반드시 해방하리라!) 우리는 이렇게 굳은 맹세를 다지며 그들과 작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