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함이라면 리 종 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내가 속하였던 항일유격대가 탕원현소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산중에서 1939년의 겨울을 지내게 된 어느날이였다. 한 사람이 우리 밀영앞 골짜기를 헤매며 강대나무를 《탕!… 탕!》두드리고있었다. 보초소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지휘부에서는 곧 대원 몇명을 내려보내여 그를 살피게 하였다. 골짜기로 내려간 우리 동무들은 이윽고 로인 한분을 부축하여 밀영으로 올라왔다. 추위를 가리기 어려운 엷은 옷을 입고 수건으로 귀를 싸맨 로인의 얼굴은 몹시 지쳐보였다. 로인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거듭 말을 하는것이였으나 가쁜숨을 몰아쉬며 떠듬떠듬하는 말이여서 잘 알아들을수 없었다. 우리는 로인의 차디찬 손을 잡고 따뜻한 자리로 이끌어앉히면서 우리의 덧옷을 벗어서 등을 가려주고 우선 끓인 물에 미시가루를 풀어 권했다. 우리는 무슨 일로 이렇게 추운 날에 로인이 고생을 하며 이 깊은 산중에까지 들어오게 되였는가를 물으며 더운 물을 마시고 몸을 녹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로인은 우리가 권하는 음식에는 별로 관심하지 않고 우리 동무들의 손을 마주잡더니 한참동안 말도 못하고 눈물이 글썽해있는것이였다. 그를 대하는 나도 코등이 찡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인민들이 악독한 일제원쑤놈들때문에 헤아릴수 없는 고생들을 하는가. 잠시후 로인은 눈을 옷자락으로 문지르며 다음과 같은 억울한 사연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로인은 탕원현 초지툰부락에 사는 대지주인 《껌가》라는자의 소작인이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지주놈이 설날에 《토벌대》놈들에게 선물을 보내기 위하여 각종 부당한 구실을 붙여가며 굶주리는 소작인들에게 엄청난 식량과 금품을 강요했다는것이다. 이에 응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항거하는 기색만 보여도 경찰과 보위단놈들은 농민들을 매질하고 묶어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초지툰부락 혁명군중들이 유격대를 원호하기 위해 준비하던 겨울나이용 물자까지 놈들에게 발각되여 부락 반일회 회장인 로인의 아들을 비롯한 부락내 수많은 청장년들과 부녀자들이 끌려가 갇히게 되였다. 그리고 지주놈이 《토벌대》놈들에게 선물을 실어보낼 때에 《통비분자》로 몰린 그들까지 마차에 실어가게 되리라는것이였다. 그래서 로인은 어떻게 하든지 이 사실을 유격대에 속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안에서 탈출하여 벌써 이틀째 산속을 헤매면서 우리를 찾고있었다는것이였다. 로인의 말을 듣고난 지휘부에서는 초지툰부락정형을 더 자세히 알아보고 해당한 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리태동지가 몇명을 데리고 직접 초지툰에 내려갔다. 정찰결과에 의하면 초지툰부락에 조성된 정세는 매우 위급하였다. 지주놈이 아직 탕원현소재지에 있는 적들에게 알리지는 않고있었으나 그자는 미구에 《토벌대》놈들에게 부락의 혁명군중들을 넘겨줌으로써 은근히 《공》을 세우고 한몫 볼 작정이였다. 그러면서 그자는 자기 손으로 더《큰 자료》를 얻어내보려고 부락민들에게 갖은 폭행을 다하고있었다. 시급히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런데 초지툰부락을 습격하는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부락에 있는 보위단과 경찰은 모두 합해야 60명에 불과했지만 부락안으로 들어가는것이 우선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것은 초지툰부락이 적의 대부대가 주둔해있던 탕원현소재지로부터 불과 20여리 지점에 있는데다가 대도로를 끼고있으므로 습격과정에 만일 총소리를 내거나 또는 지주놈이 먼저 알아차리고 련락을 취할 때에는 적의 대부대와 힘겨운 전투를 예견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초지툰부락안에 있는 지주놈의 집을 습격하자면 부락주위의 높은 토성을 넘은 다음에도 또 두번이나 그안에 있는 성문을 통과해야 지주놈의 집에 들어갈수 있었으므로 총소리 한방도 내지 않고 이곳을 뚫고들어간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렇다고 조성된 사태를 수수방관할수도 없었다. 당시 우리의 대오를 책임진 박길송동지는 언제 어디서나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며 혁명조직들과의 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상기시키면서 이 문제를 여러 동무들과 거듭 신중히 토론하였다. …만일 우리가 어려운 전투라고 해서 초지툰부락에 조성된 사태를 수수방관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우리를 믿고 일제와의 투쟁에 나선 혁명군중들의 사기는 전락될수 있고 지주나 주구놈들의 악행은 더 심해질것이 아닌가. 이것은 또한 초지툰부락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주놈의 행동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이 부근의 다른 부락에 있는 혁명군중들에게도 영향이 미칠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가 어려운 조건을 대담하게 극복하고 초지툰부락을 습격하여 목적을 달성한다면 인민들의 신심을 한층 북돋아줄것은 물론 다른 지주들까지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될것이였다. 이러한 내용의 토론들이 거듭된끝에 투쟁방법이 강구되였다. 지휘부에서는 초지툰부락을 습격하되 일부 인원만을 선발하여 먼저 보내기로 하였다. 리태동지를 비롯한 약 한개 분대인원이 먼저 떠났다. 이때 리태동지는 일본군 하급장교로 가장하고 리원동무는 통역원역할을 하게 되였으며 기타 동무들은 《토벌대》로 가장하였다. 그다음에 박길송동지가 인솔한 우리 20여명의 동무들이 떠났다. 우리들도 역시 적의 《토벌대》로 가장하였는데 박길송동지는 적의 고급장교로 가장하였다. 당시 초지툰부락은 큰길가에 있은것만큼 지나다니는 적의 《토벌대》놈들이 자주 들려서 쉬여가는 일이 있었다. 때문에 우리 동무들은 이것을 리용하여 적의 《토벌대》로 가장하고 3개의 성문을 통과하여 지주놈의 집에 접근하기로 하였던것이다. 첫째 성문을 들어서면 소작인들의 집과 소, 말들을 사육하는 축사와 기타 농기구들이 있는 창고가 있었고 그다음의 중간성문을 들어서면 지주의 친척들과 경찰, 보위단들이 있으며 그다음 성문을 들어서야 지주의 가족과 보위단과 경찰의 우두머리들이 있었다. 일본고급장교로 가장한 박길송동지가 인솔한 우리들이 초지툰부락에 들어섰을 때 어두워오는 길거리로 일제놈들이 마주 걸어왔다. 이때 나이가 어린 나는 박길송동지곁에 서가며 마주오는 일제놈들을 찬찬히 살폈다. 어둠속으로 차차 가까와오는것을 보니 일제놈 하사관들이였다. 고급장교로 가장한 박길송동지가 몇걸음 더 앞서 그들에게로 걸어가자 그놈들은 경례를 붙이며 꼿꼿이 지나가버렸다. 이윽고 우리가 초지툰성문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때 박길송동지와 내가 먼저 보초놈에게로 접근했다. 그때 보초놈은 졸고있었다. 박길송동지는 재빨리 보초놈의 총을 빼앗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다음에 정문보초는 우리 대원 한 동무가 대신 서게 되였다. 바로 이때 리태동지가 인솔한 일부 동무들은 초지툰에서 탕원으로 가는 로상에서 방차대의 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그리고 리태동지는 우리와 함께 행동하였다. 한편 우리 동무들은 《토벌대》로 가장하고 둘째성문을 통과하게 되였다. 이미 첫째 성문에서 《토벌대》가 들어가니 영접하라는 련락을 해놓았으므로 둘째 성문보초는 《받들어 총》까지 하고 박길송동지가 인솔한 우리 동무들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둘째 성문을 통과한 우리 동무들은 어리둥절해있는 적의 보초와 보초장까지 모두 무장해제를 시켜 묶어놓았다. 여기서도 셋째 성문보초에게 《토벌대》가 들어가니 영접하라는 전달을 한 다음에 우리 동무들이 셋째 성문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박길송동지는 다섯동무만 탕원으로 통하는 도로주변에 방차대로 배치해놓고 대오를 부락안으로 은밀히 진입시키면서 포대들을 점령한 다음에 지주놈의 집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더욱 신중히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보위단과 경찰서의 우두머리들과 악질분자들은 대부분이 그안에 있었다. 박길송동지는 셋째 성문 보초장을 통하여 일본군대가 왔을 때에 지주나 경찰, 보위단에게 련락하는 절차와 그들이 출입하는 문과 무장상태 등에 대해서 다시한번 확인해보았다. 그리하여 불의의 사변이 있을 때에는 놈들이 급히 몸을 피하기 위한 지하실과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는것과 지주의 가족이 전부 76명인데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기를 품고있다는것까지도 알게 되였다. 또한 이날은 6두마차 20여대에다 《토벌대》에 가져갈 물건들을 실어놓고 날밝기를 기다리는 때였으므로 지주놈의 집안마당에는 마차군들도 수직을 서고있다는것이였다. 우리는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절차대로 지주놈에게 련락을 띄웠다. 그러자 지주놈이 자던 눈을 비비며 황황히 달려나왔다. 이때 하급장교로 가장한 리태동지가 박길송동지를 정중하게 안내하였고 리원동무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역하였다. …우리는 탕원을 떠나가던 길이였는데 부득이 밤이 깊은 때에 들리게 되였다. 그러나 우리는 기쁜 일로 이 집 주인을 만나게 되였다. 그것은 상급에서 이 집 주인의 충성을 표창하여 선물까지 보냈으니 가족들은 물론이고 기타 근친자들을 전부 모이게 하라. 그리고 표창장과 선물을 전달받으라… 어두운 밤에 나타난 《일본고급장교》로부터 뜻밖의 《희소식》을 받게 된 지주놈은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자기 가족들과 경찰들이며 보위단놈들을 모이게 하느라고 부리나케 돌아갔다. 그바람에 지주놈은 우리 동무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이윽고 90명가량 되는 인원이 마당에 모여들었다. 박길송동지가 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무슨 연설 비슷한 말을 시작하자 우리 동무들이 일제히 나서서 그들이 가지고있는 무기를 모조리 빼앗고 한쪽에 모아세웠다. 동시에 지하실과 창고를 봉쇄하였다. 그제야 우리가 유격대라는것을 알게 된 경찰과 보위단놈들은 겁에 질려 떨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 동무들은 구류장의 문을 부시고 그안의 혁명군중들을 구원해냈다. 그리고 경찰서장을 비롯한 몇몇 악질적인 놈들은 처단하고 그외의 포로들에게는 려비와 옷과 신발까지 주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지주놈이 이미 《토벌대》에 가져가려고 준비해놓은 6두마차 20여대를 큰 길에 내세웠다. 그 마차에는 수백포대의 밀가루와 수십마리의 소와 돼지를 잡은것이 실려있었다. 우리 동무들은 그 마차에 적에게서 로획한 무기(그중에는 경기관총도 두정 있었다)와 탄약들을 실었다. 20여대의 6두마차를 몰아가며 급히 부락을 벗어난 우리 동무들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고 전투준비를 단단히 갖추었다. 그리고는 우리의 행방을 모르게 하기 위하여 다른 도로로 해서 밀영과 련결되여있는 치둥산속으로 달렸다. 이렇게 얼마쯤 달렸을 때였다. 앞에 바라보이는 산중턱에 여러개의 모닥불이 있었다. 앞에서 달리던 척후대원들이 은밀히 접근하여 알아보니 그것은 적의 기병대놈들이였다. 그들의 거동으로 보아 《토벌》하러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추우니까 산중턱 홈타기에 모여앉아 불을 쪼이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우선 기관총 두정을 그쪽으로 향해놓고 마차들을 계속 몰았다. 긴장된 가운데 마차는 적들이 있는 산아래 굽인돌이를 지나기 시작했다. 마차대렬이 절반가량 산굽이를 지났을 때에도 적들쪽에서는 별다른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적들이 혹시 산에서 내려부는 바람소리때문에 마차소리를 못듣는것일가, 그렇지 않으면 흔히 마차가 지날수 있는 큰 길이여서 마차소리에 무관심한것일가 하고 유심히 살펴보면서 추호도 긴장성을 늦추지 않고 계속 마차를 몰았으며 한쪽에서는 그를 엄호했다. 기관총 두정을 비롯하여 우리 엄호조원들의 모든 총구가 모닥불주위에 둘러앉은 적들을 줄곧 겨누고있었다. 손에 땀이 나는 긴장한 순간이 지났다. 마차대렬은 마침내 무사히 산굽인돌이를 돌아섰다. 그리고 모두가 마차에 올라앉아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때 길섶에서 갑자기 총성이 났다. 산아래서 적들의 말을 지키고있던 보초놈이 우리를 알아보고 총을 쐈던것이다. 그바람에 부근에 있던 다른 놈들까지 놀라 일어나며 총을 쏘기 시작했다. 산우에서 불을 쪼이고있던 놈들도 달려내려와 말을 타고 우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에 총을 쏘지 않고 계속 마차를 몰아 산속으로 달렸다. 추격해오는 적의 기마병들과 무거운 짐을 싣고가는 우리 마차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와졌다. 이때 박길송동지는 기관총 한정을 가지고 나를 포함한 몇몇 동무들과 함께 맨 뒤에 있는 마차로 옮겨탔다. 얼마쯤 더 달리니 산굽인돌이를 지나게 되는곳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박길송동지는 자기가 탄 마차만 옆길로 빠지게 하고 기타는 곧추 달리게 하였다. 적들은 이런 까닭을 모르고 계속 추격해왔다. 이때 갈림길어귀 산비탈에 마차를 세우고 재빨리 기관총을 배치한 박길송동지는 우리들에게 사격명령을 내렸다. 한쪽은 벼랑턱아래로 물이 흐르고 한쪽은 올리막 비탈이여서 추격해오는 적들을 반격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점이였다. 미친개처럼 함부로 쫓아오던 적의 기병대는 갑자기 불벼락을 맞고는 돌아설 자리도 없는 좁은 길목에서 무리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앞의 놈이 말을 탄채로 쓰러지자 그뒤의 놈은 그우에 덮쳐 쓰러지고 또 그뒤의 놈이 몰려와 쓰러지군 해서 길목에는 삽시간에 적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쌓였다. 이때 우리들은 급히 자리를 옮겨가며 그뒤에 련이어 몰려오는 적들을 측면으로부터 내리쐈다. 그리하여 적들의 시체와 쓰러진 말들로 길목이 막히고말았다. 그러나 계속 뒤따라오는 적들의 무리는 끝이 없는것 같았다. 이미 탕원에서 추격해온 적들까지 뒤를 이어 달려들기 시작했던것이다. 전투는 계속 가렬하게 진행되였다. 수량상 우세를 믿는 적들은 우리의 화력이 미치지 않는 지점에서 산으로 기여올라 우리의 배후를 치려고 시도했다. 그 지점에서 그이상 더 싸우는것은 불리하다고 생각한 박길송동지는 우리들을 급히 철수시키더니 앞에 달리는 마차의 대렬을 따르게 하였다. 이때 적들은 길목을 막은 제놈들의 시체와 말들을 끌어옮기고 길을 내느라고 우리를 인차 따르지 못했다. 우리들이 앞서간 마차대렬을 따라서자 날은 점점 밝아오기 시작했다. 추격해온 적들은 거의거의 우리들의 뒤에 다가서고있었다. 앞에는 또한 밀영으로 통하는 치둥산의 험한 지형이 가로놓여있었다. 이제는 지형상으로도 마차대렬을 그이상 더 끌고갈수 없었다. 만일 그대로 마차를 끌고 큰길을 달린다면 적의 포위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마차대렬을 다 내버리고 사람들만 산으로 오를수도 없었다. 한알의 쌀, 한모금의 물도 원쑤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싸우는 우리로서 6두마차 20여대에 실은 식량을 적들에게 내맡기고 피할수는 도저히 없었다. 지휘부에서는 지형조건이 유리한 지점마다에 방차대를 배치하고 한쪽으로는 짐을 처리하기로 하였다. 방차대임무를 맡은 동무들은 맨 뒤의 마차를 타고 달리다가 좁은 길목이나 경사가 급한 올리막길에서 마차를 가로눕혀놓고 산턱에 매복하였다가 추격해오는 적들을 쓸어눕히군 했다. 이럴 때마다 앞서가던 우리 동무들은 산비탈 여기저기에 밀가루포대와 기타 물품들을 눈무지속에 묻어놓군 하였다. 그리고 짐을 다 부린 마차는 길에 가로눕혀놓고 적기마대의 전진을 가로막게 하였으며 마차를 끌던 말들은 산으로 끌고들어가 감추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총으로 쏘아눕혀서 파묻어가며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우리는 식량과 물자들을 적들에게 주지 않기 위하여 사방에 감추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추격하거나 우리가 감춘 물품을 찾으려고 눈속으로 달려드는 적들에게 계속 죽음을 주었다. 갈수록 산이 깊고 길이 험해져서 우리가 적들을 매복섬멸하기는 좋고 적들이 공격하기에는 불리해졌다. 그러자 적들은 그이상 더 추격해올 기력을 잃고 수많은 주검을 널어놓은채 물러서게 되였다. 적들을 격퇴한 다음 우리는 적당한 지형을 택하여가면서 물자들을 옮겨묻고는 발자국을 메워가며 밀영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초지툰부락은 물론 그 주변의 지주들과 주구놈들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되였고 한편 혁명조직들은 더욱 활기를 띠고 유격대를 원호하는 사업과 인민들을 혁명조직에 결속하는 사업을 활발히 추진시켜나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