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군부대에 들어가서

 

 

구국군부대에 들어가서
 

                                                      홍  춘  수         

 

내가 밀산현 합달하에서 사업하고있던 1932년 봄, 이 일대에로 구국군부대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그들은 《항일구국》의 구호를 들고 일제를 반대하여나섰다. 그러나 그들중 일부는 사실에 있어서 일제와 싸우지 않고 인민의 재산을 략탈하는 《토비》로 되여가는가하면 심지어는 일제에게 투항변절하며 우리 공산주의자들을 적대시하는 길에까지 들어서고있었다.

때문에 당시 이러한 구국군들을 옳게 교양하여 인민의 편에 돌려세워 진실로 《항일구국》의 길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한 과업이 긴급하게 제기되였다.

이와 같은 과업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부대에서는 많은 동무들이 구국군부대에 파견되였다.

당시 나와 김백만동무도 의란에서 밀산, 벌리 등지로 류동하는 구국군부대로 가게 되였다.

임무를 받았을 때 너무도 어렵고 중한 일이여서 나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나 혁명의 요구이며 나에게 돌려진 조직의 두터운 신임임을 생각할 때 반드시 임무를 수행하리라는 결의를 다지였다.

우리는 구국군기병대 77련대 3대대(또는 26려단 3대대라고도 했다)에 찾아갔다.

나는 요하에서 지주집 사냥군노릇을 하다가 일제놈에게 집을 불태우고 가족을 학살당한 《남승철》이라고 하면서 구국군에 입대시켜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기병대 대대장이라는자는 나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그래, 지주집에서 짐승사냥이나 하던 솜씨로 내부하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위급한 국난을 막아나선 사람이지 너같은 난민들까지 거저 먹여살려줄 자선가는 아니야.》하고는 내 손에 쥐여있는 행장을 흘끔흘끔 살피는것이였다.

가져온것이 있으면 어서 내놔라 하는 눈치였다.

이미 이런 일도 있을것을 예견한 우리는 가지고 간 아편덩어리를 그자앞에 꺼내놓았다.

《일제놈들에게 다 빼앗기고 불태운 형편이여서 가진것이란 이것뿐입니다. 매우 약소하오나 그저 저의 성의만이라도 받아주십시오.》

나는 그자앞에 《공손히》허리를 굽혔다.

대대장놈은 아편덩이를 덮쳐쥐고나서 《일단 군인이 된 이상 군률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특히 이 부대의 주인인 나에게 충직하지 않거나 허실한 행동을 할 때에는 용서치 않는다.》고 하며 내 손에 든 작은 보따리까지 털어놓으라는것이였다. 그 다음에야 그자는 나를 6중대 1소대에 배치하고 김백만동무는 지휘부에 배치했다.

그런데 내가 배치된 중대의 중대장과 소대장, 지어는 분대장까지도 나에게 《공물》을 요구해나섰다.

그러나 이미 대대장놈에게 보따리까지 빼앗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내놓을것이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인사도 차릴줄 모르는 바보》라느니, 《거지신병》이라느니 하면서 욕설과 매질로 분풀이를 하더니 가장 힘든 일들은 나에게만 떠맡기는것이였다.

아침저녁으로 장교놈들의 식사와 세수물을 섬기며 아편피우는 시중을 시키는가 하면 별의별 일을 다 하라고했다. 그리고 이미부터 이곳에 있던 《로병》들까지도 《선배》세도를 쓰느라고 장교들의 말을 관리할 때에는 자기들의 말도 소제를 하고 사료를 구해다 대라는것이였다.

이런 일들은 그 후에 그들이 다시 시키지 않더라도 미리미리 눈치를 보아가며 비위에 맞추어 《요령》있게 해놓아야 하였다. 만일 조금이라도 그들의 《뜻에 거슬리는 때》에는 참기 어려운 욕설과 매질이 차례졌다.

그래서 나는 매일 그들보다 두세시간씩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야 했으며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고 밥먹을 시간조차 얻지 못하고 끌려다니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이런 고통쯤을 예견치 않은바는 아니였다. 그러나 이러다나니 며칠이 지나도록 어느 병졸 하나 똑똑히 료해하지 못한채 하루하루 덧없이 지내보내는것이 안타까와 견딜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생각지 않던 일에 부닥쳤다. 그것은 밤늦게까지 장교들의 잔시중을 들고나서 마구간의 오물을 쳐내는사이에 몰려드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발을 헛디디여 얼음판에 넘어졌다. 그바람에 말 뒤발에 허리를 채운 나는 얼마동안 마구간어귀에 쓰러져있었다. 그러다가 모진 고통을 느끼며 겨우 다시 몸을 일으키는 때에 공교롭게도 장교 한놈이 곁을 지나다 나를 발견하였다. 그자는 내가 근무를 태만했다고 하면서 또 매질을 하였다.

고통을 참으며 사유를 이야기하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내가 반항한다고 하면서 매를 드는것이였다. 그다음에 나는 어떻게 되여 내가 자는 장소에까지 와서 눕게 되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튿날 아침에 분대장이 시키는대로 장교놈을 먼저 찾아가서 앞으로는 주의하겠다고 억울한 《죄》를 오히려 빌어야만 했다.

나는 오직 일제를 쳐부시기 위해서 당신네들에게 모든것을 바친 사람이외다. 어떠한 《군률》에도 《무조건》복종하리다 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어떤 일도 공손히 접수하고 집행하였다.

이날저녁 나는 간신히 맡은 일을 끝내고나서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쓰러져있는데 황모라는 사람이 나에게로 왔다.

그는 나와 어느정도 낯을 익힌 구국군병사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나를 위로하더니 《이런 고생을 하지 말고 도망을 치자구.》하고 귀속말로 넌지시 속삭이는것이였다.

나는 그를 찬찬히 보았다.

(이자가 어째 나에게 이런 말을 할가? 진심인가 혹은 나를 떠보려는건가?)

이런 생각이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도망을 치다니?! 거 무슨 소린가. 〈항일구국〉을 해야 할 우리가 이런 고생쯤 참지 못하고야 되나. 우린 죽어도 총을 잡고 원쑤와 싸워야지. 우리 부모형제들의 처지를 생각해보게.》

나는 가슴이 아파서 잠시 가쁜숨을 내쉬는데 그는 내 말을 가로챘다.

《친구, 그만두게. 〈항일〉이 다 뭔가. 우리도 처음에는 친구처럼 그런 말을 듣고 여기까지 끌려왔지. 그런데 생각해보게. 설사 〈항일〉이란걸 성공해두 친구나 나같은 사람들에게야 달라질게 뭔가. 아무놈이 권세를 잡아두 우리 부모들은 어차피 세금을 물고 소작을 해서 지주에게 바치긴 매일반이야. 차라리 우리가 다 가버리고 장교놈들이 항복을 하면 왜놈들이라구 우리 사람을 함부로 다 죽이기야 하겠나?》

그의 이 말에 나는 온몸의 아픔을 다 잊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시라도 더 빨리 일제란 어떤 놈들이며 무엇때문에 우리가 피흘려 싸워야 하는가를 일깨워줘야 하겠다는 책임감이 나의 가슴을 잡아흔들었다.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나 나는 이때 흥분하고있어서 한동안은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몰랐다.

우리가 《항일구국》을 반드시 실현할수 있고 우리의 부모들도 반드시 행복하게 살수 있으니 다른 생각을 말라고 우선 간단히 타일렀다.

《대대장놈도 그런 소린 자주 했어, 친구도 암만 애쓰고 있어봐야 별수 없을거야. 잘 생각해보라구. 그런데 이런 말을 누구에게도 루설했단 목이 날아나네. 이젠 〈항일〉이란 다 내던지고 〈아편〉이나 찾고 매질이나 하는 그자들인걸.》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저으기 떨렸다.

그의 말에서 많은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 나는 누워있을수 없었다.

(이런 《친구》들을 어서 더 많이 찾고 투쟁의 눈을 띄워주자! 새힘과 희망을 안겨주자!)

피곤도 고통도 말끔히 잊은 나는 인차 일어나서 다음날 할 일을 미리미리 해나갔다.

내가 마구간으로 갔을 때는 이미 새날이 밝아오고 거기에서는 언제나와 같이 추워서 부들부들 떠는 병졸들이 각기 자기 맡은 말들을 다루고있었다.

나는 이들사이에 있는 황모의 곁으로 갔다.

《친구! 어제밤에 참 고마왔네.》

나는 그가 다루는 말을 함께 손질하며 곁의 병졸들이 듣지 못하도록 나직이 말을 건늬였다.

그리고 나는 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후 나는 그를 더 깊이 료해하게 되고 그를 통하여 대대장놈이나 악질적인 장교들에게 반감을 품고있는 많은 병졸들과 친하게 되였고 차차 《비밀》에 속하는 말까지도 나누게 되였다.

나는 그들에게 부대를 탈출하거나 또는 한두사람이 개별적으로 반항을 할것이 아니라 모든 병사들이 다 단결해서 일제를 반대해 싸워야 하며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기회가 있는대로 쏘련의 로동자, 농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된 실례도 옛말하듯 들려주었다. 물론 이런것은 아직도 공개적으로는 할수 없는 말이였으므로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하는 때가 많았다.

이러한 과정에 그들은 점차 정치적으로 각성되여갔으며 나를 더욱 좋게 대하여주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내가 집안에서 아침 먹은 그릇들을 씻고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위만군놈들이 쳐들어온다!》는 고함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내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급히 총을 잡고 밖을 내다보았다.

병영앞 산모퉁이쪽에서 위만군기병대 약 20~30명이 칼을 뽑아 휘두르며 달려들어오고있었다.

이때 앞마당에 나섰던 대대장놈은 당황하여 말을 타더니 저혼자 먼저 병영뒤로 내빼는것이였다.

위만군놈들은 계속 사방에서 몰려들고있었다.

도망치려던 대대장놈은 얼마 못나가서 도로 뛰여들어오고 그뒤를 따르던 장교들과 병졸들은 더욱 갈피를 못잡고있었다.

대대장놈은 권총을 뽑아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빨리 총을 쏴라! 포위망을 뚫을 사람은 내앞으로 당장 나서라!》

그러나 어느 장교나 졸병 하나도 그앞에 나서지 않고 점점 다가드는 위만군놈들을 보며 사색이 되여있을뿐이였다.

김백만동무도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나의 곁으로 왔다.

우리는 선뜻 대대장놈의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병영앞에 마주 보이는 산모퉁이를 향해 내닫자 대대장놈은 목청껏 《앞으로!》하고 구령을 쳤다. 그러자 장교들과 병졸들은 다소 기세를 내며 우리 뒤를 따라서게 되였다.

앞에 마주오던 적들이 동요하는 기세가 보였다. 이때 우리는 계속 말을 몰아나가며 사격을 하였고 구호도 웨쳤다. 뒤따르던 구국군들의 기세도 한결 높아졌다.

그리하여 위만군 몇놈은 말에서 떨어지고 기타 놈은 되돌아서서 산옆으로 내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놈들을 계속 추격했다.

얼마후 다른 위만군놈들이 우리의 뒤에 달라붙었다.

나는 이때 대렬 맨 뒤에서 구국군들을 엄호해야 하였고 김백만동무는 대대장놈을 따라야 했다.

이미 《친구》로 된 몇몇 병졸들이 나를 도와나섰다.

나는 그들과 함께 추격해오는 위만군기병대들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다가 산기슭을 돌아 벌판지대를 지날 때에 그곳 수림에 불을 질렀다.

뒤따르던 위만군기병대들은 겨울의 드센 바람을 안고 울창한 수림을 무섭게 태우는 불과 연기속에 휩싸였다. 이때 높은 산중턱으로 달려오르다가 벌판쪽을 내려다보게 된 구국군들은 기쁨의 환성을 올렸다.

그리고 어떤 장교들은 저희끼리 쑤군거리며 나를 보는것이였다.

이때 나는 그들에게 《단결하여 싸우면 적들이 불피코 우리앞에 무릎을 꿇게 될것이다. 모두 용감히 싸워 자유로운 제땅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말했을뿐이였다.

그후 병졸들은 물론이고 대대장놈도 나를 매우 신임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장교들은 나를 오히려 눈에 든 가시처럼 보는것이였다. 나때문에 자기들의 값이 떨어졌다고 하면서 어느짬에 나를 없애치우자고 타산하였다.

그때 일부 장교들은 《대대장님의 덕이 높아서 우리모두가 적들을 이겼고 졸병놈들의 사기도 충천한 때에 큼직한 놈을 하나 잡고 군량을 준비합시다.》고 하면서 대대장놈을 추동했다.

이 말에 대대장놈은 한수 더 썼다.

《내가 사실 사람 볼줄 알지. 김백만이나 남승철이를 〈공산당패〉라고 꺼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들이 이번에 한몫 했어. 이번에도 그들을 데리고가서 더 듬직한 일을 한번 하기로 나는 이미 결심했네.》

그리하여 벌리의 위지주집을 습격하기로 했다는것이다.

나는 대대장놈의 련락병을 통하여 이런 내막을 알수 있었다.

대대장놈이나 다른 장교들이나 모두 《지주집쯤이야》하는 생각으로 전에 없이 기분을 돋구며 서둘러 떠났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달랐다.

벌리에 있는 지주놈은 부락방비를 강화하고 부근 산우에 망원초까지 세워놓고 밤낮 눈을 밝히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구국군대대장놈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찰도, 자기 력량타산도 없이 위풍만 떨며 곧추 성문을 향해 달려들어갔다.

그리하여 습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자칫하면 지주놈이 쳐놓은 포위망에 걸려들어 또 한번 죽을 곤경에 빠질번했다.

이때 나는 분대장인 백가가 부상당한것을 구원하여 겨우 말을 타고 빠져나왔다.

병영으로 돌아온 뒤에 대대장놈과 장교들은 제 분을 못이겨 속태우고있었고 병졸들은 더욱 그들을 원망하는 반면에 나에 대한 호의는 두터워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남승철이가 수상하니 그자를 두어두고 잘못 다루다간 대대장의 위신도 깎이게 될것이며 또 무슨 일이 있을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고자질하는 장교들의 꾀임수에 대대장놈이 흔들렸다.

그리하여 어디한번 시험해보자는 그들의 태도를 나는 알게 되였다.

어느날 대대장놈은 나를 직접 불렀다. 그리고 한개 소대인원을 나에게 맡기면서 시우즈부락을 습격하라는것이였다.

《그 부락놈들은 모두 공산당이다. 구국군은 일본놈들뿐만아니라 공산당도 반대해 싸운다는것을 알지.

백성이라고 해서 조금도 사정보지 말고 닥치는대로 많이 빼앗아오란말야.》

소대로 돌아오는 나의 걸음은 무거웠다.

(유격대원인 내가 인민의 재물을 략탈하다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못한다.)

이런 고충을 알리 없는 병졸들은 자기 소대가 단독적으로 행동하게 된것을 기뻐하며 전에없이 흥성거리는것이였다.

나는 할수 없이 그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대대장놈에게서 습격명령을 받은 부락으로 가는 길과 벌리쪽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나는 대오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휴식명령을 내린 다음 그들과 마주앉았다.

《가난한 사람들뿐인 시우즈부락을 치기보다 금품을 많이 얻을수 있는 벌리의 위지주집을 습격하는것이 어떤가.》

나는 이렇게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적지 않은 병졸들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대대장까지 전부 가서도 성공하지 못한 위지주집을 우리 힘만으로 해낼수 있느냐는것이였다.

나는 이때 물론 내 생각을 다 털어놓고 말할수는 없었다. 그들중에는 아직 인식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또 대대장놈과 내통할수 있는자도 있을것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그들을 타일렀다.

… 생각해보라. 밤낮 일을 하고도 먹을것이 없고 입을것이 없어서 한숨과 눈물이 그칠새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습격했대야 무엇을 얻겠는가. 허탕을 치고 돌아서면 우선 대대장이 얼마나 노여워하겠는가.

그러나 벌리의 위지주놈은 해마다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곡식도 있고 고리대를 해서 모아들인 수천만금이 있으니 이런 곳을 쳐서 많은 금품을 대대장에게 바치면 우리는 모두 칭찬을 받을게 아닌가. 물론 습격하기는 어렵지만 모두 뜻과 지혜를 합쳐서 지난번에 전체가 동원되여 못한것을 이번에 우리가 해내면 오히려 더 자랑스러울것이 아닌가.…

나의 이러한 말은 계급의식으로 눈뜨기 시작한 《친구》들에게는 많은것을 암시하여주었으나 아직 인식이 부족하며 대대장이나 악질장교들과 내통하는 자들에게는 대대장의 명령을 《요령》있게 집행하자는것으로 해석될수 있었다.

이렇게 황모와 같은 몇몇 병사들이 먼저 지지해나서도록 하자 그들은 모두 지주집을 치는것이 더 좋다고 찬동해나섰다.

이날밤 대오를 인솔하고 지주집 부근 숲속에 다달은 나는 병사들에게 큰 사닥다리 4개를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믿음직한 병사 한명만 데리고 은밀히 성밑에 접근하여 지주집 무장대의 동향과 지형을 세밀히 정찰했다.

이튿날 새벽, 나는 토성 북문쪽고지에 일부 인원만 배치하고 기타는 남문쪽에 은밀히 접근하여 대기하게 하였다.

이윽고 나의 신호에 의하여 북쪽고지의 병사들이 북문포대에 대고 집중사격을 하였다. 토성안에서도 인차 맞불질을 하였고 남쪽포대에서도 떨쳐나왔다.

이때 나는 북쪽고지에서만 계속 사격을 하며 점점 접근하게 하고 남쪽에서는 아무런 기색도 없이 있게 하였다. 한동안 맞불질이 계속되자 성안의 무장대들은 북쪽성문과 포대로만 집중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남문쪽에 대기한 병사들에게 사닥다리를 놓고 남쪽포대를 감쪽같이 점령하게 하였다. 그러나 불과 한개 소대인 우리의 력량으로써 그이상 더 공격할수는 없었다. 이미부터 이런 점을 타산하고 갔던터이라 우리는 잠시 공격을 중지하고 위지주놈에게 편지를 보냈다.

《구국군을 도와나서라. 만일 이에 응하지 않고 저항하면 구국군련합세력은 너의 집을 포위하고 모조리 불살라치울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받은 위지주놈은 인차 회답을 보내왔다.

구국군렵합세력이 동원되면 곤난할것을 타산한 지주놈은 우리의 요구대로 구국군을 돕겠으니 요구되는것을 제기해달라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주놈과 담판을 하고 수많은 금품을 《원병자금》으로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이렇게 지주집을 소수인원으로 습격하고 돌아온 나는 다량의 로획품들을 대대장에게 바쳤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치기보다 지주를 치니 얻은것이 많았다.》고 먼저 털어놓았다.

대대장놈은 처음에 명령대로 하지 않은것을 추궁하였으나 워낙 많은 금품과 아편덩어리를 고스란히 자기에게 바치는 나의 《충직성》과 또한 전부대가 가서도 실패한 위지주놈의 집을 단 한개 소대력량으로써 습격하고 돌아온데 대하여 은근히 위압을 느끼며 다시 생각해보는것 같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병사들과 더욱 친숙해졌다.

이때 김백만동무와 나는 이미 교양주고 조직한 병사들을 통하여 비밀선전공작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악질적인 장교들과 그의 졸개들이 대대장놈에게 자주 드나드는것을 살피였다.

이럴 때에 어떤 병사들은 대대장이 우리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도망치자고도 하고 또 대대장과 악질적인 장교들을 처단하자고도 했다.

나는 그들의 과격한 의견을 타이르면서 신중히 행동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나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김백만동무와 토론하고 비상대책들은 늘 갖추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김백만동무가 나에게 왔다. 김동무와 나는 대대장놈이 시키는대로 또 어느 지주집을 습격하고 이틀만에 돌아와보니 대대장놈은 남아있던 부하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가버리고 없었다.

나는 인차 병사들을 데리고 그들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며칠을 다녀도 그들이 간 곳을 짐작할수 없었다.

《차라리 잘되였습니다. 항일군중들이 있는 곳으로 갑시다.》

다수 병사들의 이 의견을 나는 반가이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병사들도 함께 가게 되였더라면 얼마나 더 좋겠소.》하고 나의 솔직한 심정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대대장놈에게 끌려갔던 병사들이 그후에 우리 근거지를 찾아왔다. 그들은 토비노릇을 강요하며 일제에게 투항하려는 대대장놈과 그를 추종하는 반동적인 장교들의 경향을 참을수 없어서 자기들끼리 일부 악질적인 놈들을 처단해버리고 일부는 놔준다음 우리 근거지로 왔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그 일을 지금도 나는 자주 회상하면서 맡겨진 혁명임무를 반드시 수행하자고 마음먹고 당과 수령의 의도대로만 한다면 그 어떤 일도 못해낼것이 없다는 확신을 다시금 굳게 다지게 된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