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쑤는 승냥이다

 

 

원쑤는 승냥이다
 

                                            황  금  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동만일대에 유격근거지가 창설되고 혁명력량이 날로 확대강화되여감에 따라 이에 질겁한 일제침략자들은 유격대와 인민들과의 혈연적인 련계를 끊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원쑤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부락에 불을 질렀으며 무고한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살륙하였다.

적들의 만행은 1933년 가을철부터 더욱 악랄해졌다.

이 시기에 연길현에서 지하공작을 하고있던 나는 그해 9월말경에 팔도구부근에 있는 왕바버즈라는 부락에 가있었다.

어느날 아침이였다.

나는 삼도만으로부터 오는 통신을 받게 되였다.

통신에는 며칠후 일제《토벌대》가 삼도만에서 떠나는데 놈들은 왕바버즈를 거쳐서 연길로 나간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통신을 받은 나에게는 다른 지방에서 있은 전례로 보아 놈들이 왕바버즈부락을 지나가면서 만행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바삐 부락사람들을 산으로 피신시켜야만 하였다.

나는 그 즉시로 부락에 있는 백호장을 찾아갔다.

나는 그에게 사유를 말하고나서 한사람의 피해도 받지 않게끔 부락사람들을 산으로 피신시켜야 안전할수 있다는것을 차근차근 타일렀다.

그런데 백호장은 뜻밖에도 《원, 별소릴 다하우, 아니〈토벌대〉야 의례히 제 갈 길을 가겠는데 피하긴 뭣때문에 피한단 말이요.》라고 하면서 나의 의견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적들의 야수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백호장을 설복하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의 적극적인 활동에 질겁한 원쑤들이 도처에서 무고한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있다는것을 이야기해주면서 인민들을 꼭 피신시켜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백호장은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태연스럽게 말하는것이였다.

《날씨가 찬데 늙은이들과 어린것들을 데리고 글쎄 어디로 간단 말이요. 이제껏 아무 일도 없었는데 래일이라고 봉변을 당하겠소?》

나는 너무나 안타까와서 백호장의 팔소매를 붙잡고 애원하다싶이 말하였다.

《일제놈들이 짐승이라는것을 왜 모르세요. 일제놈들때문에 사방에서 불이 붙고 사람들은 무리죽음을 당하고있지 않아요. 마을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는 때인데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말구 어서 빨리 모두 산으로 피신하도록 합시다.》

그렇지만 워낙 고집이 센 백호장은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백호장이 응하지 않게 되자 그길로 나는 매개집들을 찾아다니면서 피신하도록 타일렀다.

그러나 아직 일제놈들의 봉변을 당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은 역시 백호장처럼 적들이 공산당원들이나 죽이지 죄없는 인민들은 죽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들 있었다. 다만 몇몇 사람들만이 산으로 피신해 들어갔다.

왕바버즈의 웃마을인민들은 벌써 가장집물들을 꾸려가지고 한사람도 빠짐없이 산으로 피신해 들어갔다.

나는 다시금 백호장을 찾아가서 타일렀으나 막무가내였다.

《왜놈들도 사람이겠지, 설마 아무 죄도 없는 우리야 죽이겠소.》

나는 제 고집만 부리는 백호장을 도저히 타일러 내는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되돌아설수도 없었다. 나는 다시 여러가지로 납득되게끔 그에게 타이르기 시작하였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백호장은 오히려 시끄러워 하면서 《무슨 참견이요. 이 마을은 내가 책임질테니 넘려마시오.》라고 하면서 얼굴까지 붉히는것이였다.

《다 죽은 다음에 책임을 져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자 그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죽기는 왜 죽겠소. 우리가 일본사람들을 죽였소? 공산당에 들었소?》

《그러지 말고 다시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나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백호장의 화가 사그라질 때를 기다려 또다시 그를 찾아갔다.

나는 그에게 일제놈들은 승냥이이라는것에 대하여 거듭 해설해주었다.

이리하여 그는 할수없이 마을사람들을 피신시킬것을 나에게 약속하였다.

나는 그때에야 마음을 놓고 마을을 떠날수 있었다.

그런데 백호장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내가 마을을 떠난후 백호장은 이궁리저궁리하다가 부근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가 《토벌》을 온다는데 어떻게 하라느냐고 물어보았다.

이때 경찰놈들은 백호장에게 《너희들이야 무슨 피난을 가겠는가, 아무 일도 없으니 걱정말라.》고 하였다 한다.

이 말에 그만 백호장은 속아넘어갔으며 그리하여 왕바버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해질무렵이였다.

장재촌 수림속에 있던 인민혁명정부 사무실에서 방금 회의가 끝났을 때 웬 청년이 마당안으로 비칠거리며 뛰여들더니 푹 쓰러지는것이였다. 웃동을 벗은 그의 얼굴은 꺼멓게 그슬려 좀처럼 알아볼수 없게 되였다. 그는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내가 잘 알고있는 왕바버즈에 사는 청년 왕동무였다.

나는 필경 원쑤들이 왕바버즈에서 무슨 일을 저질러놓았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왕동무는 사무실에 들어오자 눈물을 줄줄 흘렸다.

《동무! 어떻게 된 일이예요?》

그래도 그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만 하였다.

우리는 급히 병원에 련락하여 왕동무의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옷을 갈아입혔다.

몇시간이 지난후에야 그는 눈물을 거두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동무가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날이였다.

가을걷이에 일손이 바빴던 왕바버즈농민들이 아침일찌기 전야로 나갔을 때 갑자기 《토벌대》놈들이 마을로 누렇게 밀려들었다. 일제놈들은 멀리서부터 불질을 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일제놈들은 인차 백호장을 불러내여 《이놈아, 너희들은 공산군하고 내통하고있지? 바른대로 대지 않으면 모조리 죽여버릴테다.》라고 을러댔다.

백호장은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일제장교놈은 그의 멱살을 틀어잡고 다짜고짜로 뺨을 몇개 후려갈기더니 한시간 이내로 마을사람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여놓으라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나서 《토벌대》놈들은 이집저집 돌아다니면서 닭을 쏘고 소를 끌어내였다.

삽시에 마을은 수라장으로 변하였다.

놈들이 어찌나 호되게 굴었던지 마을에 남아있던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 한곳에 모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곳이 바로 왕동무네 집마당이였다.

아이를 업은 아낙네들, 지팽이를 짚고온 늙은이들, …마당안에 모여선 모든 부락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이고 일제장교놈을 지켜보았다.

숨이 막힐듯 한 삼엄한 분위기가 온 마당안을 뒤덮었다.

장교놈은 주구를 시켜 호구대장을 가지고 사람들을 세여보기까지 하였다.

이때 왕동무는 다락에 숨어 밖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마당에는 기관총을 2정이나 걸어놓고 대문으로는 부락사람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총창을 쥔 놈들이 주런이 지켜서있었다.

얼굴이 새까맣게 된 백호장은 장교놈에게 더듬거리면서 겨우 말하였다.

《나리님, 우…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십니까. 제…제발 그러지 말고 용서해주시오.》

주구놈이 그의 말을 통역하느라고 장교놈의 턱밑에 가서 무엇이라고 중얼거렸다.

통역하는 말을 채 듣기도전에 장교놈은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발작한놈처럼 소리를 질렀다.

《무엇이 어째? 네가 진짜공산당이구나.》

백호장은 와들와들 떨며 애원하다싶이 말하였다.

《아니 그…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놈아 잔말말아, 우리는 네 배속을 다 알고있다. 당장 모가지가 날아날줄 알아라.》

백호장은 겁에 질려 그만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설마 일제놈들이 죽이기야 하겠는가 하고 믿고있었던 그의 환상은 산산이 깨여졌던것이다.

마당에서는 또다시 장교놈의 거치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집에서는 무엇을 꾸물거려.》

왕동무는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

그때까지도 부엌에 숨어있던 왕동무네 가족들도 끝내 밖으로 끌려나왔던것이다.

《죽일놈들!》하고 왕동무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맨주먹으로써는 어찌하는수가 없었다.

자기도 끌려나가기만 하면 영낙없이 죽을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때에야 자기가 행여나 해서 산으로 피신하지 않은게 얼마나 암둔하고 어리석었는가 하는것을 깊이 깨달았으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때마침 장교놈이 기관총을 걸어놓은데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갔다.

(모조리 쏴 죽이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왕동무는 더 주저함이 없이 다락에서 뛰여내려 뒤문으로 빠져나갔다. 마구 달리던 그는 강낭짚낟가리에 부딪치자 곧 그것을 헤집고 들어가 숨었다. 놈들의 경계가 심하여 멀리 달아날 틈도 없었거니와 마당에 붙잡혀나간 가족들이 걱정되여 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왕동무는 숨을 죽이고 동정을 살폈다.

어디선가 개들이 미친듯이 짖어댔다.

돌연히 마당쪽에서 자지러지는듯 한 기관총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화약냄새가 확 풍겨오고 놈들이 꿱꿱 고함지르는 소리가 왕동무의 가슴을 짓눌렀다.

(악귀 같은 놈들이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누나.)

왕동무는 치를 떨었고 분통이 치밀어 두 주먹을 불끈 쥐였다.

귀청을 째는듯 한 총소리가 한참동안이나 들리더니 얼마후에 잠잠해졌다.

주위에는 연기가 꽉 찼고 금시에 숨이 막힐듯 하였다. 강낭짚단 짬으로 검붉은 불길이 하늘을 찌르는것이 보였다. 놈들은 마을사람들을 가두어놓고 기관총을 휘두른후 왕동무네 집에 불을 달아놓았던것이다.

원쑤들은 마을을 싸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에 불을 지르고 곡식무지에다가도 불을 달아놓았다.

왕동무는 불붙는 강낭짚낟가리에서 기여나와 불이 달린 옷을 벗어던지고 겨우 산으로 기여올라왔다.

마을은 온통 불바다로 변하였다.

그날밤을 산에서 지새운 왕동무는 놈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부락에 내려가보았다.

모든것이 다 타버렸다. 재만 남은 자기 집터에 다달은 그는 그자리에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마당에 모였던 그 많은 사람들이 한사람도 남김없이 학살되였던것이다.

정신잃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 처참한 정경을 바라보던 그는 한참후에야 악몽에서 깨여나듯 소스라치며 몸을 떨었다.

그는 하나하나의 시체를 눈여겨보았다. 설마 죽이기야 하랴고 일제놈들을 믿고있던 백호장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져있었다.

왕동무의 안해는 어린것을 꼭 붙안고 쓰러져있었다.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펄펄 뛰던 처자가 죽었다는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도 억울한 현실앞에서 어이없어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원쑤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과 형언할수 없는 슬픔으로 하여 분노에 떨면서 이를 악물었다.

(개놈들, 어디 두고 보자. 이 원쑤를 백배, 천배로 갚을테다.)

엄연한 현실앞에서 왕동무는 진정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 하는것을 비로소 똑똑히 깨달은것이다.

《원쑤는 야수이며 인간의 탈을 쓴 승냥이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최후의 피한방울까지 다 바쳐 이 야수들을 쳐부시겠습니다.》

왕동무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아팠다. 한사람이라도 더 피신시키도록 하지 못한것이 무척 괴로왔고 죄송스러웠다.

이때 나뿐만아니라 모든 동무들이 원쑤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하여 이를 갈았다.

《나에게 총을 주시오, 원쑤와 싸우겠습니다.》

왕동무는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옳소, 그 길만이 당신이 나아갈 길이요.》

우리는 왕동무를 진정으로 위로해주었고 뜨겁게 포옹해주었다.

이날 우리는 그에게 일제침략자들의 본질과 그의 야수성에 대하여 그리고 유격투쟁의 정당성과 혁명의 전망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혁명에서는 그 어떤 동요도 방관적태도도 허용할수 없으며 원쑤와는 끝까지 무자비하게 싸워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주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왕동무는 거듭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똑똑히 알았습니다. 나는 원쑤들에게 학살된 부모처자들의 복수를 위하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목숨바쳐 싸우겠습니다.》

이리하여 왕동무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실지체험을 통하여 자기의 지난날을 깊이 뉘우친 왕동무는 유격대에 입대한 이후 원쑤들과의 격전에서 항상 용감하게 싸웠다.

《원쑤는 승냥이다》ㅡ이는 비단 일제침략자들뿐만아니라 오늘 남반부를 강점하고있는 미제승냥이들에 대하여서도 꼭같이 규정지어 말할수 있다. 우리는 이 승냥이들을 지구상에서 영영 쓸어버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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