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남이와 함께 김 철 호
자유의 강산에서 우리 자라고 평화의 락원에서 꽃피려 하는 새 나라 어린 동무 노래 부르자 세상에 부러울것 그 무엇이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 아동단원들은 이 노래를 즐겨부르며 자유의 강산, 평화의 락원으로 꽃필 조국의 앞날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이 노래를 부르며 싸우던 아동단원들을 회상할 때마다 나에게는 복남소년의 모습이 선히 안겨오군 한다. 내가 복남이를 처음 알게 된것은 항일유격대에 입대하기전인 1933년 여름이였다. 당시 삼도만유격근거지에서 당구부위로 활동하고있던 나는 상급의 지시로 적통치구역에 대한 공작을 담당하고 도무거우지방으로 파견되게 되였다. 임무는 그 지방에 오래동안 머물러있으면서 군중들을 혁명조직에 묶어세우는 한편 적정탐지, 식량공작 등의 사업을 하는것이였다. 바로 이러한 지하공작임무를 12살나는 아동단원인 복남이와 같이 맡게 되였다. 복남이는 본래 연길현 왕우구 장락동에서 자랄 때부터(당시 8살) 아동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나이보다 키는 퍽 작은 축이였지만 아주 령리하여 사립학교에 다닐 때부터 학생들속에서 공부를 제일 잘 했을뿐만아니라 아동단에서 주는 임무도 어김없이 수행하여 복남이라면 모르는 학생들이 없었다. 그런데 복남이는 하루아침에 부모와 집을 잃고 의탁할 곳이 없는 고아로 되였다. 그것은 일제원쑤놈들의 마수가 장락동에도 뻗치여 아무런 죄도 없는 복남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무참히 학살했기때문이다. 그후부터 복남이는 근거지인민들의 품속에서 자라게 되였다. 복남이는 아동단 분단장으로 사업하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더욱 열성을 다하였다. 나는 복남이와 같이 지하공작을 하게 되였을 때 아무 두려움없이 선뜻 나선 복남이가 한없이 미더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린것이 혹 실수나 하지 않을가 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아 그에게 지하공작경험도 알려주고 사업할 때 주의하여야 할 여러가지 점에 대하여서도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며칠후 나는 복남이와 같이 조선에서 살수가 없어 동북으로 건너온 어머니와 아들로 가장하고 도무거우를 향하여 떠났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어떤 할머니네 사랑채에 거처를 정하고 비밀활동을 시작하였다. 복남이의 임무는 우선 마을에서 아동단을 조직하고 견실한 소년들을 그 주위에 광범히 결속시키는것이였다. 복남이는 마을의 어린애들과 잘 휩쓸려 놀기도 하고 그들의 일손을 도와주기도 하고 이야기도 잘했기때문에 어느새 그들과 친숙해졌다. 그러나 아동단을 조직하는데는 더욱 심중하여야 할 필요가 있어서 나는 하루 복남이와 구체적인 사업방법을 의논하였다. 나는 복남이에게 생소한 곳인데다가 경찰과 자위단, 주구들의 경계가 심하고 아이들속에도 주구놈의 자식들이 많기때문에 아동단조직에서는 더욱 경각성을 높여 심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복남이는 《어머니, 이렇게 하는것이 어때요? 내가 드러누워 앓는척 할터이니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고 동무해주라고 부탁하세요. 그러면 그애들이 찾아올게 아니예요. 그때 그들과 사귀면 경찰놈들도 속아넘어갈거야요.》 나는 복남이의 지혜가 하두 신통하여 그때까지 단 한번도 실수한적이 없었기때문에 그의 의견대로 하기로 하였다. 나는 사업을 시작할 때 마음속에 은근히 품었던 두려움이 공연한 걱정이였다고 생각하면서 복남이가 더욱 미더워졌다. 이튿날부터 복남이는 자리에 누워서 《앓기》시작하였다. 나는 마을아이들을 만나면 《얘들아, 지금 우리 복남이가 앓으면서 너희들을 보고싶어 한다. 우리 집에 가서 동무나 해줘라.》고 했다. 이리하여 마을의 여러 아이들이 병문안을 오게 되여 복남이는 계획한대로 그들과의 사업을 심화시켜나아갔다. 복남이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했고 손재간도 퍽 좋았다. 복남이는 집에 놀러온 아이들에게 조선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겪고있는 쓰라린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피리 같은것도 곧잘 만들어주면서 그들과 더욱 친하게 사귀였다. 이 과정에 복남이는 그들의 사정을 낱낱이 파악하고 아동단에 받아들여야 할 아이들을 점찍어놓았다. 그후부터 복남이는 낮이면 그들과 함께 소도 먹이고 꼴을 베는 일도 도와주면서 어린이들도 한데 뭉쳐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을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고 선전하였다. 마을아이들은 복남이가 자기들의 사정을 잘 알아주며 일도 잘 도와주고 옳은 말을 잘하기때문에 그를 무척 따르게 되였다. 이렇게 사업하여 복남이는 도무거우에 아동단을 조직하고 20여명의 소년들을 묶어세우게 되였다. 아동단을 조직하자 복남이는 그들과 함께 적정정찰을 담당하여나섰다. 그는 동무들과 함께 우정 위만군병영곁에 가서 공차기를 하며 놀다가는 공을 병영울타리안으로 슬쩍 차넣었다. 그리고는 엉엉 울면서 보초놈에게 공을 찾는척 하면서 병영배치, 무기와 인원까지 낱낱이 정찰해가지고 돌아오군 하였다. 그러다가도 놈들에게 따귀를 얻어맞아 볼이 뚱뚱 부어가지고 돌아오는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런 때에는 집에 돌아와서 《이놈들 보자! 오늘은 네놈들에게 매를 맞았지만 인제 네놈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겨줄테다. 아버지, 어머니의 원쑤를 백배, 천배로 갚고야말테다.》하고 두주먹을 불끈 쥐고 나직이 그러나 힘있게 부르짖군 하였다. 이럴 때면 나는 가슴을 에여내는듯 아팠다. 나는 여러번 남몰래 울었다. 그러면 복남이는 어느새 눈치를 채고 《어머니, 일없어요. 아무렇지도 않는데요뭐.》하고 도리여 나를 위안하려 드는것이였다. 도무거우에서 나는 주로 부녀회사업과 유격대에 보낼 물품구입으로 몹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는데 복남이는 내 일도 애써 도와주었다. 밤에 부녀회원들이 회의를 할 때에는 보초를 섰으며 유격대에 보낼 물건을 사들일 때에는 나와 함께 짐을 지고 명월구의 장거리까지 갔다오기도 하였다. 이것은 어린 복남이에게 매우 힘겨운 일이였다. 그러나 복남이는 언제 한번 힘들다는 말을 입밖에 내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활동하던 어느날 복남이는 《토벌대》놈들이 유격근거지에 쳐들어간다는 중요한 정보를 탐지하였다. (빨리 유격대에 알려야 한다. 근거지인민들의 생명이 우리 두사람에게 달려있다.) 이렇게 생각한 우리는 한시간도 지체할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너머 친척집에 나들이를 간다고 이웃에 일러놓고 복남이와 함께 집을 떠났다. 얼마간 걷다가 슬쩍 산으로 오르자 80리나 되는 유격근거지를 향하여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날따라 내리기 시작한 비는 산에 오르자부터 점점 억수로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계속 달렸다. 어떤 좁은 골짜기로 빠져나가던 우리가 길가에 있는 자그마한 귀틀집옆에 방금 다달았을 때였다. 10여명의 경찰놈들이 마주오고있었다. 피할래야 피할수가 없었다. 나는 복남이를 이끌고 얼른 귀틀집에 뛰여들었다. 집은 비여있었다. 나는 다짜고짜로 복남이를 아래목에 눕히고 헌 이불을 푹 씌워놓았다. 부엌을 살펴보니 솥에서 물이 설설 끓고 부엌바닥에는 방금 캐온듯한 젖은 흙이 가득 묻은 감자가 한함지 놓여있었다. 밖에서는 놈들이 다가오는 구두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핏 생각되는바가 있어서 부엌으로 달려내려가 흙묻은 감자로 치마며 팔소매를 몇번 문질러 흙투성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나무를 아궁에 집어넣었다. 이때 경찰 한놈이 부엌문을 벌컥 열어제끼고 비에 젖고 흙투성이가 된 내 모양을 살기어린 눈초리로 쏘아보며 《어디 갔다 왔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주인인척 하고 《메밭에 감자캐러 갔다가 비를 맞았소.》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음 순간 그놈은 방문을 열어제끼고 복남이를 가리키며 《저건 누구야!》하고 따져물었다. 나는 모든 힘을 다하여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면서 《내 아들인데 감자를 캐러 같이 갔다가 그만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져 다쳤소.》하고 꾸며댔다. 그러자 그놈은 미덥지 않다는듯이 흙묻은 구두발로 방안에 들어서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눈앞이 아찔하였다. 빨리 손을 써야 하였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경찰놈이 복남이를 일으켜세우고 몸조사를 하여 품에 있는 실, 물감, 잉크 등이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것이 끝장이다.) 나는 눈을 감고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그놈은 복남이의 이불을 발길로 떠들썩 해보는것 같더니 뜻밖에도 힁하니 밖으로 나가버리는것이였다. 경찰놈이 큰길로 나가자 나는 후하고 큰숨을 내쉬며 방안으로 들어가 그때까지도 꼼짝 안하고 누워있는 복남이가 뒤집어쓴 이불을 들어보았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몸서리쳤다. 복남이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나는 금방 경찰놈이 두말없이 달아나고만 까닭을 그제야 알았다. 복남이는 내가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져 다쳤소.》하고 경찰놈을 속이는 말을 듣자 이발로 제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내여 얼굴에 온통 발라놓았던것이다. 나는 급히 복남이를 이끌고 숲에 들어가서 치마자락을 찢어 그의 손을 처매주었다. 그리고 정체가 발로되면 귀중한 정보를 유격대에 전할수 없다는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 자기의 손가락을 깨문 복남이를 부여안고 나는 울었다. 이렇게 위험한 순간을 모면한 우리는 그날로 근거지에 도착하여 적정을 보고함으로써 유격대원들이 적의 《토벌》에 대처할 만단의 준비를 갖출수 있게 하였다. 그때 복남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근거지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은 누구나 눈물을 금치 못했다. 그후 복남이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영광스러운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유격대원이 된 복남이는 부대지휘부의 련락병으로서 그후에는 호위병으로서 참으로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던 복남이는 1941년 봄 쟈피거우지방부근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싸우다 희생되였다. 복남이가 희생된 날 밤 나는 우등불곁에 앉은채 밤새껏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친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해왔고 어렸을 때부터 사선을 헤치며 같이 싸워온 복남이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된것이 원통하여 나는 목놓아울었다. 《복남이!》, 지금도 그 이름을 불러보며 같이 싸우던 그때를 회상하는 나의 가슴은 미여지는것만 같다. 오직 혁명을 위하여, 조국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서슴없이 목숨바쳐 용감히 싸운 참된 꽃봉오리들! 오늘 복남이와 같은 아동단원들이 지녔던 고귀한 혁명정신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극진한 배려밑에 조국의 참된 아들딸로 씩씩히 자라나는 우리 나라의 모든 소년단원들의 가슴속에 간직되여 영원히 빛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