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께서 혁명의 진두에 서계시기에

 

 

그이께서 혁명의 진두에 서계시기에

                                                       

박  성  철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15성상에 걸쳐 진행된 항일무장투쟁과정에는 형언할수 없는 난관과 애로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략전술에 의하여 혁명앞에 가로놓인 온갖 가시덤불을 용감히 뚫고나왔으며 영웅적으로 싸워 마침내 승리하였다.

항일무장투쟁의 그 어느해, 어느날을 막론하고 곤난하지 않은 때가 없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1938년 11월 남패자회의를 전후한 시기는 가장 간고하고도 준엄한 시련의 시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적방침에 의하여 1936년이후 새로운 형태의 백두산근거지가 창설됨에 따라 항일무장투쟁이 더욱 확대강화되고 특히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의 영향하에 반일투쟁의 불길이 전국적범위에서 더욱 세차게 타오르자 일제는 당황망조하게 되였다.

놈들은 저들의 침략적야욕을 실현함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장애로 되였던 항일유격대의 활동을 진압하지 않고서는 이미 벌려놓은 침략전쟁을 안심하고 진행할수 없음을 타산하였기때문에 더욱더 발악하여나섰다.

더우기 1938년 여름 쏘련연해주 남단 하싼호(장고봉)지역을 침공하였다가 심대한 타격을 받은 일제는 쏘만국경지대에 집결시켰던 관동군의 주력과 중국본토에 투입하였던 일부 병력까지도 끌어내여 무려 수십만에 달하는 대병력으로써 동만과 남북만 일대 특히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이 활동하고있는 서간도일대의 항일유격대를 《소멸》한다고 하면서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여나섰다.

놈들의 야수적인 탄압에 의하여 조국광복회산하 지하혁명조직들이 심대한 손실을 받게 된 조건에서 혁명운동의 앞길에는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다.

당시 조성된 이러한 사태를 제때에 수습하지 않는다면 항일유격부대들은 적들의 포위속에서 각개격파당할수 있었으며 조선혁명은 걷잡을수 없는 난국에 빠져들어갈수 있었다.

정세는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적들의 공세에 대처하여 각 부대의 력량을 수습하여 주도권을 계속 튼튼히 틀어쥐고 혁명을 계속 앙양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취하여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정세를 명철하게 판단하시고 비상한 결심으로 조성된 위기를 타개하며 조선혁명을 난국에서 건져내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나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과의 투쟁에서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결정적인 반격에로 이행할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를 구상하시였으며 그를 실현하기 위하여 적들의 포위속을 뚫고 부대들을 몽강현 남패자에로 집결시키시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남만에 진출하였던 내가 속한 부대는 1938년 여름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몽강현 남패자를 향하여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그동안 적들의 2중3중의 포위속을 뚫고나오는 과정에 내가 책임진 중대성원들이 외차구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을 진행하면서 겪은 고통이란 이루 다 말할수 없이 컸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다 해진 여름옷을 입고있어 추위를 막을길이 없었고 식량이 떨어져 굶으면서 휴식할 짬도 없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전투를 거듭하느라니 대원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적들은 이리떼처럼 곳곳에서 달려들면서 우리의 발꿈치를 밟듯이 뒤따라 붙었고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아나섰다.

놈들은 심지어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삐라를 뿌리면서 어리석게도 우리의 사기를 꺾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우리는 추호도 굴하지 않았다. 우리는 쓰러지면 부둥켜안아 일으키면서 이를 악물고 이런 말로 서로 고무하였다. 《정신을 차리오! 며칠만 더 참으면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곳으로 갈수 있소.》

적들의 그 어떤 흉책도 곤난도 이같이 굳은 신심을 안고 전진하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부닥치는 곤난들을 용감히 뚫으며 남패자에로 한걸음한걸음 다가갔다. 그것은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에 의해서만 혁명은 준엄한 시련을 박차고 더 거세차게 전진할것이며 우리는 더욱더 힘있게 투쟁하게 되리라는 그 하나의 커다란 희망과 신념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마치도 어버이를 만나러 가는 뜨거운 심정 그대로였다.

1938년 11월말에 우리는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꼽아 기다리고계시는 몽강현 남패자의 울창한 수림속에 당도하였다.

그처럼 마음속에 그리던 그이의 따뜻한 품에 안긴 그때의 기쁨과 감격을 어찌 이루 다 표현할수 있으랴.

지금도 나의 기억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의 보고를 들으시고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이 삼삼히 떠오른다.

혁명의 승리를 믿고 그처럼 모진 고생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이곳까지 찾아온 동무들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며 불사조들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필승의 신념으로 살며 싸워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처럼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을 하신데 감격한 나머지 우리들은 모두다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한결같이 혁명에 더욱더 충실하리라고 마음속깊이 결의다지고 또 다졌다.

그후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보살피심속에 이곳에서 얼마동안 휴식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사령부의 곁에 우리가 있을 천막을 정해주시였고 우리를 충분히 휴식시키기 위하여 경계근무도 그이께서 친솔하신 부대 성원들만으로 조직하게 하시였다.

우리는 이러한 극진한 보살피심속에서 쉬이 피로를 풀수 있었으며 새로운 투쟁을 맞이할 만단의 준비를 갖출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원들에 대한 사랑ㅡ그것은 헤아릴수 없이 깊고 넓은것이였다. 나는 이것을 그이께서 친솔하신 부대 대원들의 생활에서도 충분이 보고 느낄수 있었다.

우리의 첫눈에 든것은 무엇보다먼저 그들의 생활이 정연하게 째이고 생기있는 모습이였다. 이것은 우리를 몹시 경탄케 하였다.

그들의 정신상태는 언제나 긴장되여있으면서도 명랑하고 씩씩하였으며 그 몸가짐이 또한 단정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깨끗한 군복에 새신을 신고있었으며 탄띠에는 탄알이 빼곡이 차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난 겨울에 그들이 꼬리를 물고 미친듯이 대부대로 추격하는 적들을 장백과 림강오지에 처박아넣고 유유히 마당거우에 들어가 밀영을 지어놓고 휴식하면서 군정학습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참으로 들으면 들을수록 보람찬 일이였고 또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였다.

하도 그들의 생활이 부러워서 나는 한 동무에게 어떻게 하여 그렇게 여유있는 생활을 할수 있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치시는대로 하니 그렇게 되였지요.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했지만 밑지는 전투를 한적이란 한번도 없었소.》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그동안 어찌 우리만 고생하였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더우기 그들은 적들의 요충지대인 장백과 국경지대에서 활동하지 않았는가.

남패자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림강현 6도구전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들을 거듭하면서 간고한 로정을 걸어왔다.

이러한 사실들을 놓고 생각할 때 나는 불과 100여명의 대원을 책임진 지휘관으로서 어찌하여 그이께서 가르치신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대원들을 그처럼 고생만 시켰는가 하는 생각으로 하여 량심의 가책을 금할수 없었다.

전투에서의 승패, 대원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싸울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지휘관이 얼마나 대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부대관리를 잘하는가에 달려있다는것을 이때처럼 절실히 느껴본적은 없었다.

우리가 남패자에 1주일나마 묵어있는 동안 이곳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력사적인 조선인민혁명군군정간부회의가 진행되였다.

혁명을 계속 고조에로 불러일으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천재적인 방침이 수립될 이 회의는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남패자회의에서는 주요하게 조성된 정세에 대처한 금후 반일유격전쟁의 전략적방침, 부대의 조직개편문제, 조직문제 등이 취급되였다.

회의에서는 우선 《열하원정》이 좌경모험주의적인 행동이였다는것이 비판되였으며 앞으로 항일유격투쟁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들이 심중히 토의결정되였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대규모적인 《토벌작전》에 대처하여 대부대유격활동을 전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와 함께 소부대유격작전을 유기적으로 배합하며 적에 대한 섬멸전을 전개하면서 대중을 조직동원하는 대중정치공작을 과감히 전개할데 대한 일련의 방침적인 문제들도 제시하시였다.

회의에서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방침에 기초하여 부대들은 3개의 방면군으로 편성되여 제1방면군은 주로 남만에서, 제2방면군은 국내와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제3방면군은 돈화, 액목현 등지에서 각각 활동하게 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주력부대인 제2방면군을 친솔하시였다.

남패자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침들은 당시의 당면한 군사정치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기초우에서 세우신 탁월한 전략전술적방침이였으며 이는 또한 조선혁명을 계속 고조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현명하고도 대담한 조치였다.

만일 적들이 총력량을 집결하여 일대 공세로 나오는 이 시기에 우리의 력량을 수습하여 재편성하고 이를 강화하는 대책을 제때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적들의 공세에 대처하여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지 않았더라면 적들이 기도한바와 같이 혁명투쟁은 난국에 빠져들어감을 면치 못하였을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건져내시기 위하여 몸소 총검의 숲을 헤치시고 다시금 장백지구와 국경지대로 진격하는 가장 어려운 길을 택하시였다.

우리는 여기서 오직 혁명을 위한 그이의 불굴의 의지와 이신작칙의 모범을 다시한번 똑똑히 체득하였다.

나는 지금도 남패자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헤여지던 당시를 회상하면 잊을수 없는 그때의 장면이 눈앞에 선히 떠올라 가슴이 후더워진다.

떠나기 직전에 있은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직접 따라가지 못하고 헤여져간다는 서운한 생각을 금치 못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느라고 서두르고있는데 우리가 있는 곳으로 제2방면군 동무들이 여러개의 큰 꾸레미들을 메고 달려왔다.

《동무들! 이것을 받으시오. 이것은 사령관동지께서 동무들에게 보내시는 선물이요.》하고 우리앞에 내려놓는것이였다. 그속에는 군복, 신발, 미시가루 등이 가득가득 들어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있던 비상용품들이였음이 틀림없었다.

지어 그속에는 내의까지 들어있었다.

몸소 곤난을 맞받아 가장 어려운 길로 나가시면서도 따로 떨어져가는 우리를 생각하여 이처럼 비상용품마저 나누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은정이 온몸에 스며들어 우리는 한참동안 어찌할바를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아든 우리들의 가슴속에서는 그 어디를 가나 사령관동지께 더욱더 충실함으로써 그이의 이 지극한 사랑과 배려에 보답하리라는 굳은 결의가 용솟음쳐올랐다.

남패자회의후 각 부대들은 조선 및 동만과 남북만각지에서 적을 대량섬멸하는 대규모적인 유격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일제놈들을 일대 공포속에 휩싸이게 하였다.

이 시기 우리 부대는 화전방면에서 활동하고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주력부대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가장 엄혹했던 고난의 100여일행군을 이겨내고 다시금 대담하게 조국땅의 무산지구로 진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에 접하자 우리는 한결같이 설레이는 기쁨과 감격으로 하여 흥분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총검의 숲을 뚫고 몽강현 남패자로부터 장백현 북대정자에 이르는 100여일의 행군 그리고 다시금 압록강을 건너 암운이 드리운 무산지구에로의 대담한 진격!

이는 바로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직성, 불요불굴의 완강한 투지와 혁명적전개력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였다.

이로 인하여 《김일성부대가 장백의 밀림속에서 얼어죽고 토벌대에 의하여 전멸되였다.》고 떠들어대던 놈들의 기만선전은 산산이 부서졌고 항일유격대의 위용과 혁혁한 승리는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다시금 꺼질줄 모르는 희망과 신심을 불러일으켜주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전환인가!…

남패자회의, 그것은 항일무장투쟁의 발전단계에서 하나의 결절점이라고 말할수 있다.

조선혁명의 승리는 바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빛나게 이루어질수 있었으며 우리 인민은 8.15해방을 맞이한 후 그이의 령도밑에 나라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자기의 손으로 인민주권을 수립하고 오늘과 같은 천리마시대를 이 땅우에 펼쳐놓을수 있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몸을 바치시여 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혁명의 고조를 계속 견지하시기 위하여 난국을 맞받아 다시금 조국에로 진군하시던 그때 일을 감명깊이 생각하면서 그이의 령도를 받들고 그이의 충직한 전사답게 살며 싸우리라는 굳은 결의를 다시금 다지게 된다.

과거에도 그러하였던바와 같이 오늘도 앞으로도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받는 조선인민에게는 못해낼 일이란 없으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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