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문 섭, 최 인 덕
백전백중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하에 조직전개된 장구한 항일무장투쟁의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서의 투쟁이나 간고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간고하고 엄혹하였던것은 1938년 겨울부터 1939년 봄사이에 진행된
고난의 행군이였다.
남패자를 떠나서 북대정자까지 100여일, 어느날 어느밤 어느 시각이고 간악한
수천수만의 적들은 우리의 앞뒤와 좌우를 죄여들지 않은 때가 없었으며 령하
40℃를 오르내리는 추위와 길이 넘는 눈길, 사정없이 위협하는 기아와 질병이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지 않은 때가 없었다.
장백의 산줄기를 감돌고돌아 그해 겨울에 우리들이 지나온 길은 불사조처럼 싸워
이긴 악전고투의 행로였다.
그것은 위험에 직면한 조선혁명을 건져내기 위한, 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다시금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생결단의 투쟁이기도 하였다.
원쑤들은 장백지구의 전역과 조선 국내 및 국경선에 대병력을 집중하여 삼엄한
경계망을 늘이고 어마어마한 태세로 우리 유격대의 출현을 대기하고있었으며 국내와
장백지구의 인민들을 대량적으로 검거투옥하며 학살하는 야수적만행에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었다.
이러한 정세에서 장백지구 국경연안으로 다시 진출한다는것은 백두산, 림강을
련결하는 3각지대 깊숙이 적의 중심부에 들어서는것이므로 잘못하면 적들에게
포위되여 조선국내에로의 진출을 차단당할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였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신분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조선혁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계속혁명의 정신으로 이 어려운
행군을 결심하시고 몸소 고난의 앞장에 서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7년 가을~1938년에 걸친 적의 총검거선풍으로
조국광복회에 망라된 수많은 동지들이 원쑤들에게 체포된 후 파괴된 지하조직들을
복구하고 조선혁명의 앞길을 다시 개척하기 위하여 한몸을 바쳐 나서시였던것이다.
당시로 말하면 행세식맑스주의자들과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이미 시정배로 떨어졌거나
적의 주구로 전락되여갔으며 일부는 혁명을 도피하여 자취를 감추었으며 혹 어떤
사람들은 《이제는 영영 조선은 소생할 길이 없다.》고 단념하고 타락하거나
원쑤들의 탄압앞에 질겁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던 암담한 시기였다.
우리 민족의 앞길에 비운이 드리운 그 어려운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울어지는 조국의 운명을 떠받드시며 그에 생기를 넣어주시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있은 고난의 행군-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수령님에 대한 유격대원들의 무한한 충실성으로 하여 준엄한 시련이 극복된 영광의
길이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깊은 감회와 높은 긍지를 가지고 이 시기를 회상하게 된다.
고난을 뚫고
1938년 1l월에 있은 력사적인
남패자회의결정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조국에로의 진출을 위하여 장백지구로 행군을 개시한것은
그해 12월 상순이였다.
행군은 첫걸음부터 간고하였다.
눈은 깊었고 추위는 계속되였다. 여기에 수많은 대적이 발뒤꿈치를 밟을듯이
우리를 추격하고있었다.
이 시기에 원쑤 일제는 중국본토작전에서 전선이 고착되자 거기에 투입했던
대병력까지 끌어내여 《후방의 안전》을 목적으로 우리 유격대에 대한 대규모적인
《토벌》작전을 남북만전역에 벌려놓았었다.
놈들은 《최강》을 자랑하던 관동군의 대병력에다 중국본토작전에서 끌어내온 소위
《전선정예부대》와 수많은 위만군, 경찰을 합하여 20만의 대병력에 항공대까지
동원하여가지고 일대 공세를 취하여왔다.
특히 일제는 국경에 린접한
서간도에서 우리
항일유격대를 《전멸》시키려는 악랄한 계획밑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를 추격하기에 전력을 집중하였다.
그것은 놈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가 있는 한 유격대를 없앨수
없으며 조선혁명의 명맥을 끊을수 없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이처럼 우리 부대는 행군 첫날부터 적의 대병력을 상대로 한 어려운 정황에서
행군하고있었다.
놈들의 전술도 종전보다는 훨씬 달랐다.
그전까지만 하여도 일단 아군의 행동을 탐지한 다음에 이곳저곳에 배치되였던
병력을 집결하여 파동식으로 공격하여오는것이 놈들의 상투적수법이였다면 이해
겨울부터는 우리 부대가 활동할만 한 요소요소에 미리 집중적으로 병력을 배치하여
일정한 《토벌》구역을 담당케 하고 일단 우리 부대의 종적을 찾은 다음에는
진드기처럼 떨어지지 않고 계속 달려드는 장기추격전술을 취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위에 한사람같이 뭉친 우리는
그이의 령활한 지휘하에 그 어떤 적의 공격도 능히 타승할수 있다는 자신심에
불타고있었다.
하루에도 수십차례나 적과 싸우면서 길이 넘는 눈속을 헤치며 장백현경에까지
행군하다나니 우리는 지칠대로 지치였다.
옷은 찢기고 추위는 혹심한데 거기에 식량마저 떨어져서 시래기로 겨우 끼니를
잇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적의 공격은 수십배로 강화되였다.
우리 뒤를 따르던 수만의 적외에도 장백일대의 골짜기와 릉선마다에서 대기하고있던
수천의 적들이 아군의 전후좌우로부터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놈들은 우리를 포위하고 눈속에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게 하여 피로케 한 다음
일격에 《소멸》해버리려고 망상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의 기도를 통찰하시고 1939년
1월초 장백현 7도구치기에서 주력부대의 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적들의 《토벌》전술이 그전과는 다릅니다. 적들은 우리의 뒤에 딱
붙어다니면서 련속적으로 장기전을 진행하여 아군을 피로케 하며 우리의 전투력을
약화시켜놓고 《소멸》하자는것입니다.
아마도 적들은 이번 동기《토벌》에서 우리 사령부를 《소멸》하자는데 중요목적을
둔것 같습니다. 적들은 지금 이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다른 유격부대들을 도저히
격파할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때문에 병력을 령활하게 집중, 분산, 이동시키면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우리의
력량을 보존하는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여 부대가 3개 방향으로 행동할데 대한
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리하여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장백현
가재수방향으로, 7련대는 오중흡동지의 지휘하에 장백현 상강구방향으로 진출하고
8련대와 독립대대는 무송현 동강방향으로 나아가 활동하게 되였다. 재봉대와
로약자들은 청봉밀영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3개 방향으로 행동하면서 적의 력량을 분산시킨 결과 적들의 행동에 일시
혼란이 조성되였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 사령부의 행동방향을 다시금 탐지해내자 력량을 수습하여 우리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에 집중공격을 기도했다. 이렇게 되여 우리 소부대는 다시
곤난한 정황속에서 행군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하에 행군하는 우리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에는 로대원들이라고는 얼마 없고 모두 나이가 17~18살밖에 안되는
어린 대원들이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오직 조선혁명을 위하여 한몸을 내놓은 강철의 전사들이였다.
그해 장백의 산중에는 눈이 깊었다.
고깔불을 피우고 그옆에 앉아서 쪽잠을 자느라면 불무지가 점점 녹아내려 아침에
깨여보면 깊은 우물속처럼 내려다보였다.
눈이 낮은데라야 들어서면 가슴을 치는데 그것을 헤치고나가기란 빈몸으로도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웬만한 기력을 가지고는 앞으로의 전진은 고사하고 그자리에서 눈을 헤집는것도
오래 계속할수 없었다.
몇사람이 눈우에 드러누워 디굴디굴 굴어서 눈을 다진 다음 앞으로 전진하기가
례사였다. 아무리 힘이 든든한 동무들도 불과 100m도 못 가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쓰러지군 하였다.
이렇듯 아무리 길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먹을것, 입을것이나 제대로 있어
먹고 입었다면 한결 나았을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며칠씩 굶으면서 그리고 적과 싸우면서 걸어야 했다.
비상용미시가루마저 떨어진 다음에는 순전히 맹물을 끓여먹으며 걸었다.
옷은 형체없이 찢어져서 살이 얼른거렸고 신발은 다 떨어져서 맨발을 각반으로
동이거나 목재소에서 얻은 소가죽을 발싸개처럼 대고 나무껍질로 동이고 걷는
대원들이 태반이였다.
해가 비치는 곳은 눈 표면이 얼어서 유리판같이 되였는데 디디면 발이 한정없이
빠지면서 칼날같은 얼음모서리가 옷과 살을 사정없이 쭉쭉 째놓군 하였다.
여기에다 박달나무도 얼어터진다는 만주의 모진 추위가 엄습해오고 수천의 적이
꼬리를 물듯이 뒤쫓아오는 그런 행군의 간고성은 이루 다 말할수가 없었다.
모진 추위에 손발이나 코, 귀는 물론 온몸이 감각을 잃었고 눈보라는 순식간에
사람을 묻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얼마나 몸들이 얼고 상했던지 그 이듬해 봄에 모든 지휘관, 전사들의 피부가
한껍질씩 벗어졌었다.
깊은 눈과 모진 추위에 얼마나 기진하였던지 배불리 처먹고 뜨뜻이 입은 적들도
감히 우리의 앞으로 생눈길을 치고 우회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으며 우리가 길을
치고 나간 뒤를 졸졸 따라오며 달려들수밖에 없었다.
우리 기관총분대는 두세사람씩 뒤에 남아서 적들이 접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척후놈들을 단방에 한놈씩 쏘아눕히고 놈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앞서나간 대오를
따라잡군 하였다.
이런 경우에 본대렬은 기껏 앞서나가야 100m이상을 더 나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몹시 지친 우리에게는 그 거리를 따라잡는것이 몇백리길을 따라잡듯 멀고도
힘들게 생각되였다.
누구나 한번 쓰러지면 제힘으로 일어나지 못하군 하였다.
며칠씩 굶은 우리들은 허기증으로 하여 엎어지면 그 자리에서 눈을 움켜먹군
하였다. 그 모진 눈보라와 추위속이건만 잠시라도 휴식명령만 내리면 가던 자리에
주저앉아 잠들고말군 하였다.
얼마나 피로하고 잠이 부족했던지 가면서도 자는 수가 많았다.
한번은 밤에 소휴식명령이 내려서 모두 가던 자리에서 앉은대로 자고있었는데
별안간 적들이 코앞으로 쑥 나타났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히 그자리를 피하여 옆으로 빠지고있었다.
그런데 떠나려다보니까 김기수동무가 아직 깨여나지 못하고 그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자고있었다.
나(전문섭)는 옆으로 가서 그를 힘껏 흔들어 깨워가지고 이끌다싶이하면서
달리였다.
그는 그래도 채 깨여나지 못하고 잠에 취해서 끌려가다가 진대통에 걸려
넘어지고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잠이 모자라고 지친데다가 놈들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산발을 샅샅이
뒤지며 우리의 행방을 찾아 돌아쳤기때문에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일수도 없었다.
불도 못 피우고 눈우에서 자고나면 모자채양과 귀덮개에는 하얗게 성에가 앉군
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모든 무서운 고난을 이기며 적들과 싸우면서 강행군을
계속하였다.
그 힘은 지금 와서 자신들이 생각하여도 놀라리만큼 무섭고도 강력한것이였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의 가슴에 심어주신
혁명정신이였다.
남과 같이 굶으시고 대원들과 같이 어려운 싸움과 힘겨운 행군을 계속하셨으니
그이라고 어찌 힘들고 지치지 않으셨겠는가.
그러나 그이께서는 추호도 피로와 괴로운 빛을 보이지 않으시고 항상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기운을 북돋아주시였다.
처음에 련대들과 갈라져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만 남았을 때 일부 어린 대원들은
《그 많은 적들속에서 어찌 소부대로 남아서 견디여낼수 있을가.》고 걱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기미를 아시자 숙영할것을 명령하신 후 회의를
여시였다.
그이께서는 적들의 대병력이 집중되고있는 조건에서 아군부대들이 각 방향으로
기동적으로 행동하면서 적들의 력량을 분산시키고 우리의 력량을 보존해야 한다는것을
재삼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라야 적이
집중되고있는 지구를 피해서 기동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이 장백밀림속에서 적들의 맥을 기껏 빼야 합니다. 자체로 식량을
해결하면서 적들속을 빠져서 이 겨울을 견디여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조국에로 다시 진군할수 있고 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할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2시간동안이나 차근차근 일깨워주시는 그이의 말씀을 듣고 더욱 큰 힘을
얻었다.
아침마다 그이께서는 일일이 우리들의 배낭이며 신발을 살펴보시고 고쳐주군
하시였다.
동무들이 앞장에 나서서 눈길을 내기 위하여 굴 때면 그이께서는 어느 틈엔가
벌써 앞장에 나서시여 몸소 대오가 나갈 길을 치고계시였다.
한번 선두에서 대오의 뒤로 가거나 반대로 뒤에서 앞으로 나가자면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대렬의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오가시며 대원들을 고무하시였다.
그러자니 그이께서는 얼마나 힘드시였겠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비칠거리다가도 정신이
펄쩍 들군 하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맥을 놓고 쓰러져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다가도 그이께서 오시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솟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오. 힘을 내여 이 곤난을 극복해야 조국으로 나갈수
있소.》
그이의 이 말씀을 듣느라면 자기도 모를 무서운 힘이 생겨서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가게 되였다.
한번은 앞길을 치고나가는 동무들이 애쓰는것을 보다 못하여 나이든 대원이 우기고
앞장에서 나갔는데 어찌나 그의 몸이 가벼웠던지 눈길이 영 다져지지를 않았다.
그것을 보자 나(전문섭)는 동무들이 말리는것도 듣지 않고 앞에 나가서 누워
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잘못하여 눈보라가 모아다놓은 눈웅뎅이속에 그만
빠지고말았다. 그것은 내 키의 두길이나 잘되였는데 아무리 허우적거리여도 우로
솟아오를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를 우로 끌어올려주었다.
《문섭동무가 눈에 빠졌군. 눈에 빠졌을 때는 그렇게 허우적거리지 말고
슬슬 몸을 틀어눕혀야 하오. 그러면 눈이 다져지며 자연히 몸이 우로 솟아오르는
법이요.》
알고보니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져 어쩔바를 몰랐다.
행군은 갈수록 더욱 간고해졌다.
더우기 나약한 한 신입대원이 곤난을 못 이기여 적들편으로 넘어간 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주자가 나자 이내 행동방향을 바꾸어 최대한의 강행군을
하도록 지시하시였다.
적의 총소리가 뒤덜미를 치는 급한 정황속에서 눈속에 쓰러졌다가는 일어나고
일어났다가는 다시 쓰러지는 어린 대원들을 보시는 그이의 눈길에는 말할수 없는
안타까움이 깃들어있었다.
이대로는 적의 추격을 물리치기가 매우 어려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걸으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백룡동무를 부르시여 7도구목재소를 치고 말을
끌어오라고 하시였다.
그것은 적들이 수천명의 대병력을 우리에게 집중하고있는 조건에서 그 력량을
분산시키고 아울러 식량문제도 해결하시려는 의도에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적들을 유인하여 혼란속에 몰아넣고 또
목재소를 치고는 어떻게 적을 유도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주시였다.
오백룡동무는 그이의 지시대로 5명의 대원을 데리고 대부대가 7도구로
들어간것처럼 발자국을 내여놓고는 자취를 감추며 반대방향인 7도구골안의 목재소에
접근하여 길목을 지켰다. 그들은 은페하여있다가 올라가는 말파리는 그냥 지나보내고
돌아내려오기를 기다려 되돌아선 말파리를 습격하여 우선 그중 말 다섯필을 풀어
7도구쪽으로 내몰았다. 이는 후에 추격해올 놈들이 말발자국을 따라 7도구쪽으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한 다음 그들은 날창으로 말 몇필을 잡아 각을 떠가지고 부대로
돌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미리 예견하신바와 같이 이튿날 적들은 현장에 와보고는
말발자국을 따라 7도구로 밀려가서 완전히 허탕을 치고말았다.
우리는 말고기를 날것대로 먹을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적의 비행기가 돌아치는
판에 불을 피우고 구워먹을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소금도 없이 날고기를 뜯어먹은데다가 행군하느라고 땀을 흘리고는 생눈을
움켜먹으니 모두 설사가 나서 맥이 빠졌다.
그러나 그것밖에 먹을것이 없으니 안먹을수가 없었다.
5~6일동안을 그것만 계속 먹으니 나중에는 역기가 나서 먹을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찌다 불을 피우고 쉬게 되는 때면 고깔불에서 불붙는 나무등걸을 하나씩
가지고 걸으면서 그것으로 말고기를 그슬려 먹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면 먹기가 좀
나았다.
그럴 때면 우리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이 아팠다. 위대한 수령님께만이라도 식사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자신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우리들은 자기 배낭속에 깊이 간직하였던 미시가루 한두줌을 내여서는 그이께
드리군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이께서는 그것을 사양하시며 약한 동무들에게 돌려주군 하시였다.
《한홉의 미시가루》를 전령병들에게 고루 나누어주시고 자신의 몫은 남기지도
않으신 그 감동적인 이야기도 바로 이때에 있은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찌다가 차례지는 자신의 몫의 강냉이 몇알도 드시지 않고
모으시였다가 행군할 때에 그것을 불궈가지고는 앞으로 혹은 뒤로 가시여 설사로
기진맥진하여 겨우 걸음을 옮기는 동무들에게 쥐여주시며 《이걸 몇알 입안에
넣고 입을 놀리면 한결 힘이 나오.》 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이 강냉이알을 입에 넣는것을 보시고야 그곳을 떠나군
하시였다. 대원들은 이럴 때면 그이께서 권하시는 이 강냉이알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죽을지언정 혁명의 길에서 물려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지군 하였다.
휴식명령이 내리거나 숙영하게 되는 때면 누구나 할것없이 맥을 놓고 앉은자리에
쓰러져 잠들게쯤 모두 지쳤으니 위대한 수령님께선들 오죽 지치고
힘겨우셨겠는가.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시간에도, 숙영지에서도 쉬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명령을 내리신 다음이면 모든 대원들을 돌아보시고 불을
피우는것, 발싸개를 고치는것까지 일일이 보살피군 하시였다.
한번은 낮에 휴식을 하는데 마침 적의 비행기가 뜨지 않았으므로 얼른 불을
피우고 30분사이에 말고기를 구워먹으라는 명령이 내렸다.
나(최인덕)는 서둘러서 불을 피우느라고 하였으나 연기만 나고 나무가 잘 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때에 숙영지를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곁으로 오시여 불을
피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눈우에 옆으로 뉘여놓았던 마른 나무를 하나하나 세워
고깔모양으로 만들어놓고 불을 달았는데 연기는 금시에 없어지고 불길이 아주 잘
일었다.
《고깔불은 이렇게 피워야 잘 타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숙영지에서도 그이께서는 제일 늦게 잠드시고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시였다.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그이께서는 숙영하는 날이면 꼭 책을 보시고 날마다 일기를
쓰시였다.
적들의 경계가 심하여 불도 피우지 못하고 숙영하게 되는 밤이면 모두가
서성거리며 자는둥마는둥 하였다.
그럴 때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발을 얼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오. 우리 인민혁명군대원들에게 있어서 발은
날개와 같은거요. 새에게서 날개가 떨어지면 죽은거나 다름없는것과 같이 우리들도
발을 얼구면 사경에 빠질것이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발을 얼구지 말아야 하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꿰진 신발은 생각지도 않으신듯 어린 대원들의 지하족이
뚫어진데를 천으로 동여주시고 감싸주시군 할 때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목이 메군
하였다.
1주일이 못 가서 말고기도 떨어지고 적정은 다시 급해졌다.
7도구목재소습격을 받고 당황한 적들은 목재소근처와 13도구에서 유격대의 행방을
아무리 찾아도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자 다시 우리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모든
력량을 집중하여 달려들었다.
우리는 다시 눈을 쥐여먹으면서 달려드는 적들을 물리치고 강행군을 계속하였다.
원쑤들과 싸우다가 적탄에는 맞지 않았으나 총을 적에게 겨눈채 굶주림과 피로끝에
쓰러지는 동무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칼로 에이는듯 아팠다.
이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이신들 어찌 가슴이 아프시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렇게 어려울 때마다 령활한 전술을 써가시며 적들을 따돌리고 대원들을
휴식시켰고 그들에게 힘을 북돋아주시군 하시였다.
적들이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행군하다가는 옆으로 빠져서 쉬게도 하시였고 정 급한
때에는 눈속에 감쪽같이 숨어 적을 지나보내며 피로를 회복하게도 하시였다.
적정은 급하고 지칠대로 지친 순간에도 우리들은 부후물치기에서 휴식하면서
목재소에서 얻은 날보리이삭을 손으로 비비여 먹으며 기운을 회복했다.
그날 우리는 수천명의 적을 뒤에다 달고 부후물등판을 두바퀴째 돌고있었다.
그런데 새로 수백명의 적이 또 뒤를 따라나섰다. 하루길이 잘되는 등판두리를
두바퀴째 도는 사이에 먼저 따르던 적과의 거리는 상당히 벌어지게 되였으나 새로운
적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그사이에 끼여들었던것이다.
이런 정형을 재빨리 포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발구채만큼씩한 나무를
베라고 지시하시였다. 우리들은 미처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나무를 베여 메고
행군하였다. 처음에 등판을 돌기 시작하던 제굽이에 또 오니 그전에 베였던
아름드리나무그루가 드문드문 서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그루우에 벤 나무로 다리를 놓으며 등판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시였다.
우리들은 나무다리를 놓고 다 건는 다음에는 그것을 자리 안나게 들어서 앞에다
옮겨놓으며 약 500m안으로 들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300m앞에다 보초를 세우고 휴식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였다.
우리는 백포를 쓰고 노루가죽을 펴고앉아 휴식하였다. (그때 우리는 배낭뒤에
노루가죽을 한장씩 달고 다니였다.)
이윽하여 보초소에서 적들이 그냥 지나쳐서 여전히 부후물등판을 돌고있다는 통보가
왔다.
그러자 어슬어슬해지기 시작했는데 아래켠에서는 자지러지게 총소리가 울려왔다.
《저희들끼리 실컷 싸우라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우리가 쑥 빠져나온줄을 전혀 모르고있던 놈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던것이다. 총소리는 밤새 그칠줄을 모르고 콩볶듯 하였다.
우리들은 그 소리를 통쾌한 마음으로 들으며 그 밤을 그곳에서 쉬였다.
이튿날 놈들은 우리의 종적을 잃은것을 깨닫자 자기들의 수많은 시체를 걷어가지고
돌아가버리고말았다.
추호의 동요도 없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휘하시는 우리 부대로부터 련속 골탕을 먹게 되자 놈들은 더욱 대병력을
장백오지에 집중시키고 비행기를 여러대 동원하여 수림우를 핥듯이 샅샅이 뒤지고
돌아갔다. 이럴수록 우리앞에는 더욱 간고한 행군이 가로놓이게 되였다.
적들은 자기들의 전체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 사령부를 전후좌우로 집요하게
공격할뿐아니라 공중에서 폭탄을 던지고 기총사격을 하며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이와 같이 우리의 한개 중대정도의 병력에 대치하여 수만의 군대, 경찰을
장백오지에 빈틈없이 널어놓고 지상에서, 공중에서 공격하여 우리로 하여금 가지도
오지도 못하게 하려 했다.
원쑤들의 비행기는 눈에 묻힌 수림우를 비로 쓸듯이 낮추 떠돌면서 폭탄을
뿌리는데 그것은 눈기둥을 일으키며 터지고 기총탄은 수림속을 어지럽게 누비였다.
그러나 아무리 놈들이 발광하여도 우리의 의지를 굽힐수는 없었다.
우리는 계속 연기 하나 내지 않고 행군하였으며 적비행기가 나타나면 눈속에
파고들어가거나 백포를 쓰고 눈우에 엎디여 종적을 감추군 하였다.
놈들은 빈번히 밀림속에 헛폭탄을 퍼붓고 헛총질하였다.
그때마다 우리는 더욱 고난을 겪었다.
뒤에서 앞에서 혹은 불시에 옆에서 원쑤의 총탄이 날아오는외에 공중에서까지
이렇게 폭탄과 기총탄이 쏟아지는 위험속에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우등불의 후끈한
온기조차 쬐지도 못하며 우리는 넘어지고 엎어지며 행군하였다.
장백밀림의 눈덮인 그 많은 골짜기들을 우리가 굴러넘고 기여건느고 뚫으며 지난
곳이 한두곳만이 아니였다.
우리는 한겨울내내 그곳을 돌고 또 돌았다.
그것은 마침내는 봄, 승리의 봄이 올것을 굳게 믿었고 조선혁명의 승리를
믿었기때문이였다. 모든것을 조선혁명과 인민에게 바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우리는 굴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일격에 《소멸》하려고 망상하며 발광하던 원쑤들은
당황하고 초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놈들은 힘만으로는 우리를 굴복시킬수 없다는것을 느끼자 상투적인 수법으로 우리
내부를 와해시켜보려고 미쳐날뛰였다.
우리가 가장 어려운 행군조건에 빠지자 적들은 수없이 간첩을 파견하고 우리가
가는 길목과 머리우에 삐라를 뿌리군 하였다.
투항분자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어려운 형편을 자세히 알게 된 원쑤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유족한 생활과 안일과 부화로 낚아보려고 어리석은 시도를 계속했다.
《산속에서 굶고 얼어죽을 필요가 무엇인가? 내려오면 너희들도 잘살수 있다.》
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을 모독하는 그림과 삐라며 투항해간자들이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살고있다는 선전삐라며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더럽고 추잡한 내용의 그림과
사진을 뿌리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원쑤들의 준동이 심할수록 놈들에 대한 치솟는 격분과 증오로
하여 치를 떨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기를 바라는것은 누구나 다 같을것이다.
삼동혹한, 눈깊은 밀림속에서 매 시각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굶고 얼기보다
따뜻한 방에서 부모처자와 같이 단란하게 편안한 생활을 하는것이 좋은줄을 누가
모르랴.
우리들이 이 고생을 이겨내는것도 원쑤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을 해방하여 자기
혼자뿐만아니라 전체 인민이 다같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것이
아닌가.
《개자식들, 삐라를 뿌리려면 얼마든지 뿌려봐라. 우리가 꿈쩍이나 할줄
아느냐.》
우리는 이를 부드득 갈며 일어서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군 하시였다.
적들은 우리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 하고있습니다. 더욱 경각성을 높여야
합니다.…지금은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반드시 승리의 날이 옵니다. 앞으로 석달만
이겨내면 그때에는 눈이 녹을것입니다.
눈이 녹으면 우리의 활무대가 열립니다. 기어코 그때까지 참고 반드시 그리운
조국으로 진군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도중에도 특히 힘들어하는 동무가 있으면 그를 부축하고
걸으시며 제국주의의 모순, 특히 일본제국주의의 모순을 분석하시면서 일제는 반드시
멸망하고 우리는 승리한다고 고무하여주시였으며 조국을 해방한 후 앞날에 있을
조국건설에 대하여 말씀하여주군 하시였다.
그러면 우리의 가슴속은 승리의 신심으로 하여 불타올랐고 찬란한 앞날을 그려보는
우리의 눈은 더욱 빛나고 이글거리였다.
만일 우리 세대에 승리 못한다해도 우리는 혁명을 버릴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놈들은 우리의 부모처자를 모두 학살하였고 고향을
불살라버리였습니다. 죽어도 원쑤를 갚아야지 다른데로는 갈데가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시던 이런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튼튼히 가다듬게
하여주었다.
원쑤들의 포위속에서 눈보라와 추위와 기아를 물리치며 싸우다가 얼어죽고
굶어죽을지언정 우리는 혁명의 길에서 한걸음도 떨어질수는 없었다.
누구도 곤난과 죽음을 겁내는 사람은 없었다.
(고난속에서 죽을지언정 적들에게 굴하지는 않을테다.)
우리는 저마다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얼고 쓸리워 감각을 잃은 발을
한걸음두걸음 옮겨놓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검불에 걸채여도 쓰러질듯 지치였건만 적이 덤벼들면 모두가 비호처럼 달려들어
원쑤들을 족치였다.
행군로를 앞질러 간첩들이 놓고 간 삐라뭉치를 발견하면 우리들은 그자리에 우리의
삐라와 선전문을 바꾸어놓고 가군 하였다. 놈들은 싫든좋든 보고를 하기 위해서도
그것을 가지고 갈것이고 그러면 다문 한사람에게라도 우리의 영향을 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원쑤들의 기도는 무력으로도, 삐라와 간첩에 의한 회유로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고난은 갈수록 더하였지만 우리들은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하나로 더욱 굳게 뭉치여 곤난을 극복하며 련속 적들에게 타격을 주면서
놈들을 이리저리 끌고돌아다녔다.
우리의 한사람한사람은 사실 제몸 하나를 바로 추세우고 일어설 힘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부축하고 이끌고 서로서로 의지하여 적들의 공격을 물리쳤고
준령을 넘고 가슴을 치는 눈길을 뚫고나갔다.
이때 만일 어느 누구든 이 대오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물러서기만 하면 그는
일어날수도 없었고 소생할수도 없었을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대오에서 한발자국도 뒤지지 않았으며 서로서로 이끌며 앞으로
나갔던것이다.
어떠한 힘도 이 강철의 대오를 깨뜨릴수는 없었다. 제아무리 강하다는 일제도
이런 단결을 허물어내지는 못하였다.
원쑤들은 집요하였다. 그리고 간악하였다.
지어 놈들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부모처자들을 강박하여 들여보내여
우리의 굳은 마음을 흔들어보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놈들의 어리석은 망상이였다.
부모처자들이 어찌 자기 자식과 남편들을 원쑤들에게 내맡길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오히려 자기 자식과 남편들을 고무하였고 기어코 이 겨울을 이겨내고
원쑤를 쳐달라고 신신당부하며 우리에게 적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들은 돌아가면 원쑤놈들한테서 모진 악형을 당할것이고 생명까지 위험하다는것을
모르는것은 아니였다.
이것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이 시기에 나(최인덕)의 아버지도 놈들의 강요에 못 이기여 사령부와
헤여져서 활동하고있던 오중흡련대에 찾아갔다 한다.
《놈들이 나를 정탐하라고 올려보냅디다. 그렇지만 내 아들 인덕이가 여기 있는데
내가 놈들을 어떻게 돕겠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를 주려고 가지고 온 식량과 음식을 동무들에게
대접하고 길안내를 하여서 부대를 적의 포위속에서 빠지도록 도와주고
돌아갔다는것이다.
《부디 잘들 싸워주시오. 내 아들을 만나면 끝까지 잘 싸우라고 일러주시오.
죽을지언정 굴하지는 말라고 단단히 좀 일러주시오.》
아버지는 동무들과 헤여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적들은 우리의 가족들을 리용하는데서마저 쓰거운 실패를 맛보자 더욱
발악하였을뿐만아니라 더 간교하고 흉악하여졌다.
우리가 13도구근방으로 적들을 끌고가면서 점점 더 어려운 행군을 계속할 때의
일이다.
그때 우리는 적들의 거점을 치고 식량을 좀 해결하였으나 소금을 몇달씩 못
먹다나니 눈이 맞붙고 다리가 휘청거리여 견디기 어렵게 되였다.
그리하여 대원 2명이 파견되여 소금을 구해왔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나자 일부
대원들속에서 배와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져서 꼼짝 못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운신을 못하는
대원들에게 응급치료대책을 취하도록 하시고 소금 한줌을 다 사그라져가는 우등불속에
뿌려보시였다. 그러자 우등불에서 금시에 시퍼런 불꽃이 날리였다.
독약이 타는 불꽃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에서 소금을 사들인다는것을
알게 된 놈들은 우리를 《일망타진》할 음흉한 목적에서 소금에다 독약을
쳤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하시였다.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적들이 누렇게 달려들었다. 앓는 동무들때문에
피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가 소수력량으로 수십배의 적과 정면으로 맞받아나가
싸울수도 없고 참말로 난처한 정황이였다.
더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를 보위하여야 할터인데 어쩔바를 몰라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배낭의 탄알을 다 꺼내놓으시오. 오늘은 여기에서 결사전을 해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적들을 주시하시면서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시였다.
우리들은 그때 탄알만은 풍부히 가지고 다니였다. 누구나 배낭에는 탄알이 거의
찼었다.
우리들은 통분함을 금치 못하며 탄알을 있는대로 꺼내놓고 최후결전을 할 비장한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표정은 태연자약하시였다. 그이를 다시 우러러보고난
우리들은 조금전까지의 비통한 생각을 씻은듯이 잊고 반드시 우리가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전투에 들어갔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계속 적을 끌고 다니며 싸웠다. 놈들은 무리로
쓰러지면서도 계속 달려들었다. 아마 적들은 그해 전 동기《토벌》기간을 통하여
이날에 제일 많은 손실을 보았을것이다. 그렇게 많은 주검이 눈구뎅이속에 널렸어도
놈들은 공격을 단념하지 않았다.
저녁 5시쯤 되여서야 놈들의 악착스러운 돌격이 좀 뜸해지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기회에 앓는 대원들을 먼저 보내고 오백룡동무의 지휘밑에
나(최인덕)와 또 한동무가 뒤에서 방어하면서 후퇴하도록 하시였다.
대원들은 제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게 지친 몸들인데 앓는 동무 여럿을 부축하며
생눈길을 뚫고나가려니 한시간에 불과 몇발자국을 내딛지 못하는 형편이였다.
우리들 셋은 눈속에 엎디였다가 적척후병이 나타나면 10~15m의 근거리까지
접근시켜서 한방에 한놈씩 쏘아눕히고는 또 얼마간 전진하군 하면서 부대의 전진을
보장하였다.
다음날도 이렇게 5~6회나 전투를 하면서 적의 척후병이 나타나는족족
소멸하였다.
놈들은 도저히 생눈길을 내고 우회하거나 앞지를수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불과
몇백m를 못 나가서 눈속에서 얼어죽고만다는것을 놈들도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놈들은 부득이 우리가 길을 내놓은 뒤로 따라서기가 일쑤였다. 놈들은
3명씩 척후병을 먼저 내보내고 그뒤로 대부대를 따라붙였다.
우리는 이 척후병놈들이 나타나는족족 단방에 소멸하군 하였다.
하루동안에 백여명의 척후병이 넘어지자 놈들은 겁을 먹고 더는 척후병을 내보내지
못하고 멀리서 따라오며 탕탕 헛총질만 하였다.
원쑤들이 제아무리 무서운 불벼락과 공격을 들이대여도, 제아무리 간교하고 음흉한
회유책을 써도 우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승리를 믿고 나아갔다.
그것은 마치 천지를 진동하는 뢰성벽력과 폭풍우에도, 깊은 눈길과 추위에도
끄떡없이 대지에 깊이 뿌리박은 바위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신념-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로 철석같이 굳게 뭉쳤기때문이였다.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수만의 적을 꼬리에 달고 장백오지를
겨우내 돌면서 앞으로, 옆으로 달려드는 원쑤들을 물리친 간고한 행군-그것은
적에게 몰려서 쫓겨다니는 길은 결코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떤 곤난한 정황에서도 항상 주도권을
잃지 않으시고 적들을 임의로 치고 막고 따돌리군 하시였고 정세가 곤난하면
곤난할수록 대담하고 적극적인 전술로 적을 치고 부대를 곤경에서 빼여내군
하시였다.
사령부의 행방이 적들에게 알려진 후부터 놈들이 대병력을 동원하여 계속 악을
쓰며 달려들어 우리 부대가 위험에 빠지게 되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담하게
적후방을 칠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적들이 장백오지에 력량을 집중하고있는것만큼 우리는 그놈들의 빈 후방을
침으로써 적들을 혼란시키고 분산시켜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적들의 후방인
7도구목재소, 대양차와 장백으로 통하는 대로를 습격하는 대담한 작전계획을
짜시였다.
그때 형편을 얼른 생각할 때 우리에게 적의 후방을 칠만 한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낮이고 밤이고 한시간 한초도 마음놓고 쉴사이 없는 강행군과 련속되는 전투에
지친데다 계속 굶었기때문에 대원들은 모두 금시에 쓰러질 형편이였다. 게다가
우리의 력량은 불과 한개 중대의 력량뿐이므로 원쑤들의 집결지점을 친다는것은 보통
지혜로는 엄두도 낼수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쑤들의 전력량이 장백오지에 집중되고 후방이
비여있는것만큼 민첩대담하게 행동한다면 오히려 후방을 치는것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을수도 있다는것을 통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모든 조건과
력량관계를 심중히 타산하신 후 먼저 7도구목재소를 치고 이번에는 대양차와
장백대도로를 기습함으로써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동시에 어려운 식량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천추동무를 불러 대양차를 칠 전투임무를 주시였다.
이미 그때는 7도구목재소를 치는바람에 혼이 나서 지방으로 내려갔던 일부 적들도
모두 다시금 오지대로 쏠린 때였다.
그래서 아주 큰 집단부락에나 《토벌대》놈들이 주둔해있고 작은 부락들에는
자위단놈들만 남아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정황으로부터 출발하여 은밀히 부락에 접근한 다음에
재빨리 습격하고는 딴 방향으로 발자국을 내여놓고 감쪽같이 돌아와야 한다는것을
특히 강조하시였다.
한천추동무는 5명의 대원을 데리고 대양차로 떠나게 되였다.
굶고 지쳐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형편에서 80리밖에 있는 집단부락을
번개같이 친다는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습격조원들은 그이의 빈틈없는 작전계획과 자세한 주의사항까지 듣자 힘이
나고 승리의 신심이 넘치여 전투임무수행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동무들은 자기 배낭밑에 남아있던 말고기 말린것을 한웅큼씩이라도 그들에게
주어보내려고 하였고 자기의 신이 좀 성한 사람은 먼길 갈 동무에게 서슴없이
벗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편으로 한익수동무에게 두 대원을 데리고 대통로로 나가서
적의 말파리를 기습하라는 지시를 주시였다.
이렇게 가장 어려운 순간에 두개의 습격조가 적의 후방깊이로 떠나갔다.
한천추동무를 비롯한 습격조원들은 깊은 눈길을 기여서 대양차부락근방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길가의 눈속에 숨어서 나무하러 올라오는 농민들을 기다렸다. 착실해보이는
한 나무군이 오는것을 보자 습격조원들은 일어나 나가서 대양차부락 사정을 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혁명군이라는것을 알자 그 농민은 한편 놀라면서도
무척 기뻐하였다. 그것은 놈들이 인민들속에 《조선인민혁명군은 눈속에서 다
얼어죽고 도망갔다.》고 허위선전을 하였기때문이였다.
습격조원들은 그 농민을 통하여 대양차에 남아 수비하던 적들이 모두 꿩사냥을
나가서 그 이튿날까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정미소에 쌀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 쌀은 공출미였는데 놈들은 날마다 쌀을 찧어놓고는 그 운반에
농민들을 동원한다는것이였다. 정미소에서 공출미를 운반하는 농민들에게는 아무런
보위인원도 붙어있지 않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명철하게 예견하신바와 같이 후방에서 놈들은
안심하고있었던것이다.
습격조원들은 이 자료를 재삼 확인한 다음 이튿날 아침에 농민복 여섯벌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그 농민은 농민복 6벌을 구해가지고 올라왔었다.
습격조원들은 농민으로 가장한 다음 나무를 한짐씩 하여가지고 마을로 내려가서
정미소에 들리였다.
과연 정미소에는 쌀이 많았다.
한천추동무는 적의 주구인 정미소주인의 사위놈의 가슴에다 별안간 싸창을
들이대면서 물었다.
《농민들이 쌀 지러 언제 오는가?》
주구놈은 나무군들로 차리고 들어온 사람들이 다름아닌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라는것을 알자 부들부들 떨었다.
《예, 인제 곧 오게 되였습니다.》
그놈은 이렇게 말하면서 얼마든지 쌀을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것은 적들에게 바친
공출미였던것만큼 자기에게는 손해가 없었던것이다.
과연 얼마 안있어 30~40명의 농민들이 쌀을 지러 왔었다.
한천추동무는 농민들에게 정치선동사업을 하였다. 농민들은 왜놈들이
《전멸》시켰다고 호언장담하던 그 인민혁명군대원들이 대낮에 바로 국경연안
집단부락에 나타난것을 보자 모두 기운이 났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쌀을 져다주겠다고 자청해나섰다.
습격조원들은 이렇게 농민들에게 쌀을 지워가지고 7도구치기까지 와서 농민들을
돌려보내였다.
습격조원들은 쌀을 일부 묻은 다음 각기 한배낭씩 지고 대오로 돌아왔다.
부대에서는 모두 고대하고있었다.
습격조원들은 빨리 죽을 쑤어 전우들에게 대접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죽을 드시다말고 숟가락을 드신채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혼자말씀처럼 하시였다.
《오중흡동무랑 어디 가서 밥이나 제대로 먹는지 모르겠다.》
사령부를 보위하기 위하여 한목숨 걸고 적들을 유인하여 밀림속 설한풍을 뚫고있을
오중흡동지를 비롯한 대원들을 생각하시는 그이의 절절한 사랑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적들을 이끌고 쉬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싸워나가는 동무들을 생각하니 흰쌀죽이
목에 걸리였다.
대원들은 죽을 먹고서야 모두 맥을 추고 일어났다.
이제는 아무리 대적이라도 문제없이 칠것만 같아 마음이 든든하였다.
한익수동무의 습격조도 성과있게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다.
백주에 조선인민혁명군이 대양차와 대통로를 습격한 이 사실은 적들을 공포와
대혼란에 빠뜨렸다.
놈들은 자기들이 인민혁명군을 장백오지에 몰아넣고 오도가도 못하게 하여 이제는
굶어죽었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불원간 자기들의 손에
《전멸》되고말것이라고만 망상하고있던 판인데 불시에 대양차와 대통로를
습격당하고보니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어디서
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새로 왔거나 자기들이 완전포위했다고 생각한 《김일성사령부》가
또 감쪽같이 빠져나간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좌우간 후방깊이 들어가서 행동하는것으로 보아 이것은 대부대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할수밖에 없었다.
그놈들이 어찌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헤아릴수 없이 큰 힘을 짐작이나 할수
있었으랴.
놈들은 급보를 받자 우리 부대의 종적을 찾아 헤매던것을 중지하고 일부 력량을
떼여 후방수비를 강화하는 동시에 어느곳에서 행동하고있는것이 사령부인가를 알아내기
위하여 미쳐날뛰였다.
놈들은 우리 부대의 종적만 잡으면 종전보다도 더 악착스럽게 기를 쓰고
따라왔었다.
눈속에서 수십배, 때로는 그보다도 더
많은 적들의 추격을 하루 한시간도 중단없이 계속 받는다는것은 참으로 헐한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따라오는 놈들을 피해서 후퇴만 한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놈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다니며 적들을 기진맥진하게
하고 불시에 기습하여 일거에 대량섬멸하는 령활한 전술을 쓰시였다.
때로는 숙영하는 놈들의 진지중심에 들어가서 사방에 총질을 하여 자던 놈들이
놀라서 자기편끼리 맞붙어 싸우게도 만들었고 때로는 발자국을 딴 방향으로 내놓고
옆으로 빠져나옴으로써 놈들이 눈사태속에 파묻혀 허덕이는 뒤덜미를 후려답새대기도
하시였다.
한번은 나(최인덕)와 한익수동무 등 세사람이 이런 전투에 직접 참가한 일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밤에 우리를 부르시더니 2km밖에 있는 적진지를
기습하여 제놈들끼리 서로 싸우게 하라는 자세한 지시를 주시였다.
우리는 밤새 오던 길을 기여서 날밝기 전에 적들이 숙영하고있는데까지 갔다.
그곳에 가니 적의 《토벌대》놈들이 싸다닌 자취가 신작로처럼 나있고 불빛이 환하고
지껄이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였다.
우리들은 백포로 위장한채 더 가까이 가서 적정을 정찰할 목적으로 얼마간 더
기여갔다.
그런데 약 100m앞에서 흰것이 얼른거리는것이 문뜩 보였다.
가까이 오는것을 보니 그것은 백포를 쓴 약 10명의 적순찰대가 분명하였다.
우리들은 50m거리에 접근시켜놓고 일제사격을 했다. 이렇게 적진을 소란케
해놓음으로써 놈들이 잠을 못 자도록 하자는것이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우리 뒤에서도 총소리가 났고 가까운 옆에서도 총소리가 났다.
그때에야 우리는 적의 숙영지 복판에 들어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더 잘되였다. 사령관동지의 지시대로 한바탕 저희들끼리 싸움을
시켜놓자.》
한익수동무는 이렇게 말하며 총소리나는 곳에다 대고 한발씩 모두 총을 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앞과 뒤와 옆에다 대고 한방씩 일제사격을 해놓고는 옆으로
빠지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어둠속에서 어림짐작으로 마구
총질을 해대였다.
우리가 다 빠져나와 산릉선에 오른 때에는 더욱 요란스럽게 총소리가 났다.
아마도 전부대가 깨여나서 서로 총질을 해대기 시작한 모양이였다.
놈들은 해가 올라올 때까지 저희들끼리 《돌격》을 거듭하면서 싸워댔다.
위대한 수령님께 이에 대한 보고를 하자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 겨울에 정말 혼이 나는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놈들이지.
산발과 추위와 굶주림에 단련된 우리들은 그 무서운 행군을 수개월 계속하면서도
자기 력량을 손실없이 보존하고있었으나 원쑤들은 아군에 의하여 맞아죽고 얼어죽은
무수한 시체를 밀림속 눈우에 가는 곳마다 너저분하게 널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놈들은 악을 박박 쓰며 우리 뒤를 따라다니였다.
적들의 추격이 다시 심해지고 행군하기가 다시금 곤난해지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를 친솔하시고 적의 요충지대인 13도구를 칠 계획을 세우시였다.
이때 우리의
정찰병들이 적의 전화를 도청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를 추격하다가 큰 타격을 받고
13도구에 들어가있던 적부대가 그 이튿날 아침에 장백쪽으로 떠나간다는것이였다.
놈들은 지휘관이 쓰러지자 완전히 전투사기가 떨어져서 더 깊은 후방으로
도망가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13도구에 수비병력밖에 남지 않은 이 기회를 리용하여
그곳을 침으로써 놈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또한 여러 방향에서
분산행동을
하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사령부가 건재해있다는것과 그 위치를
알려주며 그들을 다시 집결시키기로 하시였다.
그때 13도구를 친다는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였다. 13도구는 놈들의
《토벌》근거지의 하나일뿐만아니라 대안에는 바로 신갈파를 끼고있는 곳이였다.
13도구에서 전투가 일어난다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서 신갈파의
일본수비대놈들이 밀려올수 있었고 장백에서도 구가점에서도 곧 응원부대가 달려들수
있었다.
이 전투는 생사를 결단하는 전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을 쳐야만
적들을 멀리 쫓아버릴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번개처럼 빨리 치고 빠져나올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직접 오백룡동무를 비롯한 우리의 일부 인원들을 친솔하시고
출발하시였다.
우리는 밤중에 13도구에 도착하였다. 기본주력은 재빨리 성문을 돌파하고
들어가서 적의 수비대병실을 포위하고 맹사격을 퍼부어 놈들을 완전히 병실안에
가둬넣었다. 그사이에 우리는 재빨리 시내에서 식량공작을 하여가지고 빠졌다. 이때
많은 인민들이 자진하여 우리의 짐을 지고 따라왔고 그중 많은 청년들이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우리는 그야말로 번개처럼 적의 중심을 치고는 백바위를 지나 산에 올라
휴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곳에서 로획한 소들을 돌아보시다가 그중의 몇마리가
인민들의 소임을 알아보시고 주인을 찾아 소를 돌려주시였다.
적기관의 소들은 뿔에 임금왕자도장이 찍혀있었기때문에 인차 알아볼수 있었다.
그런데 밤에 급히 서두르는통에 일부 인민의 소들도 껴묻어나오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들앞에 깊이 사과까지 하시는 겸손하고 너그러운 풍모에
접하자 한 청년은 그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우리 형제는 그만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날이 밝으면 동생의 잔치를
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자 더욱 놀라시며 신랑될 사람과 그 형의
손을 잡고 《참 미안하게 되였소. 그런줄 알았으면 오지 말것을 그랬소.》
하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잔치도 혁명임무를 해놓은 다음에 하는게 더 좋지요. 이제라도 빨리 돌아가면
잔치를 넉넉히 할수 있으니 념려마십시오.》
청년의 이런 말을 들으시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다음에 조국이 독립되면 동무의 잔치를 다시 잘 차립시다.》
짐을 지고 왔던 인민들은 그이의 말씀에 무한한 감격을 느끼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적들은 자기들의 후방중심지가 불시에 습격당하는바람에 대혼란에 빠졌다.
우리 부대는 이 틈을 타서 은밀히 행군하여 다시 장백오지에 있는 부후물쪽으로
이동하였다.
도중에서 우리는 적《토벌대》의 추격을 받아 쫓겨오는 산림부대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적을 격퇴하고 같이 행동하게 되였다.
우리는 그길로 발자국을 메우며 부후물치기에 들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봉밀영에 있는 후방성원들, 재봉대원들을 생각하시여
13도구에서 로획한 물자들과 소고기를 지워서 그곳으로 몇명의 대원들을
파견하시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래간만에 천막을 치고 며칠동안 쉬게 되였다.
강대나무밑 눈우에 자리를 만들고 진대통우에다 천막을 치고 쉬다가는
어슬어슬해지면 약 100m 떨어진 곳에 나가서 은밀히 불을 피우고 밥을
해먹었다.
어느날 나(전문섭)는 기관총분대장, 김원일동무 셋이서 저녁준비를 하려고
나갔다.
그런데 얼핏 보니 몇백m밖의 나무뒤에서 백포를 쓴 사람들이 우물거리고있는것이
보이였다.
찬찬히 보니 적이 확실한데 이런 근거리에서 우리를 보고도 총을 안쏘는것이
이상하였다.
나는 동무들과 눈짓을 하고는 적들을 보지 못한체하고 슬슬 본부대가 있는데로
되돌아들어왔다. 동무들도 모두 눈치를 채고 아무 기색도 내지 않고 은밀히 적의
거동을 감시하였다. 이때 놈들은 우리가 모르는줄로만 알고 슬금슬금 기여드는
판이였다.
이 정형을 보고받으시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가 못본체한것은 잘했소. 아마도 적들은 몰래 우리를 포위하고있는것
같소. 경위중대가 앞에 서서 북쪽으로 빠지고 기관총분대장동무는 계속 적을
감시하며 방어하시오.
그러되 절대로 총을 쏘지 말고
은밀히 행동하시오.
우리들은 은밀히 그곳을 빠지기 시작하였다. 나무가 너무나 무성하고 나무우에도
50㎝이상 눈이 쌓여서 우리 보초도 놈들이 접근하는것을 제때에 발견하지 못하였고
놈들도 우리가 빠지는것을 보지 못하였다.
약 500m가량 빠져나오니 《토벌대》가
지나간 자국이 대통로를 이루고있었다. 놈들은 남북으로 우리를 포위하고 접근해오던
판이였다. 우리는 묘하게도 아직 채 맞물리지 않은 포위망의 빈틈으로 감쪽같이
빠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장소의 지형과 적들의 전술을 꿰뚫고계셨기때문에 놈들이
어떻게 포위진을 펴리라는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북쪽으로 빠지라고 지시하셨던것이다.
우리는 《토벌대》놈들이 지나간 대로를 얼른 건너서 발자국을 메우며 맞은편
릉선에 올라가서 휴식하였다.
한참 있더니 우리가 숙영하던쪽에서 자지러지게 총소리가 울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자 《놈들끼리 잘 싸운다.…동무가
아니면 참 위험할번했소.》라고 하시며 우리를 돌아보시고
웃으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제는 적들이 정면전술이 아니고 은밀히 포위하는 전술을 쓰는것 같소.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겠소. 적들이 수림지대를 중심으로 추격포위하는
조건에서는 야산지대로 이동하여 행군해야 하오.
그리고 적들이 야산으로 쏠리면 우리는 다시 수림지대로 들어와야 하오.
그이께서는 이렇게 벌써 적들을 감쪽같이 따돌릴 전술을 다 짜고계시였다.
우리는 그날밤으로 산을 내려 대담하게
적들의 중심지로 통하는 대통로를 따라 압록강쪽으로 강행군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대담하게
행동하여야만 지금 정황에서는 제일 안전하고 또 빨리 전진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그때 적들은 모두 밀림속을 헤매며
우리의 종적을 찾고있는것만큼 밤에 대통로에 주의를 돌릴리는 없었다. 우리는
그날밤으로 200리길을 행군하여 파팡딩즈집단부락이 지척에 보이는 야산우에 천막을
쳤다.
그곳에는 산림대가 강냉이를 좀 묻어둔
곳이였으므로 얼마동안 식량문제도 해결될수 있었다.
적들은 자기들의 바로 코밑인 이런
야산에서 우리가 숙영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을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학습을 하면서 얼마간을
지내였다.
이곳에서 우리는 고대하던 1939년
승리의 봄을 맞이하였다.
장백밀림의 혹독한 추위도 우리앞에
마침내는 머리를 숙였으니 양지쪽에서는 눈이 녹기 시작한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날자까지 짚으시며
우리를 고무하시던 그 승리의 봄이 도래한것이다.
우리는 다른 부대들과 만나 보다 큰
승리에로 나아가기 위하여 가재수오지 북대정자쪽으로 행군하여갔다.
그 어떤 원쑤들도 더는 우리를 그렇듯
간고한 정황속에 몰아넣지 못했던것이다,
비록 의복은 람루하고 몸은 지쳤으나
우리 마음은 나는듯 행군길을 앞당겨갔다.
북대정자에 다달아 밀림속에 자리를 잡고
숙영하게 되였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제는 우리가 겨울을 무사히
났습니다. 꼬마들도 그 고생을 이겨냈으니 제발로 걸어다닐수 있는 강한 투사로
된셈입니다. 이제는 문제없습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입니다. 우리도 이
봄에는 힘을 모아 조국에로 진군하여 조선에 나가서 승리의 홰불을 올립시다.
그것은 상상만 하여도 과연 장쾌한
일이였다. 봄빛이 시시로 짙어가는 4월초의 백두령봉을 바라보느라니 한가슴 가득히
승리의 자랑이 안겨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처에 통신원을
파견하시여 7련대, 8련대, 재봉대 등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을 북대정자로
모이게 하시였다. 우리들은 참말로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기쁨으로 전우들을 얼싸안고
돌아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나 기쁘시고
감격스러우셨으랴.
오중흡련대장을 얼싸안으신 그이께서는
그의 어깨를 쓸어주시면서 한참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이곳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대정자회의를 소집하시여 1938년 겨울부터 1939년 봄기간 활동을 총화하시고
국내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토의하시였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극적인
반격전으로 일제침략자들을 련속 타격하고 조국으로 진군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 방침에 근거하여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대반격에로 전환하였다.
그 간고한 동기작전에서 적들의 공세를
물리치면서 자기의 력량을 보존하였을뿐만아니라 강철같이 대렬을 강화하고 완강한
투지를 가진 우리들은 노도와 같이 적들을 무찌르며 진공하였다.
4월 12일에는 적의 대병력이
주둔하고있는 구가점을 쳤고 련이어 15도구, 반절구 등 적의 중심부로
진공하였다.
장백오지에서 겨우내 우리에게 끌려
돌아다니느라고 기진맥진하여 허덕이던 원쑤들을 이번에는 이렇게 제놈들의 소굴에서
완전히 소멸해버리였던것이다.
이 전투들을 통하여 우리는 무기,
식량은 물론 피복, 신발들을 해결하였으며 조국으로 진군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원쑤들의 총검거로 이 지방의 조국광복회
조직망이 혼란된데다가 일제놈들이 전해 겨울에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소멸》하였다고 허위선전을 들이대는바람에 한때 비운에 잠기였던 인민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대부대들이 적의 요충을 련속적으로 공격하는것을 보자 기쁨에 넘쳐
혁명승리를 확신하게 되였다.
우리는 이렇게 랭랭한 암운이 짓누르던
땅에 빛나고도 희망에 찬 봄빛을 뿌리며 또다시 조국진군의 길에 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우리 부대는
드디여 1939년 5월 18일 압록강을 건는 후 무산지구전투를 진행함으로써
조선인민의 앞길에 다시금 조국광복의 밝은 빛을 뿌리였다.
위기에 빠졌던 조선혁명은 다시금 거세찬
앙양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고 조선인민은 억세게 살아있고 싸워서 이기고있다는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이 위대한 전환-그것은 남패자에서
장백으로 뻗쳐진 그 간고한 행로를 거쳐서 이루어진것이며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완강한 혁명적전개력과 현명한 령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승리였다.
우리는 고난의 100여일행군을 감회깊게
회상할 때마다 험난한 고비를 넘으며 싸워온 그 행군로가 바로 오늘 천리마의 넓은
길로 통하고있다는것을 말하고싶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고난의 앞장에 서시여 오직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간고한
투쟁의 길을 승리에로 인도하셨기에 오늘의 꽃피는 사회주의락원이 이루어졌고 어떤
고난속에서도 승리를 믿으며 주도권을 틀어쥐고 싸우고 또 싸워이기는 백절불굴의
그이의 혁명사상이 있었기에 오늘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질풍처럼 달리는
천리마대진군이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