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두 익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들이
어떤 사업을 조직하거나 지도할 때에 미리 실정을 깊이 료해하고 문제해결의 방도를
명확히 세우며 포치한 후에 사업을 끝까지 관철하는 사업방법을 체득해야 한다고
항상 가르치고계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몸소
그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였다.
어느 한 정찰조를 파견할 때에도 그이께서는 지도를 내놓으시고 구체적으로 지형을
가르쳐주시였으며 지도가 없을 때에는 직접 산에 올라가시여 어느 길로 가야 하며
도로를 건늘 때 그리고 마을에 들릴 때에 적이 매복해있거나 적의 밀정이 있을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물었을 때에는 어떻게 대답하며 돌아올 때에는 가던 길로 올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오라고까지 일일이 말씀하여주시군 하시였다.
지금도 나에게는 그이의 이러한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지도에 의하여 왕촌장을
개변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던 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령관동지께서 친솔하신 우리 부대가 마당거우밀영을 떠나 림강현 대황구에서
30리가량 떨어진 압록강연안 밀림지대에 도착한것은 1938년 봄이였다.
숙영한지 며칠 안되는 어느날, 그이께서는 나와 안경석동무외에 또 두 동무를
부르시였다.
우리들은 지체없이 그이께서 계신
천막으로 갔다.
우리가 천막안에 들어서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친히 가지고 다니시던 지도
한장을 앞에 내놓으시면서 지방공작에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벌써 우리가 가기로 된 대황구일대의 지리는 물론, 주민구성으로부터
그들의 정치적동향에 이르기까지 세밀히 료해하고계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비단 대황구뿐만아니라 그에 린접한 소황구집단부락에 대한
정형까지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였다.
며칠전에 일제놈들이 소황구에 달려들어 인민들의 집과 살림도구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렸을뿐만아니라 무고한 늙은이들과 철없는 어린이들까지도 참혹하게
학살하였다는것, 그리하여 한지에 나앉게 된 소황구사람들이 하는수없이 대황구로
밀려가게 된 사실, 또한 소황구에는 과거 혁명조직들이 뿌리를 박고 활동하던
곳이니만큼 학살당한 혁명가유가족들이 복수의 날을 기다리면서 대황구에 집결되여있는
정형 등을 자세히 말씀하여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대황구와 소황구형편을 자세히 말씀하시고 다음과 같은 과업을
구체적으로 주시였다.
대황구부락에서 좀 떨어진 야산지대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농막이
보일것이다. 이 농막주인은 60이 가까운 매우 좋은 사람이니 그 로인을 통하여
대황구집단부락의 왕촌장을 만나 우리편으로 돌아서도록 설복하라는 임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소황구와 대황구의 혁명조직을 복구강화하고 유격투쟁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려면 왕촌장과 같은 사람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왕촌장은 촌장에다가 자위단장까지 겸한 사람인데 지식도 있고, 토지도 다소
가지고있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주의깊이 듣고있던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이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시자 계속하여 더 상세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람을 볼 때에 어느 한가지 측면만 봐서는 안됩니다. 여러가지 측면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고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왕촌장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촌장에 자위단장까지 겸한것으로 보아 적들이 신임하고있는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왕촌장은 지금 자기 부락사람들을
해치지 않고있을뿐만아니라 심지어 소황구에서 몰려간 유가족들도 다치지
않고있습니다.
만일 그에게 민족적량심이 없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지식도 있고
다소간 민족적량심도 가지고있는 사람이니 대담하게 접근하여 우리 유격대가
일제놈들과 싸우는 목적을 해설해준다면 그를 반드시 우리편으로 돌아서게 할수가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왕촌장을 만나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선전사업을 진행해야 하는가
하는것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다음 갈 때에는 어느 길로 가고 돌아올 때에는
어느 길로 돌아와야 한다고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감시조직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거듭 주의를 주시였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듣고 나는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만 한다면 왕촌장을 능히
우리편에 돌아서도록 설복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우리들의 눈앞에는 대황구일대의 정형이 어느덧 선히 떠오르는것 같았다. 우리들은
맡은바 과업을 능히 실천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대황구를 향해 출발하였다.
우리들은 그이께서 가르쳐주신 사업내용을 명심하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왕촌장을
우리편으로 돌려세워야겠다고 굳게 결심하면서 걸음을 다그쳐 날이 어슬어슬할 무렵에
대황구에 도착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지시대로 부락에서 좀 떨어진 야산지대에 이르러 산릉선을 타고
오른쪽으로 떨어지자 농막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들은 농막근처에 은신하여 그이께서 말씀하시던 로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초봄이여서 다른 밭에서는 농민들이 수수뿌리를 털고 두엄도 져나르는것이 보였으나
해가 서산에 기울어가기 시작하여도 농막 로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근기있게 그냥 농막근처에서 로인이 나오기만 기다리고있었다.
이윽하여 손에 쟁기를 쥔 한 로인이 천천히 밭으로 나오고있었다. 우리들은
조심히 로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로인은 낯선 우리들을 대하자 유심히 훑어보다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고 물었다.
우리들은 그 로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후 농막으로 함께 가서 사실대로 우리의
정체를 밝힌 다음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로인은 별안간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머리를 내저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나한테 그런 부탁을 다 하십네까? 그러다가 들키는
날에는 내 목부터 달아날 판인데…》
로인은 계속 우리들을 훑어보더니 혼자말처럼 《〈김일성부대를
소멸했다.〉구 신문에까지 냈다던데.》하면서 더욱 찬찬히 살펴보는것이였다.
나는 비로소 이 로인이 우리들의 정체를 명확히 확인하려는것임을 알게 되였다.
《일제놈들은 지금 터무니없는 선전으로 백성들을 속이고있습니다.
놈들은 완전히 김일성장군님의 전술에 속아넘어가고말았습니다.》
나는 지난해 겨울에 적들로 하여금 우리의 행방을 알아낼수 없게 하신 그이의
령활한 기동작전과 일제놈들의 기만선전의 본질에 대하여 자세히 해설하여주었다.
그제서야 로인의 얼굴에 안도감과 희색이 떠올랐다. 로인은 조용히 나의 손을
잡으면서 《친구.》하고 머리를 숙여보였다.
《김장군님의 분부라면 내 힘자라는데까지 해보겠수다.》
이렇게 말하는 로인의 목소리에는 진정이 담겨있었다.
우리는 이 로인을 통해서 부락사정을 좀더 자세히 알아내였다.
대황구부락은 200여호가량의 집단부락으로서 왕가성을 가진 사람들이 태반이며
거기에는 계 비슷한것이 무어져있었다. 여기에 든 사람들은 모두 일제놈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였고 이 늙은이로 말하면 좌상격이였다.
우리는 왕촌장도 여기에 들었다는것을 알게 되자 확신을 가지고 다시 로인한테
청을 드리였다.
《우리는 오늘밤에 왕촌장과 항일구국문제를 가지고 의논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든지간에 꼭 그를 데리고 와주십시오.》
로인은 우리가 진지하게 청을 드리자 잠시 골똘히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좋다고
쾌히 승낙을 했다. 로인은 왕촌장이 비록 지식도 있고 땅도 다소 가지고있기는
하지만 마지못해 일제놈들앞에서 심부름하는것뿐이고 또 자기의 친척일뿐만아니라
결의형제까지 무은 사람인만큼 결코 자기의 권고를 허술히는 듣지 않을것이라고
하면서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며 부락으로 내려갔다.
왕촌장에 대한 공작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될것만 같았다.
우리들은 사령관동지로부터 받은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늙은이의 뒤모습을 미더운 눈으로 내려다보고있었다.
(얼마나 선량한 로인인가. 혁명군을
위해 생명까지 바쳐 싸운 이러한 로인들을 우리는 수많이 보아왔다. 지금 우리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젖혀놓고 부락으로 내려가는 저 로인도 바로 그런 어질고 훌륭한
늙은이이리라. )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로인이 내려간 뒤에 우리들은 다른 장소에 옮겨 감시조직을 세밀히 한 다음
로인이 왕촌장을 데리고 올라오기만 고대했다. 그런데 밤이 이슥하도록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동이 훤히 트기 시작했으나 로인도 왕촌장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더는 안심할수가 없어 소나무밭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어떻게 할것인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좋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가지로 생각하던 끝에 대담하게 그 로인을 믿기로 했다. 설사
왕촌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로인만은 꼭 우리들을 찾아와서 결과를
알려주리라고 믿었다.
우리들이 그를 믿게 된것은 이미
숙영지를 떠날 때 사령관동지께서 그 로인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직접 만나보고나서
받은 인상이 적중하였기때문이였다.
(믿자. 그렇게 소박하고 선량한 늙은이를 믿지 않고 누구를 믿겠는가.)
우리들은 긴장성을 늦추지 않고 하루종일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이슥해지자 우리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들이 반신반의하면서 집단부락쪽을 유심히 살피고있을 때였다. 별안간
부락앞에서 반짝거리는 불빛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우리들은 그곳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초롱불빛이였다. 초롱불은 분명 농막쪽으로 향해 서서히 움직이고있었다.
우리들은 길목과 산등성이를 더욱 세밀히 감시하면서 유심히 살폈다.
초롱불빛은 드디여 농막곁에서 멎었다. 뒤이어 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들은 로인과 동행한 사람외에 아무도 달린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나서 천천히
그들 곁으로 내려갔다. 로인은 반가와하면서도 약속을 어기였기때문에 미안하다고
거듭 말하고나서 우리들에게 왕촌장을 소개하였다.
왕촌장은 얼핏 보기에 서른네댓된 사람으로서 매우 쾌활해보였다. 체구는
름름하면서도 큼직하고 눈은 부리부리하였다.
우리들이 여기까지 찾아와주어 매우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그는 우리들을 조심스레
대하면서도 부모처자와 떨어져 산에서 지내니 얼마나 고생인들 막심하겠느냐고 동정을
표시했다.
《우리는 산에서 고생은 하고있지만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놈들한테
지지눌려서 사는 당신들은 매인 몸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이런 말에 왕촌장은 약간 쾌활해지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옳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들한테는 자유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왕촌장은 여전히 우리들을 조심스레 대하면서도 우리들의 말에는 동의를 표시했다.
우리는 왕촌장을 데리고 농막에 들어가 마주앉은 다음 그의 동태를 명확히
료해하기 위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왜 적들앞에서 촌장에다가 자위단장까지 겸하고있습니까?》
그러자 왕촌장은 《내가 단장까지 겸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또 단장을 하게
될게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동족한테서 결국 두 사람이 미움을 받아야 합니다.
더구나 나쁜 사람이 그자리에 들어앉으면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고는 우리들을 마주보는것이였다.
우리들이 알고싶어하던 고리가 비로소 풀린것 같았다. 그가 단장까지 겸하게
된것은 적들의 강요도 있었겠지만 그로서는 깊이 생각한바가 있어서 맡은 일인것이
분명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인민들을 해치지 않고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김일성장군님께서도 당신이 인민을 해치지 않는
사람일뿐만아니라 민족적량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으로 인정하신다는것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이 말에 왕촌장은 얼굴에 감격의 빛을 띠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앞에
바싹 다가앉는것이였다.
《아니 그게 사실인가요? 장군님께서 어떻게 나를 아실가요? 나는 아직 한번도
그분을 뵌적이 없는데요?》
《장군님께서는 당신뿐만아니라 부락내의 백성들의 형편까지도 자세히 알고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비록 적들앞에서 촌장노릇은 하고있지만 우리와 손을 맞잡고
항일투쟁을 함께 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한테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계십니다.》
왕촌장은 이런 말을 듣자 대번 낯빛이 환하게 밝아지는것 같았다.
《저한테 기대까지 가지구계신다구요?》
우리는 사령관동지께서 우리가 떠날 때 가르쳐주신대로 말을 계속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조중 두 나라 인민들의 공동의 원쑤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면
당신과 같은 민족적량심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튼튼히 련계를 맺고 혁명군을
도와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당신은 량심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살고있습니까?》
왕촌장의 얼굴에는 심각하고도 엄숙한 빛이 떠돌았다. 그는 눈을 꾹 감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설레설레 머리를 내저으면서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당신들 말씀을 들으니 나는 더 괴롭습니다. 우리는 제땅에서 살면서 감히
10리밖으로도 나다니지 못합니다. 친한 친구가 찾아와도 련대보증을 세우고야 집에
재울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일본군대와 경찰놈들은 사흘이 멀다고 싸다니면서 내
친척과 동족들의 물건을 략탈하고 백주에 부녀자들을 겁탈하는데 그것을 보고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참아야 합니다. 그러니 만일 당신들과 손을 잡았다는 비밀이
탄로되는 날엔 내 가족은 말할것도 없고 부락사람들이 모조리 불에
타죽고말것입니다.》
나는 그가 어제밤에도 아마 이런것때문에 고민하였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우리는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내놓는 그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적을
증오하고있는가를 알수 있었다.
우리는 재차 근기있게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 선전내용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었다.
《당신은 량심을 지닌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 귀중한 지식을 자기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제놈들을 위해서 바치고있습니다. 일제놈들과 싸우는가? 그렇지
않으면 놈들앞에 굴복하는가? 이 두길밖에 없습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처지가
그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당신은 용감히 나서야 합니다. 일제놈들은 자기들의
만행에 당신들이 겁을 집어먹고 떨기를 바라고있습니다. 만일 당신과 같이 겁을
집어먹고 일제놈들앞에 굴종한다면 인민들이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은 앞날을
내다보고 자기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좌우하는 혁명투쟁에 용감히 나서야 합니다.》
이 말을 주의깊이 듣고있던 왕촌장의 얼굴에는 더욱 심각한 빛이 떠돌았다.
나는 약간 목소리를 낮추어가면서 유격대가 비밀을 생명보다도 더 귀중히
여긴다는것을 강조한 다음 그에게 혁명대오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손에 체포되여
마지막순간까지 조직의 비밀을 지켜낸 공산당원들과 유격대원들의 모범적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왕촌장의 큼직한 눈은 더욱 빛나고있었다.
《당신들이 하는 말을 나는 심중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련계를
맺는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물자만은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왕촌장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내 손을 꽉 잡더니 무슨 큰 비밀을
이야기하려는것처럼 상반신을 내쪽으로 조용히 기울이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선 그분을 좀 만나게
해줄수 없을가요?》
내가 앞으로 그이를 만나뵐수 있게 될것이라고 하니 왕촌장은 기뻐서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나는 소문을 통하여 그분에 대해서 잘 알고있습니다. 빈손으로야 어떻게
장군님을 뵐수가 있습니까. 우선 식량만이라도 해결해보겠으니 래일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우리는 그가 지나치게 서두르는듯 하여 일제놈들과 위만군놈들의 동태를 다시
세세히 물어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일제경찰놈들과 위만군놈들이 어제 어디로 떠나갔으므로
오늘래일간에는 오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다.
왕촌장이 부락으로 내려간 뒤에 우리들은 일행중에서 한 동무를 사령관동지께 먼저
보내여 사업정형을 보고하게 하였다.
그이께서는 사업정형을 들으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왕촌장의 간청을 쾌히
수락하시였다.
한편 왕촌장은 우리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왕촌장은 그 이튿날 밤 비밀리에 부락인민들을 동원하여 식량 등을 걷어모으게 한
다음 몰래 성밖으로 져나르게 하였다.
우리는 40여명의 인민들과 함께 그
식량과 신발들을 지고 산으로 올라오게 되였다.
우리는 비로소 왕촌장이 평소부터 사령관동지를 얼마나 흠모해왔는가를 알게
되였다. 이것은 비단 왕촌장 한사람만이 아니였다. 40여명의 인민들은 한사람같이
사령관동지를 뵈옵기를 간청하였다.
우리들은 40여명의 인민들과 왕촌장을 데리고 압록강연안 수림속에 잡아들었다.
밤이 이슥해진 때에 우리들은 숙영지에서 좀 떨어진 수림지대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곳에서 인민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은 단꺼번에 40여명의
인민들이 동원된것만큼 놈들의 삼엄한 경계와 감시로 인하여 잘못될수도
있었기때문이였다.
우리들은 인민들에게 그이를 못 만나뵙게 되는 사유를 리해시키고는 식량과
신발값을 후하게 주어 돌려보낸 다음 왕촌장을 데리고 그이께서 계시는 천막을 향해
걸었다.
왕촌장은 벌써 그이를 대하기 전부터 감격을 금치 못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저로서는 분에 넘치는 생각인줄을 알고있습니다. 나는 늘 그분을 마음속에
그리고있었습니다.》
우리가 천막곁에 이르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친히 천막밖에 나오셔서 왕촌장을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왕촌장의 손을 잡으시더니 한손으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면서
식량까지 해결해가지고 찾아와주어서 고맙다고 치하하시였다.
왕촌장은 그이의 활달하고도 너그러운 모습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이께서는 정결하고도 아담하게 꾸려진 천막안으로 왕촌장을 안내하신 다음 친히
차를 권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식구는 몇명이며 사는 재미는 어떤가 하고 왕촌장의 일상생활에
대하여 먼저 물으시였다.
천막안으로 들어갈 때만 하여도 긴장한 빛을 감추지 못하던 왕촌장의 얼굴에는
어느덧 안도의 빛이 떠돌았다.
《저같은 사람을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왕촌장은 진정으로 송구스러워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당신은 비록 적들앞에서 심부름을 하고있지만 인민들을 해치지 않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소.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요. 앞으로 계속 촌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들을
도와주십시오. 총을 쥐고 싸우는것만으로써 일제놈들을 타도할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총쥔 사람들을 도와나서는 인민들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부락에 내려가면
인민들을 조직하시오. 그러자면 우리와 튼튼히 련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왕촌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숨만 가쁘게 내쉬였다.
적들의 삼엄한 경계와 감시속에서 유격대와 튼튼히 련계를 맺는다는것은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였다.
그이께서는 왕촌장한테 다시 차를 권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당신은 지식인이므로 과거 혁명투쟁에서 선렬들이 피를 흘리며 싸워이긴
사실들도 많이 알고있을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허두를 떼신 다음 조선에서 전개된 3. 1인민봉기에
대하여서와 로씨야에서 승리한 사회주의10월혁명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어려운 혁명리론으로부터 사소한 일상생활형편에 이르기까지 세상만사를 환하게
꿰뚫고 통찰하시는 그이의 앞에서 왕촌장은 그저 고개를 수그리고 존경어린 얼굴로
그이의 말씀을 심중히 듣고있을뿐이였다.
《자, 그럼 우리 좀더 이야기해봅시다.》
그이께서는 자세를 고쳐앉으시면서 왕촌장을 마주보시였다.
당신은 지금 우리와 련계를 맺고는 싶으나 일제놈들의 총칼이 겁나서
주저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겁나할 필요는 없습니다. …손에 무기를 틀어잡고
일어선 우리 항일유격대가 어째서 일제놈들을 때려부실수가 없겠소? 당신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에 탄복한 왕촌장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와 함께 미소가
떠오르고있었다.
《잘 알았습니다. 더는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저같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믿어주시니 더 여쭐 말씀이 없습니다. 일생 잊지 않고 장군님 말씀대로
싸워보겠습니다.》
왕촌장은 감격하여마지 않았다. 그의 눈은 빛났고 불그스름한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하였다. 그는 감격과 기쁨을 금치 못하다가 그이께 부락에 돌아가면 장군님
말씀대로 항일유격대와 정상적으로 련계를 맺고 백방으로 유격대를 돕겠노라고 거듭
자기의 결의를 표명하였다.
왕촌장은 사령관동지로부터 귀중한 말씀을 들은 다음 밤이 퍽 깊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이께서는 왕촌장을 떠나보내시면서도 세심히 돌보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왕촌장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장대원 두명을 따라보내시였다.
왕촌장은 더욱 감격하여마지 않았다.
《장군님, 저는 혼자서두 갈수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을 위해서 혁명군대가 잠을
못 자서야 되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천막밖으로 나오시면서 왕촌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였다.
《무사히 왔으니까 또 무사히 돌아가야 할게 아닙니까? 당신을 혼자 밤길에
내여놓고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다면 내 마음이 편안할수가 있겠습니까?》
왕촌장은 너무나 황송하여 사령관동지앞에 조용히 허리를 굽히면서 진정이 고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장군님은 참말로 인자하시고도 훌륭하신분이십니다. 저는 세상에
태여나서 처음으로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되였습니다.》
이런 광경을 곁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은 흥분과 감격으로 끓어올랐다.
그후 왕촌장은 사령관동지앞에 결의한대로 계속 우리와 련계를 맺고 항일유격대를
물심량면으로 도와나섰다.
특히 그는 많은 량의 식량과 천, 신발 등을 유격대에 보내여주었을뿐만아니라
중요한 정보까지 제공하여 우리의 유격투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이께서는 왕촌장의 이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왕촌장에게 그 지방 지하조직과 련계를 맺고 일제를 반대하여
더욱더 견결히 싸울수 있도록 새로운 투쟁의 길을 열어주시였다.
간고하고도 장구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항일유격대원들이 원쑤들에게 매번 커다란
타격을 줄수 있은것은 오로지 사령관동지께서 모든것을 명철하고도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혁명사업을 지도하신데 있었다. 이리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항일유격대를
혈육과 같이 사랑하고 아끼고 도와나서도록 일체 반일세력들을 혁명대오의 주위에
집결시켰을뿐만아니라 심지어 일제놈들앞에 굴종하던 왕촌장같은 사람들을 자기 운명을
혁명조직에 의탁하고 싸울수 있게 하였던것이다.
왕촌장에 대한 어려운 사업임무는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구체적이고도 세심한
지도에 의해서만 성과적으로 수행될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나갔건만 그때의 일을 더듬어볼 때마다 나는 당시
우리가 찾아갔던 하나의 산골짜기와 오솔길은 물론, 로인과 왕촌장의
성격과 행동까지가
어쩌면 그렇게도 그이의 말씀과 꼭 들어맞았던가 하고 다시금 탄복하지
않을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도사업이란 내려가서 아래사람들이 무엇을 곤난해하는가, 어떻게 하면
도와주겠는가, 이렇게 하부실정을 잘 료해하고 그들을 도와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것입니다.
나는 이 교시에 비추어볼 때 자기자신의 하부지도사업이 바로 이렇게 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나는 오늘 청산리정신과 청산리방법대로 사업할것을 요구하는 당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하여 항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사업해야겠다는것을 다시한번 굳게 결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