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문 섭
오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높이 우러러모시고
따르는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노래 《신념과 의지의 찬가》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항일혁명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들에게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혁명적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안겨주시며
어엿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으로 키워주시던 일들을 감회깊이 회상하군 한다.
생각해보면 지난 항일혁명투쟁의 전기간은 우리에게 있어서 혁명에 대한 굳은
신념, 불굴의 투쟁의지를 다지고 키워온 혁명적단련과 성장의 과정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나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 때 생활과 투쟁을 통하여 다져진 혁명적각오보다도
일제침략자들을 쥐락펴락하며 요정내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에
매혹되여 수령님의 수하에서 본때있게 싸워볼 욕망으로부터 입대하였다.
그러므로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로 되겠다는 욕망뿐이였지 부족한것이
너무나도 많은 철부지였다.
나는 어린 시절에 동네사람들과
특히는 맏형에게서
일제놈들을 벌벌 떨게 만들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수령님을 한번만이라도 뵈웠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하늘이 내신분인데 축지법도 쓰시고 천리도 내다보시며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하면서 왜놈들을 골탕먹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나면 나에게도
날개가 돋쳐 수령님께로 날아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정치공작원들을 통하여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알게 되고 또 나자신이 소년회에 들어서 생활하면서부터는 나도
기어이 수령님의 전사로 싸우겠다는 결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런 결심을 하니 하루라도 빨리 혁명군에 입대하고싶었다.
나는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위대한 수령님 부대를 찾아갈수 있을가 생각하며 해를
보내군 하였다.
그러던 1937년 여름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를 친솔하시고 우리 마을에
오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뵙게 된다는 기쁨과 함께 입대가 승인되겠는지 하는
걱정으로 하여 온밤 뜬눈으로 새웠다.
새벽에 일어난 나는 우선 위대한 수령님을 뵙고싶은 생각이 앞서서 수령님께서
드신 집앞에 가서 기다렸다. 그러느라면 언제든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문밖으로
나오시리라고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진것은 나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드신 집앞에는 많은 청년들과 소년들이 모여왔다.
얼마 안있어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령병과 함께 집에서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우리들의 인사에
답례해주시였다.
나는 우리 또래들과 함께 외람된 일인지 아닌지도 가늠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다녔다.
전령병이 우리들을 꾸짖을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애들이 어찌다가 혁명군을
만나 기뻐서들 그러는데 놔두라고 이르시였다.
그날 나는 조직에 나의 입대를 청원하였다.
그런데 그만 그것이 부결되였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것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을 뵙고난 감격이 너무나도 세게 내 가슴을 흔들어놓아
입대하려는 나의 욕망은 더 높아졌다.
그리하여 나는 부대가 떠나간 후 다시금 조직에다 나의 입대문제를 제일 선참
해결해줄것을 제기해두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있는 곳에 찾아가려고 작정하였다.
그런데 이무렵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를 친솔하시고 우리 마을에 또다시
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천보에서 전투를 승리적으로 치르시고 구시산과 간삼봉에서
따라온 적들을 완전히 요정내신 다음 우리 마을에 들리셨던것이다.
온 마을이 명절분위기로 들끓었다.
정성껏 음식도 차리고 가는 곳마다 보천보와 구시산, 간삼봉에서의 전투이야기로
흥성거리였다.
그날 나는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첫 행군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때부터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수천만리길을 걸었는데 그 첫 행군이 제일
어려웠다고 생각된다.
입대할 욕망만 앞세우고 사상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단련이 부족했던 나는 첫
행군길에서 정말 곤경을 치렀다.
구대원들이 야간행군에 처음 참가하는 나에게 여러가지 주의를 주었는데 그대로
하자니 산판길을 어지간히 다녀본 나였지만 힘들기 그지없었다.
기침을 참자니 숨이 막히는것 같고 앞사람을 부지런히 따라가자니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덤불에 긁히워 얼굴에 피가 나도 제대로 문지를 사이가 없었다.
앞사람에게 걸렸던 나무가지가 튕기면서 얼굴을 때릴 때는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는것처럼 아팠는데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따라가자니 진땀이 났다.
그렇게 몇번이나 얻어맞고 발에 무엇이 걸려 댓발자국이 멀다하게 엎어지면서
걸으니 별생각이 다 났다. (이런 행군을 밤낮없이 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아뜩하였다.
만일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무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 앞자리에 들어서시는것도 미처 몰랐다.
나는 넘어지지 않고 얼굴도 할퀴우지 않으려고 긴장해서 어둠속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앞사람과의 사이가 좁아지길래 선두의 걸음이 늦어져 그러는가 하고
생각했을뿐이였다.
말소리를 듣고서야 위대한 수령님께서 들어서신줄 알게 되였다.
《동무는 이런 행군이 처음일테지.》
친근하게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니 나는 힘겹던 마음이 대뜸
가벼워지는것을 느꼈다.
그런데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린 동무가 구대원들도 힘들어하는
야간행군을 말없이 용케 견디여내는구만.》 하고 치하의 말씀까지 주시였다.
나는 피곤과 아픔이 간데없이 사라지고 온몸에 기운이 솟아났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활력소가 되여 쓰러질 지경에
이른 나에게 정말 큰 고무적힘으로 되였다.
그날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내앞에서 걸으시며 회초리가 튕겨나지 않게
잡아주시기도 하고 나무등걸에 걸채여 넘어지지 않게 알려도 주시며 내가 고생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참에도 무슨 일이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시면서
《행군도 힘들게만 생각하면 10리도 천리같이 여겨져 가낼수 없지만 자신심을
가지고 걸으면 어려운 천리길도 10리길을 가듯 쉽게 극복해낼수 있소.》라고
말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나는 그후에도 행군의 어려운 고비마다
되새겨보며 힘을 내군 하였다.
그날밤 우리 대오는 100여리를 행군하여 지양개등판의 어느 마을에 이르러
숙영하게 되였다.
나를 불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야간행군을 용케 견뎌냈다고 다시금
말씀하시고나서 《유격대는 춘하추동 산에서 지내야 하며 이런 행군을 계속
하게 되는데 꽤 따라다닐수 있소?》라고 물으시였다.
나는 견딜수 있다고 힘있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대는 행군만이 아니라 매일과 같이 적과
맞서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는데 겁나지 않소?》라고 물으시였다.
아직 적들과 한번 싸워보지 못하여 어떨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나는 또다시
쪽발이놈들은 무섭지 않다고 대답하면서 빨리 싸워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나이는
어린데 용기가 대단하구만.》라고 하시면서 구대원들에게서 잘 배워 훌륭한
대원이 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대로 하루빨리 훌륭한 대원이 되리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러나 모든것이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처음 한동안 풍막생활에 익숙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자고나면 몸이 무겁고 지긋지긋한게 뜨뜻한 구들생각이 났다.
그뿐이 아니다.
온종일 훈련이나 행군을 하고나서 야간보초를 서느라면 피곤이 몰려와 눈까풀이
천근무게로 내려감기는데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면 해종일 힘들게 일하다가도 밤잠만은 네활개를 펴고 마음껏 자던
집생활을 그려보면서 한번 실컷 자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무슨 당치 않은 생각을…) 하고 제풀에 놀라서 정신을 차린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나는 마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첫날의 야간행군길에서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군
하였다.
체험해보니 사실 피곤해서 저절로 눈이 감기는것도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힘들다고 맥을 놓으면 눈까풀이 점점 더 내려오고 나 하나 믿고 부대가
잠들었는데 내가 졸면 부대가 위태롭게 된다고 생각하면 감기던 눈도
뜨이는것이였다.
나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그 말씀을 명심하여 싸웠기에 첫 전투도 무사히
치를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산림경찰대의 말파리를 매복습격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이른새벽에 적들이 지나갈 도로의 량켠에
매복하였다.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였다.
아무런 우비도 없이 비를 흠뻑 맞으며 적들을 기다린다는것도 간단치 않았다.
게다가 모기까지 성화를 먹이니 참아내기가 급했다.
그래서 구대원들을 슬그머니 살펴보니 그들은 그런데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적들이
나타날 길목만을 지켜보고있는것이였다.
나는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여 마음을 다잡고 구대원들처럼 오직 적들이 나타날
길목만 주시하면서 (사격명령만 내리면 탄알 하나에 적 한놈이다.)라고
속다짐하였다.
그랬더니 모기가 쏘고 기침이 나려 하고 비물에 젖은 몸이 오싹거리는 등
방금전까지 애먹던것에 신경이 가지 않았다.
얼마간 기다리니 적들이 나타나고 위대한 수령님의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삽시에 매복진에서 총소리가 울리여 나도 엉겁결에 방아쇠를 당겼다.
구대원들이 그렇게도 차근차근 배워주었는데도 나는 첫 전투에서 첫 탄알은 묘준도
못하고 쏘아버렸다.
다시 격발기를 당기면서야 그것을 느낀 나는 두번째탄알부터는 적병을 정확히
겨냥하여 쏘았다. 그러나 내가 쏜 총알에 적이 맞았는지 어쨌는지 알수 없었다.
내가 몇방 갈기지 못했는데 돌격나팔소리가 울리였다. 이어 구대원들이 만세의
함성을 웨치며 적들에게 육박했다.
나도 벌떡 일어나 달리며 도망치는 적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전투는 순식간에 결속되였는데 80여명의 적들중에 살아서 도망친 놈은 불과 몇이
안되였다.
전투가 끝난 다음 전장수색이 있었는데 나는 너부러진 놈들한테서 총과 탄알을
거두는 임무를 받았다.
나는 총에 맞아죽은 시체를 처음 보니 손을 대기가 끔찍하였다.
그러나 참고 견디며 한자루 두자루 총을 걷어메였고 탄알도 어지간히 모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총화때 싸움을 잘한 동무들에게 로획한 새 보총을
수여하시였는데 과분하게도 나도 그 영광을 받아안았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타고난 싸움군이 따로 없소. 싸우면서
단련되는 법이요. 동무는 앞으로도 더 잘 싸워 훌륭한 싸움군이 되시오.》라고
힘있게 고무해주시였다.
그 전투에서 내가 다른 동무들보다 특별히 더 잘 싸웠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도 받고 새 총도 수여받으니 자랑스럽게 생각되여
집으로 달려가 부모에게 자랑하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그러한 마음속충동을 억누르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입대후 불과 3~4달동안에
내가 그렇게 자랄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 덕분이라고 깊이 느끼게 되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위대한 수령님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수령님의 말씀을 더
잘 받들어나가리라 굳게 속다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우리가 혁명의 한길을 동요와 주저없이 꿋꿋이
이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나는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내가 입대하여 1년이 지난 1938년 가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백산밀영에서 들려주시던 말씀을 잊을수가 없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우리 대오가 간백산밀영에 도착한것은 그날 해질무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녁식사후 우리들에게 온종일 행군하느라고 피곤할테니 일찍
자라고 이르시였다.
그러나 우리는 인차 잠들지 못했다.
더우기 나는 입대하여 처음으로 조국땅에 들어섰던터여서 압록강을 건늘 때부터
흥분되였던 마음을 좀처럼 진정할수가 없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란 참으로 야릇한것이다.
그무렵 비가 내린지도 오랜데다가 아득한 상류였으므로 우리가 건는 압록강은
논도랑만큼밖에 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동무들은 그것이 무슨 압록강인가
하며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압록강을 건너 조국땅에 들어서니 공기도 더 시원한것 같고 나무나
풀잎마저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귀틀집마저 강건너의 비밀근거지의것보다 아담하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국땅의 모든것이 돋보이고 정답게 안겨왔다.
그 모든것을 몸으로 감수하며 흥분했던 나는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올것 같지 않아
바람도 쏘일겸 밖으로 나왔다.
조국땅에서 바라보니 별빛도 더 밝고 유정해보였다. 그러느라니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맏형생각이 났다.
나에게 제일먼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경모의 마음을 심어준것은 맏형이였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조국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그런데 맏형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땅에 와보지 못한채 전사하였던것이다.
나는 조국땅을 밝게 비쳐주는 별을 바라보며 형님이 못다한 몫까지 합쳐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싸울것을 다짐하였으며 형님처럼 목숨이 지는 순간까지 혁명에
충실할것을 굳게 마음먹었다.
이때 사령부귀틀집에서 일을 마치시고
우리들의
휴식정형을 알아보러 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동무는
지금 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있소?》라고 물으시였다.
나는 조국땅을 밟으며 느낀 소감과 맏형생각을 했다는것까지 죄다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건 아주 좋은 생각이요. 우리는 그 언제나 또
어디에 가서나 그렇게 자기 조국, 자기 겨레를 안고 살아야 하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는 조국과 함께 부모형제들의 념원을 잊지
말아야 하며 희생된 전우들의 부탁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의 침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다가 모두들 자지
않는것 같은데 들어가보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귀틀집에 들어서시자 인기척을 듣고 오백룡중대장의 둘레에
모여앉았던 동무들이 모두 일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물으시였다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하고있습니까?》
오백룡중대장은 별로 할 이야기도 없다는데 대원들이 자꾸만 들려달라고 조른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대장이야 입대하여 싸우던 이야기만 해도 많은데 그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어디있는가고 하시였다.
오백룡중대장은 그런 이야기뿐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글을 배우던 이야기까지
다해서 이제는 밑천이 다 드러났다고 하면서 수령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다고 청을 드리였다. 우리도 모두 그렇게 해주실것을 간청했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둘러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하시였다.
그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 가을 파괴된 혁명조직을 수습하기 위하여 할빈에
가신 일이 있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놈들의 검색을 피하기 위해 수중에 돈은 얼마 없었지만
고급려관에 들기로 작정하고 맞춤한 려관을 찾아보려고 몇군데 다니시였다.
어느 한 려관앞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고판에 붙어있는 그림을
들여다보시게 되였다.
거기에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갓을 쓴 사람과 개가 나란히 그려져있었는데 그밑에는
조선사람과 개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글이 씌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보시는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고 분통이
치밀어 당장 그림판을 짓뭉개고 집주인놈을 요정내고싶었지만 혀를 깨물며
돌아서시였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그때 조국과 인민을
하루빨리 구원해야겠다는 각오를 더욱 굳게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정말 분격을 참을수 없었다.
(우리 조선사람들이 개만 못하단 말인가. 천하에 몹쓸 쪽발이놈들 어디 보자.)
우리는 이를 갈며 이렇게 속으로 별렀다.
분격에 떠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잃은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그르지 않다고 하시면서 도탄에 빠진 내 나라와 겨레를
구원하는 길은 혁명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혁명을 해야
한다는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삼고 혁명앞에 나서는 온갖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뚫고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우리가 지녔던 혁명에 대한 신념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것이며 그것을 확고히 견지하도록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신분도
수령님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불변의 혁명적신념만이 아니라 굳센 투지도
안겨주고 키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강한 의지만 가지면 어떤 난관도 뚫고나갈수 있다고 하시면서 의지를 단련하도록
하시였다.
항일혁명투쟁과정에서 우리들이 겪은 시련과 난관은 많고많지만 그가운데서도
식량난이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을 좌우하는 커다란 문제로 나서군 하였다.
식량난은 대체로 적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진드기처럼 따라다닐 때에 많이 생기군
했는데 그런 때는 인차 식량을 해결하기가 힘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오에 식량이 떨어질 때마다 그것을 해결할 대책을 세우시는
한편 대원들에게 우리는 쓰러지지 말고 일어나야 조국으로 갈수 있다고 하시며
강의한 의지로 난관을 극복해나가도록 이끌어주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께서는 아무것도 들지 못하시면서 풀뿌리 우린 물이라도
먹고 힘을 내라고 우리들에게 주실 때는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삼켰고 죽을지언정
수령님의 품속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다지군 하였다.
1940년 봄 어느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삼장지구로 진출하려던 우리 부대는 갑자기 적들과
맞다들어 전투를 벌린 일이 있었다.
적들과 불의에 조우했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하신 지휘밑에 우리는 달려드는
놈들을 삽시에 몽땅 요정내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경위중대의 두 동무가 다리에 총상을 입게 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숨기고 부대를 따라 행군하였다.
행군도중 그들의 걸음새에서 부상당했다는것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시였다.
내가 가보니 그들의 상처는 말이 아니였다.
리동무는 오른다리에 맞고 최동무는 왼다리에 맞았는데 최동무에게는 탄알이 그대로
배겨있었다.
나는 급히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림춘추동무에게 빨리 응급처치를 해주라고 하시면서 숙영할 때
수술을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숙영지에 도착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동무들에게 왜 숨기는가, 그러다
더해지면 어쩔려고 그러는가고 하시며 그들의 상처를 찬찬히 보시고 빨리 수술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마취도 하지 않고 손칼로 살을 헤집는것을 참아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동무의 손을 꼭 잡고 견디기 힘들어도 참아야 하오.
빨리 다리에 배긴 탄알을 뽑아내고 왜놈들을 천백배로 복수합시다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수술을 진행할 때에는 그의 다리를 몸소 꼭 잡아주시였다.
총에 맞은 다음에도 한동안 행군했기때문에 탄알이 이동하여 수술은 오래
걸리였다.
그러나 최동무는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도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았다.
그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의지로 생살을 손칼로 헤집고 탄알을
꺼내는 수술의 모진 아픔을 견디여냈던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에게 혁명적신념과 의지를 안겨주고 튼튼히
다져주시였기에 그토록 엄혹한 정세와 중중첩첩한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주저와 동요를
모르고 소가죽혁띠와 풀뿌리를 씹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일제침략자들을
쳐부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수 있었다.
지난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셨던 그 신념과 의지를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안겨주시고 가장 굳센것으로 다져주고계신다.
하여 오늘 우리 인민은 세계적인 정치적혼란과 경제적파동에도 끄떡없이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우리 나라에 대한 악랄한 고립, 압살책동을 쳐부시며 우리
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빛내여나가고있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안겨주신 신념과 의지를 지니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전진하는 우리 인민의
힘을 당할자는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