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기
 
 

 

신념을 안겨준 추억의 노래
 

                                                                             리  을  설


 1991년 가을 량강도안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느날 력사의 땅 포평을 찾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가에 서시여 유서깊은 고장들을 바라보시다가 포평땅에 깃들어있는 잊지 못할 사연들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바치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의 혁명활동과 자신께서 아버님을 도와 투쟁하신 어린시절에 대하여 그리고 조국광복의 굳은 맹세를 다지시며 압록강을 건느실 때 부르시였다는 《압록강의 노래》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깊은 감회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윽하여 조용히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감동에 젖어있던 우리들은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압록강의 노래》를 모두가 따라불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던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정말 감개무량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이 노래를 들으면서 혁명적신념이란 과연 어떤것인가를 가슴속에 깊이 체득하였던 50여년전의 잊지 못할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났기때문이였다.
 내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압록강의 노래》를 처음으로 들은것은 1938년 8월 어느날 바로 여기 포평에서 멀지 않은 금창비밀근거지에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앞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조선혁명을 더욱 추켜세우기 위하여 인민혁명군부대를 친솔하시고 국내깊이에 진출하시던중 금창비밀근거지에 들리시였는데 나도 그 대오의 한 성원으로 수령님을 따르게 되였다.
 압록강을 건너 후창땅에 들어서면서 나는 바로 이 고장이 위대한 수령님과 일가분들의 영광스러운 혁명활동의 자욱이 어려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다 무심히 바라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우리 행군대오는 그 당시 금창비밀근거지에서 소부대책임자로 활동하고있던 동무의 안내로 길을 다그쳐 아침해가 솟아오를무렵 랑림산줄기의 주봉의 하나인 향내봉에 도착하였다.
 향내봉정점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변의 산발들을 굽어보시며 감회깊은 추억을 더듬으시는것이였다.
 그러시더니 조국의 산천을 부감하며 감개무량해하고있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후창땅입니다. 이곳은 우리 아버님께서 많이 활동한 곳이며 아버님의 혁명활동을 도와 나도 어린 시절에 많이 다닌 고장입니다. 아버님께서는 한생을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나는 그때 어떤 일이 있어도 조국을 반드시 광복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다졌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입대하여 이미 구대원들로부터 조국광복위업에 한몸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일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그때 부모님들의 뜻을 이어 혁명의 한길에 모든것을 다 바치실 결사의 각오를 다지신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면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흠모의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들은 그 고장이 얼마나 뜻깊은 곳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끼며 력사의 자취가 어려있는 산발들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우리 대오가 향내봉 정수리에서 10여리 바닥쪽으로 내려오니 골짜기와 골짜기가 합쳐지는 곳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있었고 그 건너편에 잘 은페된 금창비밀근거지의 밀영이 있었다.
 금창비밀근거지는 한해전 서강회의이후에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과업을 받고 후창지구에 진출한 이곳 소부대동무들이 꾸린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자기들의 밀영에서 맞이하게 된 그곳 소부대성원들이 기쁨에 넘쳐 달려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신 후 밀영지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일솜씨를 치하해주기도 하시고 주의할 점들에 대하여 일깨워주기도 하시였다.
 그날저녁 식사후에 우리들은 그곳 소부대동무들의 요청으로 모두 한자리에 모여 오락회를 벌리였다.
 오락회가 한창일 때 지휘원들과 담화를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오시여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였다.
 전달장 지봉손동무의 하모니카독주에 총춤을 추는 동무 그리고 배따라기노래를 멋들어지게 넘기는 동무들을 비롯하여 제가끔 자기의 장끼를 부리느라 열을 올리였다.
 특히 8련대의 한 동무가 하는 요술은 정말 인기를 끌었다.
 그 동무는 먼저 엽전 한잎을 손가락사이에 끼운 다음 손을 흔들 때마다 다른 손가락들사이에 엽전이 한잎씩 끼워졌다.
 그리고 앞에 앉은 대원들의 사이를 다니면서 《얏》 하고 소리를 치면서 어떤 대원의 호주머니 뚜껑에서, 또 다른 대원의 손바닥에서, 어깨우에서 연방 옆전을 한잎씩 주어들군 하는데 그때마다 대원들은 신기하여 박수를 쳤다.
 그러자 신이 난 그 동무가 이번에는 손수건을 꺼내여 흰 손수건을 빨간 손수건으로, 그다음에는 파란 손수건으로 변하게 하였다.
 그것은 정말 기막힌 솜씨였다.
 그 동무의 손재간이 너무 빨라서 부대에서는 《비행기재》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그를 그렇게 부르군 하시였다.
 오락회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고조되였다.
 나도 동무들과 함께 마음껏 웃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은 그즈음에 나에게서는 처음 있는 일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 당시 조성된 긴장하고 복잡한 정세는 사령부의 호위임무를 맡고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언제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수 없게 하였었다.
 그무렵 일제는 중일전쟁에서 장기전에 빠지고 쏘련에 대한 침공에서도 실패하여 궁지에 빠지게 되자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로를 찾아 헤덤비면서 우리 혁명력량에 대한 악랄한 공격을 미친듯이 감행하였다.
 이때문에 수많은 혁명가들이 체포, 투옥, 학살당하고 혁명조직들이 파괴되였다.
 게다가 국제당에서는 열하방면으로 원정할데 대한 무모한 로선을 또다시 강요해나섰다.
 이처럼 복잡한 혁명정세와 혁명앞에 부닥친 난관은 그때 17살 나이에 입대한지 1년밖에 안되던 나에게 있어서는 난생처음 당하는 간고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나는 그해 겨울 간파하자밀영에서 적《토벌대》와의 전투에서 영웅적인 최후를 마친 박수환, 김용금 등 6명의 재봉대원들에 대한 소식도 들었고 몽강에서 장백으로 나오는 길에서는 용감한 녀대원으로 이름났던 김확실동지가 전사하는것도 직접 보았다. 그리고 그후에는 마동희동지의 장렬한 희생에 대한 소식도 알게 되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 나의 마음속에는 아직 혁명의 첫 시련에 대처할만큼 신념과 의지가 든든히 뿌리박히지 못하였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조선인민혁명군의 승승장구하는 위력만을 보아오다가 이처럼 엄혹한 시련에 부닥치고보니 스스로 생각이 깊어졌다.
 혁명이 정말 간고하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우리 혁명이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걱정과 위구가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게 되였던것이였다.
 그랬던것만큼 이날처럼 즐겁게 오락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지난날을 되새기고있는 사이에 오락회는 거의 끝나갈무렵이 되였다.
 이곳 소부대의 한 동무가 약간 망설이다가 용감하게 일어서더니 《사령관동지, 노래 한곡 들려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는것이였다.
 그러자 장내에서는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노래를 듣게 된다니 나도 너무 기뻐서 손벽이 깨져라 하고 박수를 쳤다.
 나로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노래를 처음으로 듣게 되는지라 그때 수령님께서 무슨 노래를 부르실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척 설레이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소부대동무들의 요청이니 부르겠다고 말씀하시더니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이윽고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는것이였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뜻깊은 노래는 구절구절 우리들의 가슴속에 후덥게 젖어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노래를 끝마치시자 우리들은 또다시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터뜨렸다.
 우리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회깊은 어조로 동무들, 나는 13년전에 이 노래를 부르며 여기 후창땅에서 압록강을 건넜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13년전의 잊지 못할 추억을 더듬으시며 나는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말씀대로 고향 만경대에 나가 공부를 하다가 아버님께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길을 달려 이 후창땅의 포평나루로 압록강을 건느면서 《압록강의 노래》를 속으로 불렀다, 그러느라니 천리길을 오면서 보았던 일제에게 짓밟힌 조국산천과 고역에 시달리는 겨레의 참상이 눈앞에 안겨와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고 말씀하시였다.
 잠시후 다시 말씀을 이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그때 압록강을 건느면서 이 땅을 다시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맹세하였다, 그때로부터 13년이 지난 오늘 동무들과 함께 이 후창땅을 다시 밟으니 하루빨리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광복을 이룩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더욱 굳어진다고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뜻깊은 말씀이였다.
 나는 그날밤 오래도록 잠들수가 없었다.
 나의 눈앞에는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고야말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시며 눈바람 몰아치는 압록강을 건느시였을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우렷이 안겨왔다.
 그리고 그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고 견결히 지켜가시려는 드팀없는 결심이 어린 방금 오락회에서 부르신 노래소리가 자꾸만 나의 귀전을 울리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압록강의 노래》를 불러보았다.
 입대전에 소년회사업을 할 때 여러번 들어 익힌 노래이지만 그날 저녁처럼 나를 흥분시킨적은 없었다.
 일명 《도강가》라고도 한 이 노래는 3. 1인민봉기직후에 창작되여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왔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3. 1인민봉기실패의 비통한 감정과 기어이 나라를 찾으려는 불타는 지향이 구절마다에 어려있는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며 강을 건넌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광복의 길은 너무도 험난하기에 그들은 일제의 총칼을 피해 모두 여기저기에 묻혀 살거나 지어는 신념을 팔아 일신의 안식처를 찾기도 하였다.
 나라찾을 신념들이 그렇게도 허망하게 좌절되고 배반되는 혼탁한 와류속에서 항일의 혈전을 벌리며 압록강의 맹세를 변함없이 지켜나가시는분은 오직 우리의 김일성장군님뿐이시며 장군님께서만이 망국노의 설음안고 몸부림치는 우리 겨레를 구원해주실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의 가슴속에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고 항일전을 이끄시는 한 일제는 격멸되고 조국은 광복되고야말것이라는 확고한 신심이 차넘쳤다.
 그후에도 나는 동무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그 맹세를 받들어 끝까지 혁명을 해나갈 결심을 다지고 또 다지였다.
 다음날 저녁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 나는 또 하나의 가슴뜨거운 사실을 목격하게 되였다.
 출발준비를 하는 우리들에게 이곳 소부대동무들이 풋당콩과 찹쌀, 흰쌀이 든 자루 세개를 배낭에 넣어주며 앞으로 숙영지들에서 사령관동지께 대접해달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
 그리고 소부대에서 제일 나이많은 대원은 정성을 기울여 만든 적목나무통에 넣은 근거지주변에서 캤다는 해묵은 산삼 세뿌리를 우리들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조국의 운명과 혁명의 승리는 사령관동지께 달려있지 않소.
 그러니 사령관동지의 건강은 우리 겨레의 한결같은 소원이요. 백두산밑영에 돌아가거들랑 이 산삼을 사령관동지께 대접해올리시오.》
 그의 간절한 부탁을 들으면서 나는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자나깨나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만을 바라는 그 지극한 마음, 그이께서 계시는 한 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그 철석같은 신념이 나의 가슴을 격동시켰던것이다.
 심장속에 자리잡은 바로 그러한 신념으로 하여 우리 혁명군대원들은 이처럼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비관을 모르고 마음껏 춤추고 노래부를수 있었음을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였던것이다.
 나는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며 몰라보게 달라진 오늘의 김형직군을 둘러보았다.
 참으로 뜻깊은 이 고장은 나의 마음속에 깊고도 억센 신념의 기둥을 내리게 한 잊지 못할 고장이였다.
 이 마음의 기둥을 지녔기에 나는 그후 력사의 류례없이 간고하였던 고난의 행군의 시련도 이겨낼수 있었고 50여년 긴긴세월 위대한 수령님과 당을 따라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걸을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혁명위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혁명의 먼길을 가야 합니다.》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성해나가기 위한 투쟁의 길은 아직도 멀며 순탄치 않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어떤 역경속에서도 추호의 흔들림없이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드높이 나아가고있다.
 그것은 일찌기 압록강을 건느시며 다지신 맹세를 지켜 조국을 해방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필승의 신념을 이어받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사회주의위업과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당과 인민의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고계시기때문이다.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며 다지신 위대한 수령님의 맹세는 오늘 사회주의길을 변함없이 끝까지 걸으려는 우리 인민의 드팀없는 신념으로 간직되고있다.
 우리 인민은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러하지만 주체혁명위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할 그날까지 대를 이어 이 신념의 맹세를 지켜 싸워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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