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성에 들어와서 오 진 우
1935년초 우리 중대가 왕청현 요영구로부터 소왕청에 갔을 때 나는 여기서 최춘국동지가 온성에서 적의 무장을 탈취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명령을 받고 훈춘현 회막동부근에서 활동하고있던 왕청 제2중대는 중대정치지도원 최춘국동지의 지휘밑에 무장획득투쟁을 활발히 전개하고있었다. 어느날 최춘국동지는 량수천자대안 온성의 도선장파출소 순사놈이 총을 가지고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적들의 감시가 심한 형편에서 그놈의 총을 빼앗아낸다는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정의 무기라도 더없이 귀중한 이때 더구나 그것이 꿈에도 잊지 못할 조국땅에서 마음대로 로략질하는 순사놈의 무기일진대 어찌 그냥 둬둘수 있겠는가.) 최춘국동지는 이렇게 생각하자 곧 그놈의 무기를 탈취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온성읍 맞은편 두만강기슭에 중대대원들을 매복시켰다. 그들은 엄호대의 역할을 할것이였다. 만단의 준비를 갖춘 최춘국동지는 대원 몇명을 데리고 도선장을 향해 떠났다. 엄동설한 칼날같은 바람이 얼음진 강우에서 기승을 부리고있었다. 조선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털모자를 눌러 쓴 최춘국동지와 대원들은 재빨리 얼음진 강으로 들어섰다. 팔짱을 끼고 몸을 웅숭그린채 도선장파출소를 향해 곧추 건너오는 그들의 거동은 이곳 농민들과 조금도 다른데가 없었다. 그 누구도 그들을 권총을 휴대한 유격대원들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이른아침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도선장파출소마당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순사를 기다리고있었다. 파출소에서 등록을 하여야만 온성읍으로도 들어갈수 있고 또 강을 넘어 동북으로도 갈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아직 순사는 나오지 않았다. 최춘국동지는 데리고간 대원들을 파출소주변에 매복시켰다. 그리고는 사람들속에 끼여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부르면 화답할듯이 가까운 곳에 온성읍이 보였다. 온성은 최춘국동지의 고향이였다. 그의 조부모가 여기서 땅을 가꾸며 살았고 그의 부모 역시 여기서 나서 자랐다. 그러나 가난에 시달리던 최춘국동지의 일가는 마침내 고향을 버리고 두만강을 건느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누가 정든 고향을 버리고싶었겠는가. 그러나 왜놈들의 억압과 착취에 더는 견딜수 없어 그 정든 고향도 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선조들의 백골이 묻혀있는 여기 고향땅에 들어선 최춘국동지는 원쑤들에 대한 증오로 하여 가슴이 터질듯 하였다. (조국땅을 짓밟는 원쑤에게 죽음을 주자. 한자루의 무기라도 더 얻고 그놈들을 더 많이 잡아내자.) 최춘국동지는 두주먹을 부르쥐고 파출소쪽으로 돌아섰다. 반나마 열려진 파출소문으로는 삼타래같은 연기가 밀려나오고있었다. 16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부삽을 들고 연기속을 들락날락하면서 난로에 불을 피우고있었다. 최춘국동지는 아이가 밖으로 나오자 재빨리 그에게로 다가갔다. 《얘, 나으리님이 언제 나오느냐?》 아이는 바께쯔에 바삐 석탄을 담아 넣으면서 얼굴도 쳐들지 못한채 《인차 나와요.》 하고 대답하였다. 아이의 손등은 터서 거북의 잔등과 같았다. 어린것이 학교도 못 가고 밥벌이를 위하여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최춘국동지의 가슴은 한없이 아팠다. (이것이 어찌 이 아이에게 한한 일이랴. 헐벗고 굶주리는 조선의 어린이들이 모두 이런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을것이다. 하루빨리 조국을 광복시켜야 한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공부하는 그날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최춘국동지는 자기들, 유격대의 어깨에 지워진 책임이 그 얼마나 무거운가를 재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시간은 흘러갔으나 기다리는 순사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최춘국동지는 저으기 초조해졌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온성읍내 적들이 무리로 쓸어올수도 있었다. 그놈들은 대낮만 되면 도선장파출소주변을 뻔질나게 싸다녔던것이다. 그러나 최춘국동지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태연한 얼굴로 인내성있게 기다렸다. 동쪽산마루우에 해가 퍼그나 솟아오른 때에야 순사놈이 나타났다. 그놈은 개털외투를 걸쳐입고 총창이 달린 짤막한 기병총을 메고있었다. 순사는 마당에 모여 선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파출소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최춘국동지는 불시에 온몸에서 더운 피가 소용돌이치는것을 느꼈으나 꾹 참고 순사에게로 다가갔다. 《나으리님, 안녕하십니까?》 최춘국동지는 《공손히》 인사를 했다. 《음, 왜 왔나?》 순사는 머리를 끄덕하더니 처음부터 반말이였다. 《강건너 회막동에서 오는 사람인데 등록하려구 그럽니다.》 《이 자식, 추운 겨울에 어디로 그리 싸다니는거야?》 《나으리님, 친척집으로 가는 길입지요.》 최춘국동지는 분이 턱밑까지 치밀어올랐으나 억지로 삼켜버리면서 등록하러 온 티만 내였다. 순사는 파출소안으로 들어갔다. 최춘국동지는 따라 들어갔다. 난로곁에서 씩씩거리며 불을 피우던 사내아이가 당황한 얼굴로 순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이의 뺨과 코밑은 온통 검댕이투성이였다. 최춘국동지는 그 아이가 더욱 불쌍해보였다. 순사놈은 방안을 둘러보더니 손을 마주 비비면서 호통을 쳤다. 《방이 왜 이렇게 추워, 앙? 불은 어째서 또 죽이고 야단이야?》 아이는 어쩔바를 몰라 거의 난로 아궁이에 입을 맞붙일듯이 엎드려서 정신없이 불을 불고있었다. 석탄재를 뒤집어쓴 아이의 앙상한 어깨는 무서운 매를 예견한듯 황급히 들먹거리고있었다. 총을 벗어서 벽에다 걸고 독기어린 눈으로 아이를 노려보던 순사놈은 끝내 구두발로 아이의 연약한 몸뚱이를 걷어차는것이였다. 아이는 대번에 코피를 흘리며 마루바닥에 쓰러졌다. 최춘국동지는 더이상 참을수 없어 번개같이 권총을 빼들고 《손들엇!》 하고 웨쳤다. 순사놈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넋을 잃고 서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으악!》 하고 순사놈이 고함을 지르면서 머리를 수그리고 최춘국동지에게로 달려들었다. 최춘국동지는 재빨리 그놈의 대갈통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순사놈은 방바닥에 뻐드러졌다. 최춘국동지는 기병총과 탄띠를 거두자 밖으로 급히 뛰여나왔다. 대원들이 즉시 그에게로 달려왔다. 파출소마당은 텅 비여있었다. 등록을 하려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총성에 놀라 산산이 흩어지고있었다. 그래도 몇몇 사람들만은 파출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서성거리면서 두루마기를 걸쳐입은 이 용감한 청년들을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사람들속에는 어느 틈에 뛰여나갔는지 난로에 불을 지피던 그 아이도 섞여있었다. 사람들은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얼굴로 최춘국동지를 쳐다보았다. 최춘국동지는 그들에게로 달려가 막 그러안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한초를 다투는 지금 그럴수는 없었다. 총성을 들은 온성읍내 적들이 벌써 출동하였을것이기때문이였다. 최춘국동지는 급히 대원들과 함께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그들이 얼음진 강을 지나 방금 강기슭에 올라 섰을 때였다. 도선장파출소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그곳에 배치되였던 최춘국동지의 중대가 적기마병을 향해 대응사격을 개시한것이다. 불의의 사격에 조우한 적들은 강기슭에서 바삐 돌아칠뿐 얼음강판에는 한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적들은 총질만은 발악적으로 계속하고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격한다 하여도 쏜살같이 사라진 우리 유격대원들을 무슨 재주로 맞혀낼수 있겠는가. 실패한 적들은 얼마후에 온성읍으로 가버렸다. 그후 우리는 이 일을 회상할 때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실한 최춘국동지의 열렬한 조국애와 그리고 대담성과 기질에 대하여 언제나 감탄하였으며 그의 헌신적인 투쟁을 모범으로 삼아 무장획득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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