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기
 
 

 

무송현성전투

 


                                                        백  학  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남호두회의에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새로운 백두산근거지를 창설하며 그에 의거하여 혁명활동을 더욱 확대강화하기 위하여 국경일대에로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 1936년 4월 무송현 만강에서 그곳에 주둔한 위만경찰대에 편지를 보내여 적을 제압하고 정치사업을 진행하면서 며칠간 휴식하였으며 그후 시난차, 서강에 둥지를 틀고있는 적들을 습격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
 유격투쟁의 급격한 앙양에 겁을 먹은 적들은 이 지대에 많은 병력을 증강하고 《대토벌》작전에 광분하였다.
 무송현성은 바로 이와 같은 적들의 《토벌》작전의 중심지였다.
 당시 무송은 7 000여호의 주민이 거주하고있는 현소재지였는데 이곳은 위대한 수령님과는 각별히 인연이 깊은 성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시절에 여기서 소학교를 다니시였으며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도 일찌기 혁명투쟁을 하시다가 바로 이곳에서 서거하시였던것이다.
 적들은 이 무송에 수백명의 위만군, 관동군 그리고 수많은 경찰과 무장자위단을 주둔시키고있었다. 현성에 둥지를 틀고있는 적들은 견고한 포대와 박격포를 비롯한 각종 중무기까지 가지고있었다.
 이러한 성시를 친다는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송현성의 적을 반드시 소탕해버려야 하겠다고 결심하시였다.
 이것은 우선 무송현성에 집결된 적《토벌》력량의 주력을 소멸함으로써 놈들에게 커다란 공포와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인민들에게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보여주며 혁명의 종국적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우리가 조국광복회망을 확대강화하며 백두산일대에 새로운 혁명근거지를 창설확대함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으로 될것이였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무송현성을 습격하면 적들은 이곳에 대병력을 집중시키고 혁명군을 《소멸》하려고 발광할것이 분명하였다. 적들의 주의가 이곳에 집중된 기회를 리용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부대들을 국경연안으로 진출시킬 계획이시였다.
 동시에 그이께서는 이 전투를 통하여 당시 무송현일대에 있던 반일부대들에 승리의 신심을 높여줌으로써 그들을 반일통일전선에 튼튼히 결속시킬것을 목적하시였다.
 사실 만순, 동산호, 문명군 등 반일부대들은 당시 무송현성에 본거를 둔 왕가부대(왕가란놈이 지휘한 위만군부대)에 제압당하여 쪽을 못쓰고있었다. 만약 그들을 우리편으로 인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기를 잃고 흩어져버리거나 적들에게 투항해버릴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송현성전투를 앞두고 각처의 반일부대들에 련락을 취하시여 협동작전에 참가할것을 제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혁명군의 위력을 이미부터 알고있는 그들은 이에 적극 호응해나섰다.
 그리하여 아군의 력량은 조선인민혁명군 7, 8련대를 주력으로 하고 만순, 동산호, 문명군 등 반일부대들까지 도합 1 800여명에 달하였다.
 전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조직지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송현성으로의 대부대의 은밀한 접근과 현성공격의 불의성을 달성하며 적들의 력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1936년 8월 16일 밤 일부 력량으로 무송현성에서 남쪽으로 얼마간 떨어져있는 송수진의 적을 먼저 습격소탕케 하시였다. 그리고 무송현성습격에 대한 전투조직을 다음과 같이 하시였다.
 림강방면에 배치되는 부대는 무송현성 남방 12㎞지점인 탕하구자근거지(교두보를 말함)를 장악하고 적증원부대의 도강을 저지시킬것이며, 몽강방면에 배치되는 부대는 무송현성에서 2㎞지점인 무송-몽강간 자동차도로연선고지를 장악하고 적의 증강과 접근을 막을것이다.
 안도방면에 배치되는 부대는 무송-안도간 교통의 요충인 북강-마안산도로에서 적증원부대의 진출을 견제할것이며, 시내공격을 담당하는 주력부대는 현성을 점령할것이다.
  이와 동시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 부대들이 전투과정에 인민들의 생명, 재산을 보호함에 각별한 주의를 돌릴것을 특별히 강조하시였다.
 이상과 같은 전투임무에 근거하여 각 방향에서 증원될수 있는 적을 차단할 임무를 담당한 반일부대들은 무송현성습격날자보다 2~3일 앞서서 각각 지정된 지점에 배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동강밀영을 출발하시여 8월 17일 이른새벽 무송현성 동쪽협곡에 이르시여 현성을 직접 공격하는 부대들에 다음과 같은 전투명령을 하달하시였다.
 -제7련대와 제8련대의 일부는 동산포대를 점령하고 계속하여 소남문동쪽에 있는 포대를 점령한 후 성안으로 돌입할것.
 -일부 력량을 제7련대에 배속시킨 제8련대는 나머지 력량으로 대남문으로 성안에 돌입할것.
 -반일부대의 일부 력량은 동문으로 성안에 돌입할것이며 나머지 력량은 북문바깥에 있는 적의 병영을 점령하고 북문으로 성안에 돌입하여 7련대와 협동할것.
 이 명령에서 뚜렷한바와 같이 중요한 공격방향은 제7련대가 담당한 소남문방향이였다. 전투명령을 받은 각 부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하에 인차 행동을 개시하였다.
 7련대는 순식간에 동산포대를 기습하여 총 한방 쏘지 않고 이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소남문동쪽에 있는 적포대에로 돌입하였다.
 그런데 이 전투를 진행하는 과정에 총소리가 났다. 총소리를 들은 적들은 여기저기서 미친듯이 사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적을 3면으로 포위한 우리 부대들은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적들은 중기관총, 경기관총, 박격포 등 일체 화력을 동원하여 발악적으로 저항했다. 이때 제7련대에서 2개 소대가 기관총분대의 엄호밑에 소남문앞까지 돌입하였다.
 소남문아래 성벽밑에는 깊이 파놓은 개굴창이 있었다. 우리는 개굴창의 한쪽벽에 바싹 붙어서 일제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큰 돌과 세멘트로 만든 소남문포대는 예상외에 견고하였다. 적들은 여기를 중요시하고 소위 《정예》라고 하는 가장 악질적인 일제침략군놈들을 배치하였었다. 작탄을 던졌으나 적포대는 꿈쩍도 안했다. 적들의 화력은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로 심하였다.
 이렇게 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남문가까이에 지휘처를 옮기시고 전투를 지휘하시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동쪽으로 진공하던 반일부대와 북쪽의 반일부대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이 없이 퇴각한 결과 적병력의 대부분이 이 소남문쪽으로 몰려들었다. 적들은 강한 화력을 집중하면서 집요하게 발악하였다. 치렬한 화력전투가 진행되는 동안에 날이 활짝 밝았다. 아군은 더욱 불리하게 되였다.
 백주에 성안의 적들을 공격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을뿐만아니라 시가전이 계속되면 인민들에게 피해가 미칠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황에 근거하여 성안의 적들을 밖으로 유인하여 소멸할것을 결심하시고 전체 부대들을 신속히 철수시켜 동산일대를 차지하게 하시였다.
 우리는 후위의 엄호하에 아침안개를 리용하여 무사히 동산으로 올랐다. 적들은 우리가 퇴각하는줄로만 알고 허장성세하여 성문을 열고나와 우리 부대들을 포위할 태세로 동산으로 기여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때 성안에서 나온 일제침략군 200여명이 림강방면의 대도로를 따라 우회하여 동산서남쪽 골짜기로 기여들면서 우리 부대를 포위하려고 하였다.

그때 그곳에서 몇명의 녀대원들과 함께 부대의 식사준비를 하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결사전을 벌려 잘루목을 영웅적으로 지켜내심으로써 사령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장하고 부대의 철수를 훌륭히 엄호하시였다.
 적들의 행동을 주시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부대의 일부 병력으로 동산포대를 방어하게 하시고 주력을 동산포대의 북쪽고지와 남쪽고지에 신속히 이동시켜 다가드는 적들을 역포위할 태세를 취하게 하시였다.
 적들은 동산포대를 탈환하기 위하여 박격포와 기관총의 엄호하에 발악적으로 공격해왔다. 전투정황은 매우 복잡해졌다. 동산포대를 방어하고있던 반일부대가 위급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7련대 4중대 1소대에 동산포대에 기여드는 적을 격퇴하고 반일부대를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였다. 그리고 다른 한 구분대에는 보병총의 집중사격으로 적박격포병들을 소멸할것을 명령하시였다.
  우리 혁명군대원들은 적박격포병들을 유리한 지대에서 집중화력으로 소멸해버림으로써 놈들의 포사격에 혼란을 주었다.
 4중대 1소대는 단숨에 반돌격을 개시하였다. 동산포대로 기여오르던 적들이 푹푹 쓰러지는것을 보자 반일부대 대원들은 다시 힘을 얻어가지고 용감하게 싸우기 시작하였다. 동산포대는 아군부대에 의하여 견지되였다.
 한편 아군부대를 포위공격하려고 시도한 일제침략군놈들은 혁명군부대들이 동산포대에 집결된줄로만 알고 고지로 기여오르다가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있던 우리의 맹렬한 불벼락을 받자 허둥지둥 산개하면서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적들은 우리의 첫사격에 무리로 쓰러졌다. 그러나 놈들은 뒤따라오는 병력을 계속 이곳에 투입하면서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마록구동쪽고지의 유리한 지형을 차지한 우리 부대들은 무모하게 돌격해오는 적에게 섬멸적타격을 주면서 완강히 싸웠다.
 불리한 정황을 만회하려고 적들은 비행기까지 동원시켜 우리의 상공에서 되는대로 폭탄과 기총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적들의 어떠한 발악도 위대한 수령님의 주위에 한마음한뜻으로 단합된 우리의 철석같은 전투대오를 해칠수는 없었다.
 치렬한 전투는 온종일 계속되였다. 저녁무렵이 가까와오자 적들은 기진맥진해졌다.
 적들은 막대한 손실을 당하여 더는 돌격하지 못하고 림강, 안도, 몽강 등지에서 증원부대가 올것을 기다리면서 장시간 저항할 심산이였다.

이러한 적정을 예리하게 판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부대에 반돌격명령을 내리시였다. 기다리던 돌격나팔소리가 산과 골짜기에 울려퍼지자 혁명군대원들은 총창을 번쩍이면서 우렁찬 만세소리와 함께 적진으로 돌입하였다. 우리는 적들을 골짜기 한곳에 몰아넣고 섬멸적인 육박전을 전개하였다.
 우리의 귀중한 조국을 유린하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도탄속에 몰아넣은 야수 일제침략자들, 그놈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줄 결정적인 순간은 왔다. 혁명군대원들은 마지막발악을 하는 적들을 날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때려눕히면서 성난 사자처럼 싸웠다. 여기저기서 적들의 죽음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육박전의 선두에는 혁명군대원 김명주동무도 서있었다. 그는 일곱번 큰 전투에서 일곱번 큰 공을 세우고 일곱번 부상을 당한 용감한 동무였다. 그리하여 그는 《칠성자》(총탄 일곱발을 재우는 권총)라는 별호까지 받았었다.
 또한 용감한 녀성대원 김확실동무는 쪽발이 일제놈들이 기겁을 할 우렁찬 목소리로 《이놈아, 날창을 받아라》, 《이 죽일놈 도망 못간다!》 하고 웨치면서 적들을 찔러눕혔다.
 이날 전투에서 용감히 싸운것은 비단 김명주동무나 김확실동무들뿐만 아니였다. 전체 대원들이 목숨을 내걸고 희생적으로 싸웠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대에 새로 편입된 동무들이 더욱 용감히 싸웠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오래동안 좌경배타주의자들에게서 터무니없이 《민생단혐의자》로 배척당하여오다가 이 전투가 있기 얼마전에야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그 저주로운 《민생단》의 혐의를 벗어버리고 떳떳한 혁명군대원으로 인정받게 된 동무들이였던것이다.
 남호두회의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를 친솔하시고 무송현에 나오셨을 때 한개 련대를 새로 받아들이시게 되였다. 그런데 그때 4사 정치주임이 넘겨준 100여명은 좌경배타주의자들이 《민생단》의 혐의를 들씌워 총탄도 3~5알씩만 주고는 전투에도 참가시키지 않는 사람들이였다.
 다 아는바와 같이 일제놈들은 1932년 간도지방에서 자기들의 특무와 주구들로써 소위 《민생단》을 조직하여 일본제국주의지배하에서의 《간도조선인들의 자치》를 운운하면서 조중인민들간에 리간을 조성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민생단》은 첫날부터 일제의 간첩조직이라는것이 폭로되였고 혁명조직들에서와 광범한 인민들은 《민생단》을 반대하는 투쟁을 적극 전개하였었다. 그런데 일부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분자들에 의하여 반《민생단》투쟁이 좌경적으로 그릇되게 전개되여 훌륭한 조선인간부들이 배척당하고 의심을 받고 많은 동지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였다.
 반《민생단》투쟁이 좌경적으로 진행되는데 대해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하여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무송현에 이르시여 《민생단》의 혐의를 받는 대원들을 만나시게 되자 그들을 모아놓으시고 3일동안 회의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기만 고대하던 그들은 모두 울면서 토론하기를 자기들은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3일동안의 회의를 끝마치시면서 그들에게 누가 《민생단》이고 누가 《민생단》이 아니라고 결론하기는 곤난하나 각종 《문서》보다도 혁명을 위하여 충실히 싸우겠다는 그들의 결의를 믿는다고 말씀하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소위 《진술서》요, 《조사서》요, 《증거문건》이요 하는《문서》보따리를 모조리 태워버리시였다.
 혁명동지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이 깊은 사랑과 두터운 신임에 감격한 그들은 그이의 부르심이라면 목숨도 청춘도 아끼지 않고 싸울 굳은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었다.
 바로 그들이 이 무송현성전투에 참가하게 되였으니 어찌 용감히 싸우지 않을수 있었으랴.

무송현성전투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정예》를 자랑하던 일제침략군놈들도 마침내 몰살되고 불과 10여명밖에 되지 않는 놈들이 절뚝거리며 도망쳤을뿐이였다. 살아남은 적들은 포대속에 들어박혀 얼씬도 못했다.
 우리는 이날 도합 300여명의 일제침략군과 위만군을 살상포로하였던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 부대는 서강방면으로 철수하였다.
 우리 부대들이 철수한 다음날 적비행기 3대가 무송현성상공에 나타나서 동산포대와 부근 주민들의 집에 맹폭격을 감행하여 인민들의 저주와 조소를 자아냈다. 이것은 적들이 우리의 위력에 얼마나 겁을 먹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것이였다.
 무송현성전투에서의 조선인민혁명군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와 전략전술, 그이의 백전백승의 령활한 령군술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실하고 그이의 주위에 한마음한뜻으로 단합된 우리 혁명군대오가 그 얼마나 위력한가를 다시한번 세상에 힘있게 시위하였다.
 무송현성전투를 통하여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혁명군에 대한 《대토벌》작전에 미쳐날뛰던 일제침략자들에게 다시금 큰 타격을 주고 백두산근거지를 창설하며 조선혁명을 강력히 추진하는데 더욱 유리한 조건을 지어놓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솔하에 조선인민혁명군이 무송현성전투에서 이룩한 빛나는 승리의 소식은 삽시간에 중국동북일대는 물론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조선국내 방방곡곡에 널리 퍼져 우리 인민들을 조국광복을 위한 한길에로 더욱 힘차게 궐기시켰던것이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발휘된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은 사기가 저락되였던 반일부대들에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으며 그들과의 반제공동전선을 더욱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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