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영건설의 임무를 받아안고 리 두 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사회주의총진군을 힘있게 다그치자!〉, 이것이 오늘 우리 당의 부름이며 우리 인민이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구호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교시를 되새길 때마다 나에게는 잊을수 없는 추억이 되살아나군 한다. 1936년 9월 하순 부대를 거느리시고 소백수골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곳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지휘성원들의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가 끝난 뒤였다. 내가 소대동무들에게 회의에서 토론된 내용을 전달하고있는데 전령병동무가 나에게 다가왔다. 사령관동지께서 나를 부르신다는것이였다. 나는 곧 사령부천막안에 들어서서 그이께 도착보고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바라보시며 선오산으로 넘어가서 지형상 유리한 곳을 선택하여 밀영을 꾸릴데 대한 과업을 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40리 가면 백두산인데 선오산은 거기까지의 중간지점에 있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이 선오산에 가서 밀영을 짓자면 아름찰것이요. 그러나 동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부대가 선오산에 도착하기 전에 밀영을 건설해놓아야 하오라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요한것은 여느때 잠간씩 리용하던 밀영과는 달리 부대가 장기적으로 주둔해있을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밀영을 꾸리는 문제이다, 물론 도끼와 톱만을 가지고 불과 서너명의 인원이 이러한 밀영을 꾸린다는것은 무척 힘이 들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무들을 믿는다, 우리야 원래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스스로가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인것만큼 혁명을 해나가는 과정에 부닥치는 모든 애로와 난관도 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식사준비가 다 되여가는것 같은데 점심식사를 하고 떠나도록 하시오.》라고 따뜻이 이르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이날 오후 나는 두명의 대원을 데리고 선오산을 향하여 소백수골을 떠났다. 우리는 걸으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겼으며 과연 어데다가 밀영자리를 잡으며 어떻게 귀틀집을 지을것인가를 궁리하였다. 밀영자리는 우선 물이 있는 곳이여야 하며 우리가 적을 발견하기는 쉽고 적이 우리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곳, 산골짜기의 외통곬이나 목재판으로 가는 길에서 떨어진 곳, 해빛이 잘 드는 동남향이여야 하였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전투로정에서 수많은 밀영들을 건설해왔는데 그때마다 이런 문제에 첫째가는 주의를 돌렸던것이다. 우리는 밀영자리로 이런 조건이 다 갖추어진 마땅한 장소를 쉽게 찾을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임과 기대에 꼭 보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방차대로 먼저 파견되였던 동무와 함께 험한 산발을 오르내리며 밀영자리를 계속 물색하였다. 우리는 해질무렵에야 뒤쪽은 아찔한 층층벼랑이 병풍처럼 둘러서있고 그 아래에는 맑은 물이 가운데로 흐르는 학교운동장만 한 공지와 맞다들게 되였다. 여러모로 보아 밀영자리로서는 알맞춤한 곳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강행군으로 모두 지친 몸들이였지만 누구 하나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 인차 오시겠는데 그전에 밀영을 잘 꾸려놓자고 하면서 신발끈을 풀어놓을 사이도 없이 일감들을 손에 잡았다. 해가 졌으나 누구 하나 일손을 놓을념을 안했다. 시간의 흐름을 야속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기나 하는듯 선선한 밀림속의 일터에는 달빛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밀영을 건설할 때마다 우리가 체험한 일이였지만 이번에도 수다한 난관이 우리 일을 가로막아나섰다. 도구라는것은 도끼와 톱이 전부였다. 목수재간을 가지고있는 대원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어느 한사람도 밀영건설을 놓고 실망을 하거나 맥을 놓고 주저앉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힘을 가다듬고 밤에 낮을 이어 밀영건설을 다그쳤다. 큰 나무는 다루기도 힘들고 운반하기도 곤난하기때문에 직경 20~30㎝가량 되는 분비나무와 가문비나무를 골라가며 찍어서는 둘이서 메거나 풀섶우로 끌어오군 하였다. 나무를 다 찍어다놓은 후 도끼로 나무가지를 자르고 다듬어서 눈짐작으로 료량해가며 재목을 말구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하나씩 층으로 쌓아서 네면벽을 만들어 귀틀집을 지었다. 서까래는 직경 7~8㎝되는 나무를 잘라서 그 머리에 나무쐐기를 박아 떨어지지 않도록 용마루에 걸쳐놓았다. 귀틀목을 쌓아올리고 서까래까지 다 걸고나니 숨이 좀 나갔다. 그런데 지붕에서 내려오자니 정신이 아찔아찔했다. 몹시 시장기가 났다. 식사시간이 지나갔던것이다. 우리는 우등불을 피워놓고 끼니를 준비하였다. 얼마되지 않는 식량이니 산나물이랑 뜯어넣어 죽을 쑤어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섶나무를 서까래우에다 촘촘히 펴고 흙을 그우에 덮었다. 그런 다음 섶나무가지를 잘라서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깔아놓으니 어지간 한 비는 새지 않을것 같았다. 이제는 구들골을 짓고 구들장을 놓아야 하겠는데 구들장이 문제였다. 우리는 바위들로 층층이 쌓인 벼랑을 톱아오르며 도끼등으로 바위돌을 따내기도 하고 개울에서 넙적한 돌들을 한장한장 밀영지에까지 메여날라 온돌을 놓았다. 아찔한 벼랑을 한치한치 톱아오르내리며 구들장을 할만 한 돌을 한장한장 따내는 일은 그야말로 땀이 빠질빠질 나고 기운이 빠지는 일이였다. 도끼등으로 치면 쉽게 떨어져나올것만 같은 바위쪼각이 아무리 쳐도 요지부동인가 하면 애써 따낸 판석을 잘 다루지 못해서 벼랑밑으로 굴러내려 산산쪼각이 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더우기 난처한것은 도끼등으로 굳은 바위를 내려치다나니 도끼등이 문드러지고 도끼자루가 자꾸 빠져나오는것이였다. 아무리 도끼자루를 잘 깎아맞추어도 바위를 몇번 치고나면 인차 쑥 빠져나오군 하여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판석 한장 따내는데 도끼자루를 열번도 더 다시 맞추었으니 그때의 안타까운 심정을 더 말해 무엇하랴. 이리하여 우리는 이틀사이에 귀틀집 한채를 다 지었다. 그런데 한 동무가 문득 귀틀집의 지붕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걸 좀 다르게 씌우는 방법이 없겠는가고 말하는것이였다. 만족치 못하다는 표정이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은 말이였다. 섶나무가지를 뚝뚝 잘라다가 씌우면 쉽기는 쉬웠지만 보기에 좋지 않았고 잘못하면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에는 비가 샐수 있었던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거듭 굴리였다. 보기에도 산뜻하고 장마철에도 끄떡없을 그런 지붕을 해씌우자면 어떻게 해야 할가. … 모여앉아 지혜를 합치니 좋은 방도가 떠올랐다. 그것은 섶나무가지우에 봇나무껍질을 펴자는것이였다. 그렇게만 하면 비새는것도 막을수 있고 보기에도 얼마나 멋질것인가! 나의 눈앞에는 우리가 지은 귀틀집지붕을 보시고 몹시 기뻐하실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사람들의 눈길 한번 미치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도 언제나 절도있고 째인 혁명군대의 생활기풍을 지켜가고있다고 만족해하실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저절로 힘과 용기가 솟구쳐오르는것만 같았다. 우리는 곧 나무껍질벗기는 일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보아도 칼이나 총가목외에 나무껍질벗기는데 쓸만 한 다른 도구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가까운 곳에 인가라도 있으면 당장 달려가서 쇠붙이쪼각이라도 구해오고싶은 심정이였다. 가망도 없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무껍질벗기는 동무의 작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무르팍을 철썩 치며 소리쳤다. 《아, 그렇지. 나무박죽을 만들어쓰면 되지 않는가!》 나무를 깎아서 박죽 비슷하게 만들어가지고 그것으로 내리훑으면 칼잔등이나 총가목으로 하는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나무껍질을 벗길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그자리에서 토막나무를 도끼로 대충 모양을 맞춘 다음 조금 다듬어보았다. 박죽 비슷한 물건이 되였다. 그것으로 나무껍질을 벗기니 얼마나 간편하고 헐한지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애로와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가자고 결심하고 달라붙으니 이렇게 방도가 생겼다. 그때부터 우리는 밀영건설의 전기간 그런것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며 요긴하게 썼다.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지붕우에 씌운 봇나무껍질이 한 이틀후에는 몽땅 꼬부라들어 들뜨는것이였다. 마르면서 우그러들었던것이다. 그렇게 되다나니 어떤 곳에는 파란 잎사귀들이 그대로 삐죽삐죽 드러나보이였다. 그제서야 우리는 실책을 깨달았다. 일을 주도세밀하게 짜고들지 않아 이런 후과가 초래된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지붕우에 씌워놓았던 나무껍질을 통채로 걷어내리였다. 그리고 새로 벗긴 젖은 나무껍질을 반듯하게 펴놓고 그우에 무거운 통나무를 지질러놓고 말리웠다. 그래놓으니 나무껍질이 판판한 마분지모양으로 되였다. 수북이 쌓인 마른나무껍질들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두 동무가 동시에 말하는것이였다. 《소대장동무, 기왕 하는바에 처음부터 다시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봇나무껍질을 먼저 깔고 그우에 흙을 얹혀놓아야 든든할것 같습니다.》 참으로 한곬으로 흐르는 마음들이였다. 어떻게 하나 더 든든하게, 더 좋게 밀영을 건설하려는 한마음이 련달아 새로운 착상들을 낳게 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붕들을 다 헐고 작업을 다시 진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우리는 모든 애로와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극복하고 우리앞에 맡겨진 밀영건설을 원만히 해내고야말았다.
우리가 소백수골을 떠난지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를 이끄시고 선오산으로 오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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