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필
대덕수전투와 소덕수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백두산서남부 국경지대에 진출하여 진행한 첫 전투들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36년 2월에 진행된 녕안현
남호두회의후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무송현일대에 나오시여 여러
전투들을 진행하시였으며 8월말에 국경지대를 향하여 진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주력부대는 1936년 8월 27일에 만강을 떠나
험한 준령인 로령을 넘어 4일만인 8월 31일 19도구 지양개에 도착하였으며
이튿날인 9월 1일 오후 4시경에 대덕수촌에 이르렀다.
그리운 조국땅이 눈앞에 바라보이는 국경지대에 진출한 우리는 새로운 투지와
흥분에 싸여있었다.
험한 준령을 넘으며 며칠이고 계속되는 어려운 행군과정에서도, 적을 무찌르는
가렬한 싸움의 나날에도 우리는 한시도 조국에 대하여 잊어본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녕안, 돈화, 화전, 무송현을 지나 조국땅 가까이로 진군하여옴에 따라
우리의 가슴은 벅찬 감격으로 부풀어올랐다.
대덕수촌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휴식과 식사준비에 대하여 지시하신 후
군중대회를 가지시기 위하여 마을로 내려가시였다.
이때 개울건너 마을 앞산 신창동에서 넘어오는 길목부근에 1개분대성원으로 되는
제1망원초가 배치되고 김확실동무외 2명은 제2망원초로 마을 뒤산 선바위에
배치되였다.
망원초성원들은 긴장하여 주위를 감시하고있었다. 녀성대원 김확실동무는 선바위우에
서서 한놈의 적도 놓칠세라 사방을 둘러보고있었다. 며칠전에 만강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연극 《피바다》의 어머니역을 맡아 관중들을 감동시킨 그의 가슴속에는 그때 연극을 하면서 불길같이 타오르던 원쑤에
대한 복수심이 끓고있었다.
확실동무는 여기서 또 연극을 하게 된다면 다시한번 자기의 열정을 기울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만강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담화와 연설에 고무되고 연극 《피바다》에
감동한 수많은 청년들이 유격대에 입대하겠다고 그렇듯 열렬히 탄원해나서지
않았던가!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망원초의 감시구역을 살피고있을 때 제1망원초에서
《누구얏?》 하는 날카로운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확실동무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총을 튼튼히 틀어쥐며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신창동(대덕수등너머에 있는 마을)에서 대덕수로 넘어오는 등마루에 누런것들이
나타났다. 틀림없이 적이였다.
이때 나타난 적들은 이도강주둔 위만군과 혜산경찰서 이마노라는 경부놈이 인솔하는
200여명의 일제놈들이였다.
놈들은 이날 우리의 행방을 알기 위하여 신창동에 와서 한 농민에게
인민혁명군부대가 간 곳을 정찰해오라고 강박했던것이다. 그 농민은 놈들의 강박에
못 견디여 신창동앞산까지 와서 숨어있다가 돌아가서 인민혁명군부대는 아무데도
없다고 허위보고를 하였다.
그의 보고를 곧이들은 놈들은 안심하고 대덕수쪽으로 터벅터벅 넘어오다가 우리
제1망원초에 발견된것이였다.
제1망원초의 신호에 의하여 우리 주력은 마을을 벗어나 선바위 남쪽고지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 망원초의 고함소리를 들은 적들은 질겁하여 땅바닥에 머리를 틀어박고
엎드렸다. 그러자 뒤에서 장교놈이 군도를 빼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병놈들을 마을쪽으로 내몰았다.
이때 제2망원초동무들이 적들을 향하여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러자 적의 사격이
제2망원초에 쏠렸다. 적아간에 맹렬한 사격전이 벌어졌다.
제2망원초에서 적을 견제하고있는 사이에 고지에 오른 아군주력은 4중대를
중심으로 우익에는 5중대, 좌익에는 2중대가 배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바위부근에서 부대를 지휘하시였다. (이 지방 인민들은
선바위라고 불러오던 이 바위를 이때부터 장군바위라 불렀다)
고지를 차지한 주력부대는 일부 화력으로 적들을 견제하면서 제1망원초성원들의
퇴각을 엄호했다.
적들은 제1망원초성원들의 뒤를 따라 대덕수부락쪽을 향하여 숲속과 보리밭으로
돌격하여 내려왔다. 적들은 우리 력량이 얼마 안되는줄만 알았든지 련방 총질을
하면서 아군 사격권내에까지 기여들었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사격명령을 하달하시였다. 우리의 기관총, 보병총
등 일체 화력이 적을 향하여 불을 뿜었다.
적들은 무리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돌격하던 놈들은 우리들의 명중사격에 질겁하여 엎드렸다.
우리는 계속 맹렬한 사격을 가하였다. 삽시간에 보리밭에는 원쑤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흩어졌다. 적들은 견디지 못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추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우렁찬 나팔소리가 울리였다.
우리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적을 추격해나갔다. 우리의 맹렬한 추격에 적들은
죽기내기로 밀보리밭을 꿰여 이도강방향으로 도망치였다.
혼비백산한 적들은 허우적거리면서 20리길을 뛰여달아났다.
국경지대에 진출한 후 첫 전투에서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유유히 대덕수부락에 다시 돌아왔다. 이 전투에서 인민혁명군부대는
수십명의 적을 살상하고 많은 군수기재를 로획했다.
대덕수부락에 부대가 돌아온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예정하신대로 군중대회를
소집하시였으며 여기서 선동연설과 연예공연을 하게 하시였다. 마을사람들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 떨쳐나와 우리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후 《김일성장군부대가 장백에 나왔다!》, 《왜놈들이 몰살을
당했다.》 하는 소문이 삽시에 조선국내에까지 퍼지여 우리 인민들은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조국광복의 희망을 더욱 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밤이 퍼그나
깊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엿나팔을 불게 하시였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그이께서 떠나시는것이 서운해서 하루밤 쉬여가시라고 간청하는것이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그들의 성의를 치하하시면서 부대는 떠나야 한다는것을 말씀하시였다.
아까 낮에 혼난 놈들이 오늘은 달려들지 못하지만 래일은 더 많이
밀려올것입니다. 우리가 여기를 뜨지 않으면 이 마을이 그놈들의 행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9월 2일 새벽 2시경에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대덕수부락에서 소덕수를 향하여 출발했다. 험한 산길을 행군한
부대는 소덕수부락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 9시경에 마등창에 도착했다.
마등창은 소덕수부락 북방 5리쯤에 있는 지점으로서 대덕수에서는 서쪽 약 5리
거리에 있었으며 장백현 15도구골과 교차점을 이루는 산림지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서 전체 대원들에게 휴식명령을 내리시고 마등창의 등판과
골을 따라 남북 두개 방향에 휴식장소로부터 각각 400~500m되는 지점에 1개
분대씩 되는 인원을 전투경계로 파견하시였다.
이때 북쪽방향의 전투경계는 5중대에서 소대장이 직접 책임지고 나갔고 남쪽방향에는
4중대에서 나갔다.
국경지대로 진출하는 장기간의 긴장된 행군과 행군도중에 겪은 수차의 가렬한 전투에서
몹시 피곤을 느낀 대원들은 젖은 신발을 벗어 해볕에 말리기도 하고 풀밭에 누워
쉬기도 했다. 초가을의 서늘한 날씨에 대원들은 곧 단잠에 끌려들어갔다.
점심때가 되여서였다. 대원들중 더러는 일어나 마른 신발을 갈아신기도 하고
더러는 배낭을 정리하며 무기를 닦는 등 행군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이때 휴식장소 남쪽방향의 숲속에 몸을 숨기고 섰던 보초는 귀에 설은 말소리를
들었다. 순간 그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불과 10m밖에 안되는
바로 코앞에 있는 나무그루우에 일제침략군 장교 한놈과 위만군 장교 한놈이
서있는것이였다.
일제장교놈은 눈에 쌍안경을 대고 인민혁명군부대들이
휴식하고있는쪽을 유심히 건너다보더니 이윽고 눈에서 쌍안경을 떼고 옆구리에 찬
칼집에 손을 가져갔다. 사격명령을 내리려는것이였다.
바로 이때에 우리 보초는 그놈의 가슴팍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였다.
일제장교놈은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그자리에 거꾸러졌다. 위만군장교놈은 눈이
휘둥그래지고 얼굴이 새까맣게 되였다. 그 순간 보초병의 두번째총알이 날아가자
그놈도 거꾸러졌다.
총소리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대원들에게 전투준비를 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적의 기도를 제때에 간파하시고 령활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적들은 울창한 수림을 리용하여 가까이까지 접근할수 있었다. 그러나 좌우켠에서
다가오는 적들은 숲이 깊기때문에 저의 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적들의 이런 약점을 리용할것을 결심하시였던것이다.
그리하여 4중대의 일부 력량으로 후위를 조직하시고 주력은 은페지를 리용하여
감쪽같이 서쪽으로 빠져나갈것을 명령하시였다. 명령을 받은 대원들은 서쪽편
15도구골안을 통하여 맞은편 산등에 올라갔다.
이때에 우리들은 험한 벼랑을 바줄을 타고 전원 무사히 극복했다.
우리 보초들의 사격에 거꾸러진 적장교 두놈은 자기들의 척후병으로부터
인민혁명군부대가 휴식하고있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자기 눈으로 우리들의 휴식장소를
확정하려고 온 놈들이였다.
두방의 총소리를 듣고 이도강쪽에서 온 적들은 제놈들의 장교 두놈이 죽은줄은
모르고 총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와 동시에 15도구방향의 적들도
총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겁에 질린 이도강방향의 놈들은 15도구방향에서
마주 나타난 놈들을 보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인줄만 알고 덮어놓고 사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대방놈들도 인민혁명군부대가 사격을 하는줄로만 알고 기를 쓰고
불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는 인민혁명군부대가 이미 한명도 남지 않고 그곳을 떠난 후였다.
적들은 제놈들끼리 맹렬한 사격전을 벌리였다. 잠잠하던 숲속은 삽시간에 수라장으로
변했다. 여기저기서 적들은 제편놈들의 총알에 계속 거꾸러졌다.
숲속에서는 적들이 이리떼마냥 제놈들끼리 싸움을 계속하고있었다.
이때 우리는 15도구골 앞산에서 놈들의 싸움을 통쾌한 기분으로 구경하고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망원전술이라고 하였다.
싸움은 여러 시간동안 계속되였다. 이도강방향에서 쳐들어오던 놈들이 견디지 못하여
먼저 나팔을 불며 퇴각하기 시작했다. 나팔소리를 들은 상대방놈들은 그제야 그것이
조선인민혁명군이 아니라 제편이라는것을 알고 황급히 사격을 중지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수많은 사상자를 낸 후였다.
하루종일 제놈들끼리 싸운 적들은 이도강으로 도망쳤는데 도중에 신창동에서 민가의
문짝을 모조리 뜯어 들것을 만들어 거기에 시체를 담아 날랐다.
이 소덕수전투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전술에 의하여 아군은 직접 싸우지 않고
적들에게 큰 손실을 준 전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덕수 및 소덕수 전투를 진행하신 후 계속하여 그해
10월에는 반절구와 이도강에 있는 적들을 습격소탕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국경지대에로의 진출은 력사적인 국내진공작전계획실행의
서막이였다. 이 전투들을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의 정은 더욱
두터워졌으며 그들은 이 승리에 고무되면서 조국의 앞날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였다.
한편 조선인민혁명군이 조선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장백땅에서 맹렬히 활동하면서
적을 무찌르고있다는 사실은 일제침략자들에게 커다란 공포로 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해 10월에 조선총독 미나미란놈과 관동군사령관 우에다란놈은 부랴부랴
도문에 모여서 국경경비를 일층 강화하고 집단부락을 강제로 만들며 대대적인
《토벌》을 감행할 계획을 세우는 등 비상대책을 취하였다.
그러나 놈들의 어떠한 발악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받고있으며 인민들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원호를
받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을 저지시킬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