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기
 
 

 

서대령의 불무지
 

                                                            윤  태  홍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우리 부대가 압록강연안일대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무송방향으로 행군하게 된것은 1937년 3월이였다.
 그동안에 사령관동지께서는 백두산일대에 혁명근거지를 새로 창설하시였으며 광범한 지역에 조국광복회를 비롯한 여러 혁명조직들을 꾸리시고 우리 인민들을 혁명투쟁에로 힘차게 불러일으키시였다. 그리고 대덕수전투로부터 적의 《동기토벌》에 결정적타격을 준 리명수전투에 이르기까지 반년여에 결치는 수많은 전투들에서 계속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시였다.
 적들은 이에 당황한 나머지 압록강일대의 《국경경비진》을 일층 강화하는 한편 수많은 군경놈들을 급히 동원하여 장백일대에 더 투입하고 우리를 《토벌》한다고 떠들어대면서 갖은 발악을 다해나섰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성된 정세하에서 적의 대병력이 국경일대에 집중되는것을 방지할뿐만아니라 놈들의 력량을 분산시켜 혼란에 빠뜨려놓고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일시 부대를 장백일대에서 무송현쪽으로 이동케 하시는 현명한 방침을 세우시였다.
 이리하여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1937년 3월경에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무송현으로의 행군을 시작하였는데 적들은 아군부대를 집요하게 따라오며 덤벼들었다.
 우리 부대가 서대령앞에 있는 단두산을 넘는 하루동안에만도 적들은 무려 17차례나 병력을 갈아대면서 악랄하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적들은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작전계획과 지휘에 의하여 우리앞에서 섬멸적인 타격을 면치 못했다.

이날도 적들은 300여명의 시체를 단두산서북쪽기슭 눈구뎅이에 처박은채 황급히 패주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듯 적들의 《공격》에 계속 심대한 타격을 가하면서 행군하던 우리 부대가 서대령골안에 숙영지를 정한것은 밤이 깊었을 때였다.
 무거운 장구들을 벗어놓으니 땀에 젖은 몸이 식어들면서 추위는 더욱 살속으로 파고드는듯 했다. 게다가 시장기와 피곤이 한시에 몰려들어 눈무지속에라도 눕기만 하면 금시에 깊은 잠에 곯아떨어질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때 어느곳으로부터 적들이 달려들어도 지체없이 타격을 가할수 있도록 빈틈없는 전투준비를 갖춘 다음에야 눈무지를 깊숙이 파헤치고 누웠다.
 이렇게 우리들이 숙영준비를 하고있을 때에 사령관동지께서는 만강부근의 한 부락으로 식량공작원들을 내보내시였고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적들이 몰켜올수 있다는것을 예견하시고 세개 방향에 경계를 파하도록 하시였다.
 이때 나도 경계근무를 서기 위하여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깊숙이 파고 드러누웠던 눈무지속에서 나오니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나는 무거운 짐수레를 끌 때처럼 앞으로 몸을 수그리고 사나운 바람을 가르며 힘들여 비탈길을 톺아올랐다.
 그런데 이러한 속에서도 자꾸만 눈이 감겨지는 졸음과 시장기를 금할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눈덩이를 움켜 입에 넣기도 했고 눈으로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이렇게 내가 망원초로 가고있을 때였다. 얼마 멀지 않은 산마루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눈보라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긴장하게 그리로 다가갔다.
 그들은 부대가 행군해온 골짜기쪽을 유심히 지켜보고 섰다가 천천히 걸음을 돌리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마주 걸어오는것이였다. 이윽고 가까이 마주서게 된 나는 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령관동지께서 전령병을 데리시고 눈보라 사나운 이곳까지 나오신것이였다.
 내가 급히 인사를 드리자 그이께서는 《멍장!…》 하고 나의 별호를 부르시며 더 가까이 걸어오셨시였다. (《멍장》이란 말은 내가 유격대에 입대한 지방 이름인데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런 별호로 나를 부르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추운 때는 따뜻한 구들생각이 더 나겠지. 게다가 오늘은 식사도 못했는데 경계근무를 서자면 힘들거요. 그러나 혁명을 위해 참아야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나의 옷과 신발까지 하나하나 살펴보시였다. 그리고 추운 때에 손발을 얼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의 손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제 식량을 구하러 나간 동무들이 망원초앞으로 들어올것이니 보초를 서다가 그들에게 우리가 있는 곳을 잘 가리켜주어야 하겠소. 그리고 적들이 우리 동무들의 발자국을 따라 기여들수도 있으니 경각성을 높이시오라고 간곡히 가르쳐주신 다음 대원들의 숙영장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시였다.
 가시면서도 그이께서는 공작원들이 돌아올 골짜기쪽을 거듭 돌아보시는것이였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속에서 사랑하는 대원들을 일일이 돌보시고 념려하시며 전투에서의 새로운 승리를 마련하시기에 밤깊도록 자리에 눕지 않으시는 사령관동지.
 그이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한없이 뜨거워올랐고 그 모진 졸음도, 시장기도 모두다 어디론가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오직 어떻게 하면 사령관동지께서 걱정하시는 문제를 다문 얼마라도 덜어드릴수 있을가, 어떻게 하면 그이의 뜻을 받들어 더 잘 싸울수 있을가 하는 이 한마음뿐이였다.
 식량을 구하러 나간 동무들의 뒤를 따라서 적들이 기여들수 있다.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
 망원초로 가면서 나는 그이께서 하신 말씀을 가슴에 깊이깊이 새겼다.
 식량을 구하러 나갔던 동무들이 돌아온 뒤에도 눈보라는 계속 사납게 휘몰아쳤다.
 다음날 새벽이였다. 날은 아직 밝지 않았었다.
 그런데 사령부에서는 행군준비명령을 내리면서 경계근무인원들을 급히 철수시켰다.
 대원들은 곧 행군해갈 방향으로 은밀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는 일부 동무들(7련대 4중대와 경위중대의 최금산, 한익수동무 등)을 친솔하시고 우리가 숙영하던 골안으로 들어오시는것이였다.
 또 이때 우리가 숙영한 장소에서 얼마쯤 올라간 골짜기막바지에서는 난데없는 불무지 몇개가 새로 타오르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우리 동무들이 불을 끄지 않고 행동한것은 아니겠는데… 무슨 불일가?)
 나는 처음에 그 까닭을 알수 없었다.
 나는 기관총수인 전장복동무와 함께 걸음을 옮기면서 긴장하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때 나의 머리속에는 식량공작원들의 뒤를 따라서 적들이 나타날수 있다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말씀이 피뜩 떠올랐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은 틀림이 없었다.
 우리가 은밀히 철수하는 맞은켠 산마루와 골짜기어귀로 어느새 적의 대부대가 수없이 밀려들고있었다.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등지고 산마루에서 어물거리는 적들의 행동은 아주 똑똑하게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골짜기에서 백포로 위장을 하고 은밀히 행동하고있었으므로 적들은 우리를 쉽사리 알아볼수 없었다.
 그래서 적들의 주목은 타오르기 시작한 불무지쪽에 쏠리고있었다.
 그제야 우리는 그 불무지는 적을 기만유인하기 위하여 사령관동지의 명령으로 우리 동무들이 일부러 피워놓은것이라는것을 알았다.
 골안에 있던 우리를 이른새벽의 어둠을 리용하여 감쪽같이 빠지게 하시고는 아군을 《포위》하고 달려드는 적들을 불무지가 있는 골안으로 유인하여 몽땅 족치시려는 사령관동지의 기묘한 전술.
 《참으로 기묘한 전술이로군. 이러니 적들이 유격대는 〈축지법을 쓴다.〉고 비명을 지를수밖에 없지.》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전술에 다시한번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시작될 통쾌한 섬멸전을 눈앞에 그리며 급히 걸음을 다그쳤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는 주력부대가 일정한 장소까지 와서 전투준비를 끝마친 때에도 골안에서 나오시지 않았다.
 대오의 뒤에서 행동하던 우리는 사령관동지께서 골안에 계시는것을 알면서 우리만 빠져나올수는 없었다.
 (사령관동지의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 목숨걸고 사령관동지를 보위해야 한다.)
 더우기 적들이 골안으로 쓸어내려오는것을 보게 된 우리는 다른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전장복동무와 나는 일부 우리 동무들과 함께 그이께서 계시는 쪽으로 내려가 기관총을 걸고 적들을 겨누었다. 그리고 재빨리 탄띠를 물렸다.
 오만하게도 우리의 사령부가 있는 숙영장소를 《불의습격》해오는 원쑤놈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족쳐버릴 생각이였다.
 이런 때에 누구인가 우리에게로 급히 달려와 명령대로 철수하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얼핏 돌아보니 사령부 전령병이였다.
 그는 우리들의 등뒤 웃쪽을 가리켰다.
 사령관동지께서 눈보라가 일고있는 속에 싸창을 들고 서시여 적들의 행동을 쭉 훑어보시다가 우리들에게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명령하시였소. 어서 철수합시다.》

전령병의 말을 듣고 나는 경기관총을 잡고있는 전장복동무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적들을 겨누고있던 그는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알아차리자 우리와 함께 지체없이 뒤고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산마루의 적들은 우리의 맞은켠인 골짜기막바지에서 피여오르는 불무지에 대고 대중없이 총을 쏘았다. 그러면서 그 불무지를 향해 벼랑을 타고 아래로 쓸어내려오는것이였다.
 이윽고 사령관동지의 첫 사격을 신호로 아군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였다.
 골안으로 쓸어내려오던 적들은 우리의 첫 타격에 너저분히 쓰러졌다.
 우리의 화력은 더욱더 세차게 불을 뿜었다.
 벼랑중턱까지 내려온 적들은 골짜기에 들어선 저희놈들이 미처 정신차릴 사이도 없이 쓰러지는것을 보자 벼랑웃쪽으로 되돌아오르려고 미친듯이 날쳤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이미 벼랑웃쪽에 있는 적들에게도 맹렬한 사격을 집중하였다. 때문에 그 중간에 있던 놈들은 올데갈데 없어 정신없이 날치다가는 아래로 굴러떨어지군 했다.
 우리들은 미처 총탄을 섬기기도 바쁠 정도로 경기관총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보총수들은 적들에게서 로획한 보총들까지 내놓고 총신이 달면 다른것을 갈아쥐고 놈들을 연방 쏘아잡았다.
 전투는 긴장하게 계속되였다.
 수량상으로 우세한 적들이였고 우리의 숙영장소를 목표로 하여 기여든 놈들이라 전투는 장시간에 걸쳐 가렬하게 전개되였다.
 적들은 무리죽음을 당하면서도 우리의 사령부를 기어이 해쳐보려고 발악을 다했다.
 그러나 적들이 발악하면 할수록 늘어가는것은 놈들의 시체뿐이였다.
 사령관동지의 명철한 예견성과 탁월한 작전지휘에 의하여 적들은 불무지로 기여들던 첫걸음에 벌써 제놈들의 주력을 잃었고 계속 맹렬한 타격을 받아 갈팡질팡하였다.
 이날 전투에서 승리한 후 우리는 날밝기를 기다려 전투장을 수색하였다.
 적들이 아직 끌어가지 못한 시체만 하여도 수백개가 그대로 눈속에 널려있었다. 그리고 2정의 경기관총을 비롯하여 수백정의 보병총과 수많은 탄약 등을 거두어 모을수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정리하여 산기슭에다 몰래 묻어놓고 사령부를 따라 행군을 계속하였다.
 행군을 하면서도 나는 이날 전투를 다시 생각하였다.
 전날밤에 하시던 사령관동지의 말씀과 새벽녘에 피여오르던 불무지며, 적들이 골짜기로 달려내리는 그 촉박한 때에도 사랑하는 대원들의 일거일동을 빠짐없이 살피시면서 전원이 모두 안전한 위치로 철수할 때까지 엄호조원들을 친히 지휘하시면서 긴박한 정황을 탁월한 전법과 진두지휘로써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시던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를 생각할수록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
 이것은 그날 하루밤사이에 있은 일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아직 어린 대원이던 그 당시의 내가 보고 느낀것조차 지금에 와서 다 기억하지 못하는 극히 불충분한 이야기이다.
 항일무장투쟁의 그 길고 고난에 찬 세월을 두고 한결같이 우리를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사령관동지에 대하여 우리는 몇해를 두고 이야기해도 다하지 못할것이다.
 오늘 우리 인민은 무한히 행복하다. 지난날 항일의 간고한 투쟁에서 그러했고 오늘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조국통일의 성스러운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음으로 하여 빛나는 승리의 길로 전진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전사로서 그이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승리를 확신하면서 그이의 주위에 철석같이 뭉쳐 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모든것을 다 바쳐 용감하게 싸워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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