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행복의 요람
동 의 회
제 2 회
정분녀는 올해 여든살을 넘기였다. 그 나이라면 바깥출입은커녕 집안에서 맴돌기도 힘들련만 오히려 생일상을 받은 후부터는 기운이 더 왕성해지는것 같았다.
그는 일흔살을 넘길 때까지 시내의 육아원에서 보육원을 했었다. 이젠 퇴직한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마음은 늘 거기에 가있었다. 그래서 빈번히 발길을 끊지 못하고 찾아가군 했다. 오늘도 옥류아동병원에 입원한 명일이라는 원아에게 가는 길이다. 혼수상태에 있던 그애의 병세가 완전히 숙어든것이 기뻐서 미꾸라지죽을 쑤었다. 우선 입맛을 돌리고 그다음 그애가 좋아하는걸 해주자.
자연히 걸음이 빨라졌다.
건늠길에 들어서려던 정분녀는 그만 주춤했다. 뽀얀 눈발속으로 불을 환히 켠 승용차가 달려오는것이였다. 뒤에서 또 한대의 승용차가 속도를 내여 따르고있었다.
(웬 차일가, 이 새벽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모르긴 해도 큰일을 맡아보는 일군들이 중요한 일로 새벽길에 나선것이 분명했다.
그는 지금
입원실에 들어서니 명일이는 단잠에 들어있었다.
그애의 머리맡에 앉아있던 옥인이가 돌아보더니 반색했다.
옥인이란 그의 외손녀인데 이번에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여기 옥류아동병원에 배치받았다. 그가 하는 말이 방금 점적을 끝냈다고 했다.
《할머니, 제 방에 가서 좀 쉬세요. 거기에도 침대가 있어요.》
《내 걱정은 말아.》
마음속랭기를 풀지 못한 그 말에 옥인이가 어리광부리듯 할머니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할머닌 아직두 제가 육아원에 가지 않는다고 그러지요? 보라요. 이번에 이애가 우리 병원에 와서 병을 고치지 않았나요.》
《네가 육아원에 있으면 여기 병원에까지 오겠니. 너같은 의사가 있으면 그렇게 복닥소동을 일으키지 않고도 넘기지.》
정분녀는 옹쳐있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볼부은 소리를 했다.
《아이참, 할머니두. 육아원엔 뭐 의사가 없나. 명일이같은 원아는 이런 병원에서 깨끗이 고쳐야 해요.》
《그래두 너처럼 젊은 처녀의사가 육아원에 있으면 더 좋지.》
정분녀는 여전히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옥인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호호호, 할머닌 그저…》
옥인은 깔깔거리며 입원실을 나가버리였다.
정분녀는 한숨을 내쉬였다. 자기 말은 다 산 늙은이의 푸념으로밖에 듣지 않는것이다. 생글생글 웃으며 몸을 사리는 손녀를 다스릴 방법이란 어떤것일가.
정분녀는 옥인이가 대학졸업반에 올라선 때부터 다른데가 아니라 육아원에 배치받기를 원했다. 어쩌다 동생을 만날 때면 그의 도움을 바라고 각근히 당부하기도 했다. 허나 동생은 옥인이보다 한수 더 떴다.
《허허, 누이두. 이젠 육아원걸음을 그만하라요. 젊은 아이들 일에 삐치지 말구요.》
《우리 생각이 나서 그런다. 부모없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니. 당의 품이 아니라면 우리가 살아있기나 했겠니. 지금 육아원엔 보육원두 모자라구 의사력량두 약한데 우리 옥인이가 자원하면 좀 좋으냐.》
《참, 누이두. 내가 뭐 옥인이 배치까지 신경 쓰겠나요. 그저 당에서 배치하는데 가서 일을 잘하면 그만이야요.》하고 훈시하려들었다.
정분녀는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동생이며 손녀가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자기의 마음을 제일 잘 알아줄건 딸인데 그 딸은 내외간이 몇년째 먼 아프리카땅에 가있다.
그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보자기속에서 죽남비를 꺼내여 담요속에 밀어넣었다. 나팔꽃이 새겨져있는 사과알만 한 종발과 나무잎같은 예쁜 접시는 사물함우에 따로 놓았다. 원아들에게 밥 한숟가락이나 생선졸임 한토막이라도 제 손으로 해서 먹일 때는 친손자나 다름없이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에 이르기까지 왼심을 쓰는것은 정분녀한테 오래동안 묻어있는 습관이다. 금붕어가 새겨져있는 빨간 물고뿌까지 꺼내놓은 정분녀는 단잠에 든 명일이를 내려다보았다. 자기의 걸음이 한발 늦은것 같아 알찌근했다. 따끈한 이 미꾸라지죽을 먹고 잠들었으면 더 좋았을걸.
정분녀가 그 나이에 이르도록 육아원을 잊지 못하고 동생에게 부탁한다, 손녀를 부추긴다 하며 마음을 쓰는데는 가슴속에 맺힌 사연이 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늘 속죄하는 심정으로 살고있는 정분녀이다.
지금도 단잠에 든 명일이를 내려다보니 또다시 묵은 상처인양 뜨끔뜨끔 가슴이 쑤셔난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대도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였다.
정분녀는 종시 어쩌지 못하고 두손으로 가슴을 싸안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정분녀는 어느새 솟구쳐오른 눈물을 닦아내고 품안에서 네모나게 싼 종이를 꺼내 펼쳤다. 그안에서 토실토실한 팔목을 쳐든채 눈을 올롱하게 뜨고있는 귀여운 아기의 사진이 나왔다. 사진속의 아기는 티없이 웃고있지만 정분녀의 가슴에선 눈물이 그득히 고이였다. 세월이 흘러 사진은 누렇게 퇴색되였어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살아올라 가슴을 허비였다. 그 누구에게라도 털어놓는다면 다소 위안이 되련만 여직껏 헤쳐놓지 못하고있는 정분녀다. 아기의 얼굴이 보고싶은것을 참지 못해 이렇게 때없이 종이를 헤쳐보지만 웅어리진 가슴은 풀어지지 않았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나는 너의 소식을 알기 전에는 눈을 감을수 없구나.)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슴새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