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0(2021)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행복의 요람
동 의 회
제 3 회
《그 시인도 제가 다니던 원산초등학원출신이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정말 반가왔겠습니다.》
《알고보니 그는 애기때부터 육아원을 거쳐 초등학원에 있었습니다. 잊을수 없는 학원이름을 그한테서 듣는 순간 정말 누이를 만났을 때처럼 기뻤습니다.》
《참, 정동무에게 누이가 있다고 했지요?》
《예, 해방전에 헤여졌던 우리 남매는 천리마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에야 만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줄곧 학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렇게 됐군요.》
또다시 같은 학원출신의 시인과 만나는 장면이 겹쳐지여
《우리 누이는 맏이고 저는 막내이기때문에 어떻게 보면 누이라기보다 어머니같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저는 어머니잔등보다 누이의 잔등에 더 많이 업혀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가 소화기관이 나쁘다고 지금도 봄철이 되면 시외에 우정 나가서 쑥을 뜯어다가 쑥베개를 한다, 배띠를 만든다 하며 극성입니다.
워낙 성미도 그렇지만 이 동생에게 정을 다하느라 늘 왼심을 씁니다. 이런 누이가 있어 저는 지금까지 부모없는 설음을 모르고 살아오고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인에게는 아무도 없어 얼마나 외로왔을가 하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학원생각이 났습니다. 사실 저도 누이를 만나지 못하고 학원생활을 할 땐 외로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니…》
그래서였구나.
이윽고 정문한이 몸가짐을 바로하며 입을 열었다.
《저… 시인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였습니다.》
오래동안 선전부문에서 일해왔고 그
《온통 불도가니가 된 거리로 아기를 안은 아바이가 달려왔습니다. 어느 한 집에서 울고있는 아이를 안아내왔다고 합니다. 마침 육아원을 안전한 곳으로 이설하고있는 녀인을 만났는데 그는 육아원 보육원이였습니다. 녀인앞으로 달려간 아바이는 자기는 지금 끊어진 철다리를 복구하러 가는중이라고, 필시 이애 엄마도 거기에 있을지 모르니 잠간만 맡아달라며 아기를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보육원은 새로 이사하는 육아원의 위치와 자기의 이름을 대주고는 차에 올랐다는겁니다.》
정문한은 요약해서 이렇게 말씀드리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기를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답니다. 아바이도, 온다던 아기엄마도 감감이였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시인이였습니다.
그는 후날 보육원으로부터 자기가 구원된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시인이여서 그런지 그는 참으로 눈물이 많았습니다. 그한테서 그 노래가사창작경위를 듣다가 저도 눈물이 나오는걸 겨우…》
정문한은 쑥스럽게 고개를 돌리다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언제인가 일을 잘하지 못해 농촌에서 로동단련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자기 혼자 세상끝으로 밀려난것만 같은 수치감으로 누구하고도 섭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휴식날이였습니다. 남들은 씨붙임을 끝내고 맞은 휴식날이라고 명절처럼 흥성이였지만 그는 도무지 울적한 심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책을 펼쳐들었지만 글줄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호미를 쥐고 강냉이밭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아아하게 펼쳐진 하늘아래로 뻗어간 사래긴 강냉이밭에서 호미질을 하느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랍니다. 그렇게 한동안 김을 매고 밭머리로 나가니 개울이 나지더랍니다. 녀인들이 빨래를 하는 개울가에서는 조무래기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있었습니다. 문득 한 아이가 금방 입은 옷을 다 적시였다고 어머니한테 매를 맞고서도 좋아라 물속으로 뛰여드는 모습이 눈에 띄였답니다.
나에게도 실컷 목놓아 불러볼 어머니가 있다면, 나를 때리고 꾸짖어줄 어머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는 자기가 울고있는줄도, 곁에 누가 오는줄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참후에야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뒤에 리당비서가 서있더랍니다.
〈선생이 여기에 있는걸 그렇게 찾았군요. 선생, 방금 련락이 왔습니다. 선생이 속한 기관의 당위원회에서 건강한가, 앓지는 않는가, 다른 생각말구 아무쪼록 건강에 주의를 돌리라고 간곡히 당부합니다.〉
〈예?!〉
시인은 처음 리당비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선생의 생활을 잘 돌봐주지 못했다며 잘못을 털어놓는
리당비서를 보고 그만 당황해졌다는겁니다. 사실 이제껏 자기 속을 털어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건 바로
리당비서는 그러는 시인을 바라보며 가지고 온 보자기를 끄르기 시작했답니다.
〈우리 어머니가 선생이 수수지짐을 꽤 좋아하더라면서 이렇게 꾸려주더구만요. 칠순이 넘은 어머니지만 무심히 넘기는 일이 없지요. 오늘같은 날 선생이 얼마나 적적하겠는가 걱정입니다. 정말 어머니의 마음이란, 내 쉰나이에 이르렀지만 어머니앞에 앉으면 허허… 자, 어서, 나앉으시우. 나도 이런걸 좋아하지요.〉
뽀질뽀질 기름이 내돋은 갓 지진 수수지짐, 새큼한 향기를 풍기는 열무김치, 그것을 보니 금시 군침이 넘어갔지만 선뜻 다가갈수가 없었답니다. 그저 눈앞이 뽀얗게 흐려오고 가슴속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만 했답니다.
나에게도 이 몸을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품이 있구나, 다른 생각말고 건강을 잘 돌보라며 따뜻이 일러주다니 아, 다심한 그 목소리야말로 진정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닌가.
아, 어머니의 목소리!
방금전까지 매를 맞는 장난꾸러기가 다 부러웠는데 이제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것 같았답니다. 가슴속에선 벌써 〈어머니의 목소리〉라는 제목이 생각되고 한줄한줄 마음속울림이 터지였답니다. 그날 그는 단숨에 가사를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정문한은 이야기를 마치였다.
타래치는 불길속을 누비며 아기를 안고가는 아바이, 부모없는 아이들을 받아안아 친어머니의 심정으로 키워온 녀인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아기의 생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자기를 바친 유명무명의 사람들은 그 얼마이랴.
그런 사람들의 품에 안긴 아기가 육아원, 애육원, 초등학원을 거쳐 시인으로 자라 당에 드리는 노래를 창작했다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드리는 하나의 송가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정녕 시인의 인생체험 그대로이다. 이 노래를 창작한데는 꼭 무슨 사연이 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드시여 정문한을 보냈던것인데 예감그대로였다.
그만이 체험할수 있는 세계이고 그만이 터칠수 있는 진정이였다.
이번 축하공연 역시 종자는 어머니의 목소리인것이다.
《평양시와 각 도의 애육원, 육아원실태를 료해하자고 합니다. 동무도 한번 나가보시오.》
《알았습니다. 제 당장 나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