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도자와 작가
한편의 가사가 명작으로 된 사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조선민족제일주의교양을 계속 강화하여 인민들이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여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짙은 민족적색채를 안고 정교하게 울리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우리의 음악들가운데는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가 있다. 이 노래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위대한 장군님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우리 인민과 해외동포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졌다. 그후 시대의 기념비적명작인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주제가로 되여 노래의 지위가 더욱 부각되여 우리 나라 주체음악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명작으로 되였다. 하지만 만민의 심금을 크게 울리며 사랑 받는 이 노래가 어떤 길을 걸어 명곡의 령마루우에 거연히 오르게 되였는지 그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것이다. 시인은 자기의 풍부한 생활체험과 깊은 사색속에 가사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창작하였다. 시인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이 가사를 내놓았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가사는 좋은것 같은데 총잡은 군인들과 거리가 좀 먼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총 잡은 군인들한테는 보다 적극적인 주제의 노래가 필요하다고 하는것이였다. 시인에게도 물론 생각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지만 일단 의견이 제기된 작품이라는데로부터 물러서고말았다. 가사는 시인의 습작품들속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후 시인은 그냥 묻혀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작품이라고만 생각되여 광범한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 가사를 내여놓고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가사가 괜찮게 된것 같은데 곡을 붙여보자고 하였다. 이렇게 되여 3년이 지난 후 이 가사는 보천보전자악단 창작가들에 의하여 곡이 붙게 되였다. 주체80(1991)년 4월 15일이였다. 보천보전자악단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공연무대에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올리였다. 드디여 공연이 끝났을 때였다.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뜻밖에도 크나큰 감격과 환희에 휩싸이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빛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지은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조선민족제일주의가 진한 노래입니다, 이번 4. 15명절을 맞으며 아주 훌륭한 노래가 나왔습니다라고 만족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감격에 겨워 서있는 일군들과 창작가들을 둘러보시며 이 노래는 모든 사람들의 심리에 맞으며 어제도 맞고 오늘의 시대에도 맞는 훌륭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다 좋아할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강냉이밥에 된장을 먹어도 조선이 제일이라는 감정이 나옵니다라고 여전히 만족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잠시 생각을 더듬으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민족적색채가 진한 노래인것만큼 대대적으로 보급하여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부르게 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가 담고있는 사상예술적성과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상으로 하는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창조할데 대한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으며 이 영화가 세계적인 명작으로 완성되였을 때에는 영화의 주제가 《내 나라 제일로 좋아》와 《기러기떼 날으네》는 보천보전자악단의 대표작으로서 그 음악형식과 형상방법이 우리 나라 음악발전뿐아니라 세계음악발전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독창적인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가 훌륭한 명곡으로 된 경위를 두고 창작가, 예술인들은 가슴뜨겁게 절감하였다. 만약 우리 장군님과 같으신 음악의 영재를 령도자로 높이 모시지 못했더라면 이 노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번 하였는가. 그렇다. 자연의 온갖 꽃들은 해빛을 받아야 아름답게 피여날수 있듯이 력사의 교훈은 세상에 태여나는 노래들은 위인의 령도를 받아야만 시대의 명곡으로 빛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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