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4호에 실린 글

 

자 료

백호 림제와 그의 소설작품 《시름의 성》

 

 

우리 나라에서 심성의인소설의 첫 발단으로 보는것은 16세기 소설의 거장인 백호 림제(1549―1587)의 소설 《시름의 성》(《수성지》)부터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는것은 주체적문화예술건설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중세시기 우리 나라에서는 력사발전의 매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자기의 개성적이며 독특한 형식의 문학종류가 탄생되여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물론 16세기 이전 시기 의인소설창작에서도 심성(마음과 감정)을 의인화하려는 시도가 다분히 있었다. 그 하나가 최연(1503―1549)의 《국수재전》이다. 최연은 생애에 1 500여편의 시와 30여편의 예술적산문을 남긴 문장가이다.

그는 자기의 의인전기체소설 《국수재전》의 후일담에서 수성(시름의 성)태수가 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침략해올 때 국수재의 맏아들 환백장군(기쁨과 즐거움을 의인화한것)이 격문을 보내고 병사들을 모아 수성을 공격하여 놈들을 몰아냈다는 이야기를 싣고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림제 이전 시기 심성의인소설의 맹아가 이미전에 싹트고있었으며 이 맹아가 그 이후 심성의인소설작가들의 소재선택과 창작수법, 인물형상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의인소설문학은 고려시기 《해좌칠현》에 속한 문인들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창작을 통하여 확고한 지반이 축성되여오다가 16세기에 와서 림제의 창작활동을 분기점으로 급속한 발전의 시초가 열리였다. 백호 림제는 전라도 라주의 량반가정에서 태여나 봉건유교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그는 1577년 과거시험에서 합격한 후 평안병사, 례조정랑 등의 벼술을 력임하였다.

그가 창작한 시작품들과 소설작품들은 많이 전해지지 않고있다. 다만 그의 문집인 《백호집》의 일부와 다른 문인들의 문집에 실린 자료를 통하여 생애에 적지 않은 시, 산문작품들을 창작한 이름있는 문인이라는것만을 확인하고있다.

림제가 창작한 소설작품중의 대표작들로는 《재판받은 쥐》(《서옥설》), 《꽃력사》(《화사》), 《장릉지》, 《원생몽유록》, 《시름의 성》(《수성지》)을 들수 있다.

림제가 창작한 소설작품들은 대개가 그때 당시 봉건정치의 부패상을 적라라하게 발가놓고있는 의인소설작품들로서 중요한 문학사적가치를 가진다. 이러저러한 단편적인 그의 생활자료들과 력사적일화들을 통하여 그가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을 세계관적기초로 하고 량반계급의 립장에 서있는 인물로 짐작되나 또 다른 력사적자료들과 생활토막들에서 그의 내면세계와 세계관적립장을 투시해 볼 때 림제는 권력에 아부굴종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일반봉건통치배들과는 다른 성격을 체현한 사람으로 볼수 있으며 까다로운 유교의 봉건적례의범절을 시끄럽고 불편한것으로 여기며 틀을 차리는것을 싫어한, 반봉건사상을 체현한 인물이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일설에 림제는 량반으로서는 생각할수도 없는 짝짝이신발을 신고 말을 타고가면서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그것을 해학적인 문답으로 기지있게 처리하여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있다. 또 1578년 높은 벼슬을 제수받고 평안도로 내려가다가 개성의 황진이묘에 들려 황진이를 추모해서 시를 읊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여 부임지에 이르기도 전에 조정관료들에게 탄핵당한 사건도 있었다. 림제가 서평사로 있을 때 경진년(1580)에 아버지를 만나려고 서울로 올라가던중 임금의 행차를 범필(가로지났다는 뜻)을 했다는 죄로 파직당했다는 《속관복지증보》의 기록과 《복관지》의 같은 내용의 글을 통해서도 그의 봉건유교도덕을 대하는 립장과 세계관의 일면을 엿볼수 있게 한다. 택당리식의 문집인 《택당잡저》에는 《림제는 병법을 즐겨했는데… 그는 준마를 타고 하루에 수백리를 달렸다. 북평사를 하다가 서평사로 옮겨간 일이 있는데 이때에 왕의 앞길을 범필했으므로 탄핵을 받고 〈시름의 성〉을 썼다》라는 기록이 있어 림제가 《시름의 성》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있다. 림제는 또한 나라의 방방곡곡에 대한 려행을 즐겨하였는데 이 과정에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력사유적들도 깊이 관찰하게 되였을뿐만아니라 당시의 봉건적병페를 들어내고 새로운 리상적인 정치를 구현할것을 주장하는 혁신적인 작품창작자세를 취하였다. 림제의 호방한 성격과 무인다운 기질, 봉견유교교리를 타파한 파격적인 말과 행동이 바로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38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가족들과 친우들에게 《세상의 모든 나라가 다 임금을 황제라고 부르는데 오직 우리 나라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어리석은 나라에 태여났으니 어찌 그 죽음을 슬퍼할수 있겠는가. 곡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일화는 그가 큰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사대만을 일삼던 당시 봉건위정자들을 몹시 증오하고 조소하였으며 사대를 국책으로 한 봉건조정의 정치에 항상 불만을 품고있었다는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아마 림제는 자주강국의 큰 나라, 그 어느 외세도 넘보지 못하는 국력이 강한 나라, 세상이 부러워 바라보는 부국강병의 나라에서 삶을 념원한 애국적인 문인으로 보아진다.

이런 제반 사실들에 비추어볼 때 그가 《시름의 성》을 쓰게 된 확실한 동기를 알수 있다.

심성의인소설 《시름의 성》은 당파싸움에 혈안이 되여 날뛰며 국방에 무관심한 봉건통치배들의 죄행을 폭로비판하면서 나라의 문란해진 정사를 바로잡으려면 인재등용을 잘해야 한다는 림제자신의 주장을 피력한 소설작품이다.

《시름의 성》(《수성지》)은 인간의 마음을 임금 즉 천군으로 의인화하고 인간의 구체적인 성정또는 감정정서라고 할수 있는 인, 의, 례, 지와 희, 노, 애, 락, 오, 욕을 각각 그 신화들로 의인화하였으며 기타 눈, 귀, 입, 팔, 다리 등 인체기관과 벼루, 붓, 술, 돈 등을 의인화하여 수심에 잠겼던 주인공이 술로써 우울한 마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흥미있게 그리였다. 소설은 무고하게 희생된 이른바 《충신》들과 《의사》들이 수성을 쌓았는데 그 두리에 원한과 시름의 기운이 자욱히 뒤덮여있다는 이야기를 통하여 당시 권력을 틀어쥐고 전횡을 부리던 반동적인 통치배들에 대한 울분을 표시하고있다.

림제는 수성이라는 하나의 성을 의인화하여 거기에 조고대와 충의문, 장렬문, 무고문, 별리문 네 문을 설치하고 모든 참되고 아름다운것이 짓밟히며 용납되지 못하는 세상, 그것으로 하여 이 세상은 슬픔이요, 눈물뿐이라는 은유적표현속에서 자기의 고동치는 애국주의사상을 형상하였다.

특히 당쟁과 권력다툼으로 빈번히 일어나는 사화와 재난속에 휩쓸려 억울하게 쓰러지는 귀중한 인재들을 원통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이로 인하여 나라의 기둥과 들보가 좀먹어들어가는것을 통탄하였다. 작품에서 이러한 형상은 한편의 시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있다.

 

열다섯 젊은 나이

륙도(병서의 이름)를 통달했거니

만사람이 일컫는다

기이한 사내라고

 

녹이 쓴 푸른 칼날

그 언제 써볼거나

아득한 변방에는

가을기운 높았건만

 

중년이 다 되여서

경서를 읽은 뜻은

부귀에 탐을 내여

저만 위함 아니여라

 

야속하다 이내 심정

님에게 못 전함이

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다 되누나

 

시에는 나라를 위해 충의를 다하려고 병법을 련마했건만 자기의 큰뜻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녹이 쓴 칼날을 두고 자기의 늙음을 한탄하는 서정적주인공―작가자신의 모습이 비껴있다. 이처럼 림제의 심성의인소설 《시름의 성》은 당대의 모순된 사회현실에서 자기의 뜻을 펼수 있는 출로를 찾지 못해 모대기며 술로써 시름을 잊는 작가자신의 지향을 반영하고있다.

소설은 일인일대기적인 단순한 구성형식인 외줄거리이야기를 설화체로 엮어나가던 종래의 의인산문작품을 여러가지 형식의 구성을 가진 중편의인소설로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한 첫 중편의인소설이다.

생활과 사건을 폭넓게 일반화한 소설의 구성형식이 새롭게 완비되고 작중인물들의 성격을 여러모로 보여주는 산문의 발전된 형식인 림제의 소설 《시름의 성》은 의인소설의 발전뿐만아니라 우리 나라 중세소설의 급속한 발전에 이바지한 작품이다.

소설은 당시 부패한 봉건사회현실을 바로잡을수 있는 선진적인 대책안을 내놓지 못한 시대적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당대 사회의 불합리한 인재정책과 그로 인한 사회적병페를 적라라하게 발가놓고있는 의인소설작품으로서 자기의 문학사적지위를 확고히 차지하고있는 첫 심성의인소설로 주목되고있다. 우리는 이러한 중세시기 소설들에 대한 리해를 바로가지고 중세소설문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 조선민족의 슬기와 영예를 온 세상에 떨쳐나가야 한다.

 

리 성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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