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0호에 실린 글

 

창작수기

내가 받은 금메달

백 리 향

저에게 아름답게 추억하는 시절이 있습니다.

하루수업을 끝내면 달려나가 운동장을 푹 적실듯 동이채로 땀을 쏟던 중학교 체육소조시절!

우승의 시상대에 오른적 없었지만 오늘은 귀중한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우리 대학의 어느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추억은 왜 아름다운가, 지난날 누구와 다투었던 일도 그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추억속엔 모두 아름답다, 왜 그런가, 바로 그것은 오늘이 아름답기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백양나무 우거진 나의 학교를 사랑하자고, 기어이 금메달을 따오자고 땀흘린 시절!

그러나 이루지 못한 꿈을 남겨두고 나는 중학교교문을 나섰습니다.

체질상 약점으로 하여 금메달을 영영 가슴속에만 묻었던 제가 뜻밖에 금메달을 받아안게  되였습니다. 제가 쓴 시초 《금메달서정》이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서 1등으로 당선되였던것입니다.

철이 들면서 내 눈에 비낀 어머니모습은 늘 책상앞에서 고심하는 모습이였고 밥탄내가 나는것도 모르고 부엌에서까지 펜을 달리는 모습이였습니다.

하루훈련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어머니가 차려준 따끈한 밥상을 그려보며 집문을 열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밥상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계시는 어머니모습을 볼 때 때로 울고도싶었습니다.…

언제부터였던지 어머니의 사색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쌀함박을 내 먼저 잡았고 무엇인가 어머니일손을 도우려고 구석구석 살피기도 했습니다.

40고개를 넘어서면서까지 문학통신원생활을 하던 어머니, 시 한편한편을 위해 고심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문학의 길이 그처럼 간고한 길인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였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얼마전에 끝끝내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서 1등을 하고 그토록 소원하던 작가대렬에 들어선것입니다. 아마 이런 가정적영향과 어머니의 모습에 끌려 자기도 모르게 문학의 길에 들어섰던것 같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습니다.

《우리 시문학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실을 민감하게 반영하여야 하며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로 되여야 한다.》

제가 우리 처녀축구선수들에 대한 시를 쓰려고 결심한것은 우리 선수들이 녀자축구가 생겨 처음으로 아시아녀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한 때로부터 련이어 국제경기들에서 1등을 하여 온 나라에 축구열풍을 불게 한 때였습니다.

어디 가나 온통 처녀선수들의 사진이 나붙어있었고 영웅으로 떠받들리웠습니다.

전차안에서도 뻐스안에서도 식당안에서도 우리 처녀선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칠줄 몰랐습니다.

마치 자기 자식이야기처럼, 동생이나 친구이기나 한것처럼 선수들에 대해 말할 때면 나도 지고싶지 않았습니다. 김성희, 리은향… 선수들의 성격이며 취미까지 나만큼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보다 그들을 잘 알고있고 그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한 나는 그들을 노래하고싶었습니다. 그때 저는 녀자축구선수들에 대한 시 한편을 안고 난생처음 밤을 새워보았습니다.

그해 8월 통신원강습에 참가한 저는 자신있게 작품을 내밀었습니다. 웃으면서 나의 작품을 받아들고 글줄을 따라내려가는 선생님의 모습은 점점 심상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눈앞은 아뜩해졌습니다.

몇밤을 지새우며 정을 기울인 작품이였지만 선생님의 그 표정이면 그 운명이 뻔했습니다.

한참이나 나를 지켜보던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너의 생활과 가깝게 써라, 그들이야 네가 키운 잔디우에서 훈련했으니 얼마든지 잘 형상할수 있을게다라고…

나는 다시 시창작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때 나의 생활을 담은 작품이 비교적 좋게 평가되였습니다.

저는 신심을 가지고 현상응모준비에 달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생활만 잘 알아가지고서는 선수들의 생활을 담은 시를 형상해낼수 없었습니다.

서정적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축구선수들이였습니다.

체육인들의 숨결, 하나하나의 박동이 뛰는 산 표현들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선수들과 함께 중학교체육소조때처럼 공차기도 해보았고 달리기도 해보며 체육훈련하던 때의 활기도 다시 안아보았습니다.

그래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세계에 잠기는것이였습니다.

어느날 선수들과 함께 공을 차며 휴식을 하고있었는데 나와 함께 일하는 한 동무가 선수의 공을 깔고앉았댔습니다. 그렇게 성격이 콸콸한 선수가 막 성을 내며 공을 앗았습니다.

얼마나 공을 사랑했으면… 저는 그들의 모습을 다시 보았습니다. 훈련장에선 그리도 드세게 공을 다루던 선수들이 일단 훈련이 끝나면 아기인듯 공을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이름을 짓듯 자기의 이름도 써넣고 아기옷을 입히듯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꽃도 그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아기처럼 공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숨결을 시어 하나하나에 담자면 그들처럼 저도 사랑을 지녀야 했습니다.

그래야 체육에서 선수들이 받은 금메달을 문학에서도 쟁취할수 있었던것입니다.

시의 어느 대목에는 《차돌같은 종아리 물에 잠그고…》라는 대목이 있는데 원래 저는 《단단한 종아리》라고 썼댔습니다. 너무 일반적이였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성격이, 맥박이 뛰지 않는 아주 미미한 표현이였습니다. 그 쾌활하고 활발한 성격이 매 표현 하나하나에 지향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찾던 표현들중 차돌을 찾았습니다. 차돌에 비유하니 얼마든지 우리 선수들의 그 성격을 담을수 있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승리만을 향해 달리는 선수들의 그 튼튼한 다리형상이 왔습니다.

정말 선수들의 맥박으로 뛰는 표현 하나하나로 시문장을 잇고 시전반을 관통시킬 때 처녀축구선수의 서정이 나올수 있는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쓴 저의 작품에 《금메달》이 걸릴줄이야…

해마다 문학통신원강습에 불러주시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준 어머니당의 따사로운 사랑속에서 저의 시가 태여났고 그처럼 아득한 높이로만 보이던 시상대우에서 빛을 뿌리고있는것입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아직 문학의 창공을 날으기에는 너무도 여린 저의 날개를 튼튼히 해주시려 축구장의 평범한 관리원이였던 저를 김형직사범대학의 해빛밝은 창가에 앉혀주시고 전문교육을 받도록 뜨거운 은정을 또다시 돌려주시였습니다.

진정 제가 받은 금메달은 우리 문학통신원들을 선군문학의 후비대로 억세게 키워주시려 그처럼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안겨주신 아버지장군님께서 안겨주신 금메달인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이 금메달을 더 빛내이기 위해 아버지장군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의 모든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겠습니다.

국제무대에서 조선사람의 본때를 떳떳이 보여준 녀자축구선수들처럼 저도 문학의 길에서 금메달을 빛내이기 위해 창작의 주로를 달리고 또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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