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9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수  기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의 푸른 하늘》

                       

                                       구  희  철

                                                                                                                                              

빠르기도 한것이 세월인가부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을 두고 류수와 같다고 했던가.

놀라운것은 내가 《청년문학》잡지를 받아들고 문학공부를 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잡지발행 600호가 가까와온다.

공화국창건 60돐을 맞으며 창작수기를 써달라는 편집부의 청탁을 받고보니 참말 감회가 깊어진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인민대중은 마땅히 자신이 체험하는 생활을 자신이 바라는 리상에 맞게 반영하는 문학창작활동에서 주인의 구실을 하여야 하며 그 문학의 참다운 소유자, 향유자가 되여야 한다.》

나의 창작생활의 첫걸음을 손잡아 이끌어준 《청년문학》잡지, 나의 창작생활의 첫싹을 위해 자양을 주고 북을 돋구어 창작의 꽃을 활짝 피워주고 열매맺게 해준 《청년문학》잡지!

어쨌든 《청년문학》잡지에 발표된 나의 첫 서정시 《내 세상 길 처음 걷는듯》을 계기로 나의 시인으로서의 길이 열리게 된것이다.

그때 나는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창작과 학생(당시)이였다. 1960년대 중엽 시인들인 김순석, 전동우선생들의 지도를 받으며 우리 시조동무들은 서정시세계에 푹 물젖어 성장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때 시인인 김순석선생이 우리들에게 서정시의 날개를 돋혀주기 위해 삼석의 농촌정서며 두루섬의 이채로운 풍치를 느끼도록 분망히 데리고 다니던 때를 잊을수 없다. 또 전동우선생이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싸운 투사들의 발자취가 력력한 두만강기슭을 비롯한 혁명전적지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던 때를 잊을수 없다.

후에 알게 된 일이였다. 김순석선생의 책상우에 우리 시조동무들의 실습작품들이 묶음으로 놓여있었다. 실습작품묶음을 뒤져보던 조빈선생(당시 《청년문학》편집부 편집원)이 그 묶음들중에서 서정시 《내 세상 길 처음 걷는듯》을 잡지에 싣겠다고 가져간것이 후에 잡지에 실린것이다.

나의 시문학의 첫걸음은 이때 《청년문학》잡지에 실린 첫시로부터 시작되였던것이다.

그후 나는 《문학신문》기자생활을 거쳐 작가동맹 현역작가생활을 하였으며 오늘은 로년기에 이르렀다. 허지만 그때 《청년문학》잡지에서 시작된 첫시의 그 힘으로 나는 지금도 시창작의 왕성한 시기를 보내는것이다.

지난 시기 창작의 그 나날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사랑속에 수많은 서정시와 가사를 창작할수 있었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하여 지난 기간 창작된 가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에 대한 창작수기랄가 창작경험이라고 해야 할가를 간단히 쓰려고 한다.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은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하여 창작되였고 장군님에 의하여 온 나라가 다 아는 노래로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해인가 일군들에게 지금 조국에 대한 내용을 담은 노래가 많이 나오지 못하고있다고, 조국에 대한 가사를 잘 쓰는 작가들도 얼마 없고 조국을 어머니와 결부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많지 못한것 같다고 하시면서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이 아주 좋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제가 그 가사를 비롯하여 조국에 대한 좋은 가사를 적지 않게 쓴데 대하여 과분한 평가를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외에도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과 관련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귀중한 말씀을 주시였다.

내가 오늘 《청년문학》잡지의 지면을 통하여 이야기하게 되는것은 이 가사의 생활적이면서 철학적인 종자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것이라는것이다.

1980년대초부터 저를 비롯한 여러명의 시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고 어느 한 예술단체에 들어가 작품을 창작하게 되였다.

그때 우리는 거기서 《백두산의 눈보라》, 《인민은 당에 영광드리네》를 비롯한 수많은 좋은 노래를 창작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려 기쁨을 드렸다.

우리 시인들이 예술단체에 들어가 창작할 당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에 대한 좋은 노래를 창작할데 대한 말씀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에 대한 노래를 어떤 정치적인 선언이나 생경한 론리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자기가 나서자란 아름다운 고향산천과 부모처자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과 정서를 가지고 써야 한다고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써야 인민들이 즐겨 듣고 부를수 있는 명가사, 명곡이 될수 있는가 하는데 대해서뿐만아니라 가사의 종자와 형상방도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조국에 대한 표상은 실로 광범위하고 다양한것이다. 조국이라고 생각하면 나서자란 고향산천인 작은 범위가 조국이라는 넓은 표상으로 안겨온다.

하다면 이 큰 조국의 어느 한 대목, 어느 한 모퉁이, 어느 한 작은 세부를 통해 조국의 큰 표상을 다 그려보게 할수 없을가 하는것이 나의 생각이였다.

물론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으나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조국의 푸른 하늘이였다. 내 희망의 꿈을 늘 얹어보는 가없이 넓고 푸른 하늘, 때로는 희망의 큰 날개를 활짝 펴고 끝없이 날아올라보는 조국의 푸른 하늘, 나는 조국이라는 이 거대한 표상을 푸른 하늘에 비하여 쓰면 될것이라고 생각을 모아보았다.

막상 가사로 쓰자고 생각하니 가사의 일반적인 형식인 열두줄에 하고싶은 말을 다 할수 없었다.

그때 내가 푸른 하늘과 일반적으로 련관이 있고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어린시절부터의 수많은 추억이 어제일인듯 눈에 삼삼히 떠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기 생활에서 제일 가깝게 체험된 감정을 그대로 쓰면 그것이 곧 가사로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나는 구체적인 생활을 푸른 하늘과 련관시켜보면서 처음부터 가사로 쓸것이 아니라 서정시로 자유분방하게 먼저 써보자, 그러면 제한된 가사보다 감정정서가 풍부해질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서정시로 쓴 저는 푸른 하늘과 결합시키면서 가사의 형태를 잡아나갔다.

서정시 《내 나라의 푸른 하늘》 60여행의 시행에서 함축된것들을 12줄의 가사형식에 옮겨놓았다.

서정시로 썼던것을 가사로 함축하니 사상도 생활도 일반화되고 전형화되였다.

이어 작곡가는 노래로 완성하였고 그후 우리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올릴수 있었다.

그 노래가 잘되였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평가의 말씀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수없이 컸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과 관련하여 여러차례나 귀중한 말씀을 주시였다.

돌이켜보면 20여년이 지난 오늘도 그 노래를 전 군민이 부를수 있도록 세심히 가르쳐주신분도 우리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창건 60돐 경축종합공연이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중심으로 해서 진행되도록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공연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을 때는 그 경축종합공연작품에 《김일성상》의 영예를 안겨주시고 해마다 년중행사로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실로 하나의 작은 노래를 큰 국가행사에서 불리우게 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은정과 사랑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은 창작동기로부터 노래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을 떼여놓고 절대로 생각할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모든 성과를 우리 창작가들에게 돌려주시였다.

그이의 한량없는 은정속에서 나는 오늘 영예의 《김일성상》계관인으로 자라났다.

정녕 문학예술의 거장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아래 사는 우리 창작가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 공화국이 창건된지 60돐이 되는 오늘을 생각할 때 조국번영의 세월속에 《청년문학》잡지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먼길을 왔으며 우리 문학의 후비들은 또 얼마나 큰 대오로 자라났는가.

《청년문학》잡지에 처음으로 실린 서정시 《내 세상길 처음 걷는듯》으로 창작의 걸음마를 뗀 20대청년이였던 내가 인제는 70나이가 되였다.

나는 이 수기를 쓰는 과정을 통하여 내가 문학을 시작하던 그런 때의 20대, 30대 청년들에게 꼭 하고싶은 말이 있다.

서정시를 창작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의 창작의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면 그보다 영예로운 길은 없다. 창작은 결코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터득한 심장의 피로 아로새기는 뚜렷한 발자국이기때문이다.

생활을 체험하라,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생활의 쓰고 단맛을 몸에 푹 배게 체험하라, 그 과정에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러한 때 쓰라, 자기 수령, 자기 당, 자기 조국, 자기 인민에 대해서…

열렬한 사랑을 안은 심장, 분화구를 안은 열정의 시인이 되라.

심장의 뜨거움이 없이, 열렬한 사랑없이 쓴 시는 독자들을 감동시킬수 없으며 오히려 외면해버린다.

숫눈길우에 뚜렷이 내는 발자국같이 문학의 숫눈길우에 흔적을 남기라, 오래오래 두고두고 심장에 새기고 외울 그런 서정시를 종이우에가 아니라 가슴에 자자구구를 쪼아박게 하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기억하시는 시를 쓰자. 그리고 우리 장군님께서 기억하시는 시인이 되자.

이것이 시창작에 뜻을 두고 창작의 길우에 줄달음치는 이 나라 문학통신원들에게 하는 나의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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