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1호에 실린 글
단상
느티나무
김범일
나는 지금 고향마을의 느티나무밑에 서있다. 여기에 서면 언제나 그러하듯이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겨온다.
《그래, 이 나무는 영원히 수명이 없다.》하시며 주름깊은 눈가에 무엇인가 번득이던 할아버지. 그것은 눈물이 아니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우리 고향마을에 기여든 원쑤놈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무작정 잡아들여 이 나무밑에서 총으로 쏘아죽이고 목매달아죽였으며 그것도 성차지 않아 아이들과 늙은이들까지 생매장해버렸다.
언제인가 마을청년들이 산에 수종이 좋은 나무를 심으면서 볼수록 가슴아픈 추억만 새겨주는 이 나무를 찍어버리려할 때 죽음의 생매장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할아버지는 《나무를 찍지 말라!》고 추상같이 웨쳤고 밤깊도록 도끼날이 박혔던 나무밑둥을 싸매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청년들은 군대로 떠나갈 때면 의례히 이 나무아래서 마음의 군복을 먼저 입었다. 나의 아버지도 그렇게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갔다. 오늘은 내 차례였다.
고향땅의 피의 교훈, 원쑤들에 대한 증오심을 안고 설레이는 느티나무, 정녕 그 나무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 새세대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을것이다.
그렇다.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이 나무가 죽으면 고향의 귀중한 모든것을, 조국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