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푸른 신호등

김철

(제 2 회)

 

승용차는 네거리교차점에서 멎어섰다.

그이의 시선이 교차점에 세워놓은 신호등으로 향하시였다.

푸른 신호등과 붉은 신호등,

방금전에 보신 외신자료에 대한 여운이여서인지 례사롭게 보아오던 두 신호등의 의미가 류다른 감흥속에 새로운 사색을 불러일으키였다.

(이 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건늠길을 건느는 사람들에게 안전을 약속해주는 푸른 신호등, 저 푸른빛이 있어 사람들은 마음놓고 길을 다닐수 있는것이 아닌가.

하다면 사회주의의 승리와 미래를 확신케 하는 푸른 신호등은 무엇이겠는가?)

연줄연줄 사색의 아지를 쳐나가시는 그이의 안광에 푸른 신호등을 배경으로 가지가지 새 솜옷을 입고 등교길에 오른 아이들의 행복넘친 모습과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희열에 넘친 모습들이 금시마냥 안겨들었다.

비로소 사색의 세계에서 깨여나신 그이께서는 소중한 사진들을 다시 가방에 넣으신 후 운전사에게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장동무, 동무의 귀여운 그 장난꾸러기도 이번에 새 솜옷을 받았겠구만. 그래, 애가 좋아하오?》

《예, 얼마나 좋아하는지. … 잘 때에도 머리맡에 개여놓고 자군하는데 한번은 제 어머니가 선생님이랑 어머니말을 잘 안들으면 옆집 애에게 주겠다고 엄포를 놨더니 글쎄 이젠 아예 입고서 잡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별 방법을 써가며 얼리였는데 녀석이 어찌나 고집불통인지 처가 제켠에서 지쳐 끝내는 잘못했다고 항복을 해서야 솜옷을 벗겨 재울수 있었습니다.》

《하하… 괴짜요, 괴짜. 장동무의 아들이 그렇게 재미있는 녀석일줄은 미처 몰랐소.》

그이의 즐거운 웃음소리는 대기의 청신함과 조화를 이루며 새 아침의 정서를 더욱 부각시키는듯싶었다.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에는 눈담요가 한별 깔려있었다. 인차 승용차는 가로등빛이 환한 선교네거리에 이르렀다.

흰눈세계로 단장된 정겨운 거리를 일별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공중건늠길의 계단에서 부지런히 눈가래를 움직이는 한 처녀의 모습에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남들이 새벽잠에서 깨나지 못한 때에 벌써…)

그이께서는 새벽길에 보게 된 기특한 처녀를 만나고싶으시여 차를 세우시였다.

《새벽공기가 찬데 눈을 치느라 수고합니다.》

처녀는 고개를 버쩍 들었다.

순간 《아니…장군님…》 하고 놀라움에 젖은 목소리를 터치였다.

《이게 누군가? 너 선희 아니냐?》

김정일동지께서는 뜻밖의 상봉이 놀라우시였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선희는 수도의 네거리초소의 교통안전원이였다.

어느날 그이께서는 선희의 아버지인 경선과 한차를 타고가신적이 있었다.

경선으로 말하면 룡남산의 교정에서 그이의 남다른 보살피심속에 보람찬 대학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평양시의 어느한 구역인민위원회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다. 승용차가 네거리교차점에 당도했을 때 그이께서는 지휘봉을 들고있는 녀성교통안전원에게 건뜻 손을 흔드는 경선의 류다른 행동을 여겨보게 되시였다.

《경선동무, 혹시 저 교통안전원이 막내딸 선희가 아니요?》

《옳…습니다. 오래간만에 딸의 얼굴을 보다나니…》

경선은 두손을 깍지끼우며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세월두 참 빨라. 첫돌때 선희가 보동보동한 손으로 내 품에 파고들던 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푸른 제복을 입은 처녀로 자랐구만. … 올해에 선희가 몇살이요?》

경선은 얼른 딸의 나이와 다음해이면 그가 만기제대임을 말씀올렸다.

승용차가 중앙선을 지나가자 선희는 절도있게 경례를 하였다.

그이께서도 정다웁게 답례하시였다.

《경선동무가 딸을 잘 키웠구만. 내 미리 침을 놓는데 선희가 제대되여 결혼식을 하게 되면 꼭 내게 알리오, 맏이때처럼 혼자 슬쩍 해치우지 말고. …》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는 그이의 존안에는 그윽한 감개의 빛이 어리였었다.

그때에 새겨본 교통안전원이 도로관리원의 모습으로 달라진 선희를 두고 그이께서는 언제 제대되였는가, 어떻게 도로관리원을 할 생각을 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저는 정든 이 도로를 떠나고싶지 않았습니다. … 사실 아버지가 저의 결심을 선참으로 지지해주었습니다. 장군님, 저는 푸른 제복은 벗었지만 이 도로에서 한생 초병의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시였다.

숫눈처럼 깨끗한 그 마음…

그이께서는 딸의 선택을 선참 떠밀어준 경선의 둥그스름한 얼굴을 미더웁게 그려보시였다.

《선희 아버지를 만나본지도 퍽 오래되였어. 경선동무가 보고싶구만.》

그이의 가슴 한귀가 알알해지셨다.

이제라도 선희를 앞세우고 그의 집으로 성큼성큼 찾아가 《경선이, 그간 잘 있었소? 대학시절 지우인 이 김정일 왔소.》 하고 큰소리로 부르며 쌓인 회포를 나누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시였다.

그러나 오늘 역시 드바쁜 사업일정이 빈틈없이 맞물려있다. 그이의 눈길은 선희가 든든히 잡고있는 눈밀개에 멎었다.

기특한 처녀였다.

시민들이 출근하기전에 공중건늠길계단들의 눈을 말끔히 쳐내고있는 선희를 업어라도 주고싶은 심정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만약 그가 이 계단들의 눈을 제때에 쓸어내지 않으면 미끈미끈한 얼음판으로 변한 공중건늠길에서 인민들이 얼마나 불편을 느끼게 되겠는가.

《선희, 고맙다. 어제날에는 교통초소에서 인민의 안녕을 지켰고 또 오늘에는 남모르는 새벽에도 인민들의 편의를 위해 더운 땀을 바쳐가는 선희의 모습을 보니 힘이 나는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얼핏 빨깃하게 얼어든 선희의 손을 여겨보시였다.

선희의 손엔 장갑이 없는것이다.

그이의 세심한 눈길을 감촉한 선희는 황황히 맨손을 뒤로 가져갔다.

《집에서 나올 때 헤덤비며 나오다나니 장갑을 흘려서… 아마 그래서 아버지가 늘 절 보고 덤베북청 같다고 한것같습니다.》

그이께서는 웃으셨지만 마음속에는 저울추같이 매달린 근심이 떨어질줄 몰랐다.

《선희, 이젠 계단의 눈도 다 쳤는데 빨리 집에 들어가 몸도 덥히고 아침식사도 해야지. 다음부턴 꼭 장갑을 끼고 일하라구. 손이 얼면 큰일이야. … 그리고 아버지에게 내 인사를 전해주오.》

그이께서는 거듭 당부하시고나서 눈가에 가랑가랑 눈물이 맺힌 선희와 헤여지시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