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푸른 신호등

김철

(제 4 회)

 

고요한 포장길에는 나무들이 서있는 공지쪽으로 걸음을 옮기시는 그이의 발걸음소리가 무거웁게 울리였다.

엄혹한 겨울의 상징인듯 푸른 잎대신에 가지마다 흰눈을 떠이고선 한그루의 나무가 그이의 시선을 가득 채웠다.

비록 푸른 잎은 사라졌어도 지심깊이 뻗어내린 억센 뿌리가 있어 혹독한 겨울의 설한풍을 꿋꿋이 이겨내면서 굳건히 자기의 생명력을 보존하고있는것이 아니랴. 머지않아 시련을 이겨내고 새봄을 맞이하여 푸른 잎과 더불어 거목의 위용을 떨칠 래일에 대한 환희가 그들먹이 차오르며 보이지 않는 뿌리에 대한 류다른 애정과 믿음이 심금을 울리였다.

우리 삶의 터전인 사회주의도 바로 소박하고 강의한 인민의 마음속에 진리로, 과학으로 소중히 자리잡고있기에 그렇듯 엄혹한 시련과 난관, 좌절과 우여곡절을 박차며 오직 승리와 전진의 활로만을 달려온것이 아니랴. …

《인민, 인민…》

이제는 너무도 익고 례사로운 부름을 몇번이고 조용히 되뇌이실수록 방금전에 목격한 광경이 마음속에 응어리로 굳어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으시였다.

인기척을 느끼신 그이께서는 시선을 돌리시였다. 헉헉 가쁜숨을 톺으며 달려오는 세사람의 모습이 점점 가까와졌다.

부관과 운전사, 경선이였다. 그이께서는 뜻밖에 나타난 경선을 알아보고 반가움과 함께 의아함이 밀물처럼 갈마드시였다.

이때 부관이 한발 나서며 보고를 올리였다.

《도로에 눈치기를 나왔던 인민들이 일을 끝내고 모두 돌아갔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신 그이께서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있는 경선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시였다.

《경선동무, 이게 어떻게 된 갑작상봉이요? 오는 길에 네거리에서 공중건늠길의 눈을 치는 선희를 만났댔는데 이번엔 또 홍길동처럼 나타난 경선동물… 그새 앓진 않았소? 선희 어머니도 잘 있고?》

《예.》

경선은 상봉의 열도가 너무 뜨거워 인사말도 변변히 울리지 못했다. 그는 옷매무시를 바로잡고 자초지종을 말씀올렸다.

《사실 구역에 있는 눈을 치는 차가 고장나는통에 인력으로 도로의 눈을 치게 되였습니다. 늘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데 우리 구역의 도로를 지나시게 되면 안전한 길을 마련해드리려고 구역안의 일군들과 주민들이 떨쳐나섰습니다. 이른새벽에 나오게 하여 미안하다는 일군들에게 인민들은 잠을 좀 못자는게 뭐 그리 큰거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너도나도 떨쳐나 더운 땀을 바치는 인민들을 볼수록 그들의 충성심에…》

《그만하오, 경선동무.》

김정일동지께서는 더 들을수 없으시였다.

그이의 마음속에서는 고마운 우리 인민에 대한 뜨거운 정과 함께 그렇듯 순박하고 열렬하며 순결무구한 우리 인민을 하늘처럼 받들려는 자신의 진정을 너무도 몰라주는 경선과 같은 일군들에 대한 야속함과 안타까움이 끓어번지시였다.

《나도 인민들의 마음을 압니다. 하지만 늘 말하듯이 나도 인민의 아들입니다. 인민우에 김정일 있는것이 아닙니다. 동무들은 나를 받든다고 하는데 나나 동무들이 진정 받들어야 할 사람들은 우리 인민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동무가 이런 일을 벌려놓을줄은…》

억이 막히신듯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겨울날씨가 찬 이른새벽에 인민들이 눈치기를 하는 도로로 차마 지나가지 못했던 동문네거리쪽을 아프신 마음으로 바라보시였다.

두눈을 슴벅이는 경선에게 눈길을 돌리신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잘못된 일입니다. 지금처럼 인민들이 추운 새벽에 눈을 치게 할바에는 도로에 깔린 눈을 그냥 내버려두는게 낫지 않겠는가.

경선동무, 그래 우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위하여 복무하는가를 과연 모른단 말입니까? 말로만 하는 복무는 인민의 고생으로 남게 됩니다. 구역에 일군들이 있으면서 눈을 치는 차 하나 제때에 수리하지 못해 이른새벽, 인민들이 고생스럽게 도로의 눈을 치게 한것은 그 무엇으로도 변명할수 없는 비상사고 입니다. 비상사고!》

주먹을 불끈 틀어쥐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앞발치에 서있는 키높은 나무에 시선을 모으시였다. 보이지 않는 뿌리, 그 억센 뿌리가 있어 모진 눈비와 광풍에도 끄떡없이 하늘높이 치솟은 거목을 누구나 벅차게 볼수 있는것 아니랴. …

그이께서는 자책감에 휩싸여있는 경선에게 다가가시였다.

《지금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제국주의가 때를 만난듯 조선으로 사면팔방 달려들고있는 1990년대는 사회주의의 운명이 판가리되는 준엄한 년대입니다. 그러나 우린 끄떡없고 배심든든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식 사회주의는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그 인민의 마음속에 생명의 뿌리를 두고있기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땅이 있어 백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허나 조선의 혁명가들에게는 인민이 있고서야 그 땅도 있고 인민을 위하여 사회주의도 있는것입니다.》

그이의 고귀한 가르치심을 한자두자 쪼아박는 경선의 가슴속에서 격앙된 마음의 쇠물이 지글지글 끓어넘쳤다. 인민에 대한 숭고한 믿음의 세계로 금시 얼어든 대지가 녹아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며 열기를 내뿜는듯싶었다.

《경선이, 동무도 잘 알지, 우리 수령님께서 한평생 인민을 위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을 걷고걸으시였는지. … 한밤중에 인민들이 사는 거리를 지나시다가도 불이 켜진 창문을 보시면 혹시 어떤 아픔이나 괴로움으로 잠못드는건 아닌지 하는 근심으로 차를 세우고 오래도록 지켜보군 하시던 수령님이시였소.

그런데 누구보다 수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할 동무가 언제부터 인민우에 군림하게 되였는가. 그래, 그렇게 하는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그이께서는 안타까움으로 달아오른 속을 식히기라도 하시듯 나무가지에 쌓인 눈을 두손으로 모아 한웅큼 움켜쥐시였다.

경선은 머리를 들수 없었다.

《대학시절 동무는 누구보다 인민대중의 존엄과 력사적지위를 놓고 열변을 토로했었지. … 그때 얼마나 미덥고 또 인민을 위한 길에서 뜻과 정을 함께 할 좋은 동지가 곁에 있다는 기쁨으로 늘 즐거웠소.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고… 그런데 지금 내앞에 서있는 동무는 어떤 모습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몹시 아프시였다. 진정 동지를 아끼고 사랑하시였기에 잘못을 범할 때마다 아픈 매를 들군 하시였지만 그들을 제때에 바로세워주지 못한 책임감으로 하여 그럴때면 더 마음이 미여지시였다.

장군님, 제가 인민에게서 먼저 인사를 받는것을 응당히 여기던 나머지 어느새 인민에게 호령하는 사람이 되고말았습니다. 전 정말 이 자리에 설 자격이…》

경선은 말을 끝맺을수 없었다. 자기가 지금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전혀 가늠할수 없게 하던 장막이 벗겨지고 자기 모습이 낱낱이 드러나는것만 같아 그이앞에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명심하시오, 인민에게서 멀어지면 저도모르게 인민을 내려다보게 되고 나중에는 그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된다는것을. 그러한 당, 그러한 국가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것이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좌절로 일시적곡절을 겪고있는 오늘의 현실과 장구한 력사가 값비싼 교훈으로 새겨주는 필연이요.

인민대중제일주의!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의 승리와 전진을 담보해주는 힘의 원천이요.》

확신에 넘치신 그이의 음성이 이 아침의 장엄한 해돋이를 부르며 만리우주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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