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이 꽃다발을 받아주세요

주흥건

(제 2 회)

 

18시 10분. 자리에 앉으려던 류순은 지배인이 자기쪽을 가리키며 말을 거는 바람에 일시 그대로 서있었다.

《국산화실장동문 왜 거기 뒤구석에 앉았습니까?》

지배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까닭모를 웃음을 지었다.

《실장동무, 전착물시험이 실패한건 무엇때문이라고 보오? 지난 초하루날 동무가 이 자리에서 계획을 발표할 땐 전작물의 질을 담보한다고 하지 않았소?》

지배인은 한달전의 일을 고스란히 상기시키고있었다. 그러나 류순은 그날이 아니라 그 전날의 일을 먼저 되새겨보고있었다. …

 

《아이 아버지 오셨어요?》

실험실에서 살다싶이하며 집이란건 있는지없는지 통 무관심하던 딸이 오늘은 별스럽게 먼저 퇴근해들어와 살틀히 맞아주니 류만현은 흐뭇한 기분으로 방에 들어섰다. 옆에 착 달라붙어서 모자며 옷을 곱게 벗겨 옷걸이에 걸어놓는것도 흡족하거니와 저녁밥상은 또 어떤가.

《허, 이거 대단하구나.》

《이 딸을 전착물밖에 모르는 목석으로 아는게 아니예요? 호호.》

류만현은 그저 좋아 허허 웃는것같으면서도 내심 딸의 앙큼한 속내를 모르는바 아니였다.

《애로되는게 있으면 어서 말하렴. 내가 언제 우리 순이 하잔대로 안한게 있냐?》

류순은 얼른 사업수첩의 한갈피를 펼쳐 아버지앞에 내밀었다.

《래달계획을 세운건데 한번 봐주세요. 새 지배인동진 젊구 결패있는 일군이라는데 나도 인젠 통이 크게 계획해보자는거예요.》

딸의 어리광비슷한 말이 국산화연구실의 월계획에 대한 주해나 다름없음을 류만현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공장이 새로운 생산지표를 받은 다음부터 수입해쓰는 봉형전극을 자체로 생산해낼수 있는 기술적준비를 완성하였다고 씌여있었던것이다. 물론 자기봉과 전작물을 다 자체로 생산한다는것은 아직 시기상조지만 이미 전착물에 대한 연구가 완성단계에 있는것만큼 자기봉만 수입하면 거기에 전착물을 입혀 생산에 리용할수 있다는 안이였다.

언제부터 연구해오던 봉형전극을 이제는 현장에 도입하기 위한 사업에로 들어갔다는것을 알고있지만 그것이 곧 전착물의 성공을 의미하는것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반대하면 딸은 지배인을 찾아가서라도 기어코 결심대로 하고야말것이다. 그렇다면… 류만현은 속에 없는 웃음을 지으며 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동안 수고했구나. 난 찬성이다. 래일 지배인한테 제출하렴.》

《그런데 아버지, 자기봉을 꽤 수입해올수 있을가요? 아무 나라나 반제품은 수출금지라는데… 자기봉만 있으면 자금을 절반이나 줄일수 있어요.》

류만현은 딸의 말대로 자기봉만 수입한다는것이 간단치 않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다 알면서 그런 안을 제기할건 뭐냐?》

《아이 참, 아버지가 무역과장한테 말하면 혹시 될수도 있으니 그러지요.》

《그러니 자기봉만 사들여오자는거지? 그렇다면 전착물연구를 담보할수 있다는건데…》

《담보하잖구요. 나자신처럼!》

류순은 거듭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

 

《대답해보오. 그때 이 자리에서 담보한다고 한건 빈말이였소?》

지배인은 류순을 다그어댔다.

류순은 고개를 떨군채 말이 없었다. 자기의 과학적신념을 주장하고싶었지만 그럴수 없는 자신이 그지없이 민망스러웠다.

지배인은 구태여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앉으라고 손짓했다.

(담보? 나는 왜 한만디 대답도 못하는가?)

 

자리에 앉은 류순의 생각은 또다시 다음날로 이어져갔다.

 

…그날 류순이 지배인에게 월계획을 제출하고 돌아오니 강삼명이 실험실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어줍게 웃어보이며 한쪽구석에 놓여있는 어지간히 큰 시약병을 가리켰다.

《어제 부탁했던 불산입니다.》

《또 기사동무 신세를 졌군요.》

류순은 자기 일을 성심성의로 돕는 그를 좋은 소식으로 기쁘게 해주고싶었다.

《지배인동지가 전착물시험을 승인했어요. 월계획서를 보더니 봉형전극수입을 정식 중지해도 되겠는가고 따져묻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난 앞으론 자기봉만 사들여와도 된다고 대답했어요.》

류순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도 강삼명의 표정을 은근히 살폈다. 그의 얼굴에 한껏 기쁨이 어리는것을 보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 삼명은 한순간 지었던 웃음이나마 인차 거두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대답이 충분하지 못한것같습니다. 자기봉까지도 우리 힘으로 만들어 써야 할게 아닙니까. 한마디로 봉형전극을 통채로 국산화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류순에게 주는 충격은 컸다. 대답이 궁해진 류순은 공연히 시약병을 건드려놓으며 얼버무렸다.

《난 거기까진 생각못했군요. 정말 기사동무 말대로 수입이란 말을 결딴낼 날이 올가요?》

《그건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에서 깨여난 류순은 자기가 지금 함정철을 몹시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의식했다.

왜 늦어질가? 류순은 사업수첩갈피에서 다시 사진을 꺼냈다.

사진속의 함정철이 어글어글한 눈으로 자기를 올려다본다.

《순이, 날 믿지 못하겠어?》 하고 다짐을 받아내듯 묻는다.

《믿어요.》 하고 마음속으로 대답하려는 순간 사진속의 외국인녀성이 뛰여들었다. 《믿는다구?! 내 손바닥에서 놀아난다는 생각은 안들어?》 하고 야유하는것만 같다.

《그런데 기사장동무.》앞에서 지배인이 자못 심중해서 기사장에게 묻고있었다. 《그 함정철동문 전극직장 공정기사였다던데 어떻게 무역과장으로 일하게 되였습니까?》

《예, 공장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되였습니다.》

기사장의 말은 류순을 그날에로 이끌어갔다. …

 

박사원을 졸업하고 공장에 배치되여온 류순은 선참 함정철을 만나볼 생각이였다.

류순이 전극직장에 찾아갔을 때 정철은 몸이 체소한 청년과 생산현장을 오가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류순은 함정철과 반갑게 만났다. 인사에 이어 류순이 봉형전극에 대한 말을 꺼내자 정철의 얼굴에 야릇한 웃음이 스쳐지났다.

《참 안됐구만. 봉형전극의 국산화에 청춘의 목표를 두고 이제나저제나 오래동안 순이를 기다렸는데…》

《그럼 연구를 포기했어요?》

《아니, 공장의 조치요, 난 무역과장이 됐소. 봉형전극은 생산에 당장 필요한데 성공은 아직은 멀었거던. 그렇다고 성공할 때까지 기다릴수도 없고… 그래서 기사장동진 전극물계에 밝은 내가 외국의 전극생산기업에 뚫고들어가 봉형전극을 해결하라는거요.》

《그럼 연구는 어떻게 해요?》

《별수 없지. 우선 생산부터 해야 하니까. 그래서 내 생각은 대방회사와 교섭하는 기회에 그들의 기술도 손에 넣자는거요. 그러다 때가 되면 우리두 자체로 봉형전극을 개발하자는거요.》

《그럼 그때까지 봉형전극을 사다쓰자는거예요? 그럴순 없어요.》

류순이 고개를 가로젓는데 옆에 있던 청년이 합세했다.

《옳소. 그러니 함동지가 전극연구에서 손을 떼면 안됩니다.》

《허, 무슨 일인들 없겠나.》 정철은 그들이 애타하는 말에 전혀 상관없는듯 말을 이었다.

《난 이렇게 무역과장으로 되고 동문 또 내 자리에 들어서구.》

《그러니 동무가 전극직장 기사로…》

류순은 그 청년에게로 돌아섰다.

청년이 성근하게 인사를 했다.

《알게 되여 반갑습니다. 기사장동지에게서 이따금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사원공부를 하는 딸이 있다는…》

《오늘부턴 공장국산화연구실의 한 성원입니다.》

《그러니 국산화실에 갔소?》 함정철이 끼여들었다.

《기어코 봉형전극을 해보자는것같은데… 사실 하나의 결과를 낳는 요인이 하나만은 아니요. 마른 길로 가든 수렁판을 헤치든 목표에 가닿으면 되지. 우린 조만간에 견해일치를 보게 될거요.》

《물론이지요. 누가 누구의 견해에 공감되는가가 문제지.》

류순은 돌아서 가버렸다. 둘중 어느쪽에서도 결별을 선언한것은 아니지만 그날부터 그들의 사이는 전같지 않았다. 함정철은 그후에도 기사장네 집에 드나들었지만 류순에게는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류순이도 그에게 눈 한번 주지 않고 그의 견해를 눌러놓을 시각을 앞당기듯 연구사업에만 파묻혀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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