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1(2022)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소원

리명호 

제 5 회

2

 

사방이 온통 눈처럼 하얗다. 벽도 천정도 누워있는 침대바닥도…

방안에 차있는 소독수냄새가 코를 찌르는 바람에 수정은 엊그제 공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일을 상기했다.

두려움이 온몸을 엄습했다. 그것은 샘터를 찾는다고 산에 올랐다가 다래덩굴우에서 한밤을 보내야 했던 그때와는 다른것이였다. 자칫하다가는 나머지 생을 병원침대에서 보낼수도 있다는, 그래서 바라고바란 소원을 정녕 성취할수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던것이다.

손에 잡힐듯 눈앞가까이 다가왔던 희망의 무지개가 서서히 사라져가고있었다.

몸을 일으키며 침대모서리를 움켜잡으려는데 무엇인가 손에 잡혔다. 자그마한 나무함이였다. 속이 찌르르해났다.

그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어찌 모르랴. 수정은 그것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결혼초기의 일이 떠오른다. 그 나날 수정은 약수에 섞여있는 부유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방도를 모색하고있었다. 약수를 마실 때 쇠비린내가 나고 병밑굽에 앙금이 생기는것은 약수에 섞여있는 부유물질을 완전제거하지 못했기때문이였다. 수정은 신혼생활의 단 재미도 뒤로 미루고 공장실험실로 아예 잠자리를 옮기였다.

온몸을 짜릿이 흥분시키는 성공에 대한 예감

실패 또다시 실패

너무도 힘에 부쳐 지친 몸을 끌고 오래간만에 집으로 들어왔다. 방문을 열자바람으로 교수안을 작성하느라 책상을 마주하고있던 남편의 품에 쓰러져버렸다.

《정말 힘이 드는군요. 눈시울이 왜 이렇게 무겁기만 할가?》

그는 솔곳이 잠들어버렸다.

얼마쯤 잤을가. 가까스로 눈을 떠보니 모든것이 아슴푸레 안겨오는데 남편의 모습만은 망막을 가득 채우며 또렷이 안겨왔다.

남편이 소중히 안고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고있는 작은 나무함을 의식하는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돼, 나에겐 잠시도 주저앉을 권리가 없어. 그날까지는…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는 벽을 손으로 짚고 강잉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수정은 말없이 밖을 나섰다. 잃을세라 깨여질세라 대학으로 떠나오면서부터 이날껏 소중히 간수해온 나무함을 가슴에 고이 안은채

그러나 그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공장에 오셨던 그날 그 사연많은 바가지를 보여드릴수가 없었다.

그이께서 귀속말로 다정히 물어주시던, 멀리에서만 떠돌던 희망의 배가 마침내 소원의 기슭에 닻을 내리는 순간임을 예고해주던 그때조차도 그는 속을 터놓을수가 없었다.

아직은 질이 낮아 인민들의 호평을 받지 못하는 약수를 담아드리는것이 평생에 씻지 못할 죄악으로 여겨졌던것이다.

그날 저녁 남편이 찾아왔다. 문기척도 없이 방으로 들어와서는 불도 켜지 않고 어둠속에 앉아있는 안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볼뿐이였다.

《난… 자신을 원망할뿐이예요. 하지만 앞으론 꼭… 당신은 날 믿지요?》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슬며시 어깨를 감싸주는 그 넓은 가슴에서 울리는 심장의 박동은, 머리우에서 느껴지는 후더운 입김은 수정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주고있었다. …

그때처럼 배가의 힘을 더해주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마음쓰는 남편이 고맙다. 모름지기 그는 병원으로 급히 오는 창황중에도 이 나무함을 가져오는것을 잊지 않았을것이다.

(래일 당장 퇴원해야겠어. 이까짓 병이 다 뭐야!)

이때 문이 열리더니 위생복차림의 의사선생과 함께 남편이 들어섰다. 안해를 띄여본 그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확 피여난다.

《정신을 차렸구만. 고맙소.》

무엇이 고맙다는걸가. 내가 의식을 회복한것이? 아니면 다른 그 무엇때문에?… 그의 눈길은 저도모르게 가슴우에 놓인 나무함에 가닿았다.

《여보, 기뻐하오. 사람들이 그러는데 오늘 공장의 개건현대화정형을 록화촬영해서 당에 보고드린다오.》

《?!》

수정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공장개건현대화공사가 완성단계에 이른것은 사실이다. 여러가지 병에 의한 생산설비들도 훌륭히 갖추어지고 자동흐름식생산공정도 며칠전 시운전에서 성공했다. 그렇지만 경애하는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약수생산을 늘이기 위해 침전시간을 결정적으로 줄이기 위한 시험은 아직 진행중에 있지 않는가.

인민들이 좋아할 때까지! 그래서 그들의 웃음소리에 우리의 김정은동지께서 기뻐하실수 있게 약수의 질제고에서나 생산능력에서나 모든것이 완벽한 수준에 올라섰을 때 당에 보고드리려는것은 우리 공장로동계급의 량심이다.

제지시켜야 한다.

그는 저도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공장에 가야겠어요!》

며칠간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사정하다싶이하는 의사의 권고도, 억지다짐으로라도 눌러눕히려는 남편의 아귀센 손도 그를 막지 못했다. 손전화기를 꺼내든 그는 급히 운전사를 찾았다. 덤벼치며 공장으로 들어선 그는 벌써 생산현장의 여기저기에 촬영기의 렌즈를 들이대고있는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들하세요.》

그제서야 수정은 일행속에서 안성욱부부장을 알아보았다.

《부부장동지

그러나 그는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안성욱부부장의 저력있는 어조가 그의 다음말을 삼켜버렸던것이다.

《지배인동무, 이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뜻이요!》

《예?!…》

수정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그는 돌미륵처럼 한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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