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정성

김류정

제 1 회

 

의사협의회가 두시간을 넘기도록 끝을 맺지 못하기는 처음이였다. 그것은 이제 방금 스무살을 맞이한 처녀의 손목을 자르는가 마는가 하는 심중한 문제를 마주한때문이였다.

의사라면 그것도 정형외과의 의사라면 심각해지지 않을수 없는 문제였다.

이따금 나이가 많은 장선생님이 기침을 쿨럭거리는 소리를 내놓고는 전자벽시계의 초침소리만이 잘칵거릴뿐 짙은 안개와도 같은 침묵이 사람들사이를 서서히 배회하고있었다. 나는 정신적압박감을 밀어던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거운 침묵을 와락와락 휘저어 싹 걷어내고싶었다. 허나 대학때부터 연구를 해온 《약물에 의한 골수염 및 골절상 치료방법》이라는 나의 연구론문이 충분한 림상치료경험과 모든 의사들을 리해시킬만한 과학적타당성의 부족때문에 입술을 깨물며 침묵에 순응하고있는 처지였다.

(참자. 나야 아직 햇내기신입생이 아닌가. 그것도 처녀라는게…)

물론 나는 자신의 론문에 확신을 가지고있었다. 대학의 스승들중에도 내 론문의 지지자들은 한둘이 아니였다.

나의 론문지도교원이였던 강좌장선생님은 론문의 앞페지에 《수술이 불가피한 골수염과 골절치료에서 약물의 합리적인 리용은 정형외과학령역에서 혁신을 가져올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있다.》라는 글을 남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 도종합병원이라는 현실속에 내려와보니 나의 론문은 가치를 잃어가고있는듯싶었다.

마치 나의 론문은 교육과 연구를 바탕으로 하지 환자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라는 직업에는 어울리지 않는것처럼 취급당하는것같아 지금 이 순간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졸이면서도 선뜻 일어나 자기 주장을 내두를수가 없는것이였다.

걸상의 삐걱소리에 눈길을 쳐드니 부과장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과의 부과장, 병원적으로도 그 실력을 공인하고있는 40대에 일찌기 자기의 권위를 이룬 유능한 외과의사였다.

《과장선생님, 우리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는 사이에도 환자의 팔에서는 염증이 계속되고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손목이 아니라 팔굽까지 잘라내야 할판입니다.》

나는 심장이 떨려났다.

인체의 한 부위를 자른다는 말을 얼마나 스스럼없이 하고있는가. 그래서 외과의사는 남자들의 일처럼 되고있는것이겠지, 남자들은 심장이 크고 강하니까.

나는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였을 때 선생님들이 조언을 준대로 내과나 신경과계통으로 나아갈걸 잘못하지 않았을가 하는 후회비슷한 감정이 솟구치게 하는 그런 순간이였다.

《나도 알고있습니다. 허나 심중해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환자가 이제 스무살인 처녀고 더구나 무대우에서 기타를 타던 예술인이여서인지 선뜻 손을 잘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년장자이면서도 언제나 어떤 다급한 순간에조차 과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높임말로 이야기하군 하는 권철웅과장선생님의 말에 나의 마음은 더더욱 다급해지였다.

그랬다. 지금 우리 과의사들이 마주한 환자는 도예술단 기타수처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에 온지 얼마 안되였기에 나는 그 처녀가 기타를 타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재치있는 기타연주로 관중의 이목을 끌었던 처녀라는것을 외우며 그래서 더욱 아쉬워하고있었다. 더우기 큰물피해복구를 위한 살림집건설장들에 쉴새없이 이동공연을 나가 건설장을 떠나지 않고 자기의 본분을 다해온 처녀라는것이였다. 그런 그에게 손은 심장이고 삶의 전부와도 같다고 할수 있었다.

나도 어릴 때 손풍금을 배웠었다.

그때 소조선생님은 《손건사를 잘하세요. 연주가에게서 손은 생명입니다.》 하고 마치 우리들이 모두 세계적인 손풍금연주가라도 되는듯 품위있게 당부하군 하였다.

어찌 연주가에게만 필요한 손이겠는가.

세상에 손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병원사람들이 일명 《날카로운 수술칼》이라고 부르는 부과장은 서슴없이 《자르자》고 하는것이다. 물론 같은 의사로서 현재 환자의 상태가 상태이니만치 공감이 영 안가는것은 아니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떻게?!

장선생님이 기침을 쿨럭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니 과장선생님은 어떻게 하자는것입니까? 현재 환자의 상태를 봐선 자르는게 옳은 일인데 인정에 못이겨 주춤거리다가는 의수가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에 붙게 됩니다. 기왕이면 손목에 하는게 낫지요.》

우리 과에서 과장선생님과 함께 나이가 제일 많은 장선생님은 올해 12월이면 년로보장으로 들어가는 의사였다. 년말이 다가왔은즉 이제는 영예로운 은퇴에 마음이 써지지 않을수가 없을것이였다.

《아니요.》

과장선생님은 단호히 머리를 저었다.

《우리 과를 보고 사람들은 흔히 〈자르고 붙이는 과〉라고 하지만 과연 자르는 일이 그렇게 말처럼 쉽습니까? 자기 딸이라고 생각을 해보시오. 자기 누이동생이라고 여겨보십시오. 물론 그렇다 해도 잘라야 한다면 잘라야지. 하지만 제발 그 결심만은 그렇게 서둘러 내리지 맙시다. 가능한 최대로 노력을 해본 다음에 결정을 합시다.》

《과장선생님은 내가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그저 쉽게 결론한다는겁니까? 외과의사생활 40년동안 셀수 없을정도로 사람들의 신체에 칼을 댔지만 아직도 길을 가다가 피뜩 얼굴만 보면 이름은 혹 삭갈려도 언제 어느때 어떤 상처로 어떻게 수술했는가 하는것을 환히 기억하고있는 납니다.》

장선생님의 말에는 노여움이 비껴있었다.

의사생활 40년이면 정말이지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냈을것이다.

그런데도 그 환자들의 치료정형에 대해 환히 기억을 하고있다면 결코 가볍게 수술칼을 들지 않았음을 여실히 알수 있었다.

《내 말이 노여웠다면 량해하시오. 물론 여기 앉아있는 의사들중에 장난삼아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한명도 없을겁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앞에 심중치 못한 인간이 어떻게 의사가 되였겠습니까. 그러니 나는 좀더 심중하자는것입니다.

내가 보건대 환자의 상태가 영 생소하지는 않습니다. 저 처녀와 비슷한 환자를 치료해본 경험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손목을 자르지 않고 치료를 했단 말입니까?》

부과장선생님이 놀라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과장선생님은 심중한 안색으로 보일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이제는 썩 오래전 이야기지만 해본적이 있습니다. 한 16년전에.》

말을 가무리는 권철웅과장을 바라보는 나의 이마로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내돋쳤다. 16년전에 그렇다면

《16년전 이야기라면 어느한 군관을 두고 하시는 말씀같은데 골반뼈를 상하여 거기에 골수염이 왔던 환자 말이지요?》

장선생님이 묻는 말이였다. 역시 과의 로장이 달랐다.

《그렇습니다. 그때도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의견이 없은것은 아니였지만 한다리를 통채로 자른다는것이 너무 가슴이 섬찍하여 과장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의사들이 반대를 했지요. 그리고는 뼈이식수술로 환자의 다리를 완치시켰습니다.》

의사들중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다. 아마 그들은 과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다나니 그 사실을 처음 듣는 모양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다리가 아니였습니까. 그것도 뼈조직이 든든하고 또 골수량도 비교적 많은 골반이였지요. 게다가 서른중엽의 튼튼한 남자였지만 이번은 사람의 신체에 있는 뼈중 강도가 제일 약한 손목이고 골수량도 작은 곳이여서 예민한 부위지요. 그리고 한마디 더 한다면 수술후에 자기 골수를 이식해준 의사는 지금도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면

《됐습니다. 장선생, 됐습니다.》

과장선생님이 손까지 쳐들면서 장선생님의 말을 밀막았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하는지 알고있었다.

《물론 이번은 좀더 예민한 부위지요 하지만 16년이란 세월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그 어간에 우리 병원이 얼마나 변모됐습니까? 진단기재를 비롯해서 그때는 생각도 못했던 발전을 이룩했지요. 게다가 이번 환자는 처녀입니다.

녀자는 남자보다 조골세포의 기능이 높고 나이도 갓 스물이여서 뼈의 활성화도 강할겁니다.

그러니 영 불가능하지는 않다는것입니다.》

과장선생님은 앞에 놓여있던 환자의 병력서를 덮으며 결론조로 말했다.

《좌우간 이틀만 더 지켜봅시다. 그 48시간동안 우리는 처녀의 손목을 자르지 않고도 치료를 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봅시다.

모든 선생님들이 자기 맡은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차영순환자의 치료사업에 관심을 모아주시오.》

그리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더 이야기할것이 있으면 하시오. 제기되는 문제라든가 혹 떠오르는 생각이 있거들랑 어서 말하시오.》

모두 침묵을 지켰다. 그도 그럴것이 뼈이식수술에 의한 골수염치료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이 서지 않았던것이였다.

과장선생님은 협의회를 끝마칠양으로 환자의 병력서를 문건철에 끼우며 책상우를 정리했다.

그리고나서 《그럼 돌아들 갑시다.》라는 말을 하려고 눈길을 들었을 때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정말이지 나도 그렇게 일어나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싶은 자세였다.

입을 열려던 과장선생님은 물론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하던 의사들도 의아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오? 은미선생.》 과장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반들거리는 책상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한가지 물어볼것이 있어서.》

《그렇소?》

과장선생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피여났다. 언제나 나를 딸처럼 대해주는 과장선생님이였다.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박사원까지 다녀 대학에 떨어질수 있는데도 고향이 있는 도종합병원으로 내려왔다며 몹시도 귀애해주는 과장선생님이였다.

이따금 시병원에서 혈관심장외과의사를 하는 아들이야기를 넌지시 비치며 롱삼아 《며느리가 되지 않겠는가?》고 묻군하여 나의 얼굴이 익어가는 복숭아가 되게 해주군 했다. 나도 직속상급이라기보다는 아버지처럼 생각되여 기대고싶은 마음이 컸었다.

《무슨 말이요? 어서 말을 해야 알지.》

나는 자신을 다잡고 쾅당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 만약 뼈이식방법으로 환자의 손목을 치료한다면 물론 처녀는 손을 보존하겠지만 다시 기타를 그러니까 다시 기타를 들고 연주활동을 할수 있겠는가 하는겁니다.》

순간 나를 지켜보던 의사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그중에는 우스워서 벙긋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도 없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들의 심중을 리해할수 있었다. 손목을 자르는가 마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앞에서 셈평좋게 기타소리를 했으니 철이 없다는 말도 들을수 있는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꼭 묻고싶었다.

리유는 나자신이 잘 알고있으면서도 선뜻 누구에게 말할수 없는 그런것이였다.

《글쎄 수술의 결과를 놓고봐야 정확히 알수 있겠지만 뼈마디 붙음정도와 인대조직의 회복능력에 달려있겠지. 기본은 인대조직의 회복능력이요.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섬세하고 날렵하게 선을 짚어야 하는 기타수의 왼손으로서는 100%담보를 할수가 없구만.》

나의 가슴속에는 실망이 연기 쓸어들듯 했다. 결국은 뼈이식에 의한 수술도 정상회복은 100%담보를 할수 없는 치료였던것이다.

《은미선생, 지금 환자의 신체를 보존하는가 마는가 하는 문제도 확고히 매듭짓지 못했는데 기타연주문제는 너무 거리가 먼 소리가 아닐가?》

부과장선생님의 말에는 날이 서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입술을 깨물며 서있는 나를 자세히 바라보던 과장선생님이 너그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정상회복을 중시하는 은미선생의 자세는 의사로서 모두 존중해주고 따라배워야 합니다. 은미선생, 물론 연주가로서의 앞날은 확고히 장담할수 없지만 녀성으로서의 삶은 담보할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인채 자리에 앉았다.

눈앞이 갑자기 흐려졌다.

과장선생님의 방에 걸려있는 《정성》이라는 글발이 눈가에 가득차오른 눈물로 하여 얼른거렸다. 그 글발은 우리 과가 지나온 날들을 영예로 장식해주고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이룩한 공로를 말없이 보여주며 그들처럼 살라고 떠밀어주는 고귀한 정신적재부와도 같은것이였다. 그러나 뿌옇게 흐려진 나의 눈앞에는 《정성》이라는 글발이 아니라 가랑비속에 우산을 든채 한쪽다리를 조금씩 절며 대학에서 방학오는 나를 마중하여오던 아버지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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