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나의 교수안 

최 영 훈

(제 2 회)

2

 

다음날 아침 우리 학급은 제정된 장소에 전원이 모였다.

놀라운것은 이런 모임때면 골숨한 점심밥곽이 들어있는 가방을 슬그머니 뒤에 감춰들고 구석에서 비실거리던 재혁이가 뜻밖에도 불룩한 배낭을 둘러메고 제일먼저 도착한것이였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

나의 시까스르는 말에 재혁이의 두눈이 대뜸 꼬부장해졌다.

《학급장, 너무 젠체하지 말라. 물이 맑다구 못안에서 잉어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단 말이야.》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제법 유식한 말을 섞어가며 이죽거리는 모양이 어처구니없어 나는 쓴웃음을 짓고말았다. 그 말에 뭐라고 반박하려던 나는 곁에서 녀동무들이 쑤군거리는 소리에 펀뜻 정신이 들었다.

《구봉산까지는 20리가 넘는다는데 어떻게 가려나?》

《설마 걸어서 가지야 않겠지 뭐.》

그 말을 듣느라니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다른 동무들이 돌아간 뒤에 나를 조용히 따로 불렀다.

《래일 구봉산까지 가야 할텐데 학급장동문 어떻게 가면 좋겠습니까?》

《선생님, 뻐스를 타고갑시다.》

더 생각할게 있냐는듯 나는 제꺽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는 군인민위원회의 일군이였다.

학급에서 이런 일이 제기되면 의례히 내가 맡아하는것으로 모두가 생각하고있지만 새로 오신 선생님은 아마 그것을 모를수도 있을것이다.

《물론 나도 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래일은 모든 학교들에서 나무심기에 동원되므로 뻐스가 긴장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봄철영농준비로 모두가 바쁜 때인데 학생들이라고 해서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수는 없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의도가 리해되지 않아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렇게 합시다. 학급장동문 래일 인원관리를 책임지고 선생님은 대렬인솔을 책임진다. 구봉산까지 어떻게 가는가 하는것은 래일 아침 모두가 모였을 때 알려주겠습니다.》

어제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되새길수록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설마 그 먼데까지 걸어서 가지야 않겠지. 더우기 학급의 절반인원이 녀동무들인데 연약한 그들을 데리고 걸어가느라면 나무심기는커녕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물자루가 될것이였다.

드디여 선생님이 도착하였다.

동무들은 엄지닭주위에 오구구 모인 병아리들처럼 둘러서서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선생님, 빨리 떠납시다.》

《그런데 우린 뭘 타고갑니까?》

어떤 애는 뻐스가 오지 않나 해서 목을 쑥 빼들고 길가를 바라보기도 했다.

《동무들, 우리 행군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예?!》

모두의 눈이 사발만큼이나 커졌다.

《행군이 헐치 않지만 해볼만한것입니다. 그 행군에서 우선 자기가 얼마나 강한가를 알게 되며 다음으로 남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게 됩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동무들을 도와주는 과정에 서로 돕고 이끄는 우정을 더욱 느낄수 있습니다. 동지애와 집단력이 생기는 이런 행군을 중학시절 몇번이나 해보겠습니까? 어떻소, 학급장동무?》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얼굴이 벌개졌다.

《저… 그렇게 먼데까지 행군해보기는 처음이여서 혼자라면 몰라도 이렇게 많은 동무들이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기회를 노리던 재혁이가 놓치지 않고 시까슬렀다.

《체, 힘들면 힘들다고 할게지.》

나는 약이 올라 발끈해서 소리쳤다.

《큰소리는 젠장, 난 녀동무들때문에 그런단 말이야.》

그 말에 녀학생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우린 왜 걸고든담.》

《녀자라고 깔보지 말아요.》

이런걸 두고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라 해야 할지.

방금전까지만 해도 걸어갈 일을 걱정하던 녀학생들이 언제 그랬던가싶게 시치미를 떼다나니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녀대원들은 밥도 짓고 행군도 하고 또 남자들 못지 않게 싸움도 잘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을 든든히 먹고 행군길을 떠나봅시다.》

그리고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학습장크기의 천들을 나누어주었다.

천들마다에는 힘있는 구호들이 씌여져있었다. 아마 선생님의 필체인듯싶었는데 글씨가 시원시원하고 힘있는것이 대뜸 마음에 들었다.

《자, 행군대렬을 짓겠습니다. 앞에는 녀동무들이 서고 뒤에는 남동무들이 서겠습니다. 자― 나란히! 출발―》

드디여 대오는 기세도 드높이 구봉산을 향하여 첫걸음을 떼였다.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모두가 부르는 노래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저마다 손을 저어주었다.

《저애들이 글쎄 그 먼데까지 걸어간다지 않아요.》

《이젠 다 컸수다. 얼마나 대견한가 보오.》

사람들의 말소리가 귀전에 들려오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고 산길에 들어서자 행군속도가 떠지는것이 눈에 띄게 알렸다.

어떤 녀동무는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선생님은 힘이 센 남학생들로 힘들어하는 녀동무들을 부축하게 하였다.

그런데 재혁이만은 녀동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배부른 배낭을 짊어진채 저 혼자 씽씽 잘만 걸어갔다.

흥, 오늘따라 불룩한 배낭을 메고 꼴보기 싫게 노는데.

참다못해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소리쳤다.

《네 눈엔 힘들어하는 녀동무들이 안보이니?》

《보여두 아주 잘 보인다. 그런데 어쨌다는거야?》

《뭐야?》

나는 저도 모르게 머리우로 주먹이 올라갔다.

재혁이도 해볼테면 해보자는듯 뱁새눈을 가로 뜨고 만만치 않게 나를 노려보았다.

《에익― 내가 참는다.》

나는 홱 돌아서고말았다.

선생님에게로 달려간 나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속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난 저런 애와는 한대오에서 행군하지 못하겠습니다.》

나와 재혁이의 행동을 지켜보고있었는지 선생님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학급장동문 학급의 핵심이고 초급일군인데 그렇게 편견에 사로잡혀서야 안되지. 다른 동무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이켜볼줄도 알아야 해.》

나는 선생님이 어째서 재혁이를 두둔하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가정사정이 어렵다는 그것이 재혁이를 동정하게 했는지 아니면 선생님과 그애가 어떤 남다른 관계가 아닌지.

어느덧 눈앞에 구봉산이 바라보였다.

《동무들―》

어느새 우리를 알아본 교장선생님이 두팔을 벌리고 마주 달려오고있었다.

《만세!》

방금전까지만 해도 쓰러질듯 비칠거리던 애들같지 않게 와― 환성을 올리며 앞으로 내달렸다.

아직 초봄이라 산골날씨는 쌀쌀했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애들이 감기라도 들가봐서인지 선생님은 주변에서 마른 나무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얼마후 세개의 우등불이 기세좋게 타올랐다.

《자, 어서들 불무지에 빙 둘러서시오.》

선생님은 되는대로 벗어제낀 옷깃들을 차근차근 바로잡아주며 매 동무들을 우등불가까이에 앉혀주었다.

어찌 보면 그 모습은 교원이라기보다 친부모같았다. 거기에다 따끈따끈한 물을 마시고 땀에 젖은 몸과 옷까지 말리우고나니 금시 새힘이 솟구치는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 기세로 나무구뎅이파기작업에로 돌입하였다.

선생님은 학급을 세개의 작업조로 나누고 구뎅이 팔 자리를 정해주었는데 그옆에서는 재혁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배낭에서 도끼와 톱 같은 공구들을 꺼내서 섬겨주고있었다.

공구들을 다 꺼낸 재혁이가 빈 배낭을 툭툭 털며 뻐기듯이 나를 힐끗 바라보자 나는 그만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고말았다.

결국 재혁이가 메고온 그 배낭속엔 요란한 점심밥이나 간식이 아니라 작업공구들이 들어있었던것이다.

난 그런것도 모르고…

《재혁동문 학급장동무네 작업조에서 일하시오.》

《예?!》

선생님의 말씀에 재혁이뿐 아니라 나까지도 놀랐다.

재혁이한테 미안한 감정이 없는건 아니였지만 그동안 옹친 감정이 순간에 풀어진것은 아니였기때문이였다. 선생님은 더 말할것도 없다는듯 손을 홱 저어보이고나서 다른 작업조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재혁이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말없이 구뎅이를 파기만 했다.

깊어지는 구뎅이를 경계로 나는 재혁이와 마주서서 누구의 뚝심이 더 센가 내기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땅을 들이팠다.

그러던 나는 《아―》 하고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손에 쥔 곡괭이를 놓치고말았다.

땅속에 묻혀있는 큼직한 돌에 곡괭이날이 부딪쳤던것이다. 물집이 터진 손바닥에서는 피가 내배고있었다.

얼결에 내쪽을 바라본 재혁이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자, 이걸루 닦아.》

눈같이 하얀 수건에 차마 어지러운 손을 대기가 멋했다. 방금전까지 개와 고양이처럼 아웅다웅하던 애한테서 동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자존심도 살아났다.

《괜한 고집 쓰지 말구 받으라니까. 구뎅이를 하나만 파구 그만둘래?》

나는 옹졸한 모습을 보이는것같아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손수건이 순간에 어지러워졌다.

《이거 미안하구나.》

나의 말에 재혁이는 아무렇지 않은듯 씩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까짓 빨면 그만이야.》

그러고보니 재혁이는 내가 생각했던것처럼 속이 좁은 아이가 아니였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부터 돌이켜보라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전에 내가 너한테 너무했던것같애.》

나의 말에 재혁이는 떠보는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모습에서 진심어린 마음을 보았는지 재혁이의 얼굴빛도 부드러워졌다.

《사실이야 내가 심술꾸러기지 뭐. 아까두 공구배낭을 메고 온다고 말하면 될걸 괜히 우둘렁거린거야. 왜 그런지 너만 보면 싸움닭처럼 계속 붙어보고싶거던.》

그 말에 우리는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인가 하여 이쪽을 바라보던 다른 동무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웃음을 짓는 우리를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속에는 선생님의 모습도 보였다.

《헌데 이놈을 어떡한다?》

내 말에 재혁이는 삽으로 구뎅이안을 이리저리 헤집어보더니 고개를 기웃거렸다.

《꽤 큰 놈인데.》

한참이나 역사질을 했지만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자리를 옮길가?》

재혁이의 말에 나는 대뜸 탄성을 올렸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맞아, 그러다가 우리 작업조가 꼴찌하겠어.》

우리는 위치를 좀 옮겨 새 구뎅이를 파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가온 선생님이 우리를 찾았다.

《위치를 바꾸면 옆의 구뎅이와 간격이 좁아져. 그러면 어떻게 되지?》

우리는 뭔가 일이 잘못되였다는 생각에 선뜻 대답을 할수 없었다.

《몇년후에 가서는 아지들이 서로 엉켜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던. 그러니 힘들어도 이 돌을 들어내야 돼.》

선생님은 웃옷을 벗고 구뎅이안에 성큼 들어섰다.

《그리고 나무란 일단 심어놓으면 다야. 제 마음대로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고 자세도 바로하지 못하고 심은 그대로 크게 돼. 꼭같이 자란 나무가 기둥감도 못되고 땔감이나 된다면 죄악이 아닐가. 우린 꼭 한대한대의 나무들을 바로 심어주어야 해. 사람도 같지. 인생의 첫걸음을 바로 시작하지 못한다면 한생을 곧바로 걸어갈수 없거던.》

선생님의 옆에서 삽질을 하며 우리는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물론 나무 한그루를 심는게 큰일은 아니야. 하지만 그 한그루한그루의 나무마다에 애국의 마음과 성실한 땀을 묻을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되거던.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중요한거야.》

우리는 끝내 돌뿌리를 들어내고야말았다.

《어때, 돌을 들어내니 구뎅이는 다 파진셈이 아닌가. 이젠 나무모를 가져다가 척 심기만 하면 되겠군.》

선생님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바질거렸다.

《선생님덕분에 우리가 나무심기를 제일먼저 끝낼것같습니다.》

사기가 오른 동무들이 들썩이며 나무모를 가지러 간다, 구뎅이모양을 다듬는다 하면서 법석이였다.

대견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웃옷을 손에 들고 조용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기심으로 슬그머니 따라가보니 나무에 기대앉은 선생님이 쑤셔나는 허리를 주무르다가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여 입에 넣는것이였다.

나는 선생님의 허리에 난 험상궂은 상처자욱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오래전에 생긴 상처자국이 아니였다.

(그 몸으로 힘든 일을 하시다니…)

나는 목이 메여 고개를 푹 수그리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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