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무  쇠  철  갑

 

오  운  서               

 

림기택은 자기 방의 이불장우에 있는 트렁크를 내리웠다. 눈에 익은 사품들이 애틋하게 눈길을 끈다.

훈장과 메달들, 자동차운전사면허증이며 땅크병사진, 당학교졸업증

이 자그마한 트렁크에 70대 중반기를 넘긴 그의 한생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셈이다.

어제 가두당세포비서가 찾아왔다.

시에서 전승절을 맞으며 전쟁참가자들을 위한 연회를 마련했는데 전쟁때 받은 훈장, 메달들을 꼭 달고 참가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기택은 퍼그나 색이 바랜 군공메달을 집어들었다. 그러자 어쩔수없이 불길천리를 달리던 처녀자동차운전사시절이 떠올랐다.

…야간운행이였다. 입을 옹다문 기택은 전조등이 밝혀주는 앞길을 주시하며 조향륜을 조절했다.

기택의 자동차불빛을 발견한 적기가 꼬리를 물었다. 앵-하는 적기의 동음이 들리는 순간 기택은 전조등을 끄고 급히 후진했다. 전조등을 끈 그 자리에서 번개가 일고 벼락치는듯 한 폭움이 울려왔다. 폭탄을 던진 적기가 별이 오롱조롱한 하늘로 상승하는 꼴이 반디불처럼 바라보인다.

마음이 흐뭇했다.

《이 멍텅구리야. 처녀운전사솜씨가 어때? 깜빡 속았지?》

오래동안 기쁨에 취해있을새가 없었다. 날밝기전에 전투물자를 전선부대에 날라가야 한다는 명령이 되새겨졌다.

가로수, 폭탄웅뎅이들이 련이어 흘러갔다.

얼마쯤 달리느라니 또 한놈이 꼬리에 달렸다.

《엥이, 되겐 지분거리는군.》

언짢은 기분을 꾹 누르고 또 계책을 굴리였다.

이번에는 전조등을 깜빡깜빡하며 달리다가 끄고서 전속을 놓았다. 자동차 뒤쪽에서 또다시 굉음이 터졌다. 바로 그때 기택이도 드센 충격을 받았다.

숨이 꺽 막혔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차체가 기울고 발동이 죽었는데 찬바람이 휩쓸고있었다. 목대가 띠끔거렸다.

자동차가 그만 길에 패운 폭탄구뎅이에 들이박혔던것이다. 차창이 모두 깨여지고 식칼모양의 유리파편이 울대뼈부근에 박혀있었다. 조향륜에 짓쪼은 가슴도 얼얼했다.

유리파편을 뽑아내고 면내의를 찢어 대강 동이고…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차를 빼내여 목적지에 도착했던지…

이 군공메달이 그때 받은 첫 국가표창이였다.

기택의 손에 사진이 잡혀졌다.

포신을 하늘높이 쳐든 위엄있는 땅크앞에서 처녀승조원들이 즐겁게 담소하며 포탄을 정비하고있는 모습이였다.

실탄사격을 가려고 포탄을 닦댔는데 어느새 기자가 나타나 찍은 모양이였다. 그 사진이 52년도엔가 어느 신문에 났었다.

그때는 참 좋았다. 보느니 즐거움이요. 터뜨리느니 웃음이였다.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번쩍이는 까만 장화, 잘룩한 허리에 윤기도는 권총갑을 차고 거리에 나가면 모두가 《녀성땅크병들이다.》하고 가던 걸음을 멈추군 했다. 그럴 때면 앞을 꼿꼿이 보면서 어깨가 으쓱하여 팔을 젓군 했다. 저도 모르게 땅크병이 되던 그 시절이 생생히 떠올랐다.

 

×

 

…해빛이 비쳐들었는지 눈을 감고있는데도 망막이 불그레 물들고 덮고있는 포단이 따스해졌다.

아직 붕대를 풀지는 못했지만 유리파편이 박혔던 목부위의 상처는 아픔이 없어 기분이 좋았다.

아늑한 기분에 잠겨 까딱않고 누워있는데 반토굴의 나들문이 열렸는지 시원한 공기가 얼굴을 쓸어주었다. 살며시 눈을 뜨니 간호원 리분옥의 해사한 얼굴이 안겨들었다.

《기택동무, 좀 어때요? 아프지 않아요?》

부드러운 음성과 언제나 웃음이 남실거리는 얼굴이여서 누구나 좋아하는 간호원이였다.

기택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보였다.

《처치하자요.》

분옥이는 목에 감겼던 붕대를 풀어헤쳤다.

핀세트로 고약을 붙였던 가제천을 조심스럽게 떼내고는 《야! 새살이 돋아나네!》하고 환성을 올린다. 소독솜으로 상처부위를 꼼꼬히 닦아내는데 뾰족한 핀세트는 상처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부드러운 비단천이 살살 어루쓰는것만 같았다.

해방전 열세살부터 평양의 어느 크지 않은 인쇄소에서 잡부노릇을 했다는 분옥이였다. 그래서인지 눈썰미가 빠르고 동작이 날랬다. 해방후 장군님의 은덕으로 공부를 하고는 그 인쇄소에서 조판공으로 일했다고 한다. 입대전까지 인쇄소의 작업반장으로 새조국 건설에 필요한 중요한 인쇄물을 수많이 찍어냈단다. 하루에도 수천자씩 핀세트로 글자와 공목을 집어내다보니 핀세트가 이제는 손가락보다도 더 편리해졌단다.

처치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하면 그는 방그레 웃으며 말하군 했다.

《핀세트를 가지고 늘 일하다나니 그런거지요 뭐…》하고…

(열세살?)하고 기택이는 생각해보았다.

그러니 분옥이는 자기보다도 두살이나 더 어린 나이에 고역장에 나선것이다.

기택이는 열다섯살에 서울에 있는 방직공장에 팔려갔다. 그때 빚때문에 집까지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나 떠살이군이 된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은 일곱이나 되는 식구를 먹여살리지 못해 언제한번 해뜨는 날이 없었다.

방직공을 모집하러 온 양복쟁이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서 글을 배운다, 합숙에서는 든든히 먹여주고 뜨뜻하게 재워준다, 기술도 배울수 있고 몇해 잘만 하면 한살림 차릴 밑천이 생긴다는 장광설을 그대로 믿는바는 아니였지만 선불금으로 주는 몇푼의 돈에 목이 걸렸던것이다.

방직공장에 들어가고보니 양복쟁이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일은 고되였고 로임은 보잘것 없었으며 합숙은 말이 아니였다. 강보리밥에 멀건 소금국이 고작이였다.

겨울에는 성에가 허옇게 불린 호실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더우기는 감독들의 언행이 눈꼴사나왔다. 쩍하면 발길질이고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벌금을 받아냈다. 감옥 한가지였다.

거기서 기택은 전쟁이 터질 때까지 일했다. 서울이 해방되였을 때 사람을 못살게만 구는 못된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용군에 입대했다.

처음 맞다든 병종은 간호원이였다. 후에 자동차운전사가 되였는데 자동차운전사에게 제일 밉살스러운것이 미제놈의 비행기였다. 항상 피해다녀야 하는것이다.

《난 내 손으로 원쑤놈들을 족치는것이 소원이야!》

기택이가 권투선수처럼 부르쥔 주먹으로 내지르는 시늉을 하자 분옥이는 웃었다.

《기택동문 이름도 그래 성격도 그래 여불없는 사내야!》

기택이가 긍정했다.

《그렇지? 하긴 난 어머니배속에서는 사내였다오.》

《사내였다구?》

그때 군의가 분옥이를 찾지 않았더라면 이야기는 무척 길어졌을것이다. 어쨌든 그때부터 들은 걸어온 운명의 공통성으로 하여 친구가 되였다.

분옥이의 핀세트는 확실히 날랬다.

어느새 새 고약을 붙이고는 반창고를 살짝 붙인다.

《야, 제발 상처자리가 없이 아물어야겠는데…목에 상처자리가 생기면 후날 처녀로서는 커다란 실점을 얻게 되지 않을가요?》

기택은 속으로 웃었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목숨도 서슴없이 내대는 전쟁판에 상처자리라는게 대체 뭔가. 이런 상처자리가 한두개쯤 있는거야 전선병사로서의 갖춤새가 아닐가?

거울로 붕대가 없어진 목부위를 흐뭇하게 들여다보는데 분옥이가 옆에 앉으며 속삭였다.

《기택동무상처를 이젠 보아주지 못할것 같애. 난 다른 구분대루 가려구 해요.》

《어디루?》

《녀성땅크승조원!》

꼭꼭 씹어말하는 그의 어조엔 어쩔수 없는 긍지감이 엿보였다.

기택은 벌떡 일어났다.

녀성땅크승조원!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기택은 길지 않은 생을 천대와 멸시만을 받아왔다. 자기만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역시 그랬다.

땅크병, 이는 피해다니는 병종이 아니라 때리는 병종이다. 원쑤들을 속시원히 짓뭉갤수 있는것이다.

흥분에 떠는 기택에게 분옥은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에 따라 녀성땅크승조가 조직되는데 여기 군의소의 구대원들이 뽑힌다는것, 자기는 체격이 작다고 대렬참모가 머리를 흔드는데 오늘 가서 결판을 본다는것이다.

기택은 그길로 분옥이와 함께 대렬참모를 찾아갔다. 방에 들어서니 경례를 붙이기도 전에 대렬참모가 반색을 한다.

《아 처녀자동차운전사, 상처는 좀 어떤가?》

대렬참모도 기택이의 부상경위에 대해 알고있는 모양이였다. 하지만 기택이에게는 그의 안부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참모동지, 땅크를 타게 해주십시오. 전 땅크를 얼마든지 몰수 있습니다.》

열에 뜬 소리에 대렬참모가 빙그레 웃는데 또 다른 간호원 하나가 들어섰다. 대렬참모는 얼른 웃음을 거두었다.

《동문 왜 또 왔소? 대장부도 헐헐하는 무쇠덩이여서 동무넨 안된다고 하지 않나. 된장맛을 좀더 보구 오시오.》

간호원들은 순순히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좀더 먹는 사이면 전쟁이 끝나게요?》

《전쟁이 끝난다구 군대가 없어진다오?》

대렬참모가 빈정거리자 두 간호원이 겨끔내기로 들이댔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하신 교시를 참모동지가 전달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조선녀성들은 슬기롭고 강의하며 이악하기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땅크가 아니라 그 어떤 기재도 다를수 있다고 하시였다고…》

《참모동진 어느 부댑니까. 우리 부대 군인들속에서 영웅두 나오구 녀성땅크병두 나와야지 다른 부대에 가서 데려오겠다는겁니까?》

다기찬 집중사격에 대렬참모는 손을 저었다.

《좋소좋소. 그럼 시험을 치기요. 땅크축전지가 50kg이나 되는데 그걸 땅크꼭대기까지 휭휭 올려놓아야 돼. 그리구 200kg이나 되는 디젤유통도 척척 굴려다 연유탕크에 채워넣어야 하구. 알기나 해?》

그래두 두 처녀는 손벽을 마주쳤다. 반승낙은 받아놓았다는 만족감의 표시였다. 물론 며칠을 두고 땀으로 미역을 감으며 련습을 해서 시험도 치르었다.

드디여 그들앞에 전투장이 펼쳐졌다.

기택은 시동을 걸었다. 와르릉! 호랑이의 울부짖음에도 견줄수 없는 둔중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이윽하여 그들앞에서 루르른 내물도 동강나고 높낮은 둔덕도 비켜서는듯 했다. 키높은 철조망도 거미줄인듯 맥을 못 춘다. 승조원들은 긴장하게 앞을 감시한다.

《적땅크 발견!》

야무진 웨침소리가 울렸다.

땅크장 분옥이의 구령에 따라 승조원들이 재빨리 움직인다. 이럴 때에는 땅크를 들추게 해서는 명중사격을 하기 힘들다. 기택은 될수록 속도와 방향변화를 주지 않았다.

《쐇!》 야멸찬 구령이 울리고 땅크안에는 화약연기가 물씬 풍겼다.

승조원들의 환성이 터졌다. 명중이였다. 어느새 마사진 적땅크의 잔해가 눈앞에 다가왔다. 복수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직까지 난 네놈들에게 맞기만 했다. 이제는 내가 매를 안길 차례다. 어디 내 땅크맛을 좀 봐라!)

기택은 가속답판을 힘껏 밟았다. 땅크는 적진지를 짓뭉개며 앞으로 나갔다.

기지에 돌아왔다. 판정성원들이 꽃다발을 안겨준다. 실탄사격에서 통과된것이였다.!

 

×

 

연회장은 풍성했다. 길다랗게 놓인 식탁에는 국가연회장처럼 갖가지 음식이며 울긋불긋한 실과 음료들이 눈맛있게 차려졌다. 그보다도 연회참가자들의 모습이 더 훌륭했다. 가슴이 모자라도록 가득한 훈장들, 무게있게 단 상좌, 대좌의 널직한 견장들, 여기저기 장령복도 눈에 띄운다.

기택은 조심조심 구석자리를 찾아갔다. 자기야 제대될 때 군사칭호가 상사이니 그쯤한 곳이 맞춤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 기택어머니가 오셨군요.》

돌아보니 시당의 책임일군이였다. 달포전 시에 있는 어느 한 기업소에 기술일군으로 파견된 아들을 따라 이곳에 옮겨온 기택이여서 여기 사람들은 다 생면부지이다. 언제인가 시당에 찾아갔을 때 얼핏 한번 만났댔는데 용케도 이름까지 기억하고있는것이다. 하긴 녀자로서는 특이한 이름이니…

기택이 송구스러이 인사를 하자 책임일군은 그의 손을 잡고 연회장의 가운데좌석으로 이끌어갔다. 모두가 자기만을 바라보는것만 같아 옹색해서 눈길을 들지 못했다.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왔다. 소년단원들이 축하하러온것이였다.

《…뜻깊은 전승절을 맞으며 영웅할아버지들을 비롯한 전체 전쟁참가자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우리들의 인사를 드립니다.…》

꽃보라가 날리고 북소리가 요란했다.

열렬한 답례박수가 일어났다.

연회가 시작되였다. 추배잔이 둬순배 돌았을 때 한 장령이 일어섰다.

《저는 좌중에 한가지 의견을 제기하려고 합니다. 이 자리에 녀성땅크병이 참가했다는데 흔치 않은 녀성땅크병의 위훈담을 듣는것이 어떻습니까!》

모두가 호응하며 자리를 고쳐앉는다.

책임일군이 기택의 팔을 거들어준다.

연회참가자들의 눈길이 자기에게로 모여들자 기택은 몸이 가드라드는것만 같았다.

무엇을 이야기할것인가. 갑자기 잊을수 없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땅크장 리분옥이며 고춘옥, 최정순…

《저는 전쟁기간 땅크를 탔다고는 하지만 이렇다할 위훈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택은 이렇게 허두를 뗐다.

 

×

 

림기택은 주위를 살피며 어정어정 땅크주위를 돌았다. 낫가락같은 초생달이 사라진지 오래되였건만 사위는 그래도 하늘땅을 가려볼수 있으리만치는 어렴풋했다. 등판에 서있는 허리가 부러지고 불타버린 나무등걸이 마치 어정어정 다가오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정말 착각할번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일처럼 경비근무를 서다나니 그것들도 이제는 눈에 익었다. 기택은 권총갑을 앞으로 끄당겨놓고는 언제든지 꺼낼수 있게 맞단추를 풀어놓았다. 그리고는 또 땅크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여기는 수도근방이였다. 이 계선을 차지한지 벌써 몇달이 지나갔다. 땅크발동소리 한번 크게 내지르지 못하고 흘러보낸 나날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수도방위를 위한 땅크구분대로서 철저한 위장,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있는것이 기본전투임무였던것이다.

등성이를 까낸 땅크홈과 반토굴에 땅크와 승조원들이 숨어있었다. 밤에는 동작훈련, 낮에는 실내상학을 하는 고요한 《침묵》의 나날이였다.

언제까지 이런 침묵속에 있어야 하는가. 꼭 공밥을 먹는것만 같았다.

기택은 고요속에 흘러간 나날을 돌이켜본다.

봄에는 위장때문에 애를 먹었다. 적의 항공정찰, 항공습격을 피해야겠기에 위장을 빈틈없이 하군 했다. 처음에는 땅크에 마른 풀을 뜯어다 시래기처럼 엮어 덮어놓았다. 꽃이 피고 나무에 새순이 돋자 새파란 풀을 뜯어야 했다. 애써 뜯은 청풀은 메마른 봄바람에 며칠 못 가서 누렇게 말라들군 했다. 일주일이 멀다하게 위장을 바꾸자니 맥이 풀렸다.

그런데 땅크장은 그 놀음이 즐거운 모양이였다. 마치 등산놀이하는 처녀들처럼 노래를 부르며 좋아라 뛰여다니는것이였다.

《땅크장동문 뭐가 좋아 노래를 부릅니까?》

기택이 퉁명스레 물었는데 땅크장은 마치 준비해둔 대사 외우듯 대답한다.

《기택동문 나빠? 땅크에 좋은 옷을 해입히는것과 같은 일인데. 이 옷을 입으면 항공정찰에 걸리지 않는것은 물론 땅크의 색이 바래지 않을게 아니예요?》

말문이 막혔다. 사람의 성격은 그 생김새를 따라가는 모양이다. 한창시절의 아릿다운 처녀이니 봄계절의 산놀이가 어찌 즐겁지 않으랴. 그러나 나는 사정이 다르다. 온 가정이 아직 남쪽에 있는것이다. 미제놈들의 총구가 언제 그들앞에서 불을 토할지 어찌 알겠는가! 땅크속도면 그들에게 빨리 가닿겠는데…

사지가 근질거렸다. 커다란 강철몽둥이를 가지고도 꾹 배겨있자니 속이 불끈거리였다. 하여 그는 드문히 부대후방차를 따라다녔다. 인민들의 지성이 담긴 실과며 남새, 후방물자를 한가득 싣고 달리느라면 속이 좀 내려가는듯싶었다. 그 일이 회수가 많아지자 하루는 땅크장이 물었다.

《그렇게 나다니기만 하면 훈련과제는 어떻게 하겠어요?》

여느때없이 경어를 쓰는걸 보면 그는 직속상관으로서 추궁을 하고있는것이였다. 그런데도 눈은 사물사물 웃고있다.

(나야 운전사가 아닙니까. 걱정 놓으십시오. 땅크발동이 죽는 일은 없을테니…)

이런 속대사가 입밖으로 나오려 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듯 땅크장은 권총을 꺼내였다.

분해결합, 조준련습을 하자는것이였다.

땅크장이 먼저 했다. 그의 자그마한 손에서 권총은 한순간에 자그마한 쇠붙이들로 갈라져나갔다가 다시 제 모양을 갖추었다. 묵직한 권총이 그의 손에서 핀세트처럼 가볍게 움직이는것이다.

다음은 조준련습이였다. 팔을 잔뜩 빼들고 목표를 겨누자니 팔이 뻐근했다.

《권총이야 규정에도 있는것처럼 땅크병의 호신용인데…》

이다지도 진지하게 조준련습을 해야 하는가 하는 뒤말은 하지 못했다. 조준련습이 끝난 뒤 땅크장이 승조원들에게 말했다.

우린 땅크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차례진 무기엔 다 정통해야 해요. 전선신문에 최고사령관동지의 교시가 실렸어요. 장군님께서는 고산진의 고사포병들에게 미국놈의 비행기는 파리같애서 쫓아버리면 다시 날아온다, 그러니 다시는 날아올수 없게 때려잡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우리도 그래요. 나쁜놈이 덤벼들면 그저 쫓아버리겠어요? 다시 얼씬 못하게 쏘아잡아야 한단 말입니다.》

기택은 땅크장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기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듯 한 말이였기때문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기택이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보고있는데 땅크장이 다가왔다.

《피곤할텐데 들어가 눈을 좀 붙여요.》

보초차례가 땅크장이긴 하지만 좀 이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초를 인계했다. 그때 하품이 나왔다. 그러자 땅크장이 생긋 웃으며 한마디 한다.

《내 야간보초 설 때 졸음 쫓는 방법을 대줄가?》

얼른 들어가려던 기택은 호기심이 들어 멈춰섰다.

땅크장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번졌다.

《내가 있던 군의소에 입원했던 정찰병한테서 들은 이야기예요. 그가 속한 정찰조가 정찰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였는데 불시에 적들의 야간매복에 걸려들었대요. 정찰임무를 수행하느라 지쳤던지라 우리 동무들은 처음에 맞다든 적들을 한두놈씩 쳐갈겼는데 적들의 수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거든요. 그때 연방 총소리가 울리더래요. 지척도 안보이는 캄캄한 밤이였는데 바스락소리가 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총성이 울리고 그때마다 꼭꼭 어이쿠, 으악하는 비명이 들렸대요. 한참후 잠잠해져서 격투장을 돌아보니 우리 조원의 총탄에 놈들모두가 급소를 맞고 쓰러졌더라누만요. 야간사격명수는 다름아닌 정찰조의 유명한 아바이병사였대요.》

그 병사를 그려보는지 한참이나 잠자코있던 땅크장이 호 긴숨을 내쉰다.

《나두 근무가 끝나면 야간사격훈련을 해요. 어떤 소리가 들리면 제꺽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지요. 물론 안전장치는 풀지 않고…》

기택은 그 어떤 요술사에 대한 이야기인것만 같아 (그런 명사수도 있는가.)하고 돌아섰다.

땅크장은 앵하는 모기에게도 총구가 돌려지고 저만치 날아가는 반디불과도 공방전을 벌린다고 한다. 어쩐지 아이들의 나무권총놀음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만 생각할것이 아니다. 권총은 승조원의 생명보위수단이 아닌가.

기택은 다음날부터 보초근무가 끝나면 그 훈련을 해보았다. 한참 하느라니 목표를 보지 못하고 겨눔한다는것이 맹랑했다. 권총을 다루는것은 역시 육중한 땅크에 비해서는 소일거리였다.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그다음엔 또다시 《침묵》에 대한 의견과 원쑤를 속시원히 답새기지 못하는 《울분》이 솟아오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기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핀세트아가씨, 땅크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것이 내성격이고 소원입니다.》

 

×

 

요사이는 련이어 비가 내렸다. 소나기에 이어 가랑비 또 그뒤에는 무더기비였다. 땅은 온통 물탕이였고 탕크홈에도 물이 쓸어들었다. 어제는 밤새 퍼붓던 비속에서 승조가 떨쳐나와 물길을 팠다. 기택은 이런 때 허우대가 큰 자기가 한몫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가래삽을 잡았다. 땅크장과 신대원은 가래줄을 당겼다. 모두가 비가 더 오면 야단이라고 걱정했는데 장마철에도 땔나무 말릴 해빛은 준다고 오후에는 날이 개였다.

마침이였다. 기택은 땅크기관을 꼼꼼히 정비하였다. 그가 온통 기름투성이가 되여 땅크에서 내려서는데 땅크사슬밑에 머리를 들이밀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땅크장이였다. 어제 물도랑을 째고 뒤이어 근무를 선 그여서 휴식해야겠으나 또 무엇이 못미더워서인지 나온것이다. 가만 살펴보니 널직한 땅크사슬에 기름걸레질을 하고있었다.

《비가 또 퍼붓겠는데 그만하지요.》

기택이 한마디 했으나 그는 그냥 허리를 펄줄 모른다.

《그게 뭐 치료도구인줄 알아요? 바퀴사슬을 닦지 않는다구 땅크가 굴러가지 않겠어요?》

그 소리에 허리를 편 땅크장은 저도 우스운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두 어쩐지…》

그리고는 생각난듯 묻는다.

《기택동문 장딴지나 어떤 부위가 가려울 땐 어떻게 해요?》

《어마나 가려우믄야 긁지요 뭐.》

《난 저런걸 보면 손이 가려워 못 견디겠어요. 그래 긁는거지요 뭐…》

기택이는 그 소리가 우스웠다. 아닌게 아니라 장마비 며칠새에 땅크사슬에 뻘건 물이 내돋았다.

그들은 함께 기름걸레질을 했다.

그날 저녁 땅크들을 돌아본 부대장은 녀성땅크가 1등이라고 칭찬했다. 기분들이 좋았다. 그날 밤은 달이 밝았다. 모두 눅눅한 반토굴에서 나와 달구경을 했다. 시원한 저녁바람이 한여름 달아올랐던 가슴을 서늘하게 식혀준다.

《참, 언제부터 마저 듣자던건데…》

땅크장이 승조원들을 둘러보며 웃는다.

《기택이라는 이름두 그렇구 배속에서는 총각이였다는게 무슨 소리야. 무슨 사연이 있는게 아니야?》

새물새물 웃는 땅크장의 얼굴엔 정이 넘쳐들었다.

《있어두 기막힌 일이 있지요.》

기택의 대답에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기택은 둥근달을 바라보며 옛말하듯 하던 어머니를 그려보았다.

《내가 어머니배속에서 꼼지락거리던 여름 어느날이였대요. 그날 우리 집에 중이 찾아왔대요. 커다란 삿갓을 쓰고 목탁을 두드리며 념불을 외우는데 상상외로 녀자중이더라지요. 후렁후렁한 장삼엔 때국이 흘렀고 나막신도 다 닳아졌더래요.

어쩌따 녀자가 중이 되였을가.

동정심이 든 어머니는 얼른 보리쌀을 한옹배기 퍼내왔답니다. 동냥주머니에 예상보다 많은 쌀이 흘러들자 녀중의 삿갓이 쳐들리더래요. 인심후한 아낙네의 몸매를 살펴보던 녀중이 요즘 꿈자리가 뻘스러웠겠다고 중얼거리더래요.

어머니는 놀랐대요. 간밤에 칠흑같은 어둠속을 헤매는데 어둠을 깨치는 천둥소리와 함께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구렝이가 꿈틀거리며 내려오는 꿈을 꾸었댔으니까요.

<그것은 분명 옥동자가 태여날 태모꿈인지라…> 하며 뭐라고 중얼거리던 녀중은 괴나리보짐에서 먹통과 붓을 꺼내여 아버지의 성씨를 묻고나서 한문 세글자를 적어주었답니다. 식자가 있는 마을사람에게 보였더니 기이할 기자에 못 택, 림기택이라는 이름이였어요.

가난한 우리 집에서는 어쩌다 생긴 옛말같은 일이여서 그 종이를 궤짝안에 고이 간수했지요. 그런데 녀중의 말과는 반대로 내가 태여났거든요.》

모두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랬지만 앞날에 행운이 트이리라는 녀중의 말이 귀에 박혀 나에게는 지금처럼 녀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달린거랍니다. 정말 난 그 이름때문에 별창피를 다 당했어요.》

승조원들은 또 무슨 흥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려나 해서 귀를 기울였다.

방직공장에 끌려왔을 때였다.

이름이며 나이, 사는 곳 등을 꼬치꼬치 적어넣던 인사계의 사무가 뱁새눈을 치뜨고 한참이나 쏘아보는것이였다. 가시같은 눈길이 얼굴과 몸의 이곳저곳을 더듬는데 마치 터럭손이 와닿는것 같아서 몸이 옹송그려졌다.

《이름이 뭐라고?》

뱁새눈이 되물었다. 다시 또박또박 이름을 대자 뱁새눈엔 한오리 삵의 웃음이 지나갔다.

《림기택? 가시내이름이 그게 뭔가. 서방의 이름이 아냐?》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이름지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면서 어리숙한 어머니에게서 보리쌀을 받아간 녀중이 여간만 밉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천리길을 걸어 딸을 만나러 온 어머니에게 품고있던 생각을 꺼내놓았다.

《엄마, 나 이제 녀중을 만나면 욕질할테야!》

《그건 왜?》

어머니가 의아해서 물었다.

《거짓말만 하니까 그러지? 하필이면 남자이름을 달아줄게 뭐람.》

옹쳐진 마음을 쏟아놓는 딸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부드럽게 나무랬다.

《녀중을 너무 욕하지 말아. 세상에 없는이를 욕하면 죄가 된단다.》

기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니 녀중이 잘못됐다는건가. 범도 잡아놓고보면 불쌍하다고 녀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였다.

어머니가 녀중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녀중은 원래 가난한 어부의 안해였다. 파도 사나온 어느날 바다에 나갔던 남편이 들어오지 못했다. 혼자몸에 이미 진 빚을 갚을 방도가 없었다. 며칠밤을 눈물로 새우던 녀인은 모진 마음을 먹고 두살짜리 아들을 다른 마을의 자식없는 집에 몰래 가져다놓고는 이 세상을 하직하는 심정으로 머리를 깎았다.

세월이 흘러 절에 불공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말을 귀동냥하니 아들을 맡긴 집에서도 먹여살릴수 없어 어느 한 지주의 집에 머슴으로 들여보냈다는것이였다. 그 아들이 머슴살이끝에 그만 잘못됐다는것이였다. 녀중은 벼락을 만난듯 아찔했다.

아, 하늘도 무심하구나. 아들의 운명 하나 건져 못준 어머니가 이 세상을 더 살아 무엇하랴.…

끝없는 비관에 잠긴 녀중은 그날 산중에 있는 룡소에 몸을 던졌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난 녀중이 우리를 속이려고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닌게아니라 네가 배속에 있을 때 꼭 사내애처럼 벌차게 놀더구나. 네가 덤비다가 무얼 뚝 떼놓고 나왔던게지.…》

어머니의 능청스러운 소리에 기택이는 눈을 흘겼다.

《그래두 이 세상에서 우리를 동정하구 말이래두 무던하게 해준이는 그 녀중뿐이였구나. 우리야 어디 믿을데 있니? 사람이란 무엇인가 믿는데가 있어야 살기가 헐하다는데 밑져야 본전이라구 녀중의 말이래두 믿어보자꾸나.…》

어머니의 얼굴에는 딸의 앞날에 대한 념원이 가득 어려있었다.

너무 기막힌 사연이여서 승조원들은 생각들이 많은 모양이였다.

누군가가 머리를 기웃거렸다.

《정말 기막힌 이야기이구만요. 하지만 수모와 천대를 받으며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이 중의 말에 기대를 걸어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 기택동무의 가정만이 아닌 우리 인민모두의 지난날이 아니겠어요?》

《그런 기택동무가 오늘은 미제놈들이 벌벌 떠는 땅크병이 되였으니 이제는 기택동무의 이름이 고역속에 천대받던 우리 인민들의 지난날이 새겨진 대명사라고 말할수 있어요.》

모두 그럴듯한 소리라고 한마디씩 하는데 땅크장이 입을 열었다.

《옳아요. 우리 장군님이 아니시였다면 녀성땅크병이라는게 어디 생각이나 할번 한 일이예요? 장군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셨기에 우리 인민은 해방후 정말 세상에 부럼없는 보람과 행복을 누리지 않았나요. 꿈이야기로 본다면 우리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모두에게 <룡꿈>을 실현시켜주신거예요. 장군님만 계시면 우린 이 전쟁두 이기구 보다 더 보람찬 행복을 누릴수 있을거예요. 그러니 우리 장군님께서 계시는 수도를 방위하는 전투임무를 사소한 빈틈도 없이 수행해나가자요.》

모두가 숭엄해진 마음으로 그의 말을 새겼다.

기택은 생각이 많았다.

한 녀중의 공담을 평생 믿고 산 어머니, 그런데 우리 장군님께서는 땅크장의 말대로 우리 인민모두가 고이 간직했던 평생의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주시지 않았는가. 정녕 장군님은 우리가 믿고 따를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

장군님에 대한 땅크장의 굳건한 마음이 그대로 가슴에 흘러들었다. 그 뜨거운 믿음이 있었기에 땅크장은 나에게 있어서 따분하고 지겨운 일로만 느껴지던 위장이며 이 안타까운 침묵속의 경계태세를 보람으로, 본분으로 감수하는게 아닐가.

이렇게 생각하니 그 날렵한 핀세트솜씨며 체소한 육체로 땅크장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가는 그 기질도 모두 천성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 바쳐지는 뜨거운 마음의 분출로 안겨왔다.

승조원들은 제나름으로 웃고떠들었으나 기택은 둥근달처럼 잔뜩 부른 생각에 잠겨있었다.

 

×

 

어느덧 방어구분대에 반갑지 않은 겨울이 허리를 꼬부리고 찾아들었다. 모든것이 허옇게 변했다. 개울과 늪도 허연 얼음속에 움츠러들고 산도 들도 허연 눈이 불을 쓰고 납작 드러누웠다.

땅크의 전투준비를 갖추는데서 겨울은 제일 힘든 계절이였다. 기관이 얼면 기동할수 없기때문에 밤낮 땅크배밑에 불을 때야 했다. 어지간히 때서는 무쇠덩이를 녹일수 없었다. 그래서 승조원들은 밤이면 늘 산에 올라가 땔감을 마련했다.

그날도 승조는 땔나무를 했다. 그믐때여서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땅크보초와 화구당번을 떨구고나니 땅크장과 기택이 그리고 신대원하나가 산에 올랐다. 림지는 진지에서 퍼그나 가야 했다.

그들이 애써 찾은 강대 하나를 베여 넘겨뜨리고 앉아 한숨 쉬는데 땅크장이 검은 마스크를 벗으며 기택이의 옆구리를 살며시 건드렸다.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그 소리에 셋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산중의 한밤이 어찌 조용하랴.

바람이 부는 소리, 어디선가 후드득 밤새 나는 소리, 처럭처럭 얼어붙었던 눈덩이가 떨어지는 소리…

그러나 그 어떤 정황의 징후는 느껴지지 않았다.

기택은 며칠전의 일이 생각나서 싱긋 웃었다.

그날도 기택은 통나무를 끌었다. 언덕배기에서 미끄러져내리는 통나무를 쫓아 달려내려오는데 무엇인가가 왁살스럽게 그의 모자를 잡아챘다.

《누구얏!》 기택은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며 엎드렸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몸으로 막아섰다. 땅크장이였다. 언제 빼들었는지 그의 손에서는 권총이 번들거리고있었다. 긴장한 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무 기척도 없었다. 한참후에야 그들은 마른나무가지에서 그네를 뛰는 땅크모를 발견했다. 약속이나 한듯 긴숨이 두 처녀의 입에서 새여나왔다.

땅크장이 권총을 내리우며 소곤겨렸다.

《아무때건 큰소리를 치지 말아요.》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아 바라보니 그는 검은 마스크를 끼고있었다.

그날 밤 기택이가 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토굴안엔 웃음이 가득찼다. 웃음이 잦아들었을 때 땅크장은 주의를 주었다.

웃을 일이 아니다.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 최근 린접구분대에서 나무를 하다가 산중에 웅거하고있던 반동들의 소굴을 발견한 사실도 있지 않느냐.

그리고는 주를 달았다.

《우리 땅크조가 녀자들이라는것두 비밀이예요. 놈들이 녀자들을 얕보고 달려들수 있거든요. 우리의 말하나, 행동하나가 다 수도방위에 영향을 준다는걸 명심하자요.》

그리고는 대원들에게 모두 마스크를 만들게 했다. 그걸 끼고 말하면 밤에는 녀자인지 쉽게 알아차릴수 없다는것이였다.

밤중으로 모두 검은 마스크를 만들었다. 한 대원이 마스크를 끼고 《이놈아, 어디 내가 녀자야?》하고 웅얼거리는 바람에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던것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기택은 남자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땅크장동무, 너무 념려마십시오. 놈들이 나타나면 내 한몸으로 막아나서겠습니다.》

땅크장이 곱게 눈을 흘겼다. 신대원도 재미있다는듯 생글생글 웃는다.

한참후에 일행은 차비를 끝냈다. 통나무에 끌바를 걸고 떠나려는데 불쑥 진짜사내의 음성이 울렸다.

《꼼짝말아. 네년들이 아무리 그래두 오늘은 끝장이다!》

키가 구척같은 놈들이 몇인지도 모르게 쭉 포위진을 쳤는데 밤인데도 그들의 손에는 비수가 번쩍거리는것이 인차 알렸다.

처녀들은 깜짝 놀랐다. 큰소리를 치던 기택이도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들었다.

《순순히 우리가 묻는 자료를 넘겨주면 살려줄수도 있다. 사내맛도 못 본 너희들을 그저 죽이긴 아깝거던.…》

이제는 먹어놓은 떡이라는듯 한놈이 이기죽거리며 덩지가 제일 큰 기택이에게 다가선다. 온몸이 얼어들어 꼼짝할수 없었다.

이때였다. 《승무조 엎드렷!》 야무진 구령소리와 함께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다가서던 놈이 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자빠졌다.

(아, 땅크장의 솜씨로구나!)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 기택은 재빨리 엎드리면서 권총을 끌러냈다. 놈들이 급히 땅크장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와삭이는 소리를 향해 탕탕 총소리가 연방 울렸다. 그때마다 어이쿠, 윽… 하는 비명이 뒤따랐다.

기택은 총을 뽑아들었지만 쏠수가 없었다. 모두가 목표를 분별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눈정기를 모아서야 땅크장이 있던 쪽에서 검은 형체가 불쑥 솟구쳐오름을 느끼였다. 기택의 총구에서 불길이 튀여나갔다. 검은 형체는 비명을 지르며 털썩 넘어진다. 불시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불안이 온몸을 엄습했다. 기택은 자기가 쏘아눕힌 놈에게로 달려갔다. 땅크장은 거기에 쓰러져있었다. 황급히 그를 안아일으키던 기택은 끈적끈적한 느낌을 받았다.

땅크장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치고있었다.

《땅크장동지!》

어느새 다가왔는지 신대원이 애타게 부른다.

대답이 없었다. 한참후에야 땅크장의 손이 기택의 얼굴을 어루쓴다.

《기택동무, 무사했군요. 난… 이젠… 안될것 같아요.》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기택은 눈앞이 새까매졌다. 땅크장이 죽다니. 어여쁘고 발랄하고 빈틈없는 땅크장이… 반동들의 칼에…

《땅크장동지, 죽어선 안돼요. 군의소에 가요!》

어린 대원이 땅크장의 손을 흔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만에 땅크장이 속삭였다. 아니, 또박또박 힘을 주었다.

《동무들, 부탁해요. … 경애하는 장군님을 보위하는…무쇠철갑이…》

목소리가 끊어졌다. 땅크장의 따스한 머리가 기택의 팔에 드리워졌다.

순간 기택은 무딘 쇠꼬챙이가 가슴을 쭉 내리긋는듯 한 느낌이 들었다.

장군님을 보위하는 무쇠철갑이 되여달라는 땅크장의 당부!… 그의 말은 땅크를 탄다고 해서 수도를 보위하는 무쇠철갑이 되는것이 아니라는 뜻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목숨바쳐 옹위하려는 빈틈없는 마음의 준비가 진정 무쇠철갑이라는 느낌이 가슴을 파고드는것이였다. 땅크장의 죽음앞에서야 가슴속에 무쇠철갑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전사의 자세, 복무의 철리를 알게 된것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것이였다.

기택은 피를 토하듯 땅크장을 부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좌중은 조용했다. 숙연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

《드디여 우리는 전승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환호성이 넘치는 전승열병식광장을 진감시키며 우리 땅크종대가 나아갔습니다.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손을 들어 우리 녀성땅크승조를 사열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우러르는 순간 불쑥 눈물이 솟구쳐올랐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지난날 우리 가정을 못살게 굴던 놈들을 속시원히 복수해보려고 애송아지처럼 뿔질을 하던 이 전사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에서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놈들을 때려눕힌 전승용사가 되였습니다.!…

가슴가득 고패치는 승리의 보고를 드리는 나의 마음속에는 오늘의 이 승리를 보지 못하고 떠나간 땅크장이 자리잡고있었습니다.

나는 그와 속삭였습니다. <땅크장동무, 기뻐해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승리의 보고를 드리는 우리 녀성땅크승조를 바라보고계셔요. 오늘의 이 영광, 이 행복을 난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땅크장동무와 함께 영원히 최고사령관동지를 사수하는 무쇠철갑이 되겠어요.>》

장내에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림기택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보냈다. 그 인사는 수령의 전사가 간직해야 할 신념의 철리를 피로 가르쳐준 땅크장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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