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제10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의     리

 

백  현  우               

 

(이번에도 못 들려보시는구나.)

김정일동지께서 하바롭쓰크를 떠나시였다는 보도에 접하는 순간 순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였다. 아쉽다 해야 할지 서운하다 해야 할지 종잡기 어려운 감정이 순녀의 가슴을 채웠다.

순녀는 지난해 장군님께서 로씨야를 방문하시였을 때에도 이 비슷한 감정을 체험했다. 오늘의 느낌은 지난해보다 더 크고 강렬했다. 지난해에는 5만여리 먼길에 오르시여 하바롭쓰크에 잠시 머무르시였지만 이번에는 로씨야 원동지역을 목표로 떠나신 장군님이시였다.

더구나 이번에는 순녀의 아들도 장군님을 모시고 함께 갔다. 그의 아들은 철도부문에서 일한다.

로씨야 씨비리철도와 우리 나라 철길련결이 두 나라사이의 경제적협조와 교류에서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있는 오늘 철길전문가인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많다. 순녀는 아들이 자기 실력으로 장군님을 받드는데서 큼직하게 한몫하기를 바라왔으나 무슨 일을 하든 이렇다할 성과와 공적없이 조용하게 살아 예순살 가까이 이른것이 불만이였었다.

이번의 수행은 아들의 일생에서 극적전환의 새로운 계기로 될것이였다. 순녀는 장군님께서 이번 외국방문의 길에 아들을 기술실무진의 한사람으로 망라시켜주신것이 고마울수록 그이께서 가시는 걸음걸음을 마음속으로 함께 따라서게 되는것이였고 그이께 기쁨을 드릴만 한 일을 할수 없는 자신이 한스러웠다.

장군님께서 방금 떠나신 하바롭쓰크에서 200리정도가면 북야영지가 있었다. 남야영지보다 북쪽에 자리잡고있다고 하여 부르던 이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르강기슭에 있다고 강이름의 첫자를 따서 A야영지라고도 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준비하시였었다.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국내혁명전적지들과 사적지들을 수없이 찾으시였고 가시는 곳마다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로정을 따르시며 령도업적을 새겨오시였었다. 장군님께서 얼마나 바쁘시면 못들리시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녀는 이번 방문길에도 장군님께서 북야영지에 못 가신것이 자신의 불찰처럼 생각되기까지 하였다.

순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텔레비죤이 놓여있는 응접실을 떠났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순녀는 불도 켜지 않은채 창가로 다가섰다. 창문으로 불밝은 수도의 일각이 바라보이였다. 그리움에 잠 못드는 창문마다 불빛이 환했다.

불야성을 이룬 도시상공에서는 이밤따라 별들이 반짝이며 부러움에 찬 눈길로 평양을 내려다보는가싶었다.

순녀는 북극성을 찾았다. 북극성이 빛나는쪽에 지금 장군님께서 계신다는 생각에 순녀는 북쪽하늘을 우러르며 창가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베를린이 함락되였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안겨주는 충격은 컸었다.

순녀는 아무르강에 빨래하러 나갔다가 이 충격파때문에 백포를 두장이나 강물에 떠내려보내였다. 비행기를 타고 락하훈련을 하던 남편이 얼마전에 부상을 당했다. 큰 중상은 아니였으나 그러다 조국해방작전에 참가하지 못하면 어쩌랴 하는 근심을 놓을수 없었다.

안정되지 않는 이 마음때문에 순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백포가 강물에 떠내려가는것조차 알지 못했던것이다.

순녀는 야영지로 돌아와 자기가 백포를 두장씩 잃었음을 알았을 때 자신을 발기발기 찢고싶었다.

전투훈련의 하루일과가 끝나자 전우들은 어서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으나 순녀는 가차없이 자신을 처벌하기로 마음먹었다.

순녀는 한평도 되나마나하게 땅에 금을 그어놓고 보초서듯 그안에 들어가 섰다. 빨찌산시절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받군 하던 처벌이였다.

남편의 부상때문에 약해진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며 자책에 잠겨 서있던 순녀는 자기를 찾는 소리에 머리를 들었다.

《아지미, 뭘 하나요?》

어리신 장군님께서 순녀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지척에 서계시였다.

군복을 줄여 바지에 붉은 통줄까지 대고 만든 장령복은 어리신 장군님께 어울리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나무로 만든 따발총 부혁을 목에 걸고 괴춤에 권총을 차신채 지혜로 빛나는 두눈에 의문을 담고 순녀를 바라보시였다. 순녀는 어리신 장군님께 어떻게 말씀드렸으면 좋을지 알수 없어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그리였다.

《보초서나요? 총도 없이…》

어리신 그이께서는 모든것을 알고싶어하시였다.

순녀는 사실대로 말하자니 어색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수도 없어 줄곧 멋적은 표정만 지을수밖에 없었다.

《이 총을 가지고 같이 보초서자요.》

그이께서는 순녀가 그어놓은 땅금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시였다.

《금안에 들어오면 안돼요. 난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중이예요.》

순녀는 모든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놀라움과 동정어린 눈길로 순녀를 바라보시였다. 그러시더니 어디론가 뛰여가시였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김정숙동지와 함께 나타나시였다.

《순녀동무! 여기 있었군요. 백포를 찾았어요.

강하류에서 도하훈련을 하던 남동무들이 떠내려오는 백포를 건져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순녀를 위로해주시였으나 순녀는 자신을 용서할수 없었다.

순녀는 이제 몇시간만이라도 더 근신처벌을 받기로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에 대한 처벌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 순녀에게 사과하듯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순녀동무를 도와주지 못했어요. 남편의 부상때문에 마음쓴다는걸 알면서도 면회갈 시간마저 조직해주지 못했으니… 자, 이젠 그만하고 가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순녀의 두손을 잡아 이끄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자그마한 나무따발총을 앞가슴에 거신채 무엇이 좋은지 그저 생글벙글 웃으시였다.

며칠후였다. 하루훈련을 마치였을 때 순녀는 김정숙동지한테서 꾸레미 하나를 받았다.

《하바롭쓰크에까지 사람을 보냈댔는데 신통한 약이 없군요.》

곰열주사를 비롯하여 남편의 치료에 필요한 약들이 들어있는 꾸레미안에는 몇알의 도마도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원동지역에는 실과가 발랐다. 조선사과에는 대비도 할수없이 작고 맛이 텁텁한 야생사과마저 귀물로 여기던 시절이고 고장이였다.

그 야생사과를 남편은 《스구리》(까치밥)라고 했고 순녀는 능금의 일종이라고 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승벽내기를 한것이 두사람사이에 남다른 인연을 맺아놓았다.

김정숙동지께서 남편의 약을 구해주시면서 도마도까지 마련하신것은 《스구리》때문에 남다른 인연까지 맺은 두사람을 축복해주고 조국해방의 한길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바라서였을것이다.

순녀는 남편을 면회가라고 준비해준 다섯알의 도마도중에서 두알을 남기고 면회를 다녀왔다.

어리신 장군님께 가져다드리고싶었다. 순녀는 백포를 강물에 떠내려보내고 괴로와하던 때 자기를 동정해주고 리해하려 애쓰시던 어리신 장군님을 잊을수 없었다.

순녀는 도마도 두알을 가지고 어리신 장군님을 찾아갔다.

《야, 도마도!》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기뻐 소리치시며 도마도를 선뜻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도마도를 두손에 쥐고 이리저리 보기만 할뿐 들려고 하시지 않았다.

《여기 또 있어요.》

순녀는 그이께서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도마도가 먹기 아까와 그러시는줄 알고 다 드신 후에 드리려고 품속에 넣어두고있던 한알의 도마도를 마저 내놓았다.

《야!》

어리신 그이께서는 다시 환성을 지르시였다.

순녀는 기뻐하시는 그이를 보자 남편한테 가져간 도마도를 모두 가져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는 후회가 새삼스러웠다. 순녀는 김정숙동지한테서 꾸레미를 받던 때 어리신 장군님께 모두 가져다드리고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러다 어리신 장군님께 도마도를 가져온 사실이 김정숙동지께 알려질것 같아 그러지 못하였다.

동지들한테는 무척 너그러우시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요구성이 높으신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고맙습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두알의 도마도를 량손에 하나씩 드시고 다시 인사를 하시였다.

순녀는 기쁘고 즐거웠다.

그날 저녁때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하루훈련을 마치시고 숙소로 돌아오시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순녀는 뒤를 따라갔다.

병원에 다녀온 소식도 전하고 의논하고싶은 일도 있었다.

숙소앞에 이르니 방문이 빠금히 열려있었다.

문틈으로 방안에 계시는 두분의 모습이 들여다보이였다.

《어머니!》

어리신 장군님께서 두손에 도마도를 받쳐들고 앞에 내놓으시는것이였다.

《어서 먹어라.》

《훈련에 힘드실텐데 같이 먹어요.》

《장령동지나 잡수라요.》

《어머니가 안 잡수시면 나도 안 먹을래요.》

《원 장령동지두…》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리신 아드님과 롱을 하시면서도 지성에 감동되여 한알의 도마도를 끝내 칼로 자르시였다. 하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께 차례진 도마도 반쪽을 들지 않으시였다.

《어머니! 아버님께 드릴 도마도는 여기 있어요.》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새 도마도를 주머니에서 꺼내시였다.

순녀는 얼마전 어리신 장군님께서 두알의 도마도를 받으시고 그렇게도 기뻐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리신 나이이건만 그이께서는 한알의 도마도를 보시고도 부모님들을 생각하신것이였다.

순녀는 동정심으로만 보기 어려운 갸륵하고 기특한 지성에 머리가 숙어지면서 방안으로 뛰여들어가 장한 그이를 안아 하늘높이 추켜올리고싶었다.

흔히 어린시절의 의지는 음식물을 대하는데서 나타난다고 했다.

장군님께서는 너무나 어리신 나이에 배고픔을 맛보시였다. 순녀는 젖먹이시절에 어리신 장군님께서 배고픔을 이겨내시려고 자신의 손가락을 피가 날 정도로 빠시는 모습을 한두번만 보아오지 않았다.

한홉의 미시가루와 몇알의 소금도 함께 나누는 빨찌산의 의리를 걸음마다 함께 배워오신 어리신 장군님이시였다.

순녀가 문밖에 서서 감격에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워하는데 어리신 아드님께 물으시는 김정숙동지의 말소리가 울리였다.

《도마도가 어디서 났지?》

《순녀아지미가…》

《응?》

김정숙동지께서 놀라시듯 되물으시는 말씀에 순녀는 무엇인가 탁 부딪치는 예감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순녀는 숨을 죽인채 방안동정을 살피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린 아드님을 타이르시였다.

《아버님께 도마도를 드리려고 생각한건 장하고 기특하다. 아버님은 집안의 웃어른이실뿐아니라 혁명군사령관이시다. 하지만 어머니와 나누어먹겠다고 도마도를 받은건 잘한 일이 못된다. 이 도마도는 병원에 입원한 유격대아저씨를 위해 전우들이 구해온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알의 도마도를 두시고도 어리신 아드님의 지성이 부모와 자식사이의 혈연에 머무르지 말고 혁명의 의리로 이어지기를 바라시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의 말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순녀의 가슴을 돌처럼 아프게 때리였다.

《전 그걸 몰랐어요.》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앞에 머리를 숙이시였다.

순녀는 자신을 더 지탱할수가 없어 방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정숙동무! 너무해요. 너무해요.》

순녀는 지금까지 애써 참아온 억울함을 하소하듯 부르짖었다.

순녀는 자기의 정성이 무시당해서라기보다 어리신 장군님께 요구를 높이심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하는 순녀의 말을 리해해주시였고 아량있게 받아주시였다.

《순녀동무의 마음은 정말 고마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순녀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며 위로하듯 말씀하시였다. 순녀는 김정숙동지의 부드러운 말마디들이 자기의 온몸과 마음을 따뜻이 감싸주어 엇드레질을 하고 밸풀이라도 하고싶던 감정이 해볕에 살얼음녹듯 해버리고말았다.

순녀가 김정숙동지를 붙들고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진정해야 좋을지 몰라 그러는 사이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손에 들고있던 도마도를 방안의 원탁우에 올려놓으시였다.

그러신 후 그이께서는 방 한쪽구석으로 걸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글을 배우시느라 벽에 낮게 걸어놓은 자그마한 칠판턱에서 백묵을 집어드시고 마루바닥에 금을 그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두 벽을 의지하여 호를 그려놓고 그안에 서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무엇때문에 방 한쪽구석으로 가시였고 마루바닥에 백묵으로 금을 그으신 후 그안에 들어가시는가 하는것을 깨닫는 순간 순녀의 입에서는 감탄이라고 해야 할지 놀라움에 가득찬 비명이라고 해야 할지 알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마나-》

순녀는 방 한쪽구석에 서계시는 그이한테로 달려가 백묵으로 마루바닥에 그어놓은 금밖으로 안아내고싶었다.

하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꼭잡은 순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으시였다.

《그러지 말아요. 의리는 어려서부터 키워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리신 아드님의 결심과 행동을 지지해주시였다. 그러시는 김정숙동지의 눈굽은 척척히 젖어있었다.

부상당한 한 전우를 위하여 먼곳으로 사람을 보내 도마도를 준비하시면서도 어리신 아드님을 위하여서는 한알도 남기지 않으시였고 그 도마도 한알때문에 유격대규정대로 어리신 아드님께서 벌을 서시는것도 응당히 생각하시는 김정숙동지이시였다.…

《로할머니-》

순녀는 어린 증손녀가 소리치며 방안으로 뛰여들어오는 소리에 회억에서 깨여났다.

《쉿! 로할머니 깨실라.》

식반을 들고 순녀방으로 들어서던 손자며느리가 자기 딸을 타일렀다.

《할머니 어디 자니, 여기 계시는데…》

증손녀는 쪼르르 달려와 창가에 서있는 순녀의 치마폭에 매달리고 손자며느리는 벽스위치를 눌러 방안에 불을 켰다. 따뜻한 차가 담긴 보온고뿌와 자리끼를 담은 자그마한 보온병을 차반에 받쳐들고 손자며느리는 문가에 선채 순녀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여느때 같으면 아직도 텔레비죤앞에 앉아있을 순녀였다. 손자며느리는 순녀가 여느때없이 텔레비죤앞을 떠나 불도 켜지 않은채 자기 방으로 돌아와 창가에 서있는것을 의아스러워했다.

《어디 불편하셔요?》

《아니, 일없다.》

《로할머니 피곤하셔.》

손자며느리는 새빨간 차반을 침대옆의 상두대우에 내려놓고나서 어린 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집안에서 순녀를 무랍없이 대하는 사람은 증손녀뿐이다.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있는 응석꾸리기이지만 증손녀는 로할머니가 평상시와는 다름을 눈치챘는지 순순히 자기 어머니를 따랐다.

《로할머니, 편히 주무셔요.》

깍듯이 인사하고 자기 어머니를 따라 돌아서는 증손녀와 시할머니한테 부담을 끼칠가봐 왼심쓰는 손자며느리를 보자 순녀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격세지감에 가슴이 묵직했다. 해방되던 해 태여난 아들이 손녀까지 보았으니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순녀는 백두밀영에서 탄생하신 어리신 장군님을 북야영지에서 처음 뵈왔었다.

하바롭쓰크회의를 마치고 백두산유격전구로 가신 어버이수령님의 친솔부대를 뒤따라 남야영지를 떠나시였던 김정숙동지께서 백두밀영에 남으시였음을 알았을 때 순녀는 처음 가슴이 철렁했고 김정숙동지의 안녕을 매일처럼 빌었었다.

김정숙동지께서 어리신 장군님과 함께 건강하신 몸으로 북야영지로 다시 오시였을 때 순녀는 백두광명성의 탄생소식을 처음 알게 되던 때와 같은 환희와 격정을 다시금 체험했다.

백두산밀영에서 북야영지까지는 거리로 따져도 수천리다. 김정숙동지께서 어리신 아드님과 함께 실지 헤쳐오신 험한 길은 만리에 이를것이다.

빨찌산의 아들 장군님께서는 생의 첫시작부터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을 헤치셔야 했던가.

어머니란 말을 익히기도 전에 총소리부터 들으신 장군님! 따뜻한 요람대신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유격대원들과 함께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셔야 했던 날과 달은 얼마였던가.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일생에 한두번도 체험하기 어려운 시련과 역경을 생의 첫시작부터 헤쳐오신 장군님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백두산유격전구로 가시지 않았더라면 어리신 아드님께 상상하기 어려운 고생까지 시키지 않으셨을것이다. 만경대혈통을 이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아드님을 억세게 키우시려고 초인간적힘으로도 헤치기 어려운 험로역경을 달게 여기신 김정숙동지이시였다.

백두산유격전구와 북야영, 남야영에는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숙동지께서 조국과 인민앞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헌신의 의리가 자욱마다 새겨져있다.

장군님께서는 이곳에서 조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피를 흘린 사람들만이 체험할수 있는 해방의 환희와 격정, 해방을 눈앞에 두고 소부대활동에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유격대원들의 아픈 마음도 모두 체험하시였다.

북야영시절부터 세월은 얼마나 아득히 흘렀던가. 백두산3대장군을 모시고 조국에 돌아왔던 전우들중에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잊어서는 안될 귀중한 추억들마저 이제는 대부분이 세월의 이끼에 덮여버리였고 기억에서 희미해지였다.

순녀는 끝없이 밀려오는 격세지감이 흉벽을 때릴수록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몇토막의 추억만이라도 장군님께 보고드리고싶은 충동이 불쑥 치밀었다.

너무도 오래전 일들이고 너무도 어린 시절에 겪으신 일들이여서 장군님께서는 북야영시절의 하많은 사실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실수도 있었다.

순녀는 창가에서 물러나 책상앞으로 다가섰다.

순녀는 장군님께서 조국에 돌아오시면 편지를 드리고싶었다. 그날밤부터 순녀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순녀는 삭막해진 기억들을 되살리느라 며칠밤을 자지 못하였다. 순녀는 장군님께서 조국으로 돌아오신지 사흘이 지나서야 편지를 끝냈다.

순녀가 편지를 끝내던 날 아들 형무가 찾아왔다.

순녀는 자기 아들을 은근히 기다렸다. 순녀는 아들한테 편지를 주어 당중앙위원회로 가져가게 하고싶었다. 그러면 아들은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심정을 알게 될것이였다.

순녀는 아들이 나타나기 바쁘게 물었다.

《장군님께서 피곤이 몰리신것 같더구나.》

순녀는 로씨야 원동지역을 방문하시는 장군님의 영상을 텔레비죤화면에서 뵈오면서 축가신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무척 바쁘신 나날을 보내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 로씨야의 뿌찐대통령을 만나신 8월 23일의 울라지보스또크는 제2의 모스크바였다.

그이께서는 태평양 한 기슭에 서시여 광활한 로씨야 전지역과 전체 로씨야인민의 관심속에 조로친선의 새 무대를 펼치셔야 했고 세계평화와 자주화의 흐름을 주도하셔야 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순녀는 아들의 대답이 불만스러웠다.

《너희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니 그러지.》

순녀는 7천여리 먼길에 장군님께서 받아안으신 피로와 부담이 아들때문인것처럼만 생각되였다.

《네, 맞습니다.》

키가 큰 형무는 걸상에 앉지도 못하고 허리를 꺼꺼부정하고 순녀앞에 선채 연방 머리를 조아려보이였다. 형무는 늙은 어머니의 불만을 어떻게 풀어드렸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맸다.

철도부문에서는 한다하는 장령이고 가정에서는 할아버지이지만 어머니한테서는 아이취급을 당해야 한다.

《어머니, 그새 축가신것 같습니다.》

형무는 거의 두달만에야 어머니를 뵙는다. 형무는 둘째아들내외를 데리고 살고 순녀는 형무의 맏아들내외가 모시고있다.

장군님의 출발준비로 바쁘게 돌아치다가 어머니한테 인사도 못하고 수행의 길에 올랐던 형무였다. 형무는 조국에 돌아오기 바쁘게 맏아들한테서 할머니가 요즘 밤깊도록 책상앞에 앉아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형무는 80고개를 넘어선 어머니가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이렇게 말해놓고나서 자기 말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새 좀 무리하긴 했다만 난 아직 일없다. 너희들이 제 맡은 일을 잘해 장군님께 자꾸 부담만 끼치지 말아야 할게 아니냐.》

년세가 높아지며 근심과 노여움이 많아진 어머니이지만 너무도 지당한 말이여서 형무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형무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자기가 로씨야에서 가져온 지함을 방안에 들여오려고 응접실로 나왔다.

형무가 지함을 들고 나타났을 때 순녀의 노여움은 오히려 걷잡을수없이 커졌다.

《넌 장군님을 모시고 가서도 제 집에 가져올 꾸레미를 생각했냐?》

순녀의 목소리는 무척 랭랭했다.

《어머니, 그런게 아닙니다. 이건 저…》

형무는 지함을 방바닥에 내려놓고나서 이마에 내돋은 땀을 손등으로 마저 씻은 후에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였다.

…렬차는 하바롭쓰크를 가까이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렬차집무실에 앉아계시였다.

그이께서 마주하고 앉은 집무탁우에는 문건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외국방문에서 제기되는 당면문제들만 아니라 조국에서 시시각각으로 보내오는 문제들에 일일이 답변을 주셔야 하는 그이이시다.

지난 밤에도 그이께서는 문건처리와 협의회로 밤을 밝히다싶이 하시였고 방금전에도 수행성원들을 부르시여 급하게 처리해야 할 과업들도 주시였다.

당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집무실을 궤도우에 그대로 옮겨놓은가싶은 차안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고르롭게 울리는 렬차장단마저 들리지 않는다면 이 방에 좀처럼 찾아들기 어려운 고요였다.

형무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찾아왔으나 그이의 사색에 방해가 될것 같아 출입문앞에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창밖을 바라보시며 움직일줄 모르시였다.

푸른 주단처럼 펼쳐진 초원에 듬성듬성 서있는 줄기하얀 봇나무들은 이채로왔고 철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철탑을 따라 뻗어간 전선줄은 마치도 대자연의 환영악보를 적어넣으려는 오선지를 련상시킨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창밖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형무가 있는쪽으로 불시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여기로 와 앉으시오.》

장군님께서는 집무탁에서 일어나시여 책상앞에 두줄로 차벽을 따라가며 놓인 걸상에 자리를 옮기시였다.

형무는 장군님께서 앉으신 걸상 맞은켠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건강이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형무는 어머니를 만난지 오래여서 어정쩡한 답변밖에 드리지 못했다.

형무의 마음속을 순간에 들여다보신 장군님께서는 다시 물으시였다.

《조국을 떠날 때 어머니한테 들리지 못했습니까?》

《제 그만…》

《어머니의 건강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순녀어머니는 인간적으로 볼 때 동무의 어머니이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우리 혁명의 원로들중 한분입니다.》

형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어머니의 건강관리에 관심을 돌린다고 해왔지만 모자지간의 혈연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형무는 동료들속에서 효자라는 말을 듣는데 만족해하며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뜻과 너무나 거리 멀게 살아온 자신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머니년세가 어떻게 됩니까?》

장군님께서는 형무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여든셋입니다.》

《고령이지만 건강관리를 잘하면 얼마든지 장수할수 있습니다. 난 항일혁명투사들이 곁에 있다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배심이 생깁니다.

난 아직 어머니를 모시고있는 동무가 부럽습니다.》

형무는 가슴이 쩌릿해지면서 고온의 열이 온몸에 안겨지는가싶었다.

만민의 칭송과 흠모를 한몸에 지니고계시는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가정들에서 흔하게 보게 되는 어머니를 부러워하시였다. 너무도 일찍 어머니를 여의시고 한평생 이루지 못하는 장군님의 부러움이시였다.

벽에 걸려있는 전자알림판에서 오늘의 날씨가 불빛으로 나타났다. 순간도 조국을 잊지 못하시는 장군님의 심정을 헤아려 전자알림판은 로씨야 원동지역 날씨만이 아니라 평양을 비롯하여 조국의 주요지점의 기상기후상태를 감색의 불빛으로 새기였다.

장군님께서는 전자불빛알림판에서 형무쪽으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한가지 과업을 주려고 동무를 불렀습니다.》

형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든 장군님께서 맡겨주시는 과업을 훌륭히 수행하려는 결의와 각오로 가슴을 불태우며 형무는 장군님을 우러렀다.

장군님께서는 순간에 긴장해진 형무를 보시며 가볍게 웃으시였다.

《그렇게 긴장할건 없습니다. 철이 좀 지나긴 했지만 구할수 있을겁니다. 렬차가 하바롭쓰크에 도착하면 동무는 도마도를 좀 구하시오. 하바롭쓰크에서 심어서 딴것으로 말입니다.》

형무는 한동안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형무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나서 이렇게 계속했다.

《장군님께서는 저한테서 하바롭쓰크 도마도를 구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나서 그 도마도를 어머니한테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뭐, 나한테 도마도를?…》

순녀는 귀청이 떨어져나갈것 같은 굉음에 접한 사람처럼 놀랐다. 지금까지 듣지 못하던 사람이 온갖 음향으로 가득찬 새 세상과 처음으로 접하는것 같은 충격이기도 했다.

순녀는 북야영시절의 도마도 두알이 영화의 한장면처럼 선히 떠올랐다.

반세기가 넘는 너무도 오래전 일이였고 너무도 어리신 때 있은 일이지만 장군님께서는 북야영시절의 그 도마도를 아직 기억하고계시였다. 혁명전우들에 대한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의 사랑이 깃들어있고 두분의 백두산장군들께서 어리신 장군님께 대를 두고 돌려주시는 의리가 깃들어있던 도마도였다. 그 의리를 간직하신 장군님께서는 어리신 나이에 조국해방작전준비에 참가하신 어머님과 함께 한대오에 계시였다. 빨찌산의 아들 장군님은 조국해방성전을 체험하신 또 한분의 나어린 백두산장군이시였다.

순녀의 두눈에는 한가득 눈물이 괴여왔다.

《어머니, 장군님께서 그렇게 념려하시는데 건강을 돌보셔야겠어요. 요즘 어머니가 주무시지 못한다고 아이들이 마음을 놓지 못해요.》

순녀는 아들이 자기 며느리한테서 모든 사실을 구체적으로 들었음을 알았다.

《오냐, 알겠다.》

순녀는 아들 형무가 무엇을 그렇게 쓰느냐고 묻지 않은것이 여간만 다행스럽지 않았다. 이 순간 순녀는 장군님께 편지를 드리려고 한 자신이 뉘우쳐졌고 북야영시절의 단편적인 사실들을 두서없이 적어넣은 편지가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혁명의리를 빛내여나가시기에 온 겨레와 민족의 구심점이 되시였고 세계평화와 자주화의 흐름을 주도하시는 새 세기의 태양으로 솟아오르신것이 아닌가.

순녀는 자꾸 솟아오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찍어내며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지금까지 네 말이라면 별로 신통히 여기지 않았는데 건강에 주의하라는 말만은 명심하겠다. 장군님께서 그렇게도 마음을 못 놓으신다니 말이다.

이 에미걱정은 말고 너는 어서 가서 네 할일이나 해라. 할일이 좀 많으냐.》

순녀는 쫓다싶이 아들을 돌려보내고나서 책상앞으로 걸어갔다.

책상우에는 아들이 오면 주려고 깨끗이 정리해두었던 편지가 놓여있었다.

순녀는 편지를 보기가 부끄러워 책상빼람을 열고 그안에 집어넣었다.

순녀는 그 편지를 아들한테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는 장군님께서 지키며 빛내시는 의리를 전사가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교훈으로 될것이였다.

순녀는 창가로 걸어갔다. 순녀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하늘에서 빛나는 북극성을 찾았다.

북극성은 순녀가 서있는 아빠트창문으로 밝게 비쳐들었다.

그 별빛은 장군님께서 순녀가 사는 아빠트에 그리고 순녀자신의 마음속에 계심을 새삼스럽게 깨우쳐주는가싶었다.

별은 유난히도 반짝이였다. 밤하늘을 헤가르며 별찌가 흐른다.

의리로 빛나고 그리움에 출렁이는 바다에 쩜벙 뛰여들고싶다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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