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제11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고     백

                                                      정   준

 

1

 

일본 ××대표단의 안내와 통역을 담당한 차성훈은 사전에 대표단성원들을 료해하다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한것은 그 성원들가운데 80이 훨씬 넘은 미야모도 쥰스께라는 로인이 포함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아직 국교관계가 없어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리우고있는 조선과 일본은 비행기로 몇시간이면 오가는 거리이지만 다른 나라를 몇천km나 에돌아와야 했던것이다. 그 먼 비행기길을 고령의 로인이 오고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걱정스러웠다.

비행장에서 대표단을 영접할 때 차성훈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속에서 미야모도 쥰스께로인을 눈짐작으로 찾아보았다.

구부정한 허리에 뼈대가 굵은 장대한 체격인 백발홍안의 늙은이가 제꺽 눈에 띄였다. 얼핏 보면 환갑나이 비슷했지만 속일수 없는것이 나이라고 찬찬히 보니 부석부석한 탄력없는 얼굴에 먼길을 걸어온 인생의 세파를 그대로 반영한듯 크고작은 주름살이 코작은 그물처럼 빈구석없이 뒤덮여있었다.

류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로인을 맞이하던 차성훈은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로인의 목소리가 특이한것을 느꼈다.

장대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도 거쉰 목소리는 듣기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려장을 푼 대표단은 다음날부터 관례대로 방문일정에 따르는 사업을 시작했다.

차성훈은 자기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인 미야모도로인에게 첫날부터 각근히 대해주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을가 념려하여 뻐스를 타거나 내릴 때에도 눈여겨 살피였으며 부축도 해주었다.

이렇게 인간적뉴대가 이루어지자 로인은 그 석쉼한 목소리로 《안내원선생, 이 늙은이를 따뜻이 대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귀국방문기간 진심으로 도와주십시오. 내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측은하게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성훈과 로인은 더욱 친숙해졌는데 그 과정에 성훈은 그 일본인로인이 우리 나라에 대하여 각별한 호기심과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있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라기보다 무엇인가 뜻을 담은것 같았다.

만수대언덕의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대표단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를 증정할 때 로인의 표정은 눈에 뜨이게 엄숙했고 항일유격대원들을 형상한 군상앞에서는 하나하나의 세부들을 심각한 눈길로 오래오래 바라보는것이였다.

차성훈이 가까이 가서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운 항일유격대원들의 투쟁을 형상한 조각군상이라고 설명하자 로인은 자기도 알고있다고 하면서 무엇을 추억하듯 먼 하늘가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대표단이 대형관광뻐스를 타고 우리 나라의 명산 금강산을 참관하러 갈 때였다.

뻐스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항구문화도시 원산을 떠나 금강산으로 향했는데 마침 한창 진행중인 원산ㅡ금강산사이 관광철길공사장을 나란히 하고 달리게 되였다.

철길공사장은 불도가니처럼 끓어번졌다. 공사장 도처에 붉은 기발이 세차게 나붓기고 기계의 동음이 지축을 울렸다. 확성기에서 격동적인 노래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구리빛얼굴의 청년건설자들이 로반우에 레루를 설치하고있었다.

이때 대형기중기차가 도로를 횡단하는 바람에 뻐스는 잠시 길에 멈추어서게 되였다.

우연하게 맞다들게 된 건설장의 이 장엄한 모습은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이 극도에 달하고 전례없는 자연재해까지 련이어 겹친 엄혹한 환경속에서 불사신처럼 떨쳐나선 영웅적 우리 인민이 벌리는 투쟁의 일단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기회로 되였다.

격동으로 하여 가슴을 울렁이던 차성훈은 저도 모르게 뿌듯한 긍지와 자부심에 휩싸여 외국인들의 표정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외국인들의 표정은 감동이라기보다 놀라움에 더 가까운것이였다. 하긴 그들이 어찌 그 고상한 정신세계를 다 리해할수 있겠는가.

다음순간 차성훈의 시선은 미야모도로인에게 가 멎었다. 로인은 이때 건설장에 세워져있는 벽체만 한 대형선전화를 정신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그 대형선전화는 상단에 붉은 기폭을 휘날리며 백두광야의 눈보라속에 헤치면서 전진하는 항일유격대의 고난의 행군의 형상을 배경으로 하고 하단에는 청년건설자들이 붉은기를 선두로 몰려오는 비바람을 헤치며 전진하는 오늘의 투쟁모습을 형상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는 그림이였다. 그림밑에는 《모두다 〈고난의 행군〉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라는 글발이 두드러지게 씌여져있었다.

미야모도로인은 사진기를 꺼내더니 그 그림을 찍었다. 그 자리에서 사진이 찍혀나왔다.

길이 열리고 뻐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외국손님들이 아까와는 달리 말없는 침묵속에 각기 자기 생각에 골똘하고있었다. 어떤 사람은 멀어지는 공사장을 이윽토록 바라보기도 했다.

그중에도 미야모도로인이 받은 충격이 자못 큰것 같았다.

다음날 세계에 소리높이 자랑할만한 명승 금강산을 탐승하고난 손님들의 기분은 그야말로 절정에 다달았다. 모두다 금강산이야기로 흥성거리던 그날 저녁 미야모도로인이 맥주잔을 들고 차성훈에게 다가왔다.

《안내원선생, 옛날 원나라의 시인이 〈원생 고려국 일견 금강산〉이라고 읊었다지요. 말하자면 금강산을 보고 죽는것이 한생의 원이노라 하는 뜻이지요. 그러니 인생을 다 산 이 늙은이도 결국 소원을 성취한셈이지요.… 물론 인생말년에 모두가 못간다고 만류하는 길을 떠나 조선에 온것이 금강산을 보기 위한것만은 아니였지만… 귀국의 자연은 참으로 자랑할만 합니다.…》

차성훈은 류창한 일본말로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를 터놓았다.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의 말을 듣던 로인은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였다. 그것은 건설장에서 찍은 그 사진이였다.

《안내원선생, 이 그림에 대해서 좀 설명해주십시오. 조선에 와서 벌써 이런 그림을 여러번 목격했습니다.》

차성훈은 그림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끄시기 위하여 일제《토벌》대의 2중3중의 포위를 뚫고 단행한 력사적행군에 대하여 형상한것이다. 1938년말 남패자를 떠나 1939년초 북대정자에 이르는 그 간고했던 행군을 우리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오늘 우리 인민이 벌리고있는 투쟁이 바로 그 고난의 행군과 다름없다. 그런 정신으로 우리는 겹쌓이는 난관을 이겨내며 전진하고있다. 그 투쟁정신의 핵은 자기 령도자를 한목숨바쳐 결사옹위하며 령도자만을 믿고 따르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이다. 이런 내용을 알기 쉽게 이야기했다.

두손을 무릎에 포갠채 차성훈의 말을 열심히 듣고있는 로인의 자세는 마치 지식욕에 불타는 나어린 학생이 교원의 설명을 듣는 모습과 흡사하였다.

로인은 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중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남패자에서 북대정자라… 그러니 그 고난의 행군이 바로 1938년 겨울에 있은 일이란 말이지요.…》

로인은 생각에 잠겨 창밖을 점도록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참, 안내원선생, 귀국에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쓰신 여러권으로 된 회고록이 있다고 하는데 일문판으로 된것을 좀 볼수 없겠습니까?》

《왜 보여드리지 못하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을 로인님이 원하신다면야 이제 당장이라도 드리겠습니다.》

로인은 고맙다고, 책을 기다리겠다고 하며 일어섰다.

차성훈이 호실까지 로인을 안내하고 돌아서는데 호실문이 다시 열리더니 로인이 그를 찾았다.

《안내원선생, 오늘은 늦었으니 래일 아침에 봐도 괜찮겠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여러권을 다 읽을수 없는것만큼 저에게 그 고난의 행군시기가 반영된 권을 먼저 빌려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차성훈은 로인이 고난의 행군에 대해 왜 그토록 관심을 돌리는것일가 하고 생각하며 자기 방으로 향하였다.

다음날 아침 차성훈은 약속대로 고난의 행군시기가 반영된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7권(계승본)을 구해가지고 로인의 호실을 찾았다. 이날의 참관을 위하여 떠날 차비를 하던 로인은 책을 받자 몹시 기뻐하면서 진록색의 책뚜껑을 소중하게 어루만지였다. 그러면서 《세기와 더불어》라는 글발을 몇번씩이나 곱씹었다. 책뚜껑을 번진 미야모도로인은 거기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환히 웃으시는 모습을 정중한 표정으로 오래도록 보았다.

얼마후 일정에 따라 대표단일행이 참관지를 향해 호텔을 떠나게 되였는데 미야모도로인이 보이지 않았다.

차성훈은 로인이 왜 보이지 않는가고 대표단단장에게 물었더니 성격이 활달한 50대의 단장은 롱조로 《미야모도할아버지 말이지요. 찾지 마십시오. 할아버지야 가고싶으면 가고 있고싶으면 있으라지요. 우린 그 좌상로인을 례외로 생각한답니다.》하며 너그럽게 웃었다.

대표단일행이 하루참관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자 차성훈은 로인의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는가 걱정되여 그의 방부터 찾았다.

그런데 방문이 안으로 채워져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것이나 아닐가. 차성훈이 문앞에서 근심스레 서성거리고있는데 마침 호실관리원처녀가 나타났다.

차성훈이 로인에 대하여 묻자 처녀는 빙긋 웃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아침에 호실을 정리해드리자고 들어갔더니 글쎄 그 로인님이 돋보기를 쓰고 일문판으로 된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을 보면서 제발 오늘은 자기 혼자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는 안으로 문을 걸고 점심도 저녁도 안잡수시고있답니다.》

《식사를 안하다니?…》

《아침에 차와 빵을 요구하길래 갖다드렸어요.》

성훈은 하는수없이 다른 일을 보러 갔다가 밤 9시가 지나 다시 로인의 방을 찾았다.

침 문이 걸려있지 않았다. 차성훈은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방에 들어섰다.

때 로인은 창가에 서서 네온등이 명멸하는 밤거리를 깊은 명상속에 바라보고있었다.

기척을 느낀 로인이 성훈을 바라보았다.

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여있었고 눈두덩은 부석부석했다. 그러나 로인의 얼굴은 전에없이 생기로왔다. 미야모도로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큰걸음으로 차성훈에게 다가왔다.

《안내원선생, 방금전까지 주석님의 회고록을 다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침에 책을 받자 출발하기 전에 시간이 좀 있어 펼쳤댔습니다. 그러나 나는 책을 놓을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들고다니면서 짬시간에 읽는 그런 책이 아니였습니다.》

인의 그 특유한 목소리는 흥분때문에 떨렸으며 자주 중단되였다.

《과시… 희세의 위인의… 전기입니다. 나는… 한생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 못되지만 책을 잡아 단숨에 마감까지 읽은 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실로 력사의 풍운을 헤치시며 나라를 위해, 인민을 위해, 진리와 정의를 위해 한생을 바치신 위인의 생애가 주옥같은 명문장에… 아니, 자자구구가 붓이 아니라 심혼을 다해 쓴 세상에 하나뿐인 명저입니다.》

성훈은 80이 훨씬 넘은 고령의 이 로인에게 이런 열정적인 감정의 폭발이 어떻게 일어날수 있을가고 생각했다.

인은 책을 돌려주면서 체류기간이 너무나 짧은것이 유감이라고, 이제 하루가 남았으니 회고록 한권은 더 읽을수 있겠다고 절절히 말하였다.

성훈은 회고록을 다시 돌려주었다.

《로인님, 이 책을 로인님께 드리겠습니다.》

《예?!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인은 차성훈의 말이 진심이라는것을 알자 덥석 책을 받아들고 몹시 기뻐했다.

《이렇게 고마울데라구야… 빨리 제1권부터 구해주십시오. 이제부터 읽기 시작하겠습니다.》

《로인님… 그렇게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몸져누우면 어쩔려구 그럽니까? 회고록모두를 다 드리겠으니 귀국하여 읽어보십시오.》

《히야! 그러니 지금까지 출판된 회고록을 일식으로 저에게 주겠단 말입니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인은 어린애처럼 환성을 지르며 차성훈의 손목을 꼭 잡았다.

느덧 대표단의 방문일정이 끝나고 그들이 조선에서 보내는 마지막저녁이였다.

례대로 공식적인 작별연회가 열리고 격식을 갖춘 인사말들이 교환된 후 대표단성원들은 짧은 기간이나마 친숙해진 조선특산의 료리와 음식을 즐겨먹으며 방문의 잊을수 없는 나날을 회고했다.

회가 끝나고 헤여질 때였다.

야모도로인이 차성훈에게 다가왔다.

《안내원선생, 여기서 마지막으로 나와 이야기나 나눕시다.》

《예… 그런데 로인님이 래일은 비행기를 타고 먼길을 떠나야겠는데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내가 이제 다시 조선에 올수 없다는것은 밤이 새면 아침이 오는것처럼 명백하지 않습니까! 이제 저승에 가면 실컷 잘텐데… 그건 걱정일랑 마시오.》

인은 차성훈의 팔을 잡고 연회장 한쪽으로 이끌었다.

인은 접대원에게 제일 좋은 술을 요구했다.

대원이 술을 가져오자 로인은 성훈의 잔에 술을 부었다.

은 깊어가고있었다. 홀안에서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의 노래선률이 밤의 고요와 정서를 타고 조용히 흐르고있었다.

인은 술을 많이 못했다.

는 술잔을 들어 한모금씩 마시더니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표정은 추연해보이기까지 했다.

《안내원선생! 나는 사실 조선에 대해 몹시 알고싶어했고 동정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번 꼭 와보고싶었습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조선에 와보지 않았더라면 죽어도 한을 남길번 했습니다.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선인민은 위대한 인민입니다. 그 위대성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그 위대성을 낳는 힘은 무엇인지 저는 이번에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였습니다. 더우기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은 거대한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이 나를 부여잡았습니다. 쇠붙이가 좌석에 붙으면 그자체가 자화되듯이 나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내가 이 나라를 떠나면서 꼭 당신네한테 고백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백이라는 말이 나오자 차성훈은 굳어졌다.

늙은이가 대체 무엇을 고백한단 말인가.…

윽하여 로인이 그 석쉼한 목소리를 한층 가라앉히며 신음하듯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안내원선생! 나는 조선에서 지금 인민들이 그 정신을 따라배우고있는 바로 그 고난의 행군 때 항일유격대〈토벌〉에 참가했던 일본군〈토벌〉대 중대장이였습니다.》

《예?!》

소리에 소스라치며 차성훈은 경악한 표정으로 로인을 바라보았다.

기 힘든 말을 뱉아놓은듯 로인은 이마에 내밴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거센 한숨소리를 내였다.

묵이 흘렀다. 이런 경우 새 세대 청년인 차성훈이 뭐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인은 계속했다.

《나는 안내원선생으로부터 선전화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속에서 돌덩이같은것이 떨어지는것 같았습니다. 인생의 온갖 세파를 겪은 이 늙은 사람이 그렇게 놀라기는 처음이였습니다. 우선 그 년대가 내가 항일유격대〈토벌〉을 할 때와 일치했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남패자요, 북대정자요 하는 지명이 그때 군사지도우에서 자주 보았던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주석님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나는 혼자서 모대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나의 피할수도 잊을수도 없는 죄악에 찬 과거가 더욱 생동하게 살아올랐습니다.

는 참을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치욕을 무릅쓰고서라도 조선사람들앞에 나의 과거의 범죄행위를 고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 심정을 리해해주십시오. 만약 내가 이것을 고백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살아있는 기간 량심의 부담때문에 계속 괴롭게 모대겨야 할것이고 죽는다 해도 눈을 감지 못할것 같습니다. 물론 나의 고백은 한 일본인의 개인적인 범죄만이 아닌 문제이기도 하지만… 안내원선생! 당신은 조선사람을 대표하여 나의 고백을 주의깊게 들어주십시오.》

성훈은 조각상처럼 까딱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강구었다.

 

2

 

륙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미야모도 쥰스께중위가 만주로 들어간것은 1938년 가을이였다.

동군이 벌써 중국의 광대한 령토를 점령한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아시아의 맹주가 다된것처럼 허장성세하며 현훈증에 걸려 미쳐날뛸 때였다.

창 젊음으로 끓어오르던 미야모도는 관동군사령부의 참모부서에서 근무하라는것도 마다하고 《토벌》대의 중대장이 되겠다고 자진했다. 야구채처럼 단단한 체격에 한번 결심하면 기어이 하고야마는 사무라이기질을 가진 이 홍안의 청년은 항일유격대와의 대결에서 《야마도정신》을 발휘하여 사꾸라꽃잎처럼 흩어지리라 맹세를 다졌다.

때 일본은 《후방의 암》인 항일유격대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라는 일본천황의 칙령을 받고 유격대《토벌》에 총력을 집중하고있었다.

동군을 주공으로 조선주둔군 위만군과 경찰무력까지 만주의 황야에 밀물처럼 들이닥쳤고 항일유격대를 일격에 소멸하기 위한 전대미문의 대포위작전이 진행되였다.

지만 《창해일속》이라던 항일유격대는 소멸되기는커녕 여전히 승승장구하여 일본의 백만관동군을 크게 위협하였다.

《나는 유격대의 사령부를 추격소멸하는 진드기전술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방에서 보급로를 차단하고 그들이 지나갈수 있는 중요지점들마다에 부대들을 배치한 다음 일단 발견하면 교대로 그들이 쉴틈도 먹을틈도 잘틈도 주지 않고 진드기처럼 달라붙어서 추격한다면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정신력이 강한 유격대라 해도 필경은 눈무지속에서 굶어죽거나 얼어죽게 될것입니다.》

것은 미야모도가 피력한 주장이였다. 젊은 장교가 내놓은 이 기발한 안은 관동군 고위장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미야모도는 전도유망한 신진장교로 그 명성을 떨쳤다.

야모도의 중대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 출전을 기다리고있었다. 어느날 그의 부대에 항일유격대의 김일성사령부로 추측되는 부대를 발견했다는 정보가 왔다. 사령부라고 볼수 있는것은 붉은기를 선두에 날리며 행군하는 부대였기때문이라고 했다.

야모도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는 앞장에 서서 령하 40°가 넘는 눈보라속으로 중대를 서슴없이 들이밀었다.

러나 현실은 혈기에 넘친 청년장교가 생각하던것보다 몇배나 더 엄혹했다.

1938년의 겨울은 전례없는 강추위가 계속되였고 눈이 많이도 내렸었다. 뼈속까지 얼어드는 추위속에서 병사들은 허리치는 눈속을 헤치면서 벌벌 기다싶이 하며 한발자욱, 한발자욱을 힘들게 전진해야 했다.

격대사령부를 없애야 한다! 오직 이 한가지 야심으로 미야모도는 말그대로 진드기처럼 달라붙었고 병사들을 사정없이 몰아댔다.

러나 유격대는 《토벌》대의 추격에 쫓기는척 하다가도 기회만 있으면 불의에 역습을 들이대고 바람과 같이 유유히 눈보라속에 자취를 감추군 하였다. 《토벌》대는 종내 붉은기를 든 그 유격대의 종적을 잃고 눈속에서 허둥거렸다.

은 병사들이 한달도 못되는사이에 부상이나 동상으로 인하여 대오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나마 남아있는 병사들은 지칠대로 지쳐 사슬에 매인 개처럼 질질 끌려다니는 형편이였다.

지만 미야모도는 동요하지 않았다.

《멈춰서지 말라!》

격대사령부를 소멸하기 전에 병영으로 돌아간다는것은 군국주의광증에 미친 젊은 장교에게 있어서 할복자살하는것보다 못한 치욕이였다.

런데 눈보라가 얼마나 기승을 부리는지 군견들도 헉헉대면서 아무리 구령을 주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악에 받친 미야모도는 시퍼런 군도를 뽑아 옆에 있는 군견의 목을 사정없이 쳤다. 뎅강 개의 대가리가 눈속에 나뒹굴고 시뻘건 피가 눈우에 뿌려졌다.

포에 벌벌 떨며 그 광경을 바라보는 병사들에게 그는 야수와 같이 웨쳤다.

《멈춰서는자는 이 개새끼처럼 죽여버릴테다. 빨리 유격대사령부의 흔적을 다시 찾으라. 그들이 쉬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게 하라!》

실 이때 유격대는 일본군《토벌》대에게 완전히 포위되여 식량도 떨어진지 오랜 상태였다. 추격을 계속하면 그들이 천리수해의 눈무지속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종당에는 얼어죽거나 굶어죽게 되여 영영 소멸될것이였다.

격대도 사람이다. 초인간이란 없다. 끝장을 볼 때까지 추격하자. 미야모도는 오직 여기에 희망을 걸고 자기의 모든 힘을 다했다.

격전은 근 두달이나 계속되였다. 하건만 유격대는 굶어죽지도 얼어죽지도 않고 신출귀몰의 전법들을 쓰며 어데론가 계속 행군하고있었다.

《유격대가 귀신이 아닌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눈우의 사소한 흔적도 놓치지 말라!》

야모도는 잠을 못자서 벌겋게 피가 진 눈을 부릅뜨며 함정에 갇힌 맹수처럼 으르렁댔다.

느날 그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흔적을 찾고있을 때 척후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밀림과 경계를 이룬 산릉선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발자욱이 발견되였다는것이였다. 《토벌》대는 굶주린 승냥이가 먹이를 발견했을 때마냥 흔적을 놓칠세라 추격을 다그쳤다.

러나 얼마 못가서 그 발자국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가 한사람의 큼직한 발자국이 되여 다시 나타났다.

야모도는 계곡으로 뻗은 발자국을 살펴보며 쌍안경의 초점을 맞추고 멀리 산발을 훑었다.

그런 쌍안경의 렌즈속에 펄럭이는 붉은 기폭이 보이고 그뒤로 한줄로 늘어선 대오가 보였다.

럼 그렇겠지. 미야모도는 쾌재를 올렸다.

《사령부다! 속도를 다그치라. 이번엔 놓치지 말라!》

야모도가 선두에서 기염을 토하며 발자국을 따라 나갔다.

격대가 행군하던 그 지점에 이르니 또다시 유격대의 흔적이 없어졌다.

야모도는 어림짐작으로 방향을 정하고 계속 추격을 다그쳤다.

들이 밀림속의 훤한 공지에 이르자 거기에 난데없이 유격대가 잠시 쉬였던 흔적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간 흔적은 아무리 찾아보아야 없었다. 신출귀몰의 조화로 《토벌》대를 조롱하는것 같았다.

렇게 되자 실망에 빠진 병사들은 모래를 넣은 모래자루마냥 털썩털썩 눈우에 주저앉았다. 이젠 미야모도자신도 힘이 진할대로 진했다. 그는 진대나무에 기대앉아 군용지도를 펴들었다.

때였다. 눈우에 쓰러져있던 한 병사가 후닥닥 놀라 일어나더니 비명을 질렀다.

《여기에 유격대가 있다.》

기저기 무질서하게 앉거나 누워있던 병사들이 눈이 꼿꼿해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신나간 놈처럼 고아대던 병사가 미야모도에게 달려왔다.

《중대장님, 저기에… 저기에 유격대가…》

는 어찌나 혼절했는지 말도 제대로 못했다.

《뭐라구?!》

《유격대의 주검이 있습니다.》

《유격대의 주검이?!》

야모도는 순간 등골을 내리훑는 짜릿한 전률에 몸을 흠칫 떨며 불을 삼킨 놈처럼 벌떡 일어섰다.

가 병사들이 어깨성을 쌓은 곳으로 가보니 과연 거기에는 눈무지속에서 파낸 주검 한구가 있었다. 언 주검은 꽛꽛했다.

《토벌》대가 두달나마 천신만고하며 진드기처럼 추격하면서도 단 한번 가까이에서 보지 못한 유격대였다. 그런데 이렇게 산 유격대가 아니라 죽은 유격대원을 비로소 가까이에서 보게 될줄이야.…

격대는 아무리 어려운 정황이래도 주검을 제대로 감장한다고 한다. 지어 일본군대가 파헤칠가봐 어떤 때에는 봉분을 안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나무가지로 표시하고 눈속에 림시 안장한것을 보면 급한 정황이여서 후에 다시 처리하자고 했던 모양이였다.

사들은 공포와 호기심이 뒤엉킨 눈으로 주검을 바라보았다.

야모도의 심정도 다를바 없었다. 대체 어떻게 생긴게 유격대인가?

야모도는 눈을 쪼프리고 주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은 유격대원의 얼굴은 애티가 있어보였는데 스무살이 갓 지난 젊은이같았다.

퍼렇게 언 몸에는 갈기갈기 찢어진 홑겹의 군복이 입혀있다기보다 걸쳐있었다.

을 지그시 감은채 생각에 잠겨있던 미야모도는 드디여 제딴의 판단을 내렸다.

《이 젊은 유격대원은 분명 굶어죽은것이다.》

음순간 그의 뇌리에서 질문이 제기되였다.

런데 사람이 이런 상태에서 살수 있는가. 아니 그들은 산것이 아니라 간고한 행군과 힘겨운 전투까지 하고있다.

런 상태에서도 일본군한테서 빼앗은 보총을 가지고 아시아의 맹주가 된 강대한 일본제국과 굴함없이 맞서 싸우고있다는것을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른 유격대도 다 이런 최악의 상태에 처해있을것인데 하다면 창해일속에 불과한 그들이 무엇을 위해 무슨 힘으로, 무엇을 믿고 싸우는것일가? 대체 유격대는 이때까지 무엇을 먹었는가. 식량은 어데서 구하며… 어쨌든 무엇을 먹었길래 그 삼엄한 포위를 뚫고 지꿎은 추격을 받으면서도 눈무지를 헤치며 혹한속에서 행군을 계속하는것이 아닌가.…

상자리가 있는 유격대원의 몸에서는 마치 숨결이 붙어있는듯 선혈이 흰눈을 붉게 물들이고있었다.

야모도는 전류같은 오한을 느끼며 으드득 이를 갈았다.

의 눈에서 야수같은 섬광이 번뜩였다.

야모도는 주검앞에서도 공포에 떨고있는 자기의 병사들에게 짐승같이 울부짖었다.

《무서운 사람들…》

 

3

 

기까지 이야기한 미야모도로인은 갑자기 차성훈이가 걸상을 차고 일어서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격한 차성훈은 모두숨을 내쉬고있었다. 틀어쥔 두주먹이 떨렸다. 그는 리성을 잃은 사람처럼 무섭게 로인을 쏘아보며 웨쳤다.

《당신이… 당신이… 짐승도 낯을 붉힐 그런짓을 했단 말이요! 이 땅에 와서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음순간 차성훈의 내심에서 강한 심리적충격과 모대김이 일어났다.

수! 내가 이런 야수를 그렇듯 친절하게 대해주었단 말인가? 혐오감으로 하여 차성훈은 얼굴이 모닥불을 뒤집어쓴것처럼 화끈했다. 그 범죄가 반세기가 넘는 과거의것이라고 해서 어찌 용서할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럴수 없다! 그런 범죄에는 시효가 있을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차성훈의 틀어쥔 주먹은 와들와들 떨리였다.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황황 타올랐다.

인은 노기에 떨면서 떡 버티고 서있는 차성훈을 말없이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몇번 끄떡하였다. 그리고는 잔을 쭉 기울이고나서 빈잔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리고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안내원선생! 당신의 심정은 리해됩니다. 그것이 조선인민의 심정이라는것도… 그러나… 저주를 받아도 규탄을 받아도 치욕의 과거죄악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는것이 내 심정인걸 어찌겠습니까. 그것은 지난날 자기 죄과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일본인민들의 심정이기도 하고…》

의 목소리에는 진실이 깔려있었다. 그 진심을 페부로 느낀 차성훈은 가까스로 리성을 차리고 자신을 수습하며 걸상에 앉았다.

성훈이 진정하기를 기다리던 로인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내친김에 다 이야기합시다. 나의 이야기를 마저 들어주십시오. 죄를 지은자 벌을 받기마련이라는 격언이 있듯이 그후 나는 유격대의 호된 징벌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응당한 징벌을 말입니다.

는 그때 유격대의 주검을 그냥 놔두라고 명령했습니다.》

…미야모도중대는 다시 유격대의 흔적을 찾아 추격을 계속하였다.

젠 주검의 경우처럼 다 굶어죽게 된 유격대이니 조금만 더 추격하면 그들을 끝내 소멸하고 월계관을 쓸것이다. 미야모도의 심중에서는 이런 검디검은 야심이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자국에 대한 추격은 다음날 저녁까지 계속되였다.

러나 그때까지 굶어죽거나 투항하는 유격대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스러운 일이였다. 정말 풀길 없는 수수께끼였다.

때 척후를 섰던 병사가 헐레벌떡 달려와 보고했다.

《중대장님, 저기 보이는 공지 말입니다. 저기가 어제 낮에 우리가 죽은 유격대원을 발견했던 그곳 지형과 신통히 같습니다.》

《뭐야? 너 실성하지 않았는가?》

《아닙니다. 가보면 중대장님도 짐작이 있을것입니다.》

오를 이끌고 밀림속 공지에 들어선 미야모도는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형도 주변의 나무들도 분명 어딘가 낯익어보였다.

러니까 발자욱을 따라 결국 제자리에 다시 왔단 말인가? 이럴수가 있는가?

《주검을 찾아보라!》 그는 소리쳤다.

두가 여기저기 살피며 주검을 찾아보았으나 온데간데 없었다.

병사가 기겁한듯 소리쳤다.

《여기가 주검이 있던 곳이 틀림없습니다.》

《응?!》

야모도가 급히 그쪽으로 갔을 때 그 병사가 눈속에서 그 주검의것인듯 한 찢어진 군복쪼각을 들고있었다. 그런데 주검은 없다. 그러니 유격대원들이 그새 여기에 와서 주검을…

렇다면 유격대원들이 여기 어디 가까운 곳에 있을것이 아닌가. 그럼 매복이? 이런 불길한 조짐과 공포감이 미야모도의 뇌리를 비수처럼 찌른것은 순간이였다.

음순간 《따땅!》 첫 총성과 함께 이어 《따땅 따당 따따당…》 몰사격을 퍼붓는 총소리가 밀림속 좌우에서 콩볶듯 울렸다.

《중대장님, 매복입니다!》

황망조한 병사들이 벌써 혼절하여 이리저리 뛰다가 총탄에 맞고 눈속에 처박혔다.

러나 야마도의 정신은 이때에 필요한것이였다.

야모도는 권총을 추켜들고 무작정 《돌격!》 하고 소리쳤다. 그런데 그가 구령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잔등에 불뭉치같은 뜨거운것이 덮치는것 같은 무서운 타격이 느껴졌으며 동시에 얼굴전체가 앞방향으로 날아가는것 같았다.

《악!》

야모도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기까지 이야기한 미야모도로인은 이젠 네온등이 꺼진 창밖을 내다보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안내원선생, 나는 관동군병원 침대에서 한주일만에 의식을 차렸습니다. 나의 몸에는 온통 붕대투성이였습니다.

몽속에서처럼 지난 일을 돌이켜본 나는 내가 돌격을 웨치던 그 순간 유격대의 기관총알이 몰방으로 날아와 잔등을 뚫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에 안 일이지만 그날 유격대는 신묘한 유인매복전으로 무섭게 복수탄을 퍼부어 우리 〈토벌〉대를 말그대로 몽땅 전멸시켰습니다. 거기서 나만이 천명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나도 사실은 시체들속에 실려가다가 구사일생으로 소생되였던것입니다.

렇게 병원에서 몇달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나는 자기 어머니가 준 목소리마저 잃어버린 페인이 되고말았습니다.…》

성훈은 이제야 로인의 목소리가 왜 이지러졌으며 거쉰 목청에 섞여나는 휘파람소리같은것은 페가 상한데서 생긴것이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나는 한생을 두고도 풀수 없었던 수수께끼, 당신들이 고난의 행군이라고 이름지은 그 시기에 그 무서운 혹한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그 무서운 식량난속에서도 굶어죽지 않은 비결을 주석님께서 쓰신 회고록을 보면서 알게 되였습니다.

석님께서는 산에서 싸울 때 음식같은 음식은 마음대로 먹을수 없었다고, 산나물이나 풀뿌리, 나무껍질로 끼니를 에울 때가 많았다고 쓰시였습니다.

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에 참가한 모든 대원들이 만난을 이겨내고 불사신으로 남아 승리자로 되게 한 요인은 무엇보다도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혁명적락관주의이며 혁명적동지애라고 하시였습니다.…

렇습니다. 고난의 행군과 같은 행군을 한 위대한 력사를 가진 인민에게는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군의 력사를 유산으로 가지고있는 인민은 어떤 힘으로도 정복하지 못합니다.》

인은 손을 떨면서 술병을 찾아들고 잔에 부었다.

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훈은 그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로인에게 말했다.

《로인님, 량심있는 일본사람들은 로인님처럼 지난날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범죄행위를 뉘우치면서 조일관계의 정상화를 주장하는데 일본정부는 왜 아직 그 모양입니까?》

인은 금시 활기를 찾았다.

《내가 말하자는 고백속에 바로 그것이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범죄의 고백은 인륜과 량심에 대한 한 국민의 고백이지만 사실 조선인민앞에 일본이 저지른 죄악은… 말로나 해서는 될 문제가 아닙니다. 하긴 일본정부의 당국자도 조선정부에 정식 사죄한다고 말은 하였지만 과거 조선에 대한 범죄와 략탈,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을 말로 사죄한다고 하여 어찌 그 죄악을 씻을수 있단 말입니까, 예?》

격한 로인은 그 석쉼한 소리를 짜내듯 하면서 분노의 목소리를 맘껏 터치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와 송골송골 내돋힌 이마의 땀을 씻으며 말했다.

《생각해보십시오. 조선인민이 그것을 어떻게 용서한단 말입니까? 합법적인 한 나라의 정부를 총칼로 위협하여 강제로 병합하고 40여년 그 자원과 인력을 무제한 략탈하여 살찐 일본, 조선사람들을 마소처럼 부려먹고 침략전쟁의 대포밥으로 몰아넣은 범죄, 더우기 수십여만의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전대미문의 특대형범죄를 몇마디 말로나 몇푼의 〈국민기금〉으로 보상하다니 말이 됩니까. 후안무치해도 분수가 있지. … 사실 지난 시기 구일본군은 조선사람을 몇명 죽이는것쯤은 쉬운 일로 여겼습니다. 나도 례외는 아니였지만 당시 일본제국의 풍토우에서 홍수처럼 범람했던 인간증오사상, 대륙침략의 야망에 대한 교육의 산물로 나도 야수화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본사람들이 야수화되여 큰죄를 범했고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지금 선량한 일본사람들은 일본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부끄럽게 여기고있습니다.》

성훈은 로인을 향해 말하였다.

《로인님말씀이 옳습니다. 로인님의 말대로 일본군국주의가 바로 일본인민들을 범죄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각료들이 〈야스구니진쟈〉에 참배하러 가서 죽은 군국주의망령들의 혼을 부르며 〈아시아제패〉의 개꿈을 꾸니 이것이야말로 격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일본군국주의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천추만대를 두고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그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입니다.》

성훈의 말에 로인은 고개를 연방 끄덕이며 긍정하였다.

《옳습니다. 지금 일본정부는 조선인민에 대한 사죄를 마치 무슨 〈선사품〉으로 생각하는데 조선인민은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기를 바라지만 절대로 빌붙지는 않는다는 민족자주의 립장을 가지고있다는것을 나는 이번에 똑똑히 알았습니다. 조선인민은 자기의 령도자를 굳게 믿고 령도자를 결사옹위하며 령도자가 가리키는대로 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철의 신념을 지니고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하루이틀에 생긴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이 따라배우고있는 고난의 행군정신이란 어떤것인가를 그 행군의 목격자로, 체험자로서 증언할수 있습니다. 회고록을 읽고 나는 반세기가 넘도록 알지 못하고있던 사실앞에서 큰 충격을 받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고난의 행군때 내가 〈토벌〉대를 이끌고 유격대사령부라고 진드기처럼 추격했던 그 붉은 기발의 대오가 사령부가 아니였다는것을 알았을 때 나는 놀랐습니다. 사령부로 쏠리는 위험을 자기들이 맡아안고 사령부의 안전을 목숨걸고 지켜싸운 오중흡이라는 련대장이 이끄는 7련대라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내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늘 당신네 나라 인민들은 그때의 그 정신으로 싸우고있으니 지난날도 이겼지만 오늘도 래일도 반드시 이긴다는것은 명백한 리치입니다. 만일 일본이 이것을 모른다면 그 밀림속에서 내가 받은것처럼 징벌을 면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하고싶습니다. 귀국을 떠나기에 앞서 내가 당신들에게 꼭 이 말을 하고싶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과거죄악의 고백이면서 만난을 뚫고 거연히 일떠서는 오늘의 조선인민들에게 머리를 숙인 탄복의 고백입니다. 나는 이것을 일본정부앞에서도 숨기고싶지 않습니다. 일본정부는 한 국민의 이 고백을 심사숙고하여 들어야 하며 후회될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지은 죄를 벗지는 못할망정 그 죄를 덧쌓지는 말아야 합니다. 일본이 조선인민에게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는것자체가 바로 죄를 덧짓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일본정부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은 땀을 씻은 다음 정숙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안내원선생, 내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이 늙은이가 이제 살면 얼마 살겠습니까. 하지만 조선에 오지 않았다면 나머지 여생을 덧없이 보낼번 했습니다. 고백을 하니 마음이 가볍고 10년은 더 젊어진것 같습니다. 나는 젊어진 그 10년을 합쳐 일본과 조선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에 바칠 결심입니다.》

성훈은 로인의 손을 꽉 잡았다.

《로인님,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여 오래 사십시오.》

는 로인의 건강을 바라며 마지막잔을 찧었다.

튿날 오전 일본대표단은 우리 나라를 떠났다.

행장에서 차성훈은 미야모도 쥰스께로인에게 그의 소원대로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을 안겨주었다.

인은 백번 고맙다고 사례하고 훨씬 정정해진듯 허리를 쭉 펴고 젊은 사람처럼 씨엉씨엉 비행기승강대에 올랐다.

마후 비행기가 리륙하였다.

어지는 비행기를 이윽토록 바라보는 차성훈은 로인의 얼굴을 그려보며, 유표한 그 목소리를 생각해보며 자기가 위대한 김일성민족의 한 성원으로 살며 일한다는것이 얼마나 긍지로운것인가를 새삼스럽게 가슴뿌듯이 느꼈다.

행기는 조국의 가없이 푸르른 하늘속으로 점이 되여 사라졌다.

러나 차성훈은 소중한 그 느낌을 오래 간직하려는듯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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