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6(2007)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한 철 순 쟁반같은 보름달이 은실을 수놓은 대지는 대낮처럼 밝았다. 로동자문화회관옆에 서있는 한그루의 아름드리버드나무가 봄밤의 훈향에 실실이 내리드리운 가지를 가볍게 흐느적이고있었다. 그 나무아래에서 압축기운전공 백성심은 탄광마을을 바라보고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살림집들에서 파르스름한 불빛이 비쳐나오고 울안에 서있는 과일나무가지에서 싹트기 시작한 새순들이 달빛에 푸르스름하게 보인다. 현대적인 미감이 나게 지은 문화회관뒤로 커다란 산을 이룬 저탄장이 바라보인다. 회관안에서는 노래소리, 웃음소리, 각이한 악기소리들이 봄밤의 정취를 불러일으키며 흥겹게 울려나온다. 경사로운 봄명절을 맞으며 진행할 탄광예술소조공연을 위한 중대별예술소품판정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성심은 아까부터 굴진돌격대 대장인 강철이가 오지 않나 하여 갱입구쪽과 합숙을 눈이 빠지게 바라보고있었다. 성심은 강철이와 함께 굴진돌격대를 대표하여 2중창을 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경연이 시작되여 다른 중대들이 출연하기 시작한지 퍼그나 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강철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야, 참! 왜 아직 안올가?…) 오늘 아침 강철은 굴진막장으로 가던 길에 압축기실에 들려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성심동무! 오늘 저녁 7시에 중대별예술공연판정을 한다누만. 한번 잘 불러보기요. 련습을 단단히 하라구!》 그리고는 자기의 걱정은 말라는듯 빙긋 웃어보이며 씽하니 돌아서나갔다. 성심은 강철이를 알게 된 후 그에게도 역시 처녀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도고성》을 유지하였으나 웬일인지 류다른 호기심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며칠전 휴계실에서 오락회를 벌렸는데 굴진공들의 강요에 못이겨 함께 부른 2중창의 여운때문인지… 두사람의 안삼불이 딱 맞는다고 굴진공들은 휴계실이 떠나갈듯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였다.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구만.》 《대장동무의 목소린 성심동무의 목소리와 합치기 위해 생겨난것 같구만.》 《아니, 아니. 성심동무의 목소리가 반대로…》 《하하하!》 악의없는 호방한 웃음소리에 성심은 몸둘바를 몰라하며 압축기실로 달려갔다.… 굴진돌격대의 순서가 뒤로 밀리우고 판정이 거의 끝나갈수록 성심의 가슴속에서는 고까운 감정이 서서히 차올랐다. 갱장이 안절부절 못해하며 여기저기 사람들을 띄웠으나 강철은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여 판정이 끝나고 무대막이 닫겼다. 탄광예술소조책임자가 성심이 들으란듯 투덜거렸다. 《굴진돌격대가 규률이 없단 말이요. 대장이란 사람이 이 모양이니… 굴진돌격대는 자격박탈이요!》 예술소조책임자는 불만에 찬 목청을 회관장내에 남겨놓고 나갔다. 무대뒤에 서있던 성심은 그만에야 온몸의 힘이 빠져버린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로 그때 회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철이가 헐떡거리며 들어섰다. 텅 빈 장내와 주저앉아있는 성심이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하 이거, 한발 늦었군… 성심동무,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소.…》 《동무때문에 우린 자격박탈을 당했어요. 그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책임질수 있어요?》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성심은 가까스로 눌러버렸다. 숨가쁘게 오르내리는 두어깨, 미처 갈아입지 못한 작업복… 무슨 급한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화려한 무대우에서 노래를 잘 불러 굴진돌격대의 명예를 한껏 떨쳐보자던 욕망을 물거품처럼 만들어버린 강철의 소행을 리해하기 힘들었다. 더우기 전번날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가 자기와 함께 노래부르는것을 달가와하지 않는것 같았다. 며칠전에 강철이가 함께 퇴근하자고 해서 한시간씩이나 눈이 까맣게 기다렸으나 종내 오지 않아 혼자 퇴근하였었다. 다음날 강철은 몹시 미안해하면서 버럭적재기를 수리정비하다나니 시간이 어느새 지나갔는지 몰랐다고 변명하는것이였다. 성심은 그때 그의 말을 들으며 노여웠던 마음이 다소 풀어졌다. 사람들은 탄광에서 《련속천공》, 《련속발파》라는 말은 잘 알아도 《련속버럭처리》라는 말은 잘 모르고있다. 버럭처리를 따라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천공속도가 빠르다 해도 굴진속도는 앉아뭉개게 되는것이다. 굴진에서 버럭적재기의 리용을 파악하고 고장났다고 뒤전에 밀어놓은 적재기를 살리려고 애쓰는 그의 잡도리가 남달랐다. 《성심동무! 내 가서 사정이야기를 해보겠소.》 하고 강철이가 뛰쳐나가려는것을 성심이가 만류하였다. 《그만두세요. 전 사정하면서까지 노래부르고싶진 않아요.》 그리고는 홱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다. 《성심동무!》 강철이가 뒤따라오며 불렀으나 성심은 아무 대꾸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밝은 달이 웃고있었지만 마음은 허전하였다. 강철이를 처음 만나던 불쾌하기도 하고 즐거웁기도 했던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새로운 탄밭을 확보하기 위해 제대군인들로 무어진 굴진돌격대가 차가덕3호막장에 진입하였다. 들리는 소문에 강철이라는 제대군인이 돌격대 대장으로 임명되였는데 그는 다름아닌 작년에 탄광지배인으로 일하다가 상급기관 기사장으로 올라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몇달은 실히 걸려야 할수 있는 방대한 작업량을 석달이내로 착탄시키겠다고 장담한 배짱있고 패기있는 청년이라고 처녀들이 귀속말로 속삭이였다. 총각들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처녀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하였지만 더우기 그가 전 지배인의 아들이라는것이 친근감과 동시에 불신임도 작용하였다. 굴진돌격대를 맡아 한번 이름이나 떨치고는 부모님들을 따라 도회지로 날아갈것이라는 말들도 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처녀들은 성심이네 1호압축기가 굴진돌격대에 배속되여 바람을 보장하게 되자 은근한 눈길과 속삭임으로 성심이를 강철의 곁으로 떠밀지 못해 안달이 나하였다. 압축기운전공년한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책임성이 높고 일 잘하는 성심이를 온 탄광이 사랑하였다. 인물곱고 탄광의 꾀꼴새로 불리우는 그에게 일부 총각들이 대담하게 접근해오기도 하였지만 처녀의 도고한 자세를 허물지 못하였다. 압축기에 주입할 기름을 가지러 갱안에 있는 분창고에 가던 성심은 차가덕막장과 사갱이 어기는 곳에서 멈춰섰다. 방금전에 사갱뽐프운전공이 물을 퍼올렸는지 걸음길에까지 구간구간 물이 차있었던것이다. 수로가 막히면 이런 현상이 가끔 생기군 한다. 그는 수로우로 길게 뻗어간 공기배관우에 올라섰다. 물이 찬 구간을 배관타고 건너가자는 생각에서였다. 공기배관은 압축기실에서 나와 막장들마다 피줄처럼 뻗어있었다. 몇걸음 내짚었을 때 갑자기 곁굴에서 안전등불빛이 확 비쳐나왔다. 이어 날카로운 웨침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동무! 정신있소?》 성심은 화닥닥 놀라 걸음길에 내려섰다. 그러자 질벅한 바닥의 새까만 석탄물이 신발을 적셔버렸다. 못된 장난을 하다가 들킨 아이들의 심정이 된 성심은 새까맣게 탄물투성이가 되여버린 신발을 살펴볼 경황이 없었다. 안전등불빛을 번뜩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새로 무어진 굴진돌격대장 강철이였다. 그의 어깨에는 방금 벼린 정대가 메워져있었는데 정머리에 박힌 경질금속날에 하얀 붕사가루가 묻어있었다. 노란색안전모채양아래에서 붓으로 꾹 찍어놓은듯싶은 굵은 눈섭이 우로 치켜올라갔다. 이목구비가 환한 얼굴에서 부리부리한 두눈이 류달리 인상적이였는데 성난 기색이 가득찼다. 하지만 상대가 처녀여서인지 굳어졌던 얼굴근육이 약간 풀어지고 부드러운 기색이 어렸다. 그러나 입에서는 모가 선 말이 튀여나왔다. 《신발이 어지러워지는건 알면서도 막장의 숨결을 생각 못하다니? 한심하구만.》 성심은 얼굴이 꽈리알처럼 새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나직하게 울린 그의 말은 한마디의 변명도 할수 없게 하였고 저도 모르게 자기의 행동을 돌이켜보게 하는 차분한 맛이 있었다. 수년간이나 압축기운전공으로 일해오면서 배관으로 흐르는 공기가 막장의 숨결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강철은 웃주머니에서 분필을 꺼내더니 꿇어앉아 배관이음짬에 화살표식 같은것을 해놓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 가버렸다. 표시한 곳을 들여다보니 배관이 아래로 처지면서 배관이음짬이 약간 벌어졌는데 그 짬으로 공기가 새여나오고있었다. 새발의 피같은것이지만 티끌모아 큰산이라고 막장적으로 보면 결코 작은 량이 아니였다. 작업이 끝난 후 성심은 배관수리공을 찾아 지령실로 가다가 누군가가 배관터진 곳에서 작업하고있는것을 보고 다가갔다. 《?!…》 그는 다름아닌 강철이였다. 동그랗게 오려낸 고무판을 이음철판면에 대고 솜씨있게 나트를 조이는 손동작이 얼마나 날렵하고 자신있어보이는지 저도 모르게 감탄이 쏟아져나왔다. 주변에는 공구주머니와 나사틀개, 집게 등 소공구들이 널려있었는데 온 정신을 집중한 얼굴에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성심은 급히 다가가 바닥을 더듬는 그의 손에 나사틀개를 쥐여주었다. 볼트에 나사를 물리고난 강철이가 머리를 돌렸다. 《아! 성심동무요? 고맙소.》 아침에 있은 일은 잊어버린듯 흔연히 대해주는 그를 보니 성심은 가슴속이 차분히 젖어들며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 안됐어요. 저때문에…》 《그게 왜 동무때문이겠소? 나무받침대가 썩어서 배관이 내려앉은거요. 쇠라는건 석탄에 꼼짝 못하거던.》 잘못을 탓할 대신 오히려 두둔해주는 그의 대범한 말에 성심은 머리가 숙어졌다. 그는 일손을 거들어주며 물었다. 《그런데 이건 배관수리공에게 알려주면 되지 않아요?》 《그러면 되지. 하지만 난 이걸 남의 일이라고 생각지 않소. 탄약없는 기관총을 생각할수 없듯이 바람없는 착암기는 막대기보다 못하오. 착암속도는 곧 바람이 아니겠소? 새로운 발파법도 중요하지만 한줌의 공기도 류실되지 않게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어떻소?》 강철은 공구들을 기름걸레로 닦으며 빙긋이 웃는다. 《그렇긴 한데… 일부 사람들은, 아니 저부터가 공기가 조금씩 새는건 있을수 있는 일로 생각해왔지요.》 성심은 자기의 실수를 털어놓으면서도 웬일인지 창피하거나 수치감보다 솔직하고 기꺼운 감정에 잠겨들었다. 《성심동무! 난 어쩐지 이 배관으로 흐르는 공기가 단순히 착암기나 적재기를 돌리는 바람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소. 어버이장군님께 드리는 탄부들의 티없이 깨끗한 마음은 발파소리이고 발파소리는 공기가 있어야 울릴수 있는게 아니겠소? 그러니 이 공기야말로 막장의 숨결이고 생명이라고 할수 있소.》 마디마디 흐르는 진정이 성심의 마음속 금선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속에 강철이에 대한 믿음의 감정이 봄싹처럼 싹터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땀을 씻으세요!》 성심은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아! 괜찮소. 손이 어지러운데 손수건 마치겠소.》 강철은 사양하면서 팔소매로 땀을 뻑 문댔다. 성심은 미소를 지으며 쌍까풀진 고운 눈을 흘겼다. 새초롬한 표정을 지을 때조차 새물새물 웃는다는 말을 듣는 수정같은 눈동자에 순진한 호기심이 어려있었다. 대체로 제대군인들을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서 왁왁 소리치며 몸을 내대다가도 이럴 때 보면 어질고 순박한것이 특징이다. 《대장동무답지 않군요. 어지러워진 손수건이야 빨면 되지 않나요?》 진중한 눈길로 성심을 바라보던 강철은 말없이 손수건을 받아 이마의 땀을 훔쳤다. 흰눈같이 새하얗던 손수건이 삽시에 얼룩덜룩해졌다. 《고맙소, 성심동무!》 꾸밈없이 진실한 웃음을 짓는 강철이를 바라보는 성심의 마음도 사뭇 즐거웠다. 초면에 《경계심》을 가지고 대할수록 《처녀의 도고성》은 모래뚝처럼 무너져내리는것을 그자신도 걷잡기 어려웠다. 이때 갑자기 안전등불빛이 약해지더니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퇴근시간이 퍼그나 지났으니 안전등이 다 방전된 모양이였다. 걸음길의 조명등도 죽어있었다. 그제서야 성심은 아침에 갱장이 차가덕3호막장에 전기를 가설하기때문에 1시간동안 정전을 시키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밖으로 나갈 일이 야단이구만.》 《글쎄 말이예요.》 성심이도 근심이 되여 망연히 서있는데 강철이가 방도를 내놓았다. 《자, 충전지통을 하나로 합쳐서 불을 켜보기요.》
《아! 그게 좋겠어요.》 두개의 충전지통을 합쳐서 련결한 다음 불을 켜니 한결 밝아졌다. 《자, 어서 나가기요.》 성심은 앞에서 성큼성큼 내딛는 강철의 발걸음을 따라가느라 부지런히 잰걸음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궁금한것이 있어 물었다. 《참, 아까 보니 배관수리에 퍼그나 솜씨있어보이던데요?》 《솜씨야 무슨, 몇년전에 물길공사에 동원되였을 때 압축기를 돌리며 착암을 했댔소. 그때 좀…》 《그래요?》 사회주의건설장마다에서 위훈떨치고있는 인민군대임을 잘 알고있는 성심이였지만 압축기까지 돌린줄은 생각도 못하였다. 조금 지나 가물거리며 겨우 앞을 밝히던 안전등불빛이 희미해지더니 끝내 죽어버렸다. 《어마나!》 성심은 저도 모르게 비명소리를 지르며 두손을 앞가슴에 모아쥐였다. 먹물을 풀어놓은듯 한치의 앞도 가려볼수 없는 어둠이 삽시에 막장안을 꽉 채웠다. 《하, 끝내… 할수 없지. 자 내 손을 잡소. 놓치면 안되오.》 아마 다른 때 총각의 손을 잡으라고 누가 말했다면 깔끔한 눈초리를 따벌처럼 쏘아박았을것이다. 하지만 군소리없이 강철의 커다란 손바닥에 자기의 자그마한 손을 얌전히 맡겼다. 단 한치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불없는 막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오직 전차레루우에 한발을 올려놓고 질질 끌면서 전진하는것뿐이라는것을 잘 알고있는 성심이였다. 난생처음 총각의 손을 잡고보니 가슴이 활랑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강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발을 레루우로 끌면서 수걱수걱 앞으로만 내디딘다. 성심은 자기의 속마음을 강철이가 엿보는것 같아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꺼냈다. 《저… 강철동지, 한가지 물어도 좋아요?》 《뭔지 말하오.》 《제대되기 전에 사관장을 했다지요?》 《허, 소식통이 빠르구만.》 《처녀들은 제대군인들에 대해서 모르는것이 없어요.》 《그래? 그럼 나도 주의해야 하겠는걸, 하하하.》 《호호… 저… 그런데…》 성심은 끙끙 갑자르기만 할뿐 선뜻 말을 잇지 못하였다. 《뭔데 그리 심중해서 그러오?》 강철이가 재촉하자 성심은 이미전부터 궁금하던것을 물었다. 《저… 상급기관으로 올라가신 부모님들을 따라가야 하지 않나요?》 순간 강철은 아픈데를 찔리운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어둠속이라 그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딱한 물음을 던진 자기를 쏘아보는것 같아 성심은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저… 제가 묻지 말아야 할 말을…》 강철은 아무 대꾸도 없이 성심의 손에 가볍게 힘을 주며 다시 발걸음을 뗐다. 나직하면서도 절절한 말이 갱안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아니요. 난 사실 그때문에 생각이 많았소. 제대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혁명적군인정신이 희박해지기 시작하였거든.… 여긴 내 고향이 아니요. 아버진 내가 군대에 입대할 때 이 탄광 지배인으로 오셨고 제대되여오니 또 상급기관으로 올라가셨소. 그래서 부모님들을 따라가서 함께 살 생각도 해보았댔소. 하지만 자기를 키워준 부모를 잘 모셔 자식된 도리를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걸음걸음 이끌어주고 내세워준 조국의 은혜에 먼저 보답하는것이 인간의 의리라고 생각하였소. 당이 부르는 곳이 바로 우리 제대군인들이 제대배낭을 풀어놓을 곳이거든.》 강철의 마음속 진정을 듣는 성심은 가슴이 찡해올라 무엇이라 형언키 어려웠다. 《성심동무! 내가 제대될 때 우리 련대 정치위원동지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소.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어버이장군님께서는 나라의 석탄일보를 받아보시고서야 하루일과를 시작하신다고 말이요. 그 말이 얼마나 가슴치던지… 공업의 식량인 석탄이 없으면 나라의 경제가 멎어서게 되는거요. 그래서 난 부모님들이 섰던 이 탄광막장에 청춘을 바치리라고 결심하였소.》 강철의 이야기를 듣는 성심의 가슴속에는 크나큰 격정이 파도처럼 설레이였다. …다음날 아침, 압축기를 인계받은 성심은 작업일지를 펼쳤다. 《가동시간》란에 어제 저녁 여섯시부터 여덟시사이에 압축기가 고장나서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적혀있었다. 무대에 설 노래련습을 한다는 기분에 들떠 정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기대를 신입생운전공에게 인계하고 떠난것이 몹시 불안하였다. 그는 저녁에 퇴근하면 신입생인 옥주를 만나 사연을 물어봐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준비작업을 끝내고 압축기스위치를 넣으려는데 강철이가 들어섰다. 버럭처리를 했는지 얼굴에 돌가루가 묻어 검실검실하였다. 새로운 발파법을 연구하느라 또 밤을 새운탓인지 눈가에 피곤이 가득 실려있었다. 하지만 성심은 어제 저녁 공연판정에 참가 못한 일을 생각하니 기분이 흐려져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성심동무! 어제 저녁엔 정말 안됐소.》 강철은 성심이에게 다가오더니 무척 미안한 어조로 말을 건네였다. 《안될게 있어요?》 성심의 입에서는 곱지 않은 말이 튀여나왔다. 《허허, 무척 노했군. 성심동무! 우리 새 탄밭을 착탄시키는 날 온 소대와 함께 저 차가덕등판으로 야유회를 가는것이 어떻소? 거기서 저 울창한 밀림을 무대로 노래를 부르잔 말이요.》 《아니요. 전 아무래도 동무의 노래상대가 못되는가봐요.…》 성심은 여전히 노여움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그러나 강철은 그쯤한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듯 대범하게 웃어버리더니 한걸음 더 다가섰다. 《성심동무! 한가지 부탁이 있소. 오늘부터 신입생운전공들과 함께 기대를 돌려주었으면 하는데… 새로운 발파법을 시험해봐야 하겠는데 신입생들이 마음놓이지 않아 그러오.》 성심은 은근히 부아가 솟구쳐올랐다. 자기때문에 무대에 나가지 못하게 된 자책은 있는것 같지 않고 요구만 들이대는 그가 막 미워났다. 성심은 강철의 말을 통해 그가 연구하는 평행식속빼기발파방법을 잘 알고있었다. 지금까지 굴진에서 자주 쓰는 속빼기각식발파방법은 천공구멍을 경사지게 뚫기때문에 깊이 뚫지 못하고 버럭덩이를 크게 떨구어 적재작업에 애로를 주고있었다. 그러나 강철이가 연구한 평행식속빼기발파방법은 구멍깊이에 제한이 없고 버럭덩이가 잘기때문에 적재기를 쓰기가 편리해 종전보다 속도를 한배반이나 당길수 있었다. 암석의 질, 발파구멍각도, 깊이, 개수, 폭약의 량, 매 요소들에 작용하는 지압과 세기에 대한 까다로운 계산, 새 발파방법을 연구하느라 연구소에 조언을 받으러 몇번이나 다녔는지 모른다. 필요한 기술도서들을 얻느라고 뛰여다닌 그의 수고를 잘 알고있는 성심은 부탁을 들어주고싶었지만 그의 요구를 랭정하게 거절하였다.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강철은 《그렇소? 그렇다면 할수 없지.…》하고는 약간 서운한 기색으로 나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계기바늘이 쑥 올라가는것을 보고 성심은 스위치를 껐다. 착암수들은 천공작업이 끝나면 신호종을 누르기보다 배관에 달린 발브를 막는다. 그러면 배관에 압이 차면서 압축기의 계기바늘이 올라가는것이다. (좀 있으면 발파소리가 울리겠지?) 아닐세라 조금 지나자 굴진돌격대원들이 휴계실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섰다. 막장에 자기네 휴계실이 있었지만 굴진이나 채탄이나 막장탄부들은 휴식시간이면 압축기휴계실에 자주 온다. 대체로 막장탄부들이 젊은 청년들이고 압축기운전공들이 처녀인 까닭도 있었지만 압축기휴계실은 막장휴계실보다 공기가 한결 맑았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처녀들에게 자기들의 작업성과를 장황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처녀들의 얼굴을 홍당무우처럼 만드는 걸죽한 롱담들도 즐겨하군 한다. 어떤 비위살좋은 총각들은 운전공처녀들의 사물함우에 활짝 핀 도라지꽃을 가져다놓으며 능청스럽게 웃는다. 도라지꽃은 탄광처녀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다. 처녀시절을 지하막장에서 보내는 그들에게 있어서 심산속에 수집게 피여난 도라지꽃은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량심을 바쳐가는 자기들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총각들의 능청에 처녀들은 《우린 자연의 꽃도 좋지만 혁신의 발파꽃을 더 좋아해요.》 하고 퉁을 준다. 그러면 총각들은 면구한 기색이란 꼬물만큼도 없이 《아, 그렇소? 그건 념려마오.》한다. 다음교대에 총각소대는 계획외에 처녀들의 부탁, 아니 《요구》를 들어준다. 그리고나서 《어떻소? 이젠 만족하겠지?》 하고 묻는다. 《아니, 두발파 더!》하는 처녀들의 거절에 입을 딱 벌리고 돌아선다. 한발파라는것이 말이 쉽지 한겻작업량이다. 제정된 개수의 천공구멍을 뚫은 다음 발파를 진행하고 수북하게 쌓인 버럭처리까지 끝내야 하기때문이다. 총각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입을 하 벌리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하고 두눈만 껌벅거린다. 《허참, 이 처년 눈이 이마우에 올라가붙었군.》 하고 투덜거리자 압축기휴계실이 떠나갈듯 한 웃음소리가 울리고 모두 배를 그러안고 돌아가며 퇴방맞은 총각을 놀려댄다. 호방한 롱담과 지칠줄 모르는 왕성한 정력은 자연의 천년잠을 깨워가는 탄부들의 필연적인 기질이다. 잠시후 발파심지에 불을 다느라고 늦어진 강철이와 부대장청년이 헐떡거리며 뛰여들었다. 제대된지 한두달사이에 발파공자격까지 갖춘 그들이다. 발파를 할줄 알아야 굴진공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할수 있었지만 발파능력을 가진다는것도 그리 간단치 않았다. 수십개의 천공구멍에 화약을 량적으로 조절해넣어야 하며 도폭선들에 불을 달 때에도 어느것부터 먼저 다는가에 따라 발파각도가 달라지고 암벽이 통채로 빠지는가, 국부적으로 빠지는가 하는것이 결정된다. 아무리 시간과 공력을 들여 천공을 해놓아도 발파를 잘못하면 시간과 로력만 랑비하기때문이다. 《됐소. 잠간 숨을 돌리기요.》 강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심을 들었다놓는듯 한 발파소리가 몰방으로 터지기 시작하였다. 《꽝! 꽝! 꽈ㅡ 꽝!》 돌격대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성을 내질렀다. 《히야! 잘한다. 잘해!》 《군단포의 뢰성같은게 굉장하구나!》 하늘땅을 진감하던 군단포의 뢰성속에 《적진》을 향해 비호같이 날아들던 병사시절이 그리운듯 제대군인들은 류다른 희열에 들떠있었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발파소리를 두고 그토록 흥분해하며 기뻐하는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군사복무시절을 그리워하며 긍지높이 추억하고있는가를 잘 알수 있었다. 《대장동무! 첫번에 튄 가운데 심빼기가 잘된것 같소.》 부대장청년이 강철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강철이도 긍정하듯 머리를 끄떡인다. 《옳소. 분명 성공한것 같소.》 《히야! 성공이다!》 강철의 말에 돌격대원들이 서로 붙어잡고 환성을 올렸다. 그들을 바라보던 강철은 웬일인지 성심이를 피끗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데 아직 만세부르기는 이르오.》 《그건 무슨 말이요?》 대원들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평행식방법은 보조천공구멍을 반드시 몇개 더 뚫어야 효력을 낼수 있는데 그건…》 강철은 또다시 성심이를 피끗 쳐다보았다. 강철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성심은 그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를 어렵지 않게 느끼였다. 굴진속도는 발파에 의해 결정되고 발파구멍은 바람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리치를 잘 알고있는 굴진공들은 성미가 우락부락하다가도 압축기운전공에게만은 곰살궂게 대한다. 성심은 압축기운전공으로 일해오면서 발파효률이 높아 탄부들이 저렇게 희열에 넘쳐있을 때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고 발파가 잘되지 않아 탄부들이 안타까와할 때면 함께 속상해하군 하였다. 굴진공들과 언제나 호흡을 함께 해온 성심은 《걱정말라요. 공기는 만기압으로 보장하겠어요!》 하고 대답해주고싶었지만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때 가두녀인들이 음식들을 이고 휴계실에 들어섰다. 자기 남편과 자식들이 모두 갱안에서 일하고있어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탄부들을 지원하고있는 탄광마을녀성들이다. 푸짐하고도 먹음직스러운 음식그릇들이 책상우에 흰 종이를 깔고 펼쳐지자 대원들의 입에서는 가벼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채탄중대장의 아주머니가 그릇마다 콩비지를 듬뿍듬뿍 담아주며 말하였다. 《자요. 많이들 들고 하루빨리 새 탄밭을 잡아주세요.》 통신병으로 복무했다는 제대군인이 비지그릇을 받아든채 긴 목을 빼들고 음식보따리를 넘겨다본다. 그러는 그를 밉지 않게 흘겨보며 갱장의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임자, 암만 넘겨다보아도 여긴 없네. 이제 하루계획을 끝내고 나가면 우리 령감이 영양제식당에서 별식을 준비해놓고 기다릴거네.》 《예, 그래요?》 모두가 설레였다. 가두녀인들속에서 이제 돌격대가 탄맥을 찾아내면 백kg짜리 돼지를 내오겠다느니 한명씩 업고 온 탄광을 돌면서 자랑하겠다느니 하는 말이 쏟아져나와 휴계실이 사랑과 믿음으로 흥그러워졌다. 이윽하여 돌아가는 가두녀인들을 바래주러 나갔다가 휴계실에 들어선 성심은 잠시 쉬고있는 대원들속에서 강철이가 보이지 않는것을 알았다. 예감되는것이 있어 굴진막장에 가보니 아닐세라 막장천공구멍을 마주서서 무엇인가 하고있는 강철이가 보였다. 《뭘 하세요?》 성심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천공구멍에 굵은 쇠줄을 넣고 쑤시던 강철이가 돌아보았다. 《성심동무요? 아까 천공작업하다가 정알 하나 잃었소. 얼마나 단단히 박혔는지 뽑을수가 없어서 그냥 발파했소. 분명 폭약량을 조절해넣었기때문에 날아나진 않았을텐데…》 성심은 굴진공들이 천공작업하다가 정대에 박힌 정알이 빠져 깊이 배기면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강철이처럼 그걸 다시 찾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정알을 다시 찾는것이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것인지 모르기때문이고 또 그쯤이야 하는 견해도 작용하기때문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까짓거 버리고말지요?》 강철의 수고를 념려해서 성심은 자기의 속생각을 내비쳤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문대고난 강철은 성심의 얼굴을 낯선 사람을 보듯이 바라보았다. 《버리다니?…》 그리고는 아무말없이 더 세괃게 일손을 놀린다. 성심은 몹시 놀라는듯 한 강철의 태도에 자기가 실언을 했다는것을 느끼며 몹시 거북스러워졌다. 그처럼 시원시원하면서도 배짱있는 그가 새것도 아닌 쓰다남은 정알 하나를 찾겠다고 남 다 쉬는 시간에 땀흘리는것이 꼭 참새에 대포를 조준하는격같이 생각되였다. 성심이는 공구를 쥐여주며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잠시후 쇠줄고리에 정알이 걸려나왔다. 《허허, 찾았소.》 강철은 정알에 묻은 돌가루를 입으로 훅훅 불고나서 경질금속날을 유심히 살펴보는것이였다. 성심은 귀한 보물을 찾아낸 사람처럼 소중히 다루는 강철의 모습을 보며 작업공구를 귀중히 여기는 그의 마음에 감동되였다. 하지만 강철의 말은 그의 마음속생각을 뒤집었다. 《성심동무! 정알 하나쯤 보잘것없다고 버리는것이 일부 사람들의 탄부다운 통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오. 이 경질금속정알 한알이 없어서 우린 무거운 함마로 수굴한적도 있었소. 그런데 이젠 자재가 좀 풀렸다고 해서 아직 몇번은 더 쓸수 있는걸 버려야 하겠소?… 사람들이 왜 탄부를 존대해주는지 아오? 그건 탄부들이 캐낸 석탄덕분도 있겠지만 수천척지하막장의 남보지 않는 곳에서 량심으로 조국을 받들기때문이요!》 성심은 보잘것없는 정알 한알이 량심이라는 인간의 가치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에로까지 이어져있을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까지 굴진공들의 빠른 굴진속도와 막장을 뒤흔드는 발파소리속에 묻혀버린 정알의 가치가 량심이라는 거울에 보석처럼 반짝이는것을 발견하자 강철이에 대해 다시한번 머리가 숙어졌다. 더우기 기본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남들이 쉬는 시간에 땀흘리며 일한 강철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 망막속에 안겨오는것이였다. 그때 휴계실에서 쉬고난 굴진돌격대원들이 막장으로 다가왔다. 성심은 압축기실에 돌아와 작업일지를 정리하였다. 퍼그나 시간이 지나 시계를 보니 퇴근시간이 다되였다. 그는 기대장청소를 하면서 퇴근준비를 서둘렀다. 이모를 바래워주러 역에 갔다 올 계획이였던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성심이를 무척 귀여워해준 이모가 ㅊ시 피복공장 지배인으로 일하고있었는데 어제 저녁에 도착하였다. 시간이 많지 못한 출장길이라 반가운 해후도 충분히 나누어보지 못한 성심은 자기가 직접 역에 갔다 오려고 결심한것이다. 이모는 성심이네 집에 올 때마다 도시의 처녀들속에서 류행되는 옷과 신발 그리고 향기그윽한 화장품들을 가져오군 하여 성심이를 기쁘게 해주었다. 기대를 인계하고 막상 떠나자고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신입생운전공들과 함께 있어달라고 하던 강철의 목소리가 귀전을 쟁쟁히 울렸다. 요즘 탄광기능공학교 졸업생들을 압축기운전공으로 새로 배치하였기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성심은 하는수없이 교대운전공과 함께 한시간이 지나도록 기대운전을 하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대를 지키고있을수 없는 일이여서 신입생운전공에게 주의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나서 약간 개운해진 마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한참 걷고있는데 저앞에서 강철이가 마주오는것이 보였다. 착암기부속이 어깨에 메워져있는걸 보니 착암기가 고장난 모양이였다. 《퇴근하오?》 《…》 성심은 막상 그를 보자 죄를 지은것 같아 머리들기 저어되였다. 무겁고 숨가쁜 침묵이 막장안에 꽉 찼다. 성심은 강철의 입에서 무척 서운해하는 말이 튀여나올것 같아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그러나 의외에도 조용하면서도 퍼그나 진정이 슴배인 목소리가 울렸다. 《성심동무! 우릴 위해 수고가 많았소.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한시간나마 운전해주어 고맙소. 자, 어서 가보오!》 성심은 별안간 마음이 옹색해졌다. 그리고 웬일인지 그가 한 《우릴 위해》라는 말이 몹시 귀에 설고 섭섭하게 들렸다. 그럼 난?… 하긴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면서 그들과 《함께》라는 말을 듣고싶어하는것부터가 렴치없는 생각이 아닐가?… 갱밖으로 나온 성심은 래일부터는 굴진소대에 발맞추어 만바람을 더 잘 보장해주리라 결심하며 옥주네 집으로 먼저 찾아갔다. 어제 저녁에 있은 압축기고장이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던것이다. 마침 집에 있던 옥주가 사연을 설명하였다. 《언니가 간 다음 30분이 지났을가 했는데 갑자기 압축기소리가 고르롭지 못한 느낌이 들더군요. 하지만 경험이 없던 저는 그저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강철동지가 들어오더니 바람이 약해서 착암을 할수 없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는 압축기소리를 들어보더니 고장난것 같다면서 기계를 세우라고 하더군요. 압축기를 해체해보니 흡입변의 용수철이 부러졌더군요. 용수철이 작용하지 못하니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보내는 작업이 제대로 될수 없었거든요. 강철동진 압축기운전공들에게 용수철이나 변판, 석면같은 소자재들은 가지고있을수 있다고 말했지만 저에겐 없었고 언니의 공구함은 열쇠를 채웠거든요. 하는수없이 퇴근한 창고장을 찾아 부속을 가지고와서 수리를 끝냈을 때는 8시가 넘었어요. 시계를 들여다보며 몹시 초조해하는 기색을 보니 무슨 사정이 있었던것 같았어요. 난 얼마나 미안하던지…》 성심의 귀전에는 옥주의 말이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나때문에!… 노래련습을 하러 간다면서 붕 뜬 기분에 기대인계를 책임적으로 하지 못한 나때문에… 더우기 용수철같은 자재는 자기의 공구함안에 있지 않았는가. 그러고도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고깝게 생각하였고 오늘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였다. 아! 나야말로 들뜬 처녀였구나!… 성심은 뼈아픈 자책으로 하여 숨이 막 가빠올랐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이모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 그밤으로 다시 갱안에 들어갔다.… 며칠후! 성심은 맹렬히 돌아가는 압축기상태를 긴장하게 감시하면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강철이가 연구한 평행식속빼기발파방법을 도입한 결과 굴진속도를 훨씬 앞당겨 어제 밤 발파에 탄맥을 짚었다. 오늘 마지막발파만 때리면 탄밭을 눈앞에 펼쳐놓게 되는것이였다. 지금 이 시각 갱밖에서는 탄광의 기동예술선동대와 가두녀인들이 꽃다발환영대렬을 짓고 굴진돌격대원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성심의 눈앞에는 그날 밤 역으로 가지 않고 다시 갱안으로 들어온 자기를 생각깊은 눈길로 바라보던 강철의 얼굴이 떠오르고 진정이 넘치던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성심동무! 고맙소. 내 이번엔 꼭 약속을 지키겠소. 노래련습을 잘하기요.》 성심은 고운 눈을 흘길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진정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저도 모르게 선망과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것이였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난 성심은 굴진돌격대가 지금 마지막천공구멍을 뚫고있다고 직감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공기탕크뒤의 굴진막장으로 뻗은 공기배관에서 《쏴ㅡ악!》하는 아츠러운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아니?!》 배관의 녹쓴 부분이 터지면서 높은 기압으로 압축된 공기가 귀를 멍멍하게 만들며 맹렬히 뿜어져나오고있었다. 성심은 급히 달려가 스위치를 잡았으나 당기지 못하였다. 지금 막장에서는 분초를 다투는 긴장한 전투가 벌어지고있다. 아마 이 순간부터 공기가 약해져 정머리가 암벽을 세차게 때리지 못할거야, 야! 모두 얼마나 안타까와할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굴진소대가, 아니 온 탄광이 시련과 난관을 헤쳐온것 아닌가! 그래! 저들의 자랑찬 보고가 한시라도 늦어져선 안돼!… 그는 지체없이 비상용고무띠와 나무쐐기를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바람새는 구멍에 쐐기를 박아넣고 그우에 고무띠로 동이기 시작하였다. 한바퀴 또 한바퀴 안깐힘을 쓰며 감고나니 바람의 세기가 현저하게 약해졌다. 감은 부분을 쇠줄로 동여맸으면 좋으련만 쇠줄이 눈에 띄우지 않았다. 그는 착암작업이 끝날 때까지 손으로 잡고있기로 결심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나고 고무띠를 잡은 손가락이 마비되는것 같았다. 얼굴로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씻지도 못했다. 한초한초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드디여 천공작업이 끝났다는 신호가 왔다. 성심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나서 스위치를 껐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져 그는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조금 지나 투닥투닥 하는 발자국소리들이 들려왔다. 압축기실에 들어서던 굴진돌격대원들은 해쓱해진 성심이와 비상용고무띠가 감겨져있는 배관 그리고 나무쐐기며 망치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것을 보고 사태를 짐작한듯 선자리에 굳어졌다. 잠시후 발파의 굉음이 압축기실을 드렁드렁 울리였다.…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한데 어울린 감동깊은 눈길이 성심이의 온몸을 어루만져주고있었다. 성심이에게로 다가온 강철이가 그의 두손을 꽉 틀어잡으며 말하였다. 《성심동무! 수고했소!》 성심은 그 순간 코마루가 시큰해오고 눈굽이 뜨거워져 고개를 외로 돌렸다. 부대장청년의 뒤를 따라 굴진돌격대원들이 성심이를 에워쌌다. 《성심동무! 기뻐하오. 굉장히 큰 탄밭을 착탄시켰소. 수만t은 잘될거라고 하오!》 《그래요? 정말 수고들 하셨어요.…》 성심은 다소곳이 머리숙였다. 가슴속에서는 기쁨과 함께 미안한 감정이 함께 소용돌이쳤다. 다음날! 탄광문화회관에서는 혁신자축하모임이 진행되였다. 수천명의 종업원들이 꽉 들어찬 장내에는 수만t의 새 탄밭을 마련한 굴진돌격대원들의 이야기로 흥성거렸다. 잠시후 소개자의 말에 이어 환영나팔소리가 울리는 속에 굴진돌격대원들이 개선장군마냥 무대에 올랐다. 장내는 떠나갈듯 한 박수소리로 진동하였다. 무대천정에 설치된 기구에서 각양각색의 꽃보라가 함박눈처럼 쏟아져내렸다. 장내가 정돈되자 부대장청년이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다고 하면서 한걸음 나섰다. 《저희들이 오늘 이 화려한 혁신자무대에 설수 있은것은 압축기운전공 백성심동무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백성심동무가 이 무대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온 장내에 또다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그 박수소리는 성심이를 몰랐다는 미안함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듯 오래동안 울리였다. 얼굴이 빨개진 성심은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의 손에 떠밀리워 무대우에 올라섰다. 굴진돌격대원들이 서로마다 자기의 목에 걸었던 꽃목걸이를 성심이에게 걸어주며 기뻐하였다. 부대장청년이 다가오더니 성심의 손을 잡아 강철의 곁에 나란히 세웠다. 그러자 장내에 가벼운 웃음이 파도처럼 설레인다. 성심은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 돌아섰다. 강철이도 쑥스러운듯 옆으로 돌아섰다. 그때 소개자인 탄광기동예술선동대 대장이 장내에 대고 말하였다. 《여러분! 이 동무들은 전번 예술소조공연판정때 압축기를 수리하느라고 빠졌습니다. 저는 그런줄을 모르고 이들을 명단에서 빼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동무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 청춘들이 어떤 무대에 서기를 좋아하며 무엇으로 화려한 무대를 빛내이는가를 다시금 느꼈습니다. 청춘의 열정과 창조로 위훈의 무대를 빛내인 이 동무들에게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줍시다!》 박수소리!… 박수소리!… 박수가 멎자 소개자는 두사람이 전번에 준비했던 2중창을 부르겠다고 소개하였다. 성심은 귀뿌리가 달아올라 강철이를 바라보았다. 그도 당황해하더니 인차 자세를 바로잡으며 성심이를 바라보았다. 성심은 이 순간 강철의 눈빛에서 강렬하게 뿜어져나오는 시대의 목소리를 읽었다. 강철이가 먼저 운을 뗐다.
… 한생을 불타는 애국에 살면 영원한 태양이 축복을 주리
성심의 눈앞에는 강철이를 알게 된 첫날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안겨왔다. 우리 시대의 청춘들이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살며 싸우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 그! 우리 시대의 청춘들이 현란한 무대에 서는것도 좋지만 위훈으로 더욱 빛내여야 청춘의 무대가 참답게 화려해진다는것을 깨우쳐준 그!… 탄광의 기본전선인 굴진으로 당을 받들려는 그를 도와 자기도 한생 압축기운전공으로 살리라 마음다지였다.
아 그대의 눈빛은 세상을 본다 어머니조국이 너를 알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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