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 1등 당선작품

 

단편소설

 

정든 길

 

 

                                                                                                                                                  임  순  영

 

나의 고향은 우산리이다.

산봉우리에서 해가 뜨고 산봉우리에 달이 걸리는 자그마하고 평범한 산골마을이다.

소《우》자에 산《산》자를 쓰는 이 유난스러운 고향의 이름에는 특이한 사연이 있다.

바로 그 이름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나는 어려서부터 옛말처럼 들으며 자랐다.

옛날에 깊은 산골마을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이 마을도 산짐승에 의한 피해가 컸다. 그중에서도 범에 의한 피해는 몹시도 많았다.

어느해인가 몇십년을 묵었는지 알수 없는 큰 범 한마리가 나타나 가축을 물어가고 지어는 사람까지도 해를 입혔다. 그 범을 잡자고 함정을 파놓으면 범은 그우에다 똥을 싸놓고 달아났고 독약을 친 미끼를 놓으면 도로 물어다가 동네에다 내버려 숱한 개들이 먹고 죽게 만들었다.

그게 범이 아니라 《산귀신》이라고 온 동네가 뒤숭숭하던 어느날 한 농민이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 범을 만났다.

얼혼이 나간 그 농부가 얼결에 자기 소의 배밑으로 벌렁벌렁 기여들어갔는데 그 황소가 범이 달려드는 쪽으로 뿔을 세우며 영각소리를 질러대니 범이란 놈이 으르렁거리기만 하다가 달아나버리고말았다.

그 말을 듣고난 동네좌상로인이 무릎을 치며 《옳거니! 그 범과 싸울게 그 소밖에 없거니.》하고 말했다. 그래서 그 범이 있다는 골짜기에 고삐를 풀어준 소를 데려다 놓아주었는데 애당초 그 소가 범을 이기리라고는 믿지 않는 농민은 소를 부여안고 울기만 했다. 소 또한 눈을 슴뻑이며 처량한 울음소리를 내였다. 그 바람에 함께 갔던 마을사람들도 모두 울었다. 그날부터 온 마을이 자지 못하고 소가 간 그 산골짜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며칠밤이 지났다. 어느날 동네사람들은 그 소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보자고 산으로 올랐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 들어서니 마치 밭갈이라도 한것처럼 풀과 흙이 다 짓밟혀 뒤집힌것이 보이고 껍질이 하얗게 벗겨져버린 나무들도 눈에 띄였다.

(아뿔사! 이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하고 정신없이 가보니 배가죽이 만신창이 되여 너부러진 범곁에는 반주검이 된 소가 헐떡거리며 누워있었다.

소가 범을 이긴것이다! 동네사람들이 환성을 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소를 얼싸안았고 두손으로 등등 떠받들다싶이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온 동네가 떨쳐나 소금물을 먹인다 더운 물로 씻어준다 하여 소는 살아났다.

동네에 경사가 났다. 범가죽을 벗겨 동네가운데 있는 커다란 너럭바위에 붙여놓고 온 마을이 모여 밤새껏 춤을 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그 흥겨움이 한창 고조에 달했는데 문득 그 너럭바위쪽에서 바위가 깨지는듯 한 꽝소리가 울렸다. 달려가보니 범을 이긴 그 황소가 범가죽을 붙인 너럭바위앞에 두뿔이 꺾어지고 머리가 깨져 쓰러져있었다.

외양간에 있던 그 소가 달빛에 비낀 그 너럭바위의 범가죽을 보고 범이 온것으로 착각하고 외양간을 뛰쳐나와 달려오던 그 속도로 바위를 들이받은것이다. 소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온 마을이 슬퍼하며 그 소를 뒤산에 묻었다. 그리고 그 산에는 절대로 화전도 못 일구게 하고 묘도 쓰지 못하게 했으며 나무 한대도 꺾지 못하게 했다. 바로 그래서 마을이름이 우산마을로 된것이였다.

범이 넘나드는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 마을사람들을  위해준것이라면 미물인 짐승도 정을 바쳐 아끼고 우대하는 소박하고 고정하며 인정깊은 사람들이 사는 곳, 바로 여기서 평범한 뜨락또르운전수의 딸인 내가 태여나고 자라났다.

우리 고향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 고향마을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왜정때 어느 친일분자가 《소밖에 더 자랑할것이 없는 미개한것들이 사는 곳》이라고 고향마을을 모욕했는데 마을사람들은 그것을 두고두고 분해하였다. 그래서 마을에서 누가 태여나든 또 누가 떠나가든 고향을 잊지 말고 빛내는 사람이 되라고 인사말처럼 부탁하군 했다. 아마 집안의 맏딸이자 외동딸인 내가 태여났을 때에도 늙은이들은 모여 그렇게 바랐을것이다.

《우리 마을에 소얘기만 나고 사람이름이 안 나면 안되지.》 마을 늙은이들은 버릇처럼 이런 말을 하군 했다. 그리고는 마을에 자그마한 자랑거리가 생겨도 모여앉아 서로에게 전해주며 신명이 나서 이야기하군 하였다.

내가 인민학교(당시)에 입학할무렵쯤 해선 늙은이들이 모여앉아 한담처럼 나누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한여름밤 모기쑥불을 열댓번 갈아대도 끝나지 않을만큼 부쩍 많아졌다.

제일 큰 자랑은 경치가 남달라 해방이 되자마자 휴양소가 꾸려지고 바로 그 휴양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다녀가시였다는 자랑이였다. 지금도 휴양소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그중에는 어느 이름있는 작가도 있어 어떠어떠한 작품이 그 휴양소에서 태여났다고 마을 늙은이들은 대진내가 나는 투박한 손으로 모기쑥불을 휘휘 저으며 신이 나서 이야기하군 하였다.

마을을 떠나간 많은 사람들이 중앙과 도, 군의 책임적인 일군으로 일한다는 자랑과 함께 은근히 그 사람들과의 《깊은》인연을 암시하는 목소리들도 울려나오는것은 물론이다.

고향마을과 관련된것이라면 자그마한것이라도 자랑하고싶어하는 마을사람들은 뜨락또르운전기술이 《최고》라는 나의 아버지자랑까지 꼭 꺼들이군 한다.

아버지가 새파랗게 젊었던 때의 일이라니 퍽 오래전 일이겠지만 운전수들이 자기들의 기술을 뽐내며 좁은 골목길에서 적재함을 단 뜨락또르를 돌려세우는 경쟁을 했었는데 유독 우리 아버지만이 성공했다는것이였다.

결국 그것이 소문이 되여 외할머니가 아버지를 제꺽 자기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늙은이들의 추억에는 이따금씩 나의 할아버지얘기도 불쑥 튀여나오군 했었다.

사진 한장도 없는 할아버지, 나는 그 할아버지의 모색을 유복자로 태여난 우리 아버지가 쏙 빼물었다는것만을 안다.

해방후 보안간부학교에 다녔다는 할아버지가 고향에 돌아왔는데 한다는 일이 《빈둥빈둥》동네돌이나 하고 이런저런 일에 《성수》가 나서 끼여드는 일뿐이였다. 그러는 할아버지를 보고 마을사람들은 《건달잡놈》이라고 도리머리를 저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 《건달잡놈》이 마을의 유일한 지주인 장가놈의 안방에서 반동놈들이 저수지를 폭파할 모의를 하고있을 때 단신으로 거기에 뛰여들었다. 그런데 그 손에 권총이 들려있어 반동놈들은 물론 온 마을이 화닥닥 놀랐다는것이였다.

그후 이웃마을의 얌전한 처녀가 내무원인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는데 마을사람들은 《피스톨에 반해서 시집온 녀자》하고 우스개섞인 소리를 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할아버지는 맨선참으로 전선을 탄원하였다. 갈길이 바쁘고 늦었다면서 숯구이군들이 질러가느라고 내놓은 좁은 지름길로 바쁘게 떠났다고 한다.

《성아!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나에게 아들을 안겨줄수 있지, 응?》

《어마나! 배안에 있는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안해가 저고리고름을 입에 물고 얼굴이 빨개서 더듬거린 말이다.

《좋아! 아들이든 딸이든 돌아올 때도 이 길로 오겠으니 꼭 안고나오라구.》

《기다리겠어요.》

할아버지는 개암나무와 속새풀이 엉킨 그 좁은 오솔길에서 무엇인가에 발이 걸채여 비칠거리면서도 그냥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의미심장한 뜻을 손을 흔드는것으로 표시하였다.

하지만 그후 할아버지는 다시 그 길로 돌아오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떠나간 오솔길은 예전 그대로였지만 할아버지는 종무소식이였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의례히 할머니에 대한 칭찬으로 막을 내리군 했다.

《정말 헐치 않은 녀인이야!》

《부지런한 녀인이야. 오금이 무쇠같거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이 자주 오르는 그 오솔길은 지금에 와서 좀 넓어졌다.

이름난 휴양소가 있는 송안덕골안으로 가자해도 큰길로 빙 돌아가기보다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는것이 훨씬 가까왔고 또 학교와 상점, 병원이 있는 리소재지로 가는것도 그 오솔길을 타는것이 훨씬 빨랐다. 하지만 한 사람이나 걷기 좋은 그 오솔길을 타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했다.

다만 나와 두 짝패가 늘쌍 그 오솔길을 걸어 학교로 가군 했다.

그런데 나의 짝패는 우습게도 두 총각애였다.

한 애는 키가 크고 몸이 뚱뚱한 명식이였고 다른 한 애는 키는 작아도 차돌처럼 단단하고 이악한 철진이였다. 나와 나의 두 짝패가 그 오솔길을 택한데는 우리 할머니의 설유가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

우리 할머니는 모든 면에서 늙은이답지 않게 빨랐다. 할머니는 바쁜 걸음이 아니더래도 항상 빠른 길을 택했으며 일을 한가지 해도 빨리 해치워야 시원해했다. 어쩌다 나에게 심부름을 보낼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꼭 같은 말을 내 잔등에 지워보내군 했다.

《영미야! 빨리 갔다오너라. 길이란건 흔들흔들하지 말구 또 빙빙 에돌지 말구 빨랑빨랑 다녀버릇해야 한단다.》

《예! 알겠어요, 할머니, 냉큼 갔다와요.》

하지만 나는 대체로 흔들흔들 하거나 빙빙 돌군 하였다. 그러나 학교로 가는 길만은 할머니의 말을 좇아 빨랑빨랑가는 오솔길을 택했다. 그 오솔길을 걸어 학교에 빨리 가서 교실청소를 남먼저하고 선생님들과 동무들의 칭찬을 받는것이 즐거웠던것이다. 그리고 그 오솔길에는 학교에 빨리 가면서도 마음껏 즐길수 있는 장난거리가 많았다.

오솔길에서 몇발자국만 숲속으로 들어가면 밤이며 개암이며 산딸기며 깜또라지라고 부르는 달짝지근한 열매들이 많았으며 우리만이 아는 장소에는 새둥지도 많았다. 가다가 돌팔매질할 내기를 해도 누가 방해하거나 탓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나무우에 기여올라 산열매를 따도 위험하다고 소리를 치는 사람도 없었다.

이 오솔길로 웃고 노래하며 장난도 치고 다투기도 하면서 우리 셋은 그림자처럼 함께 다녔다.

어느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그 오솔길량옆의 속새풀들을 살짝 매놓아 명식이와 철진이를 골려주리라 마음먹었다. 한것은 우리 셋이서 발견하고 함께 털어내기로 했던 산비둘기둥지를 나를 쑥 빼버리고 자기네만 가서 털어버린것이다.

그리고는 나의 야단이 무서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을 저들끼리 달아나버렸기때문이다.

나는 어스름 달밤에 무서운줄도 모르고 그 오솔길로 달려나가 길량옆의 속새풀들을 안 보이게 얽어매놓았다. 하나, 둘, 셋하고 세가며 일곱군데나 매놓았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쓰고 누워서도 나는 자꾸만 키득키득 웃었다.

전등불아래서 바느질을 하고있던 할머니가 나를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너 또 무슨 장난을 치구 와서 그러니, 원, 계집애라는게 어쩜 그리두 벌차누. 차라리 사내애라면 장난이 밉지라두 않으련만…》

저 혼자 실심한듯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참고참았던 웃음을 까르르 뿜어던지고말았다.

《철진이랑 명식이랑 나한테 꼼짝 못하는데 계집애가 어쨌다구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나는 웃음을 깨물고 우정 새뚝한 얼굴로 학교길에 올랐다.

오솔길앞에서 어김없는 일과가 시작되였다. 명식이와 철진이가 누가 앞설것인가를 결정하는

《돌. 가. 보.》를 하는것이다.

이 오솔길은 다 좋았지만 아침마다 이슬에 바지가랭이가 젖는것이 딱 질색이였다. 그래서 남자애들 둘이서 《돌. 가. 보.》를 해서 지는 사람을 맨앞에 세우기로 했던것이다. 물론 누가 이기든 나는 맨뒤에서 따라가군 한다.

《돌. 가. 보.》

철진이가 이겼다.

나는 몸집이 큰 명식이가 발이 걸려 넘어질것을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풀을 매놓은 곳을 명식이는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갔다. 두번째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나는 이상해서 오솔길을 살펴보았다. 그순간 오솔길에서 발에 닿을 부분의 속새풀이며 떨기나무들을 말끔히 베버린 낫질흔적을 발견했다.

우리가 이슬을 찰세라 이 길을 앞서 걸으며 풀을 베여버린 그 누군가의 다심한 소행이였다.

문득 내가 깨여났을 때 이슬에 흠뻑 젖어 군데군데 풀잎쪼각이 달라붙은 낫을 들고 들어오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분명 할머니가 한 일이였다.

동무들도 한참후에는 그것을 알아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었다.

《야! 너의 할머닌 정말 좋은분이다야.》

《어제 우리끼리  비둘기둥지를 턴건 잘못했어.》

《오늘은 장난치지 말구 학교에 빨리 가자.》

나는 동무들의 뒤를 따라 가면서 왜 그런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와 나의 동무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할머니인데 그 쏙새풀들을 얽어매놓은 장본인이 다름아닌 나라는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가.…

우리 할머니는 나에게 엄한 편이 못되였다. 대신 나에게서 한번 나타난 잘못은 두고두고 입버릇처럼 계속 곱씹는 끈질긴데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딱 질색이였다.

지금까지는 할머니가 한달전 장마철에 있었던 내 잘못을 계속 곱씹고있었다. 그때 우리는 저수지로 흘러가는 개울가를 반두로 뒤지고있었다.

그 고기잡이의 주장은 철진이였다.

철진이는 물에서 놀기를 몹시 즐겼다. 그래서인지 땅우에서의 놀이나 경기에선 명식이가 철진이를 항상 이겼지만 헤염이라던가 고기잡이에선 철진이가 늘 명식이를 이겼다.

그날도 철진이가 지휘하는대로 우리는 비가 억수로 오는 속에서도 개울가를 열성스레 뒤지고있었다. 그런 우리의 반두에 뜻밖에도 우리 팔길이만 한 잉어가 걸려들었다. 한놈을 잡고 좋아했는데 연거퍼 두놈이나 걸렸다. 너무도 놀라고 기뻐난 우리는 반두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마을에 뛰여들며 잉어를 집았다고 소리쳤다.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우리의 잉어를 내려다보는 마을사람들의 눈빛이 기뻐하고 부러워하는 눈빛이 아니라 무엇인가 이상하고 걱정스러운 빛이였다.

《이거 우리 개울 고기가 아닌데.…》

《이런 고기가 저 개울에 나타날리는 없는거구.… 혹시 이 비에 양어장뚝이 터져나간게 아니요?》

누군가가 오솔길로 잽싸게 달려 휴양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우리는 어이없게도 머리를 한대 쥐여박힌채 (물론 나는 제외였다.) 그 잉어를 빼앗기고말았다. 그 잉어들은 급한김에 누구네 집의 물독으로 들어갔다.

잉어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송안덕골안 휴양소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양어를 잘할데 대하여 하신 교시를 높이 받들고 건설한 큰 양어못이 세개나 있었다.

잘 꾸려진 그 양어못은 우리 우산리의 자랑이였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전국도처의 이름있는 사람들과 간부들의 사진첩에는 우리 우산리의 양어장이 꼭 있다는것이였다.

정말 휴양생들은 그 양어장에서 고기들에게 먹을것을 뿌려주고 욱실대는 물고기를 보며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것을 제일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양어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것을 멋으로 여겼다.

그래서 우리 마을사람들은 그 양어장을 관동팔경이나 관서팔경쯤 되는것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런 마을사람들에게 양어장뚝이 터져 고기들이 모두 저수지로 흘러가버리는것은 큰 비상사고가 아닐수 없었다. 아닐세라 휴양소의 한 양어장뚝이 터졌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온 마을이 떨쳐나 개울가에 하얗게 덮였다.

고기들을 담은 바께쯔며 버치들이 줄을 지어 양어장으로 향하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마을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였다.

물론 개중에는 잡은 물고기를 슬그머니 제집으로 날라간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명식이와 내가 그중의 하나였다.

그애는 사람들이 좀 뜸해진 개울 아래켠에서 반두질을 하다가 자그마한 잉어를 세놈이나 잡았는데 나에게 한마리를 주고 두마리는 자기 집으로 부리나케 가져갔다.

나는 불안하여 그 고기를 감춰들고 집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런데 그것을 본 할머니가 아예 기겁을 했다.

《원, 아서라! 죄될라. 먹을거라구 아무거나 다 솥에 넣는게 아니다.》

할머니는 그 고기를 버치에 담아서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다.

《명식이네두 고기를 집에 가져갔는데.…》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변명삼아 뿌루퉁하니 한마디 했다.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엄한 얼굴을 해보였다.

《원, 넌 눈먼 망아지냐? 잘못된걸 알면서도 따라가냐?》

할머니는 그 고기를 양어장으로 날라갔다. 그리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일을 입에 올리군 했다.

내가 반두를 들고나서도 그 말을 했고 양어장에서 잡은 물고기를 집집마다 나누어 줄 때에도 그랬다. 지어는 명식이네 아버지가 일을 잘못해서 비판을 받았다거나 그집 염소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거나 하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겨도 할머니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리군 했다.

《글쎄. 아무리 아이가 잡아온 물고기로서니 그걸 끓여먹었다니.…》

나 들으라고 계속 곱씹는 그 말이 나에게는 종아리를 치는 회초리보다 더 무섭고 아팠다.

나는 할머니가 그 이야기만 꺼내면 두귀를 막고 도망치고싶어지군 했다. 그런데 오늘은 동무들이 넘어지라고 풀을 매놓은것을 보았겠으니 또 그것을 두고두고 외울것은 뻔한 일이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할머니는 그에 대해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다행스럽고 이상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낫질흔적이 유표한 그 오솔길은 나에게 늘 알지 못할 두려움과 죄의식을 안겨주군 했다.

오솔길은 이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다심한 사랑과 관심의 길이였다. 하지만 오솔길에 기울이는 할머니의 정성이 오로지 이 손녀 하나만을 위한것이 아님을 나는  뒤늦게야 알게 되였다.

이따금 할머니는 그 오솔길쪽을 오래도록 바라보군 했다. 누구를 기다리는듯 손채양을 하고 눈을 잔조롭힌채 바라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특별한 리유도 없이 오솔길을 휘적휘적 걸어가기도 했다.

후에야 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생각이 나면 그렇게 할아버지가 떠나간 오솔길을 걷는다는것을 알았다. 바로 그때 집에는 남조선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던 할어버지가 감옥생활을 하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아직 《비전향장기수》라는 말을 모르고있던 때였다. 바로  그런 할아버지가 꿈에 보이는 날이면 손채양을 하고 할아버지가 떠나간 길,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그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그 길을 걸어걸어 멀리까지 가보군 한다는것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20대에 헤여진 남편, 그 남편이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70객이 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그 남편을 할머니가 오늘도 새색시가 되였던 그날의 심정으로 기다리고있다는것을 나는 알길이 없었다.

할머니가 한평생 기다린 오솔길로 우리 조국이 할아버지에게 수여한 《조국통일상》이 먼저 왔다.

그날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집안이 조용해졌을 때 나는 할머니가 손채양을 하고 오솔길 멀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는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가신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 뛰여나가려는 검둥이와 노랑이를 붙잡아 매놓았다.

강아지들은 멀어져가는 할머니를 보며 따라가겠다고 깽깽거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는 천천히 걸어가신다.

그 모습을 보니 왜그런지 눈물이 불쑥 솟구칠것만 같았다.

나는 할머니의 뒤를 따라 뛰여갔다.

《할머니!》

할머니는 천천히 돌아보셨다. 나는 할머니의 젖은 눈굽을 보는 순간 불시에 목이 꽉 메여버렸다. 나도 생각지 못했던 말이 불쑥 튀여나갔다.

《할머니! 나와 함께 가자, 응?》

할머니는 말없이 나를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나를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말없이 내앞에 앉아 잔등을 내댔다.

나는 어릴 때처럼 할머니잔등에 업협다.

할머니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왜정말기때 왜놈들은 모자라는 군수물자를 충당하려고 이곳 우산리의 나무도 대대적으로 찍어가려고 하였다.

왜놈들은 마을사람들이 나무 한대도 찍지 않는 우산에서도 나무를 찍어가려고 산전막까지 크게 지어놓고  인부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인부들이 나무를 찍으려고 하면 어디선가 황소울음소리가 이상스럽고도 크게 들려오군했다. 이상스러운 그 황소울음소리는 깊은 밤 숙소가까이까지도 들려와 인부들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다음날에는 인부들이 모두 원인모를 옻이 올라 온몸이 붓고 진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식당칸이나 방안에는 하루가 멀다하게 구렝이나 살모사가 나타나군 하여 소동이 벌어졌다.

식모는 아예 기겁해서 집으로 달아나고말았다.

인부들도 뿔뿔이 달아났다.

결국 왜놈들은 소귀신이 붙은 산이라면서 달아나고말았다.

해방이 되여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할아버지와 몇몇 청년들이 꾸민것임을 알게 되였다.

할아버지는 청년들을 휘동해서 산에 올라가 입에다 항아리를 대고 크게 황소울음소리를 냈으며 인부들이 때는 땔나무를 모두 옻나무로 바꿔놓고 문손잡이나 기둥들에 옻진을 발라놓았던것이다.

《영미야! 할아버진 그때두 고향을 지켜 싸웠구 지금도 고향을 위해 싸운단다. 너도 할아버지처럼 우리 고향이 자랑하는 우산리의 딸이 되여야 한다.》

《알겠어요.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할머니는 그러는 나를 업고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문득 뒤에서 인적기가 났다. 돌아보니 우리뒤를 명식이와 철진이가 따라오고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업고가니 무슨 일인가 하여 뒤쫓아오는것 같았다. 하긴 언젠가도 내가 할머니의 잔등에 업혀간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독감에 걸려 심하게 앓고있었다.

하지만 학교에만은 꼭 가겠다고 할머니에게 성화를 먹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를 업고 이 오솔길에 나섰었다.

나의 두 짝패가 걱정스러워하며 말들이 없이 우리뒤를 따라섰었다.

할머니의 잔등은 참으로 포근하고 편안했다.

온몸이 나른한 속에 어디론가 둥둥 떠가는듯 했다. 할머니의 말이 귀를 가져다댄 잔등을 통해 응응 들려왔다.

《우리 영미가 참 용쿠나. 아파도 학교에 다 가구. 그래! 앞으로 인민군대에 가면 녀성중대장감이구 대학에 가면 박사감이다. 조금만 더 기운을 내서 수업에 참가하구 의사선생한테 병도 보이자.》

할머니는 나의 기운을 북돋아주느라고 우리들이 금방 배운 구구표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공연히 한군데서 갑자르는 시늉을 한다.

《구칠에? 구칠에… 구칠에 몇이던가? 그렇지 륙십이지.》

명식이와 철진이가 좋아라고 깔깔 웃어댄다.

《아니예요, 할머니. 륙십삼이예요 야! 어제도 두번이나 대주었는데…》

내가 할머니 잔등에서 속상해서 소리쳤다.

《그렇지! 륙십삼.》

우리들은 모두 같이 웃고말았다.

나는 아픔이 사라지는것만 같았다.

구구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삼칠에 이십일. 삼팔에 이십사…》

오솔길은 그냥그냥 이어져가고 우리 넷은 구구표를 노래처럼 외우며 걸어갔다.

《삼구는 이십칠. 사일은 사…》

우리는 이렇게 오솔길을 오가며 컸다.

할머니는 여름엔 그 오솔길에 풀이 자랄세라 깎았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이른아침 매생이만 한 솜신을 신고 눈길을 먼저 걸어 길을 내군 했다.

아무리 할머니가 그렇게 눈길을 내여도 우리는 숫눈길에 뛰여들어 딩굴고 발자국자리를 낸다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그렇게 눈길을 내였다.

《할머니, 이젠 그만둬요. 우리가 뭐 어린애나.》하고 말리면 할머니는 말없이 그 오솔길을 바라보다가는 조용히 말하군 했다.

《그래! 난 이 길을 올 사람두 빠르구 편안하게 오구 갈 사람두 빠르구 편안하게 가라는거다.》

오솔길은 바로 그 손길과 발길에 의하여 점점 다져지고 넓어졌다.

길이란 인간의 마음이 먼저 걷는 곳에서 생기는가싶었다.

바로 그 길로 우리가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명식이가 떠나갔다. 아버지를 따라 북변도시로 가는것이였다.

우리의 섭섭한 마음이란 끝이 없었다.

나는 그 애에게 우리를 잊지 않고 우산리를 잊지 않을 기념품을 주고싶었다. 그래서 생각던 끝에 우리 셋이서 함께 가지고 놀던 확대경을 주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자연관찰시간에 선생님이 가지고있는 확대경을 보고 너무도 부러워 졸라대는 나의 성화에 못이겨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준 배률이 큰 보기드문 확대경이였다.

그 확대경때문에 우리의 어깨가 으쓱 올라간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때문에 우리끼리 싸운적도 있었다.

우리는 그 확대경으로 곤충의 다리를 해종일 들여다보기도 하고 빛을 모아 성냥가치에 불을 달기도 했으며 나무판에 구멍을 뚫기도 했다.

나무판에 렌즈로 빛을 모아 구멍을 뚫기란 헐치 않아서 우리는 얼마만 한 두께의 나무판에 구멍을 뚫었는가에 따라 자기들의 인내성을 자랑하군 하였다.

나무판에 빛을 집중해서 구멍을 뚫는데서는 나의 두 짝패가 언제나 나한테 못 견디군 했다.

바로 그 확대경을 나와 철진이는 명식이에게 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 확대경이 우리한테서 영 떠나버리는것이 아쉬워 우리는 확대경을 생각할만한 기념품을 자기들에게도 남기자고 했다.

그러다가 궁리해낸것이 나무판에 그 확대경으로 서로의 이름을 새겨 나누어가지는것이였다.

아버지가 곱게 대패질까지 해준 손바닥만 한 피나무쪼각에 확대경으로 빛을 모아 떠나가는 명식의 이름을 먼저 새겼다. 싱갱이질끝에 두번째 이름은 내 이름을 새겼다.

고향과 우리를 잊지 말라고, 고향의 나무에 고향의 빛으로 새긴 이름들이였다. 그 순간 우리는 자기자신이 퍽 자라오르는듯 한 성숙감마저 느꼈다.

하지만 그 세토막의 피나무쪼각을 나누어 가지고 헤여지던 날 우리는 끝내 어린애들처럼 다들 울고야말았다.

《잘 가!》

《잘 있어!》

《꼭… 놀러와야 해.》

《응!》

그 애는 우리와 함께 그 오솔길을 걸어가고 이사짐을 실은 차는 큰길로 갔다. 이사짐속에는 철진이네 집 자그마한 장독도 보였다.

어느해 여름방학땐가 물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철진의 발기로 저수지에서 놀던 우리는 재미있는 놀이를 한가지 궁리해냈다.

저수지에 배를 만들어 띄워보자는것이였다. 당장 나무로 만들수는 없는것이고 두루 궁리하던 끝에 자기 집의 자그마한 장독들을 가져오기로 했다.

그 장독들을 힘들게 가져다가 칡넌출로 단단히 비끄러매고 무게가 달라 기울어지는것은 독안에 돌들을 집어넣어 수평을 만들었다. 우리맘에 흠썩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배비슷한것이 되였다.

우리는 그 배에 자기들의 성을 따서 《리오박호》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배에 매달려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우뚱거리던 그 《배》가 갑자기 훌떡 뒤집히며 안에 집어넣은 돌들에 부딫쳐 장독 두개가 그만 금이 쩍 가며 가라앉고말았다.

남은것은 철진이네 장독뿐이였다. 흥은 단번에 깨여지고 겁이 덜컥 났다. 명식이는 울기까지 했다. 어머니한테 욕을 먹는다는것이였다.

그 애 어머니는 자기 집 세간살이를 아끼기로 온 마을에 소문이 났었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가 야단을 칠것이 우리 할머니나 철진이어머니에게 욕을 먹는것보다 더 두려웠다. 철진이가 나를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나는 철진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철진아! 우리 할머닌 명식이네 엄마보다 성을 쪼꼼 낼거야. 그렇지?》 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나서 우울한 얼굴로 명식에게 말했다.

《그럼 명식아! 너 이 독을 가지고 집에 가.》

《너흰… 어쩌구?》

《어떻게 되겠지 뭐, 한명이라도 욕을 먹지 말자마.》

명식이는 미안해서 머뭇거리다가 그 독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갔다.

우리는 날이 어둡도록 집에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저수지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멀리서 할머니가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우리는 겁이 나고 죄스러워 도망치고싶었다.

철진이가 끝내 이기지 못하고 저수지에 도로 뛰여들었고 나도 뒤따랐다.

저수지가녁에 이른 할머니가 덜덜 떨며 물우에 머리만 내놓고있는 우리에게 소리쳤다.

《아니, 무슨 헤염을 날이 어둡도록 치는거냐. 저녁늦게 안 들어오길래 가슴이 다 덜컹했구나.

어서 나오너라.》

《우린… 우린 좀더 있다 갈래요.》

철진이가 소리쳤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니?》

《할머니, 우리가 잘못했어, 나… 시집갈 때 장독 안 가지구 갈게.》

그 장독을 두고 할머니는 늘 우리 영미 시집갈 때 주겠다고 롱소리를 했었다.

《뭐?!》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철진이가 떠듬떠듬 사연을 설명했다.

할머니가 빙그래 웃는것이 보였다.

《그러니 배를 만들어보려다가 장독을 깨먹었다 그 소리구나. 원, 녀석들이라구… 그게 무슨 큰게라구 그리 못난 꼴들이란 말이냐. 난 그 장독보다두 너희들이 그렇게 하고있는게 더 가슴아프구나. 어서들 나오너라.》

그래도 우리가 나올념을 안하자 할머니는 옷을 입은채로 물에 들어섰다.

우리는 할수 없이 저수지물밖으로 나왔다.

우리에게 옷을 입혀주며 할머니는 말했다.

《신통한걸 궁리해내기는 했지만 머리는 좀더 써야 할걸 그랬구나. 글쎄 독보다 더 좋은게 생각안나더란 말이냐? 일없다. 너희들의 궁냥이 트구 씩씩하게 뛰노는데 장독보다 더 좋은게 있다면 그게 무슨 대수겠니.다 날라가거라. 그저 몸만 성하구 생각만 넓으면 된다. 그걸 두구 탓하구 막을 부모는 없어. 이제 봐라, 철진이네 어머니두 너한테 욕을 안할걸.》

《정말 그럴가요?》

《그렇지 않구. 너희 집엔 나와 함께 가자꾸나.》

할머니는 우리들을 집에 데려가 뜨끈한 음식을 먹이고는 철진이네 집에까지 함께 갔다.

우리는 정말 욕을 먹지 않았다. 자그마한 잘못도 늘 입에 올리군 하는 할머니가 그 일만은 다시 꼬집지 않았다. 다만 지나가는 말처럼 《아직 배 만들어띄울 줗은 궁리가 안 떠올랐니?》하고 상기시켰을뿐이다.

우리는 비닐통들우에 나무들을 올려놓고 묶으면 배가 될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비닐통들이 없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할머니가 철진이 어머니와 명식이 어머니를 찾아가 수군거리는것 같더니 어디선가 비닐통들을 여러개 구해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최초의 떼목비슷한 우리들의 첫 배 《리오박호》를 완성하고야말았다.

우리는 저수지에 배를 띄워놓고 만세를 불렀다.

바로 그 추억이 깃들어있는 철진이네 집 장독을 바라보며 우리 셋은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명식이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 장독과 함께 그리고 우리 셋의 이름이 새겨진 피나무쪼각을 손에 꼭 쥐고…

우리는 여전히 그 오솔길을 다니며 컸고 할머니는 여전히 길섶의 풀을 깎고 눈길에 큰 발자국을 내였다.

점점 그 길은 온 리사람들이 걷는 길이 되여갔다.

그 오솔길에 후에 넓고 곧은 포장도로가 생겨나게 되였다.

온 마을이 낮과 밤을 이어 전투를 벌렸다. 나도 철진이와 함께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공사장에 나가 어른들을 도왔다. 드디여 그 오솔길의 작은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는 하얀 포장도로길이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물론 도로관리원은 우리 할머니였다.

어쩌면 이 길로 오실지도 모를 장군님을 기다리는 온 마을의 뜨거운 마음이 할머니의 한몸에 실려있었다.

할머니는 아침저녁 비오나 눈이 오나 그 길에서 살았다.

우리도 도로의 량옆에 어린 나무들을 심었는데 우리는 그때 명식의 몫까지 나무를 심고 그 나무에 그의 이름을 새긴 패쪽도 걸어주었다.

바로 이 길을 오가며 우리는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 길을 걸어 나는 사범대학으로 가고 철진이는 군대로 떠나갔다.

늘 물에서 놀기를 좋아하고 선장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있던 철진이는 조선인민군해군이 되였다.

헤여지기 전날 밤 우리는 나란히 추억깊은 도로를 걸었다.

달밤이였다.

부드러운 달빛이 우리 두몸을 감싸안았다. 어디선가 소쩍새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어느덧 우리 팔뚝 두세개를 합친것만큼 굵어진 명식의 이름으로 심어놓은 나무곁에 멎어섰다.

《철진동무! 결국은 소꿉동무였던 우리 셋이 다 떠나가는군요. 언제면 우리 셋이 이 길로 다시 들어서게 될가?》

《영미! 우린 꼭 이 길로 다시 들어서게 될거야. 난 어딜 가두 여기만큼 정들구 살기좋은 곳을 찾을것 같지 못해. 명식이두 아마 고향을 잊지 않고있을거야.》

철진은 주머니에서 우리 셋의 이름을 새긴 피나무쪼각을 꺼내들었다.

나는 놀라움과 함께 기쁨을 느꼈다.

나도 주머니에서 피나무쪼각을 꺼내들었다.

우리 둘은 웃으며 피나무쪼각들과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자. 이건 판화나 인두화처럼 훌륭하진 못해도 바로 이것이 고향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야. 난 어딜 가든 고향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어.》

《나도 그러겠어요.》

그다음 철진은 웬일인지 피나무쪼각을 쥐고 내 어굴을 바라보며 어줍게 웃기만 했다.

《영미! 우리…어린시절 우정의 표시루 이 피나무판을 서로 바꾸어가지는게 어때?》

이 순간 나는 기쁨과 함께 불현듯 스며드는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철진의 앞에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이상야릇한 감정이였다.

그를 점점 철없던 때처럼 대할수 없는 자기를 의식한것도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나는 밝은 마음으로 선뜻 나의 피나무쪼각을 그에게 내밀었다.

우리는 그것을 서로 바꾸어가지고 헤여졌다.

나는 대학에서, 그는 초소에서 서로 편지들을 했다.

철진은 이따금 편지마다 명식의 소식을 묻군 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졸업이 가까와오도록 그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철진에게 명식동무는 지금 어디에선가 꼭 큰일을 하고있을거라고, 어린시절에도 땅우에서는 늘 그가 동무를 이기지 않았는가고, 그래서 동무는 바다우에서 그 동무를 이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써보내군 했다.

그러던 명식을 나는 졸업을 한달 앞둔 어느날 대학정문에서 만나게 되였다. 한호실 동무들이 참새무리처럼 떠들어대며 정문에 멋쟁이총각이 찾아와 나를 찾는다는 바람에 나는 의아해진채 처녀다운 촉각을 세우고 정문으로 나갔었다.

곤색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히 받쳐맨 세련된 용모의 청년이 눈에 띄였다.

저 청년일가? 하지만 낯이 선 모습이였다.

경계감을 안고 다가갔다.

《저…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예! 박영미동무가 옳지요?》

《네. 그런데 누구신지?…》

문득 그 청년이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

《아니, 어릴적의 사내번지개가 이렇게도 달라지다니. 허, 이젠 길에서 싸워두 몰라보겠는걸.》

청년은 제사 우스운듯 그냥 싱글벙글한다.

《…》

순간 무엇인지 알수 없는 친밀하고도 즐거운 예감이 온몸을 확 휩쓸고 지나갔다.

《혹시… 명식동무 아니예요?》

《옳소! 나요, 명식이요.》

《야! 명식동무.》

나는 대학정문앞이라는것도 잊고 그의 손을 마주잡고 두발을 굴렀다.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본다는것을 느낀것은 그 다음의 일이였다.

《자, 저쪽으로 좀 가기요.》

명식은 윤기가 번지르르 흐르는 승용차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고향에 갔댔소. 가서 동무의 소식을 알았지.》

《그래요?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세요?》

명식은 이름있는 어느 대외기관의 부원으로 일한다고 대답했다. 우리앞에 서있는 승용차도 그가 몰고온것이였다.

《아니?! 그럼 우리 도시에 있는…》

《그렇소. 뭇새들도 제 둥지를 잊지 않는다는데 인간인 내가 아무러면… 그래 고향이 가까운 이 도시로 자원해왔소. 가만… 우리 상봉기념으로 식당에나 갈가?》

《네, 좋아요.》

어릴적기분으로 되돌아간 나와 명식은 즐겁게 승용차에 올랐다.

우리는 시내의 이름난 식당에 들어갔다. 척 보기에도 시원한 랭면이며 고기류, 회류들과 보기드문 음료와 주류들이 상우에 올랐다.

나는 명식의 이렇듯 요란한 식사주문에 얼떠름해지고 지어는 위축감까지 느꼈다.

《영미! 내 성의로 알고 어서 들어.》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는 내앞으로 음식그릇들을 밀어놓으며 명식은 고뿌가 넘게 맥주를 따랐다. 접대원처녀가 지나가며 명식에게 눈인사를 보내온다.

《고마워요! 아마 명식동문 이 식당이 단골인 모양이지요?》

《단골까지야 뭘, 사업이 사업이니만치 식당출입이 좀 잦아.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기관만큼 흥하는데가 드물어. 누구나 탐낼만 한 곳이지. 나도 이젠 그 기관의 중진이야.》

명식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가 자기 사업에서 제나름으로 성공하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나는 그의 성공이 기뻤다.

이 소식을 빨리 철진동무에게 알리리라 생각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무렵이였다.

《그래 영민 이제 대학을 졸업하면 어떻게 하겠어?》

명식이 물었다.

《어떻게 하다니요. 난 고향에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우리 할머니와 약속했어요.》

명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글쎄… 고향으로 내려가는것도 좋지 뭐. 하지만 난 지금 영미가 자기 인생문제를 너무 산골사람처럼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봐.》

《산골사람처럼요?》

《난 진정으로 하는 소리야. 인간은 누구에게나 선택의 권리가 있거던…》

《…》

《솔직히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름다운거야. 나도 고향에 대해 생각하면 정말 이 마음이 그윽해져. 외국에 장기출장을 나가면 더 그렇지. 하지만 고향을 떠나 더 보람있구 행복한 생활을 할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그걸 굳이 마다해야 할가? 어디 한번 말해봐.》

나는 점점 그의 말에 반박할수 없는 자기를 느꼈다.

《하지만 나야 교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

명식은 한심하다는듯 껄껄 웃었다. 나는 내가 어떤 면에서는 그앞에 철부지로 비쳐진다는것을 느꼈다.

《글쎄 교원이 아니래도 큰일을 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겠다는데.》

《누가요? 동무가요?》

《그래! 우리 기관에서 함께 일해보자구. 동무가 수학을 전공하구 콤퓨터에도 능하다는걸 난 들었소. 박사원까지 다닌 동무가 할 일이 없을가봐 그래? 그리고 우리끼리 말인데 동문 정말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미인이요》

《아이참! 이 동무가 정말…》

나는 로골적인 그 말에 불쾌감마저 느꼈으나 그가 보이는 호의와 성의앞에 무기력해지고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앞에 고향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이 되겠다던 자신이 그지없이 작고 보잘것 없어지는듯 한 느낌이 드는것이 싫었으나 항변할 말은 없었다.

《그래 도시생활과 녀성으로서의 안정된 직업, 이걸 부디 마다하겠어? 한번 잘 생각해보오. 내 모든걸 다 해놓고 기다리겠으니…》

반가운 상봉은 왜그런지 시름겹게 끝났다.

나는 그가 승용차로 대학까지 태워다주겠다는것을 마다하고 천천히 걸었다.

문득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행복에 넘친 도시처녀들의 모습에 무심하게 되지 않는 자기를 발견했다. 그 처녀들 가까이에, 그 생활 가까이에 자기를 세워보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한번 갈마든 유혹이란 검질긴것이였다. 고민스러운 방황에 지치니 집생각이 더 났다.

나는 부모님들과 이 문제도 토의할겸 일요일을 타서 집으로 갔다.

늦은 아침에 고향에 도착했다. 소꿉시절과 학교시절의 가지가지 이야기가 깃든 낯익은 길우에 나섰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으며 군대로 간 철진을 생각했고 식당에서 한 명식의 말도 생각했다.

깊은 생각에 잠겨 걷던 나는 이제는 굵고 미츨해진 가로수 밑둥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있는 낯익은 모습을 발견했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일을 끝내고 지쳐 깜빡 잠이라도 든듯이 눈을 감고 나무에 몸을 기대고있었다.

나는 떨어진 나무잎 하나없는 깨끗한 포장길옆에서 시름없이 쉬고있는듯 한 할머니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어찌보면 이 길에, 이 손녀에게 한생을 바친듯 한 할머니의 모습이다.

웬일인지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할머니!》

나는 조용히 불렀다.

할머니가 눈을 떴다. 그순간 나는 할머니의 눈빛이 힘겨움과 아픔으로 흐려져있다는것을 알아보았다. 할머니의 한손은 심장부위를 아프게 누르고있었다.

《아니 할머니, 왜 그러세요? 병이 또 도지는게 아니예요? 네?!》

《오 우리 영미구나. 어제밤 꿈에 네가 보이더니만…》

할머니는 반색을 지으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지 다시 주저앉았다.

《내 몸이 좀 불편해서… 그래 그새 앓지는 않았니?》

《아니요. 할머니, 몹시 아프세요?》

할머니는 쓸쓸하게 웃어보였다.

《이젠 나도 늙었나보구나. 내 이 길루 올사람 갈사람 다 기다리구 바래우면서 언제까지라두 일하쟀더니…》

할머니의 눈가에 서운한 빛이 어리였다.

《할머니!…》

《그래두 네 할아버지가 돌아오면 이 할미가 헛살진 않았다고 할게다. 그렇지, 영미야?》

나는 목이 콱 메여버려 그저 고개만 끄덕일뿐이였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사람이란게 한생을 살아놓고보니 그저 제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면 되겠더구나. 영미야, 넌 꼭 고향사람들앞에 떳떳한 네 할아버지의 손녀가 되여야 한다. 알겠니?》

나는 마디마디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듯 한 할머니의 그 말에 선뜻 대답을 못했다.

할머니는 자기 한생을 통해 나에게 그 말을 떳떳이 할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는 나무를 붙잡고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집으로 가자.》

나는 할머니앞에 잔등을 대고 앉았다.

《할머니, 제게 업혀요.》

《뭐?! 원, 애라구. 난 일없다.》

《아니예요. 할머니, 어릴적엔 할머니가 저를 업고 키우셨지만 오늘은 내가 할머니를 업고싶어. 응?!》

《원! 자식두…》

할머니는 눈굽에 손을 가져갔다.

나는 끝내 할머니를 등에 업었다. 업는 순간 할머니가 너무도 가벼운데 놀랐다.

온몸의 진이 다 빠져버린듯 한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몸으로 오늘까지 일을 하시다니… 이 길에, 이 길을 걷는 손녀와 고향사람들에게 유감없이 자기 한생을 바친 할머니!

아픔인지 감동인지 알수 없는 눈물이 나의 눈가에 맺혔다.

그날 저녁 나는 할머니의 꺼칠한 손에 매달려 애원하다싶이 부탁했다.

《할머니, 이젠 년세도 많으신데 좀 쉬셔요. 네?! 건강치도 못한 몸으루…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에이, 난 몰라.》

할머니는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바라보는 나를 어릴 때처럼 꼭 껴안아주었다.

《영미야, 이 할미를 생각하는 네 마음을 왜 모르겠니.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장군님께서 이 길로 꼭 지나가실것만 같구나. 난 늘 이런 생각을 하며 비자루를 잡는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 일마저 하지 않는다면 내 무슨 사는 보람이 있겠니…》

할머니의 말은 나에게라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고향사람들의 추억속에 오래 남으리라는것을 알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비자루를 들고 할머니와 함께 그 길에 나섰다. 할머니의 진정을 생각하면서 길을 쓸고 쓸었다.

그후 명식이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고향에 가겠다고 떳떳이 말해주었다.

그는 내 말을 잘 리해하지 못해 의아해하고 안타까와했다.

나는 그때에야 명식이 어린시절 우리가 나누어가졌던 피나무패쪽을 잃어버렸다는것을 알았다.

몹시 섭섭했다.

《너무 자주 이사를 다니다나니… 정말 미안해. 동문 그 피나무쪼각을 건사하고있는것 같은데 날좀 주지 않겠어? 사실… 나도 그 시절의 추억에 잠겨 살고싶어.》

그의 말은 진정이였다. 하지만 나는 왜그런지 철진동무와 바꾸어가진 그 피나무패쪽을 주고싶지 않았다.

왜 주고싶지 않았는지?… 내가 그때 그 패쪽을 주었더라면 그의 운명이 달라졌을수도 있지 않았을가?

명식은 그후 사업에서 연구심이 없이 무책임하게 일하다가 국가에 많은 물질적손실을 주었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고 자기 직위에서 해임되여 어느 광산 로동자가 되였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문득 고향의 양어장뚝이 터졌을 때 그 고기를 잡아 자기 집으로 날라갔던 그를 생각했다.

그가 고향에 좀더 오래 있었더라면, 훌륭하고 소박한 사람들속에서 그들의 진정과 사랑을 좀더 알고 보았더라면 아니, 그들을 잊지 않았더라면…

나는 홀로 가슴아파하고 후회를 하였다. 그래서 그가 일하고있는 광산으로 찾아갔다.

주눅이 들고 풀기가 없어진 그는 떳떳한 고향마을의 선생님이 되여 나타난 나를 면바로 쳐다보지못했다.

《영미! 난 동무에게 할말이 없소. 그저 자신이 부끄러울뿐이요.》       

《명식동무, 물론 누구나 다 제가 태여난 고향에서만 살수는 없어요. 하지만 어딜 가든 잊지 말아야 할 고향사람들의 륜리가 있다고 난 생각해요. 자기를 사랑해주고 키워준 고향사람들앞에 떳떳하게 살려는 자각, 그들의 순결함과 성실함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자각이 우리 한생의 자양이 되고 밑천이 되여야 한다고 말이예요.》

나는 저도 모르게 철진과 바꾸어가졌던 그 피나무패쪽을 그에게 내밀었다.

《우린 어린시절에 여기에 동무의 이름을 제일 먼저 새겼어요. 난 앞으로도 우리 셋중에 동무가 제일 앞서나가기를 바라요.》

《고맙소. 영미!…》

그는 목메여 부르짖으며 떨리는 손으로 피나무패쪽을 받아들었다.

그순간 왜서인지 그 패쪽을 바꿔가지자며 빙그레 웃던 철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안해요, 철진동무. 동무가 저였대도 이렇게 했으리라고 난 믿어요.)

문득 그가 그립고 보고싶어졌다. 그 어떤 안타까움같기도 하고 즐거움같기도 한 그리움이 불시에 사정없이 가슴속에 갈마들었다.

나는 달뜨는 저녁이면 저도 모르게 추억이 깃든 어제날의 오솔길을 걷는 자기를 발견했다.

이제는 가로수들의 그림자가 우중충한 그 길에 어깨를 가지런히 하고 다정히 걷는 행복한 청춘남녀들이 늘어났다.

나는 그중의 한 처녀가 나와 동갑나이처녀라는것을 알아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나무그늘뒤에 숨어버렸다.

그렇게 숨어있자니 어쩐지 욕망같기도 하고 부끄러움같기도 한것이 가슴에 솟구쳐올랐다.

나는 드디여 내가 철진을 몹시 기다리고있다는것을 깨닫고 확 달아오르는 얼굴을 두손에 묻었다. 하지만 언제나 편지는 범상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가던 편지마저 뚝 끊어졌다.

몇달째 소식이 없었다.

(무슨 일일가? 왜 회답이 없는걸가?…)

초조와 불안, 기다림속에 흘러가는 날과 달은 몹시도 더딘것 같기도 하고 지나고보면 몹시도 빠른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웬 군관이 나를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박영미교원이 옳지요?》

《녜!》

《제 철진동무부대 정치지도원입니다.》

반가움, 기대, 그러면서도 까닭없이 가슴속에 갈마드는 이상한 불안…

나는 말을 못하고 정치지도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할듯이 갑자르다가 손수건에 싼 무엇인가를 꺼낸다. 그순간 나는 심장이 뜨끔해오는듯 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그것은 너무도 눈에 익은 피나무패쪽이였던것이다.

나는 왜서인지 검스레해진 피나무쪼각을 두손에 꼭 모두어쥐였다.

《철진동무는… 철진동무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낯빛이 어두워진 정치지도원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철진동무는 적들과의 해상전투에서 그만 심한 부상을 입고… 큰 수술을 했습니다. 이 피나무패쪽을 손에 꼭 쥐고 그 어려운 수술을 이겨내더군요. 그는… 그는 한다리를 잃었습니다. 이 패쪽을 동무에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미안하게 됐다면서 자기는 인차 고향에 갈것 같지 못하다고…》

나는 그의 피와 땀이 배여 거무스레해진 그 패쪽을 넋없이 들여다보았다. 눈물이 걷잡을새없이 떨어져 그것을 적셨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아픔의 눈물이 아니였다.

《영미선생!》

《미안하다구요?! 아니예요. 그는 고향에 떳떳하게 들어설수 있어요.》

나는 울면서 웃고있었다.

나는 그 패쪽과 함께 보내온 철진의 말에서 고향에 대한 그의 진정한 사랑을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비껴진 고향의 모습은 이 피나무패쪽과 어우러진 나의 모습이라는것도 똑똑히 느꼈다.

나에게는 그것이면 되였다.

오직 그것이면, 그가 나를 잊지 않고있으며 그가 살아있다는 그것이면 되였다.

코스모스꽃이 활짝 피여 웃는 포장길을 뛰다싶이 걸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웨쳤다.

(철진동무, 고향이… 고향이 기다리고있어요. 제가 동무의 억센 다리가 되여줄수만 있다면… 아니, 우린 이 길을 영원히 함께 걷게 될거예요.)

이튿날 나는 텔레비죤과 방송을 통해 철진동무가 영웅이 되였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마을은 끓고있었다.

행복이 쌍으로 왔다고 할가, 영웅을 맞이한 우리 고향에 또 하나의 경사가 났다.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가 백발을 날리며 고향을 다시 밟게 된것이였다.

오랜 세월 차디찬 감방속에서 어느 단 하루도 잊고산적 없는 고향땅을 밟는것으로써 은혜로운 조국의 품에 안긴것이다.

할아버지는 고향의 들꽃과 함께 나를 얼싸안았다.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고향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고향사람들과 아이들을 보았다.

온 마을이 아니, 온 나라가 울고웃으며 우리를 축복해주는것이다.

삽시에 우리는 꽃속에 묻혀 마을에 들어섰다.

고향은 이렇게 할아버지를 맞이했다.

고향은 이렇게 나를 철진동무곁에 세워주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것이였다.

그 행복을 돌이켜볼 때면 나에게는 왜서인지 우리가 달리 될수 없는 운명인듯이 느껴진다.

어디서든 우리가 꼭 이렇게 만나 가정을 이루고 할아버지를 맞이했을것이라고 생각된다.

꼭 이렇게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디서든 가장 훌륭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자리에서 꼭 만날듯이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아름다운것, 훌륭한것, 행복한것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어린시절부터 오늘까지 우리에게 정을 주고 지혜를 주고 지어는 욕까지 해준 그 사람들의 소원과 희망, 기쁨과 아픔, 근면한 노력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것, 훌륭한것, 행복한것으로 받아안았기때문이다.

우리는 그 나날에 이미 마음의 키를 자래웠다.

아! 고마운 땅, 고마운 사람들!

한생의 자양을 준 어머니산천, 어머니조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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