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해빛은 따사롭다         

 

 

                                                                        맹  경  심

1

 

출판사의 아침은 여느때없이 분주했다.

한옆으로 몰아붙인 니켈도금한 정문 가운데를 가득 메우며 들어서는 출근행렬이며 붐비는 복도뿐이 아니였다. 어느 부서의 문을 열어보아도 사업의 긴장한 활기가 팽팽히 차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월말이 가까와오는데다가 아침이면 별로 분주해지는것이 기자들의 직업적인 타성이 아닌가. 뻐스에서도 거리를 따라 걸으면서도  머리속에 똬리를 튼 착잡한 생각에 잠겨 만사가 심드렁하던 현희의 자세도 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서부터는 그 활기에 말려들어갔다. 그는 청회색봄가을외투를 옷걸이에 걸려있던 덧옷과 바꿔입고 아침청소를  하고 콤퓨터의 타자기앞에 마주 앉을 때까지는 분주히 돌아쳤다.

하지만 원고뭉치를 펼치자 또다시 싸늘한 기운이 엄습해오면서 온몸이 오싹해졌다.

그는 책상에 고인 왼손으로 이마를 싸쥐며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두눈을 꼭 감고 입술을 감쳐물었다.

오늘 아침 만났던 동생인 현옥의 일이 그의 마음을 산란하게 했던것이다.

화학공업성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의 남편의 부서에서 어느 한 지방공장의 개건현대화와 관련하여 한명의 연구사를 보내게 되였다.

현옥의 남편은 자신이 그 적임자라면서 주저없이 그 일을 스스로 맡아나섰다.

실에서는 그가 맡고있는 연구과제를 고려하여 다른 연구사를 보내려고 하였지만 해당한 절차를 밟은 현옥의 남편은 어제 드디여 파견장을 받은것이였다.

너무도 갑자기 닥쳐진 일이라 아직 둘사이에는 이사문제를 론의해보지도 못했다면서 현옥은 현희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고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었다.

현희는 차마 무엇이라고 대답해줄수가 없었다.

현옥에게 있어서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는 시절이였다.

언니의 뒤를 이어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의 이름있는 극장에 배치받은 녀배우로서 전도유망한 남편과 명민한 두눈동자에 평양을 세상의 전부로 새기기 시작한 귀염둥이 아들, 수도에서의 행복한 생활…

현희는 안타까왔다.

다른 사람이 그런 결심을 했고 그의 안해가 따라섰다면 바로 이렇게 사는것이 《우리 세대 인간의 본분이고 도리이며 미덕》이라고 극구찬양하는 긍정기사를 써야 하는것이 자신의 직분이 아닌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해주어야 현옥의 안타까운 그 마음을 위로해줄것인가.

현희는 저도 모르게 서글퍼지는 마음을 어찌할수 없었다.

이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성미 급한 부장이였다.

《아, 나왔구만. 현희동무, 빨리 취재준비를 해야겠소.》

《네? 취재라니요? 오늘이야…》

오늘은 래달호에 실을 기사를 완성하여 편집에 넘기기로 되여있었다.

《비행장으로 빨리 나가야겠소. 특별기사감이요. 김희영동무가 돌아온다오. 우리 출판사가 놓쳐서야 안되지. 빨리 준비하오. 내 사진부에…》

《예?!》

부장은 현희가 미처 말귀를 알아차릴새도 없이 손짓으로 재촉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손에 들었던 원고뭉치가 와르륵 허물어져내렸다. 현희에게는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모든것을 깨달을수 있었다.

(희영아!)

순간 반가움이 싸늘했던 온몸으로 짜릿이 줄달음쳤다.

김희영, 그는 뜻밖에 타번지는 불의 폭풍속에서 백두선렬들의 넋이 어린 구호나무들을 목숨바쳐 지켜낸 《ㅈ》봉 결사옹위투사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죽음을 각오한 그 순간에도 동지애의 불길은 뜨겁게 타올라 우리 인민곁에 애어린 처녀병사를 수령결사옹위의 산 투사로 남겨두고 갔다.

그 김희영은 바로 현희의 소꿉시절 둘도 없는 딱친구였다. 세월의 파도는 두 소녀가 승벽내기로 돌차기를 하느라고 마당가에 그어놓았던 땅금도, 비가 오면 한우산밑에 껴안고 뛰여가며 찍던 학교운동장의 꽃신자국도  가뭇없이 지워버린지 오랬으나 성장의 언덕과 더불어 우정의 자욱은 그들의 가슴에 더욱 뚜렷이 새겨져있었다.

희영은 갈매기처럼 훨훨 날아 바다의 초병이 되였고 현희는 제비처럼 씽씽 대학의 높푸른 추녀아래로 솟구쳐올랐다. 솔숲푸른 고향언덕에서 날아오른 두 새는 멀리서도 서로를 그리며 나래를 키워왔다. 어엿이 성장한 서로의 모습을 보고 놀라며 반길 그날을 그리던 현희에게 희영의 소식은 너무나도 뜻밖의 시각에 믿을수 없게 전해졌다. 온 대학에 몰아치던 충격의 불길!

《ㅈ》봉영웅들처럼 살자고 심장을 끓이고 주먹을 부르쥐고 저저마다 연단에 뛰여올라 웨치던 그 투사들의 이름속에 희영이가 있을 때 현희는 선뜻 귀를 의심했다. 고향에서 온 편지를 받고서야, 희영이가 입원해있는 중앙병원에 찾아가서야 모든것을 믿을수 있었다. 희영의 얼굴에 두텁게 붕대가 감겨있을 때에는 꼭 잡은 두손과 그립던 목소리가 흘러드는 귀전으로만 우정의 감회를 나누어야 했다. 감탄, 고무, 격려… 무엇을 아낄수 있으랴. 현희는 일요일만 되면 병원으로 내달렸다.

어느덧 희영이가 마지막붕대를 푸는 날이 왔다.훤칠한 이마에 어글어글한 두눈,늘씬 치솟은 코마루… 곱다기보다 잘났다는 칭찬을 더 많이 듣던 희영의 모색을 되새기며 초조하게 붕대돌기를 세여가던 현희는 그만 어깨가 축 처지였다.

이마와 눈가에 숨길수 없게 뚜렷한 상처자국…

《…참 아쉽구나…》

머리를 빗겨주다가 현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새여나간 말이였다. 거울을 들고 앉았던 희영이가 흔연히 웃었다.

《괜찮아, 현희야, 난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지 않니! 두발로 이 땅을 디딜수 있고 두눈으로 이 밝은 해빛을 볼수 있고 가슴 벅차게 숨쉴수 있고… 동지들이 남겨준 삶으로 그 모든 영광을 내가 받고있지 않니!》

그의 깊은 두눈가에 눈물이 피잉 고이였다.

현희는 희영의 어깨를 꽈악 그러안았다.

《희영아!》

창가로 쏟아져들어오는 해빛에 두 처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구슬처럼 반짝였다.…

…승용차는 쏜살같이 거리를 누비며 달리였다.

차창으로 비껴드는 거리의 화면들이 현희의 시야에는 하나도 안겨들지 않았다. 오직 희영의 상처입은 얼굴만이 눈앞을 꽉 채웠다.

마음은 어느덧 깊은 생각속으로 하염없이 잠겨들었다. 무릇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인간에게 완전무결한 행복이 차례지기란 쉽지 않다고들 한다.

명성과 명예를 얻은 인간도, 재부와 직위를 가진 인간도 다 제나름대로의 불만이나 걱정이 있었다. 행복의 기준을 놓고 얼마나 오랜 력사가 모색해왔고 얼마나 많은 리론가들이 제딴의 정의를 주장해왔던가.

하다면 오늘 우리 조국, 우리 시대 인간들의 행복관은 그 얼마나 고상하고 신성한것인가.

나 하나만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진보와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밑거름이 되여주고 자양분이 되여주는데서 행복을 찾는 우리 조국.

하기에 인간에게서 행복이란 언제나 소중한것이다.

그 소중함을 위해 인간이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것이다.

현희는 대학졸업과 더불어 부닥치는 벅찬 생활의 소용돌이속에서도 희영을 잊은적이 없었다.

먼저 간 동지들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그들 몫까지 다하려고 자기의 노력을 깡그리 바쳐온 희영이였다.

그속에 그의 행복이 있었다. 하지만 현희는 희영의 그 빛나는 영예와 벅찬 삶의 갈피에도 자신을 강잉히 이겨내야 하는 고뇌와 괴로움이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희영이 역시 처녀였기에, 그에게도 누구나 맞이하고 누려야 할 인생의 계단들이 놓여있기에 그것을 묵새기기 쉽지 않은것이였다.

그 고충을 오직 현희하고만 나눈 희영이였다. 그 모든것앞에 약해지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밝게 웃으려고 희영은 마음속 진정을 현희와의 편지로만 나누었다.…

《하, 이거 우리가 늦은게 아니요? 분명 10시라고 했는데…》

무슨 일이나 법석 분주탕을 피워야 해제끼는 맛을 느끼는 부장이 승용차가 멈춰서기도 전부터 궁싯거렸다. 그 말에 현희도 펀뜻 정신을 차렸다. 항공역앞에는 벌써 낯익은 신문사와 출판사의 대기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직업적인 타성에서인지 온몸에 팽팽하게 긴장감이 내돋혔다.

그의 눈길은 벌써 누군가를 찾아 술렁대는 사람들을 번지고있었다. 낯익은 동료기자들이 반기는 손짓도 띄여볼새없이 그는 대기실안으로 들어갔다. 넓다란 대기실안의 광택이 번쩍이는 앞탁들을 마주한 의자들에도 사람들이 거의나 차있었다. 현희의 눈길은 집요하게 그들을 흝어나갔다. 이때 웅글진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현희동무!》

귀익은 음성,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먼저 만나보고싶던 그 사람… 현희는 돌아섰다. 름름한 해군군관이 그에게로 다가섰다.

림주철, 희영의 남편이였다.

《진희 아버지!》

그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의 마음에 굼니는 기쁨이 한순간에 합쳐졌다. 주철의 밝은 눈빛에서 현희는 희영의 지나온 생활, 그 남모르는 마음속의 그늘마저 낱낱이 씻어버린 그 나날을 읽고있었다.

 

2

      

현희, 그동안 자기의 보금자리를 꾸린 너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내가 일곱번째 수술을 마치고 병원을 뛰쳐나와 고향으로 내려온지도 벌써 두해가 지났구나. 작별인사도 없이 내려온 나를 원망한 너의 편지를 받았다.

하지만 내 얼굴의 상처자국을 가셔주려고 있는 지성을 다하는 병원선생님들에게 미안했고 또 덧없이 침대우에서 거울이나 보면서 세월을 보내고있는 자신이 두려웠어. 그 상처가 뭐냐?

동지들은 생명을 바쳤는데…

바친 희생보다 차례진 영광이 더 큰 내게 그 상처자국이란 뭐냐? 오히려 나를 검증할 마음의 시금석이나 같지. 널 만나러 새로 배치된 출판사에 찾아갔었는데 취재나갔더구나.

분명히 새 초소에서 처음부터 자기의 실력을 보이고있겠구나 하는 너에 대한 믿음과 부러움 그리고 앞날에 대한 축복을 걸음걸음 남기며 나 홀로 평양역을 떠났다. 고향에 돌아온 길로 나는 다시 부대를 찾아갔어. 비여있는 군사복무의 공백을 메우고싶었구나. 비록 다시 군복을 입을수는 없어도 어쩐지 내가 설 자리를 거기서 찾고싶더구나. 부대 정치부에서 내 마음을 헤아려 부대관하 혁명사적문헌보존연구사 겸 구호나무해설강사로 병사의 위치를 되찾아주었어.

동지들이 지켜낸 구호나무와 함께 있는, 답사자들에게 그 넋을 심어주는 일이상 나에게 보람찬 일터가 어디 있겠니! 현희, 난 이렇게 다시 초소에 섰다. 먼저 간 전우들의 뜻대로 살려는 자각, 다시 찾은 병사시절의 활기와 열정, 이 모든것은 내게 생활의 보람과 의욕을 벅차게 안겨주었어.

하지만 현희, 너에게만 고백하건대 내게도 남들이 알수 없는 가슴속의 그늘이 끈질기게 가슴을 괴롭혔다. 병사들속에 어울려 손풍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들 때에는 마음의 위축이 가뭇없다가도 나 홀로 길을 가다가 누구와 마주칠 때면 유심히 나를 뜯어보는것 같은 동정의 눈빛이 얼굴의 상처를 뚜져놓는것처럼 마음이 아프더구나. 그러면 고개는 저절로 수그러지고 두볼은 화끈 달아오르고…

이것이 나약해지는 마음인줄 알기에 입술을 사려물고 자신을 가다듬었다가도 불시에 닥치는 그런 순간들에는 눈물까지 솟게 되니…

아마도 녀자의 본능이라 해야 할는지…

그러다보니 내가 좀 그전보다 예민해지고 행동이나 표정이 차거워졌던가봐.

현희, 너도 알지. 나와 함께 《ㅈ》봉의 불길속에서 살아난 두사람을… 우린 한연구소에서 일한단다. 하루는 그 박동지가 《요샌 희영이한테 말건네기도 서슴어져.》하고 실망한듯 말하더구나.

드디여 내게도 본격적인 공격의 화살들이 날아들기 시작했어. 하루는 그가 되게는 성이 나서 나를 닦아세우더구나.

《희영이, 어제 집에 왔던 총각을 만나지도 않고 돌려보냈다면서? 왜 그랬나, 응?》

아마 어머니가 속상해서 그들을 찾아와 하소했던 모양이야.

《왜? 얼굴때문에 부끄러워서?》

《…》

《그럼 그 총각이 눈에 차지 않던가?》

《…》

그앞에서 어떻게 내 심정을 루루이 설명할수 있겠니!

《박동지, 전… 시집 안 가요》

《뭐… 뭐라구?》

억이 막힌듯 그가 내게로 한걸음 다가서는데 우리 연구실의 책임자인 김동지가 들어왔어.

《아, 박동무, 그만하게. 우리 희영이가 왜 시집을 안 가? 마음드는 총각을 골라서 희영이옆에 세워주자구. 온 나라 처녀들이 부러워할 그런 신랑감을말일세. 응?》

《글쎄 그래서라면 몰라두 난 저 애가 얼굴때문에 마음을 독하게 먹을가봐 그럽니다. 그건 패배주의구 먼저 간 동지들을 욕되게 하는거지요.》

박동지가 추켜세웠던 눈섭을 풀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더구나. 난 그만 눈물이 왈칵 치밀어올라 방에서 뛰쳐나오고말았어. 내가 제일 믿어오고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리라고 생각했댔던 그들에게서 여태껏 도사려먹었던 내딴의 신념이 부정당한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서럽기도 하고… 하지만 현희, 그때같아선 나에 대한 어느 남자 일방의 동정이나 리해로 인한 사랑이라는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더구나.

나 역시 그 남자를 위해 사랑이 싹틀수 있고 나 역시 그에게 무한히 매혹될수 있는 사랑… 나도 처녀랍시고 그런 사랑을 바랐지. 하지만 누구앞에서 이런 말을 할수가 있고 또 누구에게서 그걸 바라겠니. 동등한 리상과 동등한 매혹으로 한생을 함께 불태울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아니면… 아마도 그래서 내가 마음의 문을 더 꼭꼭 닫았던거야. 하지만 현희야, 너에게야 뭘 숨기겠니?

내게 관심을 둔 뭇남자들을 외면한 내 가슴속에도 어떻게 어느새 자리잡혔는지 잊혀지지 않고 자꾸만 생각케 하는 한사람이 있었단다.

어느날이였어. 집에서 나설 때에는 맑게 개인 날씨더니 《ㅈ》 봉에 이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구나. 한나무, 또 한나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꿈에도 잊을수 없는 전우들의 모습을 그리며 《ㅈ》봉기슭을 거닐고있는데 《차렷! 경례!》하는 우렁찬 구령소리가 들려오더구나. 돌아보니 한개 중대가량의 병사들이 렬을 맞춰 정보로 걸어오면서 바로 내가 서있는 영웅렬사묘를 향해 경례를 하더구나. 나는 허리를 굽혀 그들에게 인사를 했어. 절절한 가슴속 당부를 담아서…

대렬이 지나가고 나는 다시 렬사묘곁을 오르는데 처벅처벅 누군가가 다가오지 않겠니?

내가 미처 돌아서서 다가선 그 사람을 자세히 볼새도 없이 그는 내 어깨에 비옷을 덥석 씌워주었어.

《아니?!》

내가 마지막으로 본것은 비물뽀얀 얼굴을 훔치며 싱굿 웃던 모습이였어. 군사칭호를 보아선 이제 지나간 그 대렬의 지휘관쯤 돼보이더구나.

그날 저녁이였어. 비발은 뜸해졌어도 그 비옷을 벗기가 싫더구나. 집으로 들어설 때면 대문밖에서부터 토방에 낯선 신발이 또 있는가부터 살피는데 습관되다보니 대문앞에서 키돋움을 했단다. 그런데 웬걸, 흙묻은 군화가 또 있겠지. 결국 집에는 못 들어갔지 뭐. 살그머니 뜨락을 돌아 뒤창문가의 토방에 올라서서 집안동정을 살폈어. 본시 마음이 헤픈 우리 어머니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렸어.

다행히도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선것 같았어.

《아니, 우리 희영일 만나보지 않구 가나?》

《희영동무야 제가 너무나도 잘 아는데 만나구말구 할게 있습니까? 그저 그 동무앞에 내가 설 자격이 있을가 해서 왔댔습니다.》

진중한 그 목소리가 왜 그리 내 가슴을 파고들던지…

《원, 이런 훌륭한 사람을 싫다 하면야 덜돼먹은 사람이지.》

어머닌 아마도 그에게 확 반했던 모양이야.

《그래 정 가려나?》

《어머니, 제 후날 다시 오렵니다.》

《어쩌누, 비가 오는구만. 자, 이 우산이라두…》

속상하더구나. 빨리 보낼것이지. 이 딸은 마당에서 떨고있는데…

《제 비옷은 이미 희영동무한테 가있는걸요.》

그 말에 난 그만 굳어져버렸어. 결국 나는 그의 비옷을 입고 그는 비를 맞으며 떠나갔어.

현희야, 그때부터 어쩐지 비오는 날이면 나에게 있는 우산이나 비옷보다 그 비옷을 입게 돼더구나. 그리고 혹시 다시 만날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미련은 나도 모르게 자꾸 자라나고…

그러다가도 온 가슴에  넌출을 뻗친 그 생각을 와락와락 잡아당기며 스스로 나를 힐난도 했지.

(어리석은 김희영이, 그럼 네 발로 찾아가 네 마음을 고백할테야? 안돼, 절대로…)

그러던 가랑비가 내리는 어느날이였어. 총총히 걸음을 옮기던 나는 어디선가 유심히 지켜보는듯 한 느낌이 들더구나. 습관처럼 더 눈을 내리깔고 서리찬 표정으로 걷던 난 하도 집요한 그 눈길에 언뜻 고개를 쳐들었어. 부대 지휘부의 고양나무담장곁에 젖은 군복차림의 한 군관이 섰더구나.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그는 당황해하지도 않고 반가운듯 싱긋이 웃지 않겠니.

(누굴가? 어디서 봤을가?)

현희, 그가 나를 보고 반갑게 웃은것은 바로 그 비옷때문이였어. 그 비옷을 입고있는 거기에 내 마음이 다 우러난것 같아 당황하기란 참…

《안녕하십니까?》

그가 깍듯이 거수경례를 했어.

《안녕하세요? 이 비옷… 그날… 고마웠어요.》

나는 황황히 비옷단추를 벗기였어. 돌려주어야 했으니까.

《아. 됐습니다. 비옷을 되찾으려고 기다린건 아니고… 마음에 든다면 앞으로도 입으십시오.》

비옷소매를 잡으며 말하는 그의 표정은 더 바랄것이 없는듯 흐뭇했어. 그의 미소에 나도 싱긋 따라웃었지.

《고마워요.》

우린 또 이름도 모르고 혜여졌어. 아니, 차라리 그 사람과는 좀더 다가서지 않고 그렇게 벗으로 친근하게 마주서는편이 내겐 더 좋았어.

병사시절의 내 군복곁에 나란히 그 비옷을 걸어놓고 샘솟아나는 처녀의 온갖 공상과 소중한 마음을 고이 얹으며 살기가 더 행복할것 같았어.

그런데 현희야, 나 홀로 지어보던 그 행복의 작은 집을 마구 허물어뜨리는 일이 벌어질줄이야.

…답사길에 나무블로크포장을 하기 위해 로정을 토의하러 우리 연구실의 세사람은 《ㅈ》봉을 돌아보고 내려오고있었어. 아까부터 내 눈치를 살피며 히뭇이 웃기만 하던 박동지가 끝내 참지 못하겠던지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겠어.

《희영이, 언제까지나 숨기고있겠나? 우리도 빨리 국수를 먹자구.》

《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의아해서 되물었어.

《허엇 참, <ㅅ>전대 함장과 약속한 사이라는걸 우리가 모르는줄 아나? 온 사택마을에 다 퍼졌는데. 그 사람이면 난 대찬성이요. 어때요, 김동지.》

《더 말할게 있나. 나 역시 찬성일세. 하하하.》

고요한 《ㅈ》봉기슭을 다 울리는것 같은 그들의 웃음소리에 질겁하여 나는 그만 소리쳤어.

《어마나! 그만하십시오. 전… 전 정말 그가 누군지 얼굴조차 몰라요. 어쩜 그런 터무니없는…》

온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울음이 당장 터져나오려 하더구나. 그러자 두사람의 얼굴에 넘실대던 웃음의 물결이 순간에 얼어붙었어.

《그래두… 그 사람이 고향에 처녀 데리러 가라고 휴가명령을 준 부대장앞에서 직접 말했다던데?

애인이 희영이라구…》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데 있겠니?

심장은 화들거리고 그 함장이라는 인간에 대한 별의별 억측과 분노가 걷잡을수없이 뿜어나더구나.

나는 그길로 그를 찾아 떠났어.

그가 복무한다는 《ㅅ》전대까지는 시오리길이 넘었어. 언제 먼길을 가릴새 있고 비오는걸 꺼릴새도 없었어. 현희, 너희네 문학가들이 영화나 소설들에 슬프거나 격분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쩍하면 폭우나 비바람을 헤치는 장면과 흔히 결부시키는걸 놓구 은근히 비평하던 나였다.

그런데 그날만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달래일길 없는 내 마음을 알아주듯 비바람이 온몸을 흔들고 차거운 비방울은 마음의 눈물인양 하염없이 얼굴을 적시고…

어떻게 거기까지 갔던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구나. 부끄러워서 누구에게 물어볼수도 없어 전대 정치위원을 찾아갔다. 내 마음이 어떤줄은 모르면서 전대 정치위원은 반갑게 맞아주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 군관을 데리러 자기가 직접 나가더구나. 그를 기다리는 동안 방안의 따뜻한 온기속에, 고요함속에 홀로 앉아있느라니 차츰 들레이던 가슴이 갈앉고 리성이 랭정하게 마음속을 정돈시켜주더라. 그러느라니 그렇듯 흥분하고 격분했던 자신이 부끄러워났어. 불달린 성냥처럼 확 타올랐다가 순간에 꺼먼 재만 남은 내 마음이였지. 현희 생각해봐, 내 이제 그 군관을 만난들 뭐라고 따져묻겠니.

철부지들처럼 자기가 옳다고 우길내기를 할수도 없고… 차라리 만나지 않는편이 나을것 같더구나. 우선 비속까지 헤치고 찾아온 내가 더 어리석었지뭐. 어이없고 부끄럽기란 어디에 비기겠니? 현희야, 여태껏 그런 일에 뜨끔도 하지 않던 내가 이렇게까지 된건 아마도 그 비옷때문인것 같아. 그 비옷이 남겨준 아직은 사랑이라 할수 없는 그 소중한것을 지키고싶은 처녀의 마음이 이런 망측한 행동까지 하게 한 모양이지?

(가자,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는 황급히 정치위원의 방을 나섰어. 전대지휘부뜨락에 나서니 비발이 가늘어져 보슬보슬 내렸어. 흠뻑 젖었던 몸이 오싹해져 어깨를 움츠리는데 바로 내앞의 계단아래에 웬 군관 한사람이 막아서있더구나. (이 사람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온몸에 성에가 내불리는것 같더구나.

그런데 모자와 어깨가 축축히 젖고 온 얼굴에 비방울이 이슬처럼 뽀얗게 뿌려진 그의 모습을 여겨보니 아니 글쎄 그 비옷임자가 아니겠니!

순간 가슴이 후두둑 방망이쳤어. 하필 이런 때 이렇게 마주서게 되다니… 참, 난 그 비옷임자가 내가 찾아온 그 사람일줄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 내가 그를 외면하고 반쯤 돌아섰는데 그가 내앞을 막아서더구나.

《사실 동무가 찾아오길 기다렸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내가 바로 림주철입니다.》

얼굴에 뿌려진 비방울을 한손으로 훔치며 그가 하는 말에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를 한번 생각해봐. 허둥지둥한 마음… 격분할수도 없고 반가와 할수는 더욱 없는 그 당황함, 저도 모르게 두눈을 꼭 감았어. 하지만 현희, 내가 그에게 경멸이나 분노를 표시했더라면 그건 위선일거야.

그는 이미 내 마음을 차지하고있던 사람이 아니니. 자존심이 꺾일지언정 자신을 속이고싶진 않더구나. 그때였어.

《격분해서 찾아온 길이겠지요?…》

깊디깊은 속마음이 내비쳐진 미소띤 눈빛, 순진하게 벌려진 입술… 어찌할수 없는 마음으로 난 그를 밉지 않게 흘겨보았어. 그러자 그는 내 손을 꼭잡고 걸음을 떼더구나.

비내리는 백사장, 검푸른 물결이 밀려왔다가는 밀려가고… 한량없는 내 마음처럼 설레는 바다.

갈피를 못 잡는 내 마음을 헤아려선지 그는 아무 말없이 앞서 걷기만 하더구나.

푹 젖은 모래불우에 깊숙이 찍혀지는 그 발자국들이 드틸수 없는, 조금도 물리칠수 없는 그의 결심을 내 가슴에 꾹꾹 새겨주는것 같았어.

하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어.

《너무 쉽게 결론하는것 같군요.》

《아니요. 동문 마땅히 군인의 안해가 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장군님께서도 마음을 놓으실거요. 문제는…》

갑자기 중둥무이된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이 덜컥하여 그를 쳐다보았어. 현희, 그 순간 내가 보았던 그의 눈빛은 일생 잊을수 없을것 같아.

《문제는 다만 이 림주철이가 동무의 남편이 될 자격이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현희야, 그의 눈길은 묻고있었어, 바로 나에게… 자기를 사랑할수 있느냐고… 자기의 사랑을 받아들이는가고… 그 눈길을 피해 머리를 돌린 내 눈앞에는 드넓은 바다가 통채로 안겨들었어.

이 바다와 같이 끝없고 깊디깊은 사랑의 바다가 나를 부르고있었어. 홀로 기슭에서 고개를 숙이고있지 말고 이 바다, 동지애와 헌신으로 뜨겁게 들끓는 이 바다에 뛰여들라고, 그래서 더 억세게 나래를 펼치고 날으라고…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두볼을 지지며 흘렀어.

내가 다시 그를 바라볼 때까지 그는 내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더구나. 대답, 말로는 다 표현할수 없는 그 대답…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에 대한 믿음에 내 가슴에 가꿔오던 온갖 꿈과 소원을 깡그리 맡겨버리는 순간이였어.

보슬비가 내리는 그 한가운데로 우린 끝없이 걷고 또 걸었어. 길게 나눈 말도 없었어.

꼭 잡은 두손과 이따금 부딪치는 눈빛에서 티끌만한 의심도 없는, 머나먼 인생길에 충실할 마음을 나누었을뿐…  헤여질 때였어.

《옷이 다 젖었소. 잠간 기다리시오. 내 비옷을 가져오겠소.》

《그만두세요. 저에겐 이미 동지의 비옷이 있는걸요.》

…따뜻한 그의 눈길을 행복스레 받으며 나는 떠나왔어. 내 가야 할 인생의 앞길에 뿌려질 찬눈비를 다 막아줄 그 마음의 비옷이 있는데 왜 내 마음이 비에 젖겠니!

현희, 온 마을, 온 부대의 축복을 받으며 우린 한가정을 이루었다.

너의 축복까지 받고싶어 이렇듯 내 소식을 전해보낸다. 평양하늘아래에 새 깃을 편 너도 행복하리라고 믿는다.

내 조국, 아버지장군님 계시는 내 나라에서야 누구의 행복인들 의심할수 있겠니! 그럼 안녕히!

 

 

3

 

바로 희영의 그 행복, 그 사랑의 기둥이 현희앞에 서있는것이였다. 현희가 휴가를 받고 희영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낯을 익혔고 희영이가 조국을 떠나느라고 평양으로 올라왔을 때에는 이미 친근한 사이가 되였다.

《진희는요? 데리고 오셨겠지요?》

희영이가 돌아올 때까지 현희가 키워주려 했건만 《ㅈ》봉에서 키워야 한다고 림주철이 기어코 데리고 간 딸애였다.

《예. 저기…》

림주철이 가리킨쪽을 보니 복슬복슬한 털옷속에 감싸여 더욱 통통한 소녀애가 복잡한 대기실안을 제 세상인듯 돌아치고있었다.

모두들 그 애를 애무의 눈길로 쓰다듬고있었다.

《벌써 걷는군요? 제 엄마가 봤으면 깜짝 놀라겠어요.》

《그 부인이 시샘이 나라고 전달에 우리 둘이서 꼭 껴안고 찍은 사진을 보냈지요. 하하하.》

림주철의 롱담에 현희도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가무리기도 전에 눈굽이 찌르르해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행복, 행복해도 저들처럼 행복한 사람들이 있을가! 부러웠다. 희영에게 아름차게 안겨지는 그 행복이 참으로 부러웠다.

사진, 그것은 희영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마음속 고충이였다. 결혼식날에도 사진기렌즈가 다가서자 림주철의 넓은 어깨뒤에 숨어버린 희영이였다.

고개를 숙이고 주철의 옷자락만 잡아당기는 희영의 손을 와락 잡아당겨 자기곁에 꼭 세워주며 림주철이 말했다고 했다.

《뭘 주저하는거요? 동무답지 못하게. 이 사진을 찍지 않으면 당신은 <ㅈ>봉의 불사조가 아니요.》

그렇게 남긴 그들의 결혼사진이 현희에게도 한장 있었다. 그후에도 사진찍는 일만은 피해온 희영이였다. 오죽했으면 딸애와의 백날사진도 안찍었겠는가. 부대의 군인가족들이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에 참가하러 평양으로 떠나는 날 장군님 뵈오러 가는 그들이 부러워 홀로 《ㅈ》봉에 올랐다는 희영이, 가슴속에 솟구치는 그리움과 설음을 강잉히 누르며 전우들이 지켜낸 구호나무들을 돌고돌며 눈물속에 그가 부른 노래.

 

조용히 걸으시라 그리고 들으시라

그러면 들려오리 그대들 귀전에

 

아버지장군님께 자기의 노래도 드리고싶은 그 소원이 온 《ㅈ》봉에 굽이쳤다. 안해의 심정을 헤아려 뒤따라왔던 림주철이 끝내는 참지 못하고 《여보!》하고 부르자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고 또 울었다는 희영이, 그렇게 안고있던 마음속 그늘을 바로 그 사진때문에 깨끗이 가시고 또다시 크나큰 사랑의 나래에 실려 조국을 떠난 희영이였다. 현희가 아버지장군님을 뵈온 희영의 편지를 받은것은 그가 조국을 떠나기 한달전이였다.…

…현희, 글쎄 이를 어쩌면 좋겠니. 온 부대가 감격에 설레며 웨치는 만세소리가 산촌의 하늘을 떠지르는데 정치위원동지가 나에게로 다가오는게 아니겠니?

아니 글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ㅈ》봉의 화염속에서 살아난 우리 세명을 부르시였다고 말이야. 그 순간 나는 굳어지고말았어. 가뭇 잊고 살았던 그 상처자국이 거울앞에 선듯 눈앞에 아찔하게 비껴들더구나.

(안돼. 그이께서 나를 보시고 마음 흐리시면…)

이 몸이 통채로 장군님품에 꽃다발이 되고픈 마음이야 어찌하랴만 밝게 웃는 꽃이 못될 내가 아니니. 난 저도 모르게 도리머리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어.

《아니 왜 그러오? 엉?》

《전… 안됩니다. 장군님께서 저를 보시고… 흑ㅡ》

그러는 나의 마음을 헤아려본듯 정치위원의 눈굽도 축축히 젖어들었어.

《희영동무, 너무 그러지 마오. 하지만…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동무들을 부르시지 않소. <ㅈ>봉의 불사조인 동무들을 말이요.》

뜨거움에 가슴을 울먹이며 우리는 꿈결에도 뵙고싶었던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에 안기게 되였어.

행복과 긍지로 터질듯 한 가슴에도 한가닥의 위축이 자꾸만 얽매여 어버이장군님께서 내쪽을 보실 때마다 고개가 저도 모르게 숙어졌어.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장군님의 시선이 자주 내게로 향하는것때문이였어.

아프지는 않는가, 애로되는것은 없는가.…

친어버이된 심정으로 생활의 구석구석을 물어주시던 그이께서는 이들의 얼굴에 남아있는 상처를 영영 가셔주어야 한다시며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정형외과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셨어.

장군님께서 떠나가신 후 난 그만 가슴에 북받치는 오열을 터뜨리며 실컷 울었어.

나약한 녀자의 위축된 마음이라고 남편도 동지들도 준절히 다잡아주던 그 상처자욱, 내가 좀더 강의하고 억셌더라면 흔연히 이겨냈을 그 상처자국을 장군님께선 내 가슴의 그늘로 헤아려보시고 어머니보다, 남편보다 더 가슴아파하시고 이토록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신거야.

현희, 며칠후면 우린 장군님께서 펼쳐주신 사랑의 나래에 실려 조국을 떠나게 된다. 평양에서 만나자.

…이렇게 떠나간 희영이였다. 두달전에 희영이를 내놓고 두사람은 조국으로 돌아왔다.

희영의 치료정형을 알아보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얼굴에 티끌만 한 흠집 하나도 남아서는 안된다고, 몇달 더 걸리더라도 말끔히 치료하라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오늘에야 조국으로 돌아오는 희영이였다. 누구나 다 시계의 분침만을 초조히 지켜보고있었다. 몇분후면 행복의 선녀를 태운 비행기가 내 조국의 푸른 하늘을 날아 은혜로운 이 땅에 내려앉을것이다.

이때 항공역의 나들문을 꽉 채우고 선 기자들과 촬영가들을 비집고 촬영기를 든 낯선 사람들이 들어섰다. 의혹의 눈빛들이 서로를 더듬으며 대답을 찾고있는데 격정에 넘친 목소리가 장내를 울리였다.

《동무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김희영동무가 돌아온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 동무의 사진을 찍어오라고, 자신께서 보시고야 마음놓겠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을 보내시였습니다.》

순간 장내에는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현희는 그만 왈칵 눈물을 쏟쳤다.

(희영아, 넌 어쩌면… 어쩌면…)

철모르는 희영의 딸애가 현희의 품에 안겨있다가 눈물로 번들거리는 두볼을 조그만 손으로 살그머니 닦아주었다.

(복받은 애야, 너야말로 정말 이 큰 복을 모르는 복동이로구나.)

자꾸만 뜨거운것을 삼키는 현희에게서 림주철이 딸애를 안아들었다.

눈부신 해빛,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해빛에 비행장 활주로마저 빛을 발산하는듯싶었다.

그 눈부심속으로 태양의 빛을 안은듯 은백색의 비행기가 착륙하고있었다.

바다의 애어린 갈매기였던 김희영이 국경이 없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사랑의 바다를 마음껏 날으고 오는것이였다.

특별기사감이라면 원래 렴치를 무릅쓰는것이 기자들의 습벽이건만 이 순간만은 누구도 비행기쪽으로 선뜻 다가서지를 못하였다.

유개차에서 내려 달려오는 희영을 보는 순간 현희는 깜짝 놀랐다. 인간의 모색이 저렇게도 달라질수 있을가. 상처자국, 수술자리 하나 없는 희맑은 얼굴, 그 아름다움보다 그의 온 얼굴에서 발산되는 행복의 빛발!

어머니앞에 제일먼저 내세운것은 그의 딸애였다. 희영이 딸애를 향해 두팔을 벌리였다.

《진희야!》

그런데 이 순간 엄마얼굴을 몰라보는 아기, 다가오는 희영을 바라보던 그 새별눈이 살래살래 도리머리를 저으며 아버지뒤에 숨어버렸다.

눈물없이 볼수 없는 화폭이였다.

《아버지, 엄마가 아니야. 아빤 엄마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흐ㅡ응ㅡ》

너무도 억이 막혀 희영이도 림주철이도 굳어져버렸는데 현희가 덥석 아이를 안아들었다.

《진희야, 똑바로 봐라. 바로 네 엄마야. 너의 엄마를 아버지원수님께서 세상에서 제일 고운 엄마로 만들어주신거야. 자, 어서 엄마한테 가거라.》

그리고는 눈물을 훔치는 희영의 가슴에 진희를 와락 안겨주었다.

《엄마!》

《진희야!》

사진, 번쩍이는 백광, 끝없이 눌러지는 샤타, 필림이 모자랄 정도로 눌러대는 촬영가들…

아마 일생의 한순간에 그렇듯 많은 사진을 찍어본 사람도 있을가. 희영의 가슴에 그리도 남모르는 눈물을 자아내던 사진이 오늘은 행복의 눈물속에 끝없이 찍혀지고있었다.

하지만 현희는 그린듯이 서고만 있었다.

행복한 녀인, 행복한 남편, 행복한 자식… 그 넘치는 행복을 주신 아, 고마운 우리 장군님!

품고계시는 인민이라면 그 누구의 가슴에 한점 그늘이 비낄세라 그리도 따사론 해빛으로 가뭇없이 가셔주시는 아, 내 나라의 태양!

기사의 글줄이 아닌 심장의 토로가 끝없이 터져나왔다. 현희는 희영을 따로 만날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축복받은 인간에 대한 감격과 그 축복의 빛발에 대한 한없는 감사를 축포마냥 터뜨리는 관중들의 설레임속에서 현희는 물러서고말았다. 이 순간 현희의 눈앞에는 현옥이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회와 조국앞에 자기의 몫을 주저없이 찾을줄 알고 떳떳이, 타산없이 나설줄 아는 사람, 아, 내 잠시나마 그런 사람의 걸음을 외면했으니…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현희는 온 하늘과 누리를 둘러보았다.

그의 심장은 현옥을 향해 이렇게 웨치고있었다.

(현옥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남편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거라. 이 땅 그 어디든!

외진 산골이든 절해고도이든 부디 남편과 함께 가거라. 조국을 위한 일, 장군님을 위한 일이라면!

이 찬란한 해빛이 비치는 내 조국땅인데야 어찌 너의, 아니 우리의 앞길을 우려할수가 있겠니.)

현희의 귀전에는 언제인가  받았던 희영의 편지구절이 메아리치고있었다.

《내 조국, 아버지장군님 계시는 내 조국에서야 누구의 행복인들 의심할수 있겠니!》

그의 눈앞에는 눈부신 해빛아래서 티 한점 없이 밝게 웃는 희영이와 진희, 림주철의 모습이 자기 가정의 모습처럼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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