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전국 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  2등  당선작품

 

단편소설

 

졸 업 사 진         

 

 

최 충 혁            

 

 몇해전…

나는 《김성일영웅중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지금도 초소로 떠나올 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군복입은 우리 제자들을 미더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선생님은 김성일영웅의 반신상앞에서 찍은 졸업사진을 안겨주며 이렇게 말했다.

《모교를 잊지 말고 군사복무를 잘하세요.》

그 말은 우리에게 영웅학교의 후배답게 군사복무를 잘하라는, 그래서 우리들모두가 영웅병사로 되기를 바라는 믿음과 기대의 절절한 당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기일발의 순간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많은 동지들을 구원한 김성일공화국영웅! 바로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한 며칠후 김성일영웅의 반신상이 우리 학교에 세워지고 학교는 《김성일영웅중학교》로 명명됐던것이다.

아! 그날 우리의 까만 눈동자에 비껴들었던 조국의 푸른 하늘은 그 얼마나 아름다왔던가.

불사신마냥 거연히 서서 우리들을 바라보던 영웅의 반신상은 또 얼마나 숭엄하고 황홀한 모습으로 안겨왔던가.

조선인민군 입대!

이것은 우리의 희망이였고 기쁨이였다.

보석처럼 간직한 그 마음이 있어 우리는 군복을 입고 초소로 떠나며 서로서로 손들을 굳게 잡고 이렇게 맹세했다.

《영웅되여 모교로 돌아오자》고…

그래, 기어이 군사복무를 잘하리라. 그래서 이 졸업사진을 안고 떳떳하게 모교로 돌아오리라. 선생님들앞에, 부모님들앞에 그리고 영웅의 반신상앞에…

그러나 군복을 입었다고 하여 군인의 본분을 다하는것은 아니였다. 더구나 영웅의 학교에서 왔다고 하여 영웅처럼 살게 되는것도 아니였다.

바로 그런 나에게 엄격한 스승으로 생활의 거울로 나선 한사람이 있었다. 때로는 아픈 매도 들면서 나에게 참된 군인의 량심을 심어주기 위해 애쓰던 한성민분대장!

정말이지 그의 모습은 나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의 분대장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1
 

중대에 도착하던 날이였다.

내가 평양에서 왔다는 말에 한성민분대장은 나의 손을 덥석 쥐며 환성을 올리는것이였다.

《그렇소? 야 이거 고향친구를 만났구만. 나도 집이 평양이요.》

《그렇습니까?》

분대장은 마치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동생처럼 반가와하였다.

《태성동문 어느 중학교를 졸업했소?》

《옛, 김성일영웅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렇소?… 좋은 학교를 나왔구만. 태성동무, 우리 한번 잘해보자구.》

《알았습니다.》

나는 제법 발뒤축을 모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챠 이런! 군사복무의 첫시작부터 한고향의 분대장을 만나다니… 하는 생각에 어느덧 가슴이 흐뭇해지는것이였다.

그러나 분대장에 대하여 산처럼 가졌던 나의 기대와 희망은 물먹은 담벽처럼 허물어지고말았다.

《태성동무, 뭘 하고있소. 빨리 모이시오.》

분대장의 목소리가 훈련의 쉴참에 퍼더버리고 앉아있는 나에게로 화살처럼 날아온다.

그러면 나는 허둥지둥 달려가 대렬끝에 선다. 그러면 분대장은 제일 늦게야 대렬에 들어선 나에게 준절한 어조로 꾸짖기 시작하고…

한성민분대장!

훈련의 나날이 흘러갈수록 나는 첫날 《잘해보자구.》하며 다정하게 내 어깨를 툭 치던 그 모습과 너무도 판이한것 같아 고까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얼마나 엄격한지 어떤 때는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였다.

대렬훈련때에는 어떻게 발을 올리고 아침에 기상하여 침구류는 어떻게 정돈하며 상관에게 보고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

그뿐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그 모습이 흡사 성난 《범》이였다.

그 《범》분대장은 우리들의 훈련이 시작되면서 전투구분대에서 뽑아온 우수한 사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해빛에 구리빛으로 번쩍이는 걀숨한 얼굴, 덜퍽진 체격에 서글서글한 눈, 뒤로 불룩한 머리에는 총이 센 머리칼이 고슴도치털처럼 촘촘한데 드문드문 하얀 머리칼이 섞여있는것을 보고 모두들 사색가형이라고 수군덕거렸다. 누구보다 머리를 많이 써서 머리칼이 일찍 《로화》됐다나…

처음에는 그 말을 웃음으로 흘러보냈으나 어느날 군사상학시간에 우리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그 어떤 군인상식문제에나 막힘이 없었고 전술훈련때의 정황처리도 능숙하게 하여 우리 분대원들을 황홀경에 빠지게 했던것이다. 거기에 사격은 백발백중의 명사수인데다 격술과 달리기, 벼랑타기에서도 중대적으로 단연 으뜸이니…

그래서 우리는 묵묵히(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감탄하며) 그의 요구에 복종하였다.

허나 집에서 외아들로 응석받이로 자라온 나에게는 분대장을 따라간다는것이 망아지가 기마경기에 나간것만치 숨가쁜것이였다. 철봉을 할 때나 바줄타기를 할 때면 언제나 나에게는 《다시》라는 반복구령이 뒤따르군 했다. 마치 나의 이름이 김태성이 아니라 《김다시》인듯 한 착각이 들 지경으로…

제길, 같은 고향이라며 살갑게 굴 땐 언젠데 이건 정말 너무하다니까.

발바닥에 생긴 마늘쪽같은 물집에 딱총을 놓으며 나는 혼자서 두덜대기도 하였다.

어느날 전술훈련이 금시 시작됐을 때였다.

중대장동지가 우리에게 《동무들중에 붓글을 잘 쓰는 동무가 없소?》하고 묻는것이였다. 그 말에 나는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일어섰다.

《전사 김태성. 제가 써보겠습니다.》

《그래? 한번 써보오.》

학교때 서예소조에서 붓글을 익혀온 나는 자신만만하여 중대장동지가 내미는 붓을 잡아쥐였다.

《야, 이것 봐라. 이 동무 글솜씨에 한석봉이도 울고 가겠구만. 괜찮아.》하고 나의 어깨를 다독이던 중대장동지가 말을 이었다.

《분대장동무, 태성동무에게 글을 좀 씌워야겠소.》

《알겠습니다.》

후- 나는 속으로 긴 숨을 내쉬였다.

《될수록 시간을 단축하고 전술훈련에 참가해야겠소.》

분대장동지가 나에게 이르는것이였다.

《알았습니다.》

대답은 했으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분대장에 대한 불만이 꿈틀거렸다.

속보며 직관글을 다 쓰고 나오니 방금 전술훈련을 끝내고 돌아온듯 한 신입병사들이 여기저기서 휴식을 하고있었다. 그들의 군복은 위장복처럼 얼룩덜룩하고 온통 땀투성인데 흙으로 매닥질된 신발들은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보여주는듯 했다.

붓글재간이 없었더라면 나도 저들처럼 땀동이를 흘렸을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허나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였다.

하루일과가 끝난 저녁이였다.

동무들과 함께 떠들썩하며 세면장에서 세면을 하고있는데 장구류를 착용한 분대장이 불쑥 앞으로 다가왔다.

《태성동무, 장구류를 착용하고 밖으로 나오시오.》

나는 영문을 알지 못한채 급히 뛰여들어가 장구류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깐깐스레 장구류착용상태를 확인한 분대장은 밑도 끝도 없이 단마디로 《날 따라 앞으롯!》하고 구령을 주더니 병실뒤산으로 달려가는것이였다.

한동안 멍해서 분대장의 뒤를 쳐다보던 나는 마지못해 그의 뒤를 따라 뛰여갔다.

내가 전술훈련에 빠졌다고 이른바 개별지도를 준다는것이였다.

장애물담벽을 넘고 단숨을 헉헉 내불리며 산고지를 달리는 나의 마음속에서는 뭐라고 찍어 말할수 없는 불만감이 마구 요동치고있었다.

하지만 참는수밖에…

나는 이를 사려물고 달리였다.

앞에 얼기설기 얽힌 철조망이 나타났다.  앞서 달리던 분대장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앞엔 적 화점!》

수영선수처럼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분대장이 철조망을 향해 기여가기 시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땅에 배를 불이고 따라 기였다.

저도모르게 얼굴을 찌프린 나는 곰처럼 뚱기적거리며 한메터두메터 기여나갔다.

《이건 뭐요? 훈련도 전투라는걸 잊었는가. 왜 제정된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거요? 다시!》하는 야멸찬 목소리가 나의 온몸을 휘감는것이였다.

피끗 눈길을 들어 분대장을 바라보던 나는 불이 황황 이는듯 한 그 눈길에 주눅이 들어 고개를 떨구었다.

터벌터벌 무거운 걸음으로 출발계선으로 돌아와 다시 엎드렸다.

《다시, 더 빨리!》하는 구령소리가 나의 귀전을 사납게 후려갈겼다.

나는 다시 출발계선으로 뛰여갔다.

철거덕거리며 장구류부딪치는 소리가 그때는 왜 그렇게도 아프게 들리던지…

눈가에는 분대장에 대한 원망의 눈물이 줄펀히 고여올랐다.

《훈련 그만!》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나는 시계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를 칭찬하는 분대장동지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되살아나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하루는 중대장동지가 우리들에게 복장을 단정히 하고 마당에 정렬하라고 명령했다.

중대가 모였을 때 분대장동지가 나의 손에 언제 꺾어왔는지 소담한 들꽃다발을 쥐여주는것이였다.

《?…》

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기웃거렸다.

《중대 좌로 돌앗! 앞으로 갓!》

묵묵히 마당을 빠져나온 대렬은 한참동안이나 산길을 타고 걸어갔다.

아, 놀란 나는 그만 꽃다밭을 떨굴번 하였다.

우리 중대가 간 곳은 김성일영웅의 묘소였던것이다. 이미전에 중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성일영웅의 묘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와보기는 처음이였다.

《동무들, 일곱해전 오늘 우리 부대의 병사였던 김성일동지는 전투임무수행중 터지는 수류탄을 한몸으로 덮어 수많은 동지들을 구원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영웅은 비록 우리곁을 떠났지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결사옹위하는 길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을것입니다. 중대 차렷, 영웅의 령전앞에 경례.》

…저녁안개가 대지에 덮씌우는 속에 병실로 돌아온 나는 너무도 가슴이 벅차올라 한동안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꿈같은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병실 맞은켠 골짜기에서 불어나오는 눅눅한 밤바람을 가슴깊이 들여마시며 그린듯 서있던 나는 품안에서 졸업사진을 꺼내들었다. 불현듯 군복을 입기 전에 동무들과 약속하던 일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오르는것이였다.

왁작거리며 밀려가던 우리는 한 동무가 《우리 매부가 도에 있으니 난 떼를 써서라도 기어코 <김성일영웅증대> 에 가겠다.》고 선코를 떼자마자 기세가 나서 저저마다 윽윽거렸다. 그날 우리는 모두가 《고집》과 《행운》, 《방조》와 《떼》를 떠들어댔으나 종시 승부를 가르지 못했었다. 그런데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그 행운이 뜻밖에도 나에게 차례지게 될줄이야.

그날 저녁 저도 모르게 우쭐해있던 나는 끝내 나의 《특수》한 처지에 대하여 동무들에게 공개하고야말았다. 같은 동갑이들중에서 자신을 내세우고싶은 승벽심이 동했기때문이라고 할가. 김성일영웅의 반신상앞에서 찍은 나의 졸업사진은 나에게 차례진 행운에 대한 무시할수 없는 증거이기도 했다.

《동무들은 규정학습은 안하고 무얼 하는거요?  태성동무, 그게 뭐요?》

나는 어딘가 모르게 자랑기가 축축한 어조로 대답했다.

《중학교 졸업사진입니다.》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줄 때 나는 은근히 속으로 이제 분대장동지가 대뜸 놀라서 나에게 축하의 말을 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말없이 한동안 묵묵히 사진을 내려다보던 분대장동지는 동무들에게 눈을 꿈쩍거리고있는 나를 힐난하듯 바라보았다.

《한심하오. 아무리 그런들 학습시간에 이게 뭐요. 자랑이나 하자고 이 사진을 가져왔소? 이 사진은 자랑거리가 아니요.… 건사하시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황황히 사진을 받아들었다.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어느새 가슴 한구석에서 야릇한 반발심이 솟아올랐다.

날이 갈수록 분대장동지에 대한 《고까운》 생각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며칠후 나는 낮잠시간에 분대장동지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고개너머 있는 김성일영웅중대에 찾아가는 자유주의적인 행동까지 했던것이다. 영웅의 중대에 가보고싶은 충동으로 자리를 떴다가 이윽하여 중대로 돌아온 나는 너무도 뜻밖의 일에 부닥쳤다. 마당에는 장구류를 갖춘 대원들이 한창 모이고있었던것이다.

비상소집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번개쳤다. 나는 총알처럼 병실로 뛰여들어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나의 온몸을 휩쌌다.

천만다행이였다.

나오던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고 비틀거리면서 사물함으로 다가가던 나는 《태성동무!》하는 웨침소리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분대장동지가 황황 불이 이는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있었던것이다.

저도 모르게 기가 질려 고개를 떨구었다.

《어디 갔댔소?》

《저… 사실은…》

《그래 누가 동무에게 보고도 없이 움직일 권한을 주었소? 군인은 한걸음을 걸어도 상관에게 보고하고 움직여야 한다는것을 모르는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써늘한 물줄기가 흐르는듯…

나는 애써 자신을 변명하려고 했으나 강쇠를 끊어서 뱉는것 같은 목소리는 기관총탄처럼 사정없이 뿜기어 나왔다.

《만약 그 졸업사진에서 그 어떤 특혜를 바란다면 더이상 김성일영웅중학교에서 왔다고 말하지 마오.》

나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그 어떤 특혜를 바란다고…

아니다, 분대장동지는 뭔가 오해하고있어.

어느새 두볼로는 주먹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있었다. 분대장에 대한 원망과 고까운 감정이 그 눈물속에 다 섞인듯…

나는 아무 말도 못한채 눈굽을 씻으며 황황히 밖으로 뛰여나갔다.

날이 같수록 분대장에 대한 고까움은 앙금처럼 내 가슴속에 쌓여갔다.

분대장에 대한 그날의 원망으로 나는 더는 사진을 꺼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가 결코 영웅의 이름을 걸고 특혜를 바라는 그런 치졸한 인간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고싶어 이악하게 훈련에 참가했다.

훈련이 거의 끝날무렵 련대에서 참모들이 중대에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개별담화때 나는 가슴속에 위구심도 없지 않아 (군대에 영웅의 학교 후배는 꼭 영웅중대에 가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것이다.) 대렬참모에게 부탁했다.

《참모동지, 절 김성일영웅중대에 꼭 좀 보내주십시오. 예? 부탁입니다.》

워낙 대렬과 참모들이란 메마르고 딱딱한 성미를 가진 사람들인줄 알았는데 갓 서른이 됐음직한 소좌는 나의 심정이 십분 리해가 가는지 빙그레 웃음을 피우며 고개를 끄덕이는것이였다.

《고려해보기요.》

그러나 다음날 대렬명단이 발표됐을 때 대렬참모에게 품었던 나의 기대는 비누거품처럼 일시에 꺼져버리고말았다. 내 이름이 다른 중대로 되여있었던것이다.

나는 허겁지겁 대렬참모에게로 찾아갔다.

그런데…

《담당분대장들의 의견을 무시할수는 없는거요. 너무 섭섭해마시오. 전사동무. 어디 가나 김성일영웅처럼 살면 되는거지.》

나는 밖으로 뛰여나오고말았다.

담당분대장의 의견이라구? 분대장동지, 정말 너무합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을망정 이렇게까지야…

그날 나는 분대장동지를 끝없이 원망했다.

중대들로 헤여질 때도 나는 분대장과 더 마주서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인사도 없이 다른 동무들과 함께 중대로 내려가고말았다.

그런데 다음날 분대장들의 총화모임을 마친 분대장동지가 내가 배치받은 중대로 내려올줄이야.

그는 바로 우리 중대 군인이였다.

내가 배치받은 중대에서도 바로 그의 분대에 배속되였을 때 나는 억이 막혔다.

내가 그 분대장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저 《범》분대장밑에서 과연 내가 복무의 길을 제대로 가낼수 있겠는지… 더럭 근심이 생겼다.

《내 일은 왜 이렇게 꼬이는걸가? 난 정말 분대장복이 없구나. …》

 

2

 

이제는 나에게도 짧지 않은 수년세월을 함께 살 형들이 생겼다. 그속에는 남달리 긴 속눈섭을 가지고있는 익살쟁이 중대오락회책임자도 있고 학교때 체육소조에서 권투를 하여 도경기까지 나가 l등을 한 《쇠주먹》도 있다. 그 어떤 수학공식도 막힘이 없는데다가 군사복무기간 두개의 외국어를 독파하겠다는 부분대장 광호동지와 강계의 어느 한 중학교에서 왔다는 성도동지…

이들은 모두 나를 막내라고 정답게 불러준다.

사실 집안의 외아들인 나는 학교시절 얼마나 형님을 가진 애들을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기 조국보위의 초소에서 그 친형처럼 다정하고 살뜰하게 나를 위해주는 형제들을 만났던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직 분대장에 대해서만은… 이 막내의 생각이나 고충을 너무도 몰라주는것 같은 분대장동지에 대해서만은 서먹서먹한 생각이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서툰 나를 도와서 목달개를 달아주던 광호동지도 하루는 분대장동지의 꾸중을 들었다.

《이젠 자체로 익히게 해야지.… 그래서야 언제 제구실을 하겠소.》

어느날 사격훈련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 나는 그만 덤벼치다가 자동보총소제꼬챙이를 그 자리에 흘리고 왔다. 총부분품의 기름때를 긁어낼 때 쓰는 저가락처럼 가는 참대꼬챙이인데 소제도구를 거둘 때 떨군것 같았다.

할수 없지. 나는 저녁때 맞춤한 나무를 얻어 깎으리라고 작정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무기검열을 하던 분대장동지가 그 문제때문에 나를 꾸짖을줄은…

그는 정말 몰인정스러웠다.

무조건 오늘 밤중으로 찾아가지고 오라는것이였다.

소제대나 총부속도 아니고 그따위 참대꼬챙이가 뭘 그리 큰거라고 저런담.

이제라도 당장 깎을수도 있겠는데…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마당을 벗어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나왔다.

분대장동지였다.

《비가 올것 같은데… 같이 가자구…》하며 그는 나의 몸에 군용비옷을 입혀주는것이였다.

의견이 많아 씩씩대던 나였지만 그 순간에는 왜서인지 분대장동지에게 엇드레질은커녕 말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갖은 신고끝에 저가락같은 참대꼬챙이를 찾아들고 돌아서니 기다리기라도 한듯 비방울들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무룩해서 걷고있는 나에게 분대장동지는 자주 말을 던졌으나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기만 했다.

왜 그렇게 엄하게만 그러는지 도무지 리해되지 않아서였다.

《수고했어. 자, 빨리 식당으로 가자구. 밥이나 먹고 갔다올것이지. 원…》

비옷을 벗기도 바쁘게 무작정 나의 손을 잡아끄는 광호동지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서던 나는 식탁우에 차려진 요란한 음식상을 보고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이건…》

《앉으라구. 오늘이 바로 우리 분대장동지 생일이야. 분대장동진 동무가 집을 떠나서 부모님들이 그리울 때가 많겠는데 어떻게 혼자서 생일상을 받겠는가고 하면서 동무에게 차려주자고 하더구만.》

《예?!》

오늘이 분대장동지 생일이였단 말인가?!

그러니… 그러니 나때문에 생일날에 저 비속으로 사격장까지 갔다왔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땅우에 물안개를 일으키며 채찍질하듯이 퍼붓는 비줄기… 번개불빛에 퍼릿하게 얼핏얼핏 드러나는 아아한 산발들…

저 폭우속으로 한 분대원의 잘못을 바로잡자고 그것도 바로 생일날에 밤길을 걸은 분대장동지의 모습이 선히 떠오르며 나의 가슴엔 어느덧 자책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종시 눈을 붙일수 없었다.

《…군인에게 있어서 무기는 눈동자와 같은거요. 그 소제꼬챙이가 하찮아보인다고 해도 바로 거기에 군인의 깨끗한 량심이 비껴있는거요. 당장 가서 찾아오시오. 자기의 무기를 사랑할줄 모르는 군인에게서는 애국심이나 영웅성이 나올수 없다는걸 명심하시오.》

나를 꾸짖던 분대장동지의 목소리였다.

《분대장동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깊은 잠에 들어있는 분대장동지의 모습을 점도록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며칠이 지나서였다.

마당에서 청소작업을 하고있던 나는 정치지도원동지가 찾는다는 말을 들었다.

《태성동무구만. 어서 들어오오.》

보고를 하려고 올렸던 손도 미처 내리지 못한채 나는 정치지도원동지의 손에 이끌려 의자에 앉았다.

《태성동문 그렇게 좋은 재간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왜 여태껏 말하지 많았소?》

《?…》

《붓글재간 말이요. 동무의 분대장동무가 그러던데 동무가 굉장히 솜씨를 보였다면서… 참, 동무두… 그럼 그렇다고 말해야지. 우린 분대장동무가 아니였다면 이런 복덩이가 있는줄 모를번 했구만.》

《분대장동지가 말입니까?》

사실 나는 분대장동지에게 속보 쓰는 일로 전술훈련에 빠졌다가 《혼》이 난 다음부터는 더는 경망스럽게 재간이요 뭐요 하고 떠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수그러졌다.

《분대장동무의 제기도 있고 해서 중대지휘부에서는 동무를 중대전투소보원으로 임명하기로 토론됐소.》

나의 손을 잡아 흔들며 정치지도원동지가 이렇게 말해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중대전투소보원!

나는 이렇게 중대전투소보원으로 임명받았다.

그날에야 나는 분대장동지의 그 웅심깊은 마음을 여직껏 내가 오해하고있었다는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을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나는 취사근무를 서게 되였다.

《이제부터 상업대학 료리학부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고 희떠운 소리를 던진 광호동지가 구대원다운 엄숙한 자세로 서툴기 짝이 없는 나를 지도하기 시작했다.《조선료리》책까지 벌커덕거리며 한번 솜씨를 부려보리라 다짐하는 나의 입에서는 어느새 흥얼흥얼 노래까지 흘러나왔다.

저녁식사시간이 왔다.

《태성동무, 나도 곱배기.》

《여, 우리 막내 손끝에 맛내기가 묻어있는게 아니야.》

《태성이, 동무 어머니가 혹시 <옥류관>료리사가 아니야? 맞지?》

온 중대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썩하며 나를 추어올렸다.

그런데 흐뭇하게만 생각했던 그날에까지 내가 분대장동지에게 걱정을 끼치게 될줄은…

나를 돕느라고 빈 늄식기들을 가지고 수도가에 가앉던 분대장동지가 무엇을 보았는지 흠칫 굳어지는것이였다.

《태성동무, 동무가 쌀을 씻었소?》

저도 모르게 속이 뜨끔해졌다.

《동무 눈엔 여기에 흘린 쌀이 보이지 않소?》

그의 목소리는 례외로 잔잔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 잔잔한 음성에서 차거운 한오리 회오리바람을 느낀듯 했다.

한번에 한개 중대분의 쌀을 씻으면서 둬숟갈 되나마나하게 흘린것이 무슨 큰게라구…

망두석처럼 서서 애꿎은 취사복자락만 비트는 나를 바라보던 분대장동지가 바닥에 흘려진 쌀을 한알두알 줏는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는 얼결에 소리쳤다.

《둬두십시오, 분대장동지, 그게 얼마나 된다구…》

《뭐라구?》

분대장동지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나에게로 향해졌다.

《동문 <고난의 행군>을 겪어본 세대같지 않구만. 이 쌀 한알이 얼마나 귀중한지… 어째서 온 나라가 농업전선으로 달려가는지 그걸 언제나 잊지 말고 살아야지. 우리 인민들이 뭐 먹고 남아서 우리 군인들에게 이 쌀을 보내주는줄 아오?》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하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저력있게 울려퍼지던 분대장동지의 그 말소리가 숯불처럼 온몸을 지지는것 같았다.

《똘랑》,《똘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만이 나의 착잡한 마음을 어루쓸듯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광호동지였다. 《여! 태성이 뭘해? 지금 오락회장에서 동무를 찾고있는데…》

《예? 저를요.》

여직껏 나의 귀에 오락회장의 노래소리, 박수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것이 이상스러웠다. 아마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상념의 세계에 잠길 때 모든것을 망각하게 되는지…

광호동지에게 끌려가듯 비청거리며 마당으로 나오니 요란한 박수소리가 나를 휩싸는것이였다.

어쩌는수없이 나는 복판에 나섰다.

온 중대원들의 기대와 호기심에 찬 눈길들이 나를 주시하고있었다.

그러나 나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동지들! 전 학교때 항일혁명투사들이 쓴 이런 회상기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한 항일투사동지가 샘물가에 흘린 몇알의 쌀때문에… 동지들이 피흘리며 목숨과 바꿔온 그 귀중한 쌀을 흘린것이 죄스러워 온 부대를 돌며 사죄하고… 잘못을 빌었다는…》

마디마디 끊어 말을 뱉는 나의 두눈에는 어느새 자책의 눈물이 그들먹이 고여올랐다.

오락회장은 삽시에 정적속에 잠겨버린듯 했다.

《저도 그렇게 살고싶습니다.… 동지들, 믿어주십시오.》

요란한 박수가 터져올랐다.

아! 나는 그때 나에게로 향해졌던 분대장동지의 그 뜨겁고 열렬한 눈빛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

온 중대원들이 나에게 믿음의 박수, 축하의 박수를 거듭거듭 보내주고있었다. 동지가 괴로움을 겪을 때는 그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동지가 기뻐하면 제일처럼 축하해주는 이 뜨거운 마음!

한 병사의 솔직한 고백에 뜨거운 믿음과 격려를 보내주는 이 마음이야말로 나를 영웅으로, 참된 군인으로 되게 하여주는 자양분이고 밑거름이 아니겠는가.

《분대장동지, 저도 꼭 참된 군인이 되겠습니다.》

《태성동무, 난 동물 믿어.》

나는 분대장동지와 이렇게 마음속 대화를 주고받았다.

 

3

 

《성민동무.

 근무에 나가면서 우리 중대 기통수에게서 동무소식을 듣고 이렇게 몇자 적네. 우리가 함께 학교를 떠나면서 군사복무를 떳떳하게 잘하자고 약속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동무가 오늘 표창휴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보니 정말 놀랍고 기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겠는지 모르겠구만. 동창생으로서 그리고 같은 군인으로서 진심으로 동무를 축하하네. 그런데 난 아직 구대원구실도 제대로 못하고있으니… 이제 학교에 가거든 부탁인데 내 이야기는 하지 말라구. 나도 동무처럼 참다운 병사로 모교앞에 떳떳이 나서게 될 때까지 말이야. 정말 모교로 떳떳이 돌아간다는게 쉬운게 아니구만. 동무도 생각날거야. 졸업식때 우리 학교 졸업생들을 대표해서 내가 맨 선참 토론했던것을… 그때 난 이렇게 말했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아시고 온 나라가 자랑하는 영웅병사가 되여 떳떳하게 모교로 돌아오겠다>고… 그런데 말만 앞섰으니 나야말로 빈 말공부쟁이지 뭐겠나. 래일 떠난다니 부디 표창휴가를 잘 보내고 오길 바라네. 집에도 자주 편지를 보내지 않았으니 어머니랑 다 근심하고계실거야. 혹시 우리 집에 들리거든 그저 이 아들이… 아니, 아니야. 어머니에게도 아무 말 하지 말라구. 조국앞에, 어머니앞에 아무런 일도 해놓은것이 없는 아들이 위로의 편지나 보내고 위안의 소식이나 전해선 무슨 소용이 있겠나. 오직 우리 군인들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결사옹위하는 길에 총폭탄으로 튼튼히 준비될 때 바로 그것만이 고향에 보내는 소식이라고 난 생각하네.… 어느덧 근무에 나갈 시간이 되였네. 천리강행군에서 우수한 모범을 보여 표창휴가를 받은 동무를 축하해서 내가 사랑하는 시 한편을 적어보내네.…》

편지는 여기에서 끊어져있었다.

한동안 편지의 세계에 잠겨있던 나는 의아해졌다. 조금전에 분대장동지에게서 빌린 학습장을 펼쳐보다가 갈피에 끼워져있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나는 당황하여 편지를 뒤집어도 보고 혹시 다른 속지가 있는가 해서 책의 갈피를 벌컥벌컥 뒤졌다. 그러나 더이상의것은 알수 없었다. 모름지기 그 편지는 분대장동지가 퍽 오래전에 표창휴가를 받고 동창생에게서 받은 축하편지 같았다.

그후 나는 자주 끊어진 편지에 대하여… 분대장동지의 동창생이 사랑하고 즐겨 읊었다는 그 시에대하여 생각해보군 하였다. 때로는 분대장동지에게 직방 물어불가 하는 생각도 했으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혀끝까지 묻어나온 말을 도로 삼키군 했다.

그해 겨울.

나는 한등급 높은 군사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리고 겨울철눈길행군에서도 모범을 보여 (중대장동지는 내가 행군기간 매일 전투소보를 쓴것을 높이 평가했다.) 중대장동지의 감사까지 받았다. 한등급 높은 군사칭호를 수여받고 거기에 또 중대장동지의 감사까지 받은 나를 축하해서인지 하늘에서는 그날도 함박눈이 평평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중대에서 진행하는 진지보수작업에 필요한 통나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분대는 2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림지로 가고있었다.

이제 그곳에서 분대가 나흘동안 나무를 찍어놓으면 온 중대가 달라붙어 운반하는것이다.

림산사업소의 벌목공들처럼 허리에 도끼를 차고 어깨에는 바줄을 멘 우리 대렬이 푸실거리며 약해지는 눈발을 가르며 가고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요란한 기관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색칠을 한 자그마한 촬영차가 눈무지에 바퀴가 빠졌는지 배기가스만 내뿜으며 뭉개고있었다.

《동무들, 도와주고 가기요.》하며 둘둘 말아멨던 바줄퉁구리를 벗어놓은 분대장동지가 촬영차에 달라붙었다. 맹렬한 헛바퀴질에 화산재처림 뿌려져나오는 눈가루가 삽시에 우리의 온몸을 눈사람처럼 만들었다. 잠시후 차는 눈무지에서 나왔다.

알고보니 그 촬영차는 새로 만드는 기록영화촬영을 위해 김성일영웅중대로 가던중이였다.

야, 김성일영웅중대에서 군사복무를 하고있는 내 모습을 텔레비죤으로 본다면 부모님들이 얼마나 기뻐할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렬을 지어 서있는 분대원들을 보고 그만 당황해졌다. 허둥거리며 톱을 잡고 일어서는데 촬영가와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던 분대장동지가 문득 나를 찾는것이였다.

《태성동무, 우리가 먼저 갈테니 동문 이 차를 타고 함께 가보오. 촬영가동지와 토론이 됐으니 촬영에 참가하고 천천히 오오.》

그러나 선뜻 걸음을 옮기게 되지 않았다. 이제 분대동지들이 산에서 나무를 찍느라고 땀흘리며 수고하겠는데 내가 어떻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던것이다. 그러나 바재이던 나는 끝내 차에 올랐다. 도끼며 톱을 든 분대의 모습은 눈속으로 잦아들듯 점점 멀어져갔다.

어쩐지 죄스러운 감정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귀전에는 금시 도끼질소리와 톱질소리가 들리고 비틀리며 자욱한 눈가루속에 자빠지는 거목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군인은 쉴 권리도, 잠잘 권리도 지어는 죽을 권리도 없는거요.》

나는 머리를 들어 차안을 둘러보았다.

누가 말했을가?

그러나 주위에는 누구도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문득…

그 말은 바로 이해 여름때 분대장동지가 나에게 한 말이 아니였던가.

사품치며 흐르는 강물… 물밑으로 굴러내리는 망짝같은 돌…

장마비에 불어난 강을 중대는 결사적으로 도하했다. 그런데 강을 건는 후 미심결에 배낭을 헤쳐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배낭속에 넣었던 수채화와 전투소보용지퉁구리가 나의 부주의로 몽땅 못쓰게 되였던것이다. 그날 저녁 숙영지에서 나는 전투소보를 쓸수 없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중대는 나를 믿고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었는데 중대에 힘을 주고 의기를 북돋아줘야 할 소보원이라는게 무슨 사고를 쳤는가.

얼룩덜룩 수채화색감으로 물든 배낭을 부여안고 나는 혼자서 온밤 베개잇만 적시였다.

아침기상을 한시간 앞둔 때였다.

솔풋이 잠들었던 나는 누군가가 조용히 흔드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앉았다. 분대장동지였다.

《참, 동무두… 왜 혼자서 속 썩이면서그래. 그런거야 제때에 말했어야지. 자, 받소.》

핀잔기 어린 그의 말에 머리를 쳐들던 나는 눈앞에 놓인 새 수채화구와 소보용지를 보고 목마른 사람처럼 덥석 그러쥐였다.

《아니? 이건 어디서…》

격정에 싸여 떠듬거리던 나는 그제서야 분대장동지의 군복차림에 눈길이 갔다.

산길을 탔다는것을 말해주는듯 가막사리며 나무잎, 거미줄이 얼기설기한 군복,이슬과 흙물에 매닥질되여있는 신발…

두눈은 피곤이 실리여 뻘겋게 충혈되여있는데 왼볼과 손등에는 왜서인지 피자욱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보기만 하오. 동무들이 일어나기 전에 제꺽 전투소보를 쓰기요. 어서.》

재촉하는 분대장동지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그달음으로 전투소보들을 써나갔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분대장동지가 밤중에 산길을 타고 숙영지에서 멀지 않은 어느 한 중학교로 찾아갔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낯도 코도 모르는 미술교원의 집을 찾아 온 마을을 헤매던 수고도… 기상시간에 늦을가 걱정되여 걸음을 다우치다가 벼랑에서 굴렀던 일도 나는 썩 후에야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후 죄책감으로 모대기던 나는 분대장동지를 찾아가 잘못을 빌었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나의 손을 감싸쥐며 분대장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앉으라구. 태성이, 사실 남들과 똑같이 행군을 하고 훈련을 하면서 전투소보를 쓴다는게 쉽지 않을거야. 하지만 태성이가 애써 붓글재간을 배운것도 결코 군사복무를 편안하게 하자고 배운게 아니지 않아. 보라구, 얼마나 많은 재간둥이들이 우리 인민군대에 있나, 소묘를 잘하는 미술애호가도 손풍금수도 설맞이공연무대에서 재간둥이로 불리우던 <가수>나 <시인>들도 다 태성이처럼 군복을 입었지. 그래서 최고사령관동지께서도 인민군대에는 온 나라의 재간둥이들이 다 있다고 그렇게 기뻐하시는게 아니겠어. 바로 그 재간둥이들이 영웅이 되고 그들이 우리 조국을 지키는거야. 그러니 동무의 그 재간도 응당 우리 인민군대를 춤도 알고 노래도 알고 시도 있고 그림도 있는 그런 락천가들의 부대로 되게 하는데 바쳐져야지. 안 그래? 그런데 동문 온 중대가 동무를 믿고 맡겨준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했거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군인은 쉴 권리도 잠잘 권리도 지어는 죽을 권리도 없는거요.》

그날 분대장동지가 나에게 한 말은 어지럽혀질번 한 한 병사의 마음에 닿은 사랑의 애무였다.

과연 나는 분대장동지처럼 그런 마음으로 붓글을 익혀왔단 말인가.

신병훈련때 단축할수 있는것도 전술훈련에 참가하기 싫어 우정 시간을 늦잡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며 나는 수치감으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더이상 차안에 앉아있을수 없었다.

가자,동무들에게로… 분대에로…

나는 아직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군인이 아닌가. 나는 차에서 내렸다.

성큼성큼 눈길을 헤치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의 앞가슴에 딱딱하게 미쳐오는것-그것은 바로 나의 졸업사진이였다.

어머니.

기다려주십시오. 저도 김성일영웅처럼 떳떳하게 군사복무를 했을 때, 그때 당당히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렵니다.

멀리 산이 보인다.

나는 허리를 쭉 펴고 두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동무들! 분대장동지!》

 

4

 

언젠가 나는 분대장동지에게 이렇게 물은적이 있다.

《분대장동지, 전 중학교에 다닐 때 김성일영웅이 남달리 서예를 좋아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래서 서예소조에 들어갔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김성일영웅이 살아있다면 과연 서예가가 됐을가요?》

정작 이렇게 묻고나니 자연히 나의 얼굴도 화끈 달아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괜히 실없는 말을 하여 분대장동지가 웃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뒤덜미를 어루쓸었다. 그런데 분대장동지는 나의 객적은 소리를 웃음으로 흘러넘기기는커녕 심각한 기색으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묵묵히 생각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던 분대장동지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듯 한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글쎄… 태성동무, 나도 영웅의 그 속마음까지야 알수 없지.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되오.

서예를 배우거나 그림을 배우고 악기를 배우는것이 꼭 전문가가 되자고 하는것이 아니라고 말이요. 우리 삶의 최대의 기쁨과 행복이 무엇이겠소?

그것은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을 결사옹위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이 아니겠소?》

분대장동지의 진중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분대장동지, 군사복무의 그 나날을 보람있게 걸어오고도 한생을 영원히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하여 총대와 함께 살것을 결심한 분대장동지의 그 고결한 정신세계앞에 머리가 숙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나는 우연한 기회에 분대장동지의 사물함을 열어보게 되였다.

담화를 위해 련대에 갑자기 올라가게 된 분대장동지는 나에게 자기의 사물함에 있는 신발을 꺼내여 분대의 성도동지에게 주라고 한것이였다.

분대장동지는 특별히 발이 커서 남보다 일찍 신발이 바닥나는 성도동지를 위해 자기의 신발을 큰 문수로 바꾸어 건사해두고있었던것이였다.

분대장동지의 사물함을 열고 신발을 찾던 나는 구석에 따로 놓여있는 굽도리에 보풀이 인 책 한권을 보게 되였다.  호기심에 이끌려 저도 몰래 그 책을 집어들던 나는 흠칫 손을 떨었다.

그 책의 앞표지에는 《김성일》이라는 글자가 또박또박 적혀있었던것이였다.

이름못할 그 어떤 마음속의 층동으로 무심히 책을 펼쳐보던 나의 두눈이 더욱 커졌다.

《제x기 xx중학교 졸업기념》이라고 쓴 사진에서 나는 김성일영웅과 분대장동지의 모습을 알아보았던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우리 분대장동지는 바로 김성일영웅의 동창생이였단 말인가.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인데야…

나는 서둘러 책장들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병사생활에 교훈이 되는 이름있는 시들과 자작시인듯 어딘가 모르게 서툰듯 한 시들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국을 지켜선 병사의 자랑, 긍지와 랑만이 한껏 어려있었다.

책의 마감부분에 이르러 글체가 다른(자세히 살펴보니 분대장의 글체였다.) 글도 있었다.

성일동무, 표창휴가를 받고 고향에 간 나는 선생님들과 동창생들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축하와 격려속에 시간이 가는줄 몰랐소.…

휴가기간을 마치고 부대에 온 나는 뜻밖에도 동무가 군사훈련중 터지는 수류탄을 한몸으로 막고 수많은 전우들을 구원하고 그만 우리곁을 떠나갔다는것을 알게 됐소.

그때의 내 심정을 과연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성일동무, 오늘 동무의 반신상이 모교에 세워졌다는 소식을 받았소.

그래서 나는 동무가 나에게 보낸 동무의 숨결, 동무의 체취가 어린 편지를 펼쳐보았소. 귀전엔 금시 동무의 목소리가 울려오는것 같았소.

《오직 우리 군인들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결사옹위하는 길에 총폭탄으로 튼튼히 준비될 때 바로 그것만이 고향에 보내는 소식이라고 난 생각하네.》…

그렇소. 동무는 한생을 떳떳하게 그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사답게 삶을 빛내이고 모교에 돌아갔소. 그런데, 그런데 나는…

하지만 믿어주오. 동무가 사랑하며 즐겨읊던 그 시를 마음속에 새겨안고 나는 영원히 군복을 벗지 않겠다는것을 말이요. 내 한생 군복을 입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사로 삶을 빛내여나가리라는것을 말이요.

지금 이 시각도 나의 이 결심을 지지해주는듯 동무가 즐겨읊던 시가 귀전에 들려오고있소.

 

나는 해방된 조선의 청년이다.

나의 두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책과 뉘우침, 감동과 맹세가 거세찬 물줄기로 된듯 너무도 작고 협소했던 나의 가슴에 밀려들어나의 넋을 깨끗이 정화시켜주는듯싶었다.

이런 분대장동지를 나는 왜 지금껏 오해하고 고깝게만 생각했던지.…

영웅의 학교에서 왔다고 자신의 이름을 영웅과 나란히 하려고만 했으니 결국 나는 영웅의 반신상앞에서 찍은 졸업사진을 가질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였었다.

마음속에 언제나 영웅의 넋을 안고 영웅처럼 산다는것이 어떻게 사는것인지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을수 있었다.

바로 분대장동지처럼 자신앞에 부단한 요구성을 제기하고 복무의 날과 날을 피타는 훈련으로 자신
을 준비해갈 때 그것이 영웅처럼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분대장동지, 저도 영원히 이 손에서 총을 놓지 않겠습니다.)

그로부터 얼마후.

그것은 꿈이 아니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름없는 우리 부대에까지 찾아오실줄 어찌 알았으랴.

침실과 식당, 취사장과 세목장까지 다 돌아보시고 우리들의 훈련까지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들이 준비한 소박한 예술소품공연까지 보아주시였다.

시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를 가지고 형상한 대화시를 보시고 박수도 쳐주시며(그 대화시는 분대장동지의 도움으로 내가 쓴것이다.) 리수복영웅의 시는 군인들의 애국주의교양에 크게 이바지하는 좋은 시라고 높이 평가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군인들과 함께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나는 이것을 결코 나의 군사복무시절의 《졸업사진》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중학교시절엔 교문을 나서며 찍은 졸업사진이 있을수 있어도 이 땅에 제국주의가 있는 한 선군의 총대로 내 조국을 지켜가는 병사에겐 《졸업사진》이 있을수 없는것이다.

기념사진을 받아안은 날 나는 김성일영웅을 찾아갔다.

짙어가는 노을속에 숭엄히 바라보이는 영웅의 묘소앞에는 기념사진을 가슴에 안고 한 군인이 벌써 와있었다.

(평양시 선교구역 원림사업소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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