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력사소설
부산진하늘가에
박 영 건
구름장들이 밀려들었다.《꾸르릉ㅡ》 벌써 남쪽하늘가 멀리서 먹구름이 룡트림을 하고있었다. 방금전까지 따스하게 비치던 봄해살이 불현듯 밀려드는 심술궂은 회오리바람에 갈기갈기 찢기는듯 했다. 오가던 행인들이 시꺼먼 바다쪽을 불안스레 바라보며 종종걸음을 놓는데 부산진에서 동래부로 곧추 뻗은 나지막한 언덕길로 수인을 태운 마차 한대가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굴러가고있었다. 앞뒤에 십여명의 포졸들이 달린것으로 보아 중죄인같았다. 언덕우에 이르자 행렬이 멈춰섰다. 맨앞에 전립을 쓴 우두머리로 보이는 무장이 수레앞으로 다가왔다. 《의승, 이제 부산진을 벗어나게 되오.》 딱 바라진 몸집에 살찬 눈초리의 무장이 침통하게 수레우로 말을 던졌다. 수인차우에서 모든것을 단념한듯 두눈을 감은채 앉아있던 얼굴이 길쑴한 사람이 눈을 떴다. 옷섶이 너풀거리고 피자욱이 랑자한데 수염이 더부룩한 모습일망정 두눈에선 정기가 넘쳤다. 《풀어주라.》 무장이 호령하자 포졸 하나가 목에 채운 칼을 벗겨주었다. 가까스로 땅에 내려선 후리후리한 키꼴의 수인은 벌써 뽀얀 운무속에 잠긴 부산진쪽을 이윽토록 바라보다 불현듯 꿇어앉아 길섶의 풀 한줌을 움켜뜯었다. 줌에 잡힌 풀에서 싱긋한 풀내가 가슴깊이 흘러들었다. (아! 온넋을 바쳐 너를 지키고 빛내자 하였건만…) 두눈귀로 눈물이 슴배여오르더니 주르르 흘러내렸다. 부산왜학 훈도였던 안동준이였다. 그는 지금 조정의 파면징계를 받고 서울로 압송되는 길이였다. 을해(1875)년 3월 초순이였다.
대문과 주인 수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동준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의승, 말해보게. 자네가 부르짖던 민족의 넋이 어디에 있는가?》 석해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아픈 가슴을 헤집어놓는다. 《화적》들의 란동을 진압하라는 령을 받은 날 울뚝거리기 잘하는 석해가 방바닥을 치며 하는 말이였다. 광양지방에서 일어난 농민폭동을 진압하라는 령이 부산진의 비장인 그에게 떨어진 모양이다. 석해와는 10년지우다. 그를 처음 만난것이 언제였던가. 그래…꼭 10년전 일이였다. 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기쁨에 발에 날개라도 돋힌듯 경기감영의 큰 대문을 나서 외삼촌집이 있는 서대문밖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앞에서 째지는듯 한 녀자의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서울장안과 교외에서 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치고받는 란투극인모양 자못 소란스러웠다. 워낙 이런 일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한창때인데다 한껏 들뜬 기분인지라 그는 그 골목길로 꺾어들었다. 아니나다를가 대여섯의 패당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한 사내와 얼굴을 싸쥐고 앉은 녀자가 눈에 띄웠다. 사내의 얼굴을 띠여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무과에서 급제한 려수사람이였던것이다. 그런데 판은 그에게 점점 불리해지고있었다. 주먹패들은 단검이며 격검채따위의 흉기를 휘두르는데 맨손인 그는 혼자서 그 녀인을 막느라 수세에 몰리고있었다. 《이놈들!》 동준은 저도 모르게 벽력같은 노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어느 틈에 뽑아든 장대가 쥐여져있었다. 그가 손에 장대를 잡는 날에는 말그대로 숲의 범인셈이다. 검과 활, 격구, 수박회 등 어느것이나 몸에 익은것이지만 장창은 그의 특기였던것이다. 뭇짐승들속에 뛰여든 성난 범마냥 동준이 이리 번쩍 저리 번쩍 장대를 휘두르는 통에 싸움은 이내 판이 나고말았다. 두세놈이 너부러지자 나머지 녀석들은 혼쭐이 나서 달아나버렸다. 딱 바라진 몸집에 눈초리가 치째져 사납게 보이는 려수사람이 땀을 훔치며 다가서다 놀랐다. 《아, 문과에서 장원급제한… 정말 고맙소.》 《어찌된 일이요? 무과에서 급제한 력사가 골목패한테 땀을 뽑다니… 저런… 이 피… 많이 다쳤소?》 《아니, 괜찮소 사실…》 《누군가?》 려수사람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땐 감때사나와보이던 눈가에 사뭇 부드러운 빛이 흐르며 숫진 총각애같았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눈만 겁석거렸다. 아직까지 얼굴을 싸쥔채 울고있는 녀인은 다 자란 나이같은데 옷주제가 말이 아니였다. 어느 부유한 량반집 규방녀인듯 록색저고리와 치마는 째지고 앞가슴이 헤쳐져 고름이 너덜거리고있었다. 《어찌된 일이요?》 동준이 용기를 내여 물었으나 그 녀인은 더 섧게 울뿐이다. 《젠장, 시원히 말이나 하소마.》 려수사람이 령남지방의 센 사투리로 성급히 다그었다. 《가만, 빨리 자리를 일어야겠소. 패거리들이 다시 올수 있으니까.》 그들은 둬집을 지나 다음골목으로 꺾어들었다. 올망졸망한 처마를 잇대고 비좁게 들어앉은 서대문거리는 골목길이 많기로 유명했다. 한참만에야 겨우 마음을 진정한 그 녀자의 자초지종을 듣고보니 기가 막혔다. 원래 집은 양주부근인데 일찌기 부모를 잃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어느 량반집 민며느리가 되여 서울에 왔다는것이다. 무슨 액운이 들었는지 그 집 앉은뱅이사내가 덜컥 죽자 그 집에서는 살이 낀 녀자라고 죽일 꿍꿍이를 하는 바람에 도망치다가 붙잡혔던것이다. 《젠장, 량반놈들의 짓거리란…》 이렇게 투덜거리던 려수사람이 성급하게 몸을 돌렸다. 《이사람 갑자기 어딜?》 《점포에 갔다오겠소. 저 꼴루 어찌 큰길에 나서겠소.》 《이것두 보태쓰우.》 동준은 주머니의 돈을 모두 털었다. 웬일인지 그 순간에 외삼촌내외의 얼굴이 얼핏 지나갔다. 얼마 안있어 려수사람이 갈 때와 같이 성급하게 뛰여왔다. 그의 손에는 좀 낡아보이는 다홍치마 한벌이 들려있었다. 그 녀인이 돌아앉아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들은 비로소 수인사를 나누었다. 《참, 이름이 뭐요?》 《석해요.》 《별호는?》 《젠장, 칠성판을 지고다니는 배군의 신세에 당치도 않소.》 려수반도의 돌산도에서 배군의 아들로 잔뼈가 굵은 그는 군사가 되고픈 욕망에 서울에 올라왔다는것이다. 부산 왜관에 둥지를 틀고앉은 왜놈들의 란동에 어머니를 잃은 석해는 오랑캐족속들은 탕쳐죽일 놈들이라고 한참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난 안동준이요. 별호는 의승이구…》 이윽고 옷을 갈아입은 그 녀인이 머리숙여 례를 표하며 눈굽을 찍었다. 《정말 고마와요. 이 은혜를 어떻게…》 《오늘은 어데 거처를 정하겠소? 날도 어두워오는데…》 동준이 걱정어린 어조로 묻자 《전…갈데가…》하며 또 설음이 북받치는지 울먹이며 옷고름을 눈가에 가져갔다. 《젠장, 눈물을 거두우. 그럴것없이 려수로 내려갑시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이야 없겠지.》하고 석해가 제잡담 속단해버렸다. 《가만, 우리 외삼촌집이라도 갑시다. 멀지 않소. 이제 그놈들 눈에 띄우면 시끄러울수 있소.》하여 그들은 동준을 따라서게 되였다. 동준은 외삼촌집에서 살고있었다. 그는 서울태생이 아니였다. 고향은 강릉이였지만 그에게는 어릴적 추억조차 희미했다. 철들기 전에 외삼촌의 손에 끌려 서울에 올라왔던것이다. 동준은 어릴적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상투를 틀어올린 축들도 쩔쩔 매는 《천자문》을 여섯살 잡히자 얼음판에 박밀듯 줄줄 내리외워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언젠가 조상묘를 찾아보러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외삼촌이 동준이 글공부하는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서울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외삼촌은 유명짜한 문인은 아니였으나 중인출신의 역관으로 서울에서 말석벼슬을 하고있었다. 한뉘 산골에서 화전을 뚜지며 살던 동준의 부모들은 늦게 본 자식이라 애지중지하면서도 장차 나라의 큰인물이 될거라는 외삼촌의 말에 선뜻 슬하에서 내놓게 되였다. 외삼촌의 집은 부유하지는 못해도 책만은 부자소리 들을만큼 많았다. 동준은 등잔불을 밝혀가며 그 책들을 모조리 읽었고 당대의 이름난 서생이였던 최한기의 문하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최한기는 봉건량반들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실사구시적인 학문적태도로 제자들을 키워낸 스승이였다. 동준은 유교성리학으로부터 실학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많은 서적들을 탐독하여 천문학, 지리학, 수학, 농학, 군사학 등 여러 분야의 풍부한 지식을 쌓아나갔고 나라의 전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한편 뼈대가 남달리 굵직한데다 한때 강화도에서 군사로 있었던 아버지를 닮아 무술도 열심히 교련받아 이제는 무과에 응시해도 손색없을 지경에 이른것이다. (이거 어쩐다, 또 외삼촌댁이 앙앙거리겠군.) 깊이 생각지도 않고 그들을 데리고 떠난 동준은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3년전에 상처한 외삼촌은 얼마전에 새 안해를 맞아들였는데 어느 량반집 소실로 있다가 소박당했는데 여간 입심이 세지 않았다. 첫인상에는 무척 얌전한줄 알았는데 집에 들어온지 석달도 못되여 가사를 몽땅 거머쥐고 쥐락펴락하는 바람에 시집간 사촌누이까지 요즘은 발길을 끊다싶이 하는 형편이였다. 워낙 외삼촌은 책밖에 모르는 선비인데다가 평생 큰소리 한번 모르는 위인인지라 후처에게 꼼짝을 못했다. 그의 속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석해가 길옆의 저자에 들려 음식과 과일 등을 사들었다. 《장원으로 뽑혔다면서… 너의 부모앞에 내 면목이 서게 됐구나.》 집대문을 열자 외삼촌이 달려나오며 반겨맞았다. 《이젠 조카도 벼슬길에 오르겠구만요… 이 삼촌어머니를 박대하지나 않을가.》 외삼촌댁이 따라나오며 수선을 떨었다. 《무과에 급제한 제 친구예요.》 동준이 무안해하며 석해를 소개했다. 《석해라 불러주십시오.》 《어머ㅡ 그러니 대단한 장사겠군요. 그런데 저 녀인은…》 《사실…》 석해가 갑자르자 동준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이들은… 약혼한 사이랍니다.》 《세월이 참 많이도 달라졌어요. 지금은 신식결혼이라더니… 우리 집에 묵으면서 약혼녀와 함께 서울구경을 하세요.》 그날따라 외삼촌댁은 딴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그들은 외삼촌집 처마아래서 우습게 인연을 맺은듯싶었다. 석해네는 하루밤 묵고 다음날 서울을 떠나갔다. 그를 다시 만난것은 여기 부산진에서였다. 동준은 사역원의 정식관리로 임명받고 청나라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편답하는 과정에 미지의 세계를 알게 되였으며 자기 식의 일가견도 가지게 되였다. 사역원의 후원과 장인의 주선으로 부산 왜학훈도로 내려온것은 정묘(1867)년이였다.… 《아! 오랑캐를 막아야 할 이 총으로 불쌍한 백성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니… 의승, 차라리 고향에 내려가 배군으로 맘 편히 살겠소.》 《화적》토벌에 몰렸던 그날 밤 석해는 술상을 내려치며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석해, 군사들마저 총을 놓으면 이 나라 대문은 누가 지키는가. 임진왜란때를 벌써 잊었는가!》 《임진왜란》! 구중궁궐에 들어박혀 영원한 《태평성대》를 읊조리던 량반사대부들의 예언과는 달리 리씨조선은 건국후 200년만에 무서운 전쟁의 도가니속에 휘말려들었다. 란리가 터진 하루만에 나라의 대문인 부산진이 무너지고 뒤이어 동래성까지 떨어지자 노상 술과 계집에 파묻혀 게슴츠레해진 대감, 령감나으리들 눈이 대번에 화등잔만 해져 평안도 막바지로 피신해간 나라님의 본을 따라 저마끔 꽁무니를 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술에 취하고 분내에 취해 눈이 멀고 귀까지 막혀 민족의 넋이란 빈 허울만 남아있던 그대들중 혹 8년전에 세상을 하직한 리이의 《10만양병설》을 상기했다면 그래도 다행이랄지… 하지만 수군절도사요 뭐요 서리찬 직함을 하사받고도 수하장졸 하나없이 전장으로 떠나야 했던 장수들은 가슴치며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하지만 평소엔 그처럼 어질고 순박하다가도 일단 나라에 위험이 닥치면 어느 민족도 따르지 못할 애국충정으로 한결같이 일떠서는 이 나라 백성들이 있어 7년간의 전쟁에서 민족의 존엄과 넋을 지켜낼수 있었다. 《석해, 우린 참고견디며 힘을 키워야 해. 민족의 넋을 지키는 길은 군사의 총밖에 없어.》… 그런데 이 의승은 지금 누구의 총끝에 몰려 어디로 가는가. 동준은 찬비 뿌리는 봄하늘을 우러렀다. 먹장구름이 떠도는 하늘가에서는 비가 내리고 수레는 진창속을 힘겹게 굴러가고있었다.
대문과 도적 《강약이 부동일세. 대세를 바로 볼줄 알아야 하네.》 이것은 장인의 《타이름》이였다. 경주부윤으로 있는 장인과는 기이한 인연으로 얽혀있다. 경주라면 삼국시대의 신라 수도로서 천여년력사를 자랑하는 고색창연한 곳이다. 경주부윤은 한개 고을의 엄지꼭지라 하겠지만 한때 장인은 청나라로 가는 사신의 물망에 오른적도 있었다. 그속에 동준이도 끼여있었다. 조정에서는 《작은것은 큰것을 섬겨야 한다.》는 유교교리를 《대의명분》으로 숭상하였다. 하여 청나라로 가는 사신행렬은 어마어마하였다. 앞에는 길안내하는 청나라관리의 수레가 서고 그뒤로 정사(단장)와 부사(부단장)의 수레가 따르고 역관(통역관)과 수행원들, 짐군들과 호위군사까지 치면 행렬은 5리가 넘었다. 그때의 일행속에 지금 정주부윤으로 있는 림한수도 있었다. 그들이 료하를 건너 만리장성을 넘어서 중원대륙의 락양부근에 들어섰을 때 도적들의 습격을 받게 되였다. 전국을 휩쓴 홍수전의 《태평천국농민전쟁》을 겪고난 어수선한 때라 도처에 화적들이 출몰하여 짐을 털어내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군사들과 도적들간의 치렬한 싸움이 벌어져 여러 군사들이 죽고 짐군들은 도망을 쳤을 때 돌연 장창을 꼬나든 키큰 사람이 좌우충돌 맹렬히 싸워 수행원들은 죽음을 면할수가 있었다. 례물짐은 물론 말짱 털리우고말았다. 청나라땅에서 짐을 빼앗기고 생명까지 위협당했으나 일행은 청나라조정의 랭대를 받았다. 무릇 대감집문전에 구걸하러 온 걸인을 상대하듯 했다. 정사와 부사가 나서서 항의했으나 그들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였다. 이때 동준이 나서서 조정의 중신들과 황제의 측근들을 류창한 언변과 외교로 마음을 움직여 겨우 외교석상에 마주앉을수 있었으나 국가중대사는 론의도 못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라의 존엄이자 사신의 존엄인것이였다. 동준은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내 울적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동준은 외교로 나라의 존엄을 떨치고 민족의 넋을 지켜가려는 일념으로 부산왜학 훈도로 내려온 첫날부터 국태공 대원군의 《척양척왜》정책을 드세게 밀고나갔다. 왜학훈도는 사역원의 정9품관리로 부산과 제포에 한사람씩 배치되였다. 그가 부산진에 내려온지 1년이 지난 1868년 3월 초순 어느날 그는 왜관밖 사무실에서 한 왜놈과 마주앉았다. 오래동안 조일관계에서 중개자의 역할을 한 쯔시마도주 소우 요시사또의 심복부하 히구찌와는 이미전부터 안면이 있었다. 히구찌가 자못 정중한 어조로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일본정부에서는 올해 2월 <명치유신>을 하여 <왕정복고>를 한 력사적사변을 귀측정부에 통지하라는 과업을 저에게 맡기였습니다.》 그는 한장의 서한을 동준이앞에 내놓았다. 이것은 히구찌와의 상면과정에 전에 없던 일이였다. 어불성설이라고 쯔시마도주의 심부름이나 해먹던자가 어느새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로 변신했는가. 동준은 말없이 그의 표정을 뜯어보았다. 앙바틈한 키에 빠른 하관, 쉼없이 돌아가는 좁쌀눈은 어느모로 보나 섬나라족속의 전형적인 외형이다. 일본에서 1년간의 국내전쟁결과 260여년동안 존속되던 도꾸가와막부가 꺼꾸러지고 무쯔히또가 《명치천황》으로 들어앉은 《왕정복고》가 진행된 사실을 동준은 알고있었다. 한갖 도주의 심부름군을 해먹는 놈팽이를 보내온 쪽발이들의 처사에 동준은 분이 치밀었으나 외교의례를 지켜 서한을 뜯었다. 서한에는 《명치유신》이래 《왕정복고》가 진행되였으며 수도를 교또로부터 에도로 옮기고 도꾜로 고쳐부르게 된 사실과 일본의 황제는 조선정부와 국교를 회복할데 대한 《칙서》를 내리였다고 통지해오고있었다. 마감에 쯔시마도주를 왜국사무보로 임명한다고 되여있었다. 동준의 길쑴한 얼굴이 대번에 엄엄해지고 눈빛은 날카로와졌다. 《여보 히구찌씨, 당신네 도주가 왜국사무보로 되였다는건 웬일이요?》 《하, 동준씨, 서한에도 밝혀져있지만 우리 일본에서는 막부가 철페되고 <명치유신> 이…》 《그만하시오. 우린 쌍방이 합의하여 인정하는 직함과 도장만을 인정할뿐이요.》 《아아, 동준씨.》하며 히구찌는 좁쌀같은 눈알을 깜빡거리며 도장이 새롭게 된 리유를 합리화해보려고 안깐힘을 썼다. 동준은 날카로운 눈길로 히구찌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당신들은 여기에 <황제>요 <칙서>요 하는 용어를 함부로 박아넣었는데 이건 뭐요?》 《그… 그건…》 《닥치시오. 지금까지 조선을 웃나라로 섬겨오던 왜국이 어떻게 군신간의 용어처럼 <칙서>라는 말을 주제넘게 쓰고있는가?》 《동준씨, 사…사실 저야 도주님의 편지를…》 (저런 천치같은 녀석을 국교수립의 외교전에 보내다니…) 동준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환멸의 쓰거움이 어렸다. 《당신은 나라현에 가보았소?》 《갑자기 그건…》 히구찌가 영문을 몰라 벙벙해진 좁쌀눈을 깜빡거렸다. 《나니와포구에서 야마또강을 거슬러가면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보게 되오. 그 언덕너머에 아득하게 펼쳐진 분지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야마또제국의 옛 도읍이 자리잡았던 나라현이요. 동쪽과 북쪽은 산발들로 둘러막히고 벌로는 하쯔세천, 데라천, 야스까천 등이 흘러드는 곳이요.》 히구찌는 명상에 잠긴 동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신네 나라는 6세기말부터 7세기초에 <아스까시대>로 불리우는 일대 전성기가 있었소. 불교문화의 개화기였지.…》 《동준씨, 난 불교도가 아니지요.》 히구찌는 뾰족한 턱의 입술을 밤알처럼 내밀며 빈정거렸다. 그러거나말거나 동준은 의미심장하게 이야기를 펴나갔다. 《야마또국가의 33대왕은 추고녀왕이였소. 흑명왕의 딸 누까나레는 왕족신분으로 일본력사상 처음으로 녀왕이 되였으나 녀자의 몸이라 정치를 할수 없어 오래비인 용명왕의 아들을 내세워 섭정을 하였소. 그가 바로 당신들이 오늘도 <일본의 석가>요, <법왕>으로 신앙하는 성덕태자였소. 그 시기에 일본은 비로소 불교를 널리 부흥시키고 조선의 발전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소. 이젠 내 말뜻을 알만 하오?》 히구찌는 뾰족한 턱밑을 떨면서 표독스레 내뱉았다. 《그러니 조선의 덕으로 일본이 문명개화하였다는 소리요?》 《바로 그렇소. 당신네 나라는 옛 조선의 삼국시대 국가였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향으로 비로소 국가의 체모를 갖추기 시작했소. 성덕태자의 스승은 혜자스님으로 불리우던 백제의 학자 아직기였고 태자의 측근신하 소마우마꼬 역시 백제사람의 후손이였소. 오늘도 법륭사에는 고구려의 중 담징이 그린 금당벽화가 그대로 보존되여있을거요. 하하… 히구찌씨, 나라현에 다시 갔다온 다음 마주앉는게 어떻소?》 히구찌의 낯빛은 아예 거멓게 죽어갔다. 《동준씨, 이 편지를 전달하지 못하면 난…난…》 인격에서나 지성에서나 패배를 인정할수밖에 없었던 히구찌는 우거지상이 되여 중얼거렸다. 《나는 외교관이요. 나라의 존엄을 국가앞에, 백성앞에 책임진 외교관이란 말이요. 이 서한은 접수할수 없소. 리유는 첫째로, 당신네 쯔시마도주의 직함이 두 나라가 합의한 조약에 심히 어긋나기때문이요. 우리는 두 나라 사이에 체결된 기유조약(1609년)의 서신래왕규정외에는 인정할수 없소. 둘째로, 이 서한에는 일본의 천황이 조선정부와의 국교를 수립할데 대해서 <칙서>를 내리였다고 씌여있소. 이것은 조선정부에 대한 엄중한 모독이며 언어도단이요. 그러니 다시 고쳐가지고 오시오. 이만합시다.》 동준은 랭정하게 말끝을 맺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의 대화는 이렇게 끝나고말았다. 그러나 히구찌는 돌아갈수 없었다. 자신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있음을 너무도 잘 아는 히구찌는 서한을 넘겨주려고 별 오그랑수를 다 썼으나 안동준의 바위같은 마음을 움직일수 없었다. 다음해 기사(1869)년 11월 초겨울의 어느날 히구찌는 서한을 고쳐가지고 동준이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서한에는 쯔시마도주의 격이나 높이기 위하여 《좌근위소장》(정3위이상의 관리들에게 주는 존칭)의 칭호를 덧붙였을뿐 여전히 《황제》, 《칙서》등의 표현은 그대로 있었다. 등치고 배만지는 오랑캐족속의 간특한 심리가 그대로 엿보이는 서한을 들여다보던 동준은 쓴입을 다셨다. 《우리 나라와 일본사이에 체결된 조약은 절대로 고칠수 없소. 나는 나라의 외교관으로서 이를 집행할 의무밖에 없는거요.》 히구찌는 또다시 닭쫓던 개신세 되여 문전거절을 당하는수밖에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번지자 일본정계에서는 들끓었다. 프랑스, 도이췰란드 등 유럽나라들과 미국에 앞서 조선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던 시도가 첫걸음부터 참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외무성의 관리인 요시오까를 내세웠다. 지방봉건세력에 불과한 쯔시마도주를 중개자로 내세워서는 언제 가도 국교수립의 야망을 실현할수 없음을 깨달은 일본정부에서는 외무경 소에지마의 서신을 요시오까의 손에 들려 바다건너 보냈던것이다. 그는 체소한 몸집이라든가 은테안경속에 내뿜는 차거운 눈빛이라든가 어느모로 보나 사무라이후예의 기질이 짙게 풍기는자였다. 《이 서신은 우리 정부의 외무경께서 귀국의 례조판서앞으로 보내는것입니다. 우리는 쯔시마도주를 내세워 진행하던 낡은 국교관계를 버리고 두 나라 정부사이에 직접 서계(외교문건)를 교환하자는것입니다.》 그는 자못 정중하게 서신을 내밀었다. 너같은 하급관리는 전달만 하면 된다는 식이였다 동준은 철문처럼 입을 꾹 다문채 서신의 겉면을 훑어보았다. 앞면에는 《조선국 례조판서귀하 앞》이라고 쓰고 뒤면은 《일본국 외무경》이라고 밝혀져있었다. (오만방자한 놈들!…) 동준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의 은테안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서신을 도로 내밀었다. 《나는 이 서신을 접수할수 없습니다.》 《무엇때문인가요?》 《일본정부가 쯔시마도주를 제쳐놓고 직접 조선정부와 교섭하겠다는것부터가 우리와 아무런 사전협의도 없는 일방적인 독단입니다.》 《당신은 이 서한을 귀측정부에 전달만 하면 될것입니다. 우린 귀측의 례조판서앞으로 서한을 따로 띄웠습니다.》 《그것은 개인서신일지는 모르나 나라의 공식문건으로는 되지 못할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며 공기가 팽배해졌다. 예리한 눈초리만이 엇갈리며 허공중에서 부딪쳤다. 이윽고 동준이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외무성 관리인만큼 두 나라간에 체결된 기유조약의 조항들을 알고있을것입니다.》 《지금의 일본정부는 그전의 막부가 아니라 새 정부입니다. 오늘은 유럽과 미국에서와 같이 새로운 형식의 국교관계에 따라 호상성의 원칙에서 통교하고있습니다. 이것이 대세가 아닐가요?》 《그것은 당신측의 일방적인 해석입니다. 우리 조정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조선정부입니다. 우리 정부는 기존조약을 부정한적이 없습니다.》 동준은 랭소를 지었다. 요시오까의 은테안경밑에서 야멸찬 기운이 풍겨나왔다. 더는 참을수 없었던지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서며 《조선정부는 일본과의 국교를 거절하지 못할것입니다. 당신은 이 후과에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것입니다.》라고 가시돋친 말을 내뿜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동준은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있었다. 지난해 일본 외무성은 사이고 다까모리의 《정한론》을 작성하여 정부에 제출하였다. 그 골자는 30개 대대의 정예무력을 동원하여 강화도와 3남지방, 강원도와 함경도방면 등 4개 방향에서 불의에 침입하여 대원군을 사로잡고 통상조약을 강압체결하자는 일종의 조선출병음모였다. 벌써 심상찮은 움직임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있었다. 지난 2월 외무성과 쯔시마관리들을 태운 도이췰란드군함 《헤르타》호가 부산앞바다에서 일대 무력시위를 벌렸고 부산왜관에 틀고앉은 왜놈들의 움직임도 전에없이 살기를 풍기고있었다. 동준은 답답한듯 창문을 열어제꼈다. 해감내 풍기는 바다바람이 귀밑머리를 간지럽히며 시원스레 불어왔다. 그러나 달아오른 그의 마음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외교전은 명실공히 국력에 바탕을 두고있다. 국력이 없는 나라는 외교전에서도 패하기 마련이다. 쓰디쓴 참패의 고배를 삼키기 전에 국력을 다져야 하는것이다. 동준은 비운의 검은구름이 각일각 밀려오는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바다가로 나갔다. 언제 봐도 조국의 바다는 장쾌하고도 아름다왔다. 검푸른 바다가 쉼없이 출렁이고 갈매기 유유히 날아예는 눈뿌리 아득히 펼쳐진 수평선. 저 너머에 제2의 《임진왜란》을 꾀하는 섬오랑캐들의 나라가 도사리고있다. 《명치유신》이래 《신분제도》의 페지, 《농노개혁》 등 뒤늦게야 자본주의궤도우에 뛰여오른 일본이 조선을 향해 침략의 닻을 올리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한것이다. 불평등적인 《통상조약》이 망국의 첫걸음임을 조정에선 과연 모른단 말인가. 대문을 지킬 힘이 없으면 언제든지 그 대문은 깨지기마련이다. 《강약이 부동일세.…》 장인의 모습이 불현듯 눈앞에 새록새록 밝혀왔다. 《자네 혼자의 힘으로 나라의 대문을 지켜낼상 싶은가?》 갑자기 수레가 멈춰섰다. 그 바람에 동준은 깊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찬비가 뿌리고있었다.
대문과 넋 《의승, 잠간 쉬고 갑시다.》 석해가 수레앞으로 다가오며 하는 말이였다. 그의 부축을 받아 수레에서 내린 동준은 갑자기 현훈증을 느끼며 비칠거렸다. 《의승, 왜 이러시오?》 《난 일없네.》 석해가 이끄는대로 길섶의 나지막한 공지에 이르니 뜻밖에 음식상이 차려져있었다. 비를 긋느라 차일을 친것이라든가 정성들인 품이 누군가 여기서 동준을 무척 기다린듯 했다. 석해의 안해 안씨의 소행임을 동준은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다. 아마 관가의 눈을 피하느라 우정 부산진지경을 벗어나 여기에 자리를 마련하였으리라. 얼마후 물통을 든 안씨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동준의 손을 부여잡는다. 《오라버님, 이제 가면 다시 만날 날이 있을런지…》 그는 동백기름을 바른 쪽진 머리를 숙이며 눈물 지었다. 서울의 외삼촌집 처마아래서 석해와 인연맺은 안씨(알고보니 동준과 성과 본이 같았다.)는 그를 친오라버니처럼 믿고 존경해오고있었다. 찰랑찰랑 넘치는 잔을 두손으로 받쳐올리는 안씨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오라버님, 어떤 일이 있어도 부디 락심마시고…》 또 눈으로 옷고름을 가져가며 눈굽을 찍었다. 《허허… 걱정마오. 이미 각오했던 운명의 길이니…》 《제길, 아녀자들이란… 이렇게 눈물이 헤프다구야…》 석해가 눈살을 찌프리며 속불을 끄려는듯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음… 그때 저 녀인의 예언이 맞았어.) 잔을 든 동준은 의미심장하게 눈을 감았다. …그날은 왜관에 틀고앉은 왜놈들의 란동이 있은 날이였다. 정오경 동준은 순라군사들로부터 급보를 받게 되였다. 수십명의 왜놈들이 무리지어 왜관밖 울타리를 벗어나 동래현으로 향하고있다는것이였다. 그가 한달음에 달려갔을 때 맨앞에 서있던 요시오까가 은테안경을 차겁게 번뜩이며 씨벌여댔다. 《동준씨, 길을 막지 않는게 좋겠소. 우린 동래부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요.》 동준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갖은 감언리설과 위협공갈이 통하지 않게 되자 왜학훈도를 제껴놓고 직접 동래부사를 만나 외무경의 서신을 전달하려는 흉심인것이다. 며칠전에도 지꿎게 사무실문턱이 닳도록 나들다못해 큼직한 뢰물함을 집에까지 들고왔던 요시오까다. 자기가 없는 사이에 함을 놓고간것을 안해에게 당장 왜관에게 돌려보내라고 불호령을 내렸던 동준이였다. 《당신들은 지금 우리 나라 법을 란폭하게 위반하고있소. 당장 울타리안으로 들어가시오.》 《우린 동래부사를 뵈러 가는 공식방문길입니다. 당신의 권한밖의 일이겠는데요?》 《왜학훈도의 승인없이 울타리밖을 벗어난것은 기유조약의 법조항을 고의적으로 어긴것으로 되오.》 《아직도 구조약타령이구려. 동준씨ㅡ》 뻔뻔스러운 요시오까의 야살에 동준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당장 울타리안으로 들어갈것을 부산왜학훈도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요구하오. 그렇지 않으면 국법에 따라 처리할것이요.》 《천만의 말씀, 당신은 지금 두 나라간의 통상을 고의적으로 파탄시키고있습니다. 나는 정식으로 항의합니다.》 제법 달고나온 왜놈들을 둘러보며 요시오까가 표독스레 뇌까리자 동준은 참았던 노기를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경고하오. 만약 울타리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린 군사의 힘으로 단호히 징벌하겠소.》 동준의 언명이 빈말이 아님을 왜놈들은 잘 알고있었다. 얼마전 조선남해 연해에서 표류된 왜선 3척을 동준은 왜관에 넘겨주지 않고 군사들을 동원하여 부산앞바다에 버리게 하였던것이다. 이것이 장사거래를 하던 조선사람들의 가게방을 부시며 란동을 부린 왜놈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임을 그들이 모를리 없었다. 더우기 요즘 부산진앞 창고에서 군량미가 없어지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있어 관가의 눈초리가 왜관에 쏠리고있음을 간파 못할 왜놈들이 아니였던것이다. 동준이 결연한 태도를 취하자 왜놈들속에서는 동요가 일어났다. 이때 급보를 받은 석해가 군사들을 이끌고왔다. 담벽처럼 길을 막아섰던 동준이 단호한 어조로 엄명을 내렸다. 《부산진 비장은 당장 왜놈들을 왜관울타리안으로 몰아넣으시오. 반항하는자는 가차없이 처형하오.》 《이 쪽발이놈들, 당장 돌아서지 못할가. 응하지 않는자는 이 자리에서 목없는 귀신으로 만들테다.》 성난 범마냥 서슬푸른 석해의 기상앞에 왜놈들은 슬금슬금 뒤걸음쳤다. 이때였다. 요시오까가 싸늘한 웃음을 띄우며 뇌까렸다. 《동준씨,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고 이건 너무하구려.》 《당신은 무엇을 말하자는건가?》 《우리가 보내준 뢰물함의 성의가 부족한가요? 그만하면 작은것이 아닌데요.》 여러 군사들과 석해가 동준을 흘깃 돌아봤다. 동준은 갑자기 눈앞에 무수한 별찌가 날아들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비렬한 놈!) 요시오까의 놀림에 든것만 같은 모욕과 수치감이 한꺼번에 치밀어오르며 눈에서 퍼런 불이 쏟아져나왔다. 《당신들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나는 부산왜학훈도로서 기유조약을 란폭하게 위반한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언명하오. 오늘부터 일본인들은 조선인들과의 일체 교역을 금지할것이며 왜관에 대한 식량과 화목공급을 중단할것이요.》 요시오까의 입에서 단말마적인 비명이 울리고 왜놈들속에서는 아우성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조선인 장사치들과 물건을 교환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치부하던 자신들의 명줄을 끊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던것이다. 그날 동준은 정식문건을 작성하여 왜관에 넘겨준 다음 집으로 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바람으로 동준은 림씨를 사랑방으로 불러들였다. 《전날 왜놈들이 가져온 짐함을 도로 보내라고 일렀는데 어찌된 일이요?》 림씨는 우물쭈물 갑자르다 흘깃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실은… 집안에 들어왔던 물건을 내보내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길래…》 《아직 집에 그냥 있단 말이요?》 《!...》 동준은 안해를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에 가져다놓소.》 림씨는 기연가미연가하면서도 하인을 시켜 날라오게 하였다. 함안에는 여러가지 고급술과 값비싼 서양물건들이 들어있었다. 동준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랭소가 어렸다. 《부인, 그렇게도 왜놈들의 물건이 욕심나거든…(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모두 걷어가지고 본가로 돌아가오. 나는 나라에서 주는 록이면 충분하오.》 동준은 이 말을 남기고 움쭉 자리를 일었다. 뒤에서 《흐ㅡ흑.》하는 림씨의 흐느낌이 들려왔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미 예감했던 운명의 시각이 지금 당도한듯싶었다. 동준은 림씨와 10년가까이 살아오면서 애틋한 정을 모르고 살아왔다. 두집사이 매파가 오가기 시작한것은 동준이 사역원에 있을 때였다. 당시 사역원에 있던 림한수는 청나라 래왕때 동준의 능숙한 외교술과 류창한 언변, 뛰여난 담력에 감탄하여 사위감으로 지목하게 되였다. 그러나 미미한 중인출신인 그를 꺼려 망설이고있었는데 마침 외삼촌어머니가 눈치를 채고 다긋는 바람에 혼인이 이루어졌던것이다. 림씨집안은 대대로 세도량반가문으로 큰할아버지는 좌찬성 벼슬까지 지낸바 있었다. 그래서인지 세상풍파를 모르고 호의호식하며 자란 량반집 규방녀인 림씨는 속에 든것도 없고 마음까지 좁은 녀자였다. 사역원의 역관으로 여러번 사신행차로 외국에 다녀왔던 동준이 애초에 사치품에는 관심이 없었던탓에 림씨는 자주 불만을 터뜨리군 하였다. 부산왜학훈도로 내려온 후에는 눈에 띄우게 그들사이가 어성버성해졌다. 사실 림한수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인지라 끔찍이 떠받들면서 비교적 말썽도 없는, 그러면서도 직접 왜인들을 대상하는 먹을알있는 왜학훈도의 자리에 그를 주선했던것이다. 동준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석해의 집으로 향해졌다. 그의 집은 조용했다. 마침 석해와 안씨가 사랑방에서 무슨 이야기인가 주고받다가 제집처럼 스스럼없이 들어서는 그를 맞이했다. 《방금 의승이야기를 하던 참이요.》 석해가 감때사나운 얼굴에 온화한 웃음을 띠우며 하는 말이였다. 《오라버님은 식전이겠군요. 제 잠간…》 안씨가 서둘러 부엌으로 내려간 후 그들은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주고받았다. 《난 오늘 군사들앞에서 얼굴이 뜨거웠소.》 《뭘 그러시오. 쪽발이놈의 말을 누가 그대로 믿겠소? 천만부당한 생억지겠지.》 《사실이요. 그놈이 가져온 함을 되돌려보내지 않고 아직 집에 두고있더군.》 《젠장, 그렇다면 어쨌단 말이요. 마당앞에 쌓아놓고 콱 불을 지르던가 왜관앞 바다속에 처넣구려.》 《자네 말처럼 뭐든지 생각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의승이 오늘은 웬일이요? 그러지 말고 속이 쭉 풀리게 한잔 내오.》 석해는 안해가 차려온 상앞에 그를 이끌었다. 《오늘에야 십년묵은 체증이 떨어진듯 속이 후련하우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제격이라고… 허허, 글쎄 요시오까 그놈이 은테안경까지 벗어들고 지랄쳤지만 끝내 왜관울타리로 쫓겨들어가고말았소.》 《정식문건을 왜관에 넘겨주었네.》 《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제깐놈들 쌀과 화목이 떨어지면 별수 있소?》 이때 그들옆에서 술시중을 들던 안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남정들 일에 아녀자가 간참할바는 아니지만 이제 그 문제가 꼭 불집을 일으킬것 같구만요.》 《당신의 걱정주머니가 또 터졌구려. 왜관밖에 나와 란동을 부린 놈들을 왜학의 권한으로 징벌한건데. 어쨌든 난 속이 다 후련하오.》 허나 동준은 안씨의 말을 무심히 들을수 없었다. 비록 배운것은 없지만 세파에 부대끼며 세상리치에 밝은 그는 매사에 심중하였고 함부로 속마음 내비치는 녀자도 아니였다. 이따금 껴들군하는 그의 예언이 까다롭고 복잡한 외교리면을 신통하게 들어맞힌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던것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끝내 불집은 터지고야말았다. 식량과 화목공급이 끊어진 왜관안에서 소동이 일어나고 왜놈들이 아사직전에 이른것이다. 그러나 동준은 요시오까의 공식사죄를 받기 전엔 식량과 화목공급을 할수 없다는 배심을 가지고 왜놈들을 드세게 닥달질하였다. 이번 기회에 오만무례하게 날뛰는 왜관놈들의 기를 눌러버릴 결심이였던것이다. 열흘만에야 그는 요시오까의 공식사죄를 접수하고 왜관에 대한 징벌조치를 해제하였다. 그러나 식량만은 장사치들과 거래를 못하게 금지시키고 부산진의 쌀을 꾸어먹고 리자를 물게끔 하였다. 그때는 이 징벌조치가 그의 운명에 어떤 검은 그림자를 던지게 될것인가는 알수 없었다. 갑술(1874)년 섣달 초순 저녁무렵이였다. 한겨울의 맵짠 바람결을 타고 부산진의 어느 한집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텅ㅡ텅ㅡ텅…》 술에 취한 동준이 미친듯이 도끼를 휘둘러대고있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에 맞아 그의 집 대문이 여지없이 짜개져나갔다. 《나리, 어찌자고… 제발 진정하시오이다.》 하인이 사색이 되여 허겁지겁 달려와 그를 붙안았다. 《나라의 대문도 지켜내지 못하는 이 못난 놈의 집대문이 다 뭐냐. 콱 깨져라, 산산이 부서져라. 아ㅡ》 동준의 가슴속에서는 용암같은 분노가 끓어올라 솟음치고있었다. 전달초 사흘날 조정에서는 충격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마침내 국왕의 친정이 선포되였던것이다. 그것은 왕비 민비의 놀라운 계략의 산물이였다. 민비는 병인(1866)년 3월에 대원군의 왕비간택에 의하여 왕궁에 들어온 녀자다. 날씬한 몸매에 랭정한 눈빛을 가진 참정 민치록의 딸 민비는 한갖 왕비나 내인으로 구중궁궐의 깊은 내전에 묻혀있기에는 너무나 총명하고 정치에도 밝았으며 천하를 호령하고싶은 권세욕까지 가진 《녀걸》이였다. 이 몇해사이에 자기의 세력지반을 튼튼히 꾸린 그는 유생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시아버지 대원군을 정권에서 내몰고 친정을 선포하는 형식으로 나라의 실권을 거머쥐였다. 민비일당은 대원군의 입궐부터 금지시키고 외척세도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정부를 새로 꾸리였다. 그리고 대원군의 집권시기 실시된 정책들을 하나하나 뒤집어엎기 시작하였다. 사대주의를 조장하던 서원을 복구하였으며 대원군의 《척양척왜》정책을 유화굴종정책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대일예속화의 첫걸음을 내짚었다. 하여 부산왜학훈도앞으로 조일관계개선을 위해 왜국통상요구를 무조건 접수할데 대한 국왕의 칙서가 떨어졌다. 《이이제이》(오랑캐로써 오랑캐를 견지하는것)의 외교전법에 따라 유럽과 미국침략세력을 견지하기 위해 일본과 통상한다는 어불성설로 일관된 내용이였다. 원래 《이이제이》는 당나라의 대내정책이였다. 7세기말 당나라에서 거란인, 습인, 해인 등 여러 민족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당나라의 녀황제 무측전은 투항한 거란인들을 내세워 다른 민족을 진압하려 꾀하였던것이다. 동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적을 막자고 강도를 청하는것임을 조정의 그네들이 과연 모른단 말인가. 알면서도 세도에 눌리워 모르쇠를 하는것인가. 이 나라에 과연 민족의 넋이 있기는 있는가. 동준은 며칠째 침식을 잊었다. 매일과 같이 촉구해오는 요시오까의 면담도 일체 거절하고 무언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그러자 민비일당은 그에게 압력을 가하는 한편 새로 등용된 금위대장 조녕하를 왜관에 들어와있던 외무성대록 모리야마에게 보내여 비밀서한을 전달하게 하였다. 그것은 세자책봉에 대한 일본과 청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것이였다. 민비는 첫 아들이 죽은 후 4년만인 을해 (1875)년 2월에 두번째 아들(순종)을 낳았는데 그때 손우의 형인 궁인 리씨의 아들 완화군은 벌써 7살이였다. 물론 자기 아들이 정실 왕비가 낳은 적자라 해도 임금이 만일 나이순서에 따라 완화군을 세자로 책봉한다면 어쩌랴 하는 위구심으로 민비는 조급함을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세자책봉문제가 자신과 일족의 운명문제임을 잘 아는 민비는 나라를 개항시킬 야심을 품고 통상을 요구해오는 일본을 끌어들여 청국과의 교섭도 이루어보려고 꾀하였던것이다. 비렬한 음모의 내막을 제일 먼저 간파한 사람이 부산왜학훈도 안동준이였다. 이제는 일본과의 통상은 시간문제로 되였다. 만약 통상을 거절한다면 대포와 군함을 끌고 달려들것이다. 통상조약으로 나라의 대문이 깨져나간다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자본주의렬강들의 침략을 어찌 막을소냐. 《아ㅡ》동준은 손에 든 도끼를 힘껏 대문기둥에 박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과연 이 나라에는 민족의 넋을 지킬 위인이 그리도 없단 말인가. 《자네 혼자의 힘으로 나라의 대문을 지켜낼상 싶은가? 강약이 부동일세.》 문득 장인의 말이 우뢰처럼 귀전에 울려왔다. 조선아! 너의 운명 장차 어찌 될것이냐! 동준은 드디여 최후의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밤도 퍼그나 깊었으나 동준의 방에는 초불이 꺼질줄 몰랐다. 그는 국왕께 올리는 상주문을 쓰고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목숨까지도 바쳐야 할 일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물러설 길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상주문에서 세자책봉교섭의 비렬한 내막을 까밝히고 그 부당성을 론거를 들어가며 비판하였다. 후궁의 아들이 아무리 손우라 해도 정실왕비의 적자가 응당 세자로 책봉될진대 무엇때문에 일본의 비위를 맞추면서까지 비굴하게 음모의 방법으로 외교전을 벌리겠는가. 만일 세자책봉을 위해 왜국의 통상을 접수한다면 나라의 존엄을 훼손시키는 천만부당한 매국행위로 될것이라고 준렬히 규탄하였다. 그는 《이이제이》는 집에 기여든 도적을 막자고 칼을 빼든 강도무리를 청하는것이나 다를바 없으므로 절대로 통상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절절히 써나갔다. 그러나 그때 그는 너무도 많은것을 모르고있었다. 이 나라에 임금은 있어도 넋이 없고 하늘은 있어도 해가 없음을! 상주문을 낸것으로 하여 동준의 신상에는 각일각 위험이 조여들었다. 사위가 상주문을 올렸다는것을 알게 된 장인은 사색이 되여 경주에서 한달음에 부산진으로 내려왔다. 《자네 상감께 상주문을 냈다는게 적실한가?》 《그렇습니다.》 《으흐… 이젠 가문이 멸족을 면치 못하리라.》 장인은 갓을 쓴 채머리를 떨며 호곡을 터뜨렸다. 《어험, 자넨 이젠 내 집 사람이 아닐세. 당장 내 딸을 데려가야겠네.》 《그건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끝나고말았다. 어찌보면 운명의 갈림길이 오래전부터 그들을 기다린듯 싶기도 했다. (이 벼락을 어찌 막을소냐. 대세도 모르는 어리석은 녀석.) 경주로 올라가며 림한수는 한숨만 내쉬였다. 동준의 인격과 담력에 끌려 사위로 삼으면서도 아니아니했던 불안감이 이제 터진것 같기도 했다. 불의앞에서는 어떤 권력이나 재물에도 굽힘을 모르는 강직한 그의 기질이 꼭 일을 칠것만 같았는데 아니나다를가 싱감께 상주문을 올렸으니 불티는 불원간 자기의 가문에도 날아올것이다. 선손을 써야 했다.… 《아직도 죄책을 모르겠느냐?》 금위대장 조녕하의 호통소리가 부산진의 동헌앞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형틀에 매인 처참한 모습일망정 의젓하게 머리를 높이 들고있던 동준은 서리발같은 시선으로 금위대장과 주변을 일별하며 웅글은 어조로 말했다. 《나는 나라의 외교관으로서 응당 할일을 했을뿐이요.》 《뭣이? 아직도 오늘의 국책을 모르고 감히 망발인가?》 의금부의 관리가 일어나 동준의 죄상을 렬거하였다. 《조정이 내세운 <이이제이>의 외교전법에 반감을 품고 왜관에 대한 식량과 화목공급을 중단시킴으로써 대일관계를 파국에로 몰아간 죄와 왜인들에게서 뢰물을 받고 군량미까지 팔아먹은 너의 죄 실로 엄중하도다. 여봐라, 증인들을 불러들여라.》 그의 명에 따라 중문이 열리더니 경주부윤 림한수와 여러명의 왜놈들이 들어섰다. 동준은 비로소 어제날의 장인이 조정에 신소를 올렸으며 여기에 왜놈들까지 합세하였음을 깨달았다. 동준은 쓰겁게 입을 다셨다. 《옳소. 나는 왜관밖에 나와 함부로 란동을 부리며 나라의 자주권을 침범한 왜놈들을 우리 군사의 힘으로 징벌하고 국법에 따라 식량과 화목공급을 중단시켰소. 내 나라의 기름진 쌀로 왜놈들의 배를 채워줄수 없었기에 응당한 배상을 받아냈을뿐이요. 하지만 부산진의 군량미가 어느 놈이 빼돌려 쯔시마로 넘어갔는지는 시간이 흐르면 사실이 증명될것이요.》 《입을 다물지 못할가. 감히 이 마당에서까지 망발인가.》 금위대장이 푸르락거리며 발을 굴렀으나 동준은 불같은 말을 쏟아놓았다. 《내 다시한번 명백히 말하오만 절대로 일본의 통상요구를 받아들여선 안되오. 통상을 받아들인다면 나라는 망국의 비운을 면치 못할것이며 그것은 유구한 력사를 가진 단군조선의 치욕으로 될것이요. 아ㅡ <임진왜란>의 대동란을 몰아온 비렬하고 간특한 저 섬나라 오랑캐놈들은 한 하늘을 이고 살수없는 숙적임을 우리 세대는 물론이요 천세만세 후대들도, 아니 력사는 알아야 할것이요. 넋이 없는 조선아, 가련하구나. 아ㅡ절통하구나.》… 비는 여전히 구질구질 지꿎게 내리고있었다. 석해의 눈가에도 눈물이 괴여올랐다. 안씨는 자꾸만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동준의 눈시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제밤에도 갇혀있는 옥에까지 찾아왔던 그들이였다. 《의승, 호송도중 기회를 만들어보겠으니 탈출하여 몸을 보존하우.》 석해의 말이였다. 하지만 동준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성의는 고맙지만 나라의 대문도 지켜내지 못한 구차한 이 목숨이나 부지해선 뭘하겠소. 그러지 마오. 그리구 난 아직 할일이 있소.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조정의 대신 한사람이라도 마음을 움직여 국란을 막아야 하겠소.》 이렇게 동준은 비내리는 봄날 서울로 압송되여갔다. 부산진의 나지막한 둔덕에서 그를 바래우는 석해와 안씨의 눈에서는 뜨거운것이 쉼없이 흘러내렸다.
X 서울에 압송된 안동준은 의정부에서 문초받다가 부산동래부에 정배를 갔다. 그후 민비일당에 의해 1875년 3월 그곳에서 참형을 당했다. 마지막순간에 그가 어떤 절규를 남겼으며 무엇을 생각했던가는 누구도 모른다. 그후 이 나라의 대문은 첫 매국조약 《강화도조약》에 의하여 깨져나가 삼천리강토는 외래침략자들의 세력권쟁탈의 란무장으로 화하고 망국의 비운을 들쓰게 되였다. 허나 민비는 열혈의 애국자 안동준을 참형한지 스무해가 지난 을미(1895)년에 스스로 끌어들인 일본강도배들에 의하여 자신이 살해되리라는것은 꿈에도 모르고있었다. 아, 하늘의 해는 있어도 따사로움을 모르던, 검은구름만이 덮였던 비운의 시절이였다. 오늘도 력사의 교훈은 절규하노니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임을, 민족의 존엄과 영예는 총대우에 있음을!
(평안북도 운산군 금산중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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